이드 2부 – 531화
967화
요르문간드는 정신의 관이 연구를 통해 만들어 낸 가장 강력한 결과물 중 하나다. 최신의 기술이 사용된 것은 아니지만, 강력하기로는 다섯 손가락에 꼽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 다양한 범용성과 커다란 체격이 요르문간드의 자랑이었다.
이놈이 완성되었을 때 마법사들은 밤새 술을 마시며 자신들의 작품에 자축했고, 그 소란스러운 밤에 신화 속 뱀의 이름을 골라 붙이기까지 했다. 그런 요르문간드가 이드의 손에 죽었다.
심지어 죽어도 너무 맥없이 죽어 버렸다. 그것이 문제였다.
대부분 약골인 마법사들에게 대리 만족을 주었던 거체는 딱히 크지도 않은 이드의 손발에 힘없이 휘청거렸고, 극한에 이른 범용성은 다 보여 줄 시간조차 얻지 못했다.
그 모습을 본 마법사들은 짧은 현실 도피를 하게 되었다. 그들은 내심 소리라도 치고 싶은 심정이었다.
거짓말이라고, 저건 자신들이 자랑하던 요르문간드가 아니라고.
저 모습 어디에 철옹성도 휘감아 부숴 버릴 위용이 있느냐고 말이다.
이드와 요르문간드 간의 압도적인 힘의 차이에서 비롯된 일이었지만, 납득하고 싶지 않은 것이 마법사들의 심정인 것이다.
내심 요르문간드가 삼검왕을 막아 내는 모습을 그리던 마법사들의 꿈이 산산조각 나는 순간이었다.
이러한 꿈의 붕괴는 그들의 자신감에도 영향을 미쳤다.
보호 마법 밖에서 대치 중인 일리나를 노려보는 마법사들의 눈에서 힘이 빠졌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갑자기 커져 보이는 듯한 일리나에 압박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본격적인 전투 전에 기세가 꺾였다는 말은 패배와 다름이 없다. 결국 케닐의 입에서 약한 소리가 나왔다.
“음, 부관주. 이 시점에서 다시 재정비를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말이 재정비지, 후퇴를 하잔 말이다.
그에 해더웨이가 아니라 다른 장로인 길이 화가 나 소리쳤다.
“뭐요? 지금 꼬리를 말겠다는 말이오?”
“그런 게 아니라, 요르문간드가 죽어 계획이 엉클어졌으니 하는 말이오.’
“그게 그 말이잖소! 당신은 자존심도 없소? 동료들이 이리 죽었는데, 후퇴하자니. 그레이스 브레이브가 소리를 감춰서 다행이지. 아니었으면 소검후가 당신 이야기를 듣다 숨이 넘어갔을 거요!”
“거, 흥분하지 말고 전후를 살피란 말이오!”
“누가 흥분했단 말이오? 당신이나 제대로 보고 말하시오! 요르문간드가 죽었다고?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는 거요? 주요 골자가 그대로 남았는데? 핵만 다시 심으면 바로 움직일 수 있는걸 모르고 하는 말이오?”
길이 아는 일을 케닐이라고 모를까. 당연히 알고 있다. 하지만,
“지금 그 요르문간드가 완전히 파괴되고 있소만?”
그것도 주요 골자가 남아 있을 때 가능한 이야기가 아니던가.
케닐이 가리킨 석실 바닥.
그곳에서는 이드가 폭포수 같은 화염을 쏟아 내며 남아 있는 요르문간드의 흔적을 태우고 있었다.
그러는 중에 이쪽의 시선을 느낀 듯 산뜻한 미소로 손을 흔드는 이드의 모습이란.
“자고로 마법 생물은 죽인 후에도 다시 보라는 말이 있어서.”
어디 꺼진 불도 다시 보자는 오래된 캠페인 문구도 아니고 말이다.
“……!”
그 모습에 길은 할 말을 잃고는 뿌득뽀득 이를 갈았다. 이러면 자신의 주장이 소용없어지지 않는가.
하지만 그렇다고 후퇴에 동의할 생각도 없다. 길은 고집쟁이 영감처럼 부관주를 향했다.
“어쨌든 후퇴는 절대 동의할 수 없소, 부관주님!”
“두 분께선 일단 소검후에 집중해 주십시오. 곧 그레이스 브레이브가 붕괴할 겁니다.”
붕괴하는 마법 뒤에 다른 보호 마법을 설치하면 되는 일이지만, 부관주는 그렇게 하지 않을 거라는 뜻을 분명히 했다.
그 말은 곧 후퇴하자는 케닐보다 싸우자는 길을 지지한다는 뜻이기도 했다.
“… 공간 결계를 설치하겠습니다.”
부관주가 결정을 내렸다. 그에 케닐이 묵묵히 마법을 준비했다. 그는 의견을 낼 뿐, 결정은 부관주의 권한이다. 부관주가 결정을 내린 이상 따라야 했다.
그리고 잠시 후.
퍼억.
보호 마법을 녹이던 독의 마지막 한 방울이 증발함과 동시에 그레이스 브레이브가 비눗방울처럼 터졌다.
그와 동시에 일리나와 마법사들이 동시에 움직였다.
마법사들이 연계한 마법이 화려하게 폭발했고, 번득이는 검기가 허공을 갈랐다.
당연히 유리한 것은 일리나였다.
준비된 마법을 발동하는 것도 빠르지만, 검은 그보다 더 빨랐다. 언어와 생각보다 먼저 움직이는 것이 경지에 오른 무인의 검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양측 간 간격도 일리나에게 유리했다.
보호 마법의 앞에 서 있던 일리나와 마법사들의 거리는 삼 미터. 너무 가깝지도 않고, 멀지도 않은 완벽한 검사의 거리.
이미 마법사들은 완벽히 일리나의 제공권 안에 포착된 상태였다. 이 상태에서 눈을 감고 휘둘러도 빗나가지 않는다.
그런 일리나의 검이 첫 목표로 삼은 것은 부득부득 이를 갈던 길이었다. 그가 험한 욕설을 해서라기보다는 그저 가장 앞에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가장 앞에 서 있는 사람은 해더웨이지만, 일리나는 무조건 머리를 치기보다는 확실히 잡을 수 있는 사냥감을 잡자는 주의였다.
그런 일리나에게 해더웨이는 끝을 가늠할 수 없는 적이었던 것.
무엇보다 부관주다. 그녀는 생명의 관의 부관주가 얼마나 강력한 마법을 쓸 수 있는지 가까이서 확인했다.
같은 부관주인 해더웨이라면 그보다 못하지는 않을 것이 아닌가.
슈우우우~
그래서 길을 첫 타깃으로 노렸는데.
“!”
검의 움직임이 너무 느리다.
눈이 전하는 정보와 검을 통한 무인의 감각이 전해 주는 거리감에 노이즈가 발생했다.
‘아니, 검이 느린 것이 아니라. 목표와의 거리가 멀어. 공간 마법!’
마법에 무지한 기사와 달랐다. 일리나는 즉시 상황을 파악해 냈다. 과연 마법사들은 보호 마법이 녹아내리는 시간 동안 멍하니 구경만 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파파파팟!
그런 일리나에게 한발 늦게 마법이 쏟아져 내렸다.
“없으면 만드는 것. 그것이 마법사라오. 소검후. 하하하!”
색색의 마법광에 휘감기는 일리나.
그 모습을 보며 길이 크게 웃었다. 그 순간, 마법광을 뚫고 나온 은빛 선이 길에게로 뻗어졌다.
쩌렁!
한 치의 흔들림 없이 길의 목을 노린 은빛 선은 갑자기 그 앞에 나타난 마법진에 막혔다. 그리고 그 앞에 드러난 것은 검이었다.
“방어하지 않고 검을 던졌다고?”
순간 죽을 고비를 넘겼음을 인지한 길의 떨리는 말이 끝나기도 전 마법진에 막혀 발치로 떨어지던 검이 시간을 되감듯 마법광 안으로 빨려 들었다. 검의 주인이 누구인지 떠올리면 누가 검을 당겼는지 굳이 말할 필요도 없는 일.
투두두둑!
작은 북 치는 소리가 나고, 화려한 마법광이 급격히 빛을 잃고 스러졌다. 그리고 그 안쪽에서부터 일리나가 나타났다.
흐트러진 머리 말고는 작은 상처 하나 없는 모습.
“미친, 검도 없이 어떻게 그 공격을 막은 거지?”
길의 얼굴에 믿을 수 없다는 강한 불신이 떠올랐다. 두려운 사실이지만, 일리나의 검은 자신에게 향하지 않았던가.
검도 없이 자신들의 마법을 어떻게 막은 것인가.
경악하는 길이었지만, 일리나는 말 대신 검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적들을 앞에 두고 수중무검 심중유검의 깊은 무리를 강론한 생각은 없는 그녀다. 대신 직접 보여 주었다.
백번 듣는 것보다 한 번 보는 게 낫다는 말도 있는 것처럼.
후웅!
다시 일리나의 검이 허공을 날고, 그 뒤를 따라 나른하게 허공을 가르는 손끝에서 난화십이식의 검기가 뿜어졌다.
“플라잉 소드!”
마치 두 명의 검사가 합공을 하는 듯한 모습에 마법사들이 아니라 통로 안으로 후퇴한 기사들로부터 탄성이 튀어나왔다.
마법사들도 그 소리를 들었다. 그러나 안다고 하늘을 나는 검이 저절로 땅에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마법사들은 방어를 좀 더 단단히 하고서 마법을 난사했다.
일리나는 시야을 가득 메운 마법을 가르고, 틈을 건너며 검기를 뿌렸다.
그녀의 난화십이식은 일반 기사들은 꿈도 꾸지 못하는 아득히 높은 곳에 도착해 있었다.
그런 그녀의 검기는 규모 면에 있어서도 전혀 밀리지 않았다. 무엇보다 통로 안에 있는 마법사들의 공간적 한계가 마법의 규모를 줄인 덕분이기도 하다.
물론 그 때문에 일리나도 엘프로서의 전력을 발휘할 수 없지만 말이다. 마법사들에게 있어서는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 할까.
“와인더!”
“잡아라! 묶어라! 새도우 서번트!”
촤르르륵.
공격 마법을 막는 중에 사방에서 나타난 마법진이 일리나를 잡아 묶으려 했다. 공격력에서 밀리자 일리나를 제압하려 한 것이다.
하지만 그건 발이 느린 느림보를 잡을 때나 쓸 수 있는 방법이다.
경공이 아니라도 숲을 날아다니는 엘프를 잡기에는 마법진의 손은 너무 느렸다. 일리나는 오히려 늘어진 공격과 공격 사이의 빈틈을 노렸다. 마치 순간 이동하는 것처럼 허공을 가로지른 검이 방어마법을 가르고 길을 노렸다.
길은 정말이지 울고 싶었다. 왜 자꾸 자신만 노리느냔 말이다. 이번에도 해더웨이가 도와주면 좋겠지만, 부관주만을 믿을 수는 없다.
무엇보다 부관주는 소검후와의 전투가 시작된 후에 꼼짝도 하지 않고 있지 않은가. 길은 그걸 요르문간드를 죽인 이드에 대한 견제 때문이라고 여겼다.
그렇다면 혼자 힘으로 빠져나가야 한다. 길은 준비한 시동어를 외쳤고,
“블링크 앤!”
순간 그 자리에서 사라진 길이 일리나의 뒤 허공에 나타나며 빛나는 지팡이를 높이 들었다.
“페어링…….”
이동과 동시에 준비한 기습.
그러나 길은 시동어를 다 외치지 못했다. 가슴에서 치고 오른 타는 것 같은 열기가 말을 막았기 때문이다. 곧이어 코끝을 스치는 희미한 숲의 향기. 몽롱한 느낌의 뒤에 곧 미칠 듯 밀려오는 고통.
“!!”
입이 벌어졌지만, 비명이 나오지 않는다. 대신 입가로 흘러내리는 것은 진득한 붉은 피다.
일리나는 그 모습을 돌아보지도 않고 손을 뻗었다.
그러자 길의 등에 박혔던 단검이 가슴을 뚫고 나와 일라나의 손에 잡혔다.
“저것도 플라잉 소드인가?”
“던진 거 아냐?”
통로 안에서 지켜보고 있던 기사들이 시끄럽다. 답을 바라듯 쉴라를 보지만, 그녀는 사방을 경계하는 일에 쉬지 않고 있을 뿐이다. 사실 기사들의 추측은 사실이었다.
플라잉 소드, 즉, 이기어검술이라는 지고한 무공을 일리나는 두 자루의 검으로 펼쳐 보인 것이다.
일리나도 전력으로 사용하자면 힘겨운 일이지만, 강기를 싣지 않고 짧은 시간 운용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했다.
하지만 이드는 이기어검술 보다 일리나의 예리한 감각과 수 읽기를 더 대단하게 보았다. 두 자루의 검이 있으면 무엇할 것인가. 상대를 베지 못하면 그저 허공을 가를 뿐인데.
털썩.
길이 바닥으로 추락하고 일리나의 공격이 대번에 거세진다.
길이 빠지며 공격력도, 방어력도 떨어진 상태다. 단숨에 제압할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