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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드 2부 – 622화


1057화

무거운 성문이 활짝 열렸다.

슈우우~ 펑! 퍼퍼퍼펑!

뿌우~ 뿌우~ 뿌우우웅~~~!

마법 불꽃들이 푸른 하늘을 화려하게 수놓고, 나팔 소리를 시작으로 군악대의 연주가 울려 퍼졌다. 그와 함께 이 순간을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은 준비한 꽃잎을 뿌리며 목이 터질 듯 소리쳤다.

“제국의 자랑! 록마틴 후작님 만세! 토벌대 만세!”

“꺄악~~ 사랑해요! 발터님! 저랑 결혼해 주세요!”

“흑마법사를 물리친 용사들이 돌아왔다!”

“우와! 저기 우리 포야 기사단도 있어! 무사히 돌아왔다고!”

“우리 그린든 기사단도 있어! 와아아아! 만세! 만세다!”

“황녀 전하 만세! 황제 폐하 만세! 우와아아!!!”

수천, 수만의 환호와 응원을 받으며 토벌대가 드디어 도착했다.

“하하하하. 이거 상상 이상이잖아!”

“기분 좋군. 아주 좋아! 하하하하.’

토벌대의 기사와 병사들은 열정적으로 자신들을 반기는 사람들에 기쁨과 놀람 속에서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그에 최고치에 이른 것 같은 환호가 더 커졌다. 불꽃이나, 북소리가 아닌 환호에 몸에 울릴 정도라니.

과연 며칠 동안 예열만 하고 있던 열기가 제대로 터지니 그 에너지가 실로 엄청났다.

“아저씨! 선 넘으면 잡아가야 한다고요!”

“으아아아~ 밀지 마! 지원! 지원병!!”

그럴수록 현 상황을 통제해야 하는 행사 관계자와 치안대의 병사들이 죽어났지만, 어쩌겠나. 즐기는 사람이 있으면 그만큼 고생하는 사람이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을.

이런 모습은 토벌대가 중앙 광장에 도착한 후, 황제가 준비된 무대에 오를 때까지 계속 이어졌다.

이드는 그 과정을 저택 지붕에서 구경하는 중이었다.

그 주변으로 일리나와 라미아는 물론이고, 검후에 십여 명의 은색 기사단도 같이 있었다. 이드 일가가 지붕에 오르는 것을 보고 따라 올라온 것이다.

그에 라미아는 마법을 써 일행들의 모습을 숨겨 주었다.

사실 지붕에 올라가 구경하는 것 자체는 큰 문제가 아니다. 당장 대로변에 있는 건물이나, 광장 주변의 건물 지붕에 올라 있는 사람도 한둘이 아니니까.

하지만 문제는 인원 구성에 있다.

수백 미터 밖에서도 눈에 띌 화려한 인간들이었다. 그런 이들이 한두 명도 아니고 이렇게 많이 모여 있으면 쓸데없는 관심을 끌 수밖에 없으니, 미리 조치한 것이다.

퍼퍼퍼펑!

“하아~ 부럽다. 저런 환호는 이번 아니면 받을 기회도 없을 텐데에에엑!”

스폴이 또 한 번 화려하게 폭발 중인 폭죽을 보며 아쉬워하다 돌연 비명을 질렀다. 쉴라가 눈을 부라리며 옆구리를 꼬집은 탓이다.

그녀가 다른 기사들을 눈짓하며 속삭이듯 으르렁거렸다.

“막내들을 보듬어 주지 못할망정 그게 수석 기사가 할 말이야?”

“아우우우~ 그냥 말이 그렇다는 거잖아요. 무슨 말을 못 해. 막내들이 애도 아니고.”

스폴이 옆구리를 문지르며 항변했다.

“맞아요. 우물우물~ 저희도 당당한 은색 기사들인데.”

이드는 옆에서 들리는 소리에 피식 웃었다.

일리나 옆에 앉아 조금 분한 얼굴로 과자를 오물거리는 이인조. 아니, 그렇게 당당하면 큰 소리로 말할 것이지 말이다. 그리고 폭죽이 멈춘 조용해진 틈에 들려온 검후의 목소리.

“조금만 기다리렴. 오늘의 아쉬움은 소드 팰러스로 돌아가는 날 모두 풀게 해 줄 테니까.”

직후 다시 시작된 폭죽 소리에 스폴의 비명이 더욱 커졌다. 쉴라가 옆구리를 다시 꼬집은 것이다.

괜히 검후님을 신경 쓰이게 했다는 죄였다.

그런 가운데 할 말이 있는 듯 검후가 이드에게 다가왔다.

“더 구경하실 게 아니면 같이 내려가시죠?”

이드는 광장으로 이동하고 있는 폭죽을 돌아보고는 고개를 저었다.

“더 볼 건 없습니다만. 어딜 가시자는 말씀이신지?”

“저 모습을 보니, 더 빨리 회복해야겠다 싶어서요.’

“실례지만, 오늘은 수련을 쉬는 것 아니었습니까?”

맞다. 검후는 환영 행사에 참가하지 못하는 대신 기사들에게 수련을 쉬게 했다. 그런데 지금은 지하실에 가잔다.

“맞아요. 하지만 그건 기사들에게 휴식을 준 거고, 전 다르죠. 자체적인 수련을 막은 건 아닙니다.”

야, 네가 그런 말을 하면 안 되지!

아니나 다를까. 케마란과 네리베르가 과자 먹던 걸 중단했고, 기사들은 폭죽 구경을 멈추고 일어날 듯 말 듯 엉거주춤한 자세를 하고 있다. 이드가 그런 모습에 혀를 찼다.

“보십시오. 검후께서 이러시면 기사들이 어디 편히 쉴 수 있겠습니까?”

자고로 입으로는 쉬라고 말하면서 자기는 혼자 일하는 상사가 최악 중 하나라고 했다. 아니, 일을 하고 싶으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몰래 하든가 말이다.

“어머나. 너희들이 신경 쓸 필요 없는데. 이럼 어쩔 수 없이 대련은 포기해야죠.”

다행이 검후도 눈치가 없는 건 아닌 것 같다.

그런데 이어지는 말이 이상하다.

“대신 이드님께 진기도인이나 부탁드려야겠네요오~~”

아니, 대련 상대를 해 주겠다고 승낙한 적도 없지만, 대련 대신 진기도인은 당최 무슨 소리란 말인가?

의문을 꺼내지 못한 이드가 반달을 그리는 검후의 눈을 본 것은 그때였다.

이 녀석, 설마 처음부터 대련이 아니라 진기도인을 부탁하려고 했던 거야?’

그냥 해 달라고 하면 해 주지 않을 테니 기사들까지 끌어들여서 말이다.

만약 그렇다면 그 계획은 성공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기사들도 기사들이지만, 한 손에 과자를 들고 눈치를 살피는 케마란과 네리베르를 모른 척할 수는 없으니.

“……알겠습니다. 내려가시죠.’

어쩔 수 없이 검후와 함께 걸음을 옮기게 된 이드.

그가 속삭였다.

“일부러 그런 거지. 너.”

“호호. 글쎄요.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고요. 매번 부탁드릴 때마다 거절하셨잖아요.”

“그거야 네가 필요 없는 걸 해 달라니까 그렇지. 혈맥이고, 기맥이고 다 풀렸는데 진기도인이 왜 필요해?”

“기분이 좋거든요. 받을 땐 온천에서 마사지를 받는 것 같고, 받고 나면 긴 휴가와 깊은 휴식을 취해서 몸이 날아갈 것 같은 그런 기분. 실력 좋은 신관에게 마사지를 받은 것 같다고요.”

너…

“야,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마사지? 너・・・・・・ 뭔가 할머니 같다?!”

조물조물 어깨를 주물러 드리면 시원하다고 웃으시는.

짜악!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검후의 손이 이드의 등을 때렸다. 쾌검을 가미한 본능적인 손놀림. 물론 이드라면 피할 수 있지만, 맞아 줬다.

“할머니라뇨. 듣는 할머니 기분 나쁘게! 그리고 노인만 온천, 마사지 좋아한다는 건 고정 관념이에요. 전 아가씨 때부터 좋아했단 말이에요.” 

“그렇다고 하자.”

통계적으로 보면 다를 수 있지만, 이드는 굳이 따지지 않았다. 괜히 쓸데없는 주제로 힘을 뺄 필요는 없으니까.

‘대신 진기도인으로도 녹초가 될 수 있다는 걸 오늘 알려주마!’

“가자! 빨리 시작해야지.”

이드가 흉계를 품고서 검후를 잡아끌었다.


황제가 주관했던 광장에서의 행사가 끝이 났다.

하지만 토벌대를 위해 며칠 동안 준비된 잔치가 그것으로 끝날 리 없었다.

병사들을 위한 음식은 따로 준비되었고, 기사들을 위한 자리도 별도로 마련되어 있었다.

그리고 황궁에서도 이들을 위한 파티가 열렸다. 이 자리에 귀족들은 물론이고 토벌에 참가한 각 기사단의 단장과 주요 기사들도 참석했다. 흥겨운 음악이 흐르고, 맛있는 음식이 가득 차려졌다.

귀족 가문의 아가씨들은 토벌전의 영웅이 된 기사들에 흥미를 가졌고, 젊은 기사들은 자신들의 활약에 대해서 뽐냈다.

하지만 이런 흥겨운 분위기 속에서도 제대로 즐기지 못하는 사람들이 군데군데 있었다.

그런 사람들의 눈은 한결같이 한 사람을 향하고 있었다.

파티의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게 바위처럼 묵직한 인상을 풍기는 남자. 바로 발터 단장이었다.

“과연 그도 토벌대를 환영하는 이런 자리에서 문제 제기를 할 것 같지는 않군요.’

“정말 다행한 일이지요.’

“뭐가 다행입니까. 며칠 미뤄진 것뿐이잖습니까. 전 벌써부터 머리가 아픕니다.”

“어쩔 수 없지요. 발터 단장이 그냥 넘어가지 않겠다고 못을 박았는데. 그보다 여러분들은 들으셨습니까? 소드 팰러스 말입니다.”

발터를 살피는 사람 중 가장 큰 무리의 한 명이 은근히 목소리를 낮추자, 심상치 않은 이야기가 나올 것을 직감한 이들의 시선이 그의 입에 몰렸다. 

“소드 팰러스에서 뭔가 반응을 한 겁니까?”

“맞아요. 이번 일을 해결하기 위해 소드 팰러스에서 페시딘 경이 직접 왔다고 합니다.”

“허! 그 일검왕이 직접 말입니까?”

놀란 목소리와 함께 눈이 휘둥그레지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다. 그만큼 페시딘의 존재는 삼검왕 중에서도 특별했다.

어지간해서는 얼굴을 보기 힘든 그가 직접 안티로스에 왔다니 놀라는 건 당연했다.

하지만 그도 잠시. 곧 발터가 꺼낼 문제가 어떤 것인지를 생각한 이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그분이 움직일 만한 일이지요.”

“맞습니다. 오히려 그분이 아니면 나설 사람이 없지요.’

“그나저나 이거 정말 보통 일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무려 초인파와 소드 팰러스가 정면으로 충돌하게 되었으니.”

“황제 폐하께서 골치가 좀 아프시겠습니다.”

골치 아픈 정도로 끝나면 그나마 다행이다. 자리에 모여 있던 사람들이 끌끌 하고 혀를 찼다.

그때였다. 시종이 큰 목소리로 황제의 입장을 알렸다.

음악이 바뀌고, 모두가 입구를 향해 돌아선 가운데 황제가 입장했다. 그런 그의 옆에는 토벌대에 참가했던 황녀가 함께하고 있었다.

“황제 폐하를 뵙습니다.”

그리고 귀족들이 황제에 대한 인사를 하고 허리를 펴는 순간. 시종의 목소리가 다시 이어졌다.

“소드 팰러스를 지키는 가장 날카로운 검. 일검왕 페시딘 경께서 입장하십니다.”

흡!

순간 사정을 알고 있는 사람들로부터 급한 숨소리가 샌다.

뚜벅뚜벅.

그런 호흡음조차 지우는 단단한 발소리와 함께, 황제가 걸었던 길을 따라 페시딘이 파티장에 들어섰다.

그리고 그와 동시였다.

파파팟.

페시딘과 발터의 눈빛이 부딪혔다. 두 사람 사이에 있던 사람들은 불꽃이 튀는 것 같은 환상에 황급히 몸을 피했다.

‘으~ 설마 여기서?’

사정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하얗게 질린 안색으로 고개를 흔들었다.

이윽고 그들의 시선은 타국의 귀족들을 향했다.

토벌대에 참가했지만, 존 워스의 사건에 대해서는 알지 못하는 이들이었다. 만약 이 사건이 알려지면 제국의 이름에 먹칠을 하는 일대 스캔들이 되리라.

제발 그런 일이 없기를.

귀족들은 간절히 바랐고, 그 덕분일까. 두 사람은 곧 서로에게서 눈을 돌렸다.

특히 발터는 이 자리가 불쾌하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나 파티장을 나서기까지 했다. 그리고 기다렸다는 양 그런 발터를 향해 한 남자가 다가섰다. 

“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발터 님.”

“자네는…… 시사이판? 라울 아래에 있던?”

주변의 기척을 살펴 자신들에게 신경 쓰는 사람이 없음을 확인한 발터가 그와 거리를 좁혔다.

“자네가 여기 있다는 말은 혹시?”

“네. 라울 님을 모시다 보니 어쩌다 오게 되었습니다. 그보다 잠시 시간을 내어 주십시오. 라울 님께서 발터 님이 돌아오시길 기다리셨습니다.”

“ ……안내하게.”

이제 막 황제와 황녀의 춤이 시작되어 한층 떠들썩해진 파티장을 돌아본 발터가 고개를 끄덕였고, 곧 두 사람은 복잡한 황궁의 복도 너머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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