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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드 2부 – 636화


1071화

드래곤이 돌아온다.

분명 기쁜 소식이다. 하지만 동시에 나쁜 소식이기도 했다.

그게 가능한 까닭은 결국 혼돈의 파편이 그레센으로 돌아와서이기 때문이다.

쉴라는 한숨이 나오려는 것을 겨우 참았다.

‘메르시오 같은 강자들이 더 생긴다니.’

쉐어 가든에서의 전투를 생생하게 목격한 그녀로서는 그러한 사실 자체가 엄청난 부담이었다.

이드가 있다고는 하지만 그녀 역시 제국의 기사로서, 검후를 모시는 은색 기사단의 단장으로서 그들과 싸워야 했기 때문이다.

적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하다는데 좋아하는 인간이 몇이나 있을까.

무엇보다 본질적인 문제는, 혼돈의 파편이 하나 늘어나는 것으로 끝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당장이야 하나뿐이겠지만, 그 뒤에 생긴 허점을 통해 드래곤들이 한둘 돌아오면 이야기가 달라질 것이다.

결국 언젠가 외계를 막아설 이유 자체가 사라지게 되어 모든 혼돈의 파편이 그레센에 나타나게 되리라는 의미였다.

물론 혼돈의 파편의 복귀는 길을 막혔던 드래곤들의 완전한 복귀를 의미하기에 꼭 나쁜 일이라고 보기만은 어렵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걸 다행이라고 해도 되는 것일까?

쉴라는 드래곤을 직접 본 적이 없다. 그레센의 드래곤들이 67년 전에 이 세상에서 튕겨 나갔다는 사실도 오늘에서야 알았다.

사실 인간들에게 드래곤의 부재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역사를 뒤지면 드래곤이 백 년 정도 나타나지 않은 적도 심심찮게 있었으니까.

좌우간 드래곤이라는 존재에 대해 쉴라가 아는 것이라고는 기록과 전승을 통한 정보뿐이다.

이야기 속 드래곤은 한 마리만으로도 왕국을 두려움에 떨게 할 정도로 어마어마한 힘과 권능을 가진 존재였다.

즉, 평범한 인간의 기준에서는 혼돈의 파편이나 드래곤이나, 감당할 수 없는 초월적인 존재인 건 마찬가지였다. 그런 이들이 이 세상으로 몰려나와 싸우기 시작한다면?

‘생각만 해도 지옥이 따로 없네.’

물론 지금까지 들은 설명에 따르면 혼돈의 파편이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계약이 있기에 곧장 전면전이 일어나지는 않으리라.

하지만 그럼에도 언젠가 전쟁이 일어날 것은 정해진 사실이나 마찬가지.

이드와 메르시오의 싸움으로 인해 쉐어 가든이 반파에 이르는 피해를 입었듯, 혼돈의 파편과 드래곤들이 돌아오면 세상 곳곳에서 그런 일이 빈번하게 벌어지리라.

부르르.

세상 절반이 불바다에 뒤덮인 상상에 부르르 몸을 떨던 쉴라는 문득 고개를 들어 이드를 보았다.

메르시오를 완전히 제거하고 검후를 구한 이드.

세상이 생지옥이 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는 이드가 혼돈의 파편을 최대한 빨리 제거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세상의 멸망이라는 태초의 목적을 가진 혼돈의 파편을 막는 유일한 방법이기도 할 테고 말이다.

‘옛날이야기 속에 등장할 법한 영웅이 바로 이런 분이구나.’

・・・・・・ 그런데 왜 그 ‘영웅’이, 위험이 커진 상황에 웃고 있는 것일까? 뭔가 이어지지 않는 생각의 흐름. 순간 머리가 멍해진 쉴라의 고개가 모로 기울기 시작했다.


당연하지만 이드가 쉴라를 혼란하게 만들려고 웃은 건 아니다. 다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하하. 이거 어쩌면 힘들게 찾아다닐 필요가 없게 되겠어.”

“정말 그렇죠?”

“세레니아 님과 다른 드래곤분들이 돌아오시면 전력도 늘어날 거예요.”

이드의 미소는 라미아와 일리나에게까지 번졌다.

그들로서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 사실 세 사람이 세상에 나온 직접적인 원인이 검후인 건 맞았다. 그러나 그들은 그 문제를 해결한 후 이루려던 더 큰 목적이 있었다. 최종적으로 그녀를 통해 제국의 힘을 빌려, 혼돈의 파편을 찾으려 한 것이다.

이드는 그레센으로 돌아온 후 혼돈의 파편을 찾기 위해 알게 모르게 많은 노력을 했다. 그럼에도 얻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차원의 인을 완성하기 위해 혼돈의 파편을 사냥해야 하는 샤냥꾼 입장에서는 매우 난감한 상황이었다.

사냥감이 은신처에 숨어 꼼짝도 하지 않는다면 아무리 뛰어난 사냥꾼이라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니까.

그런데 그렇게 꼭꼭 숨어 있던 사냥감이 제 발로 나와 준다니, 사냥꾼 입장에서는 당연히 웃을 수밖에. 물론 위험도가 증가한 것은 사실이다.

이드가 차원의 인으로 자신들을 흡수해 부활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안다면, 혼돈의 파편도 지금까지 이상으로 필사적으로 대응할 것이 분명하니 말이다.

그럼에도 이드는 웃었다.

세상에 쉽기만 한 일이 없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또 아무리 어려워도 답을 찾을 수 없는 상황보다는 낫다는 쪽이 이드의 평소 지론이기도 했다.

‘시간은 우리 편이야. 서두르지 않고 적당히 시간을 끌면서 드래곤들이 모두 돌아오기만 기다려도 우리가 몇 배나 유리해질 테니까.’

67년간 외계를 떠돌던 드래곤들이 얼마나 칼을 갈고 돌아오겠는가 말이다.

아마이드가 나서서 뭐라고 하기도 전에 눈에 불을 켜고 혼돈의 파편을 찾아 대륙을 뒤집어엎을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방심해도 된다는 건 또 아니다.

“다른 건 몰라도 초인의 성질을 바꾸려는 짓은 막아야 해요. 자칫 오래전 세레니아 님처럼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해야 할지도 몰라요.” 

우려를 담아 조심을 당부하는 일리나였다.

이드와 헤어져 있던 시간은 그녀에게 일종의 트라우마로 남았다.

그런데 비슷한 형태로 드래곤들 역시 그레센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니, 걱정이 되는 것도 당연했다.

당장 같은 상황이 펼쳐지면 이드도 그리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

겨우 다시 만나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다시 헤어진다니. 일리나로서는 꿈에도 생각하고 싶지 않은 일이었다.

그러니 그녀는 무슨 일이 있어도 그런 경우만은 피할 생각이었다. 혹여 피할 수 없다면 이번에야말로 이드와 함께 가리라.

이드는 평소답지 않게 감정을 드러내는 일리나의 손을 잡았다. 그녀의 마음을 다 아는 건 아니지만, 대충이나마 느껴지는 것이 있었다.

“세레니아 님에게 이미 들은 게 있는데 또 당하면 바보죠. 그러니 걱정 말아요. 그리고 혹여 그런 일이 일어나도 차원의 인이 있는 이상 돌아오는 건 문제가 없고요.”

“정말이요?”

“물론이죠. 혼돈의 파편이 외계의 경계에서 드래곤이 돌아오지 못하게 막고 있다고 했지만, 날 봐요.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돌아왔잖아요. 외계의 경계와 이드가 차원의 인을 통해 넘나드는 차원의 경계는 그 개념이 다를 수도 있다는 가능성에 대한 증거였다.

“그래도 조심해야 해요. 혼돈의 파편이 꼭 외계로 보내는 함정만을 만들지는 않을 테니까요.”

일리나의 말도 무시할 수 없는 것이, 당장 초인의 성질을 바꾸기 위해 미완의 마탑을 이용하는 혼돈의 파편의 방식부터가 이전과 다른 게 그 증거였다.

세레니아 때는 외계에서의 간섭이었다면, 바이트 타블렛을 통해 초인 마법이라는 마법의 새로운 지평을 열려 하는 미완의 마탑의 방식은 내계를 향한 접속이었으니 말이다.

이건 안과 밖이라는 방향성뿐 아니라 강제적이냐, 순리에 따른 것이냐의 근본적인 차이를 가지고 있었다.

당장 바이트 타블렛을 이용한 방식으로 초인의 성질을 바꾸려 하고, 그걸 함정으로 이용한다면 어떤 방식일지. 지금으로서는 예측조차 힘들다. 어쨌든 일단 그렇게 일리나를 안심시킨 이드는 다시 세레니아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뭔가 흐뭇한 눈으로 이드와 일리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하긴, 누가 뭐래도 자신과 일리나의 재회에 그녀의 도움이 컸으니까.

이드는 그런 감사의 마음도 담아 말을 이었다.

“일단 제일 중요한 사실들을 알았습니다. 혹시 또 알아야 할 일들이 있나요?”

“다른 건 사소한 것들이죠. 당시 혼돈의 파편이 카논에서 활동할 때 주로 협력하던 자들이라거나, 정책, 다른 왕국과의 공조 같은…….” 

이어서 나온 세레니아의 정보는 말 그대로 참고 정도로 넘겨도 좋을 가벼운 것들이었다.

과거라면 굉장히 중요했을지 모르지만, 십 년이면 강산이 변하는 인간 세상에서 강산이 무려 일곱 번이나 변할 시간이 흘렀으니.

당시의 정치적 인간 관계가 얼마나 많이 변했을지는 말할 필요도 없다. 오히려 참고 자료로 삼아 새롭게 조사하는 편이 오류가 없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일단 세레니아의 말은 머리에만 담아 뒀다. 나중에 에단과 에린을 불러 전달해 줄 생각이었다.

그렇게 세레니아가 설치한 대응 마법진이 있는 위치를 마지막으로, 그녀가 말을 마쳤다.

“이로써 제 할 일은 끝이네요. 긴 기다림이었어요.”

“돌아오시면 다시 인사드리겠지만, 감사합니다. 일리나와 시온 숲을 지켜주신 것도, 혼돈의 파편을 막아 주신 것도요.”

“호호. 제 공을 알아 주시니 기분은 좋네요. 하지만 너무 그러지 마세요. 일리나를 만나는 건 저에게도 작은 즐거움이었어요. 게다가 혼돈의 파편을 막는 것은 이 중간계의 지배자이자, 수호자인 드래곤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었는걸요.”

삐딱하게 보면 세상이 멸망하면 드래곤도 죽으니, 자신들이 살기 위해 싸웠다고 할 수 있었다.

하나 그렇다고 그들이 혼돈의 파편으로부터 세상을 지키고 있었던 것이 바뀌는 건 아니다.

당장 그렇게 따지면 그레센 뿐 아니라, 지구를 포함한 모든 세상의 영웅들도 결국 자신이 살기 위해서 싸웠을 뿐인 존재가 될 뿐이지 않은가. 검후 역시 그렇게 생각한 모양이다.

“아니죠. 위대한 행동에는 그만한 가치가 있는 법. 당연히 세상이 알아 감사를 받아야 할 일입니다. 저는 머지않아 혼돈의 파편이 모두 사라지고 세상이 멸망의 위기에서 벗어나는 날, 세상에 중간계의 수호자인 드래곤이 어떻게 스스로를 희생해 중간계를 수호하고 있었는지 알릴 것을 이 자리에서 맹세합니다.”

사실 검후의 말은 절대 과하지 않았다.

앞뒤 상황을 따지면 혼돈의 파편의 의식을 멈춰 세상을 구한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만약 당시에 의식이 성공해 초인의 성질을 혼돈의 파편에 유리하도록 바꿨다면?

그러면 아마 길지 않은 시간에 카논이 전 대륙을 정복했을 것이고, 축포가 터지는 그 날. 세상도 같이 멸망했을 것이다.

그러니 과장이 아니라 진실로 드래곤들은 이 중간계를 멸망의 위기에서 구한 것이다.

“그리고 이 맹세는 이드 님께도 해당합니다. 과거에는 사정 때문에 묻어야 했지만, 이번엔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아니, 날 위한다면 오히려 빼줬으면 하는 마음인데 말이지.”

이드는 실색 반에 곤혹스러움 반이라는 느낌으로 검후의 눈을 피했다.

이제야 나름 적응했지만, 처음 마인드 마스터에 대해 들었을 때 얼마나 오글거렸던가. 그나마 당사자가 아니라 그 후예로 행세한 것인데도 이런데. 거기에 뭘 더하겠다고?

‘그랬다가는 이 땅에서 못 살 거라고.’

물론 모든 일이 끝나면 일단 중원으로 돌아가 볼 테지만, 또 일리나를 혼자 남겨 둘 수는 없는 일 아닌가.

“일리나. 혼돈의 파편의 일이 마무리되면 우리끼리 여행을 다녀오는 건 어때요? 대신 좀 멀긴 한데.”

“어디든 좋아요.”

부디 목적지가 다른 차원인 걸 알아도 지금처럼 좋아해 줘야 할 텐데. 이드는 방긋 웃는 일리나를 보며 부디 그녀가 중원을 좋아하기를 바랐다.

다만 이 문제에 있어서는 중원 무림의 입장도 들어 봐야 할 것이다. 뜬금없이 등장한 아름다운 여고수에 무림 서열이 모조리 뒤로 한 칸씩 밀려날 테니 말이다.

“치사하게. 한 칸이 아니죠. 저도 있으니까. 두 칸!”

불쑥 고개를 내밀어 끼어든 라미아의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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