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드 2부 – 749화
1184화
이드가 라울과 전쟁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그때
멀리 떨어진 아나크렌 황궁에서도 같은 주제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었다.
대전에 모인 이들은 모두 제국을 움직이는 대신들이었다.
“마스, 이 미친놈들이 결국 정신줄을 완전히 놓아 버리기로 한 모양입니다.”
그들 중 하나가 어처구니없는 기색으로 말했다.
“이번 일은 명백히 우리 제국에 대한 도발이오!”
“아무렴요. 저자들이 대체 무슨 짓을 했는지 보십시오. 이건 그냥 넘겨서 될 일이 아닙니다.”
“감히 제국의 행사를 막다니요. 이건 있어서도 안 되고, 있을 수도 없는 일입니다.”
“마스는 감히 제국에 죄를 지은 죄인들을 비호했습니다. 이는 스스로 제국의 적임을 시인한 바와 같으니 전쟁, 오로지 전쟁으로 마스의 죄를 물어야 할 것입니다!”
“암요. 이후를 위해서라도 철저하게 본보기를 보여야지요!”
마스가 추격대의 앞을 막고 공격을 가했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제국의 귀족들은 하나같이 분기탱천했다.
어제까지 파벌을 나눠 서로를 견제하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모습이었다.
각자 이득을 좇아 파벌을 나누고 그 안에서 합종연횡을 반복하는 귀족들이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제국 안에서의 일.
외부에서 자국을 위협해 오면 하나 되어 대응하는 것이다.
제국이 있어야 권력도 있음을 누구보다 본인들이 가장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그들의 조국이 어떤 나라인가.
무공의 종주국이며, 대륙의 패권을 쥐고 있는 최강국이다. 그들의 가슴엔 조국에 대한 사랑과 자신들을 지켜 주는 울타리에 대한 믿음이 가득했다. 이런 제국을 건드렸다는 건 곧 자신을 공격한 것과 다름없었다. 고로 이들의 분노는 지극히 당연했다.
그렇다고 당장 검을 들고 나서자며 쟁투를 외치는 이들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너무 성급들 하십니다. 상황을 냉정히 보세요. 아직 거기까지 말할 단계는 아닙니다.”
“그렇지요. 전쟁은 좀 더 앞뒤 정황을 소상히 밝히고, 마스의 답을 들은 후에. 그때 거론해도 늦지 않을 것입니다.”
“대신분들의 고견도 옳지만, 우선 명분입니다. 명분부터 쌓아야지요.”
“옳습니다. 비록 미친놈들이 상대라고는 하나, 제국의 품격을 잃어서야 되겠습니까.”
“마스도 문제지만, 주변에 때를 기다리는 오크와 고블린이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이들이라고 전쟁을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언뜻 들으면 전쟁을 부르짖는 이들을 말리는 것 같지만, 엄밀히 따져 보면 결국 그들이 진짜 바라는 것은 ‘명분’이었다.
그들이 사랑하는 자랑스러운 제국이 품위를 지켜, 결점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이랄까.
이런 부류야말로 전쟁을 외치며 검부터 뽑아 드는 이들보다 무서운 법이다.
성급하면 빈틈이 생기고, 그러면 적이 빠져나갈 수가 있지.
하나 이들처럼 앞뒤 따져서 차근차근 계획을 세워 움직이는 이들은 빈틈이 없다. 상대가 기어오를 기회도 주지 않고 철저히 뿌리까지 뽑아 버리는 것이다.
이렇게 크게 둘로 나뉜 의견이지만, 결국 결론은 하나였다.
감히 제국을 향해 검을 든 마스를 응징해야 한다는 것.
그렇게 핏대를 올리는 사람들 사이로 하얀 담배 연기가 뿜어졌다. 그리고 가만히 오가는 이야기를 듣고 있던 남자가 무거운 입을 열었다.
“이번 일. 의외로 신중할 필요가 있을지 모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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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일론과 카논이 나설 거라고 보시는 겁니까?”
“물론 그들의 반응에도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이나, 지금 말하고 싶은 바는 마탑입니다.”
잠시 말을 멈춘 남자가 다시 한번 길게 담배 연기를 뿜었다.
“마스가 비록 싸움밖에 모르는 무식한 놈들의 집합체라고는 하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승패의 유불리는 귀신같이 짚어냅니다.”
“그야 그렇지요.”
여기저기 고개를 끄덕이고 나섰다.
국경선에서 잦은 충돌이 있었지만 큰 전쟁으로 번지지 않은 이유도, 교묘하게 선을 넘지 않는 마스 때문이었다.
“그런 자들이 제국의 앞을 막았다면, 그 반대급부에 해당하는 이득을 마탑에서 봤다는 뜻이 아니겠습니까?”
“과연 백작의 말씀을 듣고 보니 그렇기는 하군요.”
“하긴, 놈들이 싸움에 미치긴 했어도 짐승은 아니지요.”
작은 가게를 운영하는 것도 아니고, 그런 기본적인 능력이 되지 못하면 나라가 망해도 벌써 망했을 터였다.
하지만 그 말에 쉽게 수긍하지 못하는 사람도 많았다.
“그게 말이 되는 일입니까? 그 말대로라면, 저 지저분한 놈들이 모여 있는 마탑에 우리 제국에 대항할 무언가가 있다는 의미인데. 그랬다면 정신의 마탑이란 것이 그렇게 쉽게 무너졌겠습니까?”
“쉽게 무너졌다. 마탑이 붕괴하던 날, 그 위에서 날뛰던 괴물을 보시고도 그런 말씀을 하시는 거겠지요?”
마치 지난 기억을 끄집어내는 최면술사처럼 늘어지는 목소리에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들이 보았던 거대한 늑대를 떠올렸다.
어떻게 그 모습을 잊을 수 있을까.
“그・・・・・・ 그건 예외적인 경우입니다. 그 괴수가 마탑이 내놓은 결과물일 리가 없지 않습니까.”
“그리고 반대의 상황도 같지요.”
“끄응.”
간단한 말에 입이 봉해진 이가 팔짱을 끼고서 고개를 숙였다. 마탑이 정말 그런 괴물을 손에 넣었다면 제국으로서도 쉽게 여길 수 없다. 아니, 쉽게 여길 수 없는 정도가 아니라 실로 큰 피해를 각오해야 할 수도 있다.
그만큼 영상 너머로 접한 괴물의 힘은 거대했다. 그 자리에 있던 사람 중 많은 수가 오랫동안 모습을 보이지 않은 ‘드래곤’을 떠올렸다면 설명이
될까.
그런 존재가 하나라도 전장에 나타나 날뛰기 시작한다면?
부르르.
잠깐 그런 상상을 해 본 사람들이 몸을 떨었다.
퉁퉁한 몸에 후덕한 인상을 가진 백작은 그 모습을 보다가 담뱃재를 털어 내며 말했다.
“마탑과 괴물이 관련이 없을지도 모릅니다. 명예 후작께서 하신 말씀이 있으니까요. 그러나 하필 그때 그 장소에 그 괴물이 있었다는 점에서, 관련되어 있을 가능성을 무시할 수도 없습니다. 또 그 외 마스를 혹하게 할 만한 다른 무언가가 있었을 가능성도 제외시킬 수 없지요.”
“……그럼 백작께선 어쩌자는 것입니까. 마스를 저리 두라는 말씀입니까.”
“아닙니다. 감히 제국에 이빨을 보인 놈들을 어찌 그냥 두겠습니까. 다만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신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일의 선후를 잘 따져야지요.”
“선후라면. 마탑을 먼저 쳐야 한다. 그런 의미입니까?”
다시 담배를 입에 물려던 백작은 자신의 속내를 읽어 낸 남자를 보았다. 젊다는 말도 모자라 보이는 어린 청년.
백작은 그 청년에게서 다시 자신을 향하는 사람들의 시선에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그렇습니다. 갑자기 마스가 나서 혼란하시겠지만, 우리의 목표는 마탑입니다. 지금 역시 마스가 마탑을 끌어안고 있는 형태가 아니라, 마탑이 뒤에서 마스를 움직이고 있을 가능성이 매우 클 겁니다.”
그의 목소리는 묘했다.
느긋하지만 사람을 끌어들이는 목소리. 확인된 사실이 아님에도 듣는이로 하여금 그 말이 진실처럼 들리게 만들었다.
게다가 이 자리에 모인 사람 중 머리가 돌아가지 않는 사람은 없다. 앞뒤 정황을 살폈을 때, 정녕 그럴 확률이 높다는 걸 그들도 아는 것이다.
“백작님 말씀대로라면, 정말 쉽게 볼 수 없겠습니다. 마탑은 저희 제국만이 아닌, 바벨도 엮여 있는 일. 마스는 제국은 물론이고 바벨을 상대로도 검을 든 것입니다.”
과연 이런 이야기까지 나오자 더 이상 무턱대고 전쟁을 외치는 사람은 없게 되었다.
바벨이 어떤 단체인가.
그들은 비록 제국의 귀족이지만, 고작 초인의 연합이라며 바벨을 쉽게 여기는 사람은 없다. 오히려 경우에 따라 약소국보다 더 강력한 힘을 쏟을 수 있는 단체가 바로 바벨이었으니까.
마스와 마탑은 그런 바벨과 제국을 상대로 ‘할 만하다고 여긴 셈이었다.
“실로 괘씸한 일입니다!”
“무엇이 그렇게 괘씸한가?”
한숨처럼 뱉어 낸 누군가의 대꾸.
그 말에 깊은 생각에 빠졌던 이들이 황급히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보이는 것은 보좌에 올라 있는 황제였다.
“황제 폐하를 뵙습니다.”
“신들이 황제 폐하의 행차를 몰랐나이다. 용서하소서.”
“신경 쓰지 마오. 긴히 이야기를 나누는 듯해 내가 알리지 말라 일렀으니. 그보다, 답을 주겠소? 무엇을 두고 괘씸하다 한 것이오?”
“신이 말씀드리겠습니다.”
황제의 질문에 나선 사람은 레오날도 후작이었다.
황제의 꾀주머니.
그 모습에 몇몇이 보이지 않게 식은땀을 닦아 냈다.
‘저 인간은 또 언제 와 있었던 거야.’
그런 이들을 두고 레오날도 후작은 이 자리에서 오갔던 이야기를 황제에게 빠짐없이 고했다.
모든 정황을 들은 황제가 앞을 바라보자, 좌중을 압도하던 백작이 고개를 숙였다.
“그저 없는 머리를 쥐어짜 보았습니다.”
“아니오. 백작이 내놓은 의견은 하나라도 쓸모없는 것이 없었지. 이번 일 또한 그러하고.”
“황공하옵니다.”
“그럼 이번 일에 대한 백작의 의견은 무엇이오? 마스보다 마탑을 우선해야 한다는 경의 생각에는 나 역시 동의하는 바. 이후 우리 제국이 가장 먼저 무엇을 해야 할 것 같소?”
황제의 물음에 대전 안은 숨소리마저 잦아들었다.
대신들이 백작을 부러운 듯 바라보았다. 이번처럼 황제가 한 사람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는 경우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제대로 답하지 못할 경우 신임을 잃겠지만, 황제가 만족할 만한 답을 내놓는다면 신임을 크게 얻을 기회.
그리고 그들이 아는 백작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을 만큼 능력이 충분한 사람이었다.
잠깐 생각을 정리한 백작이 이내 힘 있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신이 생각하기에 제국이 가장 먼저 할 일은 크게 세 가지입니다.”
“나는 하나를 물었소만?”
“셋이나, 모두 단번에 해야 합니다. 제국의 손발은 한둘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제국은 큰 나라인 만큼 인재도 많았다.
“말해 보시오.”
“우선 첫째로, 마스의 의중을 정확히 파악해야 합니다. 둘째로, 라일론과 카논이 이번 일에 얼마나 개입할 뜻이 있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셋째로, 마탑, 영혼의 관을 세상에 드러내야 합니다. 이 과정에 바벨을 이용하는 게 좋을 것입니다.”
“흐음, 앞의 둘은 알겠소. 한데 세 번째로 이야기한 마탑의 존재는, 이미 대륙에 알려진 사실이 아니오?”
“그렇습니다. 하지만 마스에 있는 영혼의 관에 대해선 아직 공식화되지 못했습니다. 정확히는 밝히기 직전에 마스가 막았지요. 이를 공식화해야 합니다. 그리하면 마탑은 물론 마스, 그리고 혹시라도 제국을 견제하기 위해 타국이 마스를 지지하거나 이번 일에 개입할 여지를 사전에 차단할 수가 있습니다.”
라일론과 카논이 마스나 마탑과 연계하고 있을 가능성을 살펴야 한다는 두 번째 의견과 연결되는 점이 있지만, 분명히 다른 의견이었다.
그 뒤 황제의 질문이 이어졌지만, 그때마다 백작의 답은 거침이 없었다.
대답을 모두 듣고 생각에 잠긴 황제는 이내 레오날도 후작을 바라보았고, 그가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확인한 후 입을 열었다.
“내가 보기에 백작의 의견이 가장 합당하다고 보오. 이견이 없다면 이대로 일을 시행하시오.”
“황명을 따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