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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드 2부 – 750화


1185화

영혼의 관이 자리를 잡은 블레인 자작령 인근의 어느 야산.

그 정상에 두 무리가 모여 있었다.

각각 영혼의 관 마법사들과 마스의 사람들이었다.

영혼의 관 쪽 인물들은 무언가를 준비 중이었는데, 그 모습을 마스 쪽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이들과 거리를 둔 채 산 아래를 바라보는 타란 백작 옆으로 한 사람이 다가섰다.

“걱정이 있는 얼굴이십니다?”

“걱정이 없을 수 없지.”

야산을 오르기 전 인사를 나눈 수도 기사단의 구른 단장이었다. 타란 백작은 그를 보고는 산 아래를 고갯짓했다.

“저 모습을 보게. 저걸 보고 어떻게 걱정이 없을 수 있겠나.”

두 사람이 바라보는 곳에는 수천에 이르는 병사들과 이백의 기사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전쟁을 앞둔 듯, 손에 잡힐 것 같은 긴장이 흐르는 분위기였다. 덕분에 수천의 인간이 모였음에도 실로 고요하기까지 하다.

“나는 저 모습이 익숙하네. 국경을 지키다 보면 국지전이 자주 발생하는데, 딱 그때 모습이 저렇거든. 결코 반가운 모습이 아니지.”

“…..이번에도 국지전 정도로 작게 끝나면 좋겠습니다만. 어렵겠지요?”

구른 단장의 말에 타란 백작이 블레인 자작령의 끝인 지평선 너머를 바라보았다.

지금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지만, 그곳에는 일단의 병력이 모여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자리에 모인 사람 중 그 정체를 모르는 이는 아무도 없다. 여기 모여 있는 마스의 병력에 비하면 그야말로 상대도 되지 않을 만한 소수 비교하는 자체로 비웃음을 당할 정도의 전력이었다. 일반적으로 이 정도로 압도적인 차이라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쳐도 살아남는 것만으로 칭찬을 받아야겠지만.

저곳에 있는 자들은 달아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당당히 진을 치고 앉아 이쪽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저쪽에는 이 거대한 전력 앞에서도 당당할 수 있는 초인이 함께하는 중이었으니까.

“어렵지. 무려 검왕이 우리 적이지 않나.”

타란 백작이 한숨처럼 검왕을 입에 올렸다.

“어제의 친구가 오늘의 적이 된 것이로군요.”

“훗, 그렇지. 하필이면 검왕이 말이야. 더욱 큰 문제는 이번 우리의 적은 검왕만이 아니라는 걸세..”

“아나크렌 제국에 소드 팰러스, 거기에 바벨까지. 하하. 너무 무시무시해서 오줌이라도 지릴 것 같습니다.”

농담처럼 던진 말이지만 구른 단장은 한 점의 거짓 없는 진심이었다.

제국과 소드 팰러스, 그리고 바벨.

그 어느 곳도 만만하다고 말할 수 있는 곳이 없다. 그나마 소드 팰러스가 병력을 직접적으로 키우지 않아 해볼 만할까. 물론 그것도 소드 팰러스를 사랑하는 기사들이 꾸역꾸역 모여들고 여론이 형성되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지만.

그래도 제국과 바벨보다는 상대하기 편하다.

원래 마스는 제국과 바벨 중 하나만 상대한다고 해도 국운을 걸어야 한다. 그런데 이번엔 하나도 아니고, 그 셋을 모두 상대해야 할 판이다. 생각할 때마다 눈앞이 캄캄해지는 듯한 느낌에 구른 단장이 바짝 마른 입술에 침을 발랐다.

“그・・・・・・ 검후 말입니다.”

어렵게 꺼낸 말에 타란 백작이 조용히 다음 말을 기다렸다.

“제국과 전쟁이 벌어지면, 검후도 나서리라 보십니까?”

검후, 어떻게 그 이름을 잊을 수 있을까.

잠시 생각하던 타란 백작이 말했다.

“알 수 없지. 하지만 가능한 일이기는 하네. 그렇게만 된다면 마스엔 득이 될 테고, 검후가 나서는 순간, 소드 팰러스는 내분에 빠지게 될 가능성이 크니까.”

배신은 당한 쪽이나, 한 쪽이나 절대 가볍게 넘길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지금은 급한 문제가 있으니, 우리 일은 나중에 풀어 내자’가 불가능하다는 말이다.

특히 눈앞에 전쟁을 두고 있다면 더더욱 그렇다. 언제 뒤를 찔릴 줄 알고 맘 편히 싸울 수 있겠는가.

그러다 타란 백작이 스스로의 말이 우스운 듯 끌끌거리며 웃었다.

“내뱉고 보니 바보 같은 소리로군. 소드 팰러스 하나 빠진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닌데. 정말이지, 왕께선 어째서 이런 결단을 내리셨단 말인가.”

“이것이 모두 마탑의 속삭임 때문이지요.”

“자넨 어떤가. 앞으로 일이 저들의 말대로 될 것이라고 보나?”

“……”

여전히 산 아래를 향한 타란 백작의 물음에 구른 단장은 한창 작업에 집중해 있는 마법사들을 돌아보았다.

비록 말은 없었지만, 마법사를 향한 그의 눈빛은 곱지 않았다.

타란 백작은 그것으로 충분히 답이 된 듯,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좋은 말이 나올 수가 없지. 나와 자네처럼 쉐어 가든에서의 ‘그 사건’을 직접 겪은 다음에는 말이야.”

그의 말에 구른 단장은 쉽게 답하지 못하고 어금니를 깨물었다.

쉐어 가든이 붕괴되던 그날의 경험은 지금도 너무 생생해서 몸이 떨려 왔다. 감히 인간이 항거할 수 없는 힘의 소용돌이 속에서 개미처럼 발버둥 치던 기억은 지금도 종종 악몽으로 나타나 그를 괴롭혔다.

식은땀에 절어 깰 때면 드는 생각은 하나뿐이었다.

“그저・・・・・・ 겁쟁이일 뿐입니다.”

“그게 현명한 것이네. 검을 든 자가 두려움을 모르면 바보가 되니.”

“모르겠습니다. 왕과 대신들께선 백작님과 제 보고를 믿지 않는 것이 아닐지.”

쉐어 가든을 붕괴시킨 괴물 중 하나가 제국에 있다.

당시엔 정체를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싸움이 끝나고 답이 나왔다. 거대한 은색 늑대는 너무나 눈에 띈다.

바로 그것이 정신의 관이 붕괴하던 날, 처음 세상에 나오지 않았던가. 그리고 그 괴물과 싸웠던 인물까지.

그런 괴물과 인물이 세상에 또 있을 확률이 얼마나 될까.

아니, 그 가능성을 제외하더라도 괴물과 싸웠던 인물은 검후를 구출해 갔다. 다시 말해, 어떤 식으로든 제국 쪽 인물이라는 뜻인데, 그 하나만으로도 마스에는 무섭고 두려운 일이 분명하다.

그런데도 마스는 제국에 싸움을 걸었다.

보고서를 봤다면, 처참히 붕괴되어 폐허가 된 쉐어 가든을 봤다면 결단코 지금처럼 쉽게 제국을 도발하는 결정을 내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 일은 없네.”

타란 백작이 고개를 저었다.

쉐어 가든 이전에 정신의 관 토벌이 있었다. 당시의 보고는 그 역시 보지 않았던가. 처음 보면 고개를 갸웃하게 하는 내용이지만, 자국뿐 아니라 모든 국가에 동일한 내용이 전해졌다면 인정할 수밖에 없지.

그러니 왕이나 대신들도 자신들의 보고서를 믿지 않은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럼 어째서 이런 결정을…….”

“간단하네. 우리 보고보다 마탑의 속삭임이 달콤했을 테니까. 어쩌면 저들을 끌어안기로 결정한 순간부터 예정된 결과일 테지.”

무언가 많이 내려놓은 것 같은 타란 백작의 목소리.

하지만 그의 마음이 정녕 고요한 것은 아니었다. 쉐어 가든에서 살아 돌아온 후, 많은 기사를 잃은 타란 백작과 수도 기사단은 힘이 빠져 있었다. 신하로서의 발언권은 물론이고,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정신이 없다 보니 제대로 국정에 관여할 정신도 없던 것이다.

덕분에 타란 백작은 일이 이렇게 진행이 되고 난 후에야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로서는 그야말로 막기는커녕, 막을 기회도 없었다는 걸. 지금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왕과 대신들을 홀린 마탑의 속삭임이 과연 어디까지 사실인지를 신속하고 정확하게 확인하는 것뿐이었다. 그게 바로 아랫사람을 부려도 되는 지금 이 자리에 그가 굳이 직접 나선 이유다.

“백작 각하, 준비가 끝났습니다.”

각자 생각에 빠진 두 사람이 얼마나 기다렸을까.

타란 기사단의 단장인 피오가 준비를 마쳤다는 마법사의 말을 전해 왔다.

그에 타란 백작과 구른 단장이 마법사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나가자, 그곳은 깔끔하게 정돈되어 텅 비어 있었다.

“준비 시간이 길다.”

타란 백작이 의심이 가득 담긴 눈으로 말하자 영혼의 관에서 나온 마법사가 급히 두 손을 저었다.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이번엔 대지를 정화하느라 시간이 걸렸지, 실제 전쟁 중에는 짧은 시간 안에 발동이 가능합니다.”

“마법사. 너는 내 말을 이해하지 못했군.”

“예?”

“나는 마탑의 주장을 확인하기 위해 왔다. 그럼 실제 상황에서처럼 사용되는 모습을 보였어야지. 이번만 대지를 정화했다? 전쟁에선 빠르게 사용이 가능하다?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생각지 않나?”

눈빛에 한가득 의심을 둘둘 말고 있는 타란 백작의 반응에, 마법사는 심하게 당황해 버렸다.

그러자 다른 마법사가 앞으로 나섰다. 그는 이전 영혼의 관 부관주 이더비히의 휴식 시간을 방해했던 바로 그 남자였다.

“죄송합니다. 아무래도 설명이 부족했던 것 같군요. 제가 이해를 도와 드리겠습니다.”

“너는?”

“저는 이더비히 부관주님을 모시는 마법사. 두네르입니다.”

“좋다. 두네르 마법사. 나를 납득시켜 보도록.”

“아시다시피 이 땅에는 저희 영혼의 관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마법적인 시설의 중요한 기능 중 하나가 바로 마나를 끌어모으는 역할입니다. 하지만 마나가 집중되게 되면, 그 일대에는 정확히 측정이 어려운 불규칙한 형태로 마나가 쌓이게 됩니다. 마법사들은 이것을 마나 과축적

현상이라고 부릅니다. 방금 이 땅을 정화한 까닭은 그렇게 쌓인 마나를 풀어내기 위해서였습니다. 절대 백작 각하의 눈을 속이려는 의도가 아니라, 오히려 마탑의 영향을 줄여 정확한 실험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준비 과정이라는 뜻이지요.”

칼날 같은 기세를 전혀 줄이지 않았는데도, 그런 타란 백작 앞에서 조곤조곤하게 해야 할 말을 다 하는 두네르

타란 백작은 그런 상대의 얼굴을 기억에 남기려는 듯 유심히 바라보다 고개를 끄덕였다.

“설명은 이해했다. 그에 대한 확인은 우리 쪽에서 다시 하도록 하고, 준비한 걸 보도록 하겠다.”

“그러시지요. 저희 쪽 준비는 끝이 났습니다. 대상만 지정해 주시면 됩니다.’

“피오 단장.”

타란 백작의 부름에 피오 단장이 대기 중이던 열두 명의 기사를 향해 손짓했다. 그들은 각각 타란 기사단과 수도 기사단에 소속된 기사 중 초인기를 각성한 초인들이었다.

기사들이 앞으로 나서자 피오 단장이 재차 그들을 향해 손짓했고, 그들은 이리저리 자리를 잡고서 서로를 향해 검을 들고 멈춰 섰다.

당장이라도 싸움을 시작할 것처럼 엉켜선 그들의 모습에 마법사들이 당혹스러워했지만, 타란 백작은 아무렇지 않은 듯 말했다.

“언제 어디서든 가능하다고 했지? 전쟁에서 준비되지 않은 갑작스러운 싸움은 비일비재하지. 이제 자네들의 실력을 보지. 아군은 수도 기사단이네. 가능하겠나?”

“전혀 문제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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