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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드 2부 – 772화


1207화

어둠 속에서 기어 나온 그것.

온전히 모습을 드러낸 놈을 본 이드는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저게 어딜 봐서 드래곤이야! 눈이 뻤냐!’

라미아의 눈총에 말을 바꾸긴 했지만, 게르만은 분명 처음에 이 안에 살고 있는 괴물을 ‘공허의 드래곤’이라고 칭했다.

드래곤이 어떤 존재인가.

최강의 생명체이자 진화의 종착점. 그리고 중간계의 수호자로서 두려움과 경외의 대상이다.

세상을 구성하는 속성이 깃들어 아름답게 반짝이는 단단한 비늘, 하늘을 뒤덮을 듯 거대한 날개. 그리고 어떤 왕관보다 위엄 어린 뿔까지. 그들이 품은 힘과 함께 그 외형만으로도 칭송받는 존재들이 바로 드래곤이다.

그런데 저건 뭔가?

위엄은 고사하고, 대체 저딴 근본 없는 생명체가 어디서 나왔나 싶은 형상을 하고 있었다. 오죽하면 경험 많은 이드조차 놈에 대해 사람들에게 설명할 자신이 없을 정도로 그 형상이 기괴했다.

우선 이놈은 다리가 없었다.

다리 대신 촉수를 사용해 움직이고 있었는데, 촉수가 움직일 때마다 그 끝에서 철판을 긁는 듯한 소리가 났다.

이런 촉수가 받치고 있는 몸 또한 일반적이지 않았다. 애벌레나 구더기보다는 번데기에 가까운 쭈글쭈글한 몸뚱이에, 이드를 향해 있는 앞부분만 새 부리처럼 뾰족했다.

그런 새 부리 위에 달린 눈은 징그러울 정도로 핏줄이 서 있었는데, 눈꺼풀이 없는 대신 몸통의 대부분을 차지할 정도로 컸다. 자세히 보면 큰 눈이 붙은 몸의 아래쪽에도 사람 머리통만 한 여덟 개의 눈알이 번들거리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것들보다 더욱 놈을 혐오스럽게 만드는 것은, 털 대신 온몸에 자란 촉수. 그리고 온몸에서 흘러내리고 있는, 진물인지 침인지 구분할 수조차 없는 악취 나는 액체였다.

이드는 싸우기도 전에 진 기분이 들었다.

이기고 지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싸우고 싶지 않았으니까. 도저히 저 혐오스러운 몸뚱이에 손을 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자칫 잘못했다가는 손이 썩어 버릴 것 같은 기분이랄까. 오죽하면 저 끈적거리는 몸뚱이를 갈라야 할 일라이져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 지경이다. 그런데, 뭐?

저딴 혐오스러운 것이 드래곤이라고? 도대체 게르만은 드래곤을 뭐라고 생각한 걸까.

강력하기만 하면 다 드래곤인가?

그래. 딱 하나. 드래곤과 같은 점이 있기는 하다. 바로 크기다. 놈의 몸은 중간계에서 가장 거대하다는 드래곤만큼이나 컸으니까. 하지만, 나머지는 정말이지…….

“혼돈의 파편을 고대 정령인 줄 알았다더니. 진짜 눈이 삐어도 한참 뼸네.”

고개가 저절로 저어졌다.

이드가 이런데 라미아는 어떨까.

아니나 다를까, 등 뒤 게르만의 신음이 깊어졌다. 그의 생명을 잡아 두는 작업을 진행 중인 라미아의 손길이 몹시도 거칠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번만은 그 마음이 충분히 이해가 가는 이드였다.

반대로 공허의 괴수는 이런 두 사람의 시선에 기분이 나빴던 모양이다. 하긴, 여태 게르만은 두려움을 담아 자신을 드래곤이라고 불러 주었거늘. 그런 그와 달리 벌레 이하의 것을 바라보는 듯한 시선으로 자신을 보는데 기분 좋아할 이가 누가 있을까.

그것이 비록 말도 하지 못하는 괴수라고 해도 말이다.

“크워워워워”

공허의 괴수가 으르렁거렸다.

새 부리처럼 생긴 머리가 눈 바로 아래서 갈라지며 입안에 가득한 이빨들이 나타났다. 동시에 입에 고여 있던 액체가 주르륵 흘러내리는데. 

“어억~ 썅! 싸우기도 전에 숨 막혀 죽겠네.”

이드는 자신도 모르게 코를 쥐었다. 한참이나 떨어져 있는데도 이렇게 참을 수 없는 악취라니.

또 그 말을 알아들은 것일까.

“크워! 크워워!”

희번덕!

허공을 향했던 괴수의 눈동자가 이드를 노려보자, 무형의 안광이 뿜어져 이드를 덮쳤다.

그러나 빛살처럼 쏘아진 그 기운은 거대 촉수처럼 이드 앞을 지키고 있는 무형의 벽을 뚫지는 못했다.

찌이이잉!

기운과 기운이 반발해서일까. 무형의 기운은 회색으로 변해 호수에 비친 햇빛처럼 사방으로 요동쳤다. 거기에 통제되지 않은 그 기운은 이드를 시작으로 라미아가 있는 곳까지의 부채꼴만큼의 공간을 제외한 전부를 태웠다.

이 자리에 다른 누군가 있었다면 그것에 휩쓸려 흔적도 남기지 않고 타 버렸을 것이 분명하다.

“촉수에 마안까지. 아주 골고루야.”

이드가 그에 대한 감상을 말하고 있자 뒤에 있던 라미아로부터 항의가 날아들었다.

“저쪽으로 가서 싸워요. 여기서 이러고 있으니까 정신 사납단 말이에요!”

“그렇지만 그러다 갑자기 저놈이 방향을 틀면 곤란하잖아.”

“・・・・・・・ 지금 누굴 상대로 엄살을 떠는 건데요?”

어디 수십 킬로미터 떨어지는 것도 아니고, 시야 안에 있는 거리라면 그쯤은 해결할 방법이 한둘이 아닌 이드였다. 그렇기에 라미아의 눈이 가늘어지는 것도 당연했다.

거기에 이드가 직접 달려오지 않는다 한들, 라미아가 먼저 그를 부를 수도 있는 일이고. 하물며 라미아가 이드를 기다려야 할 만큼 약자도 아니지 않던가.

그런 서로에 대해서 이미 알 만큼 알고 있거늘.

그런데도 굳이 이드가 이렇게 뭉그적거리는 이유는 명백했다.

“빨리 저리 안 가요? 나중에 돌아가면 일리나에게 이드가 징그러운 걸 싫어해서 내 뒤로 숨었다고 일러 버릴까 보다.”

바로 라미아의 마법을 이용해, 자신이 직접 손대지 않고 괴수를 처리하고 싶었던 것.

그 속내를 들킨 이드는 어깨를 툭 떨구고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자리를 옮겨 갔다.

“간다. 지금 가고 있다고. 저쪽이면 되지?”

이드가 쪼개진 고목이 있는 방향을 가리킨 직후다.

파지직.

발끝에서 작은 번쩍임이 생겨나고, 그 자리에서 사라진 이드가 다시 나타난 곳은 괴수의 머리 위.

그리고 이드가 나타나는 순간. 은백의 무형대천강이 괴수의 머리, 정확히는 그 중앙에 있는 눈알을 내리치고 있었다.

쯔어엉!

하지만 부수지 못할 것이 없을 것 같던 공격은 턱 아래 붙은 여덟 개의 눈동자가 번뜩인 뒤 나타난 검은 장벽에 가로막혔다. 촉수에 마안. 거기에 방어막까지. 흉측하게 생긴 놈이 재주는 많았다. 또한 반응도 빨랐다.

몸에 붙은 몇 개의 촉수가 채찍처럼 이드의 몸을 갈라 냈지만, 잔상이었다.

이드는 이미 턱 아래로 옮겨 온 뒤다. 그곳도 검은 장막이 가린 채 그 뒤에서 여덟 개의 눈이 노려보고 있었지만, 상관없었다. 현재 이드의 최우선 과제는 마나님의 분부에 따라 싸움터를 옮기는 것.

“큽!”

짧게 끊어지는 호흡과 진각. 그 힘이 무형대천강을 타고 흘러 검극에서 폭발했다.

꽈르르릉!

끼기기긱!

맹렬한 폭음과 충격파가 그림자 관을 가득 채웠다. 그리고 폭음 사이를 비집고 나오는, 철판을 긁는 듯한 소리. 그건 폭발을 막아 낸 괴수가 저만치 밀려나면서 낸 소리였다.

“커워워워!”

뒤로 밀려난 놈이 으르렁거렸다.

이번 공격으로 놈의 머리가 날아갔다면 가장 좋았겠지만, 그게 아니라도 괜찮았다. 바라던 대로 라미아와 충분히 거리가 벌어졌으니까.

거기다 머리가 날아가도 과연 쉽게 죽을지 의문이었다. 놈의 단말이라는 고목. 그리고 거기에 연결된 게르만까지 거의 불사신에 가깝지 않았던가.

당연히 그 원본이라고 할 수 있는 공허의 괴수에도 같은 성질이 있다고 여기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확인해 보게 목 좀 길게 빼 봐라!”

파지지지직!

손을 대지 않았다면 모르겠지만.

한번 검을 든 이상 무인으로서 망설이는 것은 도리가 아니다.

싸우기 싫었지만, 이미 시작해 버린 싸움.

이드는 최대한 빨리 끝내 버리자는 마음으로 일라이져를 두 손으로 잡았다. 이후 뇌령전궁보를 최대로 발휘한 그의 신형이 하나둘 갈라지며 공허의 괴수를 둘러쌌다.

동중정. 절정에 이른 이형환위와 뇌령전궁보가 만들어 낸 분신. 그 분신이 들고 있는 십여 자루의 일라이져가 동시에 공허의 괴수의 몸을 꿰뚫었고, 치이이익!

일라이져가 박혀 들어간 곳과 그 주변의 몸체가 검은 연기를 뿜으며 타들어 갔다. 고목과 마찬가지로 공허의 괴수에도 오리하르콘은 치명적인 듯했다.

어쩌면 고목에 박았을 때보다 효과가 더 좋을지도 모른다.

문제라면…… 괴수의 몸이 너무나 크다는 것이다.

“워워워웡!”

일반 철검과 다르게, 미스릴과 오리하르콘과 같은 마법 금속에 검기를 통하면 검기에 해당 금속의 성질이 일부 깃들게 된다.

일라이져에도 무형대천강의 두툼한 검강을 둘렀다. 하지만 저택보다 거대한 괴수의 몸에 비하면 고작 커터칼에 찔린 정도인 걸까. 사람도 중요 장기에 박히지 않는 이상, 그 정도 칼에 찔리면 고통스럽기는 해도 쉽게 죽지는 않는다.

괴수 또한 마찬가지였다.

놈이 한번 몸부림을 치자 깊게 박혔던 일라이져가 절반이나 빠져나와 버렸다. 뒤이어 쭈글쭈글한 주름이 몸뚱이에서 떨어지며 촉수로 변해 몸에 붙은 이드들을 떨쳐냈다.

그 충격에 모든 분신이 사라진 이드는 허공에서 길게 미끄러지면서도 괴수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원래 촉수에, 추가로 몸에서 떨어진 촉수까지.

다시 보면 이드의 검은 괴수의 몸을 찌른 것이 아니라 촉수를 찌른 것이었다. 그걸 자랑하듯 이드를 떨쳐 낸 촉수가 다시 놈의 몸에 감겼다. 거기에 깊이 새겨 놓은 칼자국은 이미 재생되어 사라진 상태.

“젠장. 여긴 정말 최악이야.”

저놈을 죽이려면 도대체 몇 번이나 더 칼질을 해야 할까.

한 가지 확실한 건, 고목처럼 오리하르콘 검을 박아 놈을 멈출 수는 없다는 거다. 그러기엔 검이 모자랐다. 아니, 놈이 너무 크다.

귀찮다고 때려치우고 나갈 게 아니라면, 어쩔 수 없이 이드가 발바닥에 땀나도록 뛰어다니는 수밖에 없다는 뜻이었다.

“그래, 죽어 보자. 아니, 빨리 좀 죽어 줘라!”

물론 그런다고 얌전히 죽어 줄 괴수는 아니다. 이드의 요구에 대한 대답은 그를 향해 내려 박히는 촉수가 대신했다.

이드는 자신을 노리는 촉수를 수라만마무의 검강으로 조각내고 몸을 날렸다. 이번에야말로 저 어디가 목인지도 모를 놈의 목을 떼어 줄 작정이었다.

하지만 그런 이드를 여덟 개의 눈이 노려보는 순간.

“마안? 도대체 몇 개나 가지고 있는 건데!”

이드는 잠깐이지만 자신의 몸이 멈추는 걸 느껴야 했다. 그 느낌은 곧장 외력에 대항하는 무극신기 덕에 풀렸지만, 아주 찰나의 틈이 생기고 말았고,

희번덕!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머리에 달린 큰 눈에서 뿜어진 기운이 이드를 두드렸다.

“크음.”

전혀 대비하지 못한 공격. 다행히 방어에 성공은 했지만, 이드는 답답한 신음과 함께 뒤로 튕겨 나가야만 했다.

끼긱.

카카카카카칵!

괴수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촉수로 바닥을 찍으며 달려들었고, 그보다 빨리 움직인 또 다른 촉수가 화살 비처럼 이드의 머리 위로 떨어져 내렸다.

하지만 그 모든 건 이드를 스치지도 못했다.

그러기엔 촉수가 너무 느렸다. 아니. 이드의 발이 너무 빨랐고, 그 움직임이 너무 복잡했다. 하지만 괴수도 보통은 아니었다.

쩌억.

바닥에 박힌 촉수의 입이 벌어지고, 그 안에 빼곡하던 이빨들이 사방으로 발사된 것이다. 

“!!”

그 어디로도 피할 수가 없다.

그야말로 당문의 만천화우를 넘어서는 공격에 이드가 어금니를 꾹 깨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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