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드 2부 – 867화
1302화
사망자의 힘을 흡수한다니.
실로 끔찍한 소리다.
“최소한 제가 볼 땐 그럴 가능성이 가장 큽니다.”
정확한 근거를 가지고 하는 소리는 아니다. 그렇지만 그것을 대신하는 경험과 감이 있었다.
특히 예지에 가까운 감은 ‘확신’ 중이었다.
아, 저들이 준비한 게 이거였구나 하고.
“초인 마법이란 저런 걸까요.”
흉한 것을 봤다는 듯 검후의 눈에 혐오감이 비친다.
기사 중의 기사라고 할 수 있는 그녀가 보기에 죽은 동료의 힘을 흡수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리라.
죽은 자에 대한 경의를 표하지는 못할망정, 그 남은 힘을 갈취한다니.
이드는 검후의 이런 반응을 이해했다. 그 역시 비슷한 감정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힘에 대한 더러운 욕망의 발현이라고 할까.
그렇다고 한 면만 보고 전체를 매도하는 것도 옳은 일은 아니다.
“꼭 초인 마법이 이렇다 할 건 아닙니다. 기존 흑마법에도 구조는 다르지만 이와 비슷한 게 있으니까요. 아마 저것도 그걸 모티브로 해서 만들어 냈을 겁니다.”
이 역시 거의 확신에 가까웠다. 비슷해도 너무 비슷했으니까.
초인 마법이 비록 지금까지 없던 계열이라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새롭게 만들어 낼 순 없었을 것이다.
현대의 마법은 이미 수천 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인간의 모든 상상력을 실체화했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지금까지 없던 신선한 무언가가 나올 가능성이 극히 적다는 말이다.
마법이라는 큰 틀 안에서 태어난 초인 마법도 이런 사정은 같다.
그러니 근본 구성 원리는 다를지 몰라도, 그 발현 형태는 기존 마법과 비슷한 게 많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아니, 오히려 기존 존재하던 마법을 따라 만들었을 가능성이 크다. 이렇게 되면 독창성은 떨어질지라도 훨씬 안정적이며, 실수나 실패를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기사에게 마법은・・・・・・ 어려운 것 같아요.”
“아무래도 좀 그런 편이죠.”
이드가 애매하게 웃었다.
그 좋은 예로 자신이 있지 않은가. 아무리 옆에 라미아가 있다지만, 이드는 마법을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마법의 위대함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 손이 잘 가지 않는다고 할까?
주문을 외우기 전에 손이 먼저 나간다.
마나를 움직이기 전에 발이 먼저 움직인다.
시간과 정성을 다해 몸을 단련해 온 무인으로서 몸을 움직이는 것 자체가 하나의 기쁨이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정말 무언가 궁합이 잘 맞지 않는 느낌이라고 할까? 그런 게 있다.
“그런데, 생각보다 마법의 위력이 약한 것 같군요.”
“위력이 말입니까?”
“그래요. 백 명의 힘을 여섯이 나눠 가진 데 비해 늘어난 전력은 그만큼 크지 않은 듯해 하는 말입니다.”
백을 여섯이 나누었으니, 한 명당 최소 열여섯의 힘을 받은 셈이다.
그런데 늘어난 전력은 겨우 50%,
열여섯 명이 가진 힘은 겨우 그 정도가 아니었는데 말이다. 농담이라도 효율이 좋다고 하기 어려운 증가량.
물론 그 정도만 해도 상급 기사를 상대하기에는 충분하다는 걸 보여 주고 있기는 하다. 거기에 더해서 아직 네트나의 힘을 불려 줄 인공 초인이 이백이나 더 남아 있다.
저들의 힘까지 흡수하게 된다면, 단순 계산만으로도 세 배에 가까운 전력 증가가 이뤄질 것이다.
그 힘이면 상급 기사와 스폴을 압도하고도 남을 양.
하지만 상급 기사와 스폴 뒤에는 쉴라와 검후가 있다. 그리고 이드도.
겨우 세배의 증가 폭으로 이들을 상대하는 것이 가능하냐고 한다면, ‘글쎄’ 하는 의문이 붙을 수밖에 없다.
“산 자도 아니고 사망자의 힘을 흡수한 것이니 저런 게 아니겠습니까.”
온전히 자신의 의지로서 내공을 전수해도 그 과정에선 손실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아무리 좋아도 결국의 남의 것.
내가 쓰기 위해서는 틀에 맞지 않은 부분을 두드리고 잘라 낼 수밖에 없고, 그 과정에서 쓸 수 없는 곳은 버려진다. 이게 아까워 억지로 끌어안고자 한다면 높은 확률로 주화입마가 찾아오리라.
이런 과정은 마법이라고 크게 다르지 않다.
무엇보다 스스로 의지가 아니라, 마법에 의해 죽은 자의 힘을 억지로 옮겨 왔다. 그 힘이 과연 온전할 수 있겠는가.
‘물론 그게 전부는 아닌 것 같기는 하지만…… 자세한 건 좀 두고 봐야 알겠지.’
아무렴 은색 기사단의 정체를 알았다면 자신은 몰라도 그 뒤에 있을 검후는 염두에 두었을 터였다.
그 상태에서 꺼내 든 패가 저들 여섯 명의 초인이다.
하나 저들이 비단 세 배가 아니라, 다섯 배로 강해진다고 하더라도 과연 검후를 상대할 수 있을까?
그건 불가능하다.
여섯이 아니라 백이 달려들어도 검후를 쓰러트릴 수는 없다. 저들과 검후 사이의 차이는 그 정도로 압도적이다.
그럼에도 저들 여섯을 내보냈다는 것은 검후를 상대할 만한 장치가 더 있다는 의미였다.
과연 또 어떤 꿍꿍이를 숨긴 걸까.
“일단 당장은 상급 기사들을 도와 저들 여섯을 상대하는 게 먼저가 아니겠습니까.”
“명예 후작의 말이 옳습니다. 단장.”
“예.”
쉴라가 검후 앞에 섰다.
이어질 말이 무엇인지 아는 걸까. 그녀의 전신에 약한 긴장감이 흐른다. 팽팽하게 시위가 당겨진 느낌.
반쯤 뽑힌 검을 보면 이런 느낌이 들지 않을까.
살짝 고개를 숙인 그녀는 완벽히 전투 준비를 끝낸 상태였다.
“무엇을 해야 할지 알겠지?”
“예. 인공 초인들이 죽어 전력을 더 늘리기 전에 저들을 쓰러트리는 것입니다.”
“정확하다. 여기서 시간을 더 끌게 되면 아까운 아이들이 상하게 되지 않겠니.”
네트나가 사망자의 힘을 흡수한다는 것을 알기 전까지, 시간이 지날수록 유리한 건 은색 기사단이었다.
하지만 사실을 알게 된 지금은 그 반대다.
시간이 지나 사망자가 늘어나고, 네트나의 힘이 늘어날수록 위험해지는 쪽은 은색 기사단이다.
“걱정하시는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오랜만에 네가 활약하는 모습을 보겠구나.”
“모든 영광을 검후님께. 기대에 부응해 실망스러운 모습은 보이지 않겠습니다.”
“그래, 그래. 하지만 언제든 상황이 바뀔 수 있음도 염두에 두려무나.”
“충!”
검후의 당부를 가슴에 담은 쉴라가 예를 취하고는 일어섰다.
검을 뽑아 든 그녀는 망설임 없이 전장 속으로 성큼 걸어 들어갔다.
삼백의 적아가 어우러진 전장은 어지러웠다.
검과 창이 휘둘러지고.
초인기가 뱀처럼 허공을 난다.
잠시만 한눈을 팔아도 눈먼 공격에 얻어맞아 중상을 피하기 어려워 보이는 난장판.
장날의 시장은 여기에 비하면 고즈넉한 시골 마을이나 마찬가지가 아닐까. 그런 전장 속을 쉴라는 산책을 나온 듯 여유롭게 가로질렀다.
그녀의 목표는 어디까지나 상급 기사들이 상대 중인 여섯의 네트나들.
기사들이 상대하고 있는 인공 초인을 굳이 죽여 적의 힘을 키워 줄 이유가 없다. 그렇다고 인공 초인에게 완전히 손을 대지 않은 건 아니다. 기사 중 적의 공격에 힘겨워하는 모습이 보이면 손을 보태길 주저하지 않았다.
적이 강해지는 것보다 부하들이 먼저였다.
그렇다고 생각 없이 손을 쓰는 것도 아니었다.
‘저들은 사망자의 숫자가 백이 넘었을 때 흡수한 힘을 발휘했다. 그렇다면 다음번에도 비슷할 터. 한두 명 죽어서는 저들의 전력이 강해지지 않는다.’
애초에 이런 부분을 짐작했기에 은색 기사단에게 전투를 멈추게 하지 않은 것이지 않던가.
그렇게 전장을 헤치고 목적한 곳에 닿은 쉴라.
그녀의 앞에는 상급 기사 스위트가 창을 든 상대를 대상으로 쉼 없이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스르르릉.
그 앞에 도착한 쉴라가 검을 빼 들었다.
“스위트 경.”
“단장님?”
“경이 지금 상대하고 있는 적은 내가 상대하겠다. 경은 물러서서 케럴 경을 지원하도록 하라.”
현재 상급 기사 중 적을 상대로 가장 고전하고 있는 이가 바로 케럴이다.
“……알겠습니다.”
갑자기 상대를 빼앗겼지만, 거부는커녕 반문도 없다.
전투 중에 내려지는 상관의 명령은 절대적이다. 죽으라는 정도의 부당한 명령이 아니라면 무조건 따라야 한다.
스위트는 즉시 몸을 뺐다.
“이년이! 어딜 도망가느냐!”
“ …….”
지금 쉴라와 대화하는 것을 보고도 엉뚱한 소리를 한다. 상대할 가치를 느끼지 못한 스위트는 그대로 전장 속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이런 스위트의 빈자리를 쉴라가 채웠다.
“이제부터 그대의 상대는 내가 한다.”
“넌 또 뭣……!!”
넘쳐흐르는 힘에 도취된 적이 하얀 치아를 번뜩이며 고개를 돌린다. 다 이겨 놓은 적을 놓쳤다. 그리 생각해 신경질이 난 상태. 하지만 그는 쉴라를 눈에 담기도 전에 기겁했다.
목소리가 들려 온 곳으로 고개를 돌렸을 때,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대신 붉게 물든 검이 턱밑으로 파고들고 있었다.
“느아압!”
너무 급한 나머지 기괴하게 뒤틀린 기합 소리.
그와 함께 창을 든 적의 허리가 부러질 듯 젖혀진다. 등이 땅에 닿기 직전.
텅!
창날이 땅을 두드렸고, 그 반탄력으로 남자의 몸이 누운 자세로 미끄러진다. 무공으로 따지면 금리도천파의 일식과 닮았다.
“이 미친년이! 감히 비겁하게 기습을 해!”
거리를 벌린 남자가 벌떡 일어나 버럭 소리를 지른다. 그와 함께 그의 턱 일부가 쩍, 하고 갈라지며 피가 주르륵 흘러나온다. 남자는 떨어지는 피를 거칠게 닦아 내고는 분노를 담아 창을 내질렀다. 순식간에 늘어난 창영이 쉴라의 전면을 가득 덮었다.
그에 대한 쉴라의 대응은 간단했다. 마치 낙엽을 치우는 빗자루처럼 창영을 단번에 쓸어 낸 검이 그 속에 숨은 창의 실체를 걷어 낸 것이다.
“기습이라니. 전투는 한참 전부터 이어지고 있던 게 아닌가. 게다가 전장에서 비겁을 논하다니, 실로 어리석군.”
“진짜 어리석은 게 누군지 네년 아가리가 찢어지면 알게 되겠지!”
피를 본 게 분한 것일까.
혹은 어리석다는 말이 싫은 것일까.
남자는 쉴라를 노려보며 앞으로 달려 나왔다.
쉬쉭.
그와 함께 둘로 갈라지는 남자의 모습, 그건 이형환위가 만들어 낸 잔상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고절한 신법이 만들어 낸 환상도 아니다.
“꺄하하하! 누가 진짜인지 모르겠지?”
남자는 마치 조롱하듯 소리쳤다. 그리고 또 한걸음 더 앞으로 나서는 순간. 남자의 모습은 둘에서 넷으로 늘어났다.
“과연 네년은 몇 명의 나를 상대할 수 있을까.”
“아니. 굳이 멍청이 여럿을 볼 생각은 없다.”
그리고 또 한걸음.
남자가 더 앞으로 나서려는 순간.
쉴라가 움직였다.
슈슛!
표홀한 발걸음. 그와 함께 둘로 늘어난 쉴라의 신형이 검을 들었다.
붉은 검강에 휩싸인 두 자루의 검이 여덟 개로 늘어나는 건 순식간이었다.
난화십이식 분영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