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드 2부 – 868화
1303화
난화십이식.
그레센 대륙의 난화십이식은 검후의 무공이다.
무공이 가진 섬뜩할 정도의 찬란한 화려함은 그녀의 상징과도 같았다.
대륙에서 무공이 연구되고, 또 검후의 손에서 많은 무공이 태어났다. 검후는 이런 무공을 아낌없이 전했다.
하지만 그런 중에도 난화십이식만은 결코 세상에 풀어내지 않고, 아끼고 아꼈더랬다.
이런 검후의 태도가 수개월 전부터 바뀌었다.
쉴라에게 난화십이식의 전수를 시작한 것이다.
이는 검후가 쉴라를 자신의 후계로 점찍은 것과 같았다. 이런 결정에는 삼검왕과 그들을 따르는 오색 기사단의 영향이 없다 할 수 없었지만.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친 것은 다름 아닌 그녀에 앞서 전수를 시작한 이드와 일리나의 결정이었다.
대륙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검후가 생각하는 난화십이식의 진짜 주인은 이드였으니까. 물론 당사자인 검후도 불만은 없었다.
그렇기에 쉴라에 대한 무공 전수에 적극적으로 나섰던 것이고.
아무튼, 이렇게 시작된 무공의 전수는 순조로웠다.
빨랐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수개월의 시간.
쉴라는 이 수개월의 시간 속에서 십이식 중 아홉식을 완벽히 익혀 내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분명히 말해 이건 굉장히 빠른 습득 속도였다. 이럴 수 있었던 것에는 크게 세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 번째는 쉴라가 가진 무공에 대한 재능이었다.
그녀는 무에 대한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그야말로 무공의 천재랄까. 비교적 젊은 나이에 은색 기사단의 단장에 오른 게 바로 그 증거다. 둘째는 무공의 재능에 이어지는 것으로, 바로 그녀가 올라 있는 드높은 경지였다.
현재 쉴라의 경지는 그레이트 실버.
대륙에서 손꼽히는 수준이었다. 그보다 상위 단계인 그랜드에 오른 이는 오직 검후뿐인 것으로 알려져 있으니, 그야말로 상위 0.01%에 속하는 강자라고 할 수 있었다.
무공에 처음 입문하는 이가 아닌, 이처럼 높은 경지에 이미 올라 있는 이가 새로운 무공을 익히는 것이다.
그러니 그 속도가 얼마나 빠를까.
그녀가 이미 올라 있는 경지가 새로운 무공이 꽃피울 최적의 토대가 되어 주었을 테니 말이다.
그리고 쉴라가 난화십이식을 빠르게 익힐 수 있었던 마지막 세 번째 이유.
바로 일리나와 검후의 존재였다.
무언가를 익히는 데 있어 아주 중요한 요소 중 하나. 바로 스승.
그런 의미에서 난화십이식으로 그랜드에 이른 검후와 백 년의 시간 동안 난화십이식을 수련한 일리나는 쉴라에게 있어 최고의 스승이 되어 주었다.
먼저 난화십이식을 익혀 낸 두 사람은 자신들이 가진 경험과 노하우를 쉴라에게 전수하는 걸 조금도 아끼지 않았다.
이런 두 사람의 가르침은 그야말로 최고의 기연이나 다름이 없었다.
대륙에 누가 이런 가르침을 받을 수 있을까.
쉴라는 매일 밤 감동에 눈물을 흘릴 것 같았다. 그렇게 그녀의 무공은 하루가 다르게 발전했다.
거기에 가끔 얼굴을 비치는 이드의 도움도 결코 적지 않았다.
그가 가볍게 던지는 말과 가끔 맞대 주는 검은 깨달음의 폭풍이었다.
쉴라는 이 폭풍에 마냥 휩쓸리지 않고 중심을 잘 잡고 날아올랐다. 그리고 결국에는 손에 넣을 수 있었다.
다음 경지로의 도약에 대한 단서를,
물론 그렇다고 쉴라가 그랜드 소드 마스터가 되었다는 건 아니었다. 대신 그레이트 실버의 끝자락에 올랐다고 할 수는 있었다.
이 의미는 결코 가볍지 않다.
이제 같은 오색 기사단 단장 중 그녀를 상대할 수 있는 이는 없다. 어디 그뿐일까.
거의 매일 쉴라의 대련 상대가 되어 준 스폴은 하늘 끝까지 그녀를 추켜세웠다.
“우리 단장, 이런 실력이면 삼검왕하고도 비벼 볼 수 있는 거 아니야?”
“……헛소리 그만하고 검이나 들어.”
물론 쉴라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삼검왕이라니!
비록 더러운 배신자들이지만 그 실력은 진짜다. 자신이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할지언정 아직 삼검왕에 닿았다고 할 실력은 아니다. 다만, 지금은 그러해도 미래는 어떨까.
그런 가정을 떠올릴 때면 쉴라도 가슴이 설렜다.
한 달 후라면 어림도 없지만, 여섯 달 후라면? 일 년 후라면? 또는 그보다 더 시간이 흐른 뒤라면?
한 가지 확실한 점은, 이런 발전 속도라면 삼검왕에 닿기까지 절대 삼 년 이상은 걸리지 않으리라는 것이다. 그야말로 삼검왕이 시야 안에 들어왔다는 느낌일까.
거기에 난화십이식이 가지는 의미가 든든히 쉴라의 심신을 받쳤다.
검후의 무공. 검후의 상징.
쉴라는 난화십이식을 통해 검후가 자신과 함께하고 있다는 안정감을 가질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
이런 검후의 기대를 등에 업고 검을 뽑았다.
쉴라는 티끌만큼도 검후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다. 그런 마음이 담긴 쉴라의 검은 무섭도록 매서웠다.
여덟 개의 검화.
사아아아-
검화를 피워 낸 검이 새로운 검로를 그리자 검화에 화령인이라는 빛이 담겼고.
다음 순간.
파팟.
빛을 머금은 검화와 함께 쉴라의 신영이 허공을 갈랐다. 그 모습은 표홀하다는 말로도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고 신묘했다. 특히 빛나는 검화가 허공을 가르는 모습은 마치 안개를 가르고 쏟아지는 아침 햇살 같았다.
다만 검화가 가져온 결과는 그처럼 따스하지 않았다.
피피피핏!
수없이 자리를 바꾸는 검화. 눈을 어지럽히는 빛.
끝없이 순환하는 허허실실.
“이익!”
그건 갑자기 늘어난 힘에 취해 버린 바보가 막을 수 있는 공격이 아니었다.
넷으로 늘어난 남자는 전진하려던 것을 멈추고 창을 내질렀다. 네 자루의 창이 허공을 가득 채우며 벽을 만들었다.
그러나 구멍 뚫린 벽으로 빛을 막기는 애초에 역부족.
어느새 빛살은 그를 스쳐 지났고, 창날 앞에 서 있던 쉴라의 모습도 사라지고 없다. 그와 함께 남자의 등 뒤에서 들리는 발소리. 터턱.
그에 이를 악물고 창을 찌르던 남자가 기겁해 몸을 돌렸다. 아니, 돌리려 했다.
“……어?”
그러나 움직이지 않는다. 어느새 굳어 버린 몸에 남자는 의아한 표정이 되었다.
왜 움직이지 않는 것인가.
어째서 창이 더 이상 나아가지 않는가.
그리고 왜 또렷하던 시야가 어둡게 흐려지는 것일까.
남자는 문득 깨달았다.
‘나・・・・・・ 죽었나?’
그것이 그의 마지막이었다. 현실을 인식하며 털썩 쓰러진 남자의 머리가 땅바닥을 굴렀다.
쉴라의 시선이 그런 남자의 등 뒤를 스친다.
“죽었는데도 분신이 사라지지 않아?”
담담한 중에 깃든 혐오스러운 기색이 선명하다.
그도 그럴 것이, 넷으로 늘어난 남자의 몸과 머리가 그대로 남았기 때문이다. 몸도 넷. 바닥을 구르는 머리도 넷.
과연 초인이라고 해야 할까.
죽어서도 사라지지 않는 분신이라니. 단순히 무공의 이형환위와 비슷하게 여겼던 쉴라로서는 의외의 모습이 아닐 수 없었다.
자신을 넷으로 나누다니. 스위트와 싸울 때 보여 준 모습으로는 여섯까지 늘어났었다. 과연 여러 명의 자신을 보는 기분은 어떨까. 동료가 늘어난 기분일까? 아니면 형제?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쉴라는 그 기분을 알고 싶지 않았다.
어떤 면에선 흉측한 형태로 몸을 변신시키는 초인기보다 분신으로 늘어난 남자의 초인기가 더 혐오스럽다는 기분이 든 쉴라다. 하지만 남자에 대한 감상은 거기까지였다.
이미 죽인 적에게 더 이상의 감정도, 호기심도 없었다. 쉴라는 전장을 살폈다.
여섯 중 하나를 처리했으니, 이제 다음을 찾아 움직일 때다.
어떤 상급 기사를 향해 이동할 것인가.
잠시 전투 상황을 살핀 쉴라는 잠시 후, 결정을 내림과 동시에 전장을 가로질렀다. 이번에 그녀가 향한 상급 기사는 산드라. 그녀가 상대하고 있는 적은 일곱 개의 눈을 부릅뜨고 있는 초인. 그는 그 눈들로 쉼 없이 붉고 푸른 광선을 쏘아 내고 있었다.
그야말로 시선이 닿는 곳이라면 어디로든 쏘아지는 광선에 산드라는 방어에만 급급할 뿐, 조금도 자신의 거리를 만들어 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산드라의 방어가 단단해서 비처럼 쏟아지는 광선 공격을 철저히 막아 내고 있다는 것일까.
즈즈즈즛!
지금도 그렇다.
산드라는 검막을 펼쳐 푸르다 못해 창백한 네 줄기의 광선을 방어했다.
쉴라는 그런 그녀가 아니라, 광선을 뿌리는 적을 향해 뛰어들었다.
“단장님?!”
그리고 이런 모습을 알아본 산드라.
쉴라는 여전히 적을 바라보며 외쳤다.
“이자는 내가 상대하겠다. 산드라 경은 페르다슈 경의 지원을…………….”
쉴라는 산드라의 전력을 페르다슈에게 돌릴 생각이었다. 현재 적과 전투 중인 상급 기사 중 순수 전력에서든 적과의 상성에서든 어떤 이유로든 가장 열세를 보이는 사람이 케럴이었고, 그다음이 페르다슈였기 때문이다.
그런 두 사람에게 상급 기사가 전력으로 더해지면 아무리 밀리고 있었다고 해도 금방 승패가 나리라.
이 전장에 난입하기 전 살피기로, 스위트가 지원을 간 케럴의 전장이 바로 그러했다. 적을 압도하는 중이었더랬다.
아마도 곧 적의 목을 벨 수 있으리라. 그럼 남은 자는 겨우 셋.
‘적의 전력이 다시 늘어나기 전에 모두 처리하는 데는 문제 없겠어.’
그렇게 생각하던 차였다.
꽈르르릉!
천둥이 치는 것 같은 소리와 함께, 산드라를 향해 쏘아지던 광선이 몇 배로 굵어졌다. 광선에서 전달되는 열기도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 단숨에 증폭된 광선에 산드라의 검막이 일그러지고.
콰콰쾅!
“끄아아압!”
곧 검막을 뚫은 광선의 모습과 뒤이은 날카로운 비명.
“산드라 경!”
쉴라는 예상치 못한 사태에 급히 다급히 산드라의 상태를 살폈다. 그런 쉴라의 눈에, 폭발에 휩쓸려 뒤로 날아가는 산드라의 모습이 들어온다. 그래도 다행이랄까.
강력한 폭발음과 달리 산드라는 뒤로 튕겨 나가는 중에도 검을 놓지 않았다. 정신을 잃지 않았다는 말이다. 그와 함께 허공 중에서 중심을 잡기 위해 몸을 뒤집는 모습까지.
부상을 입었더라도 최소한 중상은 아니리라.
그거면 되었다.
쉴라는 떨리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하지만 산드라가 무사하다고 상황이 끝나는 것은 아니었다.
쯔즈즈즛!
산드라를 날려 버린 적 초인의 일곱 눈 중 세 개가 이번에는 쉴라를 향했다. 놈은 산드라의 숨통을 끊어 내는 일보다 쉴라를 더 위협적으로 느낀 것이다.
어쩌면 당연하다.
산드라가 쉴라를 향해 ‘단장’이라고 불렀으니까.
“흐흐흐. 과연 은색 기사단의 단장께서는 얼마나 버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