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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드 2부 – 872화


1307화

세 개의 머리에 여섯 개의 팔을 가진 존재.

그것을 이르는 표현이 삼두육비 또는 삼면육비다.

일반적으로는 범상치 않은 능력을 지닌 이를 일컫는 말이지만, 정말 주어진 의미 그대로의 형상을 한 존재들도 실재했다. 그 대표적인 예로 불도의 여러 수호신과 저 서유기에 나오는 나타태자 등이 있다.

하나같이 심상치 않은 존재들이다.

그렇기에 이드도 처음엔 깜짝 놀랐다.

말이 삼두육비지.

진짜 그러한 존재를, 그것도 중원이 아닌 머나먼 그레센 땅에서 마주치게 될 줄이야 상상이나 했겠는가.

하지만 놀람도 잠깐, 곧 진한 흥미가 솟아올랐다.

깊은 산 절간의 탱화 속에서나 볼 법한 존재가 살아 움직이고 있으니 흥미롭지 않을 수가 없다.

우선 영혼의 관 버전 삼두육비는 덩치가 굉장히 컸다.

숲의 제왕이라는 오우거에서 상체 하나를 더 붙여 놓은 듯한 크기랄까. 거기에 그 큰 몸을 감싸고 있는 돌덩이같이 단단해 보이는 근육들이라니. 저 근육에서 나오는 힘이면 진짜 오우거도 걸레처럼 쥐어짜 버릴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심지어 이런 삼두육비의 전신을 감싸고 있는 갑주까지. 이드는 그 모습에서 문득 탱크를 떠올리고는 고개를 저었다.

탱크라기엔 너무 가볍다. 그보다는 작은 산 하나가 서 있는 것 같은 중량감이다.

만약 공성전에 저런 놈을 가져다 놓으면 어떨까. 말 그대로 성을 통째로 밀어 버리는 장면을 보게 되는 것은 아닐까.

하지만 저 강인한 신체가 주는 감상은 딱 거기까지였다.

“개자식! 네가 날 불렀지? 네가 날 깨웠지? 그렇지?”

“날 깨운 놈! 죽이자! 저놈뿐 아니라 저깄는 놈 몽땅 다 죽이자!”

“보지 마! 난 괴물이 아니라고!”

묵직한 중량감이 전해지는 신체와 달리, 쉴 새 없이 나불거리는 입이 토해 내는 소리는 하나같이 정신이 없었다. 말 그대로 분위기를 깨는 것 같은 말들.

그야말로 이성적인 대화가 이어지기 힘든, 미친놈의 헛소리들뿐이었다.

이드는 문득 저들이 저렇게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이유가 하나의 머리통에 세 개의 뇌를 욱여넣어서는 아닐까 싶었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매우 간단했다.

삼두육비가 가진 세 개의 얼굴이 앞서 나타났던 여섯의 강력한 초인 중 셋의 얼굴과 똑같았기 때문이다.

마치 죽은 그들의 머리를 가져다 붙인 것 같다고나 할까.

‘물론 진짜 그러진 않았겠지만……?’

현재 사라진 건 쉴라가 상대하던 초인의 시체뿐.

나머지 다섯의 시체는 얌전히 바닥을 구르는 중이다. 그렇지만 저 정도로 얼굴이 똑같다면 분명 관계가 없지는 않을 터.

‘어찌 되었든 그게 무슨 상관이야.’

이드는 금방 관심을 끊었다.

하물며 얼굴만 같은 것이 아니라 죽은 자의 영혼이 저 삼두육비에 깃들었다고 해도 뭐가 어떻단 말인가.

가장 중요한 본질, 저들이 죽여야 할 적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이미 한 번 죽였던 자들이다. 두 번이라고 죽이지 못할 이유가 없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

쿠쿵!

놀란 고양이처럼 뒤로 뛰어오르는 삼두육비.

“너는 위험하다.”

“날 죽이려는 거구나!”

여섯 개의 눈알이 번들거리며 노려본다.

이런 모습에 이드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

“거참, 생긴 것답지 않게 재빠르네. 눈치도 빠르고, 몬스터라기보다는 짐승에 가까운 느낌인데. 어느 쪽이든 인간은 아닌가.”

“크르르르. 나는 인간이다!”

“그 모습 어디가?”

“이, 이 모습은…….”

세 개의 얼굴이 일제히 혼란스러움에 흐려졌다. 인간이 아니라는 말 하나에 저렇게 흔들릴 줄이야.

신체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정신이 저래서야 제대로 싸울 수나 있을까? 도대체 적 마법사는 무슨 생각으로 이런 괴물을 꺼내 놓은 것일까. 그렇게 의문을 가질 때다.

“깨어나라, 네트나! 너의 주인이 여기 있으니, 아무것도 혼란스러워할 필요 없다!”

뒤에서 삼두육비의 모습을 히죽거리며 바라보고 있던 펠튼이 소리쳤다.

“주, 주인. 나는…… 네트나.”

“흐흐흐. 그래. 너는 네트나다. 내 모든 것. 내 걸작! 신시대의 초인. 그 완성작이 너다. 거는 그 어떤 인간보다 위대하다!”

광기가 보이는 외침.

그건 마치 세뇌처럼 삼두육비, 네트나의 머리로 박혀 들어갔다. 그리고 펠튼의 말이 이어질 때마다 네트나의 얼굴에 떠올라 있던 혼란이 사라져 갔다.

“신시대의 초인이라.”

이드는 펠튼의 헛소리를 한 귀로 흘리며 슬쩍 라울을 돌아보았다.

삼두육비가 신시대의 초인의 모습이라니, 과연 초인을 대표하는 조직의 인간인 그는 저 말을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했다.

그리고 이 궁금증에 대한 라울의 감상은 짧고 굵었다.

“역겹군.”

네트나를 향한 라울의 눈길은 무심했으며, 그를 넘어 펠튼을 향한 눈빛에는 냉기가 흘렀다.

저런 괴물을 만들고 그것에다 신시대의 초인이라는 꼬리표를 붙이다니. 초인인 그로서는 불쾌한 게 당연했다.

동시에 이드는 궁금했다.

현재 그를 역겹게 만든 네트나라는 괴물. 그 괴물을 만들어 내는 데 바벨의 돈과 지원이 쓰였을 터였다.

그렇다면 과연 라울은 바벨이 미완의 마탑을 후원한 것에 대해 후회하고 있을까? 아니면 실패한 후원이었다고 단념하고 있을까. 

‘궁금한데. 물어도 대답해 주지 않겠지?’

물어보면 능숙하게 말을 돌려 버리지 않을까.

그러는 사이, 네트나에 대한 펠튼의 정신 조정은 끝나고 있었다. 복잡한 내용도 없었고, 길지도 않았다.

네트나에게 그의 이름을 각인시킨 뒤 주인이 누구인지, 적이 누구인지를 정확히 인식시키는 순간. 네트나의 혼란은 사라졌다. 당연하지만 이드는 네트나가 가장 먼저 죽여야 할 적으로 지정되었다. 이드 다음으로는 그 뒤에 있는 기사들과 초인들.

하지만 펠튼이 특히 강조한 사람은 따로 있었다.

“저 여자만큼은 반드시,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죽여라. 그리고 그 목을 내게 가져와라! 싸워라, 네트나!”

이런 펠튼의 손가락질에 검후는 맑은 눈을 깜빡거리며 자신을 가리켰다.

“저 마법사, 지금 절 가리킨 거죠?”

“검후가 한 명 더 있는 게 아니니 그렇겠죠?”

“어이없네요. 또 멍청하고요. 저의 정체에 대해 짐작한 건 칭찬할 만하지만, 이드 님을 무시하고 제게 신경을 쓰다니. 쯧쯧.”

검후는 혀를 찼다.

은색 기사단?

바벨의 플레타 부대원들?

자신은 고사하고 그들을 죽이기 위해서는 이드를 넘어야 하지만.

‘그런 일이 가능할 리가 없잖아.’

네트나가 이드를 넘어선다? 그보다는 차라리 당장 이 세상이 망하는 쪽이 더 현실성 있지 않을까? 어차피 이드가 막아 내지 못하면 혼돈의 파편에 의해 망해 버릴 세상이 아니던가.

어쨌든, 이런 검후의 속을 알 리 없는 펠튼과 네트나는 전투 의지를 한껏 끌어 올렸다.

“끄아아아악!”

“내 주인의 적!”

“죽인다!”

공기가 떨릴 정도의 커다란 고함. 덩치가 커서일까. 마치 북소리 같은 외침을 토한 네트나가 여섯 개의 손을 쭉 펼쳤다.

터터턱!

그러자 앞서 사망한 여섯 명의 초인이 사용하던 무기들이 네트나의 손으로 빨려 들어갔다.

마치 어른이 아이의 장난감을 손에 쥔 것 같은 모습. 그러나 그런 모습도 잠깐이었다.

이미 네트나의 존재를 상정한 것일까. 그의 손에 들린 무기들이 곧 네트나의 체격에 맞게 거대해졌다.

그렇게 무기가 준비된 순간.

네트나가 이드를 노리고 뛰쳐나갔다.

콰르릉!

실로 엄청난 속도에 디딤판이 된 바닥이 푹 꺼지는 순간. 네트나의 거체가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아니, 사실은 그리 보일 정도로 빠르게 이동한 것.

콰우우우우-

그리고 이와 동시에, 이드에게 폭풍이 밀어닥쳤다. 그건 미친 듯한 광풍이었다. 네트나보다 먼저 도착한 바람이 이드의 몸을 계속해서 밀고 당기고, 누르고 쳐올리고자 했다.

바람에 저항하지 못한다면 회오리에 휩쓸린 토끼처럼 허공에서 뱅글뱅글 돌아야 했을 그런 힘.

그렇지만 이드는 토끼가 아니었다. 고작 바람 따위에 흔들리기엔 이드의 제공권은 너무 단단했다.

무엇보다 이드가 누구던가.

바람의 주인. 바람의 의지 그 자체인 바람의 정령왕의 계약자가 아니던가.

사라락. 사라락.

살랑거리는 머리카락 너머로 검과 창, 그리고 주먹을 휘둘러 오는 네트나가 보였다. 제정신이 아닌 듯하던 모습과 달리, 여섯 개의 무기를 동시에 다루는 모습은 제법 능숙했다.

여섯 개의 팔을 한 번에 움직이면 헷갈릴 만도 한데, 그런 모습도 없다. 그것들은 마치 톱니바퀴가 돌아가듯 철저하게 모든 공간을 제압하며 조여들어 왔다.

그 중간에 놓여 있는 이드를 가루로 만들어 버리고 말겠다는 의지가 읽히는 공격.

이드는 문득 생각했다.

절간에 세워진 명왕 상이 실제로 살아나 공격해 오면 이런 모습일까?

‘훗, 어림도 없지. 명왕의 공격이 겨우 이따위 것일 리가 없잖아. 대신 하나는 비슷해 보이네.’

살기로 한껏 일그러진 얼굴.

그 얼굴은 꼭 악을 향해 노여움에 떠는 분노존의 얼굴을 빼다 박았다. 금방이라도 불길을 뿜어낼 것처럼 파랗게 이글거리는 눈동자라니. 즈즈즈즛!

그리고 그 이글거리던 눈동자에서는 불길이 아닌 광선이 쏟아져 나와 이드의 머리를 꿰뚫었다.

콰쾅!

아니, 꿰뚫으려는 듯 보였다. 하지만 광선은 이드의 머리를 맞추지 못했다. 오히려 이드의 머리를 피해 이리저리 휘어지더니 엉뚱한 곳에 가서 폭발했다.

그리고 그 상황에 대해 네트나가 이해하기도 전.

“비슷한 것 얼굴뿐이네.”

이드는 여섯 개의 무기를 피해 네트나의 가슴 앞으로 뛰어든 상태.

퍽,

그런 이드의 모습에 네트나의 눈이 홉떠지고.

이드는 그러거나 말거나 눈앞에 넓게 드러난 네트나의 가슴을 가볍게 두드렸다. 그리고 사라지는 이드의 모습.

이드가 사라진 자리로 여섯 개의 무기가 내려 꽂혔지만, 그 자리는 이미 아무도 서 있지 않다.

대신 그렇게 사라진 이드가 수 미터 앞에 나타났다.

그에 다시 이드를 노리고 무기를 들던 네트나. 

“크읍! 우웨엑!”

하지만 곧 얼굴을 붉히고는 세 개의 입에서 동시에 피를 토해 냈다. 삼두육비의 괴물이 토해내는 피는 인간의 그것과 같이 붉었다. 

“끄아아악!”

네트나는 피를 토하며 고통에 몸을 떨었다. 토해 내는 핏속에는 시뻘건 내장 조각이 섞여 있었다.

이드가 가볍게 가슴을 두드린 일수.

그건 고도의 내가중수법이었다. 네트나의 뱃속은 이미 걸레짝이 된 상태였다.

거창한 등장과는 달리, 이대로라면 네트나는 단 한 번 무기를 휘둘러보고 죽고 말 것이다.

“이, 이…….”

그리고 이런 모습에 가장 놀라고 두려움에 떤 것은 다름 아닌 펠튼이었다.

하지만 언제까지 놀라고 있을 수는 없는 일. 그는 곧장 들고 있던 지팡이를 높이 들어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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