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드 2부 – 873화
1308화
“교차하는 운명. 그 사이를 관통하는 화살 깃. 바람의 사잇길을 내가 걸으려 하노니………….”
지팡이를 들고 주문을 외웠다.
급해지려는 마음을 겨우겨우 추스르고, 침착하고 정확하게 마나를 꿰어 나간다.
그러나 놀란 가슴이 뜻처럼 쉽게 진정되지 않는다. 잠깐이라도 집중력이 흐트러지려 하면 눈은 저 앞을 향한다. 그때마다 들어오는 모습.
피를 토하는 네트나.
그리고 그 앞에서 태연히 선 남자. 그 남자의 시선이 네트나를 지나 자신을 향할 때마다 손끝이 떨렸다.
‘매우 위험한 변수다. 검후 말고도 네트나를 상대할 자가 있을 줄이야.’
심지어 그 상대가 ‘어쩌면’이라고 염두에 두었던 은색 기사단의 단장도 아닌, 한낱 이름 모를 남자라니. 처음엔 바벨의 초인인가 싶었지만, 베이몬의 침묵을 떠올리고는 그 가능성을 제외했다.
그렇다면 바벨에 소속된 기사?
가능성은 있다.
하지만 처음 저들을 살폈을 때 저 남자는 바벨이 아닌 은색 기사단의 영역에 자리하고 있었다. 바벨보다는 은색 기사단과 더 가깝다는 뜻이었다.
자세한 정체도 알 수 없거늘, 가벼운 펀치 하나로 네트나를 죽음까지 몰고 갈 실력이었다.
물론 극에 이른 화경과 내가중수법은 절대 가벼운 펀치 따위로 치부할 수 없었지만, 마법사인 펠튼이 그런 무리까지 꿰뚫어 보긴 힘들었다.
‘누구냐・・・・・・ 넌.’
입안이 바짝 마를 정도의 의문과 의심.
그러나 아무리 궁금해도 지금 당장은 알 방법이 없다. 설사 알게 된다고 해도 달라질 게 있을까.
지금 중요한 것은, 이대로라면 네트나가 죽고 만다는 사실이다.
자신이 준비한 최고의 카드가 너무도 허무하게!
펠튼은 이런 사실을 절대 쉽게 받아들일 생각이 없었다. 네트나는 단순한 인공 초인 따위가 아니었다.
자신이 영혼의 관에서 쌓아 올린 모든 것의 최종 도달점이었으며, 펠튼 식 초인 마법의 정수였다. 그런 네트나를 이렇게 포기하라고?
아니, 그건 불가능하다.
네트나가 지금 저런 꼴로 스러진다면, 그건 곧 자신의 마법이 형편없다는 증거가 아닌가. 차라리 죽었으면 죽었지, 그런 평가를 받아들일 수는 없다.
‘나의 네트나는 영혼의 관이 가진 모든 인공 초인보다 가치 있고, 저기 남은 이백 명의 인공 초인들보다 강력하다! 나는 그걸 증명해 보일 것이다!’ 지금 주문이 그 증명을 위한 준비다.
이 수단은 어떤 의미로는 최후, 그 자체나 다름없다. 그만큼 부작용도 상당하지만, 그러면 어떤가. 그 결과 자신의 자존심을 지킬 수 있다면!
‘한다!’
각오를 다진 펠튼의 주문이 다시 단단해졌다.
그러나 과연 그는 알았을까.
그가 어떤 발버둥을 치더라도 이드에게 닿기는 요원하다는 사실을. 아니, 이드가 문제가 아니다.
펠튼의 생각과 달리, 현재의 능력으로는 검후에게도 닿지 못하는 것이 네트나의 진실이었다. 검후는 강력한 초인기 몇 개를 동시에 사용한다고 싸울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애초에 힘이 조금 강력해졌다고 해서 통할 상대가 아닌 것이다. 검후라는 존재는!
이드가 아니라 검후가 네트나를 상대했더라도 지금과 같은 상황으로 이어졌을 거라는 사실. 그걸 모른다는 게 행복일까?
아마 아닐 것이다.
어찌 되었든, 지금 펠튼이 집중하고 있는 적은 검후가 아니라 이드였다. 펠튼은 이드를 상대하기 위한 주문을 완성했다.
“……속박의 사슬을 끊고 고귀한 죽음에 이를지어다!”
으우우우-
지팡이 끝에서 음울한 노랫소리가 회색으로 피어올랐다. 그와 동시다.
피를 토하며 괴로워하던 네트나의 표정이 변했다. 괴로움은 어디 가고 갑자기 환희에 찬 얼굴이 되었다.
토하던 피가 멈춘 네트나의 머리에서는 지팡이에 매달린 것과 같은 회색의 빛이 희미하게 피어났다. 머리에서 시작된 빛은 곧 척추를 따라 허리를 지나더니, 이내 나무줄기처럼 두꺼운 발뒤꿈치까지 닿았다.
“하아아~ 간다! 간다! 간다!”
“빛이다. 빛이 보인다! 저기 위대한 창조주가 나를 부르고 있다!”
“그분께 가기 위한・・・・・・ 길을 열어라!”
그러는 사이 세 개의 입은 쉴새 없이 헛소리를 토해 냈다. 어찌 들으면 의미 깊지만, 또 어찌 들으면 마약에 취한 헛소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 같다.
이드는 이런 과정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저 안쪽에 선 마법사의 마법과 연동된 네트나라는 삼두육비의 변화. 척 봐도 어떤 한계를 풀어낸 것 같아 보인다.
당연히 그 과정을 중단시킬 수 있었다. 다 풀리기 전에 네트나를 죽여 버리는 일도 가능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인공 초인들의 능력을 충분히 보았으니, 이제는 네트나라는 괴물의 한계가 어느 정도인지 알아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네트나의 존재가 특별하고, 그 가진 힘이 평범한 인공 초인들을 월등히 넘어서는 만큼. 그 한계를 통해 영혼의 관이 가진 역량을 확인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런 이드의 속내를 알 리 없는 네트나는 여섯 개의 눈을 붉고 푸르게 빛내며 이드를 노려보았다.
이드의 간단한 손짓 한 번에 죽을 뻔했다는 공포는 벌써 잊은 것일까. 아니면 제약이 풀림으로써 뇌에서 분비되는 아드레날린이 폭발한 것일까.
“우리가 너에게 죽음을 내리겠다!”
세 개의 손으로 이드를 가리키는 네트나의 눈에 투지가 불탔다.
반대로 네트나의 지목을 받은 이드의 눈빛은 평온했다. 가벼운 일수에 죽었다 살아난 놈이 죽이네 살리네 해 봤자 우스울 뿐이다.
“그러든가. 그런데 고작 그 실력으로 가능하겠냐? 설마 진짜 그렇게 생각하는 거면 제정신부터 찾고 오지?”
“너, 오만한 적이여. 이제부터 두려워하라.”
“창조주께서 우리가 강해지는 것을 허락하셨다.”
콰우우우우~
세 개의 입이 소리쳤다. 직후 광풍이 일어나 네트나를 들어 올렸다. 오우거보다 상체 하나 큰 몸이 마치 얼음 위의 백조처럼 미끄러지며 자리를 이동했다.
빠르게 이동하는 네트나가 향한 목표는 가까웠다.
바로 은색 기사단과 싸우고 있는 인공 초인들. 혹시 녀석이 노리는 것이 기사들이 아닐까 하고 경계하는 중에, 네트나가 두꺼운 팔 두 개를 들어 올렸다.
촤르르륵-
그 팔에서부터 반투명한 쇠사슬이 길게 뻗어 나왔다. 쇠사슬은 마치 살아 있는 듯 꿈틀거리며 허공을 날았다.
“저 초인기는 내가 싸우던 자의 것인데.”
그 모습에 뒤로 물러나 있던 휀이 불쾌하다는 듯 반응했다. 쉬운 상대도 아니었지만, 자신이 죽인 자의 기술을 다시 보는 기분이 과히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길게 늘어난 쇠사슬이 화살과 같은 속도로 허공을 꿰뚫었다. 그 모습은 마치 먹이를 노리는 독사의 그것 같았다.
그런데 여기서 의아한 점이 있었다.
“우우~”
“어엇! 이게 무슨!”
쇠사슬이 꼬치 꿰듯 꿰뚫은 건 적인 기사들이 아닌, 네트나의 아군인 인공 초인이었던 것.
단숨에 이백에 가까운 인공 초인을 두 줄기 쇠사슬로 연결해 버린 상황. 하지만 제대로 된 이성이 없는 인공 초인들은 행동을 멈출 뿐, 놀라지 않았다.
오히려 놀라고 기겁한 건 은색 기사단의 기사들이었다. 어째서 아군을 공격한 걸까.
“저 개 같은……!”
잠깐의 놀람이 지나자, 기사들은 은은하게 분노했다. 아군에 대한 배신이라면 가까운 기간에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대신 분노했지만, 결코 흥분하진 않았다.
“적의 노림수를 알 수 없다. 기사들은 전원 뒤로 물러서라!”
“충!”
오히려 이어진 쉴라의 명령에 따라 빠르게 거리를 벌렸다. 썰물처럼 순식간에 빠져나가는 은색 기사들의 모습은 은빛 파도를 닮았다.
이드는 이런 모습을 옆으로 하고, 네트나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강해지는 것을 허락하셨다’고 외친 후 하는 짓이 아군에 대한 공격이라니?
“설마 그들을 철퇴처럼 휘두르기라도 하겠다는 말은 아니겠지?”
“우리는 강해질 것이다.”
“그러니까, 어떻게?”
“너와 나, 우리는 하나가 된다!”
주문과 같은 외침. 그와 함께 쇠사슬이 맥동했다.
쮸르르륵-
“끄, 끄아악!”
마치 피를 빠는 흡혈귀처럼 쇠사슬에 꿰인 인공 초인들을 빨아먹기 시작했다. 쇠사슬 가장 끝에 매달린 인공 초인을 포함한 열 명이 순식간에 체액을 빨리고 쪼그라들어 미라가 되었다.
꿀꺽!
그와 동시에 네트나의 목젖이 움직이며 무언가를 집어삼켰다. 삼킨 것이 무언인지 굳이 말할 필요도 없으리라.
“으윽!”
그 모습을 본 이들이 심각한 혐오감에 욕지기를 토했다. 정확히 어떤 원리인지는 알 수 없지만, 지금 네트나는 열 명의 인간을 잡아먹은 것이다. 츄르르륵-
꿀꺽꿀꺽. 꿀꺽꿀꺽.
이백에 가깝던 인공 초인이 모두 바짝 쪼그라든 미라가 되는 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야말로 물을 들이켜는 것과 같은 속도.
모든 인공 초인이 미라로 변하자 그들을 꿰고 있던 쇠사슬이 사라졌다. 그에 응당 미라들은 바닥으로 쓰러졌다.
퍼석.
쓰러진 미라들은 모래 인형처럼 부서졌다. 이지를 빼앗기고 싸움에 내몰린 최후가 아군에게 잡아먹히는 것이라니. 그야말로 서글픈 인생이다.
하지만 이미 그들에게 관심을 주는 사람은 없다. 모두의 관심은 네트나로 향했다. 과연 이백의 인공 초인을 잡아먹은 네트나는 얼마나 강해졌을까.
“드디어 나는 완벽해졌노라!”
“으아아아압!!”
가장 먼저 드러난 변화는, 따로 놀던 세 개의 입이 하나처럼 움직인다는 것이었다. 세 개의 입이 한목소리를 냈다.
뒤이어진 고함 소리.
그건 내부에서 거대하게 일어나는 마나를 압축하는 소리였다. 마나에 대한 지배권을 확립하는 인증 과정이었다.
콰콰콰콰!
그 결과, 네트나를 중심으로 강력한 파동이 뿜어져 나왔다. 그건 네트나가 가진 광풍의 초인기에 의한 바람이 아니었다. 극도로 압축된 마나가 뿜어내는 파동.
힘 그 자체라고 해도 좋았다.
“으음. 강해질 줄은 알았지만, 설마 이렇게까지…”
“굉장해.”
“저 미친놈들이 대체 뭘 만들어 낸 거지?”
그 강렬한 파동에 기사들과 초인들은 놀라움을 숨기지 않았다.
“단장, 이런 마나라면・・・ 그레이트소드 이상인 거 아닙니까?”
“・・・・・・그레이트 소드는 단순히 마나의 양으로 결정되는게 아냐.”
특히 그 중 스폴의 안색은 좋지 못했다.
네트나에서 뿜어진 파동의 순도가 매우 높았기 때문이다. 그에 반해 답하는 쉴라는 담담하기만 했다.
올바르게 쌓은 힘도 아니고, 아군을 잡아먹고 얻은 능력이다. 그런 것에 감탄해 줄 마음은 손톱만큼도 없다.
무엇보다 아무리 강해진들 무슨 소용인가. 이미 죽음이 정해져 있는데.
“저렇게 강해져 봤자, 이드 님께는 통하지 않아.”
“뭐・・・・・・ 그건 그렇죠”
스폴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