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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드 2부 – 900화


1335화

플레타의 대검이 도끼처럼 맹렬하게 부관주를 갈랐다.

베었다기보다는 뭉갰다는 표현이 더 옳을 것 같은 무거운 기세는 그러고도 힘이 남아 바닥을 두드렸다. 와드득!!

순식간에 생겨난 깊은 구덩이.

하지만 그 속으로 쏟아지는 피와 내장은 없었다.

둘로 갈라진 부관주의 모습은 환상인 듯 사라지고, 그녀는 어느새 수십 미터 떨어진 곳에 서 있다.

상황이 뜻대로 흘러가지 않아서일까.

그 표정이 제법 씁쓸하다.

그러거나 말거나.

“우랴압!”

땅속으로 틀어박힌 대검이 부관주가 있는 곳까지 수십 미터의 땅을 단번에 뒤집어 엎었고, 부관주는 그 속에서 유유히 허공으로 떠오르며 보이지 않는 방벽을 세워 플레타의 공격을 막아냈다.

그야말로 진지한 대화는 지금부터 시작이라는 모습.

물론 몸의 대화지만.

이드는 그 광경을 보며 라미아의 모습을 마음속에 그렸다.

그러자 그녀는 곧 스스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거긴 벌써 시작했네요?’

‘플레타 대장이 화끈한 사람이잖아. 등을 살짝 밀어 줬더니, 확 불타더라고. 부관주야 어차피 옳은 소리를 해 줄 것 같지도 않고. 거긴 어때?’ 

‘이쪽 부관주는 작동 정지 상태네요. 그쪽이 본체라는 사실을 들켜서 그런 것 같아요.’

말과 동시에 라미아의 시야가 공유된다.

플레타 부대원들이 부관주 주변을 포위하며 거리를 좁혀 가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들 가운데 선 부관주는 석상처럼 눈도 깜빡이지 않고 굳어 있다.

붉은 입술과 촉촉한 눈을 보면 분명 살아 있는 사람인데, 살아 있는 것 특유의 생기라고는 희한할 정도로 일절 느껴지지 않는 모습. 그런데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퍽!

여자 얼굴에 주먹을 휘두르는 건 좀 너무하지 않나 싶다.

그것도 그냥 주먹이 아닌 초인기를 사용한 모양인지 소리부터 다르다. 그 결과, 광대가 와장창 주저앉으며 피가 흘렀다.

비릿한 혈향이 퍼지지만 여전히 분신은 움직이지 않는다.

주먹을 휘두른 남자는 거기에 멈추지 않고 한 번 더 주먹을 휘둘러 기어이 분신의 턱을 부서트렸다.

혹시 용암을 덮어쓰고 죽은 부대원 중 친구라도 있었던 걸까.

주먹을 휘두른 남자가 라미아를 향해 살짝 고개를 숙인다.

“말씀하신 대로입니다. 사람을 때리는 감촉은 있지만, 이상하게도 생명체라는 느낌은 전혀 들지 않습니다. 어떤 구조인지는 몰라도, 완전히 정지한 상태가 확실합니다.”

아무렴, 얼굴이 그렇게 부서지고도 움직이지 않으면 정지한 게 맞지.

“어떻게 처리하면 좋을지 말씀해 주시면 그렇게 하겠습니다. 명예 후작 부인.”

오탄이 정중한 태도로 물어 온다.

앞서 남자도 그렇지만, 라미아의 눈을 통해 보이는 플레타 부대원들의 태도가 참 조심스럽다.

그렇다고 무조건 조심한다는 느낌이 아니라, 감사와 존경이 깃들어 있다고 해야 할까.

그런데 그게 좀・・・・・・ 과하다.

‘너, 저 사람들한테 뭐 했니?’

‘하긴 뭘 해요? 자기들 치료해 줬으니까 고마워서 저러는 거지.’

이드가 다시 한번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자 라미아가 척 하고 허리에 손을 얹으며 노려본다.

‘지금 절 의심하시는 거예요?’

‘・・・・・・ 역시 그럴 리가 없지. 우리 라미아는 가만있어도 존경받을 사람이지. 암만!’

‘흥! 이번은 봐주는데, 조심해요!’

‘옙!’

가정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 이드는 허리를 구십 도로 꺾었다.

‘그래도 플레타 대장이 보면 섭섭해하겠는데? 지금 하는 것만 봐서는 네가 부대의 대장이잖아.’

‘그땐 한마디 해 줘야죠.’

‘뭐라고?’

‘자업자득!’

짧은 네 글자에 이드는 곧장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평소에 잘했으면 이런 일이 생기지는 않았을 테니까.

뭐, 이런 사소한 문제야 일행이 다시 모일 때의 일이고,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부관주의 목적이 뭘까? 일행을 분리시키고, 헛소리를 해 가며 시간을 끄는 이유. 지금 싸우는 모습도 그렇고.’

플레타와 부관주의 싸움.

그들의 주변은 이미 초토화된 상태였다.

수백 미터의 땅이 온통 뒤집어지고 갈라져 있다.

구덩이도 많고, 탄 냄새와 함께 연기가 피어오르기도 한다.

그야말로 격렬한 싸움의 흔적.

특히 플레타는 그야말로 뒤도 돌아보지 않고 전력을 쏟아붓고 있다는 느낌이 역력하다. 부관주라는 적이 만만치 않은 것도 이유지만, 그보다 뒤에 있는 이드를 믿고 있는 듯했다.

뒤를 든든히 받쳐 주니, 그야말로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날뛰는 것.

하지만 플레타가 그렇게 날뛰는 것에 비해 결과는 그리 신통치 못했다.

그의 상대인 부관주가 싸움에 임하는 태도가 문제였다.

시종일관 플레타의 공격을 피하고 도망가는 행태를 보인다. 아무리 플레타가 애를 써도 부관주가 미꾸라지처럼 요리조리 잘도 빠져나가니, 제대로 된 싸움이 이뤄지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고 플레타가 너무 강적이어서 피하기만 하는 것도 아니었다.

순간순간의 기지로 두 사람의 제대로 된 충돌이 발생하는 순간.

쿠르릉!

삐이이이!!

부관주는 플레타의 공격을 소리로 된 기묘한 방벽으로 막아 내는 한편, 정확한 카운터로 플레타를 쉽게 떨쳐 내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그 짧은 순간의 공방이면 부관주의 실력을 알아보기엔 충분했다. 결코 플레타를 피해 도망만 다닐 이유가 없었다.

오히려 플레타를 몰아붙이고도 남을 저력이 충분히 엿보였다.

그런데도 적극적으로 싸움에 나서지 않고 피하기만 한다. 시간을 끌기 위해서.

‘결국 둘 중 하나죠. 도망치려는 것이거나, 아니면 반격할 준비를 하려고.’

정확히 자신과 같은 생각을 하는 라미아.

‘넌 어느 쪽일 것 같아?’

‘무조건 후자요. 이 정도 공간 마법을 깔아 놓은 마탑이에요. 도망치려고 했다면 벌써 도망쳤을 거예요.’

공간 이동을 위한 충분한 인프라. 그러니까 외부로 향한 길이, 그것도 8차선 고속도로가 이미 깔려 있다는 말이다.

도망이 목적이라면 그 안으로 발을 들이밀기만 하면 된다는 것.

게다가 이곳은 미완의 마탑이다.

굳이 마법이 아니라도, 인공 초인 중 공간 이동에 관련된 초인기를 가진 이가 없을 리 없다. 그들이라면 굳이 시간을 들여 준비할 필요도 없지 않겠나.

그러니 무언가 꿍꿍이가 있다고 봐야 옳았다.

그것도 시간만 충분히 끌면, 지금 이드 일행의 습격을 의미 없게 만들 정도로 어마어마한 꿍꿍이가.

‘그럼 그냥 두면 안 되겠네?’

‘그 반대 아니에요? 어쩌면 저 꿍꿍이의 정체가 혼돈의 파편일 수도 있잖아요.’

이번 습격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이유 중 하나.

하지만 이드를 라미아의 말을 부정했다.

‘그럴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니지만, 지금까지 확인된 상황으로 보면 미완의 마탑은 혼돈의 파편을 몰라. 모르는 존재를 어떻게 기다릴 수 있겠어? 무엇보다 혼돈의 파편이 미완의 마탑이 부른다고 올 놈들은 아니잖아.’

‘하긴…… 그럼 이드는 부관주가 기다리는 꿍꿍이가 순수하게 미완의 마탑이 품은 역량이라고 보는 거네요?’

‘어, 거의 구할 확률로 확신해. 그리고 어쩌면 그 수단으로 바이트 타블렛이 사용될 수도 있겠지. 그렇게 되면…………..’

‘골치 아파질지도? 역시 이드가 적극적으로 나서는 편이 좋겠네요.’

‘네가 생각해도 그렇지?’

바이트 타블렛.

아직 그 모든 정체가 밝혀지지 않은 신비의 덩어리.

그나마 그 일부를 손에 넣어 대략적인 실체에 대한 파악은 끝냈지만, 모든 구성 요소를 더했을 때 어떤 효과를 만들어 낼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아직 확답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무엇보다 바이트 타블렛이 세상이 낳은 초인과 초인기에 직접 관계할 수 있다 보니, 그 취급에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게 아니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일단 지금 손을 잡은 바벨의 플레타 부대원들만 해도 모조리 초인이 아닌가 말이다.

생각하고 싶지 않지만, 정말 최악의 경우 저기서 싸우고 있는 플레타를 비롯해서 모든 초인이 급사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아니면 폭탄처럼 터져 버릴 가능성도 있고.

물론 극단적인 상상이긴 하다. 그러나 완벽히 무시할 수 없는 가능성이기도 하다.

이곳 영혼의 관에서 만들어 낸 다종다양한 인공 초인들이 그 ‘가능성’에 대한 증거이지 않은가.

‘거긴 그럼 이드가 나서는 걸로 하고. 전 어떻게 해요?’

‘・・・・・・ 이 공간 소환진, 파괴할 수 있겠어?’

‘할 수는 있지만, 시간이 좀 걸려요. 이드에게 파괴된 것이 문제였는지, 구성이 상당히 변했거든요. 대략 3시간 정도?’

‘・・・・・・ 그 짧은 시간에 잘도 거기까지 만져 놨네. 하는 짓은 마음에 안 들어도 실력 하나는 인정해야겠어.’

무려 라미아가 3시간을 이야기할 정도로 어려운 마법이라니.

그것도 그 짧은 시간에 변형시킨 것만으로 말이다. 이드는 그 정도로 뛰어난 마법사는 지금까지 본 적이 없었다.

‘그렇게까지 대단하진 않아요. 좀 거친 방법을 사용하면 더 빨리 끝낼 수 있지만, 그러면 떨어져 있는 사람들이 위험해지거든요.’

‘그건 피해야지. 그럼 네가 이쪽으로 와 줘. 흩어져 있는 사람들을 찾아서. 이쪽은 문제없지?’

‘완전 쉽죠. 대신 그것도 시간이 좀 걸려요. 일리나의 위치는 특정할 수 있지만, 라울 남작의 위치는 확인이 어렵거든요. 아무래도 직접 찾을 수밖에 없겠어요.’

‘그래도 3시간보다는 짧지 않겠어? 여기가 넓어 봐야 얼마나 넓다고.’

‘어어? 그렇게 쉽게 생각하면 곤란해요. 내가 괜히 3시간을 말한 줄 알아요? 이 공간은 실시간으로 확장되고 있다고요. 시간만 주어진다면 그레센 대륙만큼 넓어질 수 있을걸요. 당장 라울도 백 킬로미터 이상은 떨어졌을 텐데요.’

백 킬로미터?

시야에 들어오지 않기에 멀 거라고는 생각했지만, 그 정도라고?

‘정말 그렇게나 멀리? 무슨 기준에서 나온 말인데?”

‘당연히 이드와 제가 그만큼 떨어져 있으니까요. 정확히는 백육십구 킬로미터죠. 저와 일리나의 거리는 이백 킬로미터가 조금 넘고요. 그리고 사소한 문제를 더하면 실시간으로 점점 거리가 벌어지고 있는 상태에요.’

‘휘익~ 어지간한 미궁보다 지독한 마법이네.’

가만히 서 있는데도 실시간으로 멀어진다고?

너비가 무한하다는 말과 무엇이 다른가.

파괴되지만 않는다면, 여기서 살아 나갈 사람이 있을 수 있을까?

‘라울과 플레타 부대가 운이 좋네.’

‘뭐가요?’

‘널 데려왔으니까. 네가 없었으면 꼼짝없이 이 안에 갇혀서 죽었을 거 아냐. 안 되겠다. 거기 부대원들에게 사실을 밝히고 좀 더 존경심을 가지라고 해라.’

‘꺄르르륵. 됐거든요!’

짤랑짤랑한 웃음소리.

말과 달리, 기분은 상당히 좋은 모양이다.

이후의 일은 그녀에게 맡겨 두면 잘 처리해 줄 것이다.

‘그럼 뒷일을 부탁할게. 최대한 빨리 합류해 주고. 가장 먼저 일리나부터 찾아가 줘.’

‘그거야 당연하구요. 이따가 봐요.’

팔랑팔랑 손을 흔드는 라미아의 심상이 사라졌다.

이드는 손에 든 일라이져를 한 바퀴 빙글 휘돌리고는 플레타를 향해 크게 소리쳤다.

“플레타 대장. 선수 교체 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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