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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드 2부 – 901화


1336화

부관주와의 거리 백 미터.

아무리 애를 써도 좀처럼 좁혀지지 않는 간격을 좁히기 위해 무진 애를 쓰고 있던 플레타는 예고 없이 귀를 때리는 이드의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선수 교체?

그 말은 자신보고 뒤로 물러나라는 말이 아닌가.

“잠깐, 아직……!”

그럴 수는 없다.

아직 제대로 붙어 보지도 못했다. 그런데 이대로 물러나라고?

자존심도 자존심이지만, 무엇보다 억울하고 분해서라도 이대로 얌전히 손 놓고 물러날 수는 없다.

그런 자신의 생각을 적극 전달 할 생각이었으나.

쐐애애애액!

대기를 갈기갈기 찢어발기는 굉음에 이런 플레타의 목소리는 완전히 묻혀 버렸다. 하지만 플레타는 이에 대해 짜증을 부리지도 못했다. 굉음의 원인이 된 검은 그림자가 그의 곁을 아슬아슬하게 스치고 지났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짧은 순간.

플레타는 자신을 빨아들이는 흡입력에 마치 혼백이 뽑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으며 전신에서 올라오는 소름에 진저리를 쳐야 했다. 그리고 겨우겨우 그 소름 끼치는 감각에서 벗어나 정신을 차렸을 때.

콰르르릉!!

화끈한 열기를 등에 업은 폭음과 충격파가 연속해서 그를 덮쳤다.

플레타는 눈을 가늘게 뜨고서 폭발의 원인을 살폈다. 그러자 높이 치솟는 불길이 보였다.

직전까지 부관주가 서 있던 자리.

하지만 지금은 불길에 가려 그녀가 보이지 않는다.

혹시 저 불길 속에 부관주가?

“거짓말이지? 설마・・・・・・ 그 한 방에 당했다고?”

아무것도 확인되지 않은 상태였지만, 플레타는 일단 부정하고 싶었다.

정말 부관주를 처리한 것이라면.

이러면 백 미터 간격을 줄이기 위해 이리 뛰고 저리 뛴 자신의 꼴이 너무 우습지 않은가!

그때였다.

옆에서 귀신처럼 갑자기 솟아난 인기척과 함께 이드가 이런 플레타의 번뇌에 답했다.

“맞아요. 당연히 그럴 리가 없죠. 이렇게 쉽게 처리할 수 있는 인물이었으면 플레타 대장이 그렇게 애를 먹을 이유가 없지 않겠어요? 부관주는 말짱합니다.”

부관주의 무사를 확신하는 이드.

이에 플레타는 어떤 얼굴을 해야 할지 고민했다. 이걸 좋아해도 되는 거야?

“큼,”

아무리 생각이 짧아도 그건 아닌 것 같다. 플레타는 헛기침으로 말을 대신했다.

이드는 그러거나 말거나 자신의 말을 이었다.

“그래도 일단 지금부터 제가 부관주를 상대할 생각입니다. 플레타 대장도 잠시 숨을 돌려야지 않겠습니까? 잠시 뒤로 물러나 있으면 다시 바꿔 드리죠. 그리고 저기서 기다리고 있으면 곧 라미아가 나눠진 일행들을 데리고 올 겁니다.”

“…”

벌써 일행들을 찾은 겁니까? 인원이 적지 않은데, 이동에는 문제없겠습니까?

부하들이 언급된 순간 상대를 빼앗긴 건 뒷전이 된 플레타가 그렇게 물었다. 아니, 물으려 했다.

문제는 플레타의 질문이 시작도 되기 전에 검은 선이 된 이드가 불길 속으로 뛰어들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직후.

퍼엉!

화산처럼 검붉게 치솟아 오르던 화염이 돌연 풍선처럼 터지면서 그 속에서 두 개의 크고 작은 그림자가 튀어나왔다. 불길 속에 있던 이들이라면 이드와 부관주.

그런데 큰 그림자의 크기가 너무 크다.

작은 것은 분명 검은 머리에 은빛 검을 든 이드. 그렇다면 커다란 그림자가 부관주라는 말인데. “저 모습이・・・・・・ 부관주, 그년이라고? 저게?”

대충 봐도 키만 이드의 다섯 배다.

그 거대한 덩치에 플레타의 목소리가 떨리다 못해 뒤집혔다.

거기에 목소리만큼 복잡한 심경에 그의 볼이 파르르 떨렸다. 급격히 늘어난 이마의 주름 사이사이에는 허탈과 분노, 짜증과 원망이 알알이 박혀 들었다.

“……그럼 지금까지는 뭐였던 건데! 쉬펄!”

제대로 자존심이 상한 플레타의 이런 울분은 실로 당연했다.

지금 불길 속에서 나타난 부관주의 모습을 보라.

그녀의 모습은 더 이상 인간의 것이 아니다. 인간이 아닐 뿐 아니라, 살아 있는 생물이라는 느낌을 받기가 어려웠다.

귀부인 같던 아름다운 얼굴이 사라진 자리에는 외골격이 변한 것 같은 하얀 투구가 있었다. 이것에는 세 개의 뿔이 솟아 있었는데. 이마의 뿔은 유니콘처럼 앞으로 뻗어 있었고, 관자놀이에서 솟은 두 개의 뿔은 둥글게 뻗어 올라가며 커다란 원을 그리고 있었다. 그 외 사람의 눈, 코, 입은 흔적도 찾기 힘들었다.

비단 머리만 그런 것도 아니다.

몸체도 머리만큼이나 이상했다.

머리처럼 하얀 외골격으로 덮인 몸체는 풀 플레이트 아머를 연상시켰다. 그런데 기가 막힌 건 팔다리가 없었다. 팔이 있던 자리에는 날개의 형상을 한 띠 같은 것이 길게 뻗어 하늘거리고 있다. 그 길이는 대충 봐도 오 미터 이상. 비슷한 형태를 한 것이 등에도 솟아나 있어 진짜 날개 같다. 하지만 결코 날개는 아니다.

그래도 팔은 차라리 괜찮다.

팔을 대신해 뭐가 달려 있기라도 하니까.

팔과 달리 다리가 달려 있어야 할 허리 아래쪽은 아예 아무것도 없다. 그저 연필을 갈아 놓은 것처럼 그 끝이 뾰족하게 갈려 다듬어져 있을 뿐이었다.

어떻게 보면 팽이의 드라이버처럼 보이기도 했지만, 아무리 봐도 다리를 대신할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아무튼, 이것이 현재 부관주였다.

인간의 형태라고는 티끌도 남지 않은 모습.

플레타는 어쩐지 알 것 같았다.

지금 모습이야말로 부관주가 전력을 다할 때라는 사실을 말이다.

굳이 물어서 확인할 필요도 없었다. 그냥 당연히 그럴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그리고 이런 사실은 지독한 자괴감으로 돌아왔다. 왜 그렇지 않겠나.

조금 전까지 자신이 전력을 쏟아붓고 있던 적이.

자신을 피해 도망만 다니던 적이.

사실은 전력을 다한 것이 아니었다니. 자신을 봐주고 있었다니.

한 사람의 전사로서 이보다 더 자존심 상하는 경우가 또 어디 있겠나.

조금 전까지 플레타는 백 미터. 그 좁혀지지 않는 간격이 문제라고만 생각했다. 그 간격만 좁힌다면 금방 승부가 날 거라 믿었다. 도통 좁혀지지 않는 간격은 온전히 초인과 마법사라는 서로 간의 상성 때문이라고 여겼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이 착각이었다.

이제야 전력을 다하겠다는 듯 모습을 바꾼 부관주가 좋은 증거다.

초인과 마법사의 상성? 참으로 웃기는 개소리였다.

지금 부관주가 하고 있는 모습을 보라. 저 모습 어디서 마법사를 찾을 수 있단 말인가.

마법사는 고사하고 근접전과 원거리전 어디에 적합한 것인지도 알기 힘든 형태를 하고 있다.

무엇 하나 예측할 수 없는 기묘한 모습.

플레타는 그 모습마저 자신을 조롱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기분이 들었다. 과연 부관주는 간격을 좁히려는 자신을 보고 무슨 생각을 했을까. 정말 자신을 보고 있기는 했던 것일까?

분노는 여전하다. 하지만 문득 떠오른 그런 생각에 전투 의지는 힘없이 꺾여 버렸다. 분하고 억울하지만, 자신이 싸울 상대가 아니라는 결론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한심해 죽겠군. 바벨의 악동이라는 이 플레타가 얌전히 싸움 구경이나 해야 하는 신세라니. 이럴 땐 빌어먹을 부대장 놈이 없는게 천만다행인가. 명예 후작 부인이 그놈만 놓고 와 줬으면 좋겠군.” 

그놈이 이 꼴을 봤으면 무슨 소리를 할지 상상하기도 싫은데.

쩝쩝 다신 입맛이 쓰다.

쿠콰콰쾅!

새하얗게 백열하는 폭염!

앞선 추격전에 가깝던 자신의 전투와는 그 모양이 완전히 다른 움직임에 플레타는 들고 있던 대검을 푹 하고 땅에 박아 버렸다. 인정하기 싫지만 이렇게 하나부터 열까지 달라져 버리면 인정하게 될 수밖에 없다.

이 전투에 자신이 낄 곳은 없다는 것을.

“그래, 어디 얼마나 대단한지 한번 보자!”

그렇다면 얼마나 대단한지 이 두 눈으로 똑똑히 확인해 주겠다.

마치 어딘가의 심사위원처럼 거만하게 팔짱을 낀 플레타는 그 자리에 그대로 주저앉았다. 본격적인 싸움 구경의 시작이었다.


그렇게 뒤에서는 플레타가 완전히 관객으로 돌아서는 사이.

이드와 부관주의 전투는 거세지고 있었다.

다만 이드는 아직 조심스러운 태도로, 완전히 본격적이지는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부관주에 대한 견적이 다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장 부관주를 중심으로 웅장하게 꿈틀거리는 마나를 통해 그 전력이 대략 예상 가능하긴 했다. 하지만 그건 말 그대로 예상치일 뿐이었다. 저 커다란 몸 안에 얼만큼의 마나와 초인력이 웅크리고 있는지까지는 알 수 없었다. 더욱이 지금은 저런 모습이지만 부관주는 어디까지나

마법사다.

작은 지렛대 하나로 산을 옮길 수도 있는 것이 마법사라는 사실을 망각하고 난감한 상황을 겪은 사례가 어디 한둘인가.

이드는 그런 고생을 자처하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었다.

‘그나저나 저 변신은 초인기를 이용한 거겠지?’

마법으로도 변신은 가능하지만, 지금과 같은 형태를 본 적은 없다.

굳이 마법을 가져다 붙이자면 계약을 통해 악마의 신체를 내려받은 경우가 있겠다. 그러나 현재 부관주에게서는 흑마법 특유의 마기도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그러니 초인기를 사용한 결과로 보아야 옳을 것이다.

이런 결과에 이드는 내심 과연 영혼의 관의 부관주로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모습을 보이고 지금까지 그녀가 보여 준 초인기만 무려 세 가지에 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소리를 조종하고, 분신을 만들고, 지금의 거대한 변신까지.

하나같이 심상치 않은 능력들이었다. 전투 능력이라고는 일절 보여 주지 못한 분신조차도 쓰기에 따라 충분히 치명적일 수 있는 능력이었다. 거기에 이런 부관주의 초인기가 이것뿐이라는 증거도 없었다. 지금까지 세 가지를 보여 주었으니, 여기서 다시 세 가지가 더 나온다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상황인 것이다.

이드가 살피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었다.

과연 부관주는 또 어떤 수단을 감추고 있을까.

물론 당장 힘으로 밀어 버릴 수도 있다. 하지만 무언가 회심의 한 수는 감추고 있지 않을까. 이드는 오히려 그러한 수단으로 인해 일을 복잡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일단・・・・・・ 뭔가를 감추고 있다면 두드려 보면 나오겠지. 두드려 보면 말이야.’

그런 의미에서 이드는 상대를 가장 아프게 할 수 있는 검법을 꺼내 들었다.

파아앗!

은빛 검신에서 붉은 강기가 줄기줄기 뻗어 나왔다.

수라참마인.

찰나간 하늘을 가득 채운 수백, 수천의 붉은 검강이 부관주를 향해 날아들었다. 워낙 덩치가 커서 빗나가려야 빗나갈 수가 없다. 반대로 막아야 할 범위가 넓은 부관주다.

무엇보다 앞서의 권탄)과는 그 날카로움이나 성격이 다르다.

과연 여기에 대해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그렇게 생각한 순간, 부관주의 머리에서 길게 뻗어 올라간 뿔이 진동했다.

아아~!!

그 소리는 마치 호숫가에 선 시골 처녀의 노랫소리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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