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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드 2부 – 926화


1361화

태양이 빛나는 하늘을 비집고 나타난 밤하늘.

그림으로 그린 것 같은 신비한 현상에 세상이 멈춘 듯했다. 그리고, 그 다음 순간이었다.

콰드드득!

쐐애애액!

푸른 하늘과 하얀 구름이 밤하늘 속으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 모습은 마치 세상을 칠하고 있는 물감이 하수구로 빨려 들어가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초현실적이었다.

하지만 지금 일어나는 일은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었다.

‘세상’을 빨아들이는 흡입력은 무시무시했다. 당장 수십 개의 강력한 회오리가 생겨나 사방을 뒤흔들었다.

산과 대지가 땅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거목과 바닷물이 하늘로 치솟았다. 신화에서 말하는 멸망의 때가 이런 모습일까. 사실 실제로 지금이 바로 멸망의 순간이기도 했다.

마법으로 태어난 공간이 원원대멸력에 의해 붕괴되고 있었다.

말 그대로 공간의 소멸이자 세계의 멸망이다.

“뭘 노리고 있는 거지?”

그런 멸망의 한가운데서 존 워스는 오연히 섰다.

발아래선 대지가 무너지고 있지만, 그에게는 닿지 못했고, 광포한 회오리도 존 워스를 피해 갔다.

이런 모습은 반대편에 선 이드 역시 마찬가지. 세상의 멸망을 가져온 이드는 폭풍 속에서도 여유로웠다.

“내게 뭔가 의도가 있다고 생각하나 보지?”

“그렇지 않고서야 의미 없는 짓이니까. 오히려 닫혀 있는 이 공간이 네게 더 유리할 텐데.”

“글쎄. 딱히 그렇게 생각하진 않아. 무엇보다, 겨우 그 정도로 당신의 발을 묶어 둘 수도 없는 일이고.”

“흐음. 그런가.”

“어차피 당신・・・・・・ 도망갈 생각이 없잖아.”

“…….”

“도망갈 생각이 없다면 이 안이나, 밖이나 다를 것이 없지.”

“어이가 없군.”

존 워스가 쓰게 웃었다. 안이나 밖이나 다를 바 없다면서 굳이 이 공간을 파괴한 이유는 무엇이냔 말이다.

그건 다시 말해 어떠한 목적이 있음을 분명히 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존 워스가 그 이유를 알기는 불가능했다.

이드는 순순히 그의 궁금증을 풀어 줄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존 워스에게 있어서도 이유 같은 건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다.

그 어떤 방법을 준비해도 자신의 전투는 막을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명예 후작의 목적이 내가 아닐 가능성도 있지만, 그야말로 상관없는 일이지.’

마법 공간을 붕괴시킨 목적.

그것이 영혼의 관과 자신이 활로를 열어 준 부관주를 향한 것일 가능성.

그렇다 해도 상관없었다.

자신은 탑주와의 계약에 따라 충분한 시간을 벌어 주었다.

포로가 된 부관주를 풀어 주었고, 그녀와 소속된 마법사들이 탈출할 수 있는 시간도 챙겨 주었다. 그럼에도 도망치지 않고 다시 잡히거나 죽는다면 그건 순전히 그들의 멍청함을 탓해야 할 일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아무런 우려가 없는 것은 아니다.

명예 후작의 목적이 부관주를 넘어 탑주와 바이트 타블렛을 향하는 경우는 존 워스로서도 바라지 않았다.

아직 그가 원하는 바이트 타블렛은 완성되지 않은 상태였으니까.

그렇다고 그것을 위해 자리를 뜰 생각도 없었다.

이미 바이트 타블렛의 완성은 최종 단계에 접어들어 있었으며, 접근을 철저하게 막아 두었다.

아무리 명예 후작이라도 거기에 그리 쉽게 접근하거나, 이미 시작된 작업을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다. 

‘무엇보다 저 명예 후작이 날 쉽게 놓아줄 리도 없지.’

“생각은 끝났나?”

이드는 말없이 자신을 바라보는 존 워스를 향해 물었다.

그러자 존 워스는 여전히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하던 거 계속 이어 가 보자고.”

이드는 말과 동시에 허공을 박찼다.

스팟!

분뢰보에 의해 대기가 잘려 나가며 이드의 모습이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다시 나타난 곳은 존 워스의 지척.

모습을 드러낸 순간, 이미 일라이져는 움직이고 있었다.

멸혼향, 잠영화, 화령인의 삼초식에 이어 무형극의 검강이 폭발했다.

쩌저정!

기습의 묘를 완벽히 살린 공격.

존 워스의 대응도 충분히 빨랐지만, 이드의 공격을 완전히 해소할 정도는 아니었다.

더구나 이드의 공격은 그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었다.

벌어지는 간격을 오히려 좁히며 달려든 이드의 수라섬광단이 수평을 갈랐고,

쩌엉!

존 워스는 이를 어렵게 걷어 냈다.

그가 걷어 낸 검강은 마침 그들이 있는 곳까지 떠오른 산의 일부를 두 동강 내 버렸다.

주르르륵.

그와 함께 존 워스의 어깨에서 피가 흘렀다.

수라섬광단을 걷어 내며 드러난 빈틈으로 잠영화가 날아든 결과였다.

이에 이드가 아쉬움을 드러냈다.

“아깝네. 인간이었으면 어깨가 날아갔을 만한 위력인데.”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어깨만 날아가면 오히려 다행이다.

정타가 터졌다면 상체가 통째로 사라졌을 테니까.

그러나 혼돈의 파편 상대로는 가죽에 상처만 내는 정도의 위력으로 끝이 났다.

이는 존 워스가 비록 인간의 모습으로 무공을 사용하고는 있지만, 결국은 인간을 벗어난 존재라는 증거와도 같았다.

“그럼 그대의 어깨를 날리는 일도 어렵지 않겠군.”

고통이라고는 흔적도 찾아볼 수 없는 얼굴로 답한 존 워스가 발을 굴렀다.

그 반발력에 마침 그 아래 있던 거대한 바윗덩이가 산산이 조각났다.

“글쎄. 그건 어떨지 모르겠는걸.”

이드는 빛살 같은 속도로 간격을 좁히는 존 워스를 만류일품의 운신비결로 회피함과 동시에, 그의 사각으로 파고들었다.

물론 존 워스 같은 존재에게 완벽한 사각은 없다.

최소 수백 미터에 뻗어 있는 기감은 또 하나의 눈과 같으니까.

그러나 그런 기감이라고 만능은 아닌 법.

이드가 뛰어든 사각은 아주 짧은 순간 사용할 수 있는 감각적인 위치였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인지의 한계라고 할까.

그것이 혼돈의 파편에게도 적용될 수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래도 시도해서 손해 볼 일은 없었다.

결과는 절반의 성공이었다.

뿅!

중심이 무너진 순간에서도 기이한 각도로 관절을 꺾은 존 워스의 손가락이 이드의 앞에 나타났다.

상대의 심장을 노리던 이드는 즉시 방향을 바꿨다.

독수리의 발톱처럼 쩍 벌어진 손가락 사이로 일라이져를 찔러 넣으며, 존 워스의 갈비뼈 아래로 주먹을 찔러 넣은 것이다. 

우드드득!

뼈가 부러져 가루가 되는 섬뜩한 소리와 함께 옆구리 안으로 한 뼘이나 파고든 주먹.

이드는 그 상태에서 내력을 쏟아부었다.

면면부절 도도하게 흐르던 내력에 파도가 일어나며 이드의 주먹이 검게 물든다 싶은 순간, 폭발이 일어났다.

떠엉!

철사파경의 일 권이었다.

“큽!”

답답한 듯한 신음과 함께 폐에 든 공기를 토하는 존 워스

인간과 다른 신체를 가진 그였지만, 전문적으로 호신기를 파괴하고 파고드는 철사파경의 경력은 제대로 통한 것 같다.

“인간보다 단단한 건 가죽뿐인가 봐? 하긴, 혼돈의 파편이 인간보다 단단해도 죽지 않는 건 아니었지. 메르시오처럼.”

존 워스의 반응에 만족한 이드는 아직 충격을 해소하지 못한 그를 향해 연이어 주먹을 박아 넣었다.

우선 철사파경으로 방어력을 깎아 낸 옆구리에 재차 침투경인 철사심인경을 때려 내부를 파괴하고, 그 위에 철황파산을 때려 박아 침투경의 경력을 증폭시켰다.

거기에 철연영까지 더하려 했지만, 그땐 이미 존 워스가 온전히 반격의 준비를 완료한 상태.

이드는 그의 공격이 시작되기 전, 마침 아래서 떠올라 온 땅에 발을 디디며 묵직한 진각을 밟아 손을 뻗었다.

철황유성탄!

콰우우우-

주먹 끝에서 빠져나간 한 줄기 유성은 순식간에 덩치를 키워 집채만 한 크기가 되어 중력을 거스르고 솟아올라 막 검을 내뻗으려는 존 워스를 때렸다.

이 공격을 허용하는 순간 치명타가 됨을 판단한 존 워스는 자신을 중심으로, 극도로 압축한 천검의 요새를 세웠다.

터엉!

극과 극에 이른 두 기운은 서로를 침범하지 못했다.

폭발하지 못한 파괴력은 그대로 운동 에너지로 변환.

철황유성탄은 천검의 요새와 함께 그 속에 든 존 워스를 싣고 검은 하늘을 향해 날아올랐다. 그 모습은 그야말로 로켓과 같았다.

철황유성탄과 중력이 만들어 내는 어마어마한 압력이 존 워스를 짓눌렀다.

그뿐이 아니다.

쾅!

현재, 검은 하늘이 만들어 내는 흡입력에 세상이 빨려 들어가는 상황. 그렇기에 검은 하늘로 향하는 길에는 수많은 장애물이 있었다.

산의 일부는 물론이고, 작은 마을이 들어설 수 있을 것 같은 땅덩어리에 성채만 한 바위, 그리고 호수를 통째로 가져다 놓은 것 같은 물 덩이까지. 철황유성탄은 그 모든 것을 일직선으로 관통했다.

“끄아아아!”

그로 인해 그 사이에 끼인 존 워스는 뜻하지 않게 연속된 공격을 당하는 처지가 되었다.

덕분에 비명인지 기합인지 분간할 수 없는 고함이 터졌지만.

그의 그런 상황을 이해해 주는 사람은 오직 한 사람. 그를 따라 허공을 날아오르는 이드 뿐이었다.

“인간답지 않게 튼튼한 게 피부만은 아니었나 보네. 목청도 인간을 넘어설 정도로 좋구나? 그거 하나는 진짜 부럽다.

이전부터 그랬지만, 이드는 노래 잘하는 사람이 부러웠다.

특히 수많은 노래가 불리는 지구를 경험한 후에는 특히나 더욱 그랬다. 아마도 스스로 노래 실력이 모자라다는 걸 알기 때문일 것이다.

“인간을 벗어나긴 마찬가진데. 내 목청은 왜 이런지 몰라.”

이드는 푸념처럼 투덜거리며 일라이져를 손안에서 굴렸다. 붉게 달아오른 손바닥이 차가운 검 자루를 통해 식혀졌다. 존 워스의 맨손과 싸워 낸 일라이져.

날카로움은 없지만, 검신을 타고 오른 충격이 손바닥을 때렸다. 보통 사람이었다면 피부가 찢어졌을 충격량.

하지만 이드의 손바닥은 붉게 달아오르는 것으로 끝났다.

앞서 존 워스의 어깨와 같은 경우였다. 과정은 달라도, 이드의 신체 역시 인간의 그것을 넘어서 있던 것이다.

그야말로 목청 따위는 아무래도 좋은 상황임에도 이드는 진심으로 아쉬운 것 같다.

하지만 이런 여유도 잠시.

마치 하수구처럼 세상을 집어삼키는 중인 검은 하늘을 코앞에 둔 이드는 문득 뒤를 돌아보았다.

뒤에 남아 있던 일리나와 검후 등을 살핀 것.

하지만 이미 그들이 서 있던 땅은 통째로 무너져 흔적도 없는 상태였다.

그 위에 있었다면 누구도 무사할 수 없어 보이는 상황.

설마 일행들이 모두 갈라진 땅속으로 사라진 것일까?

충분히 염려해야 할 상황이지만, 이드의 얼굴에는 걱정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만족스러운 모습으로 미련 없이 고개를 돌렸다. 

“역시 라미아. 마무리가 깔끔하네.”

혹시나 하는 마지막 걱정을 털어 버린 이드는 곧 발끝에 힘을 더했고.

감사하게도 존 워스가 뚫어 놓은 물의 터널을 지나 검은 하늘로 뛰어들었다.

파앗!

순식간에 사방이 어두워지고, 공기의 냄새가 달라졌다. 그래도 덕분에 이드는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원래 세상으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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