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드 2부 – 953화
1388화
“맞다. 비올라가 미완의 마탑 출신이었지.”
“지금 그 말, 엄~청 무신경하게 들린 거 알아요?”
“그럴 수도 있지.”
어떻게 그럴 수 있냐는 듯한 눈을 하는 라미아를 상대로 이드는 어깨를 으쓱했다.
잊은 것이 아니라, 그저 깜박했을 뿐이다. 사실 그게 뭐 그렇게 대단히 중요한 일도 아니지 않은가.
이드에게 있어 비올라는 그저 흔한 천재과의 오만하고 괴팍한 마법사일 뿐이었다. 그런 마음이 아니고서야 아무리 생명의 관을 배신했다고 해도 미완의 마탑 출신을 부하로 들일 수 있었겠는가.
덕분에 자주 깜빡하게 된다. 비올라의 미완의 마탑 출신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것도 그냥 마법사가 아니라, 넘치는 재능에 탑주가 아끼던 인재였다는 것을.
처음 만났을 때도 그랬지만, 지금 다시 생각해도 기막한 일이었다.
그렇게 재능이 넘치는 유망주가 생명의 관을 배신하다니 말이다. 일반적인 경우는 아니었다.
조직으로부터 따돌림과 괴롭힘을 받았다면 복수심이라고 이해하겠지만, 비올라는 그런 것과는 완전 반대였다. 그는 넘치는 재능에 자아도취에 빠질 정도로 오만했고, 자신만만했다.
따돌림과 괴롭힘의 대상이 되기보다는 그가 생명의 관의 마법사들을 무시하고 따돌렸다. 심지어 생명의 관의 부관주는 대놓고 조롱하길 주저하지 않았다.
사실 이 정도가 되면 조직에서 어떤 형태로든 조치가 취해져야 옳았다. 가장 확실하게는 퇴출이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탑주의 이쁨을 받으니, 그러기도 어려웠으리라. 그러기에 그들은 서로를 무시했다. 보고도 못 본 척 들어도 못 들은 척.
결국 이런 관계로 인해 서로에 정이 없었으니, 비올라도 망설일 부담감 없이 배신하고 이드에 붙을 수 있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드에게는 좋은 일이었다.
그리고 이드는 알지 못했지만, 이 당시 비올라는 다른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어부지리를 이뤄 독립을 꿈꿨달까? 그러는 과정에서 한 재산 챙기는 것은 덤이고.
그도 그럴 게, 이드에게 붙는 순간까지 비올라의 인성과 성격은 결코 평범한 사람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따지고 보면 이는 크게 이상한 일도 아니었다. 천재들에서 흔히 나타나는 성격 파탄의 형태였으니까.
어느 마탑을 가도 서너 명은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인간 형태였다. 아마 탑주의 이쁨을 받지 않았다면 생명의 관에서도 자연스러운 형태로 해결이 가능했을 터였다.
아무튼, 이드는 이런 비올라의 관리를 라미아에게 맡겼다.
짧은 시간에 비올라의 인간성을 꿰뚫었다는 등의 이유는 아니었다. 그저 마법사를 다룸에 있어서는 자신보다 라미아가 훨씬 뛰어나다는 판단에서였다.
그리고 이는 결과적으로 최고의 선택이었다.
인간, 그중에서도 천재를 다루는 방법은 많다. 사회화 과정에서 뚜껑을 덮거나, 고립시키거나, 포기하게 하는 방법 등이 대표적이다.
문제라면 이런 방법은 천재의 가능성을 죽이는 부작용이 따른다는 점일까.
반대로 천재성을 살리는 방법도 있다. 심지어 간단하다.
천재가 오만하지 못하게 만들면 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한 준비물은 두 개다.
첫 번째는 천재도 감당하기 어려운 문제와 목표 부여, 도달점이 보이지 않는 까마득한 목표 앞에서는 천재라는 눈부신 재능도 빛이 바래는 법이니까. 아마 당사자는 자신이 천재라는 사실도 잊어버리고 알아서 갈려 나가게 될 거다.
두 번째는 바로 천재보다 뛰어난 사람, 스승이라도 좋고, 라이벌이라도 좋다. 같은 분야의 천재라면 베스트다. 자신보다 뛰어난 사람이 옆에 있을 때 천재는 자연스럽게 오만을 버릴 수밖에 없다. 자신의 부족함을 실시간으로 느낄 수 있는데 어떻게 감히 오만할 수 있을까.
오히려 확실한 목표를 가지고 순순히 가르침을 받아들이며 스스로를 높여 갈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탑주가 비올라를 직접 옆에 두고 가르쳤다면 그는 초인 마법을 위해 목숨을 바쳤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보면 탑주는 엄청난 인재를 놓친 것이다. 라미아의 말에 따르면 비올라의 재능은 진짜였으니까. 어쩌면 탑주 아래 부관주급이 하나 더 생길 수도 있었는데 말이다.
하지만 탑주도 어쩔 수 없는 것이, 그에겐 느긋하게 제자를 가르칠 여유가 없었다. 초인 마법을 연구하고 바이트 타블렛을 완성하기에도 시간이 모자랐으니까. 무엇보다 가장 큰 이유는, 새로운 제자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탑주에겐 이미 해더웨이라는 더없이 훌륭한 제자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에게 있어 비올라는 흥미로운 유망주일 뿐이었다.
뭐, 그런 방치로 인해 배신이라는 결과를 낳았으니 자업자득이었다.
이렇게 기회를 놓친 탑주와 달리, 이드는 꿍꿍이를 가진 비올라에게 완벽한 목줄을 걸어 버렸다.
바로 라미아라는 절대 끊어지지 않는 절대의 목줄 말이다.
아무리 비올라가 제 잘난 맛에 사는 인간이라도 라미아 앞에서는 감히 그럴 수 없었다. 그건 달과 반딧불이를 비교하는 것보다 잔인한 짓이었다. 라미아에 맡겨진 비올라는 부처님 손바닥 위의 손오공이 되었다.
비올라도 오만을 꺾어야 했다. 당연했다. 그가 그렇게 존경하는 키릴 탑주도 라미아와는 비교할 수 없었다.
탑주가 ‘초인 마법’이라는 전에 없던 새로운 분야를 개척한 위업을 세운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그의 경지가 라미아보다 높은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말을 타던 사람이 늑대를 타는 방법을 개발했다고 해서 그가 말을 더 잘 타게 되는 것은 아니라고 하면 비유가 이상할까?
사실 라미아에 비교하는 자체가 탑주에게 괴로운 일이다.
이 땅에 사는 어떤 마법사가 감히 그녀보다 뛰어나다고 할 수 있겠느냔 말이다. 장담하는데, 인간 중에 그런 자는 없다.
따지면 인간에 한정할 것도 아니다.
드래곤을 붙여도 라미아는 전혀 밀리지 않는다. 오히려 뛰어날지도 모른다. 그녀의 마법은 전대 로드였던 그레이드론의 것을 그대로 이식받은 것이기 때문이다.
되돌아보면 그녀가 이드와 함께 세상에 나온 이유도 전대 로드가 가지고 있던 드래곤의 비전을 전하기 위해서였다.
한 가지, 그렇게 완벽한 그녀에게 흠이라면 스스로 마나를 소유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드의 마나를 공유받아 사용해야 한다. 그야말로 태생적인 한계랄까.
하지만 라미아는 이것을 한계라고 여기지 않았다. 또 흠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솔직하게 말해, 오히려 좋아했다. 이런 마나의 공유는 그만큼 단단한 이드와의 연결의 증거와도 같았기 때문이다. 더욱이 흠이라고 할 수도 없는 것이, 두 사람의 공유는 시공의 한계가 없었으니까.
더욱이 라미아에게는 비상시 한계를 극복할 방법도 잔뜩 준비되어 있었으니.
이런 라미아가 비올라를 맡았으니, 그 결과는 확실했다.
비올라는 하루 만에 자신이 가진 지식의 바닥을 드러내며, 고개를 숙였다. 오만이 꺾였지만 절망하지도 원망할 수도 없었다.
마법의 경지가 그야말로 차원이 달랐으니까.
그런 상태에서 라미아는 틈틈이 적지 않은 가르침까지 내려 주었다. 고차원적인 가르침에 목말라 있던 비올라에게 있어 그건 생명수였다.
그것이 목을 넘어가는 순간, 비올라는 품고 있던 꿍꿍이를 버렸다. 철저히 이드와 라미아 아래서 움직였다.
야망? 그런 건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토록 손에 넣고 싶었던 바이트 타블렛에 대한 연구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이곳은 그에게 있어 천국이였다.
애초에 비올라가 배신을 선택한 이유가 무엇이던가. 배움과 바이트 타블렛이었다. 그런데 그것이 모두 충족되었다. 생명의 관에서는 아무리 애타게 원해도 볼 수 없었던 바이트 타블렛을 마음껏 만지고 맛볼 수 있지 않으냔 말이다.
그렇게 자신이 바라는 모든 것이 채워지자 비올라는 뜨겁게 불탔다.
차원이 다른 마법에 대한 지식이 쏟아지고, 바이트 타블렛을 손에 넣었으며, 자금에 대한 압박도 없다.
‘어쩌면 이건 신이 내게 주신 일생일대의 기회일지도 모른다.’
이때가 정신의 관의 바이트 타블렛을 처음으로 뜯어 보기 시작한 날이었다. 이때 비올라는 탑주의 몫으로 정해진 영광을 자신의 것으로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품기 시작했다.
탑주의 것보다 더 완벽하고, 굉장한 초인 마법을 만들게 될지 모른다고.
물론 그도 멍청하진 않았다. 탑주도 지금에 이르기까지 모든 걸 혼자 이룬 것은 아니었다. 수많은 지원이 있었고, 많은 마법사가 함께했다. 그러나 그런 환경은 자신도 가능했다. 특히 지금과 같은 지원이 계속된다면 자신이라고 탑주가 한 일을 해내지 못하라는 법이 없지 않은가. 비올라는 꿈에 부풀었다.
그렇다. 그건 야망 같은 음습한 것이 아닌, 순수한 꿈이었다.
뭐, 꿈이 순수하다고 비올라의 언행까지 그런 건 아니지만 말이다.
영혼의 관에 대한 작전을 꾸밀 때 비올라는 이렇게 주장했다.
“영혼의 관에 있는 마법사를 모조리 잡아 죽여서라도 바이트 타블렛은 꼭 확보해야 합니다!”
아무렴 순수와는 거리가 멀어도 너무 먼 발언이기는 하다.
당시 비올라는 광분해 있었다. 라미아와 함께 정신의 관의 바이트 타블렛에 대한 연구가 끝이 난 시점이었기 때문이다. 이제 마지막 바이트 타블렛만 손에 넣으면 자신의 꿈이 이뤄지게 생겼으니까.
이대로 자신의 이름이 역사에 새겨질 것 같았다.
사실 따지고 보면 이런 비올라의 생각에는 심각한 오류가 있었다. 말 그대로 혼자만 가지고 있는 생각으로, 간단한 말로 뇌 내 망상과 같았다. 한 번도 입 밖으로 꺼내 이드와 라미아의 허락을 받은 적이 없었다. 그럼에도 비올라는 이드와 라미아의 지원을 당연하게 여기고 있었다. 이건 비올라만의 잘못도 아니었다.
혼돈의 파편이 관련된 만큼, 이드는 미완의 마탑의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초인 마법 따위의 완성에 이드가 힘을 쏟을 이유가 없었다.
“초인 마법을 누가 쓰는데?”
이드가 알았다면 불퉁한 얼굴을 하고서 그렇게 반문했을 거다.
기존 마법에 비해 아직은 장점보다 단점이 많은 마법이다. 그걸 필요로 하는 이들은 미완의 마탑과 초인들 정도다.
그 외에는?
글쎄. 새로운 마학에 호기심을 가진 마법사들 말고 있기는 할까? 당연히 이드와 라미아는 이 중 어느 곳에도 해당 사항 없음이다. 그야말로 혼자만의 단꿈이었달까.
아마 영혼의 관에 발을 들이는 순간 비올라의 흥분은 극에 달했을 것이다. 그리고 영혼의 관에서 나가는 순간 그의 꿈은 깨어졌다. 탑주도 자신도 아닌 라미아의 손에 완성되어 버린 초인 마법이라니!
“아…… 긴 꿈이었구나.”
붕 떠 있던 발이 땅으로 내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