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드 2부 – 954화
1389화
“불쌍하네. 나라도 기운 빠지긴 하겠어.”
이드가 쩝 하고 입맛을 다셨다.
모르지는 않았다. 이미 모두 알고 있는 이야기였지만, 저 모습을 보며 들으니 느낌이 달랐다.
좀 더 공감하게 되었달까? 이래서 시각적인 부분이 중요하다.
아무튼 현재 비올라의 심정이 굉장히 비관적인 상태라는 건 확실했다. 어쩌면 전부 끝났다고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꿈도 깨어졌고, 미완의 마탑도 무너졌으며, 위대한 자신을 보이고 싶었던 탑주도 죽어 버렸다.
단기는 물론 중장기적으로 품고 있던 모든 목표가 사라진 것이다. 지금까지 노력이 모두 수포가 되었다.
우울증에 걸리지 않으면 다행이 아닐까 싶다.
특히 영혼의 관 붕괴와 탑주의 죽음은 꽤 충격이 클 것이다. 그래도 한때 자신이 몸담았던 곳이며, 존경하던 스승의 죽음이었으니 말이다.
감정이 복잡한 건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아무렇지 않다면 오히려 그쪽이 문제라고 봐야 옳았다. 흔히 말하는 사이코패스나, 소시오패스 같은 게 아닌지.
하지만 그간 보아 온 비올라는 좀 많이 괴팍하고 오만해도 절대 소시오패스 같은 건 아니었다.
그런 의미에서, 어쩌면 비올라는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 울고 있을지도?
어…… 이건 좀 아닐 것 같기는 하다.
자신이 떠올린 상상에 절레절레 고개를 저은 이드는 곧 상상의 대상을 향해 사과하듯 말했다.
“나중에 독한 술이나 좀 챙겨 줄까.”
“좋은 생각입니다. 마음이 복잡할 때는 술만 한 위로가 없지요.”
66
・검후님께도 한 병 챙겨 드리겠습니다.”
그러고 보면 검후도 마음이 복잡한 사람 중 하나였다. 오늘 존 워스가 눈앞에서 죽었으니 말이다.
“사양하지 않을게요. 그런데 혼자 마시고 싶지는 않은데. 세 분도 함께 드시는 건 어떨까요?”
“그러죠.”
그녀가 말하는 셋은 당연히 이드 일가였다.
이드의 말이 마음에 들었는지 방그레 웃음을 짓던 검후가 쉴라와 스폴을 돌아보며 말했다.
“너희들은 비올라 마법사를 좀 챙겨 주렴. 그도 술친구가 필요하지 않겠니?”
“문제없습니다.”
“음…… 네.”
어떤 술을 내어 줄지 기대하는 것인지 냉큼 대답하는 스폴과 달리, 조금 생각이 많아 보이는 쉴라의 답이었다.
과연, 은색 기사단의 기사도 아닌 비올라를 위해 그렇게까지 해야 할 필요가 있는지 모르겠다는 듯한 얼굴인데. 이런 모습을 옆에 붙어선 스폴이 의미심장한 눈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그때,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저택 지붕의 끝자락을 노려보던 이드가 자연스럽게 팔짱을 끼더니 말했다.
“그런데, 혹시 저러다 떠나겠다고 하면 어쩌지?”
“흐응. 마법에 대한 열정을 빼고 보면 확실히 있을 수 없는 일은 아니네요.”
사람의 마음이란 한결같은 듯하면서도 매우 변덕이 심했다.
때론 스스로의 마음을 모를 정도로 충동적으로 변하기도 하는데, 딱 지금 비올라의 상태가 이와 비슷했다.
머리는 복잡하고, 마음은 감상적으로 변해 있는 상태.
그렇기에 라미아도 아니라고 자신 있게 말을 할 수 없는 것이다.
“어떡해? 간다면 잡아? 말아?”
“자기가 떠나겠다면 굳이 잡을 필요 있겠어요?”
의견을 묻는 이드에 라미아는 활짝 열린 저택의 문을 바라보고는 시큰둥하게 답했다. 그야말로 아무래도 좋다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일말의 정도 없는 냉혈한처럼 들리는 대답에 쉴라의 눈빛이 살짝 변했다.
“그건…….”
“뭐라고 했어요?”
“……너무 냉정하지 않을까요? 일단 보류한 다음에 생각을 정리할 시간을 줘야 할 것 같은데요.”
“음.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요? 조금 충동적이긴 해도, 그도 마법사예요. 그 정도로 생각이 없진 않겠죠. 그를 잡지 않는 건 오히려 그를 배려한 거예요.”
“그건 그렇지만…….”
‘배려’라는 말에 쉴라가 바로 반박하지 못했다.
제대로 된 조직이라면 들어가는 것도 어렵지만, 나가는 것은 더 어려운 법이다. 나가는 사람을 통해 조직의 기밀이 새어 나갈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조직에서는 나갈 수 있는 사람과 나갈 수 없는 사람의 기준이 명확했다. 그런 일반적인 기준에서, 비올라는 ‘내보낼 수 없는 사람’이었다. 그런데도 그가 원하는 대로 해 주겠다는 말은 분명 배려가 맞았다.
쉴라도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아무렴 은색 기사단의 단장이 아닌가. 그럼에도 저런 말을 꺼냈다는 건, 머리로는 알면서도 마음은 다르다는 뜻. 쉴라를 보는 라미아의 눈이 장난기로 반짝이더니, 음흉하게 가늘어졌다. 그리고는 바람둥이가 유혹할 때처럼 은근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게 아쉬운 마음이 들면, 은색 기사단에 비올라를 들여 보면 어때요?”
“그게 무슨!”
예상치 못한 말에 놀라는 쉴라의 목소리가 뒤집어졌다. 그녀가 얼마나 당황했는지를 여실히 보여 주는 증거였다.
그에 라미아의 목소리가 더욱 유들유들해졌다.
“비올라가 떠나는 게 싫은 거잖아요. 계속 가까이 있으면, 싶지 않아요? 그러니 필요한 사람이 잡아야죠. 은색 기사단 전속 마법사! 어때요?”
“네? 네?”
얼마나 당황했는지, 허둥지둥 팔다리를 어쩔 줄 몰라 하며 대답할 말을 찾지 못하는 쉴라.
이드는 그 모습에 내심 고개를 저었다.
라미아가 문제다. 저건 아무리 봐도 의견을 내는 것이 아니라 그냥 강요나 다름이 없다. 물론 평소의 쉴라였다면 그냥 농담으로 넘기거나 똑 부러지게 잘라 냈을 말이긴 한데.
그렇게 보면 당황하고 있는 쉴라가 잘못이라고 봐야 할까?
그렇게 혼란한 중에, 쉴라를 궁지로 모는 라미아의 협력자가 추가되었다. 그 인물의 이름은 스폴!
쉴라를 놀리는 일에는 언제 어디서나 결코 빠지는 법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녀는 적극 비올라의 필요성을 주장하고 나섰다. 그런데 가만히 듣고 있으면 그녀가 말하는 필요성은 기사단이 아닌 쉴라 개인을 위한 것이었다.
즉, 올바른 주장이 아니라는 말이었다.
하지만 라미아의 기습으로 인해 혼란에 빠진 쉴라는 스폴이 자신을 농락 중이라는 사실도 깨닫지 못했다. 그리고 이런 세 사람을 자상하게 바라보며 은근히 스폴의 발언에 힘을 실어 주는 검후의 모습까지.
‘위험, 위험!’
이드는 불쌍한 쉴라에게서 냉큼 한 걸음 떨어졌다.
라미아라는 태풍에 스폴이라는 허리케인이 더해진 자연재해다. 감히 어리석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 생각은 추호도 없다. 자칫 저 속에 휘말리는 날에는 뼈도 추릴 수 없다는 사실을 그간의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었다.
이드는 다만 쉴라가 정신 오염 없이 무사히 생환하기를 마음으로 빌어 주었다. 부디 돌아오면 제일 먼저 검후를 때리라고 충고하면서 말이다. 그리고는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어느새 다가온 라울이 있었다. 이쪽저쪽 눈치를 보고 있는 그.
“말하고 싶은게 있나 본데. 해 봐요.”
저쪽 이야기가 끝나려면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으니, 그사이 들어 볼 생각이다.
그렇게 이드가 기회를 주자 라울이 기다렸다는 듯 말을 꺼내 놓았다.
“비올라 마법사 말입니다.”
음? 이쪽도 비올라인가?
이드는 호기심을 가지고 다음 말을 재촉했다.
“저희 바벨에서 데려가고 싶군요. 아, 당연히 강제는 아닙니다. 최대한 정중히, 최고의 조건을 제시해서 의견을 물을 겁니다.”
“・・・비올라의 인기가 이렇게 좋은 줄 몰랐습니다.”
가만히 바라본 라울에게선 진심이 가득해 보였다.
대신 저기 시끄럽게 떠들고 있는 사람들과는 입장이 완전히 달랐다. 저쪽은 감정적인 부분이 크다면, 이쪽은 철저하게 이해득실을 따르고 있다고 할까.
아이러니하지만, 그 차이로 인해 라울의 진심이 좀 더 선명하게 다가왔다.
무엇보다 이런 말을 꺼내는 라울의 속내에도 충분히 짐작이 가는 바가 있었다.
“초인 마법의 확보가 목적이겠군요?”
“그렇습니다.”
“부관주 대신에 비올라라. 이러면 비올라가 닭이 된 건가?”
“……갑자기 닭은 왜?”
“제가 있던 곳에 꿩 대신 닭이란 속담이 있습니다.”
“아…… 하하하. 그런 뜻은 아닙니다. 아마도…….”
라울이 어색하게 웃었다. 따로 해설이 필요 없을 정도로 직관적인 속담이었기 때문이다.
당사자 입장에서는 굉장히 기분이 나쁠 수 있는 말.
“그런 뜻이라도 상관없습니다. 어차피 절 두고 하는 말도 아니고.”
무엇보다 틀린 말은 더더욱 아니다.
이드는 더욱 어색한 웃음을 흘리는 라울을 보며 가만히 턱을 쓰다듬었다. 생각할수록 바벨로서는 비올라가 탐이 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혼의 관 습격에서 바벨의 가장 큰 목적 중 하나가 초인 마법의 확보였다. 당연히 그 핵심에는 탑주와 부관주가 있었지만, 결과는 어떤가. 탑주는 죽었고, 다 잡아 놓은 부관주는 놓치고 말았다.
거기에 존 워스의 개입으로 인해 쓸 만한 마법사는 하나도 건지지 못했다. 바벨 입장에서는 뼈아픈 실패가 아닐 수 없었다.
물론 방법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었다. 미완의 마탑을 후원하며 넘겨받은 연구 보고서도 있고, 정신의 관을 토벌하며 제국이 잡아 놓은 마법사도 있으니까. 정말 급하면 제국에 협조를 구하면 된다.
문제는 그 대가가 결코 가볍지 않다는 점이었는데.
그런 중에 그야말로 뜬금없이 비올라의 거취 문제가 언급된 것이다. 바벨 입장에선 그야말로 놓칠 수 없는 마지막 기회였다.
아직 젊지만, 그리고 성격이 괴팍하지만…… 옆에서 지켜본 비올라는 초인 마법에 정통한, 매우 뛰어난 마법사였다.
그야말로 따로 검증할 필요도 없고, 의심할 필요도 없다. 이미 이드와 함께하며 그 모든 것을 통과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오가는 이야기를 보면 초인 마법의 정수를 모아 놓은 바이트 타블렛도 깊이 연구를 했다지 않은가.
그렇다면 그의 가치는 더욱더 높아질 수밖에 없다. 어쩌면 놓친 부관주가 아쉽지 않을 정도의 가치가 있을지 모른다.
물론 말이 그렇다는 것뿐이다.
부관주를 놓친 일은 두고두고 아쉬울 일이고, 문제가 될 소지도 있었다.
이건 단순히 바벨의 전력을 강화하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니었다.
처음 바벨이 영혼의 관에 대한 습격을 급하게 결정한 까닭. 바로 초인 마법이 초인에 간섭하는 문제가, 부관주가 살아 있음으로 인해 그대로 남게 되었다.
그리고 이에 관한 우려는 분명 어느 날 현실이 될 것이다.
밤의 습격으로 인해 살아남은 부관주와 소수의 마법사는 그들의 적이 바벨이라는 것을 분명히 인지한 상태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탑주가 죽었고, 그들의 보금자리가 무너졌다.
그 원한이 어디 쉽게 사라질까.
그런 의미에서, 그들은 바벨의 적대 세력과 손을 잡고 그들에게 자신들의 능력과 초인 마법을 제공할 가능성이 매우 컸다.
지금의 마스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