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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드 2부 – 1048화


1483화

“하지만 이드라면 다르겠죠.” 

이른바 말의 무게다.

같은 말이라도, 누가 그 말을 하느냐에 따라 듣는 사람의 태도가 달라지는 법이다.

막말로 어디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소국의 백작이 와서 자국의 손해를 강요한다면, 비웃다 못해 모욕을 주고 발가벗겨 내쫓을 테지만, 대륙의 명망 있는 공작이나 황자가 사신으로 와서 같은 요구를 한다면?

진지하게 고민하고 협상에 임할 것이다.

그리고 이드의 이름값이란 제국의 공작이나 황자보다 결코 작지 않다. 아니, 개인의 영향력으로만 따지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은 사람이 바로 이드였다.

그렇게 검후의 입에서 라일론으로 가라는 말에 대한 설명을 들은 이드는 바로 납득했다.

“그런데 그런 이유라면 여기 있는 쉴라 단장이나, 레오날도 후작이 더 어울리지 않을까?”

“이드는 그렇게나 가기가 싫어요?”

“싫다기보다 충돌이 있었거든. 라일론과는…………….”

엄청난 피를 본 것은 아니지만, 이드가 생각할 때 그렇다고 웃으면서 볼 사이도 아니었다. 특히 라일론 입장에선 자국의 공작이 직접 나섰다가 망신을 당한 입장이다. 조직과 정치란 것이 필요에 따라 원수와도 웃으며 손을 잡을 수 있는 것이라지만.

과연 제국이 그 자존심을 굽히며 순순히 따라줄지 의문이 생기는 부분이기도 하다.

하지만 같은 제국의 가장 큰 어르신인 검후의 반응은 크게 대수롭지 않은 것이었다.

“나람 공작이 나서서 이드를 납치하려고 했던 일이라면, 이제 괜찮다고 생각해요.”

“이것도 알고 있었어? 정보력 좋네.”

그렇게 아나크렌 제국이 가진 뜻밖의 정보력에 이드가 놀라는 사이. 처음 듣는 사실에 분노를 감추지 못하는 사람도 있었으니.

바로 쉴라였다.

“라일론에서 감히 그런 짓을 벌였단 말입니까?”

“그랬다는구나. 천둥벌거숭이가 따로 없지.”

검후 또한 노골적으로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답했다.

“그런데 나는 이 사건을 통해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지. 단장은 그게 뭔지 알겠나?”

“조금 전 말씀도 있고, 혹시 혼돈의 파편에 대해 오판할 가능성에 대한 것이 아닐까요?”

“정확하단다. 라일론에서는 힘으로 이드를 납치하려 했지. 그런데 말이다. 과거를 통해 혼돈의 파편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면, 이드가 가진 힘에 대해 알았다면, 과연 그런 무의미한 짓을 할 수 있었을까? 어떠니, 너는 혼돈의 파편을 납치하라면 할 수 있겠니?”

“불가능합니다.”

그녀의 대답에는 1초의 망설임도 없었다.

“검후 님의 명령이라면, 그 어떠한 것이라도 저희 은색 기사단은 목숨을 다해 따를 것입니다. 하지만 혼돈의 파편을 생포하라는 명령이라면, 저는 제 목숨을 걸고 명령의 철회를 간청할 것입니다.”

이는 임무가 불가능하기 때문도 아니고, 전멸에 가까운 피해가 예상되기 때문도 아니었다. 그보다는 그런 명령으로 인해 혼돈의 파편이 검후를 노리게 될 위험을 차단하기 위함이었다.

“그래, 혼돈의 파편에 대하 조금이라도 알고 있다면 그래야지. 하지만 라일론은 그러지 않았단다. 오히려 공작이 나서서 적극적으로 납치를 계획했지. 나는 그럴 수 있었던 이유가 이드를 모르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단다. 많이 과장된 이야기 정도로 여겼을지도 모르지. 같은 이유로 혼돈의 파편도 가볍게 여기고 있을지 모르지.”

라일론의 오판을 걱정한 가장 큰 이유였다.

“그런데・・・・・・ 지금이라고 다를까요?”

일리나가 물었다.

검후의 우려처럼 라일론은 여전히 혼돈의 파편에 대해 알지 못하지 않은가.

“그렇기 때문에 이드가 사신으로 갈 필요가 있어요. 더불어 한번 데인 경험이 있으니, 이드에 대해 전혀 모르는 것을 아닐 테고.” 

순간 작은 한숨과 함께 이드가 말했다.

“나보고 과거의 기록이 과장이 아닌 진짜라는 걸 증명하라는 거지? 다시 말해 힘자랑을 하라는 말이네.”

“에이, 꼭 그런 건 아니에요. 라일론에서 끝까지 모른 척한다면, 뭐 필요할지도 모르겠지만, 저들도 눈과 귀가 있으니, 마스에서 벌어진 일을 아주 모르진 않을 거예요.”

인세를 초월한 거대한 전투가 마스에서 두 번이나 일어났었다.

비록 외국에서 일어난 일이지만 제국의 정보력이라면 그에 대해 아주 모를 수가 없다는 말이었다.

라일론도 생각이 있다면 그런 엄청난 전투 내용에 과거 기록을 뒤져보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고. 마침 마인드 마스터라는 이름이 다시 떠오르는 만큼 혼돈의 파편에 대해 찾아보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모르긴 몰라도 지금쯤이면 혼돈의 파편에 대해 열심히 연구하고 있지 않을까?”

그래봤자 나오는 것이라고는 저들의 엄청난 힘과 세계 멸망이라는 터무니없는 목적에 대한 확인뿐이겠지만 말이다.

솔직히 이 부분이 가장 신뢰를 떨어트리는 사실이기도 했다. 세계 멸망이라니. 무슨 동화책 속 마왕도 아니고 말이지. 

“하지만 내가 등장하면 그 연구의 마침표가 된다는 말이지?”

“그렇죠. 이드의 존재가 증명되는 순간 그들에게 있어서도 혼돈의 파편의 문제는 남의 일이 아니게 되는 것이죠.”

세계의 멸망 속에서 라일론만 살아날 방법이라도 가지고 있지 않은 이상, 저들도 혼돈의 파편의 제거를 위해 최대한 협력하게 될 것이다.

“뭐, 좋아. 그런 일이라면 어렵지 않지. 그럼 나는 사신으로 방문만 하면 되는 건가? 서신은 따로 써주는 거지?”

“황제의 서신은 어제 받아뒀어요. 물론 제 것도 있고요. 그래봤자 이런 건 어차피 요식행위. 진짜 중요한 이야기는 통신구를 통하겠지만요.”

고작 종이 위에 이 복잡하고 위험한 문제를 다 써내릴 수는 없는 일. 무엇보다 얼굴을 마주하고 앉아 대화를 나누어야 오해 없이 제대로 된 판단을 내릴 수 있지 않겠는가.

“알았어, 내가 갈게. 어려운 일도 아닌 것 같고.”

“고마워요. 이드라면 들어줄 줄 알았어요. 그럼 라일론의 요구 사항에 대한 협상도 이드에게 일임할게요.”

검후는 복잡한 문제를 해결했다는 듯 한결 가벼운 표정으로 모든 짐을 떠넘겼다. 그에 이드는 급히 정색했다.

“그건 아니지. 왜 협상까지 내 몫이 되는 건데? 난 어디까지나 사신으로서 나라는 사람을 증명만 하면 되는 거잖아.” 

“그러니까요. 그 과정을 온전히 이드에게 맡긴단 말이에요.”

“아닌데. 그렇게 간단히 들리지 않았는데.”

내가 나라는 것을 증명하는 문제. 그건 생각보다 훨씬 어려울 수 있는 문제지만, 이드에겐 방법이 여럿 있었다. 검후와 황제라는 보증인도 있었고.

엘프라는 거짓을 모르는 종족의 보증도 붙일 수 있었으며,

그조차 부정할 때는 강제로 신실한 믿음을 가지게 만들 힘도 있었다.

하지만 협상이라면 다르다.

그건 믿음과는 상관없는 정치적인 복잡한 문제였다. 전문가들이 나서야 할 문제를 왜 자신에게 넘기는가.

검후는 아니라고 하지만, 가만히 보면 아닌게 아닌 것 같지 않은가!

이드가 진실을 토하라고 노려보는 가운데, 검후는 뻔뻔하게 생글생글 웃기만 한다.

“정말 이상한 건 없다니까요~”

“징그러! 라미아, 네가 듣기엔 어때?”

“어떻고 말고. 아니라잖아요. 문제가 생기면 그때 다시 떠넘기고 모르는 척하면 되죠.

그렇다. 일이 생긴다고 굳이 책임을 감당할 이유가 이드에겐 없었다.

그 좋은 통신구를 두고 자신이 나서서 고생할 이유가 없다. 그렇게 생각한 이드는 추궁을 멈췄다.

대신 자신에게 책임이 없음을 확실히 못 박았다.

“내 몫은 사신으로서 서신의 전달과 증명. 그 뒤는 모른다. 분명히 말했다.”

“알았어요.”

“・・・・・・ 저거 아무리 봐도 이상한데.”

이드는 방글방글 웃으며 답하는 검후가 너무나 찝찝했다. 징그러운 능구렁이 한 마리를 목에 두른 느낌이라고 할까.

하지만 이렇게까지 확답을 받았으니, 더 추궁하기도 어렵다. 무엇보다 뒤는 모른다는 것도 정말 진심이고.

그래서다.

어쩐지 저 웃는 얼굴을 망가트리고 싶어 문득 말을 꺼내고 만다.

“그나저나 그럼 같이 갈 생각은 접은 거야?”

“가족 여행 같은 거라면서요? 눈치 없이 낄 순 없죠.”

“호오~ 어제는 그렇게 끼워달라고 때를 쓰더니, 하룻밤 새 철들었네.”

“유, 유언비어 퍼트리지 말아요! 누가 때를 썼다고!”

쉴라를 힐끔거리며 적극 반박하고 나서는 검후다.

쉴라만 없었으면 또 때를 썼을지도 모르지만, 쉴라가 있기 때문에 오히려 부정하기 바쁜 모습이 꽤 재밌다.

“아마 지금 말하는 분이 때를 쓰셨었죠? 기억나지 않으면 다시 보여줘?”

“꺅!”

빨개진 얼굴로 방방뛰는 검후.

그 모습을 보고 있으니, 불편하던 속이 한결 편해지는 기분이 든다.

이드가 외류를 결정한 이유는 혼돈의 파편에 대한 견제였다. 정확한 목적지를 둔 일정은 결코 아니었다.

하지만 라일론이라는 목적지가 생기자 빠르게 출발 일정이 잡히기 시작했다. 앞서 검후에게 말한 대로 일행은 라미아와 일리나 두 사람. 그 외의 인원은 모두 소드 팰러스에 남아 있도록 했다.

어차피 그들도 나름의 일로 바쁜 사람들이었다.

검후처럼 강력하게 동행을 요청하는 사람은 없었다.

출발 날짜가 잡히고, 이드와 두 사람은 출발 준비를 시작했다. 사실 딱히 준비랄 것이 필요 없는 사람들이었다.

세상 필요한 짐은 전부 아공간에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게 움직일 수는 없었다. 검후의 요청 때문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제 사신으로 황제의 서신까지 들고 가는 일인데, 기본적인 예의는 차려야죠.”

그렇다고 한다.

타고 이동할 마차도 따로 준비했단다. 그래서야 이동 시간이 너무 멀지 않은가 싶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공간이동은 어려워요. 현재 사정도 사정이지만, 어느 때라도 국가 간의 이동을 쉽게 허락하는 나라는 없으니까요. 대신 여기서 국경까지는 공간이동으로 가세요. 마차는 국경에 대기시켜 둘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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