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향 33권 11화 – 꼬인다, 꼬여

꼬인다, 꼬여

탁탁, 타앗~

나뭇가지를 연달아 밟으며 허공으로 도약하여 놀라운 속도로 숲 속을 이동하고 있는 인영(人影). 누가 봤으면 엘프나 트롤이라고 생각했겠지만, 놀랍게도 그는 사 람이었다.

“헉, 헉~”

나무 위쪽은 달빛으로 인해 꽤나 밝았지만, 발 밑 저 아래쪽은 나무 그림자에 가려 칠흑과도 같이 어두웠다.

“망할 놈의 새끼들! 잠자고 있는데 다짜고짜 공격하다니…….”

정말이지 지금 생각해도 그 사지(死地)에서 살아서 탈출했다는 게 믿기지가 않았다. 평소 자신의 실력에 자신이 있던 그였지만, 그렇게까지 떼거리로 덤빈다면 얘 기가 틀리다. 더군다나 그는 잠자고 있는 상황에서 난데없는 기습까지 당했다.

갑자기 뭔가 이상한 기운이 느껴져 잠이 번쩍 깼었다. 만약 그때 그가 조금이라도 망설였거나, 혹은 실수라도 했다면 여기까지 도망쳐 오지도 못했을 것이다. 지금 그의 몸 상태만 봐도 방금 전의 싸움이 얼마나 치열했는지 알 수 있었다. 옷은 성한 곳을 찾기 힘들 정도로 걸레가 되어 있었고, 몸 여기저기에서 난 상처에서 흘러 내리는 피로 인해 전신이 피투성이였다.

주위를 조심스럽게 둘러보던 그는 약간이나마 시간적 여유를 얻었다고 판단하자마자 서둘러 치료에 들어갔다. 지금처럼 피를 흘리다 보면 체력이 급격히 떨어질 뿐만 아니라, 핏자국이 남아 얼마 가지도 못해 추격을 당할 수 있다는 걸 잘 알기 때문이다.

검 날이 아래쪽으로 향하도록 검을 거꾸로 잡은 그는, 검 손잡이 아래쪽에 붙어있는 균형추를 조심스럽게 돌려서 뽑았다. 균형추가 뽑혀 나온 자리에는 작은 공간 이 있었다. 그리고 그 안에는 투명한 액체가 들어있었다. 비상시에 사용하기 위해 넣어 둔 포션이다.

다급히 여관을 탈출하느라 검 외에 다른 건 아무것도 가지고 나오지를 못했다. 검 손잡이 속의 빈 공간에 들어있는 미량의 포션만이 그가 가지고 있는 치료약의 전 부였다. 앞으로 또 어떤 일을 당하게 될지 알 수 없는 만큼, 아껴서 써야만 했다.

월터는 손가락 끝에 포션을 찍어 상처에 발랐다. 미량의 포션이긴 했지만 황실에 납품되는 최고급품이었던 만큼 그 효과는 절대적이었다. 곧이어 출혈이 멈췄고, 욱신거리던 통증이 서서히 희미하게 사라져 갔다.

통증이 어느 정도 가시자, 그의 두뇌가 민첩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문득 떠오른 의문 하나. 상관에게 들은 게 맞다면, 이곳에서 이런 일을 당해서는 안 된다. 그런 데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

“월터, 자네 혹시 사막에 가 봤나?”

“아뇨.”

상관의 뜬금없는 질문에 월터는 별 생각도 없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대답했었다. 그러자 그의 상관은 잘됐다는 듯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럼 잘됐군. 이번 기회에 사막이란 게 어떤 곳인지 구경이나 좀 하고 오게. 이곳과는 풍광이 전혀 다를 거야. 그러니 가서 두루두루 살펴보고 견문 좀 넓히고 오 라구.”

평소 실없는 소리를 곧잘 하던 상관이었기에, 처음에는 웃자고 하는 농담인 줄만 알았다.

“핫핫, 요 근래 대장님께 들은 조크들 중에서 단연 최고였습니다. 우와~, 듣기만 해도 등골이 섬뜩한데요?”

월터의 너스레에 상관은 표정을 싸늘하게 굳히며 말했다.

“농담이 아닐세.”

그 말에 웃는 얼굴 그대로 흠칫 굳어버린 월터.

“지, 지금 저에게 사막에 가라는 말씀이십니까?”

“그래.”

황무지와 사막은 완전히 다르다. 대륙 전체를 통틀어 사막이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곳은 단 한 군데뿐이다. 마도왕국 알카사스의 서쪽 방면에 광대하게 펼쳐져 있는 대사막지대.

사막 지형에 특화된 일부 생명체들을 제외하고는 작렬하는 태양빛을 이기지 못하고 바짝 말라 고기포가 되어 버린다고 들었다. 더군다나 모래폭풍이라도 불면 지 옥이 따로 없다고 했다. 그런 불지옥에 가서 이국적인 풍광을 즐기라고? 천만의 말씀. 가고 싶으면 댁이나 가시라고.

“절대로 가기 싫습니다.”

“설마 내 명령을 거역하겠다는 겐가?”

안색이 딱딱하게 굳은 상관에게서 순간적으로 터져 나온 압도적인 기세에 월터는 바짝 얼어붙어 버렸다. 급히 입을 열어 아니라며 수습하려 했지만, 입 밖으로 목

소리조차 나오지가 않는다. 그저 간신히 어색한 미소만을 지어 보였을 뿐이다.

월터의 상관은 장난기도 많은데다가 워낙에 젊어 보이는 외모 탓에 함께 밖에 나가면 모두들 그가 월터의 동생인줄 알 정도였다. 더군다나 그들이 속해 있는 부대 는 총원이 겨우 7명뿐이라 아주 가족적인 분위기를 유지하고 있었다. 지금처럼 그가 자신의 상관이라는 걸 잊어버린 게 꼭 월터의 문제라고 볼 수만은 없는 것이다. 월터가 간신히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된 것은 약간의 시간이 지난 후였다.

“그,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대장님. 가겠습니다. 어디든 보내만 주십쇼. 불속이건 물속이건 지옥이건 어디건 가겠습니다.”

그의 상관은 겉모습은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았지만, 역사책에 나올 정도의 전설적인 인물이었다. 마도대전은 물론이고 제1, 2차 제국전쟁에까지 참전한 역전의 용사로서 제국에 셋밖에 없다는 마스터들 중 하나다.

“핫핫, 그렇게나 사막에 가 보고 싶단 말이지?”

까미유 드 크로데인 공작은 자신이 언제 신경질을 냈냐는 듯 유쾌한 웃음을 터트리며 월터의 어깨를 토닥였다.

“이래서 내가 자네를 좋아한다니까. 별 일 아니니까, 휴가 간다고 생각하고 한동안 푹 쉬다 오라구.”

그때를 생각하면 이빨마저 뽀드득 갈린다. 이게 푹 쉬고 오라는 휴가냐?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조금 이상한 게 있었다.

“어떻게 내 정체를 파악한 거지?”

당연히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었다. 그가 지금 손가락에 끼고 있는 반지는 아주 특별한 것이었으니까. 제2근위대원으로 임명될 때 황제 폐하로부터 직접 하사받은 물건들 중 하나였다. 반지의 겉모습은 평범했지만, 안쪽을 보면 수없이 많은 마법주문들이 깨알같이 새겨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두 가지씩이나 되는 마법을 반지 안쪽에 새겨 넣다보니 굵기가 꽤나 두툼해져 버렸지만, 그 성능만큼은 확실했다. 하이드 마나 포스(Hide Mana Force)와 하이드 매직 포스(Hide Magic Force)를 통해 마법사로부터 자신의 기척을 완벽하게 숨길 수 있었으니까.

월터는 혹시 모를 위험에 대비하기 위해 산맥을 넘기도 전에 반지를 구동시켰었다. 그런데 어떻게 알카사스쪽에서 자신의 정체를 파악할 수 있었던 것일까? 아무 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알카사스의 이목을 피하기 위해 정상적인 경로를 통해 입국하지 않고, 산맥을 넘는 수고까지 마다하지 않았는데 말이다.

정신을 집중해 보니 반지 쪽으로 상당량의 마나가 흘러들어가고 있는 게 느껴진다. 마법사들이 득실거리던 그 마을에서 포위망을 뚫고 탈출하는데 성공할 수 있었 던 것도 이 반지가 제대로 동작하고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리라.

반지에 문제가 없다면, 어디에서 잘못된 것일까? 크로데인 공작에게서 설명 받은 대로라면, 사막에 도착하기 전까지는 별다른 문제가 없어야 했다. 그에게 주어진 임무는 첩보원들에 대한 호위일 뿐이었으니까.

최근 들어 사막부족 일부가 무척 수상쩍은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고 했다. 그걸 조사하기 위해 다수의 첩자를 투입했지만 단 한 명도 살아서 돌아온 자가 없다고 했 다. 그 때문에 그래듀에이트는 물론이고 오너 급도 몇 명 보냈었던 모양인데, 모두 연락이 두절되었다.

결국, 상부에서 꺼내들 수 있는 마지막 카드는 제2근위대의 투입이었다. 적기사(Red Knight)가 과연 사막에서도 쓸 만한지 테스트도 할 겸…….

그런데 사막부족이 있는 지점까지 곧바로 공간이동을 해서 가지 않고, 왜 산맥을 타고 넘어가며 이 고생을 하고 있을까? 그 이유는 무엇 때문인지는 몰라도 10년 전쯤부터 알카사스 왕국을 통과하는 공간이동 마법을 쓰고 살아남은 사람이 단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알카사스가 마도왕국이라고 불릴 정도로 우수한 마법사들 이 득시글거리는 나라인 만큼, 마법을 통해 뭔가 장난질을 쳐 놓은 게 아닌가 짐작하고 있을 뿐이다.

어쨌거나 그런 이유로 월터는 안내인들과 함께 산맥을 넘어 이곳까지 들어온 것이었다. 그런데 알카사스에 들어 온지 며칠 되지도 않아 기습을 당했다. 그것도 알 카사스의 정규 기사단에게.

더군다나 그들은 잠자리에 든 그를 향해 경고조차 하지 않고, 다짜고짜 마법공격부터 퍼부었다. 생포하면 좋지만, 여의치 않다면 죽이겠다는 의도가 분명했다. 당 연히 또 다른 의문이 싹튼다. 자신이 코린트의 근위기사라는 것을 알고도 그런 초강수를 동원했을까? 대체 뭘 믿고?

그가 산맥을 넘어 밀입국한 것은 사실이었지만, 그것 외에는 불법적인 일은 아무것도 저지른 게 없다. 그리고 그가 앞으로 행할 임무도 알카사스와는 아무런 상관 도 없는 일이었다.

만약 이번 일로 외교적인 문제가 발생하게 되면 곤란한 쪽은 알카사스였다. 그렇다고 저들이 이쪽의 정체를 몰랐다고 하기에는 동원한 전력이 너무 엄청났다. 정 체불명의 잡범 하나 잡겠다고 수십 명에 달하는 기사와 마법사를 동원했다는 건 말도 안 되는 변명이었으니까.

물론 이 모든 것이 라이와 대장 일행 때문에 발생된 일로 인해 이렇게까지 꼬여 버린 것이었지만, 그걸 월터가 알 수 있을 리 없다.

“도대체가 이유를 알 수가 없네. 어쩌면 뭔가 협잡질에 걸려든 거 아냐?”

산맥을 넘어올 때 마법사 한 명을 지원해 달라고 했던 요청도 기각되었다. 현지에 가 보면 지원해 줄 마법사가 있다는 설명과 함께. 그리고 몰몬트 산맥을 통과시 켜 준 길잡이들은 마을에 도착하자마자 사막까지 안내할 새로운 길잡이들이 곧 올 거라며 그를 혼자 남겨 두고 사라져 버렸다.

요 근래 일어났던 일들을 차근차근 되짚어 생각해 보면 누군가가 파 놓은 함정에 제 발로 걸어들어가 풍덩 빠진 것이라고 월터가 오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 다.

“젠장, 어떤 놈이 날 못 죽여서 안달이 난거지? 뭐 좋아. 돌아가서 확인해 보면 곧바로 알 수 있을 테니까.”

본국에 돌아가는 대로 그는 자신이 가진 모든 권한을 총동원해서 철저하게 조사해 볼 생각이었다. 물론 알카사스의 방비 상태가 어떤지 점검하는 게 임무였다고 하면 뭐라 따지기도 힘든 노릇이었지만. 문제는 그게 자신의 목숨을 가지고 찔러 본 거라면 도저히 참을 수 없을 것이다. 그 상대가 설혹 자신의 상관이라고 하더라 도……..

최소한 술 한 잔은 얻어먹고 넘어가야 한다는 게 소드 마스터를 상관으로 두어 소심할 수밖에 없었던 월터의 야무진 각오였다.

수정구 속의 인물은 짙은 불쾌감을 감추지 않고 으르렁거렸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시간은 새벽 4시. 단잠을 방해받은 데다, 설상가상으로 보고받은 내용조차도 마음에 들기 않았기 때문이다.

「그 자를 놓쳤다고?」

“예, 그렇습니다.”

순간 단장의 얼굴에 짙은 불쾌감이 떠올랐다. 몰몬트 분견대에 내려진 지시에 대해서는 부단장의 보고를 받았기에 이미 알고 있었다. 길드의 요청에 따라 적의 첩 자를 체포하는 임무. 주도권이 길드에 있는 만큼 실패했다고 해서 별 문제될 것은 없었다.

그를 불쾌하게 만든 건 그런 하찮은 보고를 위해 자신의 단잠을 깨웠다는 것이다. 이런 건 부단장, 아니 그 밑에 있는 참모에게 보고해도 충분하다고 봐야 했다. 하지만 저 망할 스트론 녀석은 자신의 단잠을 깨웠고, 그것 때문에 단장은 바짝 독이 올라 있는 상태였다. 통신을 그냥 끊어 버리려던 단장은 마음을 바꿔 화풀이 를 하기 위해 스트론을 질책하기 시작했다.

「귀관은 평상시에 부하들의 훈련을 어떻게 시킨 건가? 그래듀에이트를 넷씩이나 보냈는데, 마법사들이 주문을 외우는 그 짧은 시간동안 놈의 발을 붙잡는 것도 못 했다는 게 말이 되나?」

질책성 말을 듣고서야 스트론은 아직 단장에게 첩자가 오너라는 보고가 올라가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기야 그럴 수도 있으리라. 첩자가 오너라는 건 그도 마지막 순간에 길드로부터 들은 것이었으니까.

“모르셨습니까? 상대는 오너였습니다. 그래서…….”

「호오, 오너였다고? 그래, 사상자는 없었나?」

단장은 스트론의 말을 다 듣지도 않은 채 말을 끊었다. 방금 전과 달리 질책어린 음성이 아닌 흥미롭다는 듯한 말투였다.

“다행히 사상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입이 찢어지도록 하품을 한 후, 단장은 졸음이 가득한 음성으로 물었다.

「대단하군 그래. 상대가 타이탄을 꺼냈는데도 불구하고 사상자가 나오지 않았다니 말이야. 그래, 그 자가 꺼낸 타이탄의 종류는 뭐였지?」

“그놈은 타이탄을 꺼내지 않았습니다.”

「타이탄도 꺼내지 않았다면서 그 자가 오너라는 것은 어떻게 안 거지?」

“출동하려는 순간에 길드로부터 첩자가 오너라는 급보가 날아왔기에 제가 직접 부하들을 모두 이끌고 현장으로 달려갔습니다.”

첩자는 타이탄을 꺼내지도 않았다. 거기에 비해 이쪽은 분견대 전체를 다 동원했다. 그런 상황에서도 첩자는 이쪽의 포위망을 돌파하고 도망쳤다. 결국 이런 말이 나 마찬가지다.

스트론이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구차한 변명만 늘어놓고 있다고 느낀 단장의 얼굴에 더욱 짙은 불쾌감이 어린다. 그걸 재빨리 눈치챈 스트론이 다급히 말했다.

“하지만 첩자가 코린트의 기사라는 것을 알고만 있었더라도…….”

스트론의 말에 졸음이 가득했던 단장의 얼굴 표정이 경악으로 바뀌었다.

「코, 코린트라고? 그 말 책임질 수 있나?」

“물론입니다. 한밤중이라고는 하지만 제가 직접 검을 맞대봤습니다.”

잠시 혼란에 빠져있던 단장은 곧 뭔가를 떠올린 듯 여유를 되찾았다. 그는 콧방귀를 뀌며 대꾸했다.

「검형(劍形;Form)이나 스텝의 특징 따위야 얼마든지 조작할 수 있지. 코린티아 검법을 연구한 게 우리나라뿐일 거라고 생각하나?」

“지당하신 말씀이십니다. 하지만 생과 사를 가르는 그 찰나의 순간에서까지 그런 연극을 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지요.”

「첩자를 그렇게까지 몰아붙였다고?」

“예. 뭐 그건 어렵지 않았습니다. 수적 우세도 우세였지만, 만반의 준비를 갖춘 상태에서 기습해 버렸거든요.”

기습공격이라는 스트론의 말에 단장의 얼굴이 점차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밤이 되기를 기다렸다가 그 자가 잠자리에 든 것을 확인한 후에 마법으로 일제사격을 퍼붓고…….

단장은 더 이상 들을 필요도 없다는 듯 으르렁거렸다.

「코린트의 기사를 상대로 그런 짓을 하다니! 자네 제정신인가?」

스트론은 어쩔 수 없었다는 듯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저는 그자가 코린트의 기사인 줄 전혀 몰랐습니다. 그저 길드를 도와 그자를 포획하라는 지시만 받았을 뿐입니다. 가급적이면 생포하되, 그게 여의치 않으면 죽 여도 무방하다고 부단장님께서 직접 명령하셨거든요. 그래서 저는 확실하게 처리하려고 노력했을 뿐입니다.”

거침없는 스트론의 대답에 단장은 난감하다는 듯 말했다.

「휴우, 아무리 부단장이 그렇게 지시했다고 해도 그렇지. 그리고 기습공격을 했으면 잡기라도 했어야지, 이렇게 놓쳐 버리면 아주 곤란해지는데……..

잠시 어떻게 해야 할지 이리저리 고민하던 단장은 한숨을 푹 내쉬며 명령했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그놈을 잡아! 이 사실이 코린트에 알려져서는 절대로 안 된다. 알겠나?」

“이곳 분견대 인원만으로는 불가능합니다. 더군다나 그 자는 기척을 완벽하게 숨기는 마법도구까지 지니고 있단 말입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지금쯤 녀석의 시체 와 함께 코린트의 타이탄을 가지고 단장님을 찾아뵈었겠죠. 어쨌거나 그 망할 놈의 마법도구가 문젭니다. 덕분에 길드에서 나온 마법사들은 눈 감은 장님들처럼 쓸 모가 없게 됐습니다. 요새 사령관에게 말해서 보유하고 있던 키메라들을 전부 다 동원하긴 했습니다만, 별로 도움은 되지 않고 있습니다. 워낙 날쌘 놈이라 나뭇가 지를 타고 도약해서 움직이는데, 제아무리 키메라의 후각이 뛰어나다고 해도 그런 흔적을 따라 추적할 수가 있겠습니까?”

심각한 표정으로 스트론의 보고를 듣고 있던 단장이 이윽고 입을 열었다.

「내 생각에는 키메라보다는 정령사 쪽이 추적에 훨씬 도움이 될 듯싶군. 길드에 협조를 구해서 최대한 많은 숫자의 정령사들을 보내달라고 하겠네.」

“가급적이면 빨리 보내 주십시오. 이러다 자칫 놈을 놓칠 수가 있습니다.”

단장은 못마땅하다는 눈빛으로 스트론을 한참동안 노려보더니 수정구에서 모습을 감췄다. 통신을 끊은 것이다. 단장의 매서운 눈초리를 봤음에도 불구하고 스트 론은 태연하기 짝이 없었다. 단장의 표정을 보니 자신의 변명이 제대로 먹혀들어갔다는 것을 눈치챘으니까.

그는 잠시 기지개를 켠 후 선임 마법사를 불렀다. 통신실에서 대원들의 추적 작업을 총괄하고 있던 선임 마법사는 피곤에 지친 안색이 역력했다.

“용기사들은 아직 안 일어났겠지?”

야간 시력이 별로 좋지 못한 와이번은 밤에 날아오르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다. 그 때문에 주위가 어둑해질 무렵 스페슈라 마을에서 철수해서 요새에 돌아와 있었 다. 와이번 덕에 용기사와 마법사들 역시 한숨 자면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중이다.

“예, 대장님. 모두들 깨울까요?”

“아니, 조금이라도 푹 쉴 수 있도록 놔둬. 대신, 새벽에 일어나면 모두들 배신자 수색에 복귀시키도록 해.”

“그래도 괜찮겠습니까? 단장님께서 이번 일을 아신다면…….”

스트론은 선임 마법사를 향해 장난스럽게 한쪽 눈을 찡긋해 보이며 말했다.

“뭐 상관없잖아? 그놈이 마법도구를 이용해서 기척을 숨기고 있는 통에 용기사들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고 하면 그만이니까. 흠, 아니면 놈이 워낙 빨라 넓은 지역까지 수색을 확대했다고 하면 되지. 안 그래?”

“그, 그건 그렇습니다만…….”

이때, 수정구를 통해 통신을 받던 마법사 하나가 흥분한 목소리로 스트론에게 보고했다.

“제5수색조가 첩자의 흔적을 찾아냈답니다.”

“위치는?”

“145구역에서 180구역으로 넘어가는 경계선 부근입니다.”

스트론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며 선임 마법사에게 지시를 내렸다.

“그럼 그쪽은 자네한테 맡기겠네.”

“수색조와 합류하시려는 겁니까?”

“상대가 상대인 만큼, 그러는 게 좋지 않겠나? 그러니 배반자 놈들을 부탁하네.”

“염려 놓으십쇼.”

통신실을 뛰쳐나온 스트론은 요새에 남아있던 마지막 전력까지 박박 긁어 제5수색조와 합류하기 위해 출발했다.

1개 분대급의 기사단 분견대가 배치되어 있는 세브롱 요새였지만, 지금 이곳 요새에 남아있는 기사단 요원이라고는 통신실에 있는 마법사 몇 명이 전부였다. 부대 의 효율적인 통제를 위해 마법통신망을 유지시켜야 한다는 필요성이 없었다면 이들까지도 모두 다 추적 작전에 동원되었으리라.

어젯밤부터 시작된 추적 작전은 지금까지도 계속 진행되고 있었다. 그 때문에 통신실에 있는 모든 마법사들은 수면부족으로 두 눈에 핏발이 서 있는 상태였다. “전원 참고할 것. 목표는 342구역을 벗어나 256구역으로 들어섰다. 반복한다. 목표는 342구역을 벗어나 256구역으로 들어섰다, 이상 통신실.”

수정구를 향해 다급하게 전달 사항을 말해 주던 마법사는 전송을 끝내자마자 짜증스런 목소리로 투덜거렸다.

“이런 젠장, 답신이 오지 않으니까 제대로 수신이 되었는지 알 수가 없잖아.”

이때, 외부 통신을 받기 위해 놔둔 두개의 수정구 중 하나가 점멸하기 시작했다. 채널을 열자 호크 기사단의 정식 복장을 한 마법사가 모습을 드러냈다.

“안녕하십니까. 몰몬트 분견대 당직 마법사 루트 도미네스입니다.”

「수고가 많다. 10분 후, 부단장님께서 지원부대를 이끌고 그쪽 공간이동 마법진으로 이동하실 예정이다. 그에 대한 준비를 부탁한다. 알겠나?」

“옛.”

통신을 옆에서 엿들은 선임 마법사는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버렸다. 첩자의 소속이 소속인 만큼 상당한 규모의 지원부대가 달려올 줄은 알고 있었지만, 부단장이

직접 올 거라고는 예상조차 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이번 작전의 성격상 성공하더라도 외부에 공표조차 할 수 없는데다가, 실패했을 때는 혹독한 책임 추궁이 뒤따를 게 뻔했기 때문이다.

잠시 후 겨우 정신을 차린 선임 마법사가 다급히 부하에게 명령했다.

“자네는 빨리 가서 역장 발생장치를 끄도록 하게.”

“예.”

“그리고 자네는 귀빈실을 점검하도록 하게. 부단장님에 대한 소문은 익히 들었겠지? 안 그래도 기분이 썩 좋지 않으실 텐데, 괜한 꼬투리 잡히지 않도록 최선을 다 하란 말이야!”

“예.”

이제 남은 시간은 겨우 10분! 부단장을 맞이할 준비를 하기에는 턱도 없이 모자랐다. 그 탓에 선임 마법사는 꽁지에 불이 붙은 것처럼 이리저리 뛰어다녀야만 했 다.

얼추 10분이 된 것 같자 선임 마법사는 허둥지둥 옥상(屋上)으로 달려갔다. 공간이동 마법진이 마법탑 옥상에 설치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가 채 숨을 고르기도 전에 마법진 위에서 희뿌연 빛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빛이 멈춘 순간, 40여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서있는 게 보였다.

선임 마법사는 깡마른 체구의 사내에게로 달려가 고개를 조아렸다. 짧게 다듬은 콧수염과 얇은 입술 탓에 아주 냉정하게 보이는 사내였다.

“어, 어서 오십시오, 부단장님. 저는 분견대의 선임 마법사인 레스터 클라인이라고 합니다.”

부단장이 거느리고 온 부하들의 숫자는 몇 되지 않았지만, 그 전력은 엄청났다. 오너의 숫자만 무려 20명! 타이탄 숫자로만 따진다면 거의 4개 분대 급이다. 그런 데 이게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워낙 다급한 상황이었기에 호크 기사단의 핵심인원만 데리고 온 것이었고, 나머지 대원들은 준비가 되는 대로 이쪽으로 공간 이동해 올 것이라고 했다.

부단장은 마중을 나온 클라인의 인사조차 받지 않은 채 곧바로 물었다. 그의 음성에는 탐탁지 않은 심정이 그대로 묻어나온 듯 차갑기만 했다.

“스트론은 지금 어디에 있나?”

“대장님은 현재 추적 현장에서 대원들의 지휘를 하고 계시는 중입니다.”

이곳은 요새에서 가장 높이 솟아올라 있는 마법탑의 꼭대기다. 아직 해가 뜨지는 않았지만 점차 어슴푸레하게 밝아오고 있었기에 주변을 바라보는 데 있어서 문제 가 될 것은 없었다. 클라인은 저 멀리 보이는 산쪽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보고했다.

“다행히도 키메라가 첩자의 흔적을 찾아냈습니다. 지금 놈을 맹추격 중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클라인의 보고에 부단장의 싸늘하게 굳은 얼굴에서 일순 안도감이 스쳐지나갔다.

“그래? 그나마 다행이로군.”

부단장은 데리고 온 기사들을 돌아보며 지시했다.

“너희들은 빨리 달려가서 스트론을 도와주도록 해라.”

“옛.”

부단장과 함께 온 마법사들이 클라인에게 모여들어 공간이동 좌표를 물어봤다. 그리고는 저마다 공간이동마법진을 그리기 시작하는 마법사들. 그런 모습을 잠시 바라보던 부단장은 고개를 돌려 클라인에게 물었다.

“길드에서 정령사는 도착했나?”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

“망할 녀석들. 단장님께서 직접 요청을 하셨는데도 아직까지 보내지 않고 있다니!”

단장에게 듣기로는 첩자 놈은 탐색마법으로는 찾아낼 수가 없다고 했다. 그렇다면 추적을 하기 위해 정령사는 필수가 아니겠는가. 그걸 뻔히 알고 있을 텐데도, 자 신이 기사단 전력의 절반을 이끌고 여기까지 올 동안 정령사 몇 명 보내주는 것조차도 하지 않고 있다니……. 더군다나 이번 일이 길드 쪽에서 지원요청을 한 탓에 벌어진 일이 아닌가.

“그래도 놈의 흔적을 찾았다니 다행이긴 하지만.”

이때, 통신실에 있던 마법사 한 명이 헐레벌떡 달려 나와 클라인에게 보고했다.

“서, 선임 마법사님! 흔적을…, 흔적을 놓쳤답니다.”

클라인이 뭐라고 대꾸하기도 전에 부단장이 끼어들었다.

“그건 또 무슨 소리냐? 자세하게 보고하도록 해라.”

마법사는 방금 전에 들어온 소식을 전했다. 첩자의 흔적을 놓쳤다는 것이다. 그 때문에 대원들은 서로간의 간격을 넓히며 새로운 흔적이 없는지 그 인근을 샅샅이 뒤지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지금까지는 혈흔을 남기며 도망쳤기에 추적이 용이했다고 합니다만, 무슨 수를 썼는지 모르겠지만 갑자기 혈흔이 사라져 버렸다고 합니다.”

부단장은 답답하다는 듯 뒤로 돌아서서 난간을 짚었다. 그의 눈앞으로 광대한 몰몬트 산맥이 한눈에 펼쳐져 있다. 문제는 지금 보이는 이게 몰몬트 산맥의 전부가

아니라는 데 있었다. 지금 그의 시야에 보이는 것은 산맥의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았으니까. 설혹 마법의 힘을 빌린다고 해도 저 넓은 산맥 안에서 첩자가 마음먹 고 숨는다면 사막에 떨어진 바늘을 찾는 것이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곳에 배치되어 있는 용기사가 일곱 명이었나?”

“옛, 부단장님.”

이때, 마법탑 중앙에 마련되어 있던 사각형의 문이 열리더니, 승강기를 타고 와이번이 올라오는 게 보였다. 와이번이 일곱 마리나 되었기에 승강기는 제일 꼭대기 층인 와이번 우리에서 옥상으로 몇 번이나 오르락내리락 해야만 했다.

출동 준비를 하고 있는 용기사들을 향해 부단장이 다가갔다. 자신을 알아보고 인사를 건네는 용기사들에게 부단장은 힘들겠지만 적 오너의 수색 작업에 한층 힘을 쏟아 달라며 격려 겸 당부를 했다.

그런 부단장을 뒤에서 바라보며 클라인은 난처하기 짝이 없었다. 지금 이 상황에서 어떻게 용기사들에게 배신자를 찾으러 가라며 지시를 내릴 수가 있겠는가. 그는 머리가 아픈지 이마를 손가락으로 꾹꾹 누르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러다 동부지구장의 부탁을 이행하지 못할 경우, 그 후환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용기사와 마법사를 등에 태운 와이번은 날개를 앞발 삼아 네 발로 엉금엉금 기어가 마법탑 가장자리로 가서는 아래로 뛰어내렸다.박쥐 날개처럼 생긴 거대한 날개 를 활짝 펼치며 거대한 와이번이 순차적으로 날아오르는 장면은 보는 이로 하여금 가슴이 뛰게 만들 정도로 장관이었다. 그것도 한두 마리가 아닌 일곱 마리가 날아 오르자 곧바로 하늘이 꽉 차는 듯한 느낌이었다.

손을 흔들며 용기사들을 배웅한 부단장은 그들의 모습이 멀어지자 클라인에게로 시선을 돌린 뒤 지시했다.

“지금 당장 길드 본부로 통신을 넣어라. 10분 내에 정령사를 보내 주지 않으면 우리들은 이번 임무에서 손을 뗄 거라고.”

손을 떼겠다는 단호한 말에 클라인의 안색이 일순간 파랗게 질렸다. 첩자가 코린트의 기사일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기사단이 손을 떼 버리면 그 뒤는 어떻게 될지 뻔했으니까.

“서, 설마 진짜로 손을 떼실 건…”

“쓸데없이 토 달지 말고, 지금 당장 내가 시키는 대로 해.”

“예…, 옛. 부단장님.”

통신실을 향해 허둥지둥 달려가는 클라인의 뒤통수를 노려보던 부단장은 도저히 못참겠다는 듯 욕설을 내뱉으며 투덜거렸다.

“멍청한 놈들! 대가리는 좋은지 모르겠지만, 당최 일의 선후를 몰라.”

마법사 길드의 어설픈 일처리에 짜증이 나 욕설을 내뱉기는 했지만, 지금 그의 주위에는 마법사들이 너무 많았다. 부단장은 자신이 데리고 온 마법사들 중 선임을 불렀다.

“루카스.”

“예, 부단장님.”

“저 녀석 하는 거 보니, 아무래도 안심이 안 되는군. 자네가 통신실을 책임지도록 하게.”

“그렇게 하겠습니다.”

분견대 선임 마법사의 지위가 부단장이 데려온 루카스보다 높을 수는 없다. 그런 만큼 굳이 부단장이 지시를 내리지 않아도 얼마 지나지 않아 이곳의 모든 마법사 들은 루카스의 지휘 하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단장이 굳이 루카스에게 그런 명령을 내린 것은, 방금 전의 욕설이 길드의 마법사들’을 향한 게 아니라 허둥지둥 달려간 ‘선임 마법사를 향 해 한 것처럼 꾸미기 위해서였다. 방금 전 자신의 언사가 길드 쪽 귀에 들어가면 귀찮아지기 때문이다.

이때, 저 멀리 장대하게 펼쳐진 산맥 쪽이 조금씩 붉어지기 시작했다. 해가 떠오르려 하는 것이다. 그쪽으로 시선을 돌린 부단장은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딴 건 모르겠지만 정말이지 경치 하나는 끝내주는 곳이군…….”

마법탑 옥상에서 본 그날의 일출은 부단장의 기억 속에 오랫동안 남을 정도로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부단장이 호크 기사단 전력의 절반을 데리고 와서 합류했다고 해도 상황은 전혀 호전되지 않고 있었다.

“젠장, 재수 더럽게 걸렸어.’

넓디넓은 몰몬트 산맥 안으로 도망친 기사 한 명을 잡아들이는 일이다. 호크 기사단 전력 절반을 쑤셔 넣는다고 해도 쉬울 리가 없다. 그리고 그만한 전력을 투입 하는 일인 만큼, 임무에 실패했을 때는 호된 질책이 뒤따를 것은 뻔한 일. 그것을 잘 알고 있는 부단장이었기에 이번 임무를 맡지 않으려고 별별 핑계를 다 준비했었 다. 하지만 핑계를 채 말해 보기도 전에 단장은 부단장을 직접 지명하면서 명령했다.

“스트론에게 들으니 생사불문이라도 상관없다는 지시를 자네가 내렸다며? 그 책임을 지게.”

자신이 내뱉은 말이었기에 그로서도 어쩔 수가 없었던 것이다. 부단장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연신 찻물을 들이켰다. 이곳에 와서 벌써 여섯 잔째 마시고 있는 차다. 바짝바짝 타들어가는 속을 달래는 데는 술이 좋겠지만, 부하들은 꽁지 빠지게 수색 작업을 하고 있는데 지휘관이라는 자가 태평하게 술을 마시고 있을 수는 없지 않 겠는가. 그것도 평소 규율을 그렇게 강조해 왔던 그가.

이때, 가볍게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와.”

그러자 루카스가 안으로 들어오며 방금 전에 수신한 마법통신에 대해 보고했다.

“정보부에 문의해 본 결과, 행방을 알 수 없는 오너의 숫자는 약 50여 명 정도라고 합니다.”

그 말에 부단장의 인상이 왈칵 일그러졌다. 그는 이곳으로 출발하기 전에 정보부에 코린트의 오너들 중에서 현재 행방을 알 수 없는 자들의 숫자와 그 명단을 알려 달라고 요청했었다. 스트론의 보고가 확실하다면 그 행방불명인 인물들 중의 하나가 지금 자신들과 숨바꼭질을 하고 있는 녀석일 가능성이 컸으니까.

그런데 행방을 알 수 없는 오너의 숫자가 무려 50여 명씩이나 될 거라고는 생각조차 못했다. 왜냐하면 오너들은 전략적 파괴력이 엄청나기에 정보부에서 적국 오 너들의 일거수일투족까지 치밀하게 조사하고 있었을 거라고 믿었었다.

물론, 오너 급 실력자들의 뒤를 몰래 추적한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더군다나 실력이 높기로 명성이 자자한 코린트의 오너들인 만큼 접근조차 쉽지 않을 거라는 것 정도는 부단장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50여 명씩이나 되는 오너의 위치 파악이 전혀 안되고 있다는 건 문제가 크다. 코린트 기사단의 주력인 고성능 타이탄 50기라면 웬 만한 국가쯤은 하루아침에 멸망시키기에 충분했으니까.

이제는 외교적 마찰 따위를 신경 쓸 때가 아니다. 자칫 잘못하면 알카사스가 뒤집어질 수도 있는 위기 상황인 것이다. 부단장은 신경질적으로 탁자에 찻잔을 내려 놓으며 으르렁거렸다.

“24시간 줄 테니, 그 숫자를 최대한 줄여 보라고 해. 그리고 이 상황을 상부에 지급으로 보고하도록.”

“예, 부단장님.”

“멍청한 새끼들! 50기? 50기가 옆집 똥개 이름인 줄 아나.”

만약 코린트의 타이탄 50기가 한꺼번에 왕국의 수도 다란스에 나타난다면 어떻게 될까? 4대강국에 들어간다는 알카사스였지만, 왕실이 파괴되고 나라 전체가 뒤 집어질 가능성이 컸다.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저 산맥 속에 숨어 있는 쥐새끼를 잡아 정보를 캐내야만 했다. 코린트에서 왜 오너 급 기사를 보냈고, 뭘 알아보려고 했었던 것인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