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림천하 7권 검정중원(劍定中原)편 : 9화
제65장. 종남비사(終南秘事)
진산월은 무언가에 홀린 사람처럼 천천히 그 동혈을 향해 다가갔다. 동혈은 완만하게 아래로 경사져 있었다. 가까이 가자 동혈 속에서 서늘한 공기가 흘러 나옴을 느낄 수 있었다. 진산월은 잠시 망설이다가 동혈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동혈의 입구는 진산월이 허리를 굽혀야만 겨우 통과할 수 있을 정도로 낮고 좁았다. 하나 십여 장쯤 그런 자세로 들어가자 점차로 천장이 높아지고 폭도 넓어지면서 어깨를 펴고 걸을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동혈은 원래부터 이렇게 넓지는 않았음이 분명했다. 여기저기에 사람의 손길이 닿은 흔적이 역력히 보였던 것이다. 누군가가 인공(人工)으로 이러한 동혈을 뚫었다고 생각하니 그 능력에 경외(敬畏)심이 들 정도였다. 그것은 태을선거 앞에서 열석진을 보았을 때 느꼈던 감정과 비슷했다. 선대(先代)의 누군가가 도저히 인력(人力)이라고는 상상할 수도 없는 거대한 흔적을 남겼다면 후인(後人)으로서 그것을 보고 경배하는 마음이 드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다.
삼십여 장쯤 아래로 내려가자 동혈이 끝나고 하나의 석실(石室)이 나타났다. 그 석실은 커다란 암석을 파고 만든 것이 분명했다. 이곳은 중봉의 봉우리 아래이므로 다른 여지가 있을 리 없었다. 석실은 문도 없고, 현판 같은 것도 달려 있지 않았다. 그냥 동혈이 어느 순간 끝나면서 대신 장방형(長方形)의 널찍한 공간이 나타났을 뿐이다.
사방의 벽은 두께를 알 수 없는 암석을 자른 것이었고, 천장과 바닥도 모두 암석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석실의 넓이는 십 장이나 되었는데, 원래는 오 장 정도의 천연공동(天然空洞)을 사람의 힘으로 넓혀 놓은 것이 분명했다. 석실 한쪽에 돌로 만든 침상이 있었다. 그리고 침상 위에는 백골(白骨) 한 구가 있었다. 진산월은 먼저 백골을 향해 절을 했다.
“종남파의 제자 진산월이 선배고인의 영거(靈居)를 허락도 없이 침입했습니다. 부디 용서해 주십시오.”
태을선거를 찾았을 때와 비슷한 상황이었으나, 지금은 눈앞에 실제로 백골이 있다는 것이 달랐다. 백골은 물론 아무 대답이 없었다. 진산월은 큰절을 올린 다음 돌침상 앞으로 다가갔다. 백골이 입고 있는 의복은 너무도 오랜 세월 동안 삭을 대로 삭아서 형체조차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있었다. 백골은 가슴에 한 자루 검(劍)을 안은 자세로 돌침상 위에 반듯하게 누워 있었는데, 살아생전에는 기골이 장대한 사람이었음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진산월의 시선이 백골이 가슴에 안고 있는 검으로 향했다. 그 검은 일견(一見)하기에도 예사로운 검이 아니었다. 검집은 고색 창연했으나, 자세히 보면 용(龍)이 구름을 타고 하늘을 나는 문양이 생생하게 조각되어 있었다. 용의 얼굴은 자연스레 검의 손잡이가 되었고, 용의 꼬리는 검을 감싸안은 검집이 되었다. 그리고 용의 수염은 검실이 되었고, 용이 물고 있는 여의주(如意珠)는 손잡이에 박힌 구슬이 되어 있었다. 구름은 그 자체로 검집을 둘러싼 멋진 문양이었다. 그야말로 용과 구름이 하나로 결합하여 너무도 자연스럽게 어울려 있는 것이다.
진산월은 검의 형체에 마음을 빼앗겨 한동안 정신없이 들여다보았다. 그도 검법을 익히는 사람인 만큼 이런 검이 얼마나 좋은 것인지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종남산의 봉우리 밑에 이런 동혈이 있다는 것도 놀라운 일이지만 동혈 아래 이런 검을 지닌 백골이 있다는 것은 더욱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때 진산월은 여의주 밑에 용사비등(龍蛇飛騰)한 필체로 쓰여 있는 두 개의 글자를 발견했다.
< 용영(龍影) >
용의 그림자. 실로 검과 너무도 잘 어울리는 이름이었다. 하나 그 글자를 읽는 순간, 진산월은 안색이 대변하더니 벼락이라도 맞은 것처럼 그 자리에 넙죽 엎드렸다. 그리고는 떨리는 음성으로 소리치는 것이었다.
“종남파의 이십일대 제자 진산월이 사조의 유체를 뵈옵니다.”
백골을 향해 삼고구배를 올리는 진산월의 표정에는 격동의 빛이 가득 담겨 있었다. 용영검(龍影劍)은 종남파에서 오랫동안 비전되어 오던 신검(神劍) 중 하나였다. 하나 지난 이백 년 동안 용영검은 강호에 나타나지 않았다. 용영검이 그 주인과 함께 이백 년 전에 신비스럽게 실종되었기 때문이다.
용영검의 주인이야말로 종남오선 중의 일인이며, 천하에서 가장 용맹스럽고 싸움을 잘한다는 혈선 정립병이었던 것이다.
정립병은 살아생전에는 마도인(魔道人)들에게 지옥(地獄)의 사신(死神)보다 더욱 두려운 존재였다. 그는 일단 화가 나면 추호도 손속에 사정을 보지 않았기 때문에 젊은 시절에는 그야말로 양손에서 피가 마를 날이 없었다. 나이를 먹어도 그 성정(性情)은 여전하여 일단 출수(出手)하게 되면 반드시 피를 보고야 말았다. 그의 별호는 혈선이었지만, 사람들은 뒤에서 염라검객(閻羅劍客)이라고 불렀다.
종남오선의 명성은 정립병과 매종도가 쌓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소선 우일기는 종남파의 장문인답게 사람됨이 신중하고 온유해서 좀처럼 남들과 싸우지 않았으며, 비선 조심향은 비록 신법의 당대제일고수(當代第一高手)였으나 본신의 실력은 두 사람에게 미치지 못했다. 또한 막내인 취선 하정의는 무공보다는 온갖 기행(奇行)으로 더 이름이 높은 사람이었다.
하나 정립병의 인간성 자체는 거칠고 화급하기보다는 유쾌하고 솔직했다. 친구를 좋아했고, 적당히 풍류(風流)를 즐길 줄도 알았다. 그래서 그에게는 친구도 많았고 따르는 사람도 많았다. 매종도가 너무 고고하고 성품이 깨끗해서 주위에 사람들이 몰리지 않은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두 사람은 종남오선의 실질적인 핵심들이었으며, 당대의 최고가는 고수들이었고, 또한 사라의 연적(戀敵)이었다.
매종도의 명성에 가려 후대에는 정립병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으나, 누가 뭐래도 두 사람은 당시 무림의 양대거봉(兩大巨峰)이었다.
그런 정립병이 이백 년의 시공(時空)을 넘어 지금 진산월 앞에 한 구의 백골이 되어 누워 있는 것이다. 얼마 전에 매종도의 은거지를 찾았다가 빈손으로 돌아와야만 했던 진산월이 뒤이어 정립병의 유골을 발견하게 된 것은 참으로 신의 교묘한 섭리(攝理)라고밖에는 설명할 수 없는 것이었다. 진산월은 새삼 인간사(人間事)는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음을 절실하게 깨달았다. 낙담한 마음을 달래려 산에 올라왔다가 무심코 쳐다보았던 돌무더기에서 이런 기연(奇緣)을 만나게 될 줄이야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진산월은 정립병의 유골을 수습했다. 그래 보았자 푸석푸석해져 세게 부비면 가루가 되어 버릴 정도로 삭아 버린 백골 더미였지만 그래도 사문의 조사를 이렇게 외진 석실에 그냥 놔둘 수는 없었다. 그런데 정립병의 유골을 정리하던 중, 진산월은 유골의 밑에서 하나의 두툼한 책자를 발견했다. 그 책자는 진산월이 봉우리의 돌더미에서 발견한 양피지와 같은 재질로 이루어져 있었다.
< 혈선비록(血仙秘錄) >
사나이의 웅혼한 기상을 느끼게 하는 글씨 넉 자가 씌어 있었다. 진산월은 마음속의 흥분을 억누르며 책장을 넘겼다.
< 그대가 종남파(終南派)의 제자라면 기꺼이 다음 장을 넘겨라. 그대가 종남파의 제자가 아니라면 동북 방향을 향해 구배(九拜)를 올린 후 다음 장을 넘겨라. 그도 저도 아니라면 책을 놓고 조용히 물러가라. 이 책은 종남의 문하만이 읽어 볼 수 있다. >
자긍심 넘치는 그 필체를 보기만 해도 정립병이 어떠한 인물인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다음 장부터는 진산월이 그토록 찾아 헤매던 종남파의 실전되었던 각종 비기(秘技)들이 꼼꼼하게 적혀 있었다.
< – 낙하구구검(落霞九九劍). 떨어지는 무지개를 아홉 등분으로 벤다. 이를 다시 구궁으로 나누니, 그 변화는 모두 팔십일 개에 달한다. 이로써 능히 적의 시선을 어지럽히고 목숨을 빼앗을 수 있으리라. – 색혼검결(索魂劍訣). 정말 위급한 순간에 처하면 자신의 생존을 위해서 누구나가 필사적일 수밖에 없다. 색혼검결은 바로 그러한 순간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일단 완벽하게 익혀 둔다면 언제고 그것이 네 목숨을 구해 줄 것이다. – 천둔장법(天遁掌法). 천둔이란 하늘로 숨는다는 뜻이다. 인간이 어떻게 하늘로 숨을 수 있겠는가? 이것은 다시 말하면 상대의 시선으로부터 자신을 차단하며 미처 상대가 예상치 못했던 곳을 공격하는 수단이다. 일격필살의 강맹한 맛은 없지만 능히 상대를 놀라게 하고 자신을 보호할 수 있을 것이다. – …… >
혈선비록에 적힌 비기들은 모두 아홉 개였다. 그중 세 개는 진산월도 이름만 들어보았던 것이고, 나머지는 오늘 처음 알게 된 것이었다. 아홉 번째의 비기는 종남파의 사활을 결정지을 수 있는 육합귀진신공의 실종된 신공구결 중 하나였다.
< 태진강기(太震?氣) >
태진강기는 종남의 무공 중 가장 패도(覇道)적인 절기였다. 이것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남을 살상하기 위한 무공이었다. 전신의 경기를 체외(體外)로 분출시켜 자신에게 다가온 상대를 격상시키는 반탄강기(返彈?氣)의 일종이었다. 정립병이 강호인들에게 두려운 존재가 된 것도 이 태진강기에 힘입은 바 컸다. 태진강기는 그 자체만으로도 놀라운 무공이었지만, 이것을 익힘으로써 비로서 육합귀진신공은 본연(本然)의 위력을 나타낼 수 있는 것이어서 큰 의미가 있었다.
진산월은 태진강기의 구결을 읽어보기만 해도 이 태진강기가 자신이 익힌 태을신공과 상호 보완적인 관계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태진강기가 공격을 위한 무공이라면 태을신공은 수비를 위한 무공이었다. 자신이 만약 태을신공에 태진강기의 묘용(妙用)을 결합시킬 수만 있다면 그 위력은 능히 배가될 수 있을 것이다.
육합귀진신공의 여섯 개 신공은 이와 같이 상호 보완적인 무공들이었다. 그것은 하나만 익힐 때보다는 두 개를 익힐 때가 훨씬 위력적이었고, 두 개보다는 세 개, 세 개보다는 네 개를 익힐 때가 더 큰 효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하나 여섯 개의 무공을 모두 익혔다고 육합귀진신공이 완성되는 것은 아니었다. 그것을 완성시키기 위해서는 또 다른 무엇이 필요했으며, 그것이야말로 육합귀진신공의 진정한 실체(實體)였다.
아홉 개의 비기를 모두 읽은 진산월은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그 뒤에도 아직 혈선비록이 절반 가까이나 남아 있었던 것이다. 태진강기의 구결을 넘기자 그 다음에는 뜻밖의 글이 씌어 있었다.
< 이제부터 나의 부끄러운 이야기를 해야겠다. 나는 평생 동안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 없는 삶을 살아왔다고 자부했지만, 중년에 이르러 도저히 씻을 수 없는 수치스러운 일을 벌이고 말았다. 이제부터 그 이야기를 하려 한다. 그대가 관심이 없다면 앞의 구종비기(九種秘技)를 얻게 된 것으로 만족하고 책을 없애 버리기 바란다. 나의 수치스러운 기록이 다른 누구에게 전해지는 일이 없도록…… >
진산월은 정립병이 말하는 일이 종남오선의 실종에 관한 것임을 알 수 있었다. 그로서는 오히려 그 안에 담긴 비사(秘事)를 무슨 수를 써서라도 알고 싶었던 참이었다. 그래서 진산월은 주저하지 않고 뒤의 글을 읽기 시작했다.
정립병은 산서성(山西省) 태원(太原) 출신이었다. 태원의 정가보(丁家堡)는 산서에서도 내로라하는 명문(名門)이어서 정립병은 어려서부터 체계적인 무공수련을 할 수 있었다.
그는 타고난 싸움꾼이어서 그의 아버지는 그의 성질을 죽이기 위해 고민을 하다가 당시 천하에 명성이 높은 종남파의 장문인 유백석에게 정립병을 맡겼다. 그때 정립병의 나이는 열세 살이었다. 빠른 사람은 칠팔 세에 이미 입문한 것을 생각하면 상당히 늦게 들어온 편이었으나, 정립병의 무공은 무섭도록 일취월장하여 단시일 내에 종남파의 제자들 중에서도 두각을 나타내게 되었다.
정립병이 매종도를 처음 본 것은 종남파에 들어온 지 두 달 쯤 지났을 때였다. 종남파에는 하루에도 수십 명씩 제자로 받아 달라고 오는 사람들이 많아서 제자들간에도 서로 얼굴을 잘 모르는 경우도 있었다. 당시 정립병은 스스로의 무공에 상당한 자신이 있었으므로 약간은 우쭐한 기분에 젖어 있었다. 그날도 정립병은 함께 어울려 다니는 몇 명의 일행들과 종남파의 연무장을 가로질러 가고 있었다.
그때 일행 중 하나가 한곳을 가리키며 소곤거렸다.
“저길 보라구, 저 녀석이 바로 그놈이야.”
일행의 시선이 모두 한곳으로 쏠렸다. 그곳에는 갓 열 살쯤 되었을 소년 하나가 검법을 연습하고 있었다. 소년의 몸매는 호리호리했고, 얼굴은 여자처럼 희고 고왔다. 정립병은 첫눈에 그 소년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저 계집애처럼 생긴 녀석이 누구라구?”
“저놈이 바로 매종도야. 입문한 지 이 년 반 만에 쟁쟁한 사형들을 제치고 이번에 장로회(長老會)에서 특별히 낙뢰구검(落雷九劍)을 가르쳐 주기로 했다는 놈이라구.”
정립병은 날카로운 눈으로 그 소년을 다시 한 번 훑어보았다.
“저놈이 백년 만에 제일가는 기재(奇才)라고 소문이 자자한 그 매종도라구? 여자처럼 곱상하게 생겨서 별볼일 없을 것 같은데?”
“생긴 건 저래도 성깔은 여간 아니라고 하더군. 남에게 지고는 못 사는 성미래.”
정립병은 점점 배알이 꼴리는 것을 느꼈다. 매종도라는 이름은 청운(靑雲)의 꿈을 품고 종남파에 들어온 나이 어린 제자들 사이에서 뿐 아니라 강호 전역에도 널리 알려져 있었다. 사람들은 그를 백년제일기재(百年第一奇才)라고 불렀다. 자신이 누구 못지않은 재목감이라고 스스로 자부하고 있는 정립병은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묘한 호승심(好勝心)이 일어났다.
더구나 낙뢰구검이라면 낙하구구검, 낙전칠검(落電七劍)과 함께 종남파에서도 삼락검(三落劍)으로 꼽히는 절학이 아닌가?
종남파의 무공은 모두 세 단계로 나뉘어져 있었다. 가장 기초 단계는 종남파 무공의 근간(根幹)이 되는 천하삼십육검과 장괘장권구식 등을 익히는 것이고, 거기서 한단계 더 발전하면 남자는 유운검법을, 여자는 월녀검법을 익히게 된다. 유운비수를 비롯한 몇 가지 뛰어난 절학도 이때 배울 수 있다. 이 두 단계를 모두 소화한 제자들 중 그 재질을 특별히 인정받은 사람에 한해서 삼락검과 천둔장법, 태인장(太印掌), 난화지(蘭花指) 같은 절정무공을 배울 수 있는 것이다.
입문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이제 겨우 천하삼십육검의 전반부 십이 초를 연마하고 있는 정립병으로서는 이래저래 못마땅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정립병은 자신보다 나이도 세 살이나 어리고 체구도 빈약한 매종도가 밉살스럽게 생각되어 일부러 휘적휘적거리며 그에게로 걸어갔다. 뒤에서 동문들이 그러지 말라고 소리쳤으나 정립병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이봐, 나하고 비무(比武) 좀 하자.”
정립병은 직선적인 성격답게 쓸데없는 소리를 늘어놓지 않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매종도는 수련을 하다 말고 동작을 멈추고 그를 쳐다보았다. 매종도와 시선이 마주치자 정립병은 흠칫 놀랐다. 아직 열 살밖에 안 된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매종도의 눈빛은 서늘한 무언가를 담고 있었던 것이다. 매종도는 의젓하게 고개를 저었다.
“지금은 비무를 할 수 없습니다.”
정립병은 매종도의 그런 모습이 한층 못마땅했다.
“왜 할 수 없다는 거냐? 내가 두려운 거냐?”
매종도는 정립병의 도발적인 말에도 조금도 화를 내지 않았다.
“당신은 내 적수가 되지 않습니다. 나중에 당신이 유운검법까지 배우고 나면 그때 겨루도록 하지요.”
“뭐라고?”
정립병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소리를 빽 질렀다.
“내가 적수가 안 된다고? 너 정말 그렇게 생각하고 지금은 싸울 수 없다고 말한 거냐?”
“그렇습니다.”
정립병은 화가 나기도 하고 어이가 없기도 해서 한동안 실소를 흘렸다. 그러다 이내 어깨를 쭉 펴고 매종도의 앞으로 걸어가서 우뚝 섰다.
“직접 싸워 보기 전에는 그런 말을 하는 게 아니다, 꼬마야. 상대가 아무리 하찮게 보여도 남자에게 그런 말은 모욕인 거야.”
정립병이 의외로 화를 내지 않고 침착한 표정으로 자세를 갖추고 서 있자 이번에는 매종도가 그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러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잘못 보았군요. 당신이라면 내 상대가 될 수 있겠어요.”
정립병은 담담하게 대꾸했다.
“싸움은 말로 하는 게 아니란다.”
매종도는 손에 든 목검(木劍)을 가볍게 흔들었다.
“나는 이미 준비가 되었어요.”
정립병도 허리춤에 차고 있는 목검을 서서히 뽑아 들었다.
“네가 나보다 나이가 어리니 선수(先手)를 양보하겠다.”
매종도는 고개를 흔들었다.
“당신이 나보다 늦게 입문했으니 그럴 수는 없어요.”
“고집이 센 녀석이군.”
“피차일반이죠.”
정립병은 피식 웃더니 이내 수중에 들고 있는 목검을 쳐들었다.
“그럼 내가 먼저 공격하겠다. 조심하는 게 좋을 거다. 나는 일단 손을 쓰면 사정 같은 건 봐주지 않는 성미다.”
말을 마치자마자 정립병은 매종도의 관자놀이를 향해 목검을 찔러갔다. 사형제들간의 비무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악독한 초식이어서 주위에서 구경하고 있던 사람들 사이에서 놀란 경호성이 터져 나올 정도였다. 정립병이 꼭 매종도에게 살수(殺手)를 쓰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다. 단지 정립병은 성격상 일단 싸우게 되면 상대가 누구이든 최선을 다하는 것이 습관화되어 있었다.
매종도는 정립병의 목검이 자신의 관자놀이 부근까지 가까이 올 때까지 가만히 있다가 훌쩍 몸을 날려 피했다. 그 동작이 너무 수월해 보여서 정립병은 약이 오르면서도 감탄하는 마음이 들었다. 정립병은 조금도 머뭇거리지 않고 몸을 옆으로 이동시키며 관자놀이를 찔러 갔던 목검의 방향을 바꾸어 매종도의 가슴팍을 내리쳤다. 얼마 전에 배운 천하삼십육검 중의 천하수조를 응용한 초식이었다. 이번에도 매종도는 뒤로 한걸음 물러나며 간단하게 정립병의 목검을 피했다.
정립병은 다시 몇 차례 날카로운 공격을 했으나, 그때마다 매종도는 옆이나 뒤로 한걸음 물러서는 동작만으로 쉽게 피해내고는 했다. 보통 사람이라면 이쯤에서 자신의 부족함을 알고 손을 멈췄을 텐데 정립병은 오히려 이를 부드득 갈며 더욱 매섭게 공격해 들어갔다. 정립병은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초식을 사용해서 쉬지 않고 목검을 휘둘렀다. 모르는 사람이 보았다면 불구대천의 원수를 만나서 사생결단(死生決斷)을 하는 줄 알았을 정도로 사납고 매몰찬 공격이었다. 하나 십여 초가 지나도록 매종도의 털끝 하나 건드릴 수 없었다.
‘네가 언제까지 피할 수 있나 보자!’
정립병이 불같이 화가 나서 막 검초를 좀더 매서운 것으로 바꾸려 할 때였다. 지금까지 피하기만 하던 매종도가 앞으로 다가서며 목검을 찔러 왔다. 정립병은 목검이 날아오는 것을 제대로 보지도 못했다. 왜냐하면 그가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자신의 목젖 바로 앞에 매종도의 목검이 닿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목검을 들고 정립병의 목덜미를 겨누고 있는 매종도의 자세는 어린 소년답지 않게 완벽한 것이었다. 정립병은 안면 근육을 실룩거리며 매종도를 노려보고 있더니 이윽고 고개를 떨구었다.
“내가 졌다……”
그것이 정립병이 생전처음으로 남에게 패한 순간이었다. 아울러 매종도라는 한 사람의 영상이 낙인(烙印)처럼 그의 마음 속에 영원히 새겨지는 순간이기도 했다. 매종도에게 참패를 한 후 정립병은 더 이상 거들먹거리며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지 않았다. 대신 그는 침식(寢食)을 잊고 검을 휘두르는 데 열중했다. 이대로 남에게 패한 채로 살아간다는 것은 정립병에게는 차라리 죽느니만 못한 것이었다. 정립병은 정말 미친 사람처럼 무공수련에만 매달렸다.
그 덕분인지 그의 무공은 놀랍도록 발전하여 마침내 그는 종남파에 입문한 수많은 제자들 중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존재가 될 수 있었다. 하나 그것으로 정립병이 만족할 수는 없었다. 그가 아무리 많은 노력을 하고 놀라운 성취를 이루어도 그의 앞에는 늘 한 사람이 앞서가고 있었다. 매종도야말로 그에게는 필생(必生)의 숙적이자 반드시 넘어야 할 거대한 산(山)이었다.
정립병은 열세 살 때의 참패 이후 다시는 매종도에게 도전하지 않았다. 그를 꺾을 절대적인 자신을 갖기 전에는 결코 먼저 도전하지 않으리라고 마음속으로 맹세했던 것이다. 세월이 흘러 그도 어느덧 삼십대의 나이가 되었다. 사람들은 그를 염라검객이라고도 불렀고, 혈선이라고도 불렀다. 모두들 그를 두려워하면서도 좋아했다. 하나 매종도를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는 자신과는 달랐다. 매종도에게는 친구도 없고 적도 없었다. 오직 추종자만이 있을 뿐이었다. 사람들은 정립병은 자신들과 같은 인간(人間)의 반열에 두는 대신, 매종도는 자신들과는 다른 신(神)의 반열에 올려 놓은 것이다.
정립병은 이대로 자신은 매종도의 뒤에 처져 평생을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들었다. 그리고 그때 비로소 가정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가 비선 조심향에게 구애(求愛)를 한 것도 바로 그때였다. 조심향은 며칠 동안 고민하는 모습이었으나, 마침내는 그의 구애를 받아들여 주었다. 정립병은 매종도에게 패한 이후 처음으로 순수한 기쁨을 느꼈다. 그는 조심향을 사랑할 뿐 아니라, 그녀의 재질 또한 사랑했다. 자신은 영원히 매종도를 능가할 수 없을지 모르지만, 자신과 조심향의 후손은 매종도를 능가할 수 있을 것이란 희망도 생겨났다.
하나 그의 기대는 무참히 깨어지고 말았다. 그는 자신이 분홍빛 희망에서 깨어나 절망의 나락(奈落)으로 떨어진 그 순간을 죽는 순간까지도 결코 잊지 못했다. 유난히 달빛이 밝은 밤, 정립병은 불현듯 그녀가 그리워 아무 연락도 하지 않고 그녀의 방을 찾았다. 그녀는 며칠 전부터 무언가 수심(愁心)에 잠긴 듯한 모습이었다. 그는 그녀를 위로해 주고 싶었고, 달빛을 벗삼아 그녀와 봄밤의 정취를 즐기고 싶었다.
하나 그녀의 방문을 열었을 때, 그가 본 것은 너무도 충격적인 광경이었다. 그녀는 다른 남자의 품속에 있었다. 그 남자가 매종도임을 확인하는 순간, 정립병은 도저히 자신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그녀는 매종도의 품속에 기대어 있다 문을 열고 들어온 정립병을 보고는 얼굴이 창백하게 굳어지고 말았다.
“리…… 립병!”
정립병은 한달음에 그들에게 달려가 두 남녀를 베어 버리고 싶은 욕구를 필사적으로 눌러 참았다. 대신 그는 벌겋게 핏발 선 눈으로 매종도를 노려보며 한자 한자 씹어 뱉듯이 말했다.
“너와 나는 정말 질긴 악연(惡緣)으로 뭉쳐 있구나. 이제 그 악연의 고리를 끊을 순간이 온 것 같다.”
매종도는 그때까지도 어리둥절한 모습이었으나, 그 말을 듣자 그제서야 전후 사정을 짐작했다.
매종도는 고고한 성품의 소유자였다.
정립병이 그녀와 사귀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면 결코 그녀에게 접근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나 사태는 이미 인력(人力)으로는 도저히 수습할 수 없는 상황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극렬한 질투심과 분노가 정립병의 가슴속 깊숙한 곳에 잠재해 있던 평생에 걸친 매종도에 대한 열등감과 결합하여 정립병의 몸과 마음을 송두리째 불태워 버렸던 것이다.
정립병은 애원하며 자신을 제지하는 조심향을 아랑곳하지 않고 매종도에게 결투(決鬪)를 제의했다.
“이건 당신답지 않은 짓이오. 이런 식으로 사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걸 당신도 알지 않소?”
매종도가 완곡하게 거절의 뜻을 밝혔으나 이미 분노로 이성을 잃어버린 정립병의 마음을 되돌릴 수는 없었다.
“너와 나는 물과 불처럼 서로 양립(兩立)할 수 없는 사이다. 이미 이십 년 전에 그걸 알고 있었으면서도 지금까지 모른 척 하고 넘어갔던 것이 나의 불찰이었다. 이제 우리의 승부를 결판내자. 설마 그때처럼 내가 네 상대가 되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정립병이 이렇게까지 말하는데 자존심 강하기로 이름난 매종도도 더는 물러설 수 없었다.
“당신은 물론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내 상대가 될 수 있는 인물이오.”
이렇게 해서 두 사람은 이십 년 만에 다시 검을 겨루게 되었던 것이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당시에는 목검(木劍)의 비무였으나 지금은 진검(眞劍)의 승부라는 것이었고, 당시에는 단순히 승패를 가리는 것으로 끝났으나 지금은 둘 중 한 사람이 피를 보아야만 결판이 난다는 것이었다.
막상 검을 들고 매종도와 맞서게 되자 정립병의 가슴에는 당초의 분노는 온데간데없고 기이한 호승심만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때 비로소 정립병은 지난 세월 동안 자신이 이 순간을 애태게 기다려 왔음을 깨달았다.
조심향과의 일이 아니었더라도 자신은 언제가 매종도와 이렇게 검을 맞대고 겨룰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던 것이다.
정립병은 처음부터 자신이 펼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공으로 승부를 걸었다.
매종도 또한 예전처럼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맞섰다.
처음 팔십 초 동안 두 사람은 팽팽한 국면을 유지하고 있었다.
정립병은 이 정도라면 자신도 매종도에게 승산(勝算)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동안 막연히 머리 속으로만 그리고 두려워했던 매종도의 검법은 자신의 실력으로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수준에 불과했던 것이다.
하나 정립병이 조심스럽게 자신의 승리를 점치는 순간, 매종도가 검을 앞으로 뻗었다.
그리고 이십 년 전과 똑 같은 상황이 벌어졌다.
정립병은 상대의 검을 제대로 보지도 못하고 오른 가슴이 화끈거리는 통증을 느꼈다.
그가 정신을 차렸을 때는 매종도의 검은 그의 오른쪽 가슴을 관통한 후였다.
심장이 있는 왼쪽 가슴을 노리지 않은 것이 매종도가 그에게 베풀어 준 마지막 온정이었으리라.
그 순간 정립병은 자신이 꿈꾸고 가꿔 왔던 모든 것이 와르를 무너지는 것을 느꼈다.
매종도의 무공은 자신이 생각해 왔던 그런 수준이 아니었다.
그 격차는 이십 년 전보다 더욱 벌어져 있었으며, 매종도가 마음먹기에 따라서는 팔십 초가 아니라 단 몇 초만에 승부가 가려질 수도 있었음을 깨닫게 된 것이다.
정립병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피투성이 오른 가슴을 부여잡고 미친 듯이 산 아래로 질주하는 것뿐이었다.
정립병이 상처를 치유하는 데는 삼 개월이 걸렸다.
하나 무너진 자존심과 꺾여진 호승심은 좀처럼 회복될 줄을 몰랐다.
정립병은 폐인(廢人)처럼 하루하루를 보내다가 어느 날 문득 거울을 쳐다보았다.
그 안에는 절망에 찌들고 인생에 실패한 한 남자의 시들어 버린 얼굴이 있었다.
정립병은 그 얼굴을 보고 벼락에 정수리를 관통당하는 것 같은 충격을 받았다.
그 길로 그는 구석에 처박아 놓았던 자신의 검을 들고 산으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다시 검법을 연마하기 시작했다.
마치 몇십 년 전에 처음 설레는 마음을 안고 종남파에 들어왔을 때처럼 새로운 마음으로 검법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머리 속에 한 가지 초식이라도 떠오르면 닥치는 대로 고수들을 찾아다니며 비무(比武)를 했다.
종남파에 누(累)가 될 것을 염려해 복면을 하고 다니는 것이 그가 종남파를 위해서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다.
그리고 언제부터인지 사람들은 그를 혈삼객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이런 세월이 몇 년 간 계속되었다.
그에 따라 혈삼객이란 이름은 강호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게 되었다.
하나 정립병은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가 비무행(比武行)을 하는 것은 매종도를 꺾을 무공을 만들기 위해서이지 구차한 명성을 쌓거나 천하를 경동(驚動)시키기 위함이 아니었다.
비무를 하면 할수록 정립병의 무공은 높아졌고, 그에 따라 새로운 투쟁심도 조금씩 커져 가기 시작했다.
하나 정립병은 아직도 매종도를 이길 확실한 자신이 없었다.
매종도의 검학(劍學)이 어느 정도인지는 직접 겨루어 보았어도 정확히 알 수 없었다.
측량할 수 없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비무행을 하면 할수록 정립병의 갈등은 심해만 갔다.
과연 이런 비무행만으로 매종도를 꺾을 무공을 익힐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머리 속을 지배했다.
정립병의 무공은 종남을 떠나올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상승했지만, 정립병의 마음은 여전히 그때처럼 복잡하고 혼란스럽기만 했다.
‘과연 나는 영원히 매종도를 능가할 수 없는 것일까?’
번민에 번민을 거듭하던 정립병은 마침내 결심을 했다.
‘매종도를 찾아가자. 직접 그와 겨루어 보는 것만이 내 의문을 풀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일단 그렇게 작정하자 정립병의 마음은 한결 개운해졌다.
하나 매종도를 만나기 위해 종남산으로 돌아온 정립병은 이내 커다란 실망을 맛보아야만 했다.
매종도가 이미 오래 전에 모습을 감추어 버렸음을 그제서야 알게 되었던 것이다. 매종도가 사라진 시기는 자기가 종남산을 뛰쳐나온 시기와 일치했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그 뒤를 이어 약속이나 하듯이 조심향과 우일기도 모습을 감추어 버렸다는 것이었다. 정립병은 매종도의 행방을 찾아 천하를 이 잡듯이 뒤지고 다녔다. 하나 매종도는 어디로 사라졌는지 도저히 찾을 수가 없었다. 조심향과 우일기의 행방마저 묘연해졌다. 정립병은 허탈한 마음을 가눌 길이 없었다. 매종도를 꺾기 위해 그렇게 모진 고생을 했는데, 그를 상대하기는커녕 행방마저 알 수 없게 되어 버린 것이다. 낙심(落心)한 정립병은 종남산으로 돌아올 결심을 했다. 자신을 비롯한 종남사선이 모두 실종됨으로써 위기에 빠진 종남파를 이대로 내버려둘 수 없다는 생각에서였다. 결국 종남산을 떠난 지 십오 년 만에 정립병은 다시 종남산의 땅을 밟게 되었다. 종남파로 귀환하기 전에 그의 발길은 종남산에서도 절경으로 유명한 누관으로 향했다. 누관의 경치를 쳐다봄으로써 마음속의 시련과 번민을 잊고자 했던 것이다. 한동안 중봉의 정상에 서서 누관을 감상하고 있던 정립병은 문득 누군가가 자신을 쳐다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 느낌을 따라 고개를 돌린 정립병은 이내 그것이 사람의 시선이 아니라 커다란 바위에 뚫린 작은 구멍임을 알게 되었다. 비위가 꼭 사람의 얼굴처럼 생긴 데다 두 개의 작은 구멍이 눈을 연상케 해서 그런 착각이 들었던 것이다. 정립병은 무심코 작은 구멍에 손을 넣었다가 그 안에서 하나의 낡은 쪽지를 발견했다. 쪽지에는 짤막한 두 개의 문장이 적혀 있었다.
< 얻고 싶은가? 그러면 파(破)하라! >
정립병은 영문을 몰라 고민하다가 사람의 얼굴 모양을 한 그 바위를 부수어 버리기로 결심했다. 바위가 부서지자 뜻밖에도 작은 동혈이 나타났다. 그 동혈을 따라 내려온 정립병은 이내 하나의 오래된 석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석실 안에는 돌침상이 있었고, 그 위에 한 사람이 정좌(正坐)를 한 채 앉아 있었다. 정립병은 그 사람이 살아 있는 사람이 아니라 이미 오래 전에 좌화(坐化)한 시신임을 알아보았다. 시신은 얼마나 오래되었는지 입고 있는 장포가 완전히 바삭바삭해서 손가락으로 건드리기만 해도 가루가 되어 흩날려 버렸다. 하나 시신 자체는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생생했다. 정립병은 그 시신이 살아생전에 공력(功力)이 하늘에 닿은 절대의 고수였음을 알고, 마음속으로 그에 대한 호기심이 구름처럼 일었다. 대체 어떤 고수이기에 죽은 지 오래된 시신이 이토록 멀쩡할 수 있단 말인가? 시신의 주변을 둘러보던 정립병은 이내 하나의 책자를 발견할 수 있었다. 책자에 적힌 글자를 보는 순간, 정립병은 무릎을 꿇고 시신에 대례를 올렸다.
“종남의 십이대 제자 정립병이 조사(祖師)의 영구(靈柩)를 뵈옵니다.”
책자의 겉장에는 <유운검결(流雲劍訣), 곽일산이 남기다> 라고 쓰여 있었다. 놀랍게도 그 시신의 주인은 종남파의 전설적인 고수이며 유운검법의 창시자인 풍운무적검 곽일산이었던 것이다.
곽일산은 종남파의 오대 장문인이었다. 그는 매종도 이전에 종남파 사상 최고의 고수였으며, 검의 일대 귀재(鬼才)였다. 사람들은 풍운무적검이란 그의 별호 대신 검귀(劍鬼)라는 이름을 더 많이 불렀다. 그의 검법이 너무도 변화무쌍한 데다, 한번 펼치면 반드시 피를 보고야 말기 때문이었다. 그가 창안한 유운검법은 종남파의 무공 중에서도 가장 완성하기가 어려운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익히기는 쉽지만 그 오의(奧義)를 완벽하게 터득하기는 거의 불가능했다. 초식 하나하나마다 파생되는 변화가 너무나 무궁무진해서 한 개인이 그 변화를 모두 깨우친다는 것은 꿈도 꾸지 못할 일이었다. 그래서 유운검법은 종남파에서 삼락검보다 소홀한 대접을 받고 있었다.
곽일산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전설이 전해지고 있었다. 곽일산이 말년에 종남산의 제일 높은 봉우리에 은거하며 자신이 평생 수련한 검법을 구결로 남겼는데, 그것이 바로 유운검법이라고 했다. 곽일산은 죽기 직전 제자들을 모아 놓고, 유운검법 십팔 초를 선보였는데, 그 천변만화하는 초식의 변화에 다들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고 한다.
“이 십팔 초를 단숨에 관통할 수 있다면 능히 검(劍)으로 중원(中原)을 평정(平定)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곽일산이 죽기 직전 남긴 말이었다. 곽일산은 제자들 앞에서 유운검법 십팔 초를 모두 펼쳐 보인 날로부터 삼 일째 되는 날 숨을 거두었다고 알려졌다.
그런데 곽일산의 시신이 중봉 아래의 은밀한 석실에서 발견되었으니 정립병은 도대체 어찌된 영문인지 알 수 없었다. 그 의문은 곽일산이 남긴 유운검결의 뒷부분을 읽고 해소되었다.
제자들 앞에서 유운검법을 선보인 후 곽일산은 그 검법에 한 가지 미진함을 깨달았다. 그 미진함을 해결하지 않고서는 십팔 초의 유운검법을 일통(一統)시킬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는 죽음을 가장하여 사람들의 이목을 속인 후, 은밀히 보아 두었던 중봉 아래의 석실에서 은거에 들어간 것이다. 그는 자신이 창안한 유운검법의 허점을 해소하기 위해서 오랫동안 연구에 연구를 거듭했다. 하나 풀릴 듯 풀릴 듯하면서도 그것은 쉽사리 풀리지 않았다. 곽일산은 자신의 수명이 그리 오래 남지 않았음을 깨닫고 자신이 지금까지 얻은 심득(心得)을 남겨 후대(後代)의 누군가가 그 과업을 이어 주기를 기대했다. 그가 자신의 석실 입구에 바위를 세우고 그 안에 쪽지를 남긴 것은 바위를 부술 만한 담력과 지혜, 용기를 가진 자를 얻기 위해서였다. 더구나 이곳은 종남파와 지리적으로 가까우므로 종남파의 고수가 찾아올 확률이 높았다. 곽일산의 기대대로 비록 수백 년의 세월이 흐르기는 했으나, 종남파의 제자인 정립병이 그의 거처를 발견했던 것이다. 곽일산은 유운검결의 후반부에 몇 가지 유언(遺言)을 남겼다. 자신이 시신을 화장(火葬)해서 그 유골을 종남산에 골고루 뿌려 줄 것, 자신이 미완성한 유운검결의 마지막 부분을 완성하여 검으로 중원을 평정할 것, 그리고 만에 하나 그 검결을 완성하지 못하면 결코 이 석실을 벗어나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정립병은 곽일산의 유언대로 그의 시신을 화장하였다. 진산월이 중봉의 돌무더기에서 보았던 커다란 사리는 그때 나온 것이었다. 평생을 독신(獨身)으로 지내며 검도(劍道)에만 매진했던 곽일산이었기에 그러한 사리가 나올 수 있었던 것이다. 곽일산의 유골을 화장한 다음 정립병은 설레는 마음으로 유운검결의 마지막 부분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곽일산이 남긴 것은 미완성의 검보(劍譜)이기는 했으나, 그 안에 있는 내용은 실로 놀라운 것이었다. 그것은 기존의 상념을 송두리째 바꾸는 검학(劍學)이었으며, 정립병이 그토록 염원하던 궁극의 단계이기도 했다. 정립병은 이 검초를 완성하기만 하면 매종도의 검학을 능히 능가할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정립병은 침식을 잊고 검초를 연구하는 데 골몰했다. 식수는 석실의 한쪽 구석에서 나오는 샘물을 이용했고, 음식은 곽일산이 잔뜩 준비해 둔 벽곡단으로 대신했다. 밤낮을 모르고 연구에 연구를 거듭하던 정립병은 곽일산이 채워놓지 못한 미완성 검초의 많은 부분을 보완할 수 있었다.
이렇게 오랜 세월이 흘렀다. 중년이었던 정립병의 머리는 점점 하얗게 변하기 시작했고, 팽팽하던 얼굴에도 주름살이 늘어났다. 하나 결국 검초는 완성되지 못했다. 그것은 한 개인이 완성하기에는 너무도 방대하고, 복잡하며, 무궁무진한 변화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었다. 검의 일대 귀재인 곽일산이 평생을 걸며 매진(邁進)해 온 길을 또 다른 검의 기재인 정립병이 수십 년 간 갈고 닦았다. 그런데도 그 길은 아직도 끝나지 않고 있었다. 정립병이 자신의 운명을 깨달은 것은 검초를 연구한 지 이십 년이 지날 무렵이었다. 정립병은 자신의 대(代)에는 그 검초를 완성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자신은 결국 곽일산의 유업(遺業)을 후대의 누군가에게 이어 주는 연결고리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는 곽일산이 했던 것처럼 석실의 입구에 돌을 쌓아놓고 연자(緣者)를 기다렸다. 그리고 그 연자가 곽일산이 기다리는 종남파의 인물이기만을 간절히 염원했다. 그 염원이 헛되지 않았는지, 이백 년이 지난 오늘에 와서야 진산월이 이곳을 찾아왔다. 곽일산으로부터 시작해서 물경 사백 년이라는 엄청난 세월이 흘러서야 겨우 운명(運命)은 제대로 된 길을 찾게 되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