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림천하 8권 고목생화(枯木生花)편 : 2화
제68장. 동부인연(洞府因緣)
해가 기울고 있었다. 갑자기 날이 어두워지며 날씨가 한결 차가워졌다. 유소응(劉小鷹)은 어깨를 바짝 움츠린 채 양손을 호호 불었다. 싸늘한 바람이 얇은 마의(麻衣) 사이를 예리한 칼날처럼 날카롭게 파고들었다. 문득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자, 회색으로 물들어 가는 하늘 한편에 검은 구름이 점차로 다가오고 있었다. 유소응의 얼굴이 자신도 모르게 찌푸려졌다. 눈이 오려는 징조임을 한눈에 알아보았기 때문이다. 눈은 그에게는 가장 큰 적(敵)이나 마찬가지였다. 눈은 추위와 굶주림의 상징이었고, 추위와 굶주림은 그에게 죽음을 이미했다.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다. 예전에 그가 살던 곳은 여기처럼 춥지도 않았고, 굶주림에 허덕이지도 않았다. 푸른 대초원(大草原)이 끝없이 펼쳐져 있었고, 언제든지 신선한 양젖과 양고기를 먹을 수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곳에는 할아버지가 있었다. 할아버지를 생각하자 유소응의 콧등이 시큰거리며 눈알이 빨개졌다. 할아버지는 언제나 말씀하셨다.
“작은 매야, 세상은 언제나 공평하단다. 조금도 넘치거나 모자라는 법이 없지. 추운 겨울이 있기 때문에 봄의 따스함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지는 거란다. 지금 네가 춥고 힘들다면 그건 머지않아 네게 따뜻하고 좋은 일이 생길 거란 징조다. 그러니 참고 기다리면 언젠가는 반드시 좋은 날을 볼 수 있을 거야.”
유소응은 할아버지의 말이라면 절대로 틀릴 리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할아버지…… 그때까지 견디기가 너무 힘들어요.’
할아버지는 또 말씀하셨다.
“외로움은 누구나가 느끼고 있는 것이다. 아무리 화려한 잔치를 벌이고 많은 사람들 속에 휩싸여 있어도 외로움을 느낄 수 있지. 하지만 마음속에 소중한 사람들을 담고 있으면 어떠한 장소, 어떠한 상황에서도 외로움을 이겨낼 수 있다. 외롭다고 생각되거든 네게 소중한 사람들을 떠올리렴.”
유소응은 머리 속으로 할아버지의 모습을 그려보았다. 할아버지의 커다란 키와 강철처럼 단단하고 넓은 가슴, 그리고 매보다 더욱 날카롭고 빛나는 눈을 떠올렸다. 굵직한 음성과 야생마보다 더욱 튼튼한 다리, 그리고 거칠고 투박한 손을 생각했다. 그러자 마음속 외로움이 한결 가시기 시작했다. 할아버지는 대초원의 누구보다도 빠르고 강인한 사람이었다. 할아버지와 함께라면 어떤 것도 두렵지 않았다. 외로움을 느낄 겨를 같은 것도 있을 리 없었다. 그가 할아버지와 생활한 것은 단 삼년에 불과했지만, 그것은 그에게는 다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시간들이었다.
걱정했던 것처럼 하늘에서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유소응은 눈을 피하기 위해 주위를 두리번거렸으나, 마땅히 쓸 만한 곳이 눈에 띄지 않았다. 이곳은 종남산에서도 험하기로 유명한 자각봉(紫閣峯) 근처였다. 산세가 수려하면서도 기암절벽이 많아서 봄과 가을이면 유람객들의 모습도 곧잘 눈에 띄었다. 하나 지금은 매서운 한풍이 몰아치는 한겨울인지라 사람들의 모습이 보일 리 없었다. 유소응은 눈발을 피해 이리저리 뛰어다니다가 계곡 옆에 하나의 동굴을 발견하고는 그곳으로 뛰어갔다.
“휴우……”
막 동굴로 뛰어들어 한숨을 돌리던 유소응은 이내 깜짝 놀랐다. 동굴 안쪽의 깊숙한 곳에 기괴한 그림자가 웅크리고 있었던 것이다.
“누…… 누구요?”
유소응은 가슴이 덜컥 내려앉음을 느끼고 떨리는 음성으로 물었다. 그림자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유소응은 언제든지 밖으로 달려나갈 수 있게 준비를 하며 긴장한 얼굴로 그림자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차츰 동굴 안의 어둠이 눈에 익자 그림자의 모습이 분간이 되기 시작했다. 그림자는 과연 사람이었다. 그림자의 모습을 확인하자 유소응은 다시 한 번 놀랐다. 사람은 사람인데, 그 몰골이 실로 괴이하기 이를 데 없었던 것이다. 산발한 머리카락은 얼굴을 온통 뒤덮은 채 허리 아래까지 늘어져 있었고, 검은 수염이 코와 턱 아래에 무성하게 나 있었다. 입고 있는 의복은 처음에는 제법 질 좋은 옷감이었을지 모르나, 지금은 얼마나 때가 끼었는지 아예 반질반질했다. 산발괴인은 동굴 벽에 등을 기댄 채 편안한 자세로 앉아 있었다. 그의 옆에는 누더기 같은 것으로 둘둘 만 길다란 물체가 놓여져 있었는데, 모양새로 보아 검(劍)인 것 같았다. 유소응은 쭈삣거리고 서 있다가 괴인이 아무런 움직임도 없자 조심스런 동작으로 동굴 입구에 쭈그리고 앉았다. 괴인은 그가 온 것을 알았을 텐데도 조금의 미동도 없었다. 심지어는 고개조차 돌리지 않아서 그의 가슴팍 부근이 가볍게 오르내리고 있는 것을 보지 않았다면 시체로 오인할 정도였다. 유소응은 눈이 그치기를 초조하게 기다리며 동굴 밖을 내다보았다. 의식적으로 괴인에게는 시선을 주지 않으려 했다. 하나 그래도 온 신경이 괴인에게 쏠려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눈은 좀처럼 그치지 않았다. 오히려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많이 내리는 것 같았다. 반각(半刻) 정도 시간이 흐르자 유소응은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동굴 안을 힐끔거렸다. 그때까지도 괴인은 그 자리에 똑 같은 자세로 꼼짝도 않고 앉아 있었다. 동굴 속의 어두운 곳에 있기 때문에 자세히 확인할 수 없었으나 괴인은 무척 큰 키에 앙상하게 마른 몸을 하고 있었다. 너덜너덜하게 소맷자락 사이로 드러난 괴인의 팔은 너무 말라서 마치 말라비틀어진 나뭇가지를 보는 것 같았다. 유소응은 괴인의 모습이 꼭 커다란 대나무 가지에 넝마를 걸어놓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시름도 잊고 혼자 키득거렸다. 그때 지금까지 한마디도 하지 않던 괴인이 불쑥 입을 열었다.
“무엇이 우습지?”
마치 지하의 깊은 동굴 속에서 흘러 나오는 듯한 음성이었다. 그리 크지 않았으나, 왠지 듣는 사람의 마음을 묘하게 뒤흔드는 그런 음성이었다. 유소응은 움찔 놀라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
“아무 것도 아니에요.”
잠시 동굴 속에 기이한 침묵이 감돌았다.
유소응은 절로 마음이 불안해져서 몇 번이나 동굴 밖으로 나갈 생각을 했으나, 이렇게 눈이 쏟아지는 날에 어두운 산속으로 나갔다가는 큰일을 당하기 십상임을 알고 있었기에 억지로 마음을 눌러 참았다. 원래 그는 나이답지 않게 자제심이 강한 편이었다. 괴인이 다시 침묵을 깼다.
“몇 살이냐?”
유소응은 괴인의 질문에 잠시 머뭇거렸으나 이대로 입을 다물고 있기보다는 그래도 대화를 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는지 조그만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열한 살이에요.”
“혼자 겨울산을 타기에는 어린 나이군. 이 일대는 주위에 인가(人家)도 없는데, 무슨 일로 여기까지 왔느냐?”
유소응은 다시 머뭇거렸다. 사실대로 말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마땅히 둘러댈 말도 생각나지 않았다. 유소응이 고민스런 표정을 짓고 있을 때 괴인의 음성이 다시 들려 왔다.
“대답하기 싫으면 하지 않아도 된다.”
여전히 나직하면서도 울림이 강한 음성이었으나, 그 말을 듣자 유소응은 왠지 눈앞의 괴인이 처음처럼 두렵게 생각되지 않았다.
“고마워요.”
“누구든 남에게 말하기 싫은 사정이 있는 법이지. 부모님은 계시냐?”
유소응은 말없이 고개를 흔들었다. 괴인이 다시 입을 다물었다. 유소응은 그가 이것저것 꼬치꼬치 물을까 봐 내심 걱정이 되었으나, 그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자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다시 좀이 쑤셨다. 아직 어린 나이의 그로서는 지금과 같은 무거운 침묵은 많은 말을 하는 것보다 오히려 더 견디기 어려운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괴인을 힐끔거리다가 용기를 내어 물었다.
“아저씨는 이 근처에 사세요?”
괴인은 묵묵히 고개를 저었다. 유소응은 질문을 해놓고도 내심 아차 싶었다. 이 자각봉 근처에는 사람이 살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무심코 물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다시 질문을 던졌다.
“사냥꾼이세요?”
괴인은 다시 고개를 저었다.
“그러면 약초(藥草)라도 캐려고……”
괴인은 여전히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집이 어디세요?”
유소응이 네 번째 질문을 던지자 그제서야 괴인은 담담하게 대꾸했다.
“내게도 말하기 싫은 사정이 있다고 해두자.”
유소응은 공연히 머쓱해져서 입을 다물었다. 눈은 그치지 않고 계속 내렸다. 동굴 밖이 칠흑처럼 어두워지는 것을 본 유소응의 얼굴에 걱정 어린 표정이 떠올랐다. 이런 상태라면 자칫 이 동굴 속에서 하룻밤을 지새워야 할지도 몰랐다. 혼자 밤을 지새우는 것이 두려운 것은 아니었다. 그런 일은 훨씬 더 어린 예전부터 익히 겪었던 일이었다. 문제는 이런 날씨에 발이 묶여 꼼짝도 할 수 없게 된다는 점이었다. 그의 원래 계획은 무슨 일이 있어도 내일 아침까지는 자각봉을 넘어 서남쪽으로 가는 것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고향인 막북(漠北)의 대초원으로 가고 싶었으나, 그쪽 방향은 이미 막혀 있을 게 뻔했다. 그런데 오늘 밤을 여기서 지체한다면 자신의 행적이 드러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렇다고 이렇게 폭설이 퍼붓는 밤에 산을 넘을 수도 없었다. 할아버지는 늘 말씀하셨다.
“눈이 올 때는 절대로 무리해서는 안 된다. 무리하면 몸에서 땀이 나게 되고, 그 땀이 식으면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아무리 급해도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행동해라. 느린 것 같아도 그것이 눈 속에서는 가장 빠른 길이다.”
유소응은 할아버지의 말이라면 단 한마디도 빼놓지 않고 모두 기억하고 있었다. 할아버지의 말은 언제나 옳았다. 이번에도 옳을 것이다. 그래서 유소응은 초조해지려는 마음을 억지로 눌러 참으며 그 자리에 꼼짝도 않고 앉아 있었다. 날씨는 점차로 추워져서 매서운 한기가 옷 속을 사정없이 뚫고 들어왔다. 이런 추위 속에서 잠이 든다는 것은 죽음을 자초하는 일이었다. 그때 갑자기 동굴 속의 괴인이 벌떡 일어났다. 유소응은 깜짝 놀라 괴인을 쳐다보았다. 자리에서 일어선 괴인의 키는 예상보다 훨씬 컸고, 몸은 훨씬 더 말라 있었다. 산발한 머리에 더부룩한 수염이 뒤덮인 얼굴은 거죽만 남은 것 같았고, 해진 옷자락 사이로 드러난 앞가슴은 가슴뼈가 그대로 드러나 보일 정도로 앙상했다.
휘익!
한 줄기 바람이 동굴 안으로 몰아치자 괴인의 산발한 머리카락이 귀곡성(鬼哭聲)이라도 울리듯 펄럭거렸다. 그 바람에 드러난 괴인의 얼굴을 본 유소응은 오싹 소름이 돋았다. 짙은 음영이 드리워진 괴인의 왼쪽 뺨에는 움푹 파인 흉터가 생생하게 드러나 보였던 것이다. 광대뼈가 튀어나오고 뺨이 홀쭉하여 비쩍 마른 얼굴에 새겨진 흉터는 그의 인상을 한층 더 냉막하고 차갑게 보이게 했다. 제아무리 철석간장의 호한(豪漢)이라 할지라도 칠흑 같은 동굴 속에서 이런 몰골의 괴인을 만난다면 가슴이 섬뜩해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더구나 유소응은 이제 겨우 열 살이 조금 넘은 어린 소년이었다. 그가 놀라기는 했어도 두려움에 떨지 않은 것은 순전히 괴인이 자신을 해치지는 않을 거라는 이상한 예감 때문이었다. 괴인은 성큼 그에게 다가왔다. 단지 한 걸음을 내디딘 것 같은데도 저만치 있던 괴인의 몸은 어느새 유소응의 바로 앞에 도달해 있었다. 가까이서 본 괴인은 유소응이 천하에서 가장 크다고 생각했던 할아버지보다 더욱 커 보였다. 괴인은 산발한 머리카락 사이로 유소응을 내려보더니 갑자기 입고 있던 누더기 같은 겉옷을 벗기 시작했다. 유소응이 어리둥절한 얼굴로 쳐다보고 있을 때, 괴인은 벗은 겉옷을 그의 어깨에 올려놓았다.
“얼어죽지 않으려면 이거라도 입어라.”
유소응이 무어라고 입을 열기도 전에 괴인은 훌쩍 동굴 밖으로 몸을 날렸다. 이어 얇은 홑옷 차림으로 폭설 속을 뚫고 어디론가로 사라져 버렸다. 유소응은 영문을 몰라 멍하니 괴인이 사라져 간 곳을 쳐다보고 있었다. 괴인이 주고 간 누더기 같은 옷은 악취에 찌들어 있었지만 그래도 유소응이 입고 있는 마의보다는 훨씬 더 따뜻했다. 겉에는 기름을 먹여 바람이 통하지 않게 했고, 안에는 솜이 덧대어져 있어 그야말로 추위를 막기에는 더할 수 없이 좋았다. 유소응은 마의 위에 헐렁한 괴인의 옷을 걸쳤다. 추위가 한결 가시며 몸이 따뜻해졌다. 그때 다시 한차례 바람이 일며 괴인이 동굴 속으로 불쑥 들어왔다. 유소응은 무언가에 홀린 사람처럼 멍하니 그를 쳐다보았다. 동굴 속으로 돌아온 괴인의 팔에는 잔나뭇가지들이 잔뜩 들려 있었다. 괴인은 유소응이 쳐다보건 말건 신경 쓰지 않고 나무들을 한쪽에 쌓은 후 품속에서 화섭자를 꺼내 불을 붙였다. 나무들은 이미 눈에 잔뜩 젖어 있어 좀처럼 불이 붙지 않았으나, 괴인이 몇 차례 손바람을 일으켜 나무를 말리자 점차로 불씨가 타오르기 시작했다.
“쿨럭…… 쿨럭……”
나무에서 나오는 연기 때문에 유소응은 자신도 모르게 몇 차례 재채기를 했다. 괴인은 다시 소매를 휘둘러 연기를 동굴 밖으로 빠져 나가게 했다. 조금의 시간이 흐르자 연기가 한결 줄어들며 모닥불이 피어올랐다. 동굴 안은 금세 따스한 열기로 훈훈해졌다. 한동안 괴인과 유소응은 모닥불을 사이에 두고 말없이 불을 쬐고 있었다. 일렁이는 모닥불 사이로 언뜻 보이는 괴인의 얼굴은 비록 마르고 강퍅하기는 했으나 왠지 부드럽고 선하게 느껴졌다. 유소응은 가만히 그를 보고 있다가 조그만 음성으로 말했다.
“고마워요.”
괴인은 그의 말을 듣지 못한 것처럼 모닥불을 다시 한차례 뒤적거리고는 동굴 벽에 몸을 기댄 채 눈을 감았다. 유소응은 그의 흉내를 내듯 자신도 몇 차례 모닥불을 뒤적거리다가 그를 힐끔 쳐다보았다. 그는 잠이 들었는지 가슴만 가볍게 들썩일 뿐 전혀 움직임이 없었다. 유소응은 두 팔로 양다리를 깍지낀 자세로 가만히 그를 응시하고 있다가 자신도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꿈속에서 유소응은 할아버지를 보았다. 할아버지는 대초원이 펼쳐지는 높다란 구릉 위에 우뚝 서 있었다. 유소응은 할아버지를 부르며 구릉 위를 달려갔다. 하나 아무리 달려도 할아버지와의 거리는 좁혀지지 않았다.
“할아버지…! 할아버지…!”
유소응은 다리가 부러질 정도로 열심히 달려갔으나 끝내 할아버지가 서 있는 곳까지 도달할 수가 없었다. 할아버지는 구릉 위에 선 채로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유소응을 물끄러미 쳐다보고만 있었다. 그 표정이 너무도 차가워 보여서 유소응은 왠지 왈칵 눈물이 쏟아질 것만 같았다.
용케도 모닥불은 아직도 꺼지지 않았다. 그리고 향긋한 내음이 동굴 안을 감돌고 있었다. 유소응은 퍼뜩 자리에서 일어나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다시 한 번 놀랐다. 괴인이 모닥불 옆에 앉아서 무언가를 굽고 있었던 것이다. 그제서야 유소응은 모닥불이 아직도 꺼지지 않은 것은 괴인이 계속 새로운 나무를 올려놓았기 때문임을 알 수 있었다. 아울러 향긋한 내음이 나는 원인도 알게 되었다. 괴인은 어디선가 토끼 한 마리를 잡아와 껍질을 벗겨 모닥불에 굽고 있었던 것이다. 내장을 깨끗하게 발라낸 다음 나무에 꿰어 모닥불 위에서 이리저리 돌려가며 굽고 있는데, 그 솜씨가 아주 능숙해 보였다. 고기가 익어 갈 때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달콤한 냄새가 났다. 그 냄새를 맡자 유소응은 자신도 모르게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그러고 보니 어제부터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산속을 해맸던 것이다. 더구나 토끼고기라니…… 고기를 먹어 본 지가 얼마나 오래 되었는지 기억도 제대로 안 날 판이었다. 유소응은 침을 꿀꺽 삼키며 괴인이 토끼를 굽고 있는 광경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토끼 한 마리를 굽는데도 괴인은 상당한 정성을 쏟고 있었다. 그냥 대충 구워서 뜯어먹어도 될 텐데 괴인은 그것이 무슨 천하에 다시없는 진미(珍味)라도 되는 양 진지한 모습으로 쉬지 않고 돌려가며 굽고 있었다. 때때로 그는 고기 위에 무언가를 뿌리기도 했다. 유소응이 자세히 보니 그것은 어떤 나무의 열매 같았다. 괴인은 손으로 그 열매를 눌러서 그 즙을 고기 위에 뿌리고 있었다. 유소응은 더 이상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
“그게 뭐예요?”
괴인은 그에게는 시선도 주지 않은 채 짤막하게 말했다.
“산초나무 열매다.”
유소응은 다시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왜 그걸 고기 위에 뿌리는 거예요?”
“다른 향신료가 없으니 이거라도 뿌려야 그럭저럭 맛이 난다.”
유소응은 이런 상태에서도 고기를 맛있게 굽기 위해 애를 쓰는 모습을 보고 참으로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앙상하게 마른 몸을 보니 그동안 제대로 먹지도 못했을 텐데 보기보다는 상당한 미식가(美食家)인 것 같았다. 고기가 구워지는 냄새는 너무도 황홀하고 자극적이어서 유소응은 연신 침을 꼴까 삼키고 있었다. 마침내 고기가 모두 구워지자 유소응은 괴인의 눈치를 살피며 고기 앞으로 슬금슬금 다가왔다. 노릇노릇 구워진 고기는 보기만 해도 먹음직스러운 것이었다. 괴인은 다시 어디선가 주워 온 듯한 비쩍 마른 나무껍질을 집어들더니 그것을 손가락으로 비벼서 가루를 내었다. 그런 다음 토끼의 다리 하나를 쭉 찢어 유소응에게 내밀었다.
“이걸 찍어 먹어라.”
유소응은 재빨리 토끼 다리를 건네 받으며 물었다.
“이건 뭐지요?”
“계피나무 껍질이다. 소금 대신 찍어 먹기에는 그런대로 쓸만할 게다.”
유소응은 토끼 다리를 계피나무 껍질 가루에 찍어서 한입 뜯어먹었다. 그 향기만큼이나 맛도 기가 막혔다. 기름기가 주르르 흐르는 토끼고기에 은은한 산초향이 배어 있는데다 계피가루 특유의 향취가 더해져서 그야말로 천하의 어떤 진미보다도 더욱 맛있었다. 유소응은 정신없이 고기를 뜯어먹었다. 토끼 다리 하나가 눈깜빡할 새 그의 입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맛있게 먹은 만큼이나 먹고 난 후의 아쉬움도 컸다. 그때 괴인이 다시 다리 하나를 그에게 내밀었다. 유소응은 자신도 모르게 그것을 받아들다가 물었다.
“아저씨는 안 드세요?”
“나는 남은 고기를 조금만 먹으면 된다.”
두 번째 토끼 다리도 순식간에 없어졌다. 일단 발동이 걸리자 자신도 주체할 수가 없어서 유소응은 염치 불구하고 계속 입과 손을 놀렸다. 결국 세 개의 토기 다리와 몸통 대부분이 유소응의 뱃속으로 들어가 버리고, 남은 것은 겨우 토끼의 앞다리 한쪽 뿐이었다. 유소응은 아직도 허기가 완전히 가신 것은 아니었으나 차마 그 마지막 남은 다리마저 먹을 수는 없어서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그것을 괴인에게 내밀었다.
“이거라도 드세요.”
언뜻 괴인의 비쩍 마른 얼굴에 미소 비슷한 것이 스치고 지나갔다. 왼쪽 뺨의 흉터가 한차례 꿈틀거린 것으로 보아 틀림없을 것이다. 차갑고 냉정한 모습이었는데도 왠지 이상하게도 마음이 끌리는 웃음이었다. 하나 그것은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고, 괴인은 다시 예의 무표정한 얼굴로 되돌아와 있었다. 괴인은 묵묵히 토끼 다리를 손에 쥐고는 그것을 내려다보았다. 마치 먹을까 말까 중대한 고민을 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유소응은 그가 그것을 먹지 않는 것은 좋지만, 바닥에 버리기라도 하면 무척 아쉬울 거라고 생각했다. 다행히 괴인은 고기를 천천히 입으로 가져가서 한입 베어물었다. 유소응이 보고 있는 동안 토끼 다리는 한점 한점 괴인의 입 속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토끼 다리를 절반쯤 먹던 괴인의 얼굴에 갑자기 이상한 표정이 떠올랐다. 그는 토끼 다리를 놓고 동굴 밖으로 걸어나갔다. 유소응은 이상한 생각이 들어 조심스레 그를 따라가 보았다.
“우웩!”
동굴 밖을 벗어난 괴인은 한쪽에 대고 토하기 시작했다. 어찌나 심하게 토했던지 지금까지 먹었던 토끼 고기는 물론이고 누런 위액까지 모두 게워냈다. 유소응은 그제서야 괴인이 저렇게 마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아마도 괴인은 몸에 병(病)이 있어서 음식을 제대로 먹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유소응은 그를 위해서 진심으로 안타까워 하는 마음이 들었다. 저렇게 음식을 맛있게 만드는 재주를 가진 사람이 막상 자신은 먹지를 못하다니…… 나중에야 유소응은 괴인이 토한 것이 몸에 병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가 너무도 오랫동안 제대로 된 음식을 먹어 보지 못했기 때문임을 알게 되었다. 삼년이라는 오랜 세월 동안 벽곡단 외에는 어떠한 음식도 먹지 못해서 뱃속이 기름진 고기를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이다. 하나 이때는 그저 괴인이 몸에 병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쓴물까지 토하고 있는 괴인에게 다가가 그의 등을 가만히 쓰다듬어 주었다. 가끔 할아버지가 과음을 하여 속이 거북해할 때 이런 식으로 등뼈를 따라 손바닥을 쓸어 주면 편안해 하셨던 것이다. 과연 괴인은 토악질을 멈추고 몸을 일으켰다.
“이제 됐다. 고맙구나.”
유소응은 공연히 쑥스러운 생각이 들어 혼잣말처럼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그건 내가 할 말이에요. 아저씨 덕분에 춥지도 않고 배고프지도 않게 되었으니까요.”
괴인은 그 말을 들었는지 담담한 음성으로 말했다.
“그건 아니지. 내가 불을 피우고 토끼를 잡은 것은 내 자신이 춥고 배고팠기 때문에 그렇다. 너와는 상관없는 일이다.”
유소응은 가만히 그의 말을 듣고 있었으나 표정으로 보아 그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것은 아닌 듯 했다. 괴인은 문득 허공을 올려다보았다.
“날씨가 청명하군.”
과연 그러했다. 어젯밤에 그토록 퍼붓던 눈은 어느새 그쳐 있었고, 겨울 특유의 시리도록 파란 하늘이 펼쳐져 있었다. 오늘따라 구름 한 점 보이지 않는 깨끗하고 맑은 날이었다. 멀리 떨어져 있는 산봉우리들이 코앞에 있는 듯이 가깝게 느껴졌다. 괴인은 한차례 주위를 둘러보더니 오른쪽 계곡 아래로 걸음을 옮기려 했다. 그러다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유소응을 돌아보았다. 유소응은 아직도 어젯밤에 괴인이 던져 준 누더기 같은 옷을 걸친 채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가뜩이나 또래의 아이들보다 유난히 깡마르고 키가 작은 그는 커다란 옷 속에 파묻혀 있는 것처럼 보였다. 차가운 날씨 탓인지 코가 빨갛게 변해 있었는데, 영락없이 길 잃은 한 마리 새끼고양이 같았다. 괴인이 계속 자신을 쳐다보고 있자 유소응은 갑자기 생각난 듯 황급히 괴인의 옷을 벗었다.
“참, 아저씨 옷 여기 있어요.”
“그냥 네가 입고 있거라.”
유소응은 굳이 사양하지 않았다. 괴인의 옷은 무척 따뜻했을 뿐 아니라 입고 있으면 왠지 모르게 마음까지 포근해지는 것 같았다. 괴인은 그를 빤히 응시하고 있다가 물었다.
“이름이 무엇이냐?”
유소응은 조그맣게 대답했다.
“유소응이에요.”
“특별히 갈 곳이 있느냐?”
유소응은 고개를 저었다.
“그럼 나와 함께 가지 않겠느냐?”
유소응은 이번에도 고개를 저었다.
“안 돼요.”
“왜 안 되느냐?”
유소응은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다가 조그만 목소리로 말했다.
“처음 만나 사람에게 너무 폐를 끼쳐서는 안 된다고 할아버지가 말씀하셨어요.”
“옳은 말씀이다. 그럼 다음에 보자꾸나.”
괴인은 휑하니 몸을 돌리더니 주저 없이 나무 사이로 사라져 버렸다. 유소응은 비록 안 된다고 말하기는 했으나, 괴인이 그 말 한마디에 이렇게 갑작스럽게 사라져 버릴 줄은 몰랐는지 내심 아쉽고 서운한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그의 이름도 묻지 않은 게 제일 아쉬웠다. 유소응은 마치 세상에 혼자 버려진 아이처럼 한동안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 지금까지도 혼자였는데, 새삼 자신이 혼자라는 생각이 뼈에 사무치게 각인되었다. 무언지 모를 외로움과 허전함이 가슴 가득 밀려왔다. 유소응은 한참이나 그 자리에 서 있다가 천천히 몸을 돌려 산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왜소한 그의 뒷모습이 유난히 쓸쓸해 보였다. 한데 막 자각봉을 내려가려던 유소응이 무엇을 보았는지 눈을 크게 떴다. 그가 내려가고 있는 길옆의 나뭇등걸에 한 사람이 등을 기댄 채 서 있는 것이었다. 그 사람은 바로 조금 전에 훌쩍 떠나버린 괴인이었다. 그를 보자 유소응의 작은 가슴에는 말못할 감정들이 소용돌이치며 지나갔다. 괴인은 빨갛게 상기된 그의 얼굴을 보며 정색을 했다.
“운 좋게도 우린 다시 만났구나. 이제 우리는 초면(初面)이 아니지?”
유소응은 금방이라도 울음이 터질 것 같은 얼굴로 한마디 말도 못하고 고개만 끄덕였다. 괴인은 다시 물었다.
“나와 함께 가지 않겠니?”
유소응의 작은 눈에 그렁그렁 눈물이 고였다. 하나 유소응은 끝내 울지 않았다. 대신 그는 괴인을 향해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따라갈래요. 아저씨를 따라가겠어요.”
괴인은 손을 내밀어 그의 머리를 한 번 쓰다듬더니 그의 손을 잡았다. 괴인은 키만큼이나 손도 컸다. 힘줄이 그대로 드러나 보였고, 손가락 마디 뼈가 울퉁불퉁하게 튀어나와 있어서 보기 좋은 손은 아니었으나, 유소응은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그 손을 마주 잡았다. 무언지 모를 이상한 온기가 손을 타고 몸 속으로 퍼져 가는 것 같았다. 괴인이 걸음을 옮기는 사이 유소응은 소맷자락으로 슬쩍 눈자위를 훔치고는 다시 그를 올려다보았다. 그의 시선은 아련히 먼 곳을 응시하고 있었는데, 그 얼굴에 떠올라 있는 표정이 실로 복잡 미묘했다. 유소응은 망설이다가 용기를 내어 아까부터 묻고 싶었던 질문을 던졌다.
“제가 아저씨를 어떻게 불러야 하죠?”
괴인은 시선을 떨구어 그를 쳐다보더니 이윽고 조용한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나중에 알려주마. 지금은 그냥 부르고 싶은 대로 부르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