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향 36권 7화 – 링카 변경백의 사막원정

링카 변경백의 사막원정

과거 알카사스 부족연합은 동서 양쪽 대륙을 나누고 있는 거대한 티투스 대사막을 건너는 대륙간 무역을 통해 부를 쌓아, 그걸 기반으로 왕국으로 발전했다.

그들은 살기 좋은 동쪽을 점령하면서 점차 그쪽으로 기반을 옮겨갔고, 그들이 빠져나간 지역을 다른 사막 부족이 이주해 들어오면서 자리 잡았다.

그 때문에 지금에 이르러 티투스 대사막의 약 90%에 달하는 지역을 차지하고 있는 건 알카사스와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사막 부족들이었다.

공간이동 마법진을 통한 무역이 정점을 달리고 있었던 때, 그때까지도 사막에 남아 육로나 해로로 무역을 하던 알카사스인들이 모두 경쟁력을 잃고 몰락해 버린 탓이다.

다른 운송수단들이 외부 세력에게 슬금슬금 점령되고 있는 걸 알카사스도 잘 알고 있었지만 그냥 놔뒀다. 어차피 교역품의 절대다수는 자신들의 공간이동 마법진을 통해 운송되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티투스 대사막 위로는 공간이동 마법진이 전혀 먹히지 않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이때 떼돈을 벌기 시작한 게 해상 무역로를 차지하고 있던 도시국가 연합이다.

하지만 그들의 전성기는 그리 길지 못했다. 실버 드래곤들이 통행세를 과도하게 요구하기 시작해, 운송료가 폭등했기 때문이다. 부담을 느낀 상인들은 하나둘씩 예전의 고전적인 방식으로 다시 돌아가 티투스 대사막을 건너기 시작했다.

이에 쌍수를 들고 환영을 한 사람들이 바로 무역로 근처에 들어와 살고 있던 사막 부족들이다.

처음에는 상인들이 던져주는 푼돈만으로도 좋아하던 사막 부족은 돈을 따라 사람들이 모여들고 점차 그 세력이 커지자 이제는 무역로 전체를 장악하려는 욕심을 내비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뒤에서 족장들을 부추기는 건 도시국가 연합이었다.

알카사스로서는 이제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안정적인 무역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무역로를 자신들의 손아귀에 넣을 필요가 있었다. 그렇기에 이번 사막 부족에 대한 대규모 정벌이 계획된 것이다.

페가수스 용병단 단장은 부대 내에 남아있는 유일한 연대장인 조지 홉킨스를 집무실로 불렀다.

“링카 변경백이 사막원정을 단행한다고 한다. 우리 쪽에 원정군의 최선두에서 군을 이끌어 달라고 요청해 왔다.”

링카 영지는 알카사스의 서쪽 관문으로서 영지의 태반이 황량한 불모지와 접해있었고, 그로 인해 무역로의 치안까지도 유지해야만 했다.

그래서 필요하다면 국경 밖으로까지 군대를 이끌고 나가 전투를 행해야만 했기에 독자적인 병권을 행사할 수 있는 영주인 변경백이 링카 영지를 다스리고 있었다.

“변경백이 원하는 게 정확하게 뭡니까?”

“현재 무역로에 자리 잡고 앉아 자신들의 영향력을 키우는 세력을 일소하고, 예전처럼 변경백이 무역로를 장악하려는 거지. 물론, 그곳을 점령하는 건 아닐 거야. 반 알카사스 노선을 걷고 있는 족장들을 처단하고, 친 알카사스 파가 그 자리를 차지하도록 하는

정도겠지.”

홉킨스는 썩 내키지 않는 듯한 표정으로 지도를 쳐다봤다.

말이 좋아 무역로 장악이지, 그건 일개 용병단 정도의 힘으로는 해낼 수 없는 의뢰였다.

사막지대라고 해서 모든 지역이 풀 한 포기 자라지 않는 불모의 대지는 아니다. 그런 곳은 사막 중심부의 극히 일부일 뿐, 나머지는 우기에 약간이나마 비도 내리고 풀도 자란다. 농사를 짓는 건 힘들지 몰라도 유목(遊牧)이라면 충분히 가능하다는 말이다.

만약 몬스터의 존재만 없었다면 수백만, 아니 어쩌면 수천만의 인구가 거주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튼튼한 방벽이 갖춰진 크고 작은 도시나 성읍을 중심으로 거주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었던 탓에 사막의 인구는 겨우 200만 정도에 머물러 있었다.

하지만 그 200만 명은 수시로 출몰하는 몬스터들을 상대로 살아남은 강인하고 호전적인 족속들이었다.

무역로는 낙타나 말에 물과 여물을 충분히 공급할 수 있고, 몬스터로부터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는 곳을 중심으로 형성되었다. 대상들을 통해 식량과 상품이 꾸준히 유입되다 보니 시간이 흐를수록 점차 그 규모도 커졌다.

특히 무역로의 핵심도시들 중 하나인 베이라 성 같은 경우 6만이 거주하는 거대한 성곽도시였다.

그에 비해서 무역로를 벗어난 위치에 있는 일반적인 성읍들의 규모는 아주 작았다.

유목을 하다 보니 10여 가구가 모여 살 수 있는 정도의 성읍을 네다섯 개 정도 보유하고 돌아가며 생활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그런 작은 성읍들이라 해도 그냥 놔둘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런 성읍이 적으로 돌아서면 자칫 뒤통수를 맞을 수도 있고, 보급로가 끊길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그 모든 지역을 다 점령하려고 했다가는 페가수스 용병단 전체가 동원된다고 해도 점령이 불가능할 정도로 티투스 대사막은 넓었고, 성읍들의 숫자도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았다.

“제가 데려갈 수 있는 병사의 숫자는 얼마나 됩니까?”

“1천을 보내달라더군.”

용병단 단장의 말에 홉킨스는 황당하다는 듯 급히 되물었다.

“설마…, 원정부대가 그 1천이 전부는 아니겠죠? 아무리 기사단이 앞서가며 크고 작은 도시들과 성읍들을 파괴해 나간다 해도, 겨우

1천 가지고는 점령지 관리조차……….”

“먼저 한 가지 분명하게 해둘 게 있다네. 기사단은 동원되지 않아.”

“설마……?”

“순수하게 병력 대 병력의 전투가 될 걸세. 변경백 직속 병력 3만, 그리고 우리를 포함해서 10개 용병단 3만 정도.”

“6만이라……………. 어려운 싸움이 되겠군요.”

홉킨스가 우려할 만했다.

사막은 평지가 주를 이루기에 매복이나 기습과 같은 작전을 짜기가 힘들다. 그리고 상대는 모두 성에 틀어박혀 있었다. 그리고 그

안에 거주하는 사막 부족들은 모두 몬스터와의 전투에 단련된 강병들인 것이다.

그런 성들을 타이탄도 없이 공성전을 통해 하나하나 제압해 나가려면 쉽지 않은 전투가 되리라.

“기밀 유지는 확실하겠죠?”

“원래는 그래야겠지. 사막 부족들이 대비하기 전에 가장 강력한 도시들부터 먼저 기습 점령해 버리는 게 최고니까 말이야. 그런데…, 문제는 그게 아니란 말이지.”

“어떤 문제인데 그러십니까?”

“변경백이 무역로를 장악하기 위해서 병력을 모으고 있다는 소문이 이미 링카 영지 전역에 쫙 퍼져있다는 사실이야.”

도무지 이해를 할 수 없는지 홉킨스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걸 보며 단장은 계속 말을 이었다.

“그리고 개전 당일, 대로를 행진하며 개전 행사를 벌여야 하니 전날 출동하는 병사들은 모두 링카 성 외곽에 집결을 완료해야 한다고 했어.”

너무나 한심스러운 작전계획에 홉킨스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 한마디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대체 뭐 하는 짓이랍니까? 정말 이해할 수가 없군요. 이건 마치 우리가 이제 공격을 할 테니 얼른 대비를 하라고 광고를 하는 거나 마찬가지 아닙니까? 사방에 흩어져 있는 사막 부족들이 한곳으로 세력을 결집하면 그 뒷감당을 어떻게 하려고요? 더군다나 그들에게는 동맹을 맺은 도시국가 연합도 있잖습니까?”

단장은 씨익 미소 지으며 말했다.

“바로 그걸세! 그걸 노린 작전이지. 변경백이 멍청하고 무능한 인물이라면 그러려니 하겠지만, 그는 아주 교활한 사람이야.” 단장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지도 앞으로 다가선 뒤 사막 남쪽 해안에 위치해 있는 세 개의 도시국가들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세 개의 도시국가들은 사막 부족들의 오랜 동맹들이었다.

도시국가라고 해서 그 규모가 작은 건 아니었다. 그 셋을 모두 합한다면 주민 수가 무려 50만에 달할 정도였으니까.

그들과 사막 부족은 무역에 있어서는 서로 경쟁 관계였지만, 군사 부분에 있어서는 동맹 관계에 있었다. 사막에 군침을 흘리는 주변의 강대한 국가들로부터 자신들을 지키기 위한 자구책이었던 것이다.

“이쪽에서 구원부대를 보내오길 유도하는 걸 거라고 나는 생각했어.”

그제서야 홉킨스는 음흉스런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흠, 제법 고민을 많이 한 작전이로군요. 어차피 도시국가로 쳐들어갈 수가 없으니 생각해 낸 게 적을 밖으로 끌어낸다라…………. 무역을 통해 부를 쌓아온 도시국가들은 실버 드래곤들에게 막대한 뇌물을 바치며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 때문에 도시국가를 침공한다는 건 도저히 불가능했다. 실버 드래곤들의 분노를 감당할 수 있다면 몰라도 말이다.

“그래, 바로 그걸세. 변경백은 도시국가를 칠 생각이 전혀 없어. 대신 원병으로 출동하는 병력만 갉아먹을 생각이지. 내 생각인데…, 이번 원정의 핵심은 도시국가들을 손봐주는 거야. 사막 부족들은 그 후에 천천히 손봐줘도 된다는 거지.”

“그렇다면 사막 부족들을 공격하는 건 결과가 어떻게 나와도 상관하지 않겠군요.”

“물론일세. 가장 중요한 건 도시국가들을 향해 미친 듯이 구원병을 요청할 정도로만 하면 돼. 나머지는 모든 게 우리 마음이야. 이건 내 생각인데, 영주군은 용병들과 함께 행동하지 않을 가능성이 커 무역로 쪽으로 가는 척하다가 시야를 벗어나자마자 남쪽으로 이동하겠지. 그리고 매복 작전에 동원되는 것도 3만이 아니라 6만 이상일 거야. 그래야 한 번에 확실하게 끝장을 낼 수 있을 테니까.” 단장의 예상대로 영주군의 모든 병력이 남쪽으로 향한다면, 용병들에 대한 감시 감독은 없을 거라는 얘기였다.

무역로상에 위치한 성읍들이 다른 성읍들보다 훨씬 거주민도 많고, 성벽에 대한 보수도 잘 되어있어 점차 도시로 발전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거기를 약탈할 수만 있다면…

순간 홉킨스의 눈이 탐욕으로 빛났다. 약탈만 허용된다면 나머지 조건은 들어볼 필요도 없었다. 용병으로서 목숨을 걸 만한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그럼 한 가지만 확실히 준비해 주십쇼.”

“말해보게. 뭐가 필요한가?”

“공성 병기를 대신할 만한 마법도구가 필요합니다. 현지에서 공성병기를 제작할 수 있을 만큼 쓸 만한 재료를 대량으로 구할 수 있을지 의문이고, 그렇다고 무거운 공성 병기들을 사막 위로 운반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닐 테니까요.”

단장은 납득했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리며 승낙했다.

“허긴~, 쓸 만한 게 있는지 수석마법사에게 물어보겠네.”

용병단 운용에 있어서 가장 기본이 되는 단위는 대대(200여 명)였다.

독립적으로 활동하기에도 적절한 숫자였고, 자잘하게 찢어 중대(50여 명) 단위로 개별행동을 하기에도 좋다.

대대 이상급을 고용할 정도로 큰 손은 그리 많지 않았기에, 연대급 단위로 용병단을 구성할 필요성은 없었다.

대신, 전쟁이나 영지전 같이 대규모 병력을 원하거나 두세 개 이상의 대대를 원하는 고객이 있을 때 연대장이 파견되어 그들을 지휘했다.

그 때문에 지금 이곳 본부에는 연대장급은 조지 홉킨스만이 남아있었던 것이다.

연대장급 간부에게 직속 부하를 배정하지 않는 건, 그 정도 위치까지 올라온 실력 있는 사내에게 5개 대대, 천 명씩이나 되는 부하들을 맡기는 게 찝찝한 일이기 때문이다.

오랜 동고동락으로 극도로 친밀해진 부하들을 이끌고 독립이라도 하겠다며 설치면 정말 난감하니 말이다.

그 때문에 붉은전갈 용병단처럼 노예를 주축으로 운용하는 용병단이 아닌 한, 대부분의 용병단은 대대 단위로 단원들을 관리하고 있었다.

일반적인 임무인 경우, 연대장은 본부 내에 남아있는 모든 대대장들을 다 불러 모아놓고 작전의 개요와 위험성, 그리고 약속된 수당 따위를 설명한 후 자신과 함께 행동하고자 하는 대대장을 선택하는 게 관례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약간 달랐다.

홉킨스 연대장은 자신과 함께 작전했으면 하는 똘똘한 대대장 다섯만을 골라 호출했다.

22대대장 스미스, 34대대장 카일, 35대대장 미하엘, 38대대장 제이슨, 56대대장 비토.

모두가 용병단이 자랑하는 역전의 용장들이었다.

홉킨스가 이 다섯 명만을 비밀리에 부른 건, 이번 작전은 구성원을 공개모집 하기에는 너무나도 기밀을 요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변경백 쪽에서 천 명 정도의 용병 고용을 타진해 왔다.”

천 명, 즉 5개 대대를 필요로 한다는데 대대장 다섯 명만을 모아놓고 설명을 하고 있다는 건, 이 모두를 다 데려가고 싶다는 뜻이라는 걸 노회한 대대장들이 모를 리 없다. 그리고 이번 작전이 상당한 기밀을 요하고 있다는 것 또한

이들 중 가장 연장자인 스미스가 대표로 홉킨스에게 질문했다.

“용병을 천 명이나 고용해서 뭘 하겠다고 하던가요?”

“요즘 들어 무역로를 장악하고 있는 사막 부족들의 횡포가 점점 심해지고 있다는 소문은 다들 들었을 거다.”

몇몇 대대장들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보며 홉킨스 연대장은 계속 말을 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욕심이 너무 과했어. 치안 확보를 해주고 통행세를 받는 정도가 아니라, 그들이 중개무역을 아예 독점하려 하고 있는 모양이야. 변경백으로서도 묵과할 수 없는 사태라고 봐야 하겠지. 변경백은 무역로 전체에 대한 정비를 원하고 있다. 이번 작전에 동원되는 병력은 총 6만. 우리는 선봉에서 치고 들어가면서 적이 정신을 차리지 못하도록 만드는 게 주 임무다.”

“6만이면…, 상당한 병력이긴 합니다만 겨우 그거 가지고 될까요? 사막 부족은 사내라면 모두가 전사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잖습니까. 그들만 해도 벅찬데 만약 동맹인 도시국가 연합에서 구원군이라도 보낸다면 아주 힘든 전투를 벌여야 할 겁니다.” 제이슨의 질문에 스미스가 슬쩍 끼어들며 대신 대답했다.

“뭐가 걱정이야? 이쪽에는 팔콘 기사단이 있는데, 솔직히 변경백이 마음만 먹으면 굳이 우리들의 손을 빌리지 않더라도 사막 부족 전체를 씨몰살 시키는 건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잖아.”

“그건 그렇지만……”

홉킨스 연대장은 가볍게 탁자를 치며 두 사람의 시선을 자신에게로 돌렸다.

“자네들에게 분명하게 짚고 넘어갈 게 있는데, 이번 전쟁에 기사단은 참가하지 않는다.”

대대장들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서로 쑤군거리기 시작했을 때, 홉킨스의 말이 계속 이어졌다.

“기사단이 참전하면 도시국가들과 친밀하게 지내고 있는 실버 드래곤들이 끼어들어 올 빌미를 제공할 수도 있기 때문이야. 그 때문에 변경백 쪽에서는 순수하게 병력 대 병력만의 전쟁을 수행하려고 하는 거지.”

스미스가 슬쩍 다른 대대장들을 쳐다보자 모두들 표정이 어두워져 있었다. 기사단이 참전하지 않으면 녹록지 않은 전투가 될 게 뻔했으니까.

스미스는 욕설을 내뱉으며 투덜거리듯 입을 열었다.

“젠장, 상당히 힘든 싸움이 되겠군요.”

“나는 그리 힘든 싸움이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번 전쟁에 변경백 쪽에서 고용한 용병만 3만이다. 그리고 변경백 쪽에서도 3만을 투입한다고 하더군. 아무리 드래곤 때문에 몸을 사린다고 하더라도 이런 중요한 전쟁에 변경백이 겨우 3만밖에 투입하지 않는다는 게 이상하지 않나?”

그 말에 대대장들도 수긍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링카 영주는 독자적인 병권을 지닌 변경백이었기 때문이다.

그 휘하의 병력은 거의 12만에 달한다. 일반적인 영주가 지니고 있는 병력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엄청난 규모였다. 그런 그가 대규모 원정을 계획하면서 자신의 병력을 겨우 3만밖에 투입하지 않는다는 게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연대장님의 생각을 듣고 싶습니다.”

대대장들도 뭔가 이상하다는 걸 느낀 듯 표정이 바뀌었고, 주위를 둘러본 스미스가 대표로 앞으로 나서며 질문을 던졌다.

닳고 닳은 부하들의 눈치 빠름에 홉킨스는 피식 웃은 뒤 지도 앞으로 걸어가 설명을 시작했다.

“내 짐작으로는…….”

홉킨스 연대장은 지도에서 링카 성에서부터 사막지대를 향해 손가락을 쭉 그으며 말했다.

“용병부대 3만을 먼저 투입하고, 영주군 3만은 후속해서 뒤따를 거라고 했다. 하지만 내 생각은 달라. 영주군은 용병부대의 뒤를 따르는 게 아니라, 이쪽으로 이동할 거야. 승리를 확실하게 굳히기 위해서 3만이 아니라 5~6만쯤 동원할 테지. 어쩌면 더 많을지도 모르고.”

홉킨스 연대장의 손가락은 링카 성에서 시작해 남쪽 사막지대로 쓱 이동했다.

그의 손가락이 최종적으로 가리킨 지점은 남쪽의 도시국가와 사막 부족의 중간지점쯤이었다.

“사막 부족을 돕기 위해 달려오는 동맹도시들의 병력을 기습하기 위해 그곳에서 매복할 거라는 말씀이십니까?”

매복 작전의 핵심은 기밀유지에 있다. 그 때문에 링카 영주는 이번 작전에 용병을 참여시키지 않고 자신의 병력만 동원하려는 것이리라.

“도시국가들의 병력을 가장 손쉽고도 확실하게 소탕하는 데는 이 방법이 최고라고 나는 생각했다. 드래곤 탓에 도시국가로

쳐들어가는 건 불가능하지. 그렇다면 밖으로 꾀어내서 없애버리는 수밖에 없는데, 사막전이라면 도시국가 쪽이 한 수 위거든. 더군다나 그놈들은 불리하면 도시 안으로 도망쳐 버리면 끝이기도 하고.”

홉킨스의 설명에 미하엘이 고개를 주억거리며 입을 열었다.

“흠, 놈들이 아무 생각 없이 허둥지둥 사막 위를 내달리도록 하기 위해서 우리가 사막 부족을 친다는 거로군요.”

“그래. 영주군이 덫을 놓고 있는 지점을 향해서 말이야………….”

눈치 빠른 미하엘이 감을 잡았다는 듯 눈을 빛내며 다시 질문을 던졌다.

“사막 부족 쪽에서 정신없이 구원요청을 하도록 만들려면 인정사정없이 몰아붙여야 할 텐데요?”

“물론이다, 제군들, 기뻐해라. 그런 이유로 몇몇 협조적인 부족을 제외하고는 전면적인 약탈이 허락되었다.”

“우와!!”

약탈이 허용된다는 말에 자리에 모인 대대장들 모두 환호성을 내질렀다. 제대로 털기만 한다면 한평생 놀고먹을 수 있는 재화를 확보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홉킨스 연대장은 피식 웃으며 양손을 들어 일단 대대장들을 진정시킨 뒤 말을 이었다.

“모두들 떼돈을 벌고 싶지?”

모두들 열기에 들떠 이구동성으로 대답했다.

“당연하죠.”

“그렇다면 보안 유지를 철저히 하도록! 부하들에게는 총 6만이 동원되어 사막으로 쳐들어갈 거라는 것 정도만 알려줘. 그리고 사방에 그 소문을 퍼트리도록 해라. 알겠나?”

“명심하겠습니다.”

“자, 또 다른 질문 있나?”

워낙에 미끼가 커서 그런지 더 이상의 의문 제기는 없었다.

단 한 번만이라도 무역로를 털어먹을 수만 있다면 악마에게 영혼이라도 팔 수 있는 게 용병들이다.

혹시나 하는 위험부담 따위는 이제 대대장들의 뇌리에 남아있지도 않았다. 대신 그들의 머릿속에는 일확천금을 얻어 호화로운 말년을 지내는 자신의 노후의 모습만 어른거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