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뢰도 1권 8화 – 하늘이 내려준 인형설삼
하늘이 내려준 인형설삼
직업을 가짐으로 나의 운명은 완전한 형태의 험하고도 넓은 끝없는 불행의 길로 완성되었다. 정말로 꽉 짜여진 불행한 운명이었다. 새벽에 일어나서 수련하고 훈련하고 사냥하고 나물 캐고 밥하고 빨래하고 오후에는 대장간에 나가 해가 질 때까지 일을 해야만 했다.
그 무겁고 거친 쇠를 다루며 하루를 보내야 했던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나의 육신은 비명을 지를 지경이었다.
하지만 대장간에서의 일을 끝마치고 지친 몸을 이끌며 가까스로 집으로 돌아온 나를 반기는 것은 따뜻하고 편안한 휴식의 손길이 아니었다. 산더미처럼 쌓인 부업 만이 피로에 지친 나를 반길 뿐이었다. 물론 나는 조금도 기쁘지 않았다. 구슬을 일일이 꿰매야 하는 책정된 하루의 작업량이 끝나면 나는 쉴 틈도 없이 다시 나무 조각을 만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처음 구슬 목걸이의 하루 작업량은 100개였지만 숙달되면 될수록 점점 더 비정하게 늘어만 나갔다. 그렇게 3년이 지나자 드디어 500개로 늘어나게 되었다. 조각 도 마찬가지였다. 나의 조각 솜씨는 나날이 발전에 발전을 거듭하여 하루에 3개 정도의 간단한 목공예품을 깎을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솜씨도 인정을 받아 받는 액수도 증가했다. 나의 작품이 만화점(萬貨店)에서 인기 상품이 되었던 까닭이었다.
그러나 나에게는 이 모든 일들이 그냥 일거리가 늘어났다는 의미 외에는 아무 것도 아니었다. 물론 사부는 수입이 늘어났다고 덩실덩실 춤을 추며 좋아했다.
난 왜 이렇게 불행할까. 마냥 하늘을 바라보며 원망했다. 눈물이 앞을 가렸다. 이때가 내 인생 최대의 암흑기로서 눈물로 밤을 지새우며 보낸 세월이었으며 너무나 힘든 나날이었다. 그렇게 3년의 세월이 흘러갔다.
만일 그 날의 행운이 없었다면 나는 분명히 과로사(過勞死)를 당해 이름 없는 들판에서 들풀을 벗삼아 묻혀 버렸을 것이다. 그 날은 새하얀 구름이 태양을 머금고 황금빛 파편을 뿜어 내며 청백의 맑은 바람이 산을 휘감고 지나가던 날이었다. 그리고 일주일에 단 한 번 대장간이 쉬는 날이었다.
하지만 나는 일주일에 단 한 번 찾아오는 벌꿀처럼 감미로운 휴식의 날에도 쉬지 못하고 나물을 캐고 사냥을 하기 위해서 산과 들을 뛰어다녀야 했다. 사악한 마수 (魔手)에 걸린 불행한 미소년의 전형적인 삶은 그야말로 비참하기 짝이 없었던 것이다.
처음 발견했을 때, 그것은 나무 그늘 아래에 하늘하늘 피어 있었다.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신비롭고 청아한 향기와 맑고 고결한 기품을 품고 있는 꽃이었다. 순간, 나의 뇌(腦)가 맹렬한 경고를 발하기 시작했다.
“이건 틀림없이 돈 된다! 백발백중 틀림없다!’
이 정도의 향기와 품위를 지니고 있는 꽃이라면 비싸게 팔릴 것이 분명했다. 이 기막히게 황홀한 향기와 우아한 자태를 보라. 한눈에 보기에도 엄청난 가치를 지니 고 있는 것 같지 않은가!
나는 조심스럽게 꽃의 주위를 파기 시작했다. 실뿌리 하나라도 다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땅을 파내려갔다. 뿌리를 다치게 되면 가치가 떨어지므로 애인 다루듯 조심조심해야만 했다. 한참을 조심스럽게 파내려가던 나는 순간 깜짝 놀라고 말았다. 땅 속에는 어른 손바닥만한 눈부신 나신(裸身)의 여체(女體)가 무릎 사이에 얼굴을 묻고 다리를 가슴까지 끌어안은 웅크린 자세로 묻혀 있었기 때문이었다. 빛나는 나신의 여체는 아름답고 고결한 기운을 한껏 뽐내고 있었다.
“꼴깍!”
목구멍 안으로 침 넘어가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 왔다. 난 무언가에 홀린 사람처럼 멍하니 나신의 여체를 바라보았다. 이렇게 갑작스럽고 기이하며 신비로운 체 험에 맞닥트린 순간, 난 무엇을 어찌해야 할지 전혀 몰랐던 것이다.
멍하니 정신을 놓고 있던 나의 코 안으로 한줄기 청아한 향기가 스며들었다. 순간적으로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나는 나의 정신 상태와 동그랗게 떠져 있는 초롱초롱 한 눈을 의심했다. 이성이 나에게 명령했다.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어떻게 손바닥만한 여자가 있을 수 있겠느냐. 아무리 세상이 뭐 같다 하지만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만일 정말로 이런 여자가 존재 한다면 내 열 손가락에 장을 지진다. 난 지금 순간적으로 무엇인가에 홀린 것이 틀림없다. 정신 차려라, 비류연! 침작하자, 침착해!’
나는 다분히 시력 저하가 의심스러운 두 눈을 눈꺼풀이 벗겨질 정도로 빡빡 비빈 다음 땅 속에서 파낸 나신의 여체를 조심스럽게 바라보았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 가, 나는 다시 한 번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곳에는 방금 전까지 그토록 눈부시던 나신의 여체는 없고 대신 한 뿌리의 산삼(山蔘)이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의 모습을 하고서 나를 홀렸으므로 아마도 전설에서나 나오는 천고의 영약 인형설삼(人形雪蔘)이 아닌가 생각되었다. 아마 나의 짐작이 틀림없으리라! 조화 (造化)를 부려 나의 눈을 현혹시킬 정도인 걸 보면 상당히는 고사하고 까마득하게 오래된 거물(巨物)임이 틀림없었다.
순간, 봉(鳳) 잡았다는 느낌이 나의 뇌리를 지배했다. 더 나아가 이걸 그냥 팔아먹어 버릴까, 라는 생각도 잠깐 해 보았다. 하지만 나는 곧 이런 생각에 수정을 가했 다. 돈이 모든 것을 우선하지는 않는 것이다. 오히려 힘든 중노동 때문에 건강이 나빠져 몸보신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고 있던 터였다. 더군다나 일단 이 빌어먹을 사부 밑에서 온갖 고생과 수모를 견디며 수행하는 이유가 천하 제일의 절세고수가 되는 것이 아니었던가. 순간적인 돈의 유혹에 흔들리기보다는 강철같이 단단한 마음으로 유혹을 뿌리치고 직접 인형설삼을 복용하기로 결정했다.
물론 이런 영약의 투약시에는 상당한 주의를 요하므로 나는 신중에 신중을 기했다. 우선 인형설삼(人蔘)을 복용하기 전에 사부가 가르쳐 준 영약 복용시 주의 사항(靈藥 服用時 主意事項)에 대해서 면밀하고 신중하게 검토해 보았다. 이렇게 나와는 다르게 영약 복용시 주의 사항을 무시하고 영약을 먹었다가 병신 또는 바 보가 되거나 심지어 죽은 사람도 허다하게 많았다. 함부로 복용한 영약은 독이 될 수도 있었다.
이런 최악의 상황이 아니더라도 영약의 기운이 완전히 녹지 않고 체내에 잠재력으로 남아 있다느니, 아니면 골수로 스며들어 막대한 잠재력을 가지게 되었다느니, 이게 녹으면 천하 제일의 엄청난 내공을 소유하게 될 것이라느니 하는 웃지 못할 소동도 종종 일어난다.
잠재력은 단지 잠재력일 뿐이다. 현실 세계에서는 그다지 소용이 없는 미지의 힘인 것이다. 잠재력은 단지 하나의 가능성일 뿐이다. 가능성은 현실에 아무런 도움 도 주지 못한다. 필요할 때 즉시 이용할 수 없는 불안정한 힘인 잠재력은 이름만 듣기 좋은 허명(虛名)에 불과한 힘일 뿐이다. 필요한 순간에 즉시 발휘되지 못하는 힘이라면 죽기밖에 더 하겠는가. 죽기 직전에 잠재력이 발휘되기를 바라는 것은 단지 운에 기대는 어리석고 무책임한 태도일 뿐이다.
믿을 수 없는 불확실한 힘에 의존한다는 것은 칼날이 코 앞을 휩쓸고 지나가는 냉혹한 강호에서 살아가는 자로서는 위험천만하기 그지없는 일이다. 이런 위험하고 웃기는 상황이 발생하지 않게 하려면 영약을 복용할 때의 주의 사항을 잘 숙지한 다음 신중을 기하여 복용하는 것이 좋다. 그래야만 영약의 모든 기운을 자신의 것 으로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영약 복용시 주의사항(靈藥 服用時 主意事項)
ᆞ영물의 내단도 포함됩니다.
하나, 영약 복용시에는 반드시 운기조식을 지속적으로 실시하여 그 기운이 완전히 녹아 자신의 힘과 융화되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완전한 힘을 얻을 때까지는 절 대 멈추지 않는다. 갑작스런 운기조식 정지는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할 위험이 있으므로 각별히 주의하자. 영약을 복용한 후에는 며칠 정도 밥을 안 먹어도 삶에 지 장 없음으로 멈추지 말고 운기조식을 계속하도록 한다.
둘, 음양(陰陽) 한쪽의 힘이 과다하게 집약되어 있는 영약이나 내단은 함부로 복용하지 않는다. 잘못 먹고 가는 수가 있다. 이때, 전문가에게 상의하는 것이 좋다. 반드시 상생(相生)하는 영약을 찾아서 같이 먹어야 한다. 잘못해서 상극(相剋)의 영약을 먹으면 필사(必死)! 즉, 반드시 죽는다는 뜻이다. 상극의 영약(또는 내단)을 같이 복용하려면 둘을 중화(中和)시켜 줄 영약이 반드시 필요하다. 구할 자신이 없으면 먹지 않는 편이 좋다. 목숨이 아깝고 오래 살고 싶은 사람이라면 반드시 명 심하도록 하라. 또한, 상생의 영약을 복용할 때에는 항상 그 비율에 주의해야 한다. 약의 비율이 다르면 나중에 부작용을 유발할 위험이 매우 높다. 깊은 주의를 요 한다.
셋, 대환단과 같은 단약(丹藥)의 영약은 그냥 먹어도 별 지장이 없다. 물론 운기조식은 필수(必須)이다. 단약이란 일반적으로 모든 성분비를 고려하여 조제되는 것 이므로 유명한 영약일수록 하나만 복용해도 위험이 없다. 그러므로 이름 없는 영약이나 가짜, 또는 유사 제품에 항상 주의하도록 해라.
넷, 식후 한식경(30분)이 지난 후 복용한다. 공복시 복용해도 큰 부작용은 없지만 삼가는 편이 좋다. 또한 식후 바로 복용하면 음식물과 함께 약효의 상당 부분이 소화되어 버리는 사태가 발생하므로 주의해야 한다. 물론 과식 후의 복용은 반드시 삼가야 한다.
다섯, 항상 부작용의 위험으로부터 주의해야 한다. 부작용의 낌새가 보이면 즉시 가까운 의원이나 전문가의 조언을 듣는 것이 좋다.
여섯, 주의 사항을 자세히 숙지한 후 복용한다.
이렇게 사부가 가르쳐 준 영약 복용시 주의 사항을 차분하게 곱씹은 나는 한입에 인형설삼을 꿀꺽했다. 청아한 향기가 입 안 가득 퍼지면서 황홀한 감미로움과 함 께 인형설삼은 눈 녹듯 사르르 녹아 목구멍을 타고 뱃속으로 흘러들어 갔다. 잠시 후, 거대한 미증유의 힘이 나의 몸 속에서 소용돌이치는 것 같은 엄청난 충격을 받 았다. 생전 처음 경험하는 막대하고 거대한 미증유의 힘을 조절하기에는 아직 나는 너무 어렸고 부족했다.
인형설삼의 힘은 성난 파도나 거대한 소용돌이처럼 나를 휘감아서 집어삼키려고 했다. 나의 영혼이 육신의 껍질을 벗고 거대한 황금빛의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 들 어가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나는 무의식중에서도 필사적으로 뇌령심법(雷靈心法)을 운용하는 수밖에 다른 뾰족한 방법이 없었다. 조금만 방심했다면 나는 거대 한 미증유의 힘에 삼켜져 흔적조차 남지 않게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영겁의 시간이 흘렀다.
얼마의 시간이 흐른 것일까? 무의식에서 의식의 세계로 돌아온 나는 서서히 눈을 떴다. 빛의 물결이 몰아치는 순간 나는 정신을 차렸다. 얼마 동안의 시간이 흘렀 는지 짐작조차 가지 않았다. 마치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고 온 구도자(求道者)와 같은 경건한 느낌마저 들었다. 온몸에서 상쾌하고 강대한 힘의 흐름이 느껴졌고 더 불어 날아갈 것만 같이 가볍고 경쾌했다.
나의 정신은 맑고 고요한 호수와도 같은 상태였다. 몸 안의 탁한 기운이 모두 빠져 나가고 맑고 청명한 기운만이 몸 안에 가득히 남아 있었다. 나는 힘을 얻었던 것 이다. 그것도 꽤 강하고 맑은 거대한 힘을…….
날아갈 듯한 정신과 육체가 되어 집으로 돌아온 나는 사부에게 나흘 동안 도대체 어디서 뭘 하다가 이제야 나타났느냐고 꾸중을 들었다. 사부는 내가 일하기 싫어 서 농땡이 치고 다녔다며 엄히 추궁했지만 나는 입을 굳게 다문 채 침묵했다. 상황 설명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 탓이었다. 아니, 무슨 일이 있어도 비밀에 부쳐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얘길 했다가 어떤 험한 꼴을 당하려고 사부한테 사실대로 고백한단 말인가! 지랄 같은 사부의 입에서 나올 말이야 듣지 않아도 뻔했다.
“이런 천하의 싸가지 없는 놈. 그런 귀한 걸 하늘 같은 사부에게 바치지 않고 널름 혼자 처먹었어! 아니 그런 귀한 게 있으면 당장 달려와 이 노쇠한 사부에게 바치 든가, 최소한 나눠 먹기는 했어야지, 너 혼자 오래도록 무병장수하자고 다 처먹어! 하늘이 너의 무병장수를 허락하고 인형설삼이 도와 준다 해도 내가 용납 못 한다. 너 어디 오늘 내 손에 죽어 봐라.”
이게 아니라면,
“아이고, 그걸 팔면 도대체 돈이 얼만데 그걸 꿀꺽해! 네놈은 네 위를 은자로 도배할 일 있냐? 그것만 제값 받고 팔았어도 이백 년은 떵떵거리며 먹고살 만한 돈을 벌었을 텐데. 그런 천재일우의 기회를 한 마디 상의도 없이 차 버리다니, 아이고 아까워라!”
이따위의 소릴 들을 게 뻔했다. 나는 그 이후의 사태를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더욱 더 철저하게 극비에 부쳐져야만 했다.
아무튼 인형설삼의 효력이 있었는지 그 날 이후로 나의 뇌령심법(雷靈心法)은 엄청나게 진보했고, 분뢰수(手) 또한 가볍게 6성 이상의 경지로 넘어서서, 드디 어 뇌금(琴)을 연주할 수 있는 단계에까지 이르렀다. 더불어 꿈에도 그리던 비뢰도(飛雷刀) 다루는 수업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더욱 신기한 것은 대장간에서 하루 종일 혹사당하고 돌아와도 전혀 피로를 느끼지 않게 되었고 오히려 온몸에서 힘이 넘쳐나 주체하기가 힘들 지경이 되었다는 사 실이다. 만일 그때 인형설삼을 먹지 않았더라면 아직도 엄청난 중노동과 사부의 비인간적인 처사에 시달리며 죽지 못하는 생을 간신히 유지하거나, 아니면 과로사 로 죽어 이미 땅에 묻혔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사람은 한치 앞의 결과보다 장기적인 안목으로 미래를 생각할 필요가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그때 나의 선택은 정말 탁월했다 할 수 있었다.
“까앙! 까앙!”
쇠망치가 철을 때리는 소리에 비류연(飛流沇)은 퍼뜩 상념에서 깨어났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회상. 상념에서 깨어난 비류연은 문득 왼손을 바라보았다. “엥, 이게 뭐야? 아니 웬 고철 덩어리가 여기에 있지? 있어야 될 검은 어디로 도망가고 초라한 고철 막대가가 들려 있는 거야?”
분명히 비류연이 달구어진 철을 두드려 만들려고 했던 검(劍)은 형체조차 남아 있지 않았고, 있는 것은 오직 엿처럼 다 구겨진 고철 막대기 하나만이 부끄러운 듯 이 들려 있었다. 정확히 얘기하자면 왼손에 쥐고 있는 집게에 잡혀 있는 고철 막대기였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빛나는 순백의 검이 되어 그 자태를 뽐내야 할 운명이었던 철(鐵)이었지만, 누구의 실수로 인해 거무튀튀한 엿가락처럼 찌그러진 고철 막대기 되는 운명이 되고 말았다. 이대로 두었다간 주인 영감이 가차없이 나의 임금에서 그 피해액을 제할 것이 분명했다.
“이런 젠장, 검을 만들 때 다른 잡생각에 빠져 있었다니! 검을 만들 때는 모든 신경을 검에 집중했어야 하는데……. 이게 다 그 빌어먹을 사부 때문이야. 휴, 할 수 없지. 처음부터 다시 만들어야 되겠군. 애초에 도움이 안 돼요, 도움이.”
재빨리 사태를 수습해 임금이 깎여 나가는 비극적인 사태를 막아 보려던 비류연의 시선이 문득 창 밖을 향했다. 이미 석양이 드리워지기 시작해 하늘빛을 붉게 물 들이고 있었다.
“어라, 벌써 해가 지고 있네! 어느새 시간이 이렇게 흘렀지? 할 수 없지. 퇴근 시간은 칼같이 지켜야 하니깐. 보상 없는 시간 외 근무는 내 신념에 어긋나는 일이 지.”
퇴근 시간을 칼같이 지켜야 한다는 사명감에 불타오른 비류연은 검이 되었어야 마땅할 고철 막대기를 한쪽 구석에 아무렇게나 던져두고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해 는 이미 서산 너머에 걸려 뉘엿뉘엿 넘어가려 하고 있었다. 붉게 노을지는 석양을 뒤로하고 비류연은 집으로 향했다. 지긋지긋하고 빌어먹을 사부가 기다리고 있는 집을 향해서…….
대장간에서 일한 지 어언 3년, 실력을 인정받아 검장(劍匠)이 되었고 그로 인해 보수도 월 은자 3냥에서 월 은자 11냥으로 올랐지만 비류연의 근무 태도(勤務態 度)는 여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