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뢰도 1권 10화 – 너희가 수뢰비(水雷飛)를 아느냐

너희가 수뢰비(水雷飛)를 아느냐

“흔들… 흔들.

지금 그의 양쪽 손아래에서 뇌인을 품은 4개의 뇌도가

서로 얽히거나 부딪침이 없이 일정한 간격, 일정한 속도로

끊임없이 좌우로 흔들리고 있었다. 천천히 서로를 교차해 가면서,

마치 가위질을 하는 듯한 규칙적인 움직임이었다.

비류연은 고요한 시선으로 전방에 서 있는 노송 한 그루를 바라보았다.

“스윽….”

땅을 바라보며 늘어져 있던 오른팔이 반원의 곡선을 그리며 우아하게 들려졌다. 땅과 수평을 이루며 앞쪽으로 뻗어진 오른손의 이동 속도는 눈에 보이지 않을 정 도로 빠른 속도가 아닌 평범하고 일상적인 속도였다. 팔의 움직임이 빠르지 않다고 해서 비뢰도의 속도가 빠르지 않은 것은 아니다. 오른손 아래에서 가위질하며 흔 들리고 있던 2개의 비뢰도 중 하나가 시선 앞쪽에 서 있는 큰 소나무를 향해 날아갔다. 빛의 강河)과 같은 우아한 꼬리를 달고서 날아가는 아름다운 비행이었다. 남아 있던 다른 하나는 지면 바로 윗지점에서 튀어 올라와 그의 오른손에 쥐어졌다. 우아한 섬뢰(閃)의 곡선이 8장 정도 앞에 우뚝 서 있는 덩치 큰 소나무의 코 앞까지 날아간 순간, 앞을 향해 뻗어 있던 비류연의 오른손 검지 손가락이 땅과 수평 방향으로 안쪽으로 접혀졌다.

비류연의 가늘고 긴 손가락이 연주하는 조율에 따라 날아가던 섬뢰는 소나무를 한 바퀴 감아 돌면서 나무 밑동을 두 동강 내고 주인의 손으로 돌아왔다. 단면 각도 를 조절해 앞쪽을 향해 경사가 나도록 잘랐기 때문에 나무는 비류연을 향하여 쓰러졌다. 의도한 대로였다.

쓰러지는 나무를 무심히 바라보던 비류연의 왼손이 다시 하늘을 바라보기 위해 반원을 그리며 움직였다. 순간, 세상을 수직 이등분하는 듯한 뇌광이 환영처럼 나 타났다 사라지면서 쓰러지는 나무를 정확히 수직으로 이등분했다.

이윽고 그의 왼손 검지가 조그만 원을 그리며 뇌령사(雷靈絲)를 한 번 감은 뒤 검지로 실을 누르며 안쪽으로 접었다. 하늘을 뚫어 버릴 듯이 날아가던 비뢰도(飛雷 刀)가 순간적으로 방향을 바꾸어 비류연의 왼손으로 돌아와 안착했다. 아직도 나무는 수직으로 이등분이 난 채 비류연을 향하여 쓰러지고 있었다.

다시 양손으로 회수된 4개의 비뢰도에 2개의 비뢰도가 더해져 6줄기의 섬광이 벼락처럼 동시에 쓰러지고 있는 나무를 향해 날아갔다. 6줄기의 빛의 길을 그리며 날아가는 비뢰도의 궤적은 마치 한 폭의 그림 같았다.

6줄기의 뇌광이 나무를 향해 날아가자 비류연의 가슴 앞쪽으로 내뻗어진 양손의 손가락이 마치 금(琴)을 연주하듯 빛의 실을 뽑아 놓은 듯한 6줄의 가늘고 투명한 현(絃) 위를 누비기 시작했다. 비류연의 연주에 따라 6개의 비뢰도들은 쓰러지는 나무를 먼저 6등분으로 정확히 나눈 후 각각의 나무토막 사이를 헤엄치듯 날아다 니며 뇌령사로 칭칭 감아 올려 소나무 토막을 조각조각 산산이 부셔 버렸다. 한 그루의 소나무가 수천 개의 조각이 되어 허공 중에 비산(飛散)되었다. 설명은 길었으나 한 순간의 꿈처럼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임무를 무사히 마친 6개의 비뢰도는 다시 주인의 품 안으로 무사히 귀환했다.

‘흐음……!’

비류연의 입가에는 가느다란 미소가 어렸다.

‘뇌광류하곡(雷光流河曲). 이만하면 괜찮은 연주였어.’

그것은 파괴를 바라는 뇌신(神)의 장엄한 연주였다. 비뢰도 한 개를 부리게 된 지 어언 3년째. 드디어 6개의 비뢰도를 부릴 수 있게 되었다. 생각하면 할수록 흐 뭇한 일이었다. 비류연은 자신의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지만 힘을 뺄 필요성은 전혀 느끼지 못했다.

“겔겔겔. 놀랍구나, 놀라워. 벌써 6개라니. 축하한다, 제자야!”

요상스런 웃음 소리와 함께 등 뒤에서 사부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비류연은 고개를 살짝 뒤로 돌렸다.

“사부? 웬일?”

짧지만 모든 의문을 함축적으로 담고 있는 질문이었다.

“녀석, 말버릇하고는!”

사부가 갑작스레 인자한 표정을 지으며 부드럽게 말하자 비류연은 즉시 경계의 표정을 지어 보였다.

“제자야, 걱정 마라. 네가 무슨 몹쓸 짓을 했다 해도 이 사부는 용서할 수 있단다. 이 사부의 하늘 저편 같은 드넓은 도량을 얕보지 마렴!”

“예? 그 대책 없는 노망(老妄)은 도대체 어디에서 기인하는 겁니까? 몹쓸 짓이라니요? 누가 보면 절 범죄자로 착각할까 무섭습니다. 그리고 도량이라니요? 사부 옆에서 지낸 지난 세월 동안 한 번도 본 기억이 없어 그게 뭔지 잘 모르겠네요.”

“허허, 네가 나를 의심하려 드는구나. 그리고, 뒤가 구린 모종의 사건이 없고서야 어찌 네가 벌써 비뢰도를 6개나 부릴 수 있는 괴현상이 일어난단 말이냐. 그것이 야말로 언어도단이 아니고 무엇이겠느냐. 그렇지?”

“내 말이 맞으니 순순히 부는 게 신상에 좋아!’

라는 의미가 담긴 사부의 날카로운 시선이 비류연을 향하자 비류연은 내심 찔끔할 수밖에 없었다. 몇 년 전 그 날에 사부 몰래 먹은 인형설삼이 생각나, 이미 소화 흡수가 다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급체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다행히 사부는 그 일에 대해 길게 물고 늘어지지 않았다. 제자의 성격을 잘 알고 있어 헛수고하기는 싫었을 것이다.

“뭐 어쨌든 좋다. 비뢰도 6개를 부릴 수 있게 되다니, 이제 드디어 상급 과정으로 넘어갈 수 있게 되었구나. 날 따라오너라.”

순간 비류연의 얼굴이 묘하게 꼬이기 시작했다.

‘상급 과정? 이 정도 수련을 했는데도 아직 중급 과정이란 말인가? 도대체 그 끝이 어디에 있기에 아직도 중간이란 거야??

비류연은 미심쩍은 생각을 지우지 못하며 사부의 뒤를 쫓았다. 사부는 그를 집에서 반 시진 정도의 거리에 있는 조그만 폭포로 데려갔다. 폭포와 부딪치는 수면은 하얀 거품을 일으키고 있었다. 폭포 밑에서 출렁거리는 물의 색깔로 가늠해 볼 때 담(潭)은 수심이 상당히 깊은 것 같았다. 폭포 줄기는 그리 세지 않았지만 약하지 도 않았다. 폭포의 한쪽 면은 5장 높이의 넓은 암벽이 서 있었고, 길은 그 위까지 연결되어 있었다. 그 암벽 위에서 비류연은 사부와 마주보고 앉았다.

“제자야, 내가 저번에 개파 조사님에 얽힌 전설을 너에게 얘기해 주었었지?”

“아, 그 금부연(金斧淵) 도끼 만행 사건 말이죠? 물론 알죠.”

“그때 조사께서 어떻게 호수 밑에서 그 무거운 도끼들을 꺼내 왔었는지 네게 얘기했었느냐?”

“아뇨. 저의 비상한 기억력을 바탕으로 검토해 볼 때 당시 사부님은 비뢰도의 상급 과정을 익히면 저절로 알게 된다고 하시면서 얼렁뚱땅 넘어갔잖아요? 이제 와 서 발뺌하는 것 아니죠?”

비류연의 목소리에는 아직 의심이 채 가시지 않고 있었다.

“바로 그렇다. 지금부터 너에게 그 상급 과정(上級科程)을 익히는 요령에 대해서 알려 주마. 이 상급 과정은 비도(飛刀)의 일반적인 상식을 송두리째 뒤집고, 약점 을 보완하기 위해 개발된 것이다. 또한 그 위의 고급 과정(高級科程)은 상급 과정(上級科程)의 연장선 위에서 사검(劍)의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개발된 수련 방법 이지. 주의해서 듣도록 해라. 나중에 ‘잘 모르겠는데요?”라고 질문하다가 얻어맞지 말고.”

비뢰문의 문주이며 자칭 천하 제일인(天下第一人) 겸 천하무적인(天下無敵人) 비류연의 사부는 앞으로 해야 될 수련 방법에 대해서 아주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하지만 사부의 설명을 경청(敬聽)하고 있던 비류연의 얼굴이 조금씩 꼬이기 시작하더니 갈수록 찌그러지고 구겨지기 시작했다. 비류연의 입 속에서는 ‘설마, 설 마?”라는 말이 맴돌다 그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무의식적인 웅얼거림을 내뱉기까지 했다. 그런 동안에 사부의 길고 긴 설명이 끝났다.

“알겠냐? 이것이 바로 수뢰비(水雷飛)라고 불리는 비뢰도의 상급편 과정이다.”

“핫, 핫, 악! 우리 사부는 농담도 잘하셔. 멋진 농담이었습니다, 사부!”

“농담(弄談)은 무슨. 그럼 열심히 하거라, 사랑스런 제자야.”

“농담이 아니에요?”

“절대 아냐!”

단호한 한마디와 함께 사부는 상냥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비류연을 절망시켰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사부의 접혀진 다리에 붙어 있는 발바닥이 비류연의 배 위로 스윽 올라와 머물렀다.

“슈욱!”

접혀진 다리가 곧게 뻗어지면서 비류연의 몸은 허공으로 퉁겨 날아갔고, 이내 그의 몸은 지탱할 곳을 잃은 채 공중에서 바동거렸다.

“어어어…….?”

다다를 수 없는 창공(蒼空)을 날길 염원하는 한 마리 닭처럼 허공을 파닥거리던 비류연은, 추락하는 것에는 날개가 없다는 진실을 몸소 증명해 보이기라도 하듯 서서히 검푸른 물결을 향해 추락해 갔다. 아무리 열심히 파닥거려 본다 해도 그의 두 팔은 날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풍덩!”

마치 커다란 돌덩이가 떨어지는 소리처럼 들렸다.

“어푸, 살려 주워! 어푸… 사부는 내 팔목과 어푸, 발목에 아푸, 차여진 것이… 어푸어푸, 무엇인지 벌써 꼴깍꼴깍, 잊었단 말야? 어푸어푸어푸 꼬르르륵.. 가라앉지 않으려고 허우적대던 몸부림도 부질없이 비류연의 몸은 서서히 물 속으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마치 물귀신에게 발목을 잡힌 사람처럼 보였다. 비류 연은 절망에 몸을 떨면서 이가 갈리는 듯 악을 내뱉었다.

‘이, 이 악마, 원수! 내 손과 발에 차여진 것이 무엇인지 알면서도 날 이 지경으로 만들다니… 두고 보자.”

계속해서 물 밑으로 가라앉고 있는 그의 팔과 다리 – 아직도 포기하지 않았는지 계속해서 허우적대고 있는 중인 – 에는 번개를 다스리는 용이 양각되어 있는 묵색 (墨色)의 용환(龍環)이 각각 한 쌍씩 차여져 있었다.

비류연(飛流沇)의 팔목과 발목에 차여진 묵색(墨色)의 용환(龍環)은 예사로운 용환이 아니었다. 겉모양만 보고 그 장신구를 어디서 샀냐고 묻다가는 당장에 비류 연의 주먹이 상대의 입을 으깨어 놓을 것이다. 비류연 스스로가 저주의 마물(魔物)이라고 이름 붙인 게 바로 이 용환이었다.

그렇다고 이것이 무슨 단추를 누르면 뿅하고 검이나 기타 오묘한 무구(武具)로 변하는 기물(奇物)이거나, 아니면 신비한 음양의 기운이 있어 차고 있기만 해도 몸 이 무수한 효능을 발휘하게 되는 그런 신비스런 보물도 아니었다. 단지 최악의 단점이자 특징이라면 지랄같이 무거울 뿐인 무식한 물건이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 는 이것을 저주의 족쇄라고 이름 붙였다.

비류연의 11살 생일날, 사부는 두 쌍의 족쇄를 선물이랍시고 사다 주었다. 그때는 용 문양도 없는 그저 검고 투박한 쇠고리였을 뿐이었다. 하지만 사부가 손수 채

워 준 그 묵환을 찼을 때의 참담한 기억은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 엿 같은 기분이었다. 어찌나 무거운지 팔이 빠지는 듯한 지독한 고통이 그를 엄습했다. 몸이 제대로 움직여지지 않은 것은 물론이었다. 그래도 그나마 1년 간 강철의 장작 패기와 빨래로 단련되어 있었기 때문에 어깨와 팔꿈치 관절이 동시다발적으로 빠지는 최악의 사태는 막을 수 있었다.

하나에 각각 20근씩 도합 80근이라고 그의 사부는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다. 그리고는 이제부터 항시 이 묵환을 차고 있어야 하며 함부로 떼 놓아서는 안 된다고 자신을 노려보는 제자에게 신신당부(상당 부분 협박이 가미된) 주의를 줬다. 수련할 때는 물론이고 일할 때나 사냥을 할 때도, 심지어 뒷간에서 볼일을 볼 때나 목 욕할 때, 또는 잠잘 때라도 반드시 차고 있어야 한다고 친절하게 협박을 했다.

비류연이 이 원수 같은 묵환(墨環)에 익숙해지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었다. 그리고, 비류연이 이 묵환에 익숙해져 아무런 불편도 느끼지 못할 때 즈음, 그는 그것이 끝이 아니라 단지 시작에 불과할 뿐임을 알 수 있었다.

다시 12살이 되던 생일날, 사부는 하나에 30근짜리 묵환을 선물이랍시고 다시 그의 팔과 발에 채워 주었다. 1년 동안 차고 있어 어느새 신체의 일부처럼 느껴지던 묵환(墨環)은 재활용을 위해 대장간 행이 되었다. 이들 사제지간의 공통점이라 한다면 돈 될 낌새가 보이는 것이라면 무엇 하나 공으로 버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좋 게 보면 투철한 근검절약 정신이고, 나쁘게 보면 자린고비 밴댕이 소갈딱지 구두쇠라 말할 수 있었다. 하지만 세상의 상식이나 타인의 시선에 얽매이지 않는 것 또 한 이들 사제지간의 또다른 공통점이었다. 도무지 주위의 시선에는 신경을 쓰지 않았다. 하긴 사실 그들 주위에 신경 쓸 만한 사람이 없다는 점도 그들에게 유리하 게 작용되었다.

사부의 진심 어린 그 진심의 선악(善惡) 여부를 떠나서 – 선물을 받은 비류연은,

“선물은 무슨 얼어죽을 놈에 선물, 이게 족쇄지 어딜 봐서 선물이란 말이야.”

라며 속으로 그의 사부를 욕해 보았지만 효과를 기대하기란 요원했다. 이렇게 비류연이 한 살씩 더 먹어 갈 때마다 그의 팔에 차여진 묵환의 무게도 각각 10근씩 늘어 가며 그 무게를 착실히 불려 나갔다. 더군다나 16살 생일 이후로는 극악하게도 무게가 20근씩 두 배로 늘어나기 시작했다. 16살부터는 어엿한 성인이라는 것 이 사부의 생각이었고, 성인은 성인에 합당한 대우를 받아야 된다는 사부의 엉터리 지론 때문이었다.

그래도 19살 생일 때에는 조금 미안했었는지 용 문양이 들어 있는 묵환을 선물로 주었다. 그 동안 받았던 묵환들은 모두가 그저 밋밋하기만 한 철환(鐵環)이었고, 안쪽 면에 ‘비류연의 몇 살 생일을 축하하며 사부가 하사.’라는 웃기지도 않은 글만이 새겨져 있었다.

지금 비류연의 나이 19살. 용환(龍環) 하나의 무게는 140근. 사지(四肢) 도합 560근. 그의 사부는 비류연의 몸을 쇠기둥에다가 밧줄로 꽁꽁 묶은 후 그를 물 속에 다가 던져 넣은 것이나 다름없는 행위를 벌인 것이다. 대들보만한 철기둥 하나랑 맞먹는 무게의 철환(鐵環)을 차고 있는 그의 몸이 물 위에 떠 있을 수는 없었다. 그 몸으로 헤엄을 친다는 것도 가당치 않은 얘기였다. 아마 잠수라면 훨씬 수월했을지도 모르겠다. 비록 두 번 다시 떠오르지 못할 잠수지만 말이다.

그는 깊은 물 속에서 탈출하기 위해서 다른 방법을 찾아야 했다. 용환을 버려 두고 오는 한이 있더라도 그는 살아야 했다. 버려 둔 묵룡환(墨龍環)을 찾기 위해서는 사부가 가르쳐 준 말도 안 되는 수행을 하는 수밖에 없었다. 성공 여부를 떠나서 말이다. 이걸 잃어 버리면 사부에게 엄청 얻어터질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