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뢰도 2권 11화 – 두 사람의 여행이 시작되었다

비뢰도 2권 11화 – 두 사람의 여행이 시작되었다

두 사람의 여행이 시작되었다

“고백은 사절이야.”

비류연이 말했다.

“뭐?”

“그렇게 뚫어지게 쳐다보지마. 부끄럽잖아!”

무슨 귀신이나 본 사람처럼 멍하니 자신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는 장우강에게 향한 말이었다. 장우강은 완전히 얼빠진 사람 마냥 넋을 놓은 채 해답의 육지가 보 이지 않는 의문의 바다 속을 열심히 헤엄치고 있는 중이었다. 하지만 아무래도 해답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 것이 이제 곧 의문의 바다 한가운데서 익사할 가능성이 다분해 보이는 얼굴이었다. 그는 도저히 이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어, 어떻게 살아 있지?”

장우강은 충격으로 혀가 굳어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는 모양이다.

“엉? 내가 언제 죽은 적 있었나? 난 그런 기억 없는데?”

당연한 걸 가지고 별소리 다 듣는다는 몸짓을 보이자 장우강의 면상이 금세 일그러졌다. 시인의 실패한 작품처럼 구겨진 그의 얼굴을 보며 비류연이 싱긋 웃었다. “그렇게 노골적으로 실망한 표정 짓지마. 대신 좋은 선물이 있어.”

지금 그는 막 화운루에서 표물 점검을 끝내고 취침하려는 중양표국 일행에게로 돌아온 것이었다. 모두들 그가 죽었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던 순간이었다. 겁도 없 이 염도의 금기를 어기고, 그 위에 도발의 기름까지 끼얹은 주제에 살아오길 희망하느냐고 생각하던 터였다. 죽음이란 당연히 예정된 수순이라 여기고 있었다. 그런 데 건방지게 운명의 예정표를 깡그리 무시하고, 신(神)과 상의도 없이 저승 사자의 엉덩이를 걷어차고 일정을 대폭 변경한 채 비류연이 급작스레 생환한 것이다.

그를 본 사람들의 표정은 정말 가관이었다. 손에 들고 있던 찻잔을 아깝게 깨 버린 사람. 손에 든 서류를 바람에 날려보내 수습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릴 것 같은 사 람. 붓을 들고 서류 정리하다 종이에 대각선의 일 자 얼룩을 남겨 새로 작성해야 되는 사람. 그리고 닦고 있던 병장기에 손을 베인 사람 등등 모두들 그를 보고 귀신 이라도 본 사람 마냥 광란에 빠진 것이다. 모두들 존재하지 않는 것을 본 사람 같은 얼굴로 비류연을 빤히 바라보자 괜히 머쓱해지는 비류연이었다.

“아, 소개할 사람이 있어요. 오늘부터 우리 표행에 합류해 남창까지 같이 갈 사람을 소개하죠.”

“누구 맘대로!”

비류연의 소개가 끝나기도 전에 장우강이 바락 고함을 쳤다. 무사 귀환한 것만 해도 울화가 치밀어 죽겠는데, 오히려 한술 더 뜨려 하고 있으니 울화통이 터질 만 했다. 그의 얼굴은 조금 전 충격의 후유증으로 창백하기 그지없었지만 다행히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다. 하지만 기혈이 뒤틀려 당분간은 절대 안정을 취해야만 했 다.

“여긴 너의 표국이 아니야. 우리 중양표국의 주인은 우리 아버지고 이 표행의 책임자도 우리 아버지야. 네 마음대로 아무런 놈팡이나 데리고 들어올 수 있는 곳이 아니란 말이야.”

“고… 공자!”

등여호가 눈깔이 뒤집혀 발광하는 장우강을 막아 보려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이미 장우강은 눈에 보이는 게 없는 모양이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국주 장우양도 처 신을 주의하는 비류연 앞에서 이처럼 천방지축으로 날뛰진 못했을 것이다.

“정말?”

“물론이다.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엔 절대 안 돼!”

자신의 눈 앞에 서 있는 사람이 여차하면 정말로 그 자신의 말대로 실행할 수도 있는 성격과 능력을 겸비한 존재라는 것을 망각한 채 함부로 내뱉은 말이었다. 비 류연으로서는 못할 것도, 꺼릴 것도 없는 일이었다. 염도의 무시무시한 홍염장의 장력 아래에서 간신히 구사일생으로 살아났는데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다시 제 무덤을 파고 있는 것이다.

“정말? 후회할 텐데…….”

“물론이다.”

장우강은 여전히 분수를 모른 채 단호하기만 했다. 하지만 중양표국 장 씨 가문으로서는 다행히도 비류연은 자신의 눈에 흙을 넣어 달라는 장우강의 청을 거절했 다. 그 대신 그가 한 일은 문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한 사람을 부르는 일이었다.

“들어오세요!”

비류연은 즐거움이 가득한 얼굴로 소리 높여 외쳤다. 그리고 한 사람이 들어오자 사람들은 모두 경악한 채, 자신이 정말 지금 현재 생시에 머무르고 있는지를 확인 하는 절차를 거쳐야 했다. 잠시 후 중양표국 일행은 얼얼한 볼을 부여잡고 눈물을 찔끔거려야 했다. 모두들 있는 힘껏 자신의 뺨을 꼬집어 비틀었던 것이다.

그 중에서 가장 놀란 사람은 다름 아닌 장우강이었다. 몇 시진 전에 염도에게 지은 죄로 생사의 기로를 헤맬 뻔한 전적이 있었으니 놀랄 만도 했다. 얼마나 긴장했 는지 비틀어 꼬집은 볼에서도 감각이 느껴지질 않았고 오금이 저려 제대로 서 있기조차 힘겨웠다. 또한 얼어붙은 냉동 동태처럼 굳어 버린 혀는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해 그 주인을 답답하게 만들었다.

“이, 이 분은…….”

“아, 아까 장소협이 말한 아무런 놈팡이죠!”

비류연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어떤 악귀의 간악하고 사악한 미소도 지금 비류연의 미소엔 비할 수 없을 거라고 장우강은 생각했다. 그리고, 자신의 부질없는 허 상 같은 자존심과 경솔함에 대해 땅을 치고 후회했다.

비류연에 대한 태도와 대우는 백팔십 도로 변모했다. 그건 염도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아니, 강호의 명성과 위치를 고려했을 때 염도에게는 당연한 대우였으므로, 오히려 그 덕에 비류연에 대한 태도가 황족(皇族)부럽지 않은 귀빈 대접으로 돌변한 것이다.

염도의 등장으로 이야기는 끝났다. 더 이상 입 아프게 혀를 놀릴 필요가 없었다. 누가 감히 염도의 비위를 거스르려 하겠는가.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할 일이다. 장 우강은 그때의 충격으로 아직도 꿀 먹은 벙어리 마냥 실어증에 걸려 말을 못하고 있었다. 비류연으로서는 장우강 앞에서 염도를 가르키며 “너의 눈에 흙을 넣어 주 실 용의가 충분히 있으신 분이셔, 인사드려.” 라고 말하지 못한 게 못내 아쉬웠다. 장우강은 염도의 등장과 함께 정신 활동을 정지해 버린 상태라 외부 자극에 아무 런 반응도 못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염도는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염도 정도의 초고수가 따라간다는데 어느 표행이 이를 반기지 않겠는가. 가만히 있는 것 자체만으로도 표물에 꼬이는 파리 떼들을 물리치는 최고 효능의 살충제이자 방패막이가 된다. 모습 하나 만으로 산적 떼들을 발바닥에 불나도록 내빼게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염도에겐 있었다.

물론 그들의 든든한 보호자가 언제 어디서 전몰(戰歿)의 파괴자(破壞者)로 뒤바뀔지 모를 일이지만 이미 선택의 여지가 없는 마당에 그런 고민은 불필요한 것이었 다. 장우양을 비롯한 중양표국 일동은 허리를 직각으로 굽히며 염도를 환영했고, 염도는 이때부터 비류연과 함께 남창으로 향하게 되었다. 이번 남창행은 염도의 계 획에 없던 일이었지만 약속은 약속이었으므로 울분을 참으며 약속을 지킬 수밖에 없었다.

염도는 한 번 못박은 약속을 기회의 반전을 틈타 무위로 돌리려 할 만큼 몰염치하지는 않았다. 그가 정한 금기(禁忌)와 그 실행 여부를 봐서도 알 수 있듯이 그는 한 번 정한 약속은 철석같이 지키고 이행하는 단순하고 고지식한 사람이었다. 이리하여 마침내 두 사람의 여행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