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뢰도 2권 12화 – 승천무제(祭)와 환장한

비뢰도 2권 12화 – 승천무제(祭)와 환장한

승천무제(祭)와 환장한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광활히 펼쳐져 있는 새파란 물빛 대지. 물새는 순풍을 타고 울고, 호변의 갈대는 미풍에 흔들린다.

이 투명한 맑음이 숨쉬는 푸름의 쪽빛 빛깔 곁에

어깨를 나란히 이웃하며, 거대히 펼쳐 솟아나 있는 인간의 손길.

난공불락(難攻不落)이라는 말을 몸소 표현이라도 하는 듯

이중으로 우뚝 솟아 있는 성벽!

그것은 무엇이든 막을 수 있는 든든한 방패처럼 철벽같이 견고하고 단단해 보였다.

이 견고하기 그지없는 성벽은 어디에서 시작해 어디에서 끝날지 모를 정도로 넓은 지역을 감싸고 있었고, 그 주위에는 적이 함부로 침입하지 못하도록 하는 해자 (공성에 대비하여 성벽 주위에 파 놓은 수로)가 있어, 하늘에서 바라보면 거대한 둥근 물의 띠를 이루고 있었다. 그 안은 수십 채의 거대하고 웅장하며 화려한 전각 들로 가득 차 있었다. 이 성채 하나가 마치 살아 있는 생물이라도 되는 것처럼 함부로 범접할 수 없는 삼엄한 기세를 내뿜고 있었다.

세상 저편으로 보이는 수평선으로부터 광활히 펼쳐진 자연의 대 절경인 파양호를 이웃하여, 장엄하게 자리한 수많은 전각들의 군집들. 이곳이 바로 강호 백도 무 림의 정수가 숨쉬는 위대한 무도(武道)의 배움터이자, 거대하고 강력한 무위(武威)를 자랑하는 강호 백도 무림의 핵심인 천무학관(天武學館)의 자리였다.

그리고 이 거대한 무위와 무력의 결정체인 천무학관과 넓고 거대한 물의 쪽빛 대지 파양호에 인접하여 자리하고 있는 도시 남창. 남창은 지금 파양호와 더불어 천 무학관이라는 거대한 존재에 의해 놀라운 번영을 이룩하고 있었다.

매일 수백 수천 명의 사람들이 왕래하고, 수백 수천 종의 물자가 쉴새없이 거래된다. 쉽게 표현하자면 눈이 핑핑 돌 정도로 엄청난 양의 물자가 들락거리며 교류되 고 있는 것이다. 천무학관에 의해 생성된 이 엄청난 수요와 공급으로 인해 필연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남창은 번영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요즘 남창에 위치한 모든 숙박 시설과 유흥 시설은 한 곳의 예외도 없이 연속적인 만원 사례를 거듭하고 있었다. 한마디로 대박이 터진 것이다. 그리하여 현 재 이쪽 업계의 주인들의 입은 좌우로 쭉 찢어져 다물어질 줄 모르고 있었다.

중원 각지에서 청운의 꿈을 품고 모여든 수많은 무림인들에 의해 숙박 업소들은 이미 빼곡이 들어 차 있었고, 주루(酒樓)에는 밤낮 없이 해와 달의 자리 바꿈을 상 관치 않고 많은 사람들이 모여 이야기와 정보를 교환하고 있었다. 물론 이 자리에서 술은 필수였다. 날밤을 지낸 후에 남은 것은 빈 술병과 빈 안주 접시뿐이라 하지 않는가.

지금 남창에 모여들고 있는 무림인 대부분이 모두 등용문을 넘어 승천을 꿈꾸는 무인들은 아니었다. 그들 중에서도 30대 미만의 청년 고수 일부만이 승천을 꿈꾸 는 무사들이었고, 나머지는 그저 그런 정도의 구경꾼들 내지는 정보 상인이나 내기꾼이었다. 물론 크게 보면 모두 구경꾼들이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어쨌든 그들이 모여든 이유는 단 하나, 곧 있으면 열릴 천무학관 최대 행사의 하나인 천무학관 입관 시험 통칭 ‘승천무제(昇天武祭)’라 불리는 무(武)의 제 전(祭典) 때문이었다.

‘승천무제(昇天武祭)’

이 얼마나 무인의 가슴을 두 방망이질 치게 만들고 무인들의 허리춤에 맨 도검(刀劍)의 신(身)을 울리게 만드는 이름인가. 이를 통과하기 위해 매년 검(劍)을 갈고, 도(刀)를 닦는 이가 수천을 쉬이 헤아린다. 그러나 그 중에도 아주 극소수만이 이를 통과해서 빛나는 영광을 거머쥐게 된다. 그리고 탈락한 대다수의 사람들은 다시 실력을 연마하여 도전에 도전을 계속하는 것이다. 이 승천무제에 합격만 한다면 강호 백도의 후기 지수로서의 한 자리가 완벽하게 보장될 뿐만 아니라 자신의 미래 는 완벽하게 보장되게 된다.

강호 백도의 실력의 척도(尺度), 무위(武位)의 가늠자, 승천무제(昇天武祭)!

그러니 누가 있어 이 승천무제에 귀를 기울이지 않을 수 있겠으며, 시선(視線)을 뗄 수 있겠는가. 그 화려한 무(武)의 축제가 지금 시작되려 하고 있다.

그 즈음, 이렇게 뜨거운 열기의 소용돌이 속에서 들떠서 흥분하고 있는 남창에 두 명의 남자가 들어섰다. 한 명은 스무 살이 되었을까 할 정도의 평범해 보이는 청 년이었고 한 명은 적발, 적염, 적미의 특이한 용모를 지닌 마흔 중반의 중년이었다.

청년의 앞머리는 길어질 대로 길어 눈을 덮고 있었기에 정확한 용모는 파악하기 어려웠으나 채 가려지지 않은 턱 선으로 보아 못 생기지는 않은 듯 하였고, 입고 있는 옷은 별 특징 없는 청색 무복으로 특별한 부분은 없었다. 반면 청년과 함께 동행하고 있는 마흔 중반으로 보이는 중년인은 한 번 보면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용 모를 가지고 있어 주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적발, 적염, 적미의 특이한 외모. 게다가 옷까지 불꽃같은 황금빛 섞인 진홍의 무복을 입고 있어 마치 하나의 거대한 불꽃 그 자체를 연상케 하였다. 허리에 매어져 있는 한 자루의 도(刀)마저도 붉은 그에게, 단 하나 진홍빛을 띄지 않은 물건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등에 지어져 있 는, 그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묵금(墨琴)이었다.

깊은 암흑을 연상하게 하는 칠흑의 묵금(墨琴)은 왠지 그 중년인을 어색하게 만들고 있어 지나가는 주위 사람들 모두 힐끗힐끗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그 중 년인이 왜 그런 묵금을 등에 지고 있는지는 그 두 사람만이 아는 사연이 있었다. 바로 비류연과 염도였다.

곧 시작될 승천무제(昇天武祭)를 관람하거나 출전하기 위해 모여든 수많은 사람들. 헤아릴 수 없이 몰려든 군중들에 의해 객점은 이미 모조리 점거된 상태였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비류연이 보란 듯 방을 구했다는 사실은 그것도 남창에서도 알아준다는 객점 – 하월루(夏月樓)에 방을 잡을 수 있었는지-불가사의한 일이 아 닐 수 없었다. 이미 모든 주루와 객점의 예약은 한 달 전에 끝나 있었다. 그러기에 방값은 천정부지로 치솟아 올랐고, 남창 전역에 위치한 인가에는 민박이 판을 쳤

다. 이 시기에 민박으로 얻는 수익은 이곳 남창의 중산층 가정에는 절대로 무시 못할 중요한 수익이자 짭짤한 이익이었다.

물론 민박 값도 승천무제의 시작일이 다가오면 다가올수록 고액으로 치솟아 올랐다. 때문에 승천무제를 구경하러 왔던 가난한 사람들의 눈에는 피눈물이 맺힐 지 경이었다. 이런 민박마저도 얻지 못한 무인들과 관전자들은 파양호 강변에 천막을 치고 잠자리를 해결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그렇기에 매년 이맘때가 되면 볼 수 있는 기풍물(奇風物)이 바로 파양호 주변을 빼곡이 채우고 있는 각양각색의 천막들이 연출해 내는 천막촌 풍경이었다. 이때 이곳 남창의 천막 장사들은 매상이 세 배 이상 뛰어오르기 때문에 일 년 수익의 절반 이상을 이 시기에 벌어들이고 있었다. 여러모로 승천무제는 이곳 남창의 경제 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상황이 이러한 때에 버젓한 객점에 자리가 있을 리 만무했다. 그런데도 비류연은 구했다. 그것도 일등급 객점이라 할 수 있는 하월루(夏月樓)에서, 그것도 최고급 으로. 하월루(夏月樓)는 여름 달이 머무는 곳이라는 운치 있는 이름을 지는 남창 제일의 객점이었다.

총 수용 인원 400명. 종업원 수 100명. 최고의 숙수(요리사)들과 최고의 미주(酒), 그리고 최고의 시설을 갖추고 손님을 편안히 모시기로 유명한 이곳은, 숙박비 도 워낙 고액이지만 이미 두 달 전에 예약이 마감된 곳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런 하월루에서 이렇게 쉽게 방을 얻다니 이것이 어찌된 일인가?

그 해답은 바로 비류연의 제자, 본인에게 물으면 비류연의 제자임을 마구잡이로 칼을 휘두르며 극구 부인할, 염도에게 있었다. 염도가 누구인가? 지금은 어쩌다 하늘의 못된 장난으로 이름도 없는 무명의 소졸 비류연에게 당해 그의 제자로 추락사에 가까운 전락(落)을 해 버린 비운의 인생이지만, 그래도 강호에서 알아주 는 천하 5대 도객의 수장이며, 강호 막강 세력인 염천도문(焰天刀門)의 문주(門主)였다. 그런 그가 방을 달라는데, 거절할 자가 누가 있겠는가. 그것도 성질이 더럽 고 급하기로 유명한 염도, 바로 그에게.

그 날로 장사 마감하고 폐호로부터의 재생과 급속한 업종 변경을 원하는 자가 아니라면 감히 꿈도 꾸지 못할 일이다. 이곳은 남창, 천하의 무인들이 모인다는 무 (武)의 집결지! 이곳에서도 일 등급으로 자리 매김 되어져 있는 하월루에서 염도를 알아보지 못할 리가 없었다. 이곳 남창에서는 무림인의 신분 파악이 장사의 성공 여부를 가늠하는 중요한 일이었다. 상대의 신분과 능력, 위치와 비중을 정확히 판단하여 절대 고수에게는 절대 거역하지 않고 기분을 거슬리지 않는 것이 바로 이곳 남창 주루 숙박 업계에서 살아남는 지름길이었다.

절대 고수의 비위를 잘못 거슬렸다가 사라진 객점과 주루가 한둘이 아니어서 열 손가락과 열 발가락으로는 다 셀 수 없는 곳이 바로 이곳 남창이 아닌가. 그러기에 이곳의 업주들은 항상 그쪽 방면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주의에 주의를 기울이고 있었다. 게다가 별의 별 무림인들이 다 모이는 곳인 만큼 사고의 위험성도 잦았다.

그런 남창에서도 염도는 특일 급(特一級)으로 분류된 절정 고수였다. 게다가 위험도와 주의도가 적색(赤色) 특(特) 제일 급(第一級)으로 분류되어 있기 때문에, 그 런 염도가 방을 요구한다면 만들어서라도 방을 마련해야 하는 것이다. 그의 특별한 외모는 그에 대한 진위 여부를 확인할 필요도 없게 만드는 것이었다. 염도만큼 신분과 용모 확인이 간단한 인물도 없었다. 게다가 그의 눈동자를 한 번만 바라본다면 더럽기로 유명한 성질을 단번에 파악할 수 있기 때문에 그의 외모는 그 자체 가 걸어 다니는 신분 증명서였다.

그러기에 하월루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방을 마련해야 했다. 그리하여 끝내 방을 마련했을 때 하월루의 지배인은 눈물을 머금었다. 해냈다는 성공과 기쁨의 눈물 은 아니었다. 자기 방을 빼앗긴 데 대한 서러움의 눈물이었다. 염도의 격에 맞는 방을 마련하기 위해 그들은 없는 방을 만들어 내야 했다. 그렇게 되고 보니 만만한 방은 지배인의 거처밖에 없었던 것이었다. 그보다 신분이 아래인 고용인들의 방은 염도의 격에 맞지 않는다는 자체 판단 때문이었다. 그러기에 하월루의 지배인 환 장한은 눈물을 머금고 그의 방을 비웠고 곧 그의 방은 2인 1실의 객실로 순식간에 변모했다. 그리고 지배인 환장한은 점소이의 숙소에서 당분간 같이 지내는 것으 로 결정이 내려졌다. 환장한 지배인은 정말 환장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별 수가 없었기에 환장하는 속으로 이름 값을 할 수밖에 없었다. 속으로 환장했다는 이야 기다.

이리하여 비류연과 그 외 1명은 최고급 숙소에서 편안한 잠자리를 제공받게 되었다. 그래서 그 뒤에 숨겨진 비사를 아는지 모르는지 비류연은 연신 싱글벙글 할 뿐이었다. 다음날, 그가 경순이(輕順耳) 나중해를 만난 순간까지는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