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뢰도 3권 12화 – 애소저회
애소저회
애소저회(小姐會)는 수많은 관심사 중에 생겨난 얼토당토않은 동호회 중 대표적인 하나의 예였다. 그곳의 활동 내역과 설립 취지를 풀어서 설명하자면 미인 아가씨 사랑 동호회였다.
이름부터가 수상하기 짝이 없는 냄새를 피웠다.
그곳에서 가장 중요시되고 있는 필수 기술은 바로 은신잠행술이었다. 자신의 몸을 숨기고 흔적과 기척을 숨긴 채 상대를 쫓는 기술이야말로 오늘날의 애소저회를 있게 한 근원 기술이었다.
그렇다면 왜 애소저회의 존속과 은신잠행술이 뗄래야 뗄 수 없는 밀접한 상관 관계에 놓이게 되었는가? 그 이유는 애소저회의 주요 활동 내역에서 찾을 수 있다. 여기서는 은신잠행술(줄여서 은잠술) 기술이 부족하면 여성들한테 자칫 잘못하다가 칼을 맞거나 몰매 맞을 가능성이 다분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은잠술의 달 인이 아닌 어설픈 실력의 소유자는 본격적인 활동을 자제시키고 있는 처지였다. 잘못하다가 학관 전체의 여성들에게 밉보이면,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 서리 가 내린다고, 동호회의 기둥 뿌리가 뽑힐 위험성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곳은 항상 여성으로부터의 원망과 저주와 보복을 염두에 두고 있어야 하는 그런 곳이었다. 은잠술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아니 가장 최고의 은잠 술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조화였다. 자신이 이 세상과 물아일체가 되었을 때 가장 완벽하게 자신을 숨길 수 있는 것이다. 물론 말처럼 쉽고 간단한 일은 결코 아 니다. 착시 현상 같은 눈속임을 이용한 은잠술은 최하위 기술일 뿐이었다.
알다시피 세상은 태극에서 갈라져 나온 음양 오행으로 이루어져 있다. 즉, 만물은 그 성질이 어떠하든 기(氣)의 조합으로 이루어져 있고 때문에 특정한 파장을 내 보내고 있다. 몇몇 특수한 수련을 쌓은 사람만이 그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인간의 몸도 알고 보면 기로 이루어진 하나의 작은 소우주. 세상이 내뿜어 내는, 또는 가지고 있는 기의 파장에 맞추어 자신의 기를 동화시켰을 때 비로소 상대의 바로 코 앞에서도 자신을 숨길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아니 상대가 자신을 알아채거나 인식하지 못하게 한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처음에는 이곳도 은잠술의 조화의 법칙을 깨달으려는 사람들의 모임이었다. 명칭도 그때는 잠은회(潛隱會)라는 어엿하고 정상적인 명칭이 존재했었다.
그런데 잠은회 8대 부장인 귀축왕(鬼畜王) 변태임變態臨)이 그 동안 익힌 은신잠행술을 자신의 취미를 위한 건설적인 방향으로의―수많은 이들이 무공 기술의 오용과 악용의 사생아라 비판했었다. – 사용을 시도하면서 그 성격이 급격히 바뀌게 되어 간판마저 바꿔 내걸게 된 것이었다. 그는 지독한 중증의 미소녀 광(狂)이 었다.
그 이후 잠은회는 애소저회로 명칭을 개칭하고, 여성들의 아름다움과 향기를 혜택받지 못한 많은 이들과 나눈다는 신념 아래 아리따운 소녀 소저들의 신상 정보와 자취(?) 입수에 심혈을 기울이는 동호회로 탈바꿈하게 된 것이다.
진성곤 임성진이 비류연과 그 일행을 데려간 곳은 바로 이곳 애소저회의 문 앞이었다. 그는 매우 성실한 애소저회의 회원 중 한 사람이었다. 장홍은 뭔가를 알고 있는 듯 두통에 머리를 감싸 쥐었다.
미동조차도 힘겨울 것 같은 뒤룩뒤룩한 거구의 몸, 눈과 코와 입을 파묻고 있는 것 같은 투실투실한 얼굴, 작고 납작한 코, 금방이라도 침이 흐를 것 같은 입, 보기 만 해도 더워 보이는 삼중턱. 실로 보는 이로 하여금 비위와 인내력을 시험하는 얼굴과 몸이 아닐 수 없었다. 비위가 약한 사람은 쳐다보기도 힘들 것 같았다. 다행 히도 비류연은 비위가 무척이나 강하고, 호기심 또한 무척이나 왕성한 사람이다.
살이 몸을 먹고 있는 듯한 착각이 자연스럽게 드는 거구, 그는 바로 이곳 애소저회의 부장인 비연태이었다. 언뜻 들으면 이름이 변태로도 읽히는 이 남자는 도대체 그 속내를 알 수 없는 얼굴을 한 채 건물 구석에 음침하게 앉아 있었다. 마치 그의 주위에 둘러쳐진 햇살을 흡수하고 있는 듯 그의 주위는 음습하고 질펀하기 짝이 없었다. 어떻게 저런 거구의 몸으로 은신잠행을 꿈꾸고 실행할 수 있는지 의문 그 자체였다.
임성진의 소개로 간단한 통성명을 나눈 비류연과 그 일행은 임성진의 권유에 따라 자리에 앉았다. 애소저회 건물 안에는 수백 장의 아리따운 여성들 그림으로 잔 뜩 도배되어 있어 보는 이의 눈과 마음을 현란하게 만들고 있었다.
“이건 선녀도인가요?”
벽과 천장을 온통 도배하고 있는 수백 장의 미인도를 가리키며 효룡이 물었다. 임성진은 고개를 가로 저었다.
“아닐세. 우린 가상의 여인은 취급하지 않는 주의라서. 여기 있는 모든 그림들은 현존하는 실제 여성 분들이지. 극히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만 25세 이후가 되 면 다른 그림으로 바꾸는 게 관례라네.”
과연 그림을 살펴보니 그림 작성 당시 여인의 나이와 작성 연월일이 함께 적혀 있었다. 정확하게 26세가 되면 가차없이 떼어 버리고 새로운 그림으로 갈아치우는 모양이었다.
“이건 청자기인가요?”
비류연이 한쪽 선반 위에 진열되어 있는 둥그스름하게 생긴 청색 자기를 가리키며 말했다.
“아니, 그건 요강이야.”
임성진이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예? 요강 장사할 일 있어요? 뭔 요강이 이렇게 많이 진열되어 있지요?”
“특별한 요강이거든. 어떤 소저 분이 애용하던 요강이지. 입수하느라 힘들었다네.”
그런 것까지 모은다니 정말 어처구니없는 사람들이었다. 진심으로 저런 걸 모으다니 감탄해야 되는 건가? 비류연은 잠시 심각한 고민에 빠져야만 했다.
“이건 뭐죠?”
고민도 잠시. 한쪽에 따로 놓여 있는, 철저하게 봉인된 철상자를 가리키며 비류연이 물었다. 도대체 무엇을 보관하고 있기에 이렇게 엄중하게 밀봉해 놓은 것인지 그 속의 내용이 궁금했다.
“건드리지 마.”
여지껏 입을 다문 채 음침하게 앉아 있어 생물인가 의심스러웠는데 말을 하는 걸 보니 인간이 맞긴 맞는 모양이었다.
“이게 뭔데요?”
“내 피와 땀의 결정, 내 보물이지.”
저 덩치, 저 인간의 피와 땀으로 이루어진 물건이라니……. 효룡은 갑자기 속이 메스꺼워지는 걸 느꼈다. ‘난 절대로 저걸 열지 않겠어.’라고 효룡은 결심했다. “그래도 궁금하군요.”
비위도 좋은 놈. 잠긴 상자는 원래 열어 보기 위해 존재하는 거라고 생각하는 비류연이 그걸 그냥 보아 넘길 리가 없었다. 비류연이 포기할 기색을 보이지 않자 임 성진이 비연태를 보고 눈짓했다. 한번 선심 쓰라는 신호였다.
잠시 뭔가를 생각하는 눈치더니 그는 한번 선심을 쓰기로 결정한 모양이었다. 드디어 굳게 봉인되어 있던 상자가 삐거덕거리며 열렸다.
“우와아아아아아……. 이게 뭐예요?”
비류연은 어이없다는 듯 김빠진 목소리를 내며 검지로 상자 속을 가리켰다. 애소저회 부장 비연태가 그렇게 강조의 강조를 거듭하고 애지중지하여 뭔가 대단한 게 들어 있을 줄 알았는데, 상자의 뚜껑이 열리자 비류연은 자신의 짐작이 얼마나 허황한 것이었나 여실히 깨달을 수 있게 되었다. 비연태는 아무렇지도 않았지만.
“어때, 멋지지? 그것 외에도 우리는 수많은 수집품들과 정보를 소유하고 있다구. 여인들의 지워지지 않은 향기가 흔적과 함께 스며들어 있는 물건들이지. 이걸 모 으기 위해 그 동안 얼마나 많은 희생과 노력이 필요했는지 아나?”
“전혀 모르겠는데요.”
알록달록한 비단천 몇 개와 서류 뭉치들이 뭐가 그리 중요한지 비류연은 이해할 수 없었다. 그 용도가 심히 의심스럽고 수상해 보이기조차 한 얇은 끈 달린 비단 천쪼가리를 들고서 연신 코를 벌름거리며 음침하게 웃는 그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왠지 섬뜩한 기분이 들었다. 예쁘기는 하지만 끈 달린 얇은 비단 천 조각을 들고 뭐가 그리 좋아 시종일관 괴상망측한 미소를 지우지 않는 건지 신기하기만 했다. 근데 자세히 살펴보니 하나의 비단 천마다 한 장의 종이가 함께 붙어 있었다. 연꽃 무늬의 붉은 비단 천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 있었다.
성명 : 쌍검비연 진가희
입수일자 : 무력 99년 7월 20일
장소 : 무영각 3층 여성 탈의실
무력이란 천무학관 설립 이후의 기간을 가리킨다. 사실 비류연은 잘 모르고 있었지만 지금 비연태가 들고 흐뭇해 하는 것은 어느 이름을 밝힐 수 없는 여인의 속곳 이었던 것이다. 그것도 한없이 부드럽고 탄력 있는 모종의 물건을 가리기 위해 사용되는 물건이었다. 그것은 물론 세탁되지 않을수록 가치가 높은 것이다. 비단 천 옆에 놓여 있는 종이에는 아마도 주인 되는 여성의 초상과 내력이 시시콜콜, 그리고 상세하게 적혀 있을 것이다.
“저게 정말 좋은 걸까?”
개도 아니고 냄새로 주인 찾아 줄 일도 없는데 왜 자꾸 개처럼 킁킁거리는 건지, 개인적으로는 좀 자제해 주었으면 하는 심정이었다. 물론 그런 요구가 먹혀들 것 같지는 않지만.
“우리의 목표는 앞으로 전 강호가 인정하는 천하 제일미를 발굴 육성하는 일이지.”
우아함과 품위와는 거리가 먼 행동을 서슴없이 하는 사람치고는 어울리 않는 진지한 어조였다.
“그건 대단하군요. 미인 대회라도 열 건가요?”
“그것 참 좋은 생각이군. 안 그래도 이번 축제 때는 미인 대회를 한 번 열어 볼까 해.”
“쉬운 일은 아니지.”
임성진이 말했다. 현실적으로 거의 실현 불가능한 일임을 그도 잘 알고 있었다.
“강호의 모든 미인 기녀들을 모아 놓고 대회를 여는 거야. 모르긴 몰라도 대장관일 걸세.”
비연태는 아직도 포기하지 않고 있는 건가? 의외로 끈질긴 면이 있었다.
“모든 이라면 흑도 쪽도 말입니까?”
“물론이지. 미녀에게 흑백 구분이 어디 있는가. 정사 흑백 양도의 구분 없이 미란 공통적으로 아름다운 것이라네.”
“좀 위험한 생각인 것 같군요.”
효룡이 한마디했다.
“내가 누차 얘기하지만, 사회가 제시한 틀에 얽매여서는 아무런 일도 하지 못한다네. 원래 아름다움이란 사해팔황, 아니 대우주 공통의 가치니깐 말이야.”
뭔가 대단한 것이라도 되는 양 임성진이 자랑했다. 속곳을 보물 단지 안듯 안고 있는 사내―쉽게 말해서 변태—를 믿는다는 것 자체가 애초에 말이 안 되는 이야 기인 것이다.
“미녀라면 그 누구라도 우리의 눈을 벗어날 수 없지. 사해 끝까지라도 우리는 쫓아간다네. 그녀들의 모든 걸 알 때까지.”
“그런 걸 보고 변태라고 그러는 거 아냐?”
비류연의 귀에다 대고 효룡이 소곤거렸다. 비류연도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이곳은 사내들의 비뚤어진 욕망이 가득 찬 곳이로군.”
비류연의 신랄한 비평이었다. 효룡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이봐 이봐, 그건 좀 심한 평인 것 같군. 원래 남자란 다 거기서 거기야. 여성의 아름다움에 매료되는 것도 남자로서의 의무지.”
임성진이 반박했다.
“그 정도가 심하면 바로 병이 되지요.”
효룡도 지지 않고 말했다.
“여어, 우리 왔어.”
아직 의견차를 좁히지 못한 채 설전을 벌이고 있는 설전장 안으로 어린애 같은 웃음을 짓고 있는 2명의 남자가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