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뢰도 5권 18화 – 은하류 개벽검
은하류 개벽검
이제 모용휘 또한 알 수 없는 힘을 이끌어 내고 있는
청흔의 기운에 감히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모용휘의 자세는 특이했다.
지면과 수평으로 뻗어 있는 검신(劍身)에서 눈부신 강기(氣)가 일렁이고 있었고 검극劍戟)과 검결지(劍訣指)가 만나는 지점에서 빨려 들어가듯 뭉쳐지고 있었 다. 검결지로 붕결(崩訣)을 일으켜 검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검강(劍剛)을 한 점에 집중시키고 있는 것이었다.
그는 현재 붕결(崩訣)과 유성강기(流星剛氣)를 극성으로 일으킨 후 한 점으로 집중시키는 데 전력을 기울여야 했다. 자칫 잘못하면 자신이 일으킨 모든 기운을 한 순간에 모래성처럼 허물어뜨릴 수 있었다.
은하류(銀河流) 개벽검(開闢劍)!
서로 다른 기운이 한 곳에 집중되어 폭발할 때, 순간적으로 엄청난 파괴력을 일으키는 것이 이 무공의 핵심이자 요체였다. 태초(太初)의 우주(宇宙)처럼 끝없이 모 이고 모여 압축될 대로 압축된 기운이 한 번에 터져 나오는 것이다.
지금 모용휘가 좌우(左右)가 전혀 다른 기운을 뿜어내는 것도 기운을 일점(點)에 집중해 압축하기 위해서였다. 검을 타고 일어나는 검강을 검결지의 붕결(崩訣: 누르는 힘)을 이용해 일점에 집중시키고 있는 것이다. 티끌보다 작은 한 점에 대해(海) 같은 기운이 모인다면, 그것이 풀어져 나왔을 때 얼마만한 위력이 발휘될 까?
이 검법은 검성 모용정천이 천혈세(天劫血洗)의 피비린내나는 시절에 태극신군 무신 혁월린의 무공을 보고 심득을 얻어 만년에 그것을 연구 발전시켜 완성한 무공이었다. 심득을 얻은 모용정천이 만년에 은하유성검법을 다듬고 깎아 내어 만든 오의(義)였다.
허나 정반(反)의 기운을 한 인간의 몸에서 동시에 발생시킨다는 것은 난해한 일이었다. 어떻게 해도 그 과정이 불가능했던 것이다. 하지만 염령(焰靈)과 빙백(氷 魄)의 기운을 한 몸에서 뿜어내던 태극신군(太極神君)을 본 이후라 가능성을 발견했다.
사실 이 검법은 이론에 가까운 무공이었다. 일단 만들어 놓고 보니 이론은 완벽하지만, 인간의 몸이 이 이론을 받아들이지를 못했다. 당시 검성 모용정천의 탄식을 보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었다.
두 가지 다른 힘을 부딪쳐 한 곳에 한계 이상까지 집중시켜 일순간에 폭발시켜 어마어마한 힘을 끌어낸다는 것이 바로 이 검법의 요결이자 요체였다. 그러자면 하 나의 몸에서 두 가지 상반된 기운을 끌어 낼 존재가 필요한데 그럴 만한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처음에는 검성도 포기해야 되는 줄 알았다. 특이한 체질이 아니면 익힐 수 없는 무공은 무가(武家)에는 별 쓸모가 없는 것이다. 게다가 자신이 제대로 쓸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하지만 그것을 익힐 수 있는 사람이 그의 직계 중에 단 한 사람 있었으니, 그가 바로 모용휘였다. 오직 모용휘만이 두 가지 상반되는 힘을 동시에 뿜 어낼 수 있었던 것이다. 당연히 은하류(銀河流) 개벽검(開闢劍)은 모용휘에게로 이어졌다.
때문에 검성의 모용휘에 대한 사랑도 바로 이곳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이 자신에게는 맞지 않음을 확신한 모용정천은 새로운 검법을 만들 에 내기 위해 또다시 참오해야만 했던 것이다.
지금 검성의 최종 절기(最終絶技)와 무당파의 절기가 최초로 강호인들 앞에 선보이려 하는 것이다. 발동 전 기세부터가 심상치가 않았지만 모두들 말릴 생각도 하 지 못한 채 이 무섭지만 아름다운 검학(劍學)의 세계로 빠져 들어갔다.
태연스럽게 육포를 뜯고 있던 비류연의 눈이 번쩍였다.
“우와! 저건 진짜 위험하겠는데! 저건 진짜배기야!”
여전히 육포를 뜯던 비류연이 탄성을 터뜨렸다. 탄성을 터뜨린 그의 입은 여전히 육포의 절삭 분해 작업에 여념이 없었다.
“모두 귀를 막고 진기를 일으켜 심맥을 보호해라!”
염도가 제자들에게 큰 소리로 명령했다. 염도의 명령이 떨어지자, 모두들 얼른 진기를 일으켜 심맥을 보호했다. 얼마나 강한 기운들이기에 미리 진기로 심맥을 보 호해야 될 정도란 말인가?
그 순간……. 마침내 두 갈래의 거대한 기운이 한 곳에서 부딪쳤다.
청흔의 몸 앞에서 회전하던 세 개의 검에서 만들어진 태극(太極)이 하나로 합쳐지며 무형의 강기(剛氣)가 검(劍)이 되어 빛살처럼 날아갔다. 그것은 마치 의지를 가진 존재처럼 보였다. 청흔의 네 번째 검은 일종의 이기어검(以氣御劍)으로 여타의 이기어검과는 다르게 검강(劍剛)으로 형성된 무형의 기운을 날려보내는 무서 운 기술이었다.
이기어검(以氣御劍)이 아니라 이기어검강(以氣御劍剛)이라 불러 마땅할 그런 기술이었다. 음양의 합일로 형성된 무형의 검강의 위력은 두말 할 것 없이 강력하지 만 한 번 시전하는 데 막대한 내공이 소모되고, 아직 완벽하게 완성된 것도 아니기 때문에 다루기가 무척이나 난해했다.
마치 의지를 가진 듯 자신을 덮쳐 오는 알 수 없는 기운에 모용휘는 전력을 다해 검기를 발동시켰다. 모용휘의 몸 앞에 형성되어 있던 집약된 기운도 때를 같이 하 여 폭발하며 무시무시한 기운을 뿌려댔다. 하늘을 부술 듯한 무시무시한 위용이었다.
청흔은 마치 자신의 눈 앞에 암흑이 덮쳐 오는 듯한 충격을 받았다. 자신의 존재가 칠흑의 밤하늘에 집어삼켜지는 듯한 감각! 그것은 태어나서 처음 경험해 보는
생경한 느낌이었다. 모용휘 또한 뇌전(雷電)이 질풍신뢰(疾風神雷)처럼 자신을 꿰뚫는 듯한 착각 속에 빠져 있었다.
“콰르르르릉! 우르르르르….”
천지를 집어삼킬 듯한 천붕지열의 굉음이 눈부신 빛 무리와 함께 터져 나왔다. 마치 대기를 진동시키고 하늘을 찢는 듯한 거센 기세였다.
하늘과 땅이 폭발하는 듯한 굉음과 함께 세찬 바람이 사람들의 전신을 사정없이 난타했다. 순간 관객들은 자신의 고막이 떨어져 나가는 줄 알았다. 이 엄청난 충격 의 여파에 내장이 진탕되는 것을 막기 위해 관객들은 모두들 내력을 운용해야만 했다. 귀청이 떨어지는 듯한 폭음이었다. 도저히 검과 검이 부딪쳤다고는 믿겨지 지 않는 격돌이었다. 배움이 낮은 1학년생 몇 명은 피를 토하기까지 했다.
“쿨럭!
서로의 자리를 바꾼 청흔이 먼저 피를 한 사발 토했다. 그의 안색은 창백하기 그지없었다. 모든 진기를 마지막 한 방울까지 짜내어 벌인 격돌이었다. 멀쩡하면 그 게 비정상이었다.
비무대도 거대한 힘의 충돌로 인해 풍비박산(風飛散)이 나 있었다.
“이, 이름은. 쿨럭!”
핏물이 새어나오는 입으로 청흔이 물었다. 터져 나오려는 각혈을 간신히 참고 있는 중이었다. 이 정도까지 낭패를 당할 줄은 그로서는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 다.
“은하류(銀河流)…, 개벽검(開闢劍) 최종비의最終秘意)…… 은하성시(銀河星始) 우주홍황(宇宙洪荒)! 쿨럭.. 선배님의 검(劍)은? 쿨럭! 커억!”
기식이 엄하고, 안색이 시체처럼 파리하기는 모용휘 또한 마찬가지였다. 한 마디 한 마디 내뱉는 데도 엄청난 인내력이 필요한 지경이었다. 그의 눈 앞에서 흥건한 핏물이 고여 있었다. 모두 그의 입에서 나온 것들로, 방금 전까지만 해도 그의 몸 안을 요동치며 돌고 있던 것들이었다. 그런 몸으로도 말을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놀라운 의지였다.
“삼정태극검혜(三情太極劍慧) 무극검(無極劍) 진의(眞意)……, 합일(合一)!”
청흔은 넘쳐 나오는 핏물을 간신히 삼키며 말을 마쳤다.
둘의 얼굴에 가느다란, 그러나 만족스런 미소가 한 줄기 맺혔다. 엄중한 내상을 입은 사람이라고는 도저히 믿기 어려운 일이었다. 이미 입으로 내뱉는 칭찬 따위는 두 사람에게 무의미한 것이었다. 이미 검을 부딪치고 몸으로 느끼는 가운데 나눈 정신의 교감만으로도 충분했다.
최종 절초의 이름을 교환한 후, 한 줄기 미소를 끝으로 두 사람의 몸이 동시에 앞으로 고꾸라졌다. 막대한 내상으로 인해 더 이상 버틸 힘이 두 사람 모두에게 남아 있지 않았던 것이다.
“무승부!”
심판관이 큰 소리로 선언했다. 심판관의 손짓에 의해 대기 중이던 의약전(醫藥展) 소속 수석 의원인 천수신의(天神醫) 허주운이 뛰어올라와 능숙한 손놀림으로 응급 처치를 시작했다. 그의 손놀림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전광석화처럼 두 사람의 몸을 짚어 나갔다. 잘못 하면 내상이 안으로 스며들어가 골수(骨髓)를 상하게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다시 한번 허주운이 신호하자 응급 요원들이 비무대 위로 뛰어올라 응급 조치를 마친 청흔과 모용휘를 들것으로 실어 나갔다.
장내가 웅성웅성 소란스러워졌다. 검성전에서 무승부라니……. 도성전, 검후전에 이어 검성전마저 무승부로 끝난 것이다. 몇십 년 동안 유례가 없던 일이었다. 소란스러운 사람들 사이로 백무영의 창백한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아무리 냉정한 그라도 절친한 친우의 부상을 앞에 두고는 별수 없었던 모양이다. 두 눈에는 걱 정이 가득한 게 평소의 그답지 않았다. 모두에게 의외의 결과를 가져온 일전이었다.
염도가 그것을 발견한 것은 모용휘의 검과 청흔의 검이 격돌한 바로 그 순간이었다. 천지를 집어삼킬 듯한 굉음 속에서도 염도의 눈은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 “헉!”
검(劍)과 검(劍)이 최대급(最大級)으로 격돌하는 충격파(衝擊波)를 진기를 끌어올려 견뎌내고 있던 염도의 눈이 확하고 커졌다. 거대한 기의 격돌이 일으킨 난장 판 속에서도 그는 본 것이다. 모용휘의 좌수와 우수가 각각 다른 기운을 내뿜는 광경을!
그것은 아무나 보여 줄 수 있는 능력이 아니었다. 그로서도 이런 능력을 보여 주는 사람을 평생 딱 한 사람 만나 봤을 뿐이다. 어쩌면 천에 하나, 만에 하나 자신이 그토록 찾고 있는 인재(人才)일지도 모른다.
‘반드시 음양을 조화시킬 태극의 인재(人)를 찾아라!’
20년 동안 애써 잊고 지내 왔던, 그리고 포기했던 스승님의 유언이 갑자기 뇌리에 떠올랐다. 갑자기 목이 메여 왔다. 이런 생각이 염도를 들썩이게 만들었던 것이 다. 허나 그는 이내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제 와서 그 생각을 하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다 부질없는 짓인 것을…….”
게다가 상대는 검성의 핏줄이자 후계자라고까지 공공연히 인정받는 자이다.
“아직 확실한 것도 아니고… 게다가…….”
그 말이 맞다 해도 어찌해 볼 도리가 없다.
‘과연 빙검 녀석도 저걸 보았을까? 보았다면 그 자식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오히려 그것이 더 궁금한 염도였다.
“쯧쯧! 무식하기는! 신명이 난다고 진짜로 부딪치다니……. 제풀에 지쳐버리는 꼴이군! 죽지 않은 게 용하다, 용해! 으적으적!”
정신을 다른 데다 쏟고 있던 염도는 곁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퍼뜩 정신을 차리며 비류연을 돌아보았다. 이 소란의 와중에도 입에서 육포를 떼지 않고 오히려 왕 성한 절삭 분해 작업을 계속 하는 비류연의 입이 신기할 따름이었다. 이렇게 해서 천무학관 검성전 결승은 전설을 남긴 채 무승부로 끝나고 말았다.
“역시 내 예상이 적중했어! 으하하하……! 앞으로는 본인을 가리켜 천재라 불러 주게!”
겨우 혼란이 수습되고 열기가 사그라져 가는 비무대에서 금영호가 대소를 터뜨리며 자찬했다. 남궁상도 그의 말에 뭐라고 토를 달지는 않았다. “그렇군, 자네 말대로야. 이제 대사형이 삼성대전에서 이기기만 하면 되는 건가. 상대가 선풍검룡 위지천이라……! 만만치 않은 상대로군!”
금영호는 대소를 그치고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선풍검룡 위지천 역시 방심할 수 없는 변수였다. 한동안 여인에게 빠져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평을 받기 도 했지만(물론 지금도 그렇기는 마찬가지지만) 한때 삼절검(三絶劍) 청흔, 형산일기(衡山奇) 백무영과 함께 삼강(三綱)으로 불렸던 인물이었다. 게다가 갑자기 무슨 이유에선 지 몇 달 미친 듯이 폐관수련에 매달렸다가 얼마 전에 수련을 마치고 돌아왔다는 소문이었다. 결코 방심할 수 없는 인물이었다.
이번 삼성제 중의 몇몇 시합에서 보여 준 그의 신위는 삼절검 청흔에 뒤지지 않는 놀라운 신위였다. 그는 자신의 검기가 녹슬지 않고 오히려 더욱 날카로워졌다는 것을 공식적으로 증명한 것이다.
“괜찮겠지?”
금영호가 신중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 한 걸음만 더 올라가면 정상이었다. 여기서 좌절하면 회복 불가능한 타격을 입을지도 모른다. 포기할 수는 없었다. “대사형을 믿어 보세! 어쨌든 하나는 줄였지 않나.”
의외로 지금까지 결과는 예상보다 훨씬 좋았다. 모용휘의 무위는 그들의 기대치를 훨씬 초과하는 것이었다. 설마 모용휘가 여기까지 해낼 줄은 금영호도, 남궁상 도, 현운도 미처 예상치 못했던 결과였다. 특히 현운의 충격이 그 누구보다 컸다. 존경하는 사형이자, 마음 속의 최대 경쟁자인 사형 청흔과 이제 갓 입관한 모용휘 가 무승부를 이루었다. 아직 자신조차도 승부를 예측하지 못하고 한 수 접어 주고 있던 사형이었다. 게다가 오늘 보여 준 무위는 한 수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충격까 지 들게 했다. 그러니 그의 충격이 클 수밖에 없었다.
모용휘는 이 시합에서 자신 스스로 청흔과 동급임을 증명해낸 것이다.
어찌되었든 금영호의 예상은 들어맞았다. 그 당시만 해도 청흔과 비류연의 시합은 승부를 점칠 수 없었다. 때문에 그렇게 야밤중까지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던 것 이다. 그러나 남궁산산의 한 마디에 뒤통수가 짜릿해지는 깨달음이 있었다. 남궁산산은 미처 금영호, 그가 보지 못했던 것을 고맙게도 보아 주었다. 그것이 바로 모 용휘라는 존재였다. 그의 존재가 있음으로 해서 금영호도 결심이 섰던 것이다. 그것은 도박이나 다름없었다. 물론 도박을 하고 있던 중이긴 했다. 내기도 도박의 일 종이니까!
청흔과 비류연의 승부는 점칠 수 없지만, 모용휘를 거친 청흔은 비류연에게 상대가 되지 않을 것이라는 게 금영호의 생각이었다. 단 일전의 단 삼검이었지만, 모용 휘가 쌓은 수양의 깊이를 알기에는 충분했다. 게다가 검성 모용정천의 손자였다. 모험해 볼 가치는 충분했다.
금영호의 관점으로 보면 모용휘의 역할은 청흔의 힘을 깎아내리는 데 있었다. 그런데 모용휘는 용(龍)의 자식은 어디까지나 이무기가 아닌 용(龍)임을 증명해 보 여 주겠다는 듯 청흔과 무승부를 이루어냈던 것이다.
꼴을 보니 둘 다 다음 시합에 출전하긴 글렀다. 게다가 무승부였다. 드물긴 하지만 무승부를 이룬 자는 종합 우승을 가리는 자리에 참가하지 못한다는 규정이 있었 다.
비류연의 우승에 서막이 드리워지는 순간이었다.
도성전도, 검후전도 특이하게 올해는 모두 무승부로 끝을 맺었다. 모두들 승부를 가르지 못했던 것이다. 세 곳 동시에 무승부가 이루어진 것은 48년 만에 처음 있 는 일이었다. 이제 비류연이 우승까지 남은 거리는 한 발자국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