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뢰도 6권 5화 – 남궁상 대 맹연호

비뢰도 6권 5화 – 남궁상 대 맹연호

남궁상 대 맹연호

“휴우!”

남궁상은 거칠어진 호흡을

가다듬으며 정신을 집중했다. 자신을 바라보는

주위의 시선이 따가울 정도로 뜨겁게 느껴졌다.

옛날 같았으면 이 정도 시선에도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겠지만, 지금은 상황이 돌변하여 이 정도의 순진 떨기엔 그동안 당한 게 너무 많았다.

주변은 어느 정도 정돈되어 있었다. 쌍방의 격렬한 격돌에 의해 정도 이상의 부상을 입은 사람들은 이미 실려 나가고 없었다. 특설 비무대 바닥도 검파(劍波)의 영 향으로 인해 너덜너덜해져 있었다. 얼마나 격렬한 충돌이 있었는지 여실히 보여 주는 모습이었다.

이제 승부는 단주 대 단주의 승부로 점점 좁혀지고 있었다.

남궁상은 몇 번이나 자신에게 패배를 안겨 주었던 사내 천수룡 맹연호를 쳐다 보았다.

그동안의 승률 때문인지 아직 맹연호의 눈엔 여유가 남아 있었다.하지만 지금 현재의 남궁상은 그동안의 남궁상과는 전혀 다른 사람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사 실을 그는 모르고 있었다.

“아직은 체면 때문에라도 얌전히 승리를 내어 줄 수는 없네. 할 수 있다면 실력으로 가져가 보게.”

반드시 자신만큼은 이겨 보이겠다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자신도 있었다.

“얼마든지!”

남궁상은 거절하지 않았다. 그는 전혀 위축되지 않은 채 당당한 기상으로 맹연호의 말을 받았다.

이제 이런 일은 만성이 되었기 때문인지 가슴 두근거림조차도 느껴지지 않는 담담한 상태였다.

남궁상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맹연호가 달려 들었다. 매화 꽃잎처럼 붉은 검기가 그의 검 끝에서부터 남궁상을 향해 뻗어 나왔다.

“매화만천(梅花滿天)!”

청룡단 단주이자 화산파의 제일 기재답게 맹연호의 검기는 화려 하면서도 날카로웠다. 예전에 있었던 비무에서 남궁상에게 패배를 안겨 주었던 매화검법의 절초 이기도 했다. 빙검의 가르침 덕분인지 그의 초식이 더욱 정묘해졌음을 남궁상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도 예전의 궁상자 남궁상이 아니었다.

“백뢰비성시(百雷飛星矢)!”

남궁상의 애검 백공(公)의 진짜 정체는 먹구름이라도 되는 양 그의 검으로부터 수십 줄기의 뇌격(雷擊)이 섬전처럼 뻗어 나왔다.

예전과는 비교가 불가능할 정도로 강력한 일격이었다.

막아 볼 테면 막아 봐라! 라는 의미가 듬뿍 담긴 일검을 멋지게 날려주는 남궁상이었다. 예전보다 훨씬 적극적인 공세였다.

승리의 남신(男神 : 중국에선 전신 치우가 전쟁과 승리의 신이다. 물론 성별은 의심할 여지없는 남자다.)은 점점 더 남궁상 쪽에 호감을 보이고 있었다.

그 어떤 의외의 결과가 현실로부터 도출되었다 할지라도 그 결과에 대해 미련을 가져서는 안 된다.

비록 그 결과물이 절대로, 죽어도, 입을 반으로 째고 배를 열십자로 가른다 해도 또 결코 마음으로부터 승복할 수 없는 것이라 해도 과거를 바꿀 만한 능력이 없는 이상, 아무리 그 결과가 불만족스럽다해도 인정하고 이에 대한 미련을 버려야 한다. 구차해지고 싶지 않다면 말이다.

만일 그러지 못한다면 평생 그 미련의 족쇄에 발이 묶여, 업장(業場)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고해(苦海)의 늪에서 고난을 받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게 어디 말처럼 그리 쉬운가! 벌써 여기서도 이미 도출된 눈에 빤히 보이는 결과에 대해 승복하지 못하는 이들이 있다.

그날의 몸 상태가 나빴다든지, 오늘 아침에 밥을 반공기밖에 비우지 못해 굶어죽을 지경이라느니, 15일 동안 하루 삼세 번의 설사에 시달렸다느니, 어제 저녁에 배를 덮고 자지 않아 감기가 들었다느니, 하는 등의 다양한 변명들을 앞세우고 있지만 과거를 바꾸지 못하는 이상 이미 놓쳐버린 나룻배였다.

“난…난 인정할 수 없네.”

맹연호는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자네가 인정하지 않는다 해도 이미 결정된 현실이 바뀌는 건 아닐세. 자네가 인정하든 죽어도 인정하지 않든 우리가 자네들을 이겼다는 사실에는 아무런 변함이 없지!”

남궁상의 단호한 말에 맹연호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그의 입이 아교로 붙인 것처럼 찰싹 달라붙었다.

그의 검은 방금 전까지의 부딪침으로 군데군데 이가 빠져 나가 과히 보기 좋지 않았다. 반면 남궁상의 검은 이 빠진 곳 없이 멀쩡했다. 흠집 하나 없었다.

이미 주위를 둘러봐도 제대로 서 있는 사람은 자신밖에 없었다. 나머지는 장외패를 당하거나, 아니면 부상으로 실려 나가고 없었다.

반면 주작단은 아직 남궁상을 위시하여 현운, 진령, 당문혜, 남궁산산 이렇게 네 명이나 더 남아 있었다.

이들 네 명은 남궁상의 뒤에서 조용히 서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지금 맹연호와 정면으로 마주하고 있는 이는 남궁상이었다. 그의 모습이 나름대로 자신을 배려해 주고 있는 것임을 맹연호는 잘 알 수 있었다.

“크으으으윽! 난 믿을 수 없네. 어…어떻게 우릴 이길 수 있었나?”

예정되어 있지 않던 의외의 패자로서 가질 수 있는 당연한 질문이었다. 맹연호의 인생 계획에 있어 오늘의 일은 매우 치명적인 오점이 아닐 수 없었던 것이다. “큭큭!”

남궁상은 쓴웃음을 지으며 청룡단주 천수룡 맹연호의 질문에 대답해 주었다.

“혹시 강풍이 몰아닥치는 만장단애의 끄트머리에 서 본 적이 있나? 자네도 무저갱(無底坑)이 입을 벌리며 환영 인사를 하고 있는 만장단애(萬丈斷崖) 끝에 서 보 게! 기분이 삼삼할 걸. 그럼 자네도 나처럼 할 수 있을 걸세. 내가 보장하지. 하지만 그런 경험은 되도록 피하는 게 정신 건강에 좋다고 충고하고 싶군.

알겠나? 자네들이 진 이유는 바로 싸움에 임하는 자세가 애초부터 틀렸기 때문일세. 그 각오의 차이가 오늘의 이 결과를 만들어낸 것일세. 즉 절대 우연이 아니니 억울한 하늘에다 원망 보내는 그런 수고를 할 필요는 없네! 이제 이해했나?”

“가…각오라고?”

아직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얼굴로 맹연호가 반문했다.

“아직 이해하지 못하겠나? 우린 이번 대전에 임함에 있어 죽음을 각오했다네. 필사의 각오였지. 반면 자네들은 어떠했나? 겨우 그동안 유지하던 명성이나 지키자 는 정도의 안이한 마음가짐이 아니었나?”

“…..”

맹연호의 입이 조개처럼 다물어졌다. 갈아놓은 비수 같은 남궁상의 말은 그의 가슴을 사정없이 후벼 팠다. 그의 얼굴이 부끄러움으로 인해 벌겋게 변했다. 남궁상 의 말은 한 마디도 틀린 곳이 없었다.

필사의 각오? 그런 건 애초에 고려의 대상이 아니었다.

주작단과 청룡단은 대전에 임하는 자세부터가 달랐다. 그저 자존심만 지키면 된다는 안이한 생각을 품고 있는 청룡단과, 목숨을 걸고 배수진을 친, 무슨 수를 써서 라도 이기겠다는 장수의 심정으로 대전에 임하는 주작단의 각오가 같을 리가 만무했다.

주작단원들은 이빨을 사려물고 혼신의 힘을 다해 검을 휘둘렀다. 그리고 그 대가로 손아귀에 승리를 거머쥔 것이다.

“우리가 졌네.”

마침내 맹연호가 진심으로 자신들의 패배를 시인했다.

승부는 이미 시작할 때부터 정해져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이 언뜻 그의 머리 속을 스쳐 지나갔다. 다시 맹연호의 입이 조용히 열렸다.

“하지만 이대로는 끝낼 수 없군.”

남궁상은 그의 말에서 굳은 결의를 느낄 수 있었다.

“이해하네! 그리고 우리의 승패 또한 정해야지.”

남궁상은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맹연호에게 있어 청룡단의 패배는 기정 사실이나 다름없었다.

하나 그렇다 해서 이대로 얌전히 물러설 수는 없는 법이었다.

누구도 자신들 둘의 싸움에 끼여들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청룡단과 주작단을 떠나 남궁상과 맹연호, 개인 대 개인의 쌍무였다.

이제 그들을 말려 줄 손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이미 검은 뽑혔다. 승부는 스스로 가릴 수밖에 없다.

“확실히 임전 태도에 있어서는 우리의 패배인 것 같군. 게다가 결과마저도 이러니 나마저 자네에게 져서야 친구들의 체면을 세워 줄 수 없다네. “

반드시 자신만큼은 이겨 보이겠다는 이야기였다.

남궁상은 거절하지 않았다. 가슴 두근거림조차 없이 평온했다.

“얼마든지!”

남궁상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맹연호가 달려들었다. 그의 검 끝으로부터 매화 꽃잎처럼 붉은 검기가 뻗어져 나왔다. 과연 화산파의 이름난 기재다운 훌륭한 검기 였다.

그리고 이번 비무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화우(花雨 : 꽃비)이기도 했다.

단체전에서 유감없이 발휘된 주작단의 협동심과 상호 연계성은 그들에게 검진의 짜임새와 운용을 방불케 하는 움직임을 만들어 주고 있었다. 이미 생사를 함께 드 나들며 고통을 함께 한 동료들이었다.

“드디어 이긴 건가! 생각보다 오래 걸렸군. 허약하기는…… 아직 멀었군, 멀었어!”

남궁상을 향해 달려드는 맹연호를 지켜보던 비류연이 독백하듯 말했다. 더 이상 싸움의 결과는 볼 필요도 없다는 태도였다.

“그렇다면 배당금이 얼마나 될까?”

비류연은 제자들의 안위보다는 조금 있으면 돌아올 자신의 안목에 대한 배당금에 대해 더 궁금해하고 있는 자신을 속일 마음이 전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