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뢰도 6권 23화 – 암룡대의 실패
암룡대의 실패
“실패했습니다.“
“피해는?”
“저…전멸입니다.”
“그런가!”
치사한의 말투는 담담했다. 그는 이미 암룡대의 전멸을 각오하고 있었다. 암혼비영대 대주는 그들을 한낱 애송이로 보았겠지만 치사한의 관점은 틀렸다. 그나마 수로에서는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에 무리하면까지 전력을 투입시켰던 것이다. 뇌종명에 대한 경고의 의미도 되었을 것이다. 계획한 대로 뇌종 명은 이번 일로 인해 세력의 상당 부분이 약화되었을 것이다.
다음 문제는 목표의 피해 상황이었다.
“목표의 피해는?”
“저…전무합니다.”
부하 천리호리 공유국의 안색은 자신들 암혼비영대 소속 암룡대가 몰살했다는 보고를 올릴 때부터 더욱 창백해져 있었다.
치사한의 눈살이 살짝 찌푸려졌다.
“크크크크! 최강의 수상 전력이라는 암룡대를 투입해 놓고도, 아무런 타격도 입히지 못했다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
“소…송구스럽습니다.”
공유국의 얼굴은 공포로 인해 시퍼렇게 질려 있었다. 그는 자신의 상관의 손속이 얼마나 잔혹한지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특히 실패에 대한 처벌은 끔찍할 정도였 다.
“생각보다 대단하군! 나도 계산을 잘못했단 말인가?”
암룡대의 실패는 예상했지만 목표에 아무런 피해가 없었다는 것은 의외였다.
문득 치사한의 뇌리에 뇌종명의 얼굴이 떠올랐다 사라졌다.
그가 비밀리에 육성한 비선 하나가 완전히 괴멸된 것이다. 그의 기분이 상큼할 리 만무했다. 과연 그가 이 보고를 들으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흥미가 일지 않을 수 없었다.
일단 달래줘야 했다. 몰살당한 개에게 약간의 추모의 염 정도는 보내 줘도 좋을 것이다. 준다고 닳는 것도 아닌데 아까울 게 없었다.게다가 뇌종명에 대한 비아냥 도 될 수 있으니 일석이조의 효과였다.
“다른 개를 찾아 봐야겠군!”
치사한이 내린 마지막 결론이었다. 일단 뇌종명을 만나는 게 우선이었다.
“설마 암룡대로도 역부족일 줄이야……. 그들이 물에서 당하다니 이거 어이가 없어 선뜻 믿을 수가 없군요. 제가 그들의 역량을 잘못 측정한 듯합니다. 목표물에 아무런 피해도 입히지 못하고 꼴사납게 수장당할 줄 누가 짐작이나 했겠습니까?”
묘하게 비아냥거리는 군사 치사한의 어투가 귀에 거슬렸는지, 언외도 뇌종명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저쪽은 의도를 가지고 자신을 비아냥거리는 기색이 역력했다. “애초에 짜여진 엉터리 계획에 따라 실행된 행동인데 그 결과인들 올바를 리 있겠는가! 어림 반푼어치도 없는 일이지. 자신의 허물을 남에게 뒤집어 씌우는 것은 보기가 좋지 않군.”
역시 늙은 생강이 맵다고, 무웅 뇌종명도 괜시리 겉모습만으로 나이를 먹은 게 아니었다. 오는 말이 곱지 않은데 가는 말이 고울 리 없었다. 원래 흑도의 생리란 받 은 만큼 돌려주는 것이 정상이었다.
군사 치사한의 가늘게 뻗친 눈썹이 보일 듯 말 듯 미약하게 파르르 떨렸다. 이대로 말싸움에 진다면 사영뇌(腦) 치사한이 아니었다.
그의 혓바닥이 점점 더 날카로워져갔다.
“저는 그저 원로께서 키우신 암룡대가 저의 계획을 충분히 실행시킬 만큼의 능력이 있다고 믿었기에 이번 계획을 입안(立案)한 것이었습니다. 설마 이 정도까지 저의 기대에 부응치 못하는 허접한 실력일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전 저의 믿음에 배신을 당한 것이지요!”
“쾅!”
뇌종명이 거칠게 탁자를 내리쳤다. 원래부터 그는 참을성이 많이 배양된 성격이 아니었다. 열이 뻗쳤는지 그의 얼굴은 벌겋게 달구어져 있었다.
‘제길! 역시 애초에 이 쥐새끼 녀석의 계획을 거드는 게 아니었어!’
후회해도 이미 때는 늦었다. 그의 분신 같은 수하가 벌써 4분의 1이나 줄어 버린 후였다. 그의 횃불 같은 눈에 분노가 꿈틀거렸다.
“그럼 자네 얘긴 우리 아이들의 실력이 턱없이 부족해 자네의 그 허접한 작전을 그르쳤다는 건가?”
“이해가 그토록 빠르시니 기쁘군요. 마천각 최고 전력 중 하나라는 암혼비영대 소속 암룡대가 그런 애송이들한테 당하다니.
쯧쯧!” 애송이들이라는 발언에 뇌종명은 날카로운 시선으로 치사한을 노려보았다. 당장에 저 쥐새끼의 구린내나는 대갈통을 깨부수지 못하는 현실이 원망스러웠다. 더 이상의 입씨름은 시간 낭비일 뿐이었다. 이미 진창에 발을 담근 이상 물러날 길은 없었다.
“자네가 아직도 그들을 애송이로 본다면, 분명 자네의 다음 작전도 실패하겠군. 자네의 참담한 실패를 기쁜 마음으로 기다리겠네. 하지만 한 가지만은 알아 두게!
뇌종명의 눈에 살기를 품은 화광(光)이 번쩍이자, 순간 치사한은 본능적으로 움찔했다. 그의 눈빛은 결코 백이십 세를 넘은 노인의 눈빛이 아니었다.
“또다시 자네의 빈약한 계획으로 우리 아이들이 헛되이 죽는다면 그땐 가만있지 않겠네. 책임질 각오를 하게!”
타협의 여지를 남기지 않는 한 마디였다. 마지못해 치사한이 대답했다.
“그러지요!”
뇌종명은 더 이상 말을 나눌 가치가 없다는 듯 자리를 떴다. 그 뒤로 입술을 잘근잘근 깨무는 치사한만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이… 늙다리놈…….?”
치사한의 눈에서 기광이 번뜩였다.
“두고 봐라! 그렇게 큰 소리치는 날도 멀지 않았다. 땅을 치고 통곡하며 피눈물을 흘리게 해 주마. 흐흐흐……!”
농도 짙은 살기가 그의 몸에서 무럭무럭 뿜어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