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뢰도 7권 1화 – 검풍과 도기의 소용돌이 속에서

비뢰도 7권 1화 – 검풍과 도기의 소용돌이 속에서

새파란 검기가 압박하듯 밀려왔다.

천살 독문의 붕검(崩劍)이었다.

휘어질 듯 가느다란 그의 검에서 뿜어져 나오는 검압이라고는

상상이 가지 않는 힘이었다. 나예린 또한 가장 신중한 자세로

그의 검초를 마중했다. 결코 얕볼 상대가 아니었다.

그녀의 눈에 신기(神氣)가 번뜩였다.

수많은 정보가 한꺼번에 그녀에게로 밀려들었다.

그녀의 눈 속에서 세상의 시간이 느리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검풍과 도기의 소용돌이 속에서

•모용휘 대 갈효봉

세 개의 쇠붙이가 있다. 하나는 날이 양쪽에 달려

검(劍)이라 불리며 한 사람의 손에 쥐어져 있고, 나머지 둘은 날이 한쪽에만 달려 칼등으로는 사람을 벨 수 없는데다 두 개가 한 쌍이라

쌍도(雙刀)라 불리며 한 남자의 양손에 쥐어져 있다.

전심전력으로 검과 도가 한 곳에서 부딪쳤다. 그러나 그 파급 효과는 검과 도, 한 쌍이 부딪쳤다고 보기에는 너무나 엄청난 것이었다. 한 번의 충돌로 이런 파괴력 을 낸다는 것은 이미 도와 검이라 불리기엔 무리가 있었다.

“콰과과과!”

주변 공간이 격렬하게 부딪치는 도검의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와르르 떨렸다. 주위의 나무들도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부르르 떨며 낙엽을 떨어뜨렸다. 공기가 사 납게 진동하며 두 사람의 주위로 질풍을 일으켰다.

“쉬이이이익!”

“콰콰쾅!”

귀청을 때리듯 사납게 울리는 기폭음(氣爆音)이 요란스러웠다. 세상을 짓누르는 듯한 거대한 소리. 내력을 다스려 고막을 보호하지 않으면 폭발적인 굉음에 고막 이 삽시간에 찢겨 나가 한평생 귀머거리로 살아야 할 판이었다.

“몇 합짼가?”

초조한 표정으로 두 사람의 격전을 지켜보던 청흔이 옆에 있던 남궁상에게 물었다. 갑작스레 쳐들어온 암습자 무리들을 잠시 상대하느라 그는 두 사람의 결투에서 얼마간 신경을 빼놓고 있었던 것이다.

“벌써 구십 합이 넘었네! 이제 곧 백합이야!”

이 혼란의 와중에도 남궁상은 무인답게 쌍방의 초식 교환을 계산하고 있었다.

“대단하군!”

격전의 한가운데에서는 지금 백색의 검(劍)과 피처럼 붉은 적색의 도광(光)이 춤추듯 한 곳에서 어우러지며 장관을 연출해 내고 있었다.

천변만화(千變萬化)하는 검과 도의 사납고 거친, 사정없는 춤사위!

특히 쌍도를 든 산발괴인의 것은 광기 어린 춤, 광무(狂舞)라 불리기에 손색이 없었다. 그의 도는 피에 굶주린 듯, 사납게 상대의 육신을 유린하기 위한 인정사정 없는 칼부림을 보여 주고 있었다. 충천하는 검기와 도기에 가려 현재 두 사람의 신형은 보통 사람의 안력(眼力)으로는 구분해 내기도 힘든 실정이었다.

“대단하군! 그의 실력이 벌써 저 정도라니!’

청흔은 모용휘의 검기를 보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지금의 그는 아무리 뜯어봐도 자신과 삼성무제 결승전에서 싸우던 때와는 다른 모습을 보여 주고 있었다. 과연 그는 약향(香) 짙게 배인 의약전 침대에서 일어난 후 그동안 놀고만 있지 않았던 것이다. 한층 더 성숙해진 모습과 높아진 경지를 그는 오늘 선보이고 있었다. “나도 그동안 놀고만 있지는 않았다!’

청흔은 무의식중에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리고는 이내 고소를 머금었다.

“이런 격전 속에서도 무인의 호승지심은 사그라들 줄 모른단 말인가? 이럴 때가 아니거늘..

그의 입가에 쓴웃음이 짙게 배어 나왔다. 지금은 생사가 갈리는 격전의 중심이었다. 오랫동안 상념에 사로잡혀 한눈 팔고 있기엔 돌아가는 주변 상황이 너무나 급 박했다.

“콰쾅! 채챙!”

요란스런 폭음이 다시 한 번 터져 나왔다.

벌써 백오십여 합째. 백오십 합이 넘도록 쉬지 않고 저처럼 맹렬하게 검을 휘두르기란 쉽지 않은 노릇이었다. 게다가 한 합한 합 부딪칠 때마다 사위를 사정없이 때리는 이 굉음은, 지금 저 안에서 매 합마다 격렬한 기의 충돌이 일어나고 있다는 증거였다. 일 초 일 초가 혼신의 힘을 다한 일격이란 의미였다.

“과연 내력이 버틸 수 있을까?”

그의 목소리에는 모용휘에 대한 염려가 가득 배어 있었다.

이제 누가 먼저 지치는가에 따라 이번 승패가 정해질 것이다. 초조한 눈빛을 한 채 청흔은 격전장을 주시했다.

청흔은 모용휘의 상태가 다소 걱정스러웠다. 아무리 봐도 상대 괴인은 지친 기색이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반면 모용휘 쪽은 검 끝이 조금씩 무뎌지고 있었다. 청

흔의 눈에는 그 차이가 확연히 보였다.

이 둘의 대결에 비하면 암습자들은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게다가 암습자들도 현재는 두 사람의 승패에 관심을 기울이며 손을 놓고 있었다. 그들도 괴인을 도와 줄 마음이 없는 모양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의 얼굴에 괴인에 대한 신뢰가 어려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들은 단지 한시라도 빨리 싸움의 결과가 나오기만 을 기다리고 있었다. 싸움의 결말이 날 때야말로 현재의 대치 상황이 폭풍에 휩쓸린 격랑처럼 급박하게 변할 것이 분명했다.

뚫어져라 두 사람의 결전을 바라보는 청흔을 슬쩍 일별한 후 남궁상은 조용히 몸을 빼내 비류연에게로 다가갔다. 그의 대사형은 두 손 놓은 채 잠자코 구경만 하고 있는 중이었다. 괴인의 침입과 함께 암습이 있은 후로 비류연이 손을 쓰는 것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남궁상이었다. 도대체 대사형이 속에 무슨 생각을 품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이번에는 대답이라도 한 번 들을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콰과과쾅!”

여전히 모용휘와 갈효봉의 싸움은 요란스럽기 그지없었다. 돌풍이 그들의 주위를 한껏 사납게 휘감고 지나갔다. 자잘한 돌들이 사방으로 마구잡이로 뛰어다녔다. 이 두 사람의 눈에 이미 타인의 존재란 인식의 대상 저편에 존재하는 것일 뿐이었다.

“난 지금 무얼 하고 있는 건가?”

모용휘와 갈효봉의 숨막히는 접전으로 인해 폭출되는 검광(光) 검풍(劍風)이 사납게 휘몰아치며 시야를 현란하게 물들이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눈에는 초점이 맞춰져 있지 않았다.

효룡은 가슴 졸이며 두 사람의 대결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의 정신은 아직 극심한 혼란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상태였다.

“꿀꺽!”

마른침이 목젖을 타고 내려갔다. 그는 지금 초점 없는 눈으로 두 사람의 격전을 지켜보고만 있는 입장이었다. 지금은 그 누구의 편도 들 수 없었다. 게다가 저번에 받은 의심도 있기 때문에 주의하려고 했다. 그리고 반드시 주의해야만 했다. 자신은 이래 봬도 밀정이 아닌가! 정체가 발각될 일은 하면 안 되는 게 당연했다. 모용휘가 내지른 검초가 유성처럼 쇄도했다. 숨죽일 틈도 없이 효봉은 그의 검세를 피해 냈다. 별빛 같은 검기를 피해 낸 갈효봉은 쌍도를 십자로 교차시키며 자세 를 잡았다. 그의 두 눈이 시뻘건 살기로 번뜩였다.

갈효봉의 자세를 본 효룡은 기겁하고 말았다. 정신이 번쩍 드는 느낌이었다. 형이 뿜어 낸 도기가 모용휘를 양단하듯 날아갔다. 모용휘가 재빨리 허리를 숙이며 붉 은 도기를 피해 냈다. 하지만 다시 자세를 잡은 그는 아직 공격이 끝난 게 아니라는 사실을 모르는 모양이었다.

순간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이 순간 자신의 정체를 숨겨야 한다는 사명감은 어디론가 날아가고 없었다. 그래서, 효룡은 실수를 범하고 말았다.

“숙여! 회선십자인(回旋十字刃)이 뒤에서 온다!”

효룡이 다급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다 피한 게 아니었단 말인가?’라는 생각을 속으로 품으면서도 모용휘는 무의식중에 고개를 숙이며 몸 전체를 구부렸다. 십자형 적색 도기를 분명히 막았다고 생 각했는데 아직 끝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쉬잉!”

순간 매서운 살기를 담은 바람이 그의 목덜미를 스치고 지나갔다. 뒤통수로부터 날아온 도기였다. 만일 그대로 뻣뻣이 서 있었다면 목숨이 위태했을지 모를 일이 었다. 모두들 어리둥절한 얼굴로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한 채 효룡을 쳐다보았다. 멍하니.

‘비장절초 중 하나인 혈풍무(血風舞) 회선십자인이라니!’

효룡의 얼굴이 참담하게 일그러졌다. 비록 이성이 마비되었다 해도 저 정도 비기(秘技)를 무리 없이 소화해 낼 수 있는 것을 보니 도법에 대한 감각은 멀쩡한 모양 이었다.

이때 효룡은 청흔이 놀란 눈으로 자신을 쳐다보고 있다는 사실을 느끼지 못했다. 그는 그럴 경황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