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뢰도 7권 13화 – 녹림영웅은 매우 훌륭한 직업이다

비뢰도 7권 13화 – 녹림영웅은 매우 훌륭한 직업이다

녹림영웅은 매우 훌륭한 직업이다

만일 초혼오귀검에게 있었던 일을 명부오귀장이 알았더라면 매우 고소하게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그들은 초혼오귀검이 노사부에게 털린 소식을 접할 수가 없었다.

이들 역시 색욕(色慾)에 눈이 멀어 열심히 신형을 날리고 있는 중이었다.

“셋째, 분명 오귀검보다 우리가 먼저겠지?”

귀신 다섯 마리보다 늦는다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물론이죠! 하지만 방심할 수는 없습니다. 색색이 녀석이 이미 눈치 챘을 테니깐요. 감히 내가 점찍은 여자를 노리다니… 망할 녀석!”

같은 색(色) 분야의 전문가답게 색색이 강약약에게 경쟁심을 느끼고 있는 명부오귀장의 둘째 인살도 고채였다. 그는 가느다랗게 찢어진 눈을 더욱 좁히며 탐욕을 빛냈다.

이들 다섯은 평소에 해 왔던 수많은 전적을 자랑하는 악행대로 이번 악행 또한 무사히 치러지리라 믿어 의심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은 착각이다. 이들은 이 세상 모든 일에 예외라는 변수가 존재한다는 것을 이번 일을 통해 뼈저리게 깨달을 수 있었다.

“잠깐! 정지!”

그 변수의 출현은 너무도 의외의 등장이었다.

“누구냐?”

수상한 기척을 느낀 명부오귀장의 첫째 명염도(冥殮刀) 추항이 버럭 호통을 쳤다.

“나? 아주 훌륭한 사람이지. 강호를 떠도는 봉사자라고나 할까!”

불쑥 나타난 인영을 본 다섯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숲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이는 어디를 뜯어보나 영락없는 산도적 모습 그대로였다.

손에 든 무식할 정도로 커다란 대도(大刀)와 상반신을 가리고 있는 가죽옷. 특히 가죽옷은 한여름에 입기엔 무척 더워 보였다. 참으로 이야기 책에나 나올 법한 전 형적인 산적 모습 그대로였다.

“요즘도 저런 차림으로 영업하는 사람 있냐?”

치밀어 오르는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명염도 추항이 인살도 고채에게 물었다.

“글쎄요? 아마 저런 구식 복장은 무척이나 드물 걸요. 게다가 이 무더운 여름에 땀띠 나게 가죽옷이라니! 크하하하하!”

짐승 가죽을 손질해 만든 가죽옷과 생긴 것부터 무식하게 생긴 대도! 영락없는 산적의 표본이 아닌가! 너무 표본이고 표준이라 지금은 오히려 구닥다리 취급당하 는 모습이었다.

“으하하하하하!”

고채의 말에 모두들 대소를 터트렸다. 어차피 그들에게 산도적 한 명 따위는 식후 간식거리도 안 되는 허섭스레기일 뿐이었다.

“시끄럽다! 감히 본좌처럼 훌륭하신 분 앞에서 건방지게 무례하기 짝이 없는 대소를 터트려? 네놈들이 겁대가리를 상실했구나. 이 세상에 호환, 마마보다 무서운 것이 있다는 걸 내 오늘 보여 주마!”

“뭐라고? 아무리 뜯어봐도 산적 이상으로는 보이질 않는데, 뭘 근거로 훌륭하다고 말하는 것이냐? 네놈이야말로 죽고 싶은가 보구나!”

명염도 추항의 전신에서 무시무시한 살기가 뿜어져 나왔다. 명부오귀장의 수좌인 산도적 따위는 그의 일초지적도 되지 못했다. 그의 일검이면 산적 따위는 단숨에 서른여섯 토막이 날 운명이었다.

그러나 눈 앞의 산적은 자신들이 얼마나 무섭고, 잔인하고, 잔혹한 인물들인지 여전히 눈치채지 못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고객 선정을 잘못 해도 분수가 있는 것이 다.

“아니! 자네 우민들은 녹림영웅들이 얼마나 위대하고 훌륭하며 자기희생적인 사람인지를 아직도 모르고 있단 말인가? 오호통재라! 이런 개탄해 마지않을 일이 다 있다니…….”

“네놈이 감히 우리에게 무슨 도움을 줄 수 있단 말이냐?”

기도 안 차는 이야기였다.

“어허!”

산적은 하늘이 꺼질 듯한 탄식을 터트렸다. 그리고는 대뜸 명부오귀장을 쳐다보며 설득하는 어조로, 어울리지 않게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보게, 이 무더운 날 산길을 걸으면 몸이 얼마나 덥고 짜증나고 피곤하겠나! 자네들이 왜 이렇게 덥고, 짜증나고, 몸이 무겁고, 땀은 나고 발걸음이 천근만근 무

거운 줄 아나?”

명염도 추항이 대표로 도리도리 고개를 저었다.

“그건 바로 자네들이 짊어진 짐들이 너무 무겁기 때문일세. 그 짐 중에서도 가장 고약한 녀석들이 바로 크기는 작은 주제에 무겁기만 더럽게 무거운 돈이라는 녀 석들이야. 아주아주 괘씸한 녀석들이지. 이 녀석들이 자네들의 몸에 주렁주렁 붙어서 몸을 천근 만근 무겁게 한다네. 이런 곤란을 단칼에 해결해 주는 해결사들이 바로 우리 녹림영웅들이지. 이제 내가 왔으니 모두들 안심하게!”

“미친놈! 뭘 안심하라는 거냐?”

추항은 기가 막혔다. 한마디로 줄이면 강탈이라 불릴 행동을 마치 선심이라도 쓰듯 말하는 게 아닌가! 과연 제 정신인지 의심부터 갔다.

“어허, 답답한 친구로군! 아직도 본인의 자상한 마음씨를 이해하지 못하겠는가? 자네들의 몸을 무겁게 만드는 괘씸한 은전들을 내가 하나도 남김 없이 처리해 준 다니깐. 나의 진심 어린 도움의 손길을 부디 거절하지 말아 주게!”

“간단히 말해 봐라!”

명염도 추항이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빙빙 돌려 말하는 것은 그의 성미에 맞지 않았다.

“돈 내놔!”

간단히 축약된 산적의 한마디였다.

대낮부터 명부오귀장은 황당한 일을 당해야만 했다. 감히 명왕도대 중에서도 죽음의 사신이라 불리는 다섯 명의 최고수 앞을 한낱 잡도적 따위가 가로막은 것이 다. 그러니 기가 막힐 수밖에!

“뭐?”

추항이 재미있다는 듯 반문했다.

“돈 내놓으라 했다! 가진 거 다 내놔!”

“쿡! 푸하하하하하하! 으하하하하하!”

산이 떠나갈 듯한 대소가 다섯의 입에서 동시에 터져 나왔다. 그들의 가소롭다는 웃음도 이해 못할 바는 아니었다. 그러나 이들의 대소에 산적은 미동도 하지 않았 다.

“허허! 거참! 살다 보니 별일 다 겪는군!”

그것은 정말이었다. 그들은 여지껏 약탈, 강간, 방화를 해 본 적은 있어도 한 번도 당하는 입장에서 본 적이 없었다. 그들은 언제나 강자였다. 천지쌍살의 이름이 그들의 머리 위에, 등 뒤에 후광으로서 찬란히 빛나고 있는 한 그들의 위치는 영원할 것이라고, 그들은 그렇게 믿고 있었다.

추항의 얼굴에 길게 나 있는 세 줄기 굵은 검상이 요동치듯 꿈틀거렸다. 듣고 있으면 듣고 있을수록 점점 더 기가 막히는 이야기의 연속이었다. 이놈이 감히 누구 앞에서 강도질을 하려는 것인가?

자신들이 누군가! 공포의 대명사 살육의 화신, 지살 명왕도 휘하의 명왕도대 중에서도 가장 뛰어나다는 다섯 명의 도객, 명부오귀장이 아닌가.

이런 산적 따위는 콧방귀 한 방 감도 못 되었다.

“네놈 모가지 위에 있는 물건은 무겁지 않으냐? 본인이 특별 봉사로 가볍게 해 주마!”

헛수작은 한 번으로 족했다. 아무리 진기한 체험이라 해도 너무 자주 하면 질리게 마련이다.

“죽여!”

타이르고 갱생시키는 귀찮고 구차한 일을 할 만큼 그들은 여유롭고 협의지심에 가득 찬 정의파가 아니었다.

추항이 손을 들어 신호를 보내자 녹림영웅을 자처하는 산적의 목을 따기 위해 다섯째 혈명도(血冥刀) 가후혁이 비호처럼 신형을 움직였다. 전력을 다하지 않아도 이 정도의 움직임은 가뿐했다.

“크아아아아악!”

산자락 전체를 울리는 처절한 비명이 구슬피 울려 퍼졌다. 난데없는 비명에 놀란 새들이 푸드득 하늘로 날아 올랐다.

“아… 아니 이럴 수가!”

팔이 뒤로 꺾인 채 땅바닥에 고개를 처박고 널브러져 있는 혈명도 가후혁을 제외한 나머지 네 명은 믿지 못할 광경에 눈알이 튀어나올 것 같은 충격을 받았다. “이, 이럴 수가!”

원하던 결과는 나타나지 않았다. 원래대로라면 목과 몸통이 분리된 채, 잘린 경동맥으로부터 피가 분수처럼 쏟아져 나와야 했다. 명부(冥府)의 도가 뽑혔으니 혈 우혈해(血雨血海)는 사필귀정의 도리였다.

그런데 하늘은 맑기만 했고, 피의 비가 내릴 낌새는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무엇보다 당연히 상하 이단 분리가 되었어야 마땅할 상대의 목과 몸통이 끈끈한 우정을 과시하기라도 하듯 찰떡처럼 붙어 있었다.

결론은 단 하나. 혈명도 가후혁의 일도가 무위로 돌아갔다는 이야기밖에 되지 않았다. 비록 지면에 얼굴을 처박고 있지만 칼날만은 분명히 상대를 베고 지나가는 걸 두 눈으로 똑똑히 확인했다. 분명히 베고 지나갔는데도 베이지 않았다. 그렇다면 환영을 베었다는 의미!

“서… 설마 이형환위(移形換位)!”

잔상을 남긴 채 몸을 움직이는 경신법 최고의 경지! 너무 빠르게 움직이기에 허상을 남겨 실체를 벤 듯한 착각을 안겨 준다. 

“네… 네놈은 누구냐?”

두려움을 떨쳐 버리기라도 하듯 추항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혈명도 가후혁이 누군가! 비록 명부오귀장의 다섯째라고는 하지만, 귀신도 잡는 명부사자 명왕도대 대원 대여섯이 와서 한꺼번에 덤벼도 호흡 한 번 흩어지지 않 을 실력의 소유자였다. 그런 그가 어디서 나타난 말뼈다귀인지도 모르는 산적놈에게 얻어맞고 땅바닥에 면상을 처박힌 것이다. 이들의 눈이 튀어나오려 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그제야 그들은 눈 앞에 헤실거리며 서 있는 산적이 보통놈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조금 늦은 감이 없지 않아 있었다.

“나? 아까 얘기했잖아? 지나가던 친절한 봉사자라고 말이야.”

아직도 자신이 녹림영웅이라는 주장을 철회할 생각이 없는 모양이었다.

푸드득!

산적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그의 어깨 위로 진귀한 푸른 깃털을 가진 매 한 마리가 내려와 앉았다. 하늘의 제왕과 같은 고고함이 서려 있는 듯한 푸른 깃털을 지닌 매였다. 매의 이름은 우뢰매였고, 주인은 물론 변장한 비류연이었다.

이들이, 물론 특정인을 지칭한 것은 아닌데 이놈들이 운 나쁘게 걸려든 것뿐이었다. 물론 인피면구를 쓰고 변장도 철저히 했다.

왠지 불길한 예감이 나머지 네 명의 등줄기를 동시에 사납게 핥고 지나갔다.

아무래도 불길했다. 좋은 꼴로 끝나기는 힘들 것 같았다.

여기서 그냥 자존심을 굽혔다면 최악의 사태로 치달아 예고된 파국을 맞는 것은 면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들 넷은 ・한 명은 이미 행동 불능 상태이니 제외하고 자신들의 쪽수에 너무 크나큰 기대를 가졌던 모양이다.

숫자로 밀어붙이면 될지도 모른다는 가장 위험한 발상이 뻗친 유혹의 손길을 명부오귀장은 잡고야 말았다. 이들도 초혼오귀검과 동일한 오류를 저지르고 만 것이 다.

그들은 반항을 꿈꾸었다. 물론 그 대가는 참혹했다.

“죽어라!”

이미 서로 눈치를 주고받으며 굳은 결심을 한 상태였다.

도광이 사위에 번뜩였다. 지살 명왕도의 수하답게 쾌속무비한 일도였다. 빈틈없이 들어오는 살기 가득한 도기의 그물에 보통의 고수라면 갈가리 찢겨 육편(肉) 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비류연이 결코 일반 고수가 아니라는 점이었다.

그날 그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비류연은 이들 다섯의 뼈마디가 얼마나 단단한지, 살가죽은 얼마나 질긴지 시험해 보고 싶은 느닷없는 욕망에 굴복하고 말았다. 그래서 실행했다. 당연히 그들은 희생양으로 선택되었다. 명부오귀장은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수밖에 없었다.

팟! 파바바바박! 뚜쉬! 뚜쉬! 퍽퍼벅!

비류연(飛流連) 개인절기(個人絶技)

일권(一拳)

삼복구타권법(三伏毆打拳法)

제이부(第二部)

중복(中伏)

다단계다중구타(多端系多重狗打)

뚝딱뚝딱!

“크헉꾸엑! 크아아아악! 헉억헉! 끼야오…….”

다양한 종류의 비명이 쉴새없이 폭력의 중심으로부터 터져 나왔다. 그 날 그들은 있는 힘껏 목청 높여 비명을 지르며 엄청난 뭇매를 맞아야 했다. 그들을 개 패듯 때린 무공의 이름은 ‘삼복구타권법’이라 불리는 수상하기 짝이 없는 이름을 지닌 권법이었다. 이들 다섯은 삼복구타권법이라는 무림 역사상 공전절후의 무식함을 자랑하는 권법을 견식하는 소중한 기회를 얻게 되었다.

왜 보통 때처럼 도(刀)가 피맛을 보지 못한 것일까? 왜 우리들의 도초가 헛손질로 끝나고 말았는가? 왜 우리들은 이런 고통 속에서 허우적대고 있는가? 너무나 강 대한 충격에 명부오귀장은 해답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저 일방적인 폭력 속에서 덧없이 희생될 뿐.

상황은 순식간에 끝났다. 번갯불이 번쩍이고 그 불에 콩이 볶이는 시간이 지난 후 얼굴이 시퍼렇게 멍든 채 바닥에 사이 좋게 널브러진 이들은 바로 명부오귀장 쪽 이었다.

명왕도대 최고를 자랑하던 그들이, 내심 초혼오귀검보다 뛰어나다 자부하던 그들이 일개 산도적한테 비 오는 날 먼지 날 정도로 얻어맞고 흙바닥에 대가리를 처박

힌 것이다. 현실이라기엔 너무나 어이가 없었고, 꿈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참혹했다. 그리고 너무 생생했다.

욱신욱신! 지끈지끈!

뼈마디가 쑤시는 생생하고 짜릿한 이 느낌은 지금 다섯 명이 동시에 악몽을 꾸고 있는 것이 결코 아님을 알려 주고 있었다.

뭔가 일이 잘못되었다.

왜 여기 무당산 영역에 잡도적 따위가 있는지, 아니 있는 게 가능한지 전혀 생각을 못한 바보들인 자신들의 어리석음을 탓해야 할 것이다. 이들도 초혼오귀검과 마 찬가지로 비류연에게 전 재산을 상납해야만 했다.

이들은 현재 손가락 하나도 까딱 못하는 처지라 수금하기 위해 비류연이 수고를 좀 해야 했다.

“흐흐흐!”

비류연은 보기에도 사이한 섬뜩한 미소를 지었다.

이들 다섯은 불쌍하게도 홀딱 벗겨졌다. 여자를 홀랑 벗기려다 되레 그들이 당한 것이다. 인과응보도 별게 아니었다. 돈을 꼬불치지 못하게 하는 데는 이 방법이 최고였다. 이 날 비류연의 손에 벗겨진 사람은 이로써 열 명이 되었다.

이 일이 있은 후 이들은 홀랑 벗겨져 돌아오는 초혼오귀검의 모습에 비웃음을 흘릴 수가 없었다. 홀딱 발가벗겨진 사실을 비밀에 부친다 해도 시퍼렇게 멍든 그들 의 얼굴 또한 비웃음거리가 되기에 적합한 조건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를 나무래 봤자 도토리 키재기일 뿐이었다. 이 비참한 현실에서 언감생심 여인에 대한 음욕이 타오를 리가 없었다. 이들 열 명 모두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는 데는 실패하고 말았다. 그것도 기념비적인 대실패(大失敗)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