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뢰도 9권 3화 – 마하령, 방패화되다!
마하령, 방패화되다!
•수난시대
인내심이 이미 한계에 다다른 사나이.
광풍맹호도(狂風猛虎刀) 팽혁성!
그의 거도에는 지금 살기가 끓어 넘쳐흐르고 있었다.
참을 인(忍)자 세 개면 살인도 면한다고 했던가? 인내심의 장점을 잘 표현한 속담이지만 지금 그는 별로 살인을 면하고 싶지 않은, 분노의 폭발 상태였다.
“네 이놈! 이런 쳐죽일 놈! 처참하게 찢겨 죽고 싶지 않으면 당장 그 손 놓지 못하겠느냐?”
“웬 놈이세요?”
비류연이 정중하게 물었다.
“아참! 아까 무식하게 개 칼질 하던 그놈이셨군요.”
이제야 옆에 있는 걸 겨우 눈치 챘다는 그런 말투였다.
“이… 이놈이!”
팽혁성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변화무상한 색조 변화를 보였다. 살아오면서 이렇게 무시당해 보긴 처음이었다.
“방해하지 말아 줄래요?”
조용한 목소리로 비류연이 경고했다. 어조는 조용했지만 그 안에 담긴 힘은 심상치 않았다. 그의 말투 저변에 흐르는 분위기를 읽지 못한다면 아마 팽혁성, 오늘 낭패를 면치 못할 것이다.
“이… 이놈! 닥쳐라! 찢어진 입이라고 잘도 나불대는구나. 다시 한 번 경고한다. 그리고 더 이상의 경고는 없다. 당장 그 불경한 손을 놓지 못하겠느냐!!!”
팽혁성이 안면을 붉으락푸르락 한 채 사시나무 떨듯 떨리는 손으로 상하좌우로 삿대질을 해댔다. 한 호흡에 일도양단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회주가 인질 로 잡혀 있는지라(순식간에 인질범으로 전락한 비류연으로서는 억울할 따름이었다) 감히 경거망동할 수 없었던 것이다.
“불경한 손이라니요? 그게 도대체 누구 손이죠? 혹시 다짜고짜 상대에게 뺨따귀를 때리려던 이 손을 말하는 건가요?”
비류연은 자신이 잡고 있는, 표독한 들고양이 같은 표정을 짓고 있는 마하령의 섬섬옥수를 살짝 흔들어 보였다. 그녀의 저항은 무소용이었다.
“크아아아아! 이런 찢어 죽일 놈!”
이때 이미 팽혁성의 인내심은 한 가뭄의 우물처럼 밑바닥을 훤히 드러내고 있었다. 그는 원래 힘으로 부딪치는 육체파지, 머리로 승부하는 두뇌파가 아니었다. 이 성적 판단 따윈 기분에 따라 개한테 줘버리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아직까지 칼을 뽑지 않고 이를 악물고 참아낸 오늘의 인내심에는 상을 주어야 마땅했다.
[달려드시오!]
팽가의 귀에 전음(傳音)으로 목소리가 들려왔다. 군웅회에서는 천기룡 단목기 다음으로 머리 좋기로 유명한 제갈세가의 제갈유였다. 그는 신응대의 부대주라는 신분도 가지고 있었다.
[정말 괜찮겠소?]
아무래도 무슨 사술을 당했는지 꼼짝도 못하는 회주의 안위가 걱정되었다.
[걱정 마시오. 설마하니 군웅회주에게 해코지를 할 만큼 간이 배 밖으로 나온 놈이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소. 저 자의 팔을 노리시오. 그러면 회주를 놓지 않고 는 못 배길 것이오.]
[그렇군! 과연!]
팽혁성의 부리부리한 안광이 득의양양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회주만 안전하다면 거칠 게 없었다.
“으아아아압! 맹호출림(猛虎出林)!”
슈캉!
사나운 맹호가 숲을 뛰쳐나가듯 팽가의 오호단문도가 폭발적인 기세와 더불어 출수되었다.
그러나 곧 제갈유도 팽혁성도, 그리고 백무영도 비류연을 너무 평범한 일반적 잣대로 재고 있었음을 반성해야만 했다.
비류연의 행동에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었다.
“헉!”
“컥”
“헉!”
“꺄악!”
사람들의 눈이 새총 맞은 비둘기마냥 동그랗게 부릅떠졌다.
주변에서 헛바람 들린 경악성이 터져 나온 이유는 간단했다. 바로 비류연이 사납게 폭풍 치는 오호단문도의 ‘맹호출림’이라는 초식 앞에다 마하령을 들이밀었기 때문이다.
팽혁성의 도초는 정확히 비류연의 팔을 노리고 있었다. 그러면 비류연이 제풀에 놀라 팔을 뺄 줄 알았던 것이다. 그러나 그의 생각은 비류연을 너무 무시한 처사였 다. 비류연이 손을 놔줄 것이라는 그의 소박한 바람은 너무나 안일한 생각이었다.
비류연이 손을 뒤로 빼기는 했다. 그렇지 않으면 그 자리를 망설이지 않고 팽가의 도가 훑고 지나갈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뒤로 빠지는 그의 손에는 여전히 마하령의 손이 잡혀 있었다. 당연히 팽혁성의 도가 향하는 정면에 마하령의 몸이 노출될 수밖에 없었다.
“악!”
“허걱!”
“꾸엑!”
팽혁성이 순간 기성을 토했다. 돼지 멱따는 소리 저리 가라는 괴상망측한 소리였다.
그는 기겁하며 자신이 휘두른 거도의 방향을 급작스럽게 틀기 위해 자신의 온몸을 내던져야 했다.
쿠콰콰콰콰!
팽혁성은 전력을 다해 도초의 경로를 틀었다. 죽으면 죽었지, 회주 살인자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 싶지는 않았다. 그랬다가는 남은 인생이 너무 비참해질 터였다. 쉬엑!
그의 칼끝이 마하령의 코앞에서 급격히 방향을 틀었다. 팽혁성이 죽음을 각오하고 전력을 다해 몸을 던진 쾌거였다. 조금이라도 늦었다면 그녀의 코는 내일부터 반 치 정도 낮아졌을 것이다. 그렇다면 무척이나 성공적인 성형수술이 되었을 것이다.
카가가가칵!
팽혁성의 도가 애꿎은 대지를 거칠게 가르고 지나갔다. 남아 있던 도의 여력을 주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마 칼끝이 너덜너덜해졌을 것이다.
오갈 곳 없는 도에 실린 여력이 그의 몸으로 되돌아와 그의 내부를 진탕시켰다.
울컥!
무리한 초식 운용 덕분에 아무래도 가벼운 내상을 입은 것 같았다. 갑작스런 돌발 사태 앞에서 급박하게 도의 간격과 진로, 그리고 힘을 조절하기란 그에게는 아직 벅찬 일이었다.
그래도 팽가의 이런 노력 덕분에 다행히도 마하령은 무사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녀의 얼굴은 시체처럼 창백하게 변해 있었다.
뻐끔뻐끔!
그녀의 파랗게 질린 입술은 붕어처럼 입이 벌어졌다 닫혔다를 반복하고 있었지만 말은 새어 나오지 않았다.
갑작스럽게 칼받이용 방패 취급을 당하며 살벌하게 날아오는 칼날에 이렇게 던져지다니……. 태어나서 아직까지 한 번도 이런 비참한 취급을 받아 본 역사가 없 었던 그녀였다. 때문에 지금 그녀는 극심한 정신적 공황에 빠져 있었다.
“허억… 허억… 허억…….”
팽혁성은 가쁘게 숨을 몰아 내쉬고 있었다. 아직도 가슴이 벌렁 벌렁거렸다.
“제… 제갈유! 이 거짓말쟁이! 말이 다르잖아!”
모든 원망의 화살이 자신만만하게 자신에게 조언하던 제갈유에게로 향했다.
경악으로 부릅떠진 수십 개의 눈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태연자약하게 서 있는 비류연에게로 향했다.
“비 공자는 짓궂은 사람이로군요!”
“…..”
은설란의 말에 나예린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저게 과연 짓궂다, 정도로 간단하게 표현될 일이란 말인가? 나예린은 섣불리 대답하기가 망설여졌다.
비류연이 보여준 돌발 행동이 몰고 온 여파는 놀라운 것이었다. 모두들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입을 쩌억 벌렸다. 그 입은 한동안 닫힐 생각을 안 할 모양이었다.
“헉헉헉! 네… 네놈은 진정 미친놈이었단 말이냐?”
격하게 숨을 헐떡이며 팽가는 가까스로 말을 내뱉을 수 있었다. 아직도 뒤집혀진 기혈이 안정을 못 찾는 것 같았다. 무리하게 도의 궤적을 바꾸었기 때문에 얻은 쓰라린 대가였다. 그의 입가로 한 줄기 피가 흘러나왔다.
“아무리 헛소리가 개인의 자유라 해도 무슨 망발인지요? 전 당신보다는 훨씬 제정신입니다.”
“헛소리! 이… 이놈이… 이런 찢어 죽일 놈이…….?”
설마설마 했는데 진짜로 마하령을 방패로 이용하다니! 직접 목도하지 않고는 그 누구도 믿지 못할 사실이었다.
팽혁성은 하마터면 울화통이 터져 살해당할 뻔했다. 가만히 있어도 이가 빠드득 갈렸다. 치아가 모두 마모될 정도로 강력한 힘이었다. 악이 받쳤다.
“이게 무슨 돼먹지 못한 짓이냐? 여성을 방패로 삼다니? 네놈은 강호의 도의(道義)도 모르는 놈이었더냐?”
팽혁성이 버럭 고함을 치며 미친 듯이 화를 터트렸다. 방금 자신의 칼이 마하령의 몸에 지워지지 않는 상처를 남길 뻔했던 것이다. 지금 그의 얼굴은 혼백이나 제 대로 붙어 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새파랗게 질려 있었다. 아직도 손의 떨림이 가시지 않고 있었다.
“어차피 안 맞게 할 거잖아요. 부하를 믿고, 자신의 성별을 믿고 함부로 날뛰지 말라는 교훈이죠. 남녀는 평등한 거 아닌가요? 그리고…….”
아직 비류연의 말은 끝나지 않았다. 그는 여전히 할 말이 남아 있는 모양이었다.
“부하의 실수는 윗사람이 책임지는 게 당연하잖아요!”
의연할 정도로 너무나 당당한 태도!
이때 팽혁성이 할 수 있었던 일은 고작 멍한 표정으로 멍하니 서 있는 것뿐이었다.
‘저 천하에 두려울 것 없는 것처럼 행동하던 구정회주 마하령을 방패로 쓰다니! 이 남자! 과연 제정신인가?”
우선 그것부터 궁금해지는 백무영이었다. 저걸로 이제 군웅회와 비류연은 세불양립이 되었다. 아니, 세불양립은 마하령의 뺨이 발갛게 달아올랐을 때부터였고, 이 제부터는 불공대천의 원수 쪽이 더 정확한 표현일 듯했다. 양쪽 모두 조용히 물러설 사람들이 아니었다.
‘저 자존심 드센 소저가 가만히 있을 리 없겠지! 그렇다면 우리 구정회는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 비류연을 적으로 돌릴 것인가, 아니면 비류연을 감싸고 돌 것 인가?”
적의 적은 아군이라지만 지금 비류연의 행동은 너무 지나친 감이 있었다.
‘저렇게까지 일을 성대하게 벌이면 문제가 되는데…….’
군웅회랑 일을 벌여 그들의 자존심에 상처를 입히는 건 좋지만 너무 현 조직에 반항하면 구정회로서도 그의 손을 들어줄 수 없었다. 게다가 비류연은 구정회와도 전혀 문제가 없는 게 아니었다. 이미 꽤 심각한 문제들을 일으킨 바가 있었다.
“이제 어떻게 한다?’
비류연의 진면목 중 그 일부나마 엿본 백무영으로서는 고민이 될 수밖에 없었다. 분명 그때 보았던 그것이 환상도 거짓도 아니라면 좀더 신중하게 생각해 볼 필요 가 있을 듯했다. 지금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고작 사태의 추이를 지켜보는 것뿐이었다.
‘젠장! 만 권의 서적도 저 인간 앞에서는 무력할 뿐이로구나!’
형산파의 행보를 좌지우지한다는 형산 제일기재인 자신이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는지…….
한숨만이 푹푹 내쉬어져 나왔다.
“너… 본녀가 누군지 진정으로 알고 이러는 것이냐? 이런 짓까지 벌이고도 무사할 성싶냐?”
잠시 비류연의 방패 대용품 노릇을 했던 마하령의 목소리에는 지금 깊디깊은 분노가 일렁이고 있었다. 아직 그녀의 얼굴에는 핏기가 채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아 무래도 심리적 타격이 상당한 모양이었다.
“몰라요.”
비류연이 서슴없이 대답했다. 알면서도 모른 척 시치미를 뗐다.
“그리고 별로 알고 싶지도 않아요!”
“..뭐?”
이런 황당한 대답을 듣게 될 줄은 솔직히 마하령으로서도 의외였다.
“만일 몸이 움직이기만 한다면… 이따위 녀석 단칼에 베어 버릴 텐데…….’
아직도 마하령의 몸은 비류연의 속박에서 풀려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그것이 그녀로서는 분하고 원통할 따름이었다.
“뭐 그렇게 자신을 알아주길 원한다면 지금부터 선심 써서 기억해 줄 수도 있어요. 어때요? 기억해 줄까요?”
비류연이 능글맞은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뭐, 지금부터 천천히 알아도 늦지 않죠.”
비류연의 반응은 태연 그 자체였다.
“누… 누가 너 따위에게 기억당하고 싶다고 했느냐!”
분노로 벌게진 얼굴로 마하령이 빽 소리쳤다. 그녀로서는 황당하기 그지없는 일이었다. 지금껏 그 누구도 자신 앞에서 감히 이런 식으로 말하는 이가 없었다. 다들
목숨이 아까웠을 테니깐..
“이미 늦지 않았을까…….’
두 사람의 미묘한 대치를 지켜보는 주위 사람들의 공통된 의견이었지만, 속내였기 때문에 비류연의 귀에는 들어오지 않았다.
“너의 무지를 믿고 이 같은 터무니없는 짓을 저질렀단 말이냐? 옛말에 무식하면 용감하다더니 너 같은 자를 두고 한 말이로구나.”
그녀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는 강철로 된 가시가 잔뜩 박혀 있었다. 비류연은 꼭 한 번 그녀의 혀를 전체적으로 구경해 보고 싶었다. 그리고 어느 부분에 가시가 돋 아나 있는지 꼭 확인해 보고 싶었던 것이다.
“입이 험한 소저로군요. 그리고 소저의 정체를 알아 봤자 뭐가 달라지죠?”
“많이 달라지지. 우선 너는 나에게 무릎을 꿇고 이마를 바닥에 찧으며 백배 사죄하게 될 것이다.”
자신만만한 목소리로 마하령이 말했다. 그녀에게는 그것이 당연한 일상이었다. 그러나 마하령의 일상이 비류연에게는 코웃음거리밖에는 되지 못했다.
“하! 꿈도 야무지시네요. 사실이 어떻든, 그리고 당신의 신분이 무엇이든지 간에 변하는 건 아무것도 없어요. 당신이 설혹 황제의 딸이라 해도 당신이 나에게 사과 하고 부탁해야 한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는 겁니다. 아시겠어요?”
비류연의 말은 단호하기 그지없었다. 그의 의지에는 조금의 흔들림도 존재하지 않았다.
“이놈은 지금 진심이다!’
바로 지척에서 비류연의 말을 또박또박 새겨들은 마하령은 그 사실을 절실히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여전히 그 광오함과 오만함과 자신감의 원천은 그녀로서도 알 수가 없었다.
“어? 이제는 공격 안 해요?”
비류연의 갑작스런 질문은 팽혁성을 향한 것이었다. 순간 팽혁성은 멍한 표정을 짓는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에이… 시시하군요. 좀더 방패의 효용성을 시험해 보고 싶었는데 말이죠.”
여기서 말하는 방패란 물론 마하령 본인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닥쳐라! 이놈!”
팽혁성이 대갈성을 터뜨렸다. 그러나 차마 두 번 칼을 휘두를 수는 없었다. 방금 전 같은 끔찍한 악몽은 두 번 다시 사양이기 때문이다.
“나의 이름을 걸고 맹세한다. 네놈! 이름이 무엇이냐?”
그녀의 눈이 분노로 이글거렸다.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씩이나 방패 취급을 당하는데 좋아할 사람이 없었다.
“비류연이라고 하죠.”
이름을 감출 만큼 그는 허약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는 항상 자신이 벌인 일에 대해 책임질 자세가 되어 있었다.
“기억하마! 비류연! 반드시… 기필코… 네놈에게 이 세상에서 가장 끔찍한 지옥을 경험하게 해주마.”
그녀의 혀가 증오의 불길로 활활 타올랐다. 듣는 이의 모골을 송연케 하는 말이었다.
“할 수 있다면…….?”
되받아치는 비류연의 말은 자신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세상이 무너져도 자신만은 멀쩡할 것이라는 그런 얼토당토않은 자신감이었다. 그러고는 얄밉게 한마디 더 덧붙였다.
“해보시죠, 뚱땡이 소저!”
그녀의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꽉 다문 아랫입술에서는 피가 배어 나오고 있었다.
“이… 이… 이…….”
너무나 흥분한 나머지 차마 뒷말을 잇지 못하는 마하령이었다. 그녀의 복장은 이미 수십 차례 뒤집어질 대로 뒤집어져 있었다. 속에서 화기가 치솟아 오르고 있었 다.
““네 이놈! 앞으로 절대 두 다리 뻗고 잘 수 없게 만들어 주마!”
마하령의 엄포!
그러나 비류연의 반응은 무덤덤했다.
절레절레!
비류연이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혹시 내 부인이라도 되고 싶은 거예요?”
“뭐… 뭐라고? 무슨 헛소리냐?”
발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마하령이 소리쳤다.
“그럴 생각 없으면 남이야 다리를 뻗고 자든 움츠리고 자든 안짱다리를 하고 자든 남의 잠자리까지 일일이 시시콜콜 신경 쓰지 말아요! 그리고 아직도 협박이 유 용한 수단이라 생각하는 모양이죠? 제가 그렇게 만만하게 보였던 모양이군요. 이를 어쩐다, 어떤 경로를 통해 제가 공갈이나 협박 같은 시시한 것에 넘어갈 거라고 생각하셨는지 모르지만, 오판을 해도 단단히 하셨군요!”
자신이 남을 공갈협박하는 일은 있어도 공갈이나 협박당하는 일은 결코 없는 비류연이었다. 그것은 자신의 명예를 걸고 장담할 수 있었다.
“정말 사납고 신경질적이고 표독스럽기 짝이 없는 암고양이로군요!”
게다가 버릇도 없었다!
군웅회주 마하령에 대한 비류연의 신랄한 평가였다.
나예린과의 불법 무단 입맞춤 사건으로 인해 뭇 남성의 공적이 되다시피 한 비류연이었다. 그에게 있어서 사람 하나 둘, 아니 열이나 스물 정도의 원한쯤은 코웃음 치며 넘길 수 있는 미미한 수준의 것이었다.
그러니 거기에 여자 한 명분의 원한과 증오가 보태졌다 해도, 그것이 비록 열댓 명분의 원한을 혼자 몸으로 뿜어내는 존재라 해도 그는 별다른 상관이 없는 모양이 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