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신참 맞죠?
천무학관 검혼관의 불은 대부분이 꺼졌지만
남창 중심에 위치한 번화가는 여전히 휘영청 밝은 빛을 내며
불야성을 이루고 있었다.
밤에 색주가(色酒街)의 불이 꺼진다는 것은, 여름에 털옷 입겠다는 것과 마찬가지 이야기였다.
비류연의 발걸음이 향한 곳은 남창 최대 주루 중 하나인 순풍루(順風樓)였다. 순풍루는 일 년 열두 달 무휴를 자랑하는 곳으로 항상 열두 시진 전일(全日) 영업과 최상의 손님 접대로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었다.
이곳은 층이 높아질수록 점점 더 호화로워진다는 특징이 있었다. 즉 최상층으로 올라갈수록 최고의 대접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이봐! 멈춰!”
비류연이 막 하급(下級)에서 중급(中級)으로 바뀌는 3층으로 올라가려는 순간, 거칠고 날카로운 쇳소리 같은 목소리가 비류연의 발길을 멈춰 세웠다.
총 6층으로 이루어진 이곳은 각각 두 개 층씩 상(上), 중(中), 하(下)급으로 분류되어 손님을 받고 있었다.
“저요?”
비류연이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켰다.
“그래 너!”
거한은 여전히 삿대질을 유지한 채 고개를 끄덕였다. 거만하기 짝이 없는 태도였다.
비류연의 눈초리가 살짝 치켜 올려갔다. 감히 자신의 행보를 방해한 이는 우락부락하게 생긴 위력 과시용 호위꾼이었다. 물론 그의 울퉁불퉁한 근육은 일반인들에 겐 위협적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무림인이 보기에는 그저 무겁기만 하고 쓸 데는 없는 장식품일 뿐이었다.
덩치가 거만한 목소리로 말했다.
“꼬마야! 여긴 너 같은 어린애가 올 곳이 못 된다. 여기는 다른 싸구려 주루와는 차원이 다른 역사와 전통과 품격을 자랑하는 남창 제일루 순풍루다. 혼찌검 나기 전에 썩 물러가라!”
‘남창 제일루? 다른 곳에서도 분명 자신들이 남창 제일루라고 주장했는데?”
아무래도 남창 제일루는 단수가 아닌 모양이었다. 그러나 지금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그것은 명백히 자신을 무시하는 말투였다. 물론 그런 말을 들었다 해서 순순 히 물러날 비류연이 아니었다. 오늘 거한은 상대를 잘못 골랐다.
약간 기분이 상한 얼굴로 비류연이 되물었다.
“왜 안 된다는 거죠?”
살짝 말려 올라가는 입꼬리, 보통 일반적으로 그를 아는 사람은 이때 본능적으로 몸을 사리며 집중 경계 태세에 들어간다.
“흥! 그런 말 하기 전에 네 몰골이나 살펴봐라!”
치렁치렁한 앞머리에 가장 평범하면서도 싸구려 냄새가 풀풀 나는 낡은 흑의 무복, 몸 어디를 찾아봐도 병장기 같은 건 보이지 않았다. 무림인은커녕 거지로도 안 보이는 게 천만다행이었다.
“왜요? 멋있기만 한데? 무슨 문제가 있다는 거죠?”
아무래도 비류연의 시각은 일반인들이 바라보는 시각과는 현저히 다른 모양이었다.
“꼬마가 오늘 매를 버는구나.”
그러는 당사자는 죽음을 열정적으로 불러들이고 있는 중이었다. 염라대왕이 민간시찰 나온 줄 꿈에도 모르고 말이다.
우락부락하게 생긴 호위꾼 왕정이 주제도 모르고 자신의 목숨을 가지고 장난치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비류연의 어디를 훑어봐도 천무학관의 관도 같은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특히 왕정처럼 천무학관 사람들에 대해 미묘한 환상을 지니고 있는 이들에게 이런 현상은 더욱 심했다. 그들이 지닌 환상이 실제 존재하는 천무학관 관도들을 더욱 미화시키고 포장하고 있었다.
“당신 신참이죠? 심부름은 안 하고 이런 데서 죽치고 있어도 되는 건가요?”
“헉! 어… 어떻게…….”
왕정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순간 가슴이 뜨끔했던 것이다. 사실 그는 순풍루 호위꾼들 중에서 가장 막내였다.
“뭐 그런 거야 상식이죠.”
별 대수롭지도 않다는 듯한 말투였다.
아마 이 정도 인물이면 호위 무사 심부름꾼 정도 될 것이다. 지금은 한창 바쁠 때라 고양이 손이라도 빌리고 싶어 빌린 것이리라. “꼬마 놈이 말이 짧구나.”
솥뚜껑만한 그의 손이 하늘로 치켜 올려졌다. 이제는 내려치는 일만 남았다.
그러나 간발의 차로 왕정은 목숨을 구함 받을 수 있었다. 손을 내려치려는 찰나, 순풍루의 총관인 조명발이 비호처럼 달려왔던 것이다. 목이 찢어져라 비명을 토하며…….
“잠까아아아안! 기다려어어어!”
이 처절하면서도 필사적인 목소리의 목표는 바로 사신(死神)의 개작두 위에 목을 올려 놓은 왕정을 향한 것이었다.
흠칫!
갑작스런 고용주의 저지에 후려갈기려던 그의 손이 허공 중에 우뚝 멈추어 섰다. 그와 함께 사신의 칼질도 그 움직임을 멈추었다. 사신의 사망신고도(死亡申告刀) 가 우뚝 멈춰선 곳은 그의 목덜미 바로 위였다.
“초… 총관님! 이놈이 도대체 어떤 놈이길래?”
왕정은 무의식중에 비류연을 향해 손가락질하며 조 총관에게 물었다. 순간 조 총관의 얼굴이 하얗게 탈색되며 사색이 되었다. 세 치 혀는 만악의 근원이라 했던 가?
“무… 무슨 짓이냐! 이… 이분은…..”
총관 조명발이 각혈하는 심정으로 주의를 주려 했으나 이미 때는 늦었다. 비류연의 시선이 그 손가락 끝에 고정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참 버릇없는 손가락이네요.”
비류연이 덥석 그 버르장머리 없는 검지를 잡았다.
“어어어?”
왕정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자신이 지금 꿈을 꾸고 있나 의심스러울 지경이었다. 왜냐하면 자신의 발이 지금 바닥에 닿아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공중으로 한 치 정도 붕 떠 있는 상태였다. 그것을 가능케 해주는 원인은 현재로서는 단 하나밖에 없었다. 그것은 바로 자신의 검지 끄트머리를 잡고 있는 비류연의 손뿐이었다. 왜 냐하면 그는 공중부양술(空中浮揚術) 따위는 배운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휘잉!
“으아아악!”
순간 왕정은 왜 하늘과 땅이 예고도 없이 뒤집혀졌는지 의아해 해야만 했다. 알고 봤더니 뒤집힌 것은 하늘과 땅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었다. 자신의 검지를 쥐고 있는 비류연의 엄지와 검지가 살짝 비틀어지자마자 벌어진 일이기도 했다. 그의 머리는 지금 바닥으로부터 사람 가슴 높이 정도까지 떨어져 있었다. 신기한 것은 자 신의 몸 전체를 지탱해야만 하는 검지에 전혀 통증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휘잉!
“으헉! 어어어…….”
미소와 함께 살짝 이동하는 비류연의 손끝에 의해 왕정의 하늘과 땅은 다시 원래대로 복구될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끄아아아악!”
그의 몸이 순간 풍차처럼 돌아가기 시작했다. 눈이 빙그르 돌았다. 상하좌우가 한데 뒤섞이며 눈알이 팽팽 돌고 귀가 윙윙거렸다.
속이 심하게 울렁거리기 시작했다.
“고… 공자! 보는 눈이 많습니다. 이제 그만 하시지요. 제가 따끔하게 혼을 내겠습니다. 제발 참아 주십시오! 비 공자.
이 기가 막힌 광경에 놀라 한동안 할 말을 잃고서 정신을 놓고 있던 조 총관이 부랴부랴 사태를 수습하려고 나섰다. 이대로 잘못하면 내일 송장 하나 치를 것만 같 았다.
“그럴까요?”
붕붕붕!
여전히 인간 풍차 돌리기를 멈추지 않으며 비류연이 말했다.
“네! 부디 그래 주십시오. 하하하! 빨리 올라가서 식사를 하셔야죠. 곧 성대한 요리를 대접해 올리겠습니다. 그러니 오늘은 이것으로 참아 주십시오!”
조총관의 싹싹한 말투에 비류연의 마음이 동했다.
“그럼 그러죠!”
뚝! 요리라는 말에 솔깃해진 비류연이 그제야 인간 풍차 돌리기를 멈추었다.
“홍야, 홍야, 홍야.”
다시 맨땅에 내려진 왕정의 다리는 이미 문어처럼 흐물흐물해져 있었다. 비틀거리며 주위의 기물에 머리박기를 수십 차례! 왕정이 그나마 대화가 가능할 정도로
정신을 차린 것은 한 다경이 지난 후였다. 그때까지 비류연은 자리를 뜨지 않고 계속 지켜보고 있었다.
“봐요, 내 말대로 당신 신참 맞죠?”
비류연이 물끄러미 왕정의 면상을 쳐다보며 질문했다. 보이지 않는 비류연의 날카로운 시선에 왕정의 등줄기를 타고 식은땀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아직도 하늘이 어디인지 땅이 어디인지 구분이 안 갈 정도로 어지러웠다. 왕정은 오금이 저려와 다리가 와들와들 떨렸다.
“네, 넷!”
부동자세를 취하며 왕정이 대답했다.
“그래? 그렇다면 모를 수도 있지. 걱정 말게. 자네의 실수는 여기 조 총관이 책임질 테니깐 말일세!”
“아… 아니 공자? 어째서 제가..
비류연의 말에 조 총관은 금세 울상이 되었다.
“예부터 아랫사람의 실수는 원래 윗사람이 책임지도록 되어 있지요. 원래 그것이 바로 상좌에 앉은 사람들의 의무 아니겠습니까! 그러니 조 총관과 그 위에 있는 이 주루의 진정한 주인인 순풍…
“고… 공자! 그것만은!”
순간 조 총관이 급히 손사래를 치며 필사적으로 비류연의 말을 막았다. 그것만은 절대 새어 나가서는 안 되는 비밀이었다.
“아참! 그건 비밀이었죠. 뭐 어쨌든 그 사람이 책임지리라 굳게 믿어요.”
‘맙소사!’
조총관은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가끔 흥이 나면 들르는 비류연이었다. 그가 올 때마다 조 총관은 죽을 맛이었다. 그러나 거절할 도리가 없었다. 모든 게 다 누주의 잘못 때문이었다. 윗사람이 실수 하면 아랫사람들의 고생문이야 훤히 열린 것이나 진배없었다.
더 이상 비류연과 대화하다가는 이야기가 어디까지 발전될지 모른다는 위험이 있었다. 그것만은 막아야 했다.
“비 공자! 자리로 가시지요! 마침 오늘 좋은 술이 사천에서 들어왔던 참입니다. 제가 사죄의 뜻으로 한 잔 올리겠습니다.”
여기서 한 잔은 한 병 무료 제공을 뜻한다.
“술에는 안주가 따르는 법이겠죠?”
비류연이 슬쩍 물었다.
“물론입니다. 어서 가시지요! 여봐라! 어서 손님 모시지 않고 뭐 하는 게냐!”
조 총관의 호통에 점소이 하나가 번개처럼 달려와 비류연을 최상층으로 안내했다.
“일 처리가 끝나는 대로 곧 따라 가겠습니다.”
조 총관이 사근사근한 미소를 지으며 비류연에게 넙죽 절했다. 비류연도 답례로 손을 흔들며 의연하게 위층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잠시 후!
“으으으으으악! 크아아아아악! 우어어어어!”
순풍루가 떠나갈 듯한 괴기스런 포효!
“네 이노오오옴…….?”
이윽고 비류연이 시야에서 사라지고 왕정을 향해 돌아서는 조 총관의 눈에는 귀신도 무서워 달아날 만큼 서슬 퍼런 살기가 어려 있었다. 정체를 숨기고 있지만 무공고수인 조 총관의 바늘 끝같이 날카로운 살기를 감당하기에 왕정의 물먹은 근육덩어리는 무리가 있었다. “히이익!”
하마터면 왕정은 너무 무서워 오줌을 지릴 뻔했다.
“응? 이게 무슨 소리지?”
비류연의 귀가 쫑긋거렸다.
점소이의 정중한 안내를 받으며 걸어가는 그의 등 뒤에서 처참한 비명성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꾸에에에에엑!”
퍽퍽퍽!콱콱콱! 뚜쉬뚜쉬뚜쉬!
파닥파닥!
“죽어라! 죽어! 이놈아! 죽어라! 네놈이 감히 우리 가겔 망하게 하려고 음모를 꾸민 거지? 이놈아! 네놈 어디서 보내온 첩자냐? 엉? 바른대로 말 안 해? 남의 가게 기둥뿌리를 흔들려고 하다니……. 우오오오오!”
“아닙니다. 억! 아니에요! 으어억!”
“아니긴 뭐가 아냐! 너 우리 경쟁업체에서 보낸 첩자지! 이실직고하지 못해! 엉?”
퍽퍽! 억억! 퍽! 으악! 퍽! 꾸엑!
“끄아아아아아아아악!”
야심한 밤하늘을 진동시키는 비명이 꼬리를 물며 길게 이어졌다.
“이거, 이거, 너무 소란스럽군!”
고개를 좌우로 저으며 비류연은 자리에 앉았다.
“주문!”
혜성처럼 점원 하나가 쪼르르 달려왔다. 비류연은 이제야 세상이 원상복구 된 느낌이었다.
“순풍산부이 나대이가 비밀리에 가지고 있는 가게랬지. 언제 봐도 화려한 곳이었다.”
귀만 남보다 월등히 컸지 왜소해 보이던 그가 이런 화려한 곳의 주인일 줄은 그 누구도 쉽게 상상이 가지 않을 것이다. 의식 연결이 그의 볼품없는 외견 때문에 장 애를 받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의 영업장도 생각 외로 화려하지는 않았다. 과연 어디서 이 정도 재력을 끌어 모을 수 있는 능력이 나오는지 신기할 지경이었다.
하지만 잘 생각해 보면 이곳 주루는 그의 직업과 직접적으로 연관된 점도 없잖아 있었다. 고금을 통틀어 번화한 주루에는 언제나 정보가 집결되기 때문이다. 게다 가 이곳은 상중하로 확실히 등급이 나누어져 있어 여러 계층의 정보를 한 곳에서 접할 수 있도록 체계가 갖추어져 있었다. 정보를 모으는 데 여러모로 유리할 수밖 에 없었다.
‘뭐… 이것도 일종의 인간 승리겠지…….’
순풍산부이 나대이가 남창에서 여태껏 정보를 팔아 쌓아 온 입지는 이 정도가 아니었다. 정보 상인답게 그는 타인에게는 보여주지 않는 절대 극비의 여러 가지 얼 굴들을 가지고 있었다. 이 주루도 그 여러 얼굴들 중 하나였다. 이곳의 진정한 주인이 쌍낭이 나대이란 사실을 아는 사람은 이곳 토박이 중에서도 극소수에 불과했 다. 그의 자기관리 능력과 기밀의 보호 능력이 그만큼 뛰어나다는 반증이었다.
그런데 토박이 아닌 자 중에 이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 몇 명 있었는데 그 중 한 명이 바로 염도였다. 과거 우연한 인연으로 그 사실을 알게 된 염도 덕분에 이 처럼 비류연이 이곳을 알게 된 것이기도 했다. 그리고 비류연은 지금 이곳의 단골이 되어 있었다.
‘어쨌든 덕분에 무척이나 편리하긴 하지!’
무엇보다 좋은 점은 돈이 거의 먹히지 않는다는 것이다. 양심상 비류연도(돈과 관련된 일에 과연 양심이 있는지는 의심스럽지만) 맨날 공짜로 대접받기만 하는 것 은 아니었다. 의외로 대가 지불에 깐깐한 사람이 바로 비류연이었다. 어릴 적부터 항상 그런 식의 주입식 교육을 받아 왔던 탓이었다. 아무래도 그 세뇌 교육은 자신 을 키워준 보답을 반드시 받아 내려는 사부의 음모가 있었던 것 같지만 지금 확인할 길은 없었다. 이 모든 상황을 고려하고서라도 비류연에게 이곳의 이용 비용은 다른 곳에 비한다면 거의 거저나 다름없었다.
“돈 없는 척하더니 뒷구멍으로는 꽤나 긁어모은 모양이야. 용케도 이 정도로 으리으리한 주루를 손에 넣을 수 있었군. 투자한 돈이 장난이 아니었을 텐데.
이 정도 규모의 주루를 손에 넣으려면 목숨을 건 거래 한두 번으로는 턱도 없었다.
“역시 정보는 돈이 되는 모양이야…….”
정보의 수집 판매가 만만치 않은 고소득이 보장된다는 사실이 비류연의 흥미를 강하게 자극했다. 그러나 당장에 뛰어들어 볼 생각은 가지고 있지 않았다. 아직 그 는 천무학관의 생활이 좋았다.
‘그럼 뭘 먹는다……?”
비류연은 붉은 비단으로 두른 고급스런 주문서를 펼쳐 들었다.
촤라라락!
순간 그의 눈앞에 찬란하고 심오하고 철학적인 요리의 세계가 가득히 펼쳐졌다.
“뭐? 그놈이 또 왔다고?”
똥 씹은 얼굴로 자신의 감정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며 나대이가 소리쳤다. 이곳은 순풍루에서도 가장 최상층에 위치한 곳으로 이곳에서 업무를 볼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사람, 대외적으로 비밀에 싸여 있는 순풍루의 누주 자신뿐이었다. 놀랍게도 그 누주는 귀가 다른 사람보다 훨씬 컸다. 그 사람은 바로 두 개의 주머니 귀, 쌍낭 이(雙囊耳)란 별명을 가진 남창 토박이 정보 상인 순풍산부이 나대이였다.
“이제 그만 와주면 좋으련만… 공짜가 그렇게도 좋단 말인가?”
마치 자신이 봉이 된 그런 기분이었다. 상인이 손님을 봉으로 만들지 못하고 자신이 봉이 되다니… 개구리한테 잡아먹힌 뱀이 된 기분이었다.
“없애 버릴까요?”
조 총관이 조심스레 의사를 타진했다. 굴뚝같은 마음의 반영이었다.
“뾰족한 방법이라도 있냐?”
그럴 마음이야 굴뚝같지만 뾰족한 방법이 없어 두 손 놓고 있는 실정이었다. 반려가 아니라 자포자기가 바른 표현이었다.
“그가 이 근방에 나타났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라니?”
“강호 최고의 자객이라 불리는 혈견향(血見香)입니다.”
“오오! 천 번의 살행을 해냈다는 ‘천살행(行)’의 명성을 획득한 자객 말이지? 선악을 떠나서 약한 자는 죽이지 않고 강한 자의 생명만 취한다고 해서 유명한 놈이 아니냐?”
확실히 혈견향에 관한 정보 의뢰가 음으로 양으로 많이 들어오고 있는 처지라 그로서도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이 모르고 있는 사항인 것을 보니 방금 전서구를 타고 날아온 따끈따근한 최신 정보인 모양이었다.
“그 때문인지 일부에서 무척 인기가 있습니다. 아무래도 업무상 근처에 온 거 같습니다. 어떡할까요?”
“흐흠! 혈견향이라…….”
분명 구미가 당기는 일이기는 했다.
“추진할까요?”
나대이의 허락이 떨어지기만 한다면 내일 혈견향은 한 장의 청부 신청서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관례대로 청부 대금의 반과 함께!
그러나…….
찌릿!
움찔!
나대이가 보내는 살벌한 시선에 답을 기다리던 조 총관은 자연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미쳤냐?”
“아뇨!”
“가게 말아먹을 일 아니면 그런 생각 꿈에도 품지 마라! 누군 무력 쓸 줄 몰라서 이러고 있는 줄 아냐?”
쾌재를 부르며 동조할 듯 보이던 나대이가 불같이 화를 내는 바람에 조 총관은 내심 투덜거릴 수밖에 없었다. 괜히 자기에게 화풀이한다고 느끼는 것도 무리가 아 니었다. 나대이는 곧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아서라! 아서! 혈견향 정도로는 그놈과 그놈 뒤에 있는 염도를 이기지 못해! 자넨 아직 염도가 얼마나 대단한 인물인지 정확히 모르는 모양이군! 그런 비싸기만 하고 실패할 확률도 높은 사람 구할 바에야 그냥 술값 버리는 게 남는 장사겠다. 어차피 망하도록 마시지는 않잖아?”
망하지는 않는다! 그게 그나마 나대이로서는 자기 위안이 되는 말이었다. 확실히 비류연이 염도를 등에 업고 정도 이상으로 과하게 뜯어먹는 일은 없었다. “그래도 한번 해봐?”
한참 조 총관을 혼내고 정신을 차리고 보니 강렬한 유혹과 싸우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나대이는 애써 그 유혹을 뿌리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