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뢰도 9권 21화 – 마하령이 분노하면 제갈기는 슬펐다!

비뢰도 9권 21화 – 마하령이 분노하면 제갈기는 슬펐다!

마하령이 분노하면 제갈기는 슬펐다!

억울한 효룡

찌이이이익!

값비싼 소리! 그것은 결코 싸구려 소리가 아니었다.

음악도 운율도 아닌 단순 평범한 소리에 가격이 매겨져 있냐고 의문을 품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 소리가 매우매우 값비싼 소리라는

사실에는 감히 이의를 제기하지 못할 것이다.

찌익!

찌익!

쫘아아아악!

천이라 불리는 물체가 외적인 힘에 의해 강제적으로 분리되는 이 소리는 그냥 보통 소리가 아니었다. 이 소리는 보통 사람들은 함부로 들을 기회조차 없는 매우 값 비싼 소리였다. 왜냐하면 고가의 고급 비단이 한 여인의 손에 의해 갈기갈기 찢어지는 소리였기 때문이었다.

비단 천이 찢겨진 이유는 간단했다. 그 비단 천은 한 여인의 화풀이를 위한 희생양이었다.

돈도 많지! 값비싼 비단 천을 찢으며 마구마구 화풀이하는 이는 바로 군웅회 회주이자 비류연에게 뚱땡이라 불렸던 철옥잠 마하령이었다. 역시 군웅회의 회주는 일반 사람들이 화풀이하는 것과는 다른 현격한 수준의 격차가 있는 모양이었다.

비류연이 봤다면 비분강개를 넘어 생매장 처리를 감안했을 이야기였다. 값나가는 비단 천을 사소하기 짝이 없는 개인적인 감정으로 갈기갈기 찢어발겨 무용지물 (無用之物), 아니 무전지물(無錢之物:돈 안 되는 물건)로 가치절하하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었고 있어서도 안 될 일이었다. 또한 비류연이 노발대발하며 길길이 날 뛸 이야기였다.

“참으시지요, 회주님!”

군웅회의 회계를 담당하고 있는 제갈기가 회주를 뜯어말렸다. 회주 화풀이 비용이란 명목으로는 더 이상의 자금 지출을 막고 싶은 게 솔직한 심정이었다.

“으으으… 이노옴… 비류연!”

쫘아아악! 쫘악! 쫘악!

다시 애꿎은 비단 한 필이 그 가치를 상실했다. 제갈기는 불쌍한 회계장부를 생각하며 아찔한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그의 마음은 전혀 고려의 대상에 들어 있지 않은지 마하령은 파괴 행각을 그칠 줄 몰랐다.

“이놈… 이놈! 이놈! 이… 찢어 죽일 놈!”

만인 앞에서 자신을 망신시킨 장본인! 여러 가지 수법으로 막대한 비용을 들여 화풀이를 해보지만 눈앞을 가리는 비류연의 밉상스런 모습은 지워지기는커녕 점점 더 그 형태가 뚜렷해져 가기만 했다. 그래서 그녀는 지금 더욱더 분노하고 있었다.

“으아악!”

와장창창!

이제는 비단 천만으로는 자극이 덜했는지 옆에 있던 자단목으로 만들어진 고급 탁자마저 일장으로 으깨어 버렸다. 쪼개진 파편들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으윽! 저건 도대체 무슨 명목으로 처리해야 하는 거지??

산산조각 나버린 자단목 탁자에 삼가 애도를 표하는 제갈기의 머릿속에 고민이 또 하나 추가되었다.

“이제 그만 하시지요.”

나직이 울려 퍼지는 목소리!

다시 한 폭의 비단 천을 제물로 삼으려던 마하령의 하얀 손이 멈칫거렸다. 그녀의 고개가 뒤로 돌려졌다. 그녀의 행동을 멈추게 한 사람은 그녀도 무척이나 잘 알 고 있는 사람이었다. 제갈기는 마치 구세주를 만난 기분이었다.

섬룡閃) 천야진!

그는 마하령과 함께 그녀의 외할아버지이자 표류무상도법(飄流無上刀法)의 창시자 도성(聖) 하후식에게서 그녀와 함께 비전(秘傳)을 전수한 남자였다.

군웅회에서 도법의 최강자는 전년도 삼성무제의 공동 우승자 폭풍도 하윤명이라 여기는 자가 많았다. 물론 도성의 진전을 일부 이은 신도문(神門)의 기재인 폭 풍도 하윤명의 도법은 굉장했다.

그러나 그런 그의 도(刀)도 섬룡 천야진의 도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그는 도성 하후식에게서 직접 그 진전을 사사받은 기명 제자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하령이 매우 신뢰하는 사제(師弟)이기도 했다. 외할아버지 밑에서 함께 수련한 그에 대한 그녀의 신뢰는 가히 절대적이라 할 수 있었다.

“이번 일은 제가 처리하지요!”

그의 한마디에 그제야 그녀의 얼굴이 조금 풀리는 듯했다. 천야진이라면 믿을 만하다고 마하령은 생각했다.

“정말?”

“물론입니다, 사저!”

마하령은 자신이 잡고 있던 비단 천을 살며시 내려놓았다. 그리하여 그녀의 손에 장렬히 산화할 운명에 놓여 있던 한 폭의 비단도 겨우 그 생명을 구제받아 아름다 운 옷이 될 일말의 희망을 부여받게 되었다.

“휴우… 살은 건가?”

엄한 항목으로 지출될 경비가 조금이나마 절감된 것에 대해 제갈기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확실히 나의 한을 풀어주는 거겠지?”

그 감정에 꼭 한(恨)이라는 말을 붙여야 할지는 모를 일이지만, 아무래도 마하령은 그러고 싶은 모양이었다.

“물론입니다. 그 자도 지금쯤 두려움에 벌벌 떨고 있을 겁니다. 감히 군웅회주 철옥잠 마하령을 건드려 놓고 무사하리라 생각하지는 않겠지요.”

“정말 그럴까?”

“물론! 절 믿으세요.”

냉막한 인상의 사내. 섬룡 천야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장담했다.

“비류연…….”

마하령은 아랫입술을 잘끈 깨물었다.

지금 그녀는 굉장히 복잡 미묘한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물론 그것은 본인도 인식하지 못하는 감정이었다. 그것은 단순히 증오스럽다, 수준의 그런 감정이 아니었 다.

태어나서부터 항상 주변의 떠받듦을 받으며 천금으로 자라난 그녀에게 비류연의 막가는 행동은 엄청난 충격이었다.

그날 그 일이 있은 후, 그녀 안에 차지하는 비류연의 비중이 너무 커져 버렸다. 물론 그것은 사랑과 우정, 그리고 호의라고는 티끌만큼도 존재하지 않는 악의와 증 오와 원한의 결정체이기는 했지만 말이다.

그 충격에 비례해 그의 존재도 그만큼 크게 마하령의 마음속에 자리 잡았다. 생전 처음 당한 충격에 대해 느끼는 감정도, 생전 처음 느껴 보는 희한 야릇한 감정이 었다. 그 결정체가 자꾸 그녀로 하여금 그를 떠올리게 만들고 있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만큼 그녀의 마음에 각인된 비류연의 존재가 크다는 점이었다.

“용서할 수 없어! 절대로 용서할 수 없어!”

그녀의 눈에서 차가운 분노가 소리 없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이제 수단 따위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수단 따위는 어찌 되어도 좋을 만큼 그녀의 감정은 격앙되어 있었다. 생전 처음 느껴 보는 격렬한 감정이었다.

비류연 때문에 화기가 치솟고 있는 이는 비단 마하령뿐만이 아니었다. 또 한 사람! 천무학관에서 마하령과 동등, 혹은 그 이상의 위치를 점하고 있는 존재인 구정 회주 창천룡 용천명이었다.

“그 남자, 비류연이라고 했던가?”

잊고 싶었지만, 그러기 위해 노력했지만, 자꾸만 비류연의 얼굴이 지워지지 않았다.

비류연이 마지막으로 자신에게 한 한마디가 뇌리에 각인된 채 거머리처럼 떨어지려 하지 않고 있었다.

“다음엔 그 검이 장식품이 아니란 걸 보고 싶군요.”

헤어지면서 비류연이 내뱉은 마지막 그 한마디, 그 건방진 한마디를 용천명은 도저히 잊을 수가 없었다. 어이없고 얄밉고 주제도 모르는 시건방지기 짝이 없는 한 마디였는데도 불구하고 희한하게도 그 한마디를 용천명은 자신의 뇌리에서 지워 버릴 수 없었다.

‘전심전력을 다해야만 할 가치가 자신에게 있다는 것인가?”

아직은 판단을 내릴 때가 아니었다. 다만 단순한 허풍쟁이는 아니라는 점만이 현재 그가 알아낼 수 있었던 정보의 모든 것이었다.

그로서도 처음 접하는 유형의 인물이라 어떻게 대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꽈악!

용천명이 힘주어 허리에 차고 있는 녹옥여래신검을 쥐었다.

“이 검이 겨우 그런 자 앞에서 뽑힐 수야 없지!’

아직 그는 비류연의 진정한 힘에 대해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저러나 그 사나운 아가씨가 가만히 있지 않겠군…….’

장담하건대 이대로 가만히 침묵하고 있으면 그녀는 마하령이 아닌 그녀의 탈을 뒤집어쓴 또 다른 괴물일 것이다.

앞으로의 전개는 비상한 두뇌를 지녔다고 자타가 공인하는 그로서도 예측이 불가능했다. 용천명은 그 부분이 더욱더 불쾌했다.

이 세상에 오해를 사서 좋은 일은 아무것도 없다. 항상 자기 자신이 피해를 입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오해라는 것은 보통 의도하지 않았는데도, 또 원하지 않았는 데도 불구하고 우연치 않게 일어나서 사람을 당혹시키는 경우가 많다.

“이 일을 어쩌지..”

오해와 오해의 연속 대행진이었다. 생각하면 할수록 신기하고 어처구니없는 오해의 연발이었다. 그래서 이제는 그 오해의 골이 너무나 깊어져 수습하기도 불가능 할 지경이었다.

“고민스럽군.”

안 쓰던 머리를 쓰려니 무척이나 골이 지끈거렸다.

“우이썅!”

저절로 입에서 쌍소리가 튀어나왔다. 절제하려고 해도 도저히 절제가 되지 않았다.

“이 오해를 어찌해서 푼단 말인가?”

고민에 고민을 거듭해 보지만 달리 뾰족한 수가 생각나지 않았다. 이럴 때는 돌대가리 같은 머리ᅳ아무도 그런 말을 한 적 없었다가 원망스럽기 그지없다. 평생 할 고민을 하룻밤 사이에 모두 다 하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런 장면을 목격당했으니…….?

다른 여자와 야심한 밤에 같이 있었던 데다 설상가상으로 찐하게 포옹하고 있는 장면을 들켰으니 그 장면이 오해의 소지를 불러일으키지 않는다는 게 오히려 신기 한 일이었다.

게다가 그의 두 팔은 눈물을 훔치는 은설란을 확실히 변명의 여지도 없이 꽈악 껴안고 있었다. 꼴사납게 자신도 꺼이꺼이 울면서!

문제는 그 절호의 장면을 이진설에게 똑똑히 목격당하고 말았다는 점이었다. 그때 그의 심정은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듯한 그런 느낌이었다.

“우으으으!!! 어쩌지… 이 일을…….”

정말 골치 아프기 짝이 없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방법을 생각해 내야만 했다. 수단과 방법 따위나 여유롭게 찾고, 고르고 있을 시간 여유 따위는 없었다. 그만큼 그는 급했다. 엉덩이에 이미 불이 붙어서 활활 잘 타오르고 있었다. 기사회생의 한 수가 그에게는 필요했다.

역시 이럴 땐…….

“모든 것을 포기하고 하늘에 비는 수밖에는 없단 말인가!’

눈앞이 암담하기만 했다. 희망이 자신을 버리고 기별 한번 없이 멀리 이사를 간 모양이었다.

‘난 억울해!’

그는 정말 억울했다.

효룡은 억울했다. 그래서 어떻게든 자신의 억울함을 하소연하고 싶었다. 그러나 자신의 억울한 하소연을 들어주어야 할 판관은 찬바람이 쌩쌩 불도록 자신을 무시 하고 있었다. 이대로는 아무것도 해결될 수가 없었다.

“어…….”

횅!

다음은 ‘소저’라고 소리 높여 부를 작정이었다. 우연치 않게 길을 가던 도중 상당한 거리를 두고 그녀와 마주친 것이다. 그것은 기회였고, 어떻게든 효룡은 그 기회 를 붙잡고 싶었다. 그러나 효룡은 끝내 ‘이 소저’를 부르지 못했다. 이진설이 그의 존재를 감지하자마자 다른 곳으로 잽싸게 몸을 숨겼기 때문이었다.

“……”

효룡의 고개가 아래로 푹 꺾였다.

1차 시기는 실패로 돌아갔다.

2차 시기의 기회는 의외로 빨리 돌아왔다. 그것은 점심식사 시간의 천무 식당에서였다. 사람이 동물로 태어난 이상 밥은 반드시 먹어야 하는 것이다. 

“이소…….”

행!

효룡은 이번에도 ‘이 소저’를 끝내 부르지 못했다. 이진설은 그와 마주치기보다 밥을 한 끼 굶는 쪽을 택했던 것이다. 이진설은 사람이 한 끼 안 먹어도 죽지는 않 는다는 진리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생각인 모양이었다. 그래도 보자마자 식판을 내던지다시피 하고 달아난 것은 너무한 처사였다. 효룡은 점점 더 마음이 답답해지기 시작했다.

일단 최소한의 변명거리를 늘어놓으려면 그녀와 일 대 일로 대면해야만 했다. 그러나 그녀는 그 최소한의 기회조차 그에게 부여하지 않고 있었다. 효룡의 어깨가 축 처지는 것이 당연했다.

주위의 반응은 그를 골려먹지 못해 안달이라도 난 듯했다.

“쯧쯧! 자네도 몹쓸 사람이로군. 저렇게 귀여운 소저를 놔두고 두 마음을 품다니 말일세. 정말 실망일세. 실망이야!”

남궁상은 이미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는 듯한 말투였다. 어떻게 그 사실을 알았는지 효룡은 그것부터가 궁금했지만, 굳이 그 근원을 물어 제 무덤을 파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나 억울함 정도는 호소해야 할 필요성이 있었다.

“전 억울합니다.”

“현장을 들킨 사람들은 항상 그렇게 말하지!”

남궁상이 쯧쯧쯧 혀를 찼다.

“진짜, 진짜, 억울하다니까요!”

효룡의 얼굴이 못 봐줄 정도로 울상이 되었다. 그러나 골려먹는 재미가 있는지 남궁상은 그만둘 생각을 못하고 있었다. 오래간만에 놀림 당하던 신세에서 놀려주 는 신세로 지위가 격상된 것이다. 이 절호의 기회를 그냥 버리기에는 너무나 아까웠다.

“남자는 불쌍한 동물인 것을 어쩌겠는가…….”

다 이해한다는 투로 남궁상이 이야기했지만, 효룡에게는 전혀 위로가 되지 않았다.

“이제 어쩌면 좋죠?”

이미 물은 엎질러졌다. 주워 담을 수 없으니 새 물을 길을 방법을 떠올려야만 했다. 그래도 진령이라는 엄연한 정인이 있는 남궁상이 도움이 될 것 같았다. 그러나 뚜껑을 열어 보니 그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었다.

“그걸 부덕한 내가 어찌 알겠나. 자네, 세상은 험한 법이라네. 갖은 고난과 역경이 기다리고 있는 심오한 세계지. 그러나 그 길은 그 누군가가 대신 걸어가 줄 수가 없다네! 그것만은 그 누구에게도 불가능하지.”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하고 싶은 말씀만 간단히 하십시오.”

뾰로통한 얼굴로, 퉁명스럽게 말했다. 이미 더 이상의 기대를 품는 게 어리석은 일이라는 것을 뼈저리게 깨달았기 때문이다.

“응? 아 뭐! 열심히 하라는 이야길세. 자기 일은 자기가 스스로 해결할 수밖에 없지. 더군다나 그것이 남녀간의 심오한 문제라면 말일세…….”

남궁상은 말끝을 흐리며 대답을 얼버무렸다.

“그런 식으로 외면해 버리시는군요. 선배님, 실망했습니다!”

“어허, 실망이라니… 남녀간의 심오하고 철학적이며 오묘한 문제는 그 누구의 도움도 무용한 것일세. 어떻게든 달래 보게. 난 모르네. 남녀 문제라면 내 문제 하나 만으로도 벅찬데, 내가 어떻게 자네를 도와줄 여력이 있겠는가?”

비겁하게도 남궁상은 발뺌 신공을 교묘하게 펼쳐 효룡의 부탁을 빠져나갔다. 믿는 도끼 신공으로 강렬하게 공격해 보았지만 살짝 빠져나간 남궁상 때문에 효룡은 자신의 발등을 아프게 찍고야 말았다. 처절한 절망감과 함께…….

앞길이 막막하기만 했다.

‘울고 싶군…….?

이렇게 된 이상 효룡은 구원을 요청할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