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뢰도 13권 7화 – 세 번째 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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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뢰도 13권 7화 – 세 번째 관문!

세 번째 관문!

– 검묘(劍墓)

“그들은 과거의 족쇄에 사로잡혀버렸군요!”

두 번째 관문을 지나 세 번째 관문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며 나예린이 말했다.

그녀와 보조를 맞춰 걷고 있던 비류연은 입을 다문 채 아무런 대답도 들려주지 않았다. 무척이나 드문 일이었다. 그의 입은 때론 휴식을 죄악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게 아닌가 여겨지던 때도 있었던 것이다.

“아까부터 무얼 그렇게 골똘히 생각하고 있나요?”

질문을 던져 놓고 나예린은 스스로 놀랐다.

자신이 묻고 있다. 왜? 답은 곧 나온다. 궁금하니깐! 궁금하다? 왜? 알고 싶으니깐! 뭘?

“…그의 생각?’

이것이 호기심이라는 것일까?

호기심이라는 것은 그녀로서는 아직도 잘 적응되지 않는 무척이나 생경한 감정 중 하나였다.

“하늘이 참 푸르죠? ”

비류연은 딴청을 부렸다. 푸른 하늘의 바람을 가르며 한 마리 매가 날고 있다. 굳세고 넓은 날개, 푸른 깃털. 우뢰매다. “류연!

그녀는 경고의 의미로 약간 언성을 높였다. 그러면서 그녀는 또다시 남에게 강요란 것을 하고 있는 자신에 대해 놀랐다. 이것의 동기 또한 호기심인가?

“…께끼…….”

“네?”

처음의 말은 너무 미약해서 잘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어요! 어쩌면 풀어야만 할지도 모를….?!”

그러고는 비류연은 다시 입을 다물었다. 처음으로 나예린은 비류연의 마음에 존재하는 벽을 느꼈다. 단단한 그 벽은 그녀의 접근을 허용하지 않았다. 갑자기 가슴 한 구석이 이유도 없이 욱씬 아파왔다.

결실이 익는 가을의 풍요로움이 산 전체를 뒤덮고 있었지만 오직 그곳만이 그 혜택에서 외면 받고 있는 듯했다.

그곳을 무엇이라 불러야 마땅할까? 급격한 경사가 느닷없이 끊기며 드러난 넓은 공터. 그곳은 풀 한 포기 자라지 않은 황량한 불모의 땅이었다. 왠지 불길한 느 낌……. 그러나 이 불모의 땅에도 유일하게 자라 있는 게 있었다. 그 수는 무려 백여 개가 훨씬 넘어 보였다.

자라 있다?

사람들은 처음에 그것이 무엇인지 몰랐다. 그저 작은 나무가 이 사막 같은 황량함에 굴하지 않고 생명의 싹을 틔운 것인가 했다. 그러나 그런 것치고는 가지도 잎 사귀도 달려있지 않았다.

자세히 살펴봤다. 사람들의 눈이 크게 떠졌다. 그것이 무엇인지 마침내 알았던 것이다.

오랜 세월 동안 이 장소에 버티고 있었음이 분명했다.

이진설이 그 중 하나에 손을 가져가 이리저리 만져보았다. 피(皮)처럼 감싸고 있던 흙먼지가 파삭 소리와 함께 떨어졌다. 순간 강렬한 빛이 반짝였다.

“악!”

소녀가 황급히 손을 뗐다. 장승처럼 서 있던 효룡의 오른쪽 검미(劍眉)가 순간 꿈틀했다. 그러나 그것뿐이었다.

나예린과 독고령이 황급히 소녀의 곁으로 달려가 살펴보았다. 소녀는 울상이 되었다. 보석을 박아 놓은 것 같은 소녀의 눈이 새하얀 우윳빛 가는 손가락을 바라보 았다. 새빨간 피가 베어진 상처 위에 이슬처럼 맺혀 있었다. 마치 홍옥(紅玉) 같았다.

나예린과 독고령의 시선이 ‘그것’을 향했다. 비류연의 시선도 그것을 향했다. 햇빛을 받아 선명하게 반짝이는 칼날. 그것은 검이었다. 그것도 백 년의 풍상에도 날

이 상하지 않는 절세보검. 평범한 자의 소유일 리가 없었다. 사람들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렇다면 이것들이 모두 검?’

그러나 이 검들은 완전하지 않았다. 반 토막으로 부러진 채 대지에 을씨년스럽게 박혀 있었다. 그래, 마치 묘비(墓碑)처럼…..

“이 묘지의 황량함이 마음에 드는가?”

그들 가까이 다가온 노인이 한 명 있었다. 어느새? 빛바랜 유삼, 가슴께까지 흘러내린 수염, 치렁치렁한 백발, 도제의 눈이 불꽃처럼 뜨겁고 낮처럼 격렬했다면 이 노인의 눈은 얼음처럼 차갑고 밤처럼 고요했다.

노인의 오른손이 있어야 할 소매는 텅 비어 있었다. 도제랑 똑같다. 유행이 아닌 것만은 확실했다. 노인의 얼굴을 확인하기 위해 시선을 옮긴 여관도 몇 명이 짧은 신음과 함께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노인의 얼굴은 끔찍할 만큼 흉측한 검흔들로 뒤덮여 있었다. 비늘 대신 칼날을 두른 수십 마리의 뱀들이 꿈틀거리며 기어간 듯 한 흔적. 감히 눈을 마주치기조차 오금이 저릴 정도로 두려운, 실로 무시무시한 얼굴이었다.

“노 선배님께서는 누구신지요? “

빙검이 정중하게 포권하며 인사했다. 심상치 않은 검기. 노인의 손에는 검이 없지만 노인의 마음에는 시퍼렇게 날이 선 한 자루의 검이 있었다. 빙검은 소름이 쫙 돋은 피부를 통해 그것을 절실히 느낄 수 있었다. 인사는 공손하지만 마음의 경계는 풀지 않았다.

“나 말인가? 난 이 묘를 지키는 평범한 묘지기일세!”

노인의 대답에 빙검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반문했다.

“묘라니요? 이곳 어디에 무덤이 있단 말씀입니까?”

주위를 둘러봐도 둥글게 거북이 등처럼 흙을 쌓아올려 다진 봉분은 보이지 않았다. 묘비 또한 마찬가지였다.

“이 땅 전체가 묘지일세. 자네들의 눈에는 이 대지 위에 꽂혀 있는 저 많은 검들이 보이지 않는가?”

물론 보였다. 확실히 각양각색의 검들이 대지에 박혀, 세월의 풍상을 뒤집어쓴 채 자연의 일부처럼 서 있었다. 비스듬한 것도 있고 똑바른 것도 있고 모두들 제각 각이었다.

“여기 있는 검들의 수는 정확히 108자루라네. 그리고 백 년 전에는 모두 주인들을 가지고 있던 검들이지.”

당연한 이야기지만 그 안에 담긴 울림은 무척이나 불길한 것이었다.

“그, 그렇다는 것은……..”

검은 무인의 생명과도 같은 것이다. 자신의 생명을 이런 외진 곳에 아무렇게나 내팽개치는 멍청이 검객은 구주(九州)를 샅샅이 뒤져도 찾을 수 없을 것이다. 무인 이 자신의 검을 잃어버리는 경우는 단 한 가지뿐이었다. 더욱이 그 검들이 모두들 약속이나 한 듯 두 동강 나 있다면 더 이상의 설명은 무의미한 것일 것이다. “…수많은 생명이 이곳에서 산화했군요.”

갑자기 공기가 엄숙하게 변했다. 이들 모두 강호를 지키기 위해 스스로를 돌보지 않은 사람들이었다. 평화와 행복이란 누군가의 노력과 희생 없이는 얻기 불가능 한 것일까? 아무도 이 질문에는 대답해 줄 수가 없다.

“노 선배님께서는 존성대명(尊姓大名)이 어떻게 되십니까?

염도가 정중하게 물었다. 내심 이 노인이 누가 되었든 절대 놀라지 않겠다고 굳게 결심하며!

그러자 노인이 말했다.

“노부의 하잘것 없는 이름을 알아서 무슨 도움이 될지 모르겠네만, 굳이 밝히자면 노부는 섭운명이라고 한다네! …아는 사람들은 검치(劍痴)라고도 불렀지.” “헉!”

염도는 끝내 자신의 결심을 지키지 못했다. 그러나 옆에서 ‘말도 안 돼! 우라질! ‘이라고 자제력 없는 소리를 내지른 빙검보다는 훨씬 나았다.

검치

운명(葉雲鳴).

칼(劍)에 미친 바보(痴)라는 뜻을 가진 별호의 소유자. 그러나 누구도 그에게 미치광이라고 손가락질을 하는 사람은 없었다.

백여 년 전, 아무렇게나 깎은 나뭇가지 하나로 뭇 검도 고수들과 천하제일검을 다투었던, 그래서 별호도 일지번천(一枝飜天: 나뭇가지 하나로 하늘을 뒤집는다) 인 그를 향해 미치광이 바보라고 부를 수 있는 그자야말로 진정한 왕바보일 것이다.

백 년 전, 수많은 무용담을 남기며 강호를 풍미했던 검도계의 전설!

“도에 일도단애 도제 용경의가 있다면 검에는 일지번천 검치 섭운명이 있다. 당시 강호를 떠돌던 말이었다. 그러나 두 사람을 비교할 때면 항상 사람들은 검치 섭 운명의 손을 들어주었다. 당시는 아직 천무삼성(天武聖) 중 필두인 검성(聖) 모용정천이 이름을 얻기 전이었다.

백 년! 수많은 검객들이 사람들의 뇌리에서 잊혀지기에 충분한 시간이었고 실제로 잊혀졌다. 그러나 지금도 호사가들의 입을 통해 검성 모용정천의 실력은 곧잘 백 년 전 전설의 검객 검치 섭운명과 비교되곤 했다. 이것만 보아도 그가 얼마나 뛰어난 검객이었는지 능히 짐작할 수가 있다.

‘나 지금 살아 있는 거 맞아?’

지금쯤 저승의 이름 모를 명승지를 떠돌고 있을 거라 짐작되던 무덤 속 사람들을 너무 많이 만난다고 염도는 투덜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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