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래곤 라자 1권 – 제 1부 : 태양을 향해 달리는 말 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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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파람. 휘파람.
하멜 집사를 만나러 성에 가는 길이다. 양초는 이미 100개를 만들어두었지만, 그건 내 예상이며 실제로 얼마나 쓰일지 알 수가 없다. 무조건 더 만들 수는 없었고, 그래서 하멜 집사를 만나거나 얼굴도 모르는 그 ‘작전 지휘관’ 씨라도 만나 봐야겠다. 하지만 내가 언감생심 ‘작전지휘관’ 씨를 만날 수 야 없을 테고, 하멜 집사에게 물어보면 나 대신 물어봐 주겠지.
휘파람. 휘파람.
그리고 그것 말고도 용무가 있다. 아버지는 창술 수련 이틀만에 몸져 누워버렸기 때문에 그것도 보고해야 한다. 절대로! 내가 때려서 그렇게 된 것은 아니다. 아버지는 너무 열심히 휘두르시다가 몸살이 나신 것이다. 뭐라고 위로해 드리고 싶은 마음도 생기지 않는다.
휘파람. 휘파람.
마을 대로의 분위기가 올 때마다 바뀌는 듯하다. 이번엔 오가는 수레들이 많이 보였다. 내가 초를 준비하는 것처럼 다른 여러 가지 전쟁 준비 물품들 이 많이 필요하겠지. 스푼과 나이프를 준비하지 않아서 굶어죽은 자이펀 군대의 이야기는 유명하다. 물론 자이펀에서는 우리 바이서스 군대로 이름이 바뀐 채 그 이야기가 전해지겠지. 그렇게 멍청한 군대가 설마 있을까.
휘파람. 휘파람.
내 생각이지만 아마도 그 캇셀프라임의 식사를 준비하는 것이 가장 힘들 것 같은데. 성 안에서 번져나오는 소문에 의하면 캇셀프라임은 한끼 식사로 황소 다섯 마리를 먹어치운다고 한다. 말도 안 되는 소리. 우리 영주님이 가진 소가 겨우 열 마리인데. 정말 그렇게 먹는다면 벌써 우리 마을의 소란 소는 모조리 씨가 말랐을걸. 오가는 수레의 모습을 보아 고기를 많이 실어나르기는 하는 모양이다. 그리고 그 고기에 들어갈 민트도 무지 필요하겠 지? 푸헤헤.
휘파람. 비명.
“뭐, 뭐야?”
내 휘파람은 갑자기 들려온 비명으로 멈춰지고 말았다. 뒤쪽에서 들려온 비명이다. 난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사람들이 부리나케 달려오는 모습이 보였고, 그 뒤쪽으로 크게 상처입은 여자 하나가 남자들에게 부축되어 비틀거리며 달려오고 있었다. 여자를 부축하던 남자는 도저히 안 되겠다 싶자 여자를 업고 달리기 시작했고, 다른 세 남자들은 재빨리 뒤로 돌았다.
난 조심스럽게 다가가 보았다. 그런데 그 남자들 중 하나가 날 봤다.
“뭐야, 임마! 달아나!”
“뭔데 그래요?”
“노닥거릴 시간 없어, 어서 달아나! 그렇지, 병사들을 불러!”
그리고 그 남자는 다시 내게 등을 보였다. 순간, 난 사태를 짐작했고 이 남자들은 죽을 작정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난 몸을 돌려 재빨리 옆에 보이는 가게로 달려갔다.
“제기랄! 이거 받아요!”
난 바로 옆에 있던 대장간에서 쇠스랑, 괭이 등을 꺼내어 집어던졌다. 듣기 싫은 소리를 내며 농기구들이 튕겼다. 남자들은 싱긋 웃으며 그것을 집어 들었다. 나는 우리 마을 사람들이 이럴 때 항상 외치는 말을 했다.
“남길 말은?”
내 말에 내가 오싹해졌다. 사실 나 이렇게 외쳐보는 건 처음이라고. 남자들은 마치 내가 대견하다는 듯이 빙긋 웃으며 말했다.
“이미 해뒀으니 상관없어! 아까 업혀간 여자가 내 아내야!”
“소피아에게. 약속 못 지켜 미안하다.”
“잭에게. 계약대로 어머니를 부탁한다.”
남자들은 각각 빠르게 말했다. 난 고개를 끄덕인 다음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렸다.
몬스터가 쳐들어온 것이다. 어떤 놈일까. 이런, 까먹는다! 소피아에게, 약속을 못 지켜 미안함. 잭에게, 계약대로 어머니를 부탁함. 아마 그 남자와 잭은 서로 산 사람이 죽은 사람의 어머니를 맡기로 약속했나 보군. 난 갑자기 그들의 이름을 모른다는 것을 떠올렸다. 상관없지. 사태가 끝나면, 그리 고 그때까지 내가 살아 있다면 그 이름을 싫도록 듣게 될 테니. 목놓아 그 이름을 부르는 가족들의 모습도 이젠 지겨워.
제기랄!
아무르타트, 모든 게 너 때문이야. 아무르타트, 모든 게 너 때문이야.
뭐? 아무르타트 때문에 강한 사람들만 남게 되지 않았냐고? 빌어먹을, 웃기지 마! 항상 뒈져버릴 준비가 되어 있어서 마지막에 웃을 수 있는 게, 그 런 게 강한 거야? 그런 건 개나 줘버려!
“끄아악!”
등 뒤에서 들려오는 단말마에 나는 주저앉을 뻔했다. 오금이 저려서 달리지도 못할 지경이다. 하지만 안 돼. 달려야 산다. 난 거의 땅을 짚다시피 하 면서 달려갔다. 그때였다.
“비켜, 후치!”
눈앞에 뭐가 보였다. 모르겠다. 눈물 때문인가? 뭐지, 저건?
“샌슨!”
난 옆으로 몸을 날렸다. 샌슨은 팔을 뒤로 당긴 채 달려오다가 그대로 스피어를 던졌다. 그 동작의 여운으로 휘청거리며 몇 발자국 더 뛰는 것이 잘 보였다. 창은 무서운 속도로 날아갔다.
소리. 뚫리는 소리. 살을 뚫는 스피어의 소리.
“끼르르르!”
괴상한 비명. 사람이 아니다. 난 앉은 채로 뒷걸음질치며 바라보았다. 거대한 덩치가 보였다. 그러나 곧 그것은 가려졌다. 샌슨이 그 몸에 뛰어들며 배에 롱소드를 박아넣은 것이다. 샌슨의 어깨 위로는 딱 벌어진 어깨와 희한한 투구, 그리고 높이 치켜든 엄청난 돌도끼가 보였다. 트롤이다. 트롤은 입가에 피를 흘리고 있었지만 들어올린 팔을 세차게 내려찍었다. 하지만 돌도끼로는 가슴에 달라붙은 샌슨을 어떻게 칠 도리가 없었고 트롤의 동작은 우스꽝스럽게 되어버렸다. 아마 그래서 저렇게 껴안듯이 달라붙은 모양이다. 샌슨은 그대로 밀고 나갔다.
“야아아아아아!”
샌슨은 롱소드를 트롤에 박아넣은 채 달렸다. 트롤은 돌도끼를 놓치고는 그대로 밀려갔다. 트롤을 검에 꿴 채 달려가는 샌슨은 정말 오거와 다름없었 다. 약 20큐빗 정도 밀고 나가던 샌슨은 팔을 앞으로 쭈욱 뻗었다. 달려가던 가속도 때문에 트롤은 롱소드에서 빠지며 그대로 뒤로 나뒹굴었다. 샌슨 은 트롤이 재생하지 못하도록 그 목을 몇 번이나 내리친 다음 재빨리 얼굴에 묻은 살점과 피를 닦아내며 나를 바라보았다.
“몇 놈이야?”
“나도 몰라!”
“그럼 재빨리 숨어!”
난 엉거주춤 일어나며 샌슨을 바라보았다. 샌슨은 이미 앞만 바라보고 있었다. 왜 혼자야? 부하들은 뭐하는 거야? 그때 일단의 사람들이 내 앞으로 우루루 몰려갔다. 내 생각을 꾸짖기라도 하듯이 나타난 병사들이었다. 여섯 명의 병사들은 일제히 샌슨의 주위에 섰다. 샌슨은 빠르게 말했다. “트롤이다. 아직 한 놈만…… 제길! 더 있군.”
저 앞쪽에서 다시 트롤들이 나타났다. 그들 중엔 돌도끼 이외에 다른 것을 들고 있는 놈도 있었다. 곡괭이, 삽, 쇠스랑. 저건 내가 그 남자들에게 던 져주었던 것 아닌가? 빌어먹을! 난 눈을 거칠게 닦았다.
모두 아홉 마리의 트롤이 나타났다. 그들도 앞에 나타난 병사들을 보자 달려오던 걸음을 멈추고 죽 늘어섰다. 잠시 대치 상태가 되자 샌슨은 고민하 는 듯했다. 난전으로 갈 것인가? 9 대 7. 숫자는 불리하지만 해볼 만은 하다. 하지만 그럴 필요는 없다.
“전원 후퇴!”
병사들은 뒤로 돌아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리기 시작했다. 이런 젠장! 나 역시 재빨리 일어나 달렸다. 샌슨의 생각은 알 수 있었다. 이길 수는 있다. 하지만 많이 다친다. 그렇지 않아도 병사들의 숫자가 항상 부족한 곳이 우리 마을인데, 죽어버린 인원은 다시 보충하기가 쉽지 않다. 성의 병사들과 합류할 때까지 놈들을 유인하며 달아난다.
트롤들은 당황했지만 눈앞에서 달아나는 인간들의 모습을 보자 본능에 따라 움직이기 시작했다.
“키르르르! 키악!”
난 그야말로 정신없이 달렸다. 뒤에서 따라오는 병사들의 발소리, 그리고 그 뒤로 들려오는 트롤들의 고함소리 때문에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가슴 이 타오르며 손끝에 감각이 없어졌다. 땅을 밟는 건지도 잘 느껴지지 않았는데 신기하게도 다리가 뻐근해지는 느낌은 왔다.
“꺄악!”
난 뭣인가에 부딪혔고, 한참 나동그라졌다. 아니, 도대체 눈을 어디다 뒀기에 이런 상황에서 도망가지도 않고 있다가 나와 부딪히는 거야? 내가 아는 사람 중에 그만큼 멍청한 사람은 딱 한 명. 바로……
“제미니!”
제미니는 자기가 쓰러졌다는 것도 알아차리지 못하는 모양이다. 그녀는 파랗게 질린 채로 달려오는 트롤들만 바라보고 있었다. 딸꾹, 딸꾹. 뭐? 딸 꾹질?
제미니는 딸꾹거리면서 망연히 앉아 있었다. 칵!
“일어나! 야이, 계집애야, 정신 차려!”
난 제미니를 강제로 일으켰다. 맙소사, 얘가 이렇게 무거웠나? 제미니는 온몸에 힘을 빼고 있었고, 축 늘어진 사람을 일으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
다. 난 하마터면 앞으로 고꾸라질 뻔했지만 간신히 제미니를 일으켰다. 그 순간 난 샌슨과 눈이 마주쳤다. 난 비장하게 말했다.
“제미니를 부탁해. 남길 말은, 넌 태어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날 괴롭혀왔지만 그래도…….’
딱! 아이고, 정수리야. 샌슨은 그대로 트롤에게 달려가며 외쳤다.
“쬐끄만 게 무슨 흉내를 내는 거야!”
딱! 딱! 딱! 딱! 딱! 딱!
이러다 나 죽겠네……. 여섯 명의 병사들이 차례로 정수리를 때리고 지나간 것이다. 병사들은 그대로 트롤에게 달려들었다. 달려들려면 그냥 달려들 지 왜 머리는 찍는 거야?
두드려맞느라 내 팔에서 힘이 빠지자 제미니는 그대로 스르르 내려갔다. 난 당황해서 다시 제미니를 들어올렸다. 아니 이 계집애는 눈앞에서 칼싸움 이 벌어졌는데 어떻게 이런 횡포를 부리는 거야? 이건 분명히 횡포다. 난 낑낑거리며 제미니를 들쳐업으려 했지만, 혼자서 축 늘어진 17살짜리 계집 애를 들쳐업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뿐이다. 그때 누군가가 제미니를 들어올리더니 내 등을 더듬고 나서는 정확하게 업혀주 었다.
“아, 감사합니…… 아!”
우습지도 않게 제미니를 들어올린 사람은 검은색 로브를 입고 온몸에 문신을 새긴 사람, 타이번이라는 그 마법사였다. 눈도 보이지 않으면서 어떻게 제미니를 들어올린 것일까? 아, 조금 전 내 등을 더듬었지. 타이번은 그 허연 눈을 굴리면서 빠르게 말했다.
“트롤이냐?”
“예! 다, 당신 마법사죠? 그럼 한방 날려버려요!”
“이 목소리를 알지. 눈 뜬 장님 청년이었지? 이봐, 후치. 뭐가 보여야 날리든가 말든가 하지.”
“이, 이런 얼어죽을! 그럼 마법사가 무슨 소용이…….”
“자네가 내 눈이 되어주게.”
난 제미니를 떨어뜨리지 않으려고 다시 추슬러 올리면서 말했다.
“뭐라고요?”
“거리와 방향. 빨리.”
이거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 그런데 그때 비명소리가 들렸다.
“크윽!”
병사들 중에 하나가 다리에 쇠스랑을 맞아서 쓰러졌다. 양조장 4형제의 장남인 터너였다. 그를 찌른 트롤은 쇠스랑을 높이 들어올렸다. 그러자 그 옆에서 다른 트롤이 든 몽둥이에 롱소드를 맞대고 있던 샌슨이 그대로 롱소드를 미끄러뜨리며 쇠스랑을 들어올린 트롤을 어깨로 박아버렸다. 트롤의 동작이 흐트러진 사이에 쓰러진 터너는 다시 일어섰다. 그는 다시 롱소드를 고쳐쥐며 외쳤다.
“이 터너 님의 목숨 값으로 너희놈들 셋은 필요해!”
난 당황해서 어쩔 줄을 몰랐다. 그때 타이번이 말했다.
“방향은 잡았다. 고함소리가 엉망이군. 거리는?”
“삼, 삼십 큐빗 정도. 하지만 마구 뒤섞여서 싸우는데…….”
“됐어!”
타이번은 정확하게 트롤과 병사들이 엉겨 싸우는 방향을 향해 팔을 들어올렸다. 순간 그의 팔에 있던 문신들이 일제히 빛을 뿜었다. 뭐야, 이건? 점 차 문신들의 빛이 강해지더니 이윽고 목과 볼에 있던 문신들까지 빛을 내었다.
타이번은 빙긋 웃으며 말했다.
“스펠을 몸에 새겨서 몸을 마법서로 쓰는 수법이네. 자넨 진귀한 것을 구경하는 거야.”
“예, 예?”
타이번은 대답하지 않고 대신 내가 알 수 없는 이상한 말을 중얼거렸다. 그런데 무슨 말인지 모르지만 진짜 빠르다. 저러다 혀 깨물지 않겠나? 갑자 기 그는 앞으로 뻗고 있던 팔을 위로 쳐올리며 외쳤다.
“디텍트 메탈, 프로텍션 프롬 매직, 리버스 그래비티!”
“우아아아!”
“끼르르르?!”
난 놀라 엉덩방아를 찧었고 덕분에 제미니를 떨어뜨렸다. 병사들도 당황한 모습이니 직접 당한 트롤들은 얼마나 황당할까.
트롤들이 갑자기 위로 솟아오르고 있었다. 병사들은 전혀 떠오르지 않았다. 어떻게 보이지도 않으면서? 그런데 트롤들 중에 세 마리가 떠오르지 않 았다.
그 트롤들은 당황한(아마 그랬을 것 같다, 난 트롤들의 표정을 정확히 말했다고 자신할 수 없다.) 표정으로 떠오른 자기 동료들을 바라보았다. 샌슨도 몹시 놀랐
다는 표정이지만 그 표정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남은 트롤 세 마리에게 달려들었다. 트롤들은 각자 손에 든 삽과 괭이로 샌슨을 막아내려 했지만 그건 무기도 아니고 엄청나게 느린 것이다. 샌슨의 롱소드가 절묘하게 삽을 튕겨내자 삽은 괭이를 방해하게 되었고 그 사이 샌슨은 괭이를 든 놈의 배를 베 었다. 그리고 그때 정신을 차린 다른 병사들이 달려들었다. 위로는 계속 트롤들이 솟아오르고 있었고…… 쇠스랑을 든 트롤 하나는 동시에 네 개의 롱 소드를 맞고 피를 뿜으며 쓰러졌다. 병사들은 악귀 같은 몰골로 쓰러진 트롤들을 계속 내리쳤다. 피와 살점이 마구 튀어올라 병사들의 얼굴에 묻어났 다. 감정 문제는 아니리라. 재생을 하는 놈이니 숨이 끊어질 때까지 후려쳐야 된다.
그때 타이번이 팔을 들어올린 채 당황한 표정으로 말했다.
“어라? 실패인가? 왜 아직 싸우는 소리가 들리지?”
난 주저앉은 채 말했다.
“아, 저, 다 떠올랐는데, 세 마리가 떠오르지 않았는데요.”
“세 마리가? 그놈들 뭘 들고 있는데?”
“예? 어, 괭이랑 쇠스랑, 삽을…….”
그때 나도 깨달았다.
금속제 무기를 가진 것들은 떠오르지 않았다. 떠오른 것들은 트롤의 무기인 돌도끼를 들고 있던 놈들이다. 그러고 보니 병사들도 검과 갑옷을 장비하 고 있으니 금속제 무기를 가진 셈이다. 타이번은 들고 있는 팔이 아닌 다른 손으로 자기 머리를 딱 쳤다.
“아차, 그걸 생각 못했군! 이런, 트롤이라면 돌도끼밖에 떠올리지 못한단 말이야. 어떻게 됐어? 세 마리는?”
“다, 다 쓰러졌어요.”
“그럼 됐군. 병사들, 모두 물러나시오.”
병사들이 질린 표정으로 뒷걸음질치자 타이번은 팔을 도로 내렸다. 그러자 까마득히 올라갔던 트롤들이 이제 정상적으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나와 타이번이 잠시 말을 나누는 사이에 트롤들은 거의 보이지도 않을 만큼 솟아올라 있었고, 따라서 떨어지는 데도 그 정도의 시간이 걸렸다.
“끼르르르! 끽, 끼긱!”
퍽! 퍼버벅, 퍽!
별로 묘사하고 싶지 않다. 난 당황한 와중에도 간신히 제미니의 눈을 가릴 수는 있었다. 그래서 내 눈은 못 가렸다. 멍청하긴! 눈을 감으면 되는데. 그 생각을 떠올린 건 트롤들의 분해된 몸들이 튕겨다니기를 이미 마친 후였다. 저래가지고선 재생의 권능도 소용없겠지. 타이번은 빙긋 웃었다. “굉장한 소리가 나는군. 허. 보이지 않는다는 것도 좋을 때가 있지.”
샌슨은 질린 표정으로 걸어와 인사했다. 타이번이 장님인 것을 보면서도 고지식하게 허리를 구부렸다.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새, 샌슨 퍼시발, 헬턴트 성의 겨, 경비 대장입니다. 마법사님께서는……?”
“타이번. 나그네. 이제 끝인가?”
“예, 예?”
“더 없냐고?”
“아!”
샌슨은 재빨리 고개를 돌려 말했다.
“침입한 트롤이 더 있는지 찾아봐! 식량 창고일 거야! 마을 창고로 달려가! 교외 농가들 점검하고! 그리고 해리, 터너를 돌봐줘.”
병사들은 뛰어갔고 해리는 다리에 상처를 입은 터너를 부축했다. 터너는 긴장이 풀렸는지 그제야 신음소리를 내었다. 타이번이 말했다.
“다친 병사가 있나? 이리 데려와 보게.”
샌슨은 어리둥절한 표정이었지만 순순히 터너를 데려왔다. 타이번은 터너를 앉히게 한 다음 손으로 더듬었다. 재빠른 손놀림 끝에 터너의 다리 상처 에 손이 멈췄다.
“여기군.”
타이번은 그렇게 말했을 뿐이다. 그런데 잠시 후 타이번의 손에서 번쩍 빛이 나더니 터너의 상처에서 흐르는 피가 멈췄다. 그리고 피를 닦아낸 터너 의 다리엔 아무런 상처도 없었다.
샌슨은 감탄 반 두려움 반, 어쨌든 희한한 표정으로 타이번을 바라보았다.
“아, 감사, 감사합니다. 타이번.”
“됐어. 별거 아니니 잊어버려. 상처는 막았지만 며칠 동안 과격한 움직임은 삼가해.”
“아, 예. 정말 이 고마움을…….”
“이런! 고쳐줬으면 자네들도 어서 뛰어가! 뭐하는 거야? 트롤들이 시민들을 다 죽일 때까지 여기 있을 거야!”
“옙!”
당황한 샌슨은 그만 경례를 붙여버렸다. 병사들은 부리나케 흩어져갔다.
“자, 우리도 가볼까? 식량 창고로 안내하게.”
타이번은 병사들을 따라갈 태세였다. 난 타이번을 붙잡았다.
“저, 타이번. 이 계집애가 이상해요.”
“응?”
난 내가 떨어뜨린 그대로 주저앉아 아직까지 멍한 표정으로 딸꾹질만 하고 있는 제미니를 가리켰다. 하지만 곧 나는 타이번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말로 설명해 주었다.
“조금 전에 트롤이 달려오는 걸 보더니 그만 멍청하게 주저앉아서 딸꾹질만 하는데요? 완전히 정신이 나가버린 것 같아요.”
타이번은 피식 웃었다.
“잘 알고 있구만? 그래. 정신이 나간 거지.”
“어떻게 하면 좋죠?”
타이번은 손을 내밀어 제미니의 얼굴을 더듬어 보았다. 그래도 제미니는 아무것도 못 느끼는지 멍청하게 앉아 있었고 난 걱정이 되어 견딜 수 없었 다. 타이번은 말했다.
“애인이야?”
“쓸데없는 것 묻지 마시고, 어떻게 해주실 수 있어요?”
“자네가 애인이라면 간단한데.”
“예?”
“기절한 아가씨를 깨우는 전통적인 방법이 있잖아?”
.잠든 아가씨 아니에요?”
“기절이나 잠든 거나.”
나로 하여금 ‘제미니에게 입을 맞춰야 하나, 타이번은 장님이긴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등등의 굉장한 고민에 빠지게 만들어놓고는, 타이번은 히죽거리며 제미니의 눈앞에서 손가락을 몇 번 튕겼다. 제미니는 딸꾹질을 멈추더니 신음소리를 내었다.
“으음……. 으악! 트롤이다!”
내가 정말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어떻게 제미니는 바로 앞에 있는 타이번을 절묘하게 피해 돌아와 그 뒤에 있는 내게 안겨들었나 하는 것이다.
식량 창고로 들이닥친 놈들은 얼마 되지 않았다. 트롤들은 주제에 양동 작전을 펼쳤던 것이다. 강한 놈들은 공격조로서 병사들을 끌어들이고 그 사이 에 약한 몇 놈이 식량을 갈취하려 했던 것이었다. 하지만 타이번이 나서는 바람에 공격조는 몰살해 버렸고, 병사들은 식량 창고로 왔던 놈들을 간단히 쫓아낼 수 있었다.
사태가 진정되자, 늘 있던 순서대로 울음소리가 들렸다.
난 남자들이 부탁한 대로 유가족들에게 말을 전했다. 소피아라는 아가씨는 내 말을 들은 척도 하지 않고 펑펑 울고 있었지만 잭이라는 남자는 내 어 깨를 툭 치며 말했다.
“고맙다. 제법이구나.”
사망자는 그 세 남자와 업혀갔던 여자였다. 여자는 상처가 너무 커서 업혀가는 도중에 죽었던 모양이다. 어쨌든 그 여자는 미망인이 되어볼 기회는 없었고 두 사람은 하늘에서 다시 만났겠지. 하지만 그들의 아이들은 이제…….
씨팔!
병사들은 대로에 널브러져 있던 세 구의 시체를 정성껏 모았다. 트롤들은 남자들의 몸을 아예 박살내 놨던 것이다. 하지만 그 옆에도 역시 한 마리의 트롤이 쓰러져 있었다. 남자들의 반항은 철저했던 모양이고, 그 남자들이 시간을 끌어준 덕분에 병사들이 출동할 수 있었던 것이다.
병사들은 시체를 각자의 집으로 날라다주었고 트롤들의 시체를 정리했다. 난 살며시 그 자리를 빠져나와 샌슨과 함께 제미니에게 찾아갔다.
펍 ‘산트렐라의 노래’에서 타이번이 제미니를 데리고 기다리기로 했다. 샌슨과 내가 산트렐라의 노래에 들어가자마자 곧 심장이 써늘해지는 웃음소 리가 들려왔다.
“이힛히히, 히힛!”
샌슨은 거의 롱소드를 뽑아들 뻔했고 난 조금 전 제미니의 상태와 똑같은 상태가 되었다. 제미니는 날 발견하고는 춤추듯이 손을 들어올리며 활짝 미 소를 지어보였다. 뭐, 미소를 지어?
“어머, 후치? 어서 오…… 히히힛!”
난 휘청거리는 걸음걸이로 간신히 두 사람이 앉아 있는 테이블로 다가갔다. 내가 의자에 주저앉는 소리를 들었는지 타이번은 피식피식 웃으며 내게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후치인가? 자네에게 이토록 매력적인 미소의 애인이 있다니. 행복하겠군.”
“프흡! 마, 말도 안 되는!”
“파하하하!”
죽고 싶다는 말이 뭔지 실감나는 순간이었다. 조금 전의 사태 때문에 마음을 달래고자 주점에 와 있던 많은 사람들이 테이블을 쾅쾅 내리치면서 웃고 있었던 것이다. 특히 샌슨은 입을 크게 벌리고 아주 과격하게 웃었다. 그러자 제미니도 뭐가 좋은지 덩달아 웃었다.
“히이…… 이히힛!”
난 제미니를 노려보았다. 놀랍게도 그 뮤러카…… 어쩌고 하는 술병이 놓여 있었고 타이번의 앞에는 반쯤 채운 잔이, 그리고 제미니의 앞에는 완전히 비어버린 잔이 있었다.
“아니, 무슨 작정으로 술을 먹인 거예요! 타이번!”
“술은 만고의 영약일세. 근심, 걱정, 불안, 그 모든 것을 잊게 해주지. 보게. 이 매력적인 미소의 아가씨에게는 내 마법보다도 훨씬 효과가 좋잖은가?”
“취한 사람은 흔히 자기 입에서 옳은 말만 나온다고 생각하지요.”
난 씨근거리며 손가락을 튕겼다.
“해너 아줌마! 주문 받아요!”
“뭐야, 임마?”
“나 말고 샌슨! 도대체 날 뭘로 생각하는 거예요? 너무 일찍 술맛을 알아버린 꼬마?”
해너 아주머니는 웃어버렸고 샌슨은 맥주를 주문했다. 그는 테이블에 앉으면서 타이번에게 말했다.
“도와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영주님께 보고드리겠습니다. 영주님께서는 틀림없이 마법사님께 크게 사례하실 겁니다.”
“사례? 관둬. 캇셀프라임 먹이기도 바쁘고 군자금도 달랑거릴 텐데. 땅을 줄 건가? 허허허. 이 대륙에서 가장 싸구려인 이 땅을?”
타이번은 며칠 새 우리 영주님에 대해 꽤 알아버린 모양이다.
사실 우리 영주님은 정말 눈 뜨고 못 봐줄 정도로 가난하다. 원래 영주의 장원은 모조리 영주의 소유이며 마을 사람들은 그 땅의 소작인이었던 것은 다른 장원과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우리 영주님은 몬스터들에 의해서 사망자가 생길 때마다 그 유가족들에게 토지를 줘서 호구지책을 마련하도록 했 고, 유가족들은 이 마을에서 그 토지를 살 수 있는 유일한 사람, 즉 우리 영주님께 도로 되팔고는 다시 그 소작인이 되었다.
난 때론 그냥 돈으로 주면 간단하지 않은가 생각해 본 적도 있지만, 칼의 말에 의하면 토지는 원래 영주의 소유라 마음대로 줘도 되지만 화폐는 국왕 의 소유로 인정된 상태에서 유통된다고 한다. 화폐를 이루는 물질적인 쇠붙이는 모조리 국왕의 것이며 국민들은 화폐의 능력, 즉 가치 수단으로서의 능력만을 쓰는 것이다. 골치아픈 이야기지만 어쨌든 드래곤 로드의 시절 이후로 돈이란 원래 그런 것이라 하며, 따라서 고지식한 우리 영주님은 그 원 칙을 지켜 돈을 주지 않는 대신 토지를 준 다음 그 땅을 되사는 것이다. 어쨌든 그런 식으로 자기 땅을 줬다 되샀다 하다보니 돈이 어디 남아나겠는가.
그래서 우리 마을의 주민들도 이젠 영주가 토지를 내리면 그 크기가 얼마든지 간에 무조건 1퍼셀(퍼셀은 셀의 100분의 1 단위이다)에 영주님께 되팔아버 린다. 그러지 않았다면 우리 영주님은 오래전에 홀라당 망해 버렸을 것이다. 물론 영주님은 노발대발하시지만 우리들은 자기 땅을 자기가 받고 싶은 대로 받고 파는데 무슨 개짖는 소리를 하느냐는 식이다. 그래서 대륙에서 가장 싸구려 땅이라는 농담이 나오는 것이다.
샌슨은 얼굴을 붉히며 대답했다.
“말씀이 좀 과하시군요.”
“틀린 거 있나? 여보게. 난 아무런 감정 없이 말한 거야. 자네 영주지 내 영주 아니잖아.”
“저, 영주님의 고문으로 받아들이실지도 모르고 게다가…….”
“관직? 필요 없어. 이 나이엔 아침 문안 드리기도 힘들어.”
샌슨은 머리를 긁적였다.
“뭐, 어, 전 잘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보고를 드릴 테고 영주님께서 정당하고도 마법사님께서도 흡족해하실 사례를 생각해 내시겠지요.”
“자네가 보고를 하겠다면 말리진 않겠지만, 그 보고 끄트머리에다가 난 아무것도 바라는 게 없다고도 전해 주겠어?”
“아, 예.”
“그럼 이제 내 차례군. 질문 몇 가지 하겠는데 괜찮겠나?”
“아, 얼마든지.”
타이번은 술잔을 들어올려 한 모금 마시고는 말했다.
“이 마을 분위기는 영주부터 시작해서 성의 경비 대장, 그리고 눈뜬 장님 청년에 이르기까지 모조리 날 당황하게 한단 말이야. 퍽이나 재미있어.”
“저, 무슨 말이신지?”
“자네들은 비극을 꽤 빨리 잊는구먼? 지금 이 펍의 분위기도 그렇고.”
“익숙하니까요.”
대단히 간단한 대답이었지만 그 간단한 샌슨의 대답에 들어 있는 무게는 엄청난 것이었다. 나는 부지불식간에 한숨을 쉬어버렸다.
우리는 많이 당하고, 빨리 잊는다. 그러지 않으면 미쳐버릴지도 모른다. 우리는 농담을 좋아한다. 우리는 쾌활하다. 하지만 별로 즐겁지는 않다. “그런가. 흠. 이렇게 말하면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난 이 마을에 대단한 흥미를 느낀단 말이야. 이런 일이 자주 일어나는가?”
“자주 일어납니다.”
이건 좀 웃기는, 샌슨다운 대답인데. 타이번은 1년에 몇 번, 혹은 한 달에 몇 번 하는 식의 대답을 기대했을 테니까. 타이번은 빙긋 웃고는 질문을 바 꿨다.
“자넨 몇 번의 전투를 치렀지?”
“글쎄요…… 어디 보자. 찰스가 죽고 내가 경비 대장이 된 게 22번째 전투였고, 음. 한 서른 대여섯 번쯤 되는 모양이군요.”
난 문득 타이번이 아주 이상한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을 보았다.
“35, 6회라고?”
샌슨은 머리를 벅벅 긁으며 허둥대며 말했다.
“어, 정확하게는 잘 모르겠습니다. 뭐, 검을 쥔 놈이 그런 것 신경쓰는 거 우습긴 하지만, 전투를 거치면 거칠수록 다음 번에 죽을 확률이 높아진다 는, 그런 느낌이 들어서 세지를 않게 되더군요. 제 선임자 찰스는 100번을 채우고 영주님께 치하를 받고는 그 다음에 죽었어요. 그런 걸 보고 있자 니……. 성의 사집관에게 물어보면 정확한 기록이 있을 겁니다. 오늘 전투 보고할 때 물어보면 알 수는 있지만, 저…….”
“음. 이해하겠어. 바쁜 사람 붙잡아둬서 미안하군. 어서 가봐.”
“예. 그런데 마법사님께서는 지금 어디에 머물고 계십니까?”
“난 칼의 집에 있어.”
샌슨은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예? 칼과 아는 분이셨습니까?”
“아니. 그 친구가 혼자 산다며 머물 데가 정해질 때까지 있어도 좋다고 하더군.”
“아, 예. 그럼.”
샌슨은 자리에서 일어서서 다시 보이지도 않는 타이번에게 고개를 꾸벅해 보이고는 밖으로 나갔다. 이제 내겐 또 다른 고민이 남았다.
제미니는 어느새 테이블 위에 팔을 모으고 그 위에 얼굴을 박고는 잠든 듯 누워 있었다. 어쨌든 제미니를 집에 데려다줘야겠는데, 과연 며칠 전에 술 마시고는 치도곤을 당한 제미니가 오늘 또 이렇게 발그레한 얼굴로 히죽거리며 들어가면 과연 그 엉덩짝이 무사할지 걱정이다.
밑도 끝도 없이 타이번이 불쑥 말했다.
“35, 6회란 말이지?”
“예?”
“아, 아냐. 미안하군. 후치. 장님의 버릇이야. 평소에 말할 때도 듣는 사람을 못 보니 혼잣말 같거든? 그래서 혼잣말을 아무 때나 하게 된다고.”
“피곤한 버릇이겠군요. 속마음을 무심코 말해 버릴 수 있다는 뜻인가요?”
“뭐, 자네 정도의 나이에 이런 버릇이 있다면 모르지만 이 나이엔 속마음과 겉마음의 차이가 없어. 피곤할 일은 없지.”
“겉마음? 재미있는 말이네요. 그건 그렇고 타이번 어르신. 당신 덕택에 제미니가 완전히 취해 버렸는데, 어떻게 해줄 수 없습니까?”
그때 제미니가 고개를 팍 들어올렸다.
“나 아아아안 취했어! 우히히키힛!”
우와, 정말 놀랐다. 망할 계집애! 사람 기절하는 줄 알았잖아? 당연히 내 입에선 험악한 말들이 마구잡이로 쏟아져 나왔고, 제미니는 콧방귀를 탕탕 뀌다가 시끄럽다는 듯이 귀를 막고는 테이블 위에 엎드려버렸다. 저걸 그냥! 아예 제미니 집에 뛰어가 장모님을 여기로 모셔와 버릴까? 으악! 내가 무 슨 생각을? 타이번은 말했다.
“어떻게 해주다니?”
“당신 마법으로 술을 깨게 할 순 없어요?”
타이번은 히죽거리며 말했다.
“술을 깨게 한다라. 내가 아는 어느 마법사의 이야기가 생각나는군. 그 마법사는 술을 너무 좋아하다보니 도대체 마법 공부할 시간도, 정신 상태도 유지할 수 없었거든? 그래서 어느 날 작심하고 술을 딱 끊어버렸지. 그러고는 전심 전력으로 술 깨는 마법을 만들었어. 마법 이름도 근사하게 지었지. 큐어 드렁큰이라고. 이유가 뭔지 아나? 술을 마음껏 마시고는 그 큐어 드렁큰을 쓰고 마법 공부를 할 셈이었다고.”
“똑똑하군요?”
“뭐? 똑똑해? 웃기는 소리. 그 큐어 드렁큰도 마법은 마법이란 말이야. 취한 상태에서는 캐스트할 수가 없어. 그래서 캐스트하려면 술이 깰 때까지
기다려야 하고. 그러니 무슨 소용이 있겠어?”
“에? 아이고 맙소사…… 그런 바보 같은!”
나는 낄낄 웃었다. 타이번도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기다란 백발을 쓸어넘겼다.
“그래서 어떻게 됐어요? 그 마법사, 결국 공부를 못했어요?”
“아냐. 그 마법사는 자기 실수를 깨닫고는 자기 제자를 불러들여서 그 마법을 가르쳐줬어. 제자는 잘 익혀뒀지. 그리고 그 마법사는 마음놓고 술을 마시고는 제자에게 캐스트하게 했어. 어떻게 됐을 것 같아? 제자의 정신이 말똥말똥해진 거야. 처음부터 자기를 위해 만든 마법이라 캐스터 대상 마 법이거든?”
“푸하하하!”
“그래서 화가 머리끝까지 나버린 마법사는 제자와 같이 며칠 밤을 새우며 연구에 들어갔지. 그 큐어 드렁큰을 오브젝트 용으로 바꾸기 위해서. 결론 은 짐작하겠지?”
“어라, 어떻게 됐죠?”
“간단하지. 술주정뱅이 스승과 며칠 밤을 같이 지내고 나자 제자도 술주정뱅이가 된 거야.”
“푸하하하, 으핫!”