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래곤 라자 2권 – 제3부 : 50명의 꼬마들과 대마법사 펠레일 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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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래곤 라자 2권 – 제3부 : 50명의 꼬마들과 대마법사 펠레일 1화


…우리는 죽은 이를 그리워하며 그의 죽음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자상한 어머니의 죽음에 아들은 오열하며, 연인의 죽음에 처녀는 정신을 잃는다. 그러나 무릇 이 세상의 모든 공 포들 중에서, 죽은 자신의 부모, 친지, 친구가 돌아오는 것보다 더 무서운 것이 없음은 어떻게 설명하냐? 그토록 깊은 애정, 우정, 사랑이 죽음이라는 장벽에 부딪혀서 얼마나 쉽게 부서지 는가를 바라보면 놀라울 뿐이다. 이 글을 읽는 독자 제위께서도 오늘 자정, 죽은 자신의 아버지나 친구가 등 뒤에서 자신을 부른다면, 과연 기뻐하며 돌아볼 것인가? 바로 이것이 다른 어 느 몬스터보다 언데드 몬스터가 무서운 까닭이다. 노련한 전사마저도 언데드 몬스터의 약한 힘보다는 그 죽음의 세계로부터 가져오는 초월적인 공포에 짓눌려 검을 뽑지 못한다.

「품위 있고 고상한 켄턴 시장 말레스 추발렉의 도움으로 출간된, 믿을 수 있는 바이서스의 시민으로서 켄턴 사집관으로 봉사한 현명한 돌로메네 압실링거가 바이서스의 국민들에게 고하는 신비롭고 도 가치 있는 이야기」 돌로메네 지음, 770년. 제4권 126쪽.


1

난 주위를 둘러보면서 말했다.

“요즘 같은 날씨에 벌집 따기 좋은데.”

왠지 좋은 벌집이 있을 것 같다. 넓은 황야는 봄여름 동안 꽤 흐드러지게 꽃이 피었을 것이다. 그리고 조금 크고 맑은 시냇물. 벌꿀도 당연히 물이 좋 은 곳에서 좋다. 왜냐고? 꽃이 좋은 물을 빨아들여야 좋은 꿀을 만드니까. 약간 떨어져 있는 아카시아 숲도 꽤 마음에 든다. 요즘은 겨울철을 대비해 서 최고로 꿀이 잘 저장되어 있을 텐데.

평소에 내가 벌집을 찾는다면 그것을 밀랍으로 초를 만들려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여행중에 약간의 별식 생각이 난 것이다. 꿀을 펜케이크에 뿌 리면 우리 일행 모두 홀딱 반하겠지. 꿀과자를 만들어보면 어떨까?

“여보게, 네드발 군. 우린 목적은 뚜렷하고 시간은 적은 여행자라네. 한가한 방랑자가 아니야.”

칼의 근엄한 목소리. 그건 그렇지. 우린 미친 척 달려가야 되는 사람들이지. 하지만 가을 벌판을 미친 척 달려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주위의 풍경도 그렇거니와, 일단 좀 달리면 뼛속까지 춥다. 지속적으로 체온을 뺏기기 때문이다. 하늘은 먹구름이 가득 끼어 있었고, 재수 없으면 비를 맞을 지도 모르겠다.

“다음 영지에서 큼직한 망토라도 하나씩 사야겠어.”

샌슨의 말이었고 칼도 고개를 끄덕였다. 난 이루릴을 보았다. 이루릴은………… 별로 추운 기색이 없다. 아니, 아무렇지도 않다.

“그 가죽옷 춥지 않아요? 이루릴?”

“춥다? 아, 아뇨. 엘프는 모든 날씨와 조화를 이뤄요.”

그렇겠지. 유피넬의 어린 자식이라던가? 폭설이 내리는 허허벌판에서도 이루릴은 까딱없을 모양이다. 그러니 사시사철 저렇게 멋진 가죽옷을 입고 다닐 수 있겠지.

“길 모양을 보아하니 영지나 마을이 나오겠는데?”

내 말에 샌슨이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지. 날 뭘로 보는 거야? 마을의 위치에 딱 맞춰 길을 정했다고.”

“술 생각이 날 때쯤 마을이 나타나도록?”

“비슷해.”

흠. 오후 늦은 시간이고, 샌슨의 말대로라면 반드시 영지가 나타나겠지. 그렇지 않아도 슬슬 밭이나 과수원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샌슨은 눈앞의 언 덕을 가리켰다.

“저 언덕 뒤일 거야.”

우리는 언덕으로 올라갔다. 눈앞에 영지의 모습이 보였다. 도시와 영지의 차이? 그거야 영주의 저택이 있느냐 없느냐로 따지면 되지. 마을 저쪽 끝 에 근사한 저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이곳은 영지일 가능성이 높다. 저 저택은 분명 시장의 집이라기엔 너무 크니까. 거의 성에 가깝다.

우리는 잠시 언덕 위에서 아래의 영지를 바라보았다. 먹구름 아래에 영지는 대단히 낮고 차갑게 보인다. 이루릴이 말했다.

“저건 이상한 마을이군요.”

그건 나도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사람의 모습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이렇게 날이 흐리다면 사람들은 바깥 출입을 삼갈 수도 있을 것 같은 데. 샌슨은 이루릴에게 질문했다.

“무엇이 이상합니까, 이루릴?”

“그림자가 없군요.”

“예?”

이상한 말을 하는군? 나는 다시 언덕 아래의 그 도시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꽤 멀긴 했지만, 건물마다 그 옆쪽 건물에 드리우고 있어야 당연할 그 림자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해도 없잖아요?”

이루릴은 근심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하지만 빛은 있어요. 그렇다면 그림자도 있어야 되지요. 하다못해 건물 색깔의 짙고 엷음은 있어야 하죠. 하지만 저 도시의 건물 벽을 보세요. 정면 의 벽이든 측면의 벽이든 모두 같은 색깔이에요. 모든 건물들이 다 어느 면에서든 비슷한 색깔을 내고 있어요.”

그것을 확인하는 순간, 나는 걷잡을 수 없는 공포를 느꼈다.

그렇다, 저건 도저히 불가능하다! 아니, 어떻게 건물의 사면이 모두 같은 색깔을 낼 수 있는가? 같은 회색이라도 빛 때문에 정면은 푸르스름한 회색, 측면은 암회색, 뭐 이렇게 차이가 나야 한다. 하지만 저 건물들은 마치 명암에 대해 배우지 못한 어린애가 마구 그린 그림처럼 상하 전후 좌우의 색깔 이 다 똑같다!

나는 부들부들 떨면서 급히 말을 세웠다. 다른 사람들도 말을 세우고는 서로 얼빠진 얼굴로 바라보았다. 우리는 다시 그 건물들을 바라보았다.

“새, 샌슨! 어떻게 된 거야?”

샌슨도 입술을 악물면서 대답했다.

“모르겠어. 이 도시는 분명 칼라일 영지일 텐데…………. 내 지리서에는 이곳이 옥수수술로 유명한 곳이라고만 나와 있을 뿐 다른 말은 없었는데.”

“하, 하지만 이건 사람의 도시 같은 느낌이 아니잖아?”

그때 칼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

“아닐세. 네드발 군. 사람의 도시야.”

칼이 가리킨 방향을 바라보자 처음으로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그 사람은 대로 가운데 서서 마을 입구 바깥에 서 있는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검은 로브를 입었는데 그냥 펑퍼짐한 것이 무슨 자루 같은 옷이다. 그리고 허리는 무엇으로 묶어서 그 허리가 가는 것을 보고 간신히 여자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머리는 검은색. 붉은 기운이 많이 돌고 군데군데 붉게 변색된 머리카락이 섞여 있었다. 이루릴의 검은색 머리와는 전혀 달랐다. 그 머 리는 지금 얼굴의 양쪽을 거의 점령하여 우리는 간신히 그 사람의 코와 입을 식별할 정도였다.

우리는 일단 그 여자 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우리가 걸어가면서 점점 다가오는 주위의 건물들은 끔찍스러운 모습이었다. 모양이 이상한 것은 아니다. 지저분하다거나, 어디가 부서진 것도 아니다. 다만, 다만 사면의 색깔이 모두 같다! 법칙이 무너지는 마을이었다. 도대체 먹구름 아래에 어떤 빛의 장난이 이루어지면 저런 현상이 일어나는 것일까?

그때였다. 여자는 앙칼지게 말했다.

“돌아가! 돌아가!”

우리는 질겁했지만 그것보다는 우리의 말이 더 질겁했다. 말들은 마치 맹수의 울부짖음이라도 들은 것처럼 앞발을 치켜올리며 투레질을 했다. “이히히힝! 푸르르, 힝힝힝힝힝!”

우리는 모두 낙마하지 않기 위해 허겁지겁 말에게 매달렸다. 그리고 여자의 고함소리에 놀란 것은 우리만이 아니었다.

“까아르르! 깍깍깍깍, 까아아아!”

하늘을 뒤덮는다는 느낌이 든다. 사방의 건물 지붕 너머로 까마귀들이 마구 날아올랐다. 까마귀들의 검은 깃털이 마치 낙엽처럼 떨어져 휘날렸다. 우리는 말의 비명소리와 까마귀의 울음소리, 그리고 시야를 다 가려버리는 깃털과 우리의 불안정한 자세 때문에 혼이 쏙 빠질 지경이었다.

또 다른 외침소리가 들려왔다.

“무엇을 위해 날아요?”

이루릴이었다. 놀랍게도 이루릴과 그녀가 타고 있는 래셔널 셀렉션은 꼼짝도 하지 않고 있었다. 이루릴은 하늘을 보며 외쳤다.

“먹이를 찾나요? 잠자리를 찾나요? 잃어버린 새끼를 찾나요? 돌아가요! 번쩍이는 물건에 매혹되는 순진한 성품의 날짐승들이여! 자신의 보금자리 로, 그 번쩍이는 물건들의 창고로 돌아가요!”

까마귀들은 다시 내려왔다. 하지만 그놈들은 건물의 처마나 지붕의 끄트머리, 베란다의 끝에 앉아서 우리를 내려다보았다. 이루릴은 그 모습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다행히 우리 말들도 그제야 진정하기 시작했다. 칼은 흐트러진 머리를 쓸어올리며 당황한 눈으로 주위의 까마귀들을 둘러보다가 말했다.

“이상하군, 이런 소란이 있는데 아무도 나오지 않아.”

그는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앞쪽의 여자에게 말을 걸었다.

“보시오! 우린 여행자들이오. 그냥 여기서 하룻밤 유숙하고 싶을 따름이오. 그런데 무턱대고 돌아가라니, 그 이유를 말해 주겠소?”

그 여자는 머리카락을 뒤로 젖혔다. 그제야 얼굴이 잘 보였다. 남루한 옷차림에 걸맞게 얼굴에도 땟국물이 가득한 지저분한 모습이었다. 미치광이처 럼 보인다.

그 여자는 이글거리는 눈으로 우리를 쳐다보았다. 아니, 우리가 아니라 이루릴을 쳐다보는 것이었다. 이루릴은 담담한 시선으로 여자의 눈을 마주보 았다.

여자는 이루릴에게 말했다.

“유피넬의 어린 자식………… 숲의 종족. 한없이 고상하신 그분께 감히 까마귀들이 소란을 피웠군, 히히힛! 과연, 과연 엘프야. 미천한 인간과 동행해도 그 품격에 누가 되지 않을까?”

이루릴은 그 검은 눈을 깜빡이더니 고개를 돌렸다. 그녀는 그대로 자신의 말을 돌리더니 우리에게 말했다.

“물러나죠.”

“예?”

“여기서 물러나죠. 이유는 천천히 설명할 테니…

그녀는 더 이상 말하지 않겠다는 듯이 입을 다물었다. 우리는 영문도 모르고 몸을 돌렸다. 뒤쪽에서 노려보고 있는 그 여자와 까마귀들의 시선에 등 이 따가웠다.

칼라일 영지 외곽의 넓은 밭을 도로 가로질러 나오며 이루릴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샌슨은 조바심을 내고 있었고 그것은 나도 마찬가지였다. 칼 은 가끔 뒤를 돌아보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음침한 먹구름은 점점 짙어지고 있었다. 거의 밤이 아닌가 싶었고, ‘횃불이 필요할 지경인걸?’ 하는 샌슨의 농담이 농담처럼 들리지 않을 정도였다. 밭을 지나 이 마을로 접어드는 고갯길이 있는 야산까지 돌아온 이루릴은 말에서 내렸다. 우리도 말에서 내려 그녀에게 다가갔다. 이루릴은 땅에 앉더 니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잠시 그렇게 생각에 잠기던 이루릴은 고개를 들어 우리를 봤다.

“앉지 않으세요?”

“아, 예.”

우린 머쓱해져서 각자 땅에 앉았다. 이루릴은 나직하게 말했다.

“그 여자, 사람이 아니더군요.”

“예?”

“사람이 아니라고 해서 오크나 고블린처럼 완전히 다른 종족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하지만 인간이라기엔 너무 이질적이더군요.”

“무슨 말씀이지요?”

이루릴은 마을 방향을 바라보며 말했다.

“인간은 어디까지나 유피넬과 헬카네스 양자 모두를 따를 수 있는 종족입니다. 유피넬과 헬카네스가 둘 다 인간들에게 관심이 깊어 양자는 끝없이 인간에게 개입하려 하지요. 반면 저 같은 엘프는 그랑엘베르를 따르므로 헬카네스는 우리에게 개입하기 어려워요. 드워프라면 카리스 누멘을 따르므 로 반대로 유피넬이 드워프에게 간섭하기 힘들죠.”

나와 샌슨은 그저 멍청히 고개를 끄덕였고 칼은 잘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같이 고개를 끄덕여도 이렇게까지 다르군. 이루릴은 마치 추운 것처럼 무릎을 모아 안았다. 응? 엘프가 춥다고? 그녀는 말했다.

“그런데 아까 그 여자, 오로지 헬카네스의 기운만을 가지고 있더군요.”

“예?”

“그 여자뿐만이 아니에요. 그 영지의 건물들의 모든 벽면이 같은 색, 그건 조화가 무너지는 증거지요. 유피넬의 저울대가 무시되는 곳입니다. 이해 할 수 없군요.”

소름이 돋아오르지는 않았다. 샌슨이나 나나 둘 다 신학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으니까. 난 칼 덕분에 머리에 쑤셔박은 지식은 있지만 지식은 그냥 지식일 뿐, 그것으로 감정까지 우러날 정도는 아니다.

내가 알기로 유피넬은 조화이며 헬카네스는 혼돈이다. 그것은 신이라기보다는 어떤 법칙, 경향성을 나타낸다. 하지만 보통은 하나의 인격신인 것처 럼 이야기된다.

만물은 조화나 혼돈만으로는 이루어질 수 없다. 혼돈이 없으면 조화도 없고, 조화가 없으면 혼돈도 불가능하다. 그래서 양자는 공생을 위해 시간을 만들었다. 시간이 있음으로써 비로소 양자는 공존할 수 있었고 그래서 유피넬과 헬카네스는 모두 만족했다 한다. 만물이 유전(流)되기 시작한 것이 다. 혼돈이 되었다가 조화를 이루기도 하고, 조화 속에서 다시 혼돈으로 치달을 수도 있게 되었다.

하지만 이게 보통 복잡한 것이 아니다.

인간을 보자. 인간은 유피넬과 헬카네스 양자 모두를 따를 수 있다. 유피넬만이 인간을 다스린다면 세상은 정말 따분할 것이다. 일례로, 행운이라 불 리는 것은 대개 헬카네스의 선물이다. 만일 주사위를 여섯 번 던져 모두 6이 나온다면 엄청난 행운이라 하겠지만 그것은 확률 법칙의 혼돈, 즉 헬카 네스의 은총이다. 헬카네스의 은총을 받았다면 도박사가 되는 것이 최고일 것이다. 하지만 같은 관점에서 헬카네스는 말도 안 되는 불운을 선물하기 도 한다. 주사위를 여섯 번 던져 몽땅 1이 나온다면 그것도 헬카네스의 힘이다.

그리고 헬카네스는 전사들의 신이기도 하다. 조화는 반드시 둘 이상의 존재를 필요로 한다. 무엇과 무엇이 조화를 이루는 것이지 혼자서 조화를 이 룬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하지만 전사들의 행동 원칙은 적과 나, 둘 중 하나의 죽음이다. 그래서 헬카네스는 전사들을 비호한다.

그러나 전사들은 헬카네스를 원망할 수도 있을 것이다. 엄청난 연습과 노력을 했는데도 약한 적에게 말도 안 되게 쓰러져버린다면 그것은 헬카네스 의 장난이다. 그래서 노력하는 전사들은 유피넬의 가호를 바란다. 하지만 그들은 유피넬의 뜻에 어긋나게 적을 도륙해 버린다. 노력하지 않는 전사라 면? 당연히 헬카네스의 도움으로 행운으로 적을 이기길 바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유피넬의 뜻에 따라 조화롭게 도륙당해 버릴 것이다. 그러나 유 피넬은 사실 둘 중 하나도 죽기를 원하지는 않는다. 조화는 둘 이상의 존재를 필요로 하는 것이니까…………. 이 정도면 꽤 복잡하지 않은가? 나는 이 정 도의 이야기만 듣고 나서 신학에는 정나미가 떨어져버렸다.

어쨌든 이런 이야기는 프리스트에게 물어보면 아마 죽을 때까지라도 토론할 수 있는 주제가 되겠지만 나야 그런 데 관심 없으니 이 정도만 알면 만 족이다. 어쨌든 헬카네스와 유피넬은 너무 고차원적인 신이며 사실 신이라 할 수도 없는 우주적인 법칙 같은 것이라 그들을 직접 신봉하는 종교는 없 다. 하지만 모든 종교는 유피넬과 헬카네스를 인정하며 그 하위신들을 따른다.

나는 이런 지식을 머리로만 알고 있을 뿐 그것을 가슴으로 느끼지 못한다. 그래서 난 멍청한 얼굴로 이루릴의 얼굴을 보고 있는 반면, 칼은 몹시 근

심스러운 표정을 짓는 차이가 발생하는 것일 게다. 칼은 정말 근심스런 표정으로 말했다.

“어떻게…………, 어떻게 헬카네스만의 기운을 가진 인간이?”

“모르겠어요. 하지만 한 가지 가능성을 생각해 볼 수 있겠지요.”

“가능성?”

“헬카네스의 하위신이라면 누가 있을까요? 그러니까, 그 역사함으로 헬카네스의 기운을 강하게 퍼뜨릴 수 있는 신이라면?”

칼은 눈을 끔뻑이더니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세이크리드 랜드라고 생각하시오?”

“그럴 수 있어요.”

“오, 맙소사!”

칼은 파랗게 질려버렸다. 나와 샌슨은 멀거니 서로를 마주보았다. 샌슨은 소리 없이 입모양만으로 말했다.

‘그게 뭐야?’

‘나도 몰라.’

칼은 한참 동안 전율 상태였다. 섣불리 질문도 못할 분위기였다. 그래서 우린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결국 내가 더 못 참고 뭐라고 말하려 했을 때, 칼은 마치 10년 만에 말하듯이 침중한 어투로 말했다.

“세이크리드 랜드라면………, 글쎄올시다. 헬카네스의 하위신일 테니, 하플링들과 갈림길의 테페리, 드워프와 불의 카리스 누멘, 오크와 복수의 화렌 차, 검과 파괴의 레티, 까마귀와 질병의…………….”

느릿하게 말하던 칼의 눈이 번뜩였다. 이루릴은 고개를 끄덕였다.

“가장 커다란 까마귀, 역병의 제일 원인자, 무덤만 지키는 무덤지기.”

“무슨 말이죠? 무덤만 지키다니.”

내 질문에 이루릴은 대답했다.

“무덤만 지킬 뿐 시체는 지키지 않아요. 파먹거나, 또는 꺼내어 훼손한다거나………….”

“우으윽. 그게 누구죠?”

“게덴.”

칼의 대답이었다. 게덴, 게덴이라. 내가 모르는 것을 보아 유명한 신은 아닌가 보다. 하긴 질병의 신이라면 별로 유명할 수가 없겠다. 나는 샌슨을 바 라보았지만 샌슨도 얼떨떨한 표정이었다. 그래서 칼에게 물어보았다.

“게덴이라, 질병의 신이라고요? 그걸 믿는 사람도 있어요?”

칼은 고개를 무겁게 끄덕였다.

“우리들이 사는 웨스트 그레이드 쪽에서는 별로 득세하지 못한 신이지만, 사우스 그레이드 쪽에서는 꽤 명성 있는 신이라네. 특히 사우스 그레이드 의 이파실 시에는 게덴의 화신이라 불리는 두 머리 까마귀 체로이가 살고 있지. 그 시의 시민들은 체로이에게 직접 공물을 바치기도 한다더군.”

“엣? 머리가 두 개?”

“그렇다네. 질병은 밤과 낮을 가리지 않고 찾아온다는 것을 상징한다던데. 머리 한쪽이 잠들어도 다른 머리는 깨어 있다더군.”

샌슨과 나는 눈을 반짝거렸다. 정말 거기에 들러 한번 구경하고 싶은데. 하지만 사우스 그레이드라면 우리 여정에서는 벗어나므로 구경할 가능성은 없을 것 같군. 샌슨이 말했다.

“저, 그럼 저 도시에서 게덴이 뭔 일을 벌이고 있다는 말입니까?”

“그의 프리스트일 가능성이 높겠지. 아니면 그의 권능이 깃든 어떠한 물건이 잘못 저 마을에 전해졌을 가능성도 있고.”

“그럼, 조사해 보죠?”

내 제안에 이루릴과 칼은 둘 다 한숨을 쉬었다. 뭐야? 난 머쓱해져서 머리를 긁었다.

“왜요, 내 제안이 부당해요?”

“부당한 게 아니라 당연하지. 우리야 같은 인간이고, 세레니얼 양께서도 유피넬의 법칙의 추종자이신만큼 저런 모습을 묵과할 순 없으시겠지요?” 이루릴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그런데 위험하단 말이야. 신의 권능이 펼쳐지고 있는 땅에 우리가 들어가서 어떻게 무엇을 할지.

나는 다시 머리를 긁적였다.

“어, 그거, 만일 그 게덴의 프리스트가 저기서 게덴의 율법을 실천하고 있는 거라면 그 작자를 두들겨 쫓아버리면 되는 것이고, 혹시 게덴의 물건이

있어서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이면 그 물건을 어디로 집어던져 버리거나 박살내 버리면 되는 것 아닌가요?”

칼은 미소를 지어보였다. 하지만 힘이 없었다.

“여보게, 네드발 군. 그 말은 맞네. 하지만 저 땅의 모든 것이 그 율법을 따르고 있어. 하다못해 저 땅 위에 있는 공기들마저도 게덴의 율법대로 움직 일 것이야. 우리가 조용히 물러나는 데에는 별 위험이 없었지만, 만일 우리가 저 땅 안에서 게덴의 율법에 반대하는 힘을 행사하려 하면, 순식간에 공 기가 없어지거나 우리 발밑의 땅이 없어져버리는 것도 생각해 볼 수 있네. 아니지. 저곳은 게덴의 세이크리드 랜드니까 우린 순식간에 수많은 질병에 걸려버릴 가능성이 가장 높겠군. 일사병과 동상에 동시에 걸리면 기분이 어떻겠나?”

“……….농담이에요?”

“농담이 아니네. 원래 세이크리드 랜드라는 것이 그래요.”

난 진저리를 치면서 물었다.

“세이크리드 랜드?”

“신림지(地), 신이 임한 땅. 무서운 것이네.”

세이크리드 랜드, 어감상 그것은 신성하고 거룩한 느낌이 든다. 하지만 칼의 설명에 의하면 그것은 지상에 펼쳐진 지옥이다. 최소한 지상에 사는 생 물에게라면 지옥보다 더 무서운 장소다.

“세이크리드 랜드, 그곳에서는 하나의 신의 율법만이 지켜지지. 여보게, 네드발 군, 퍼시발 군. 우린 사실 수많은 신들의 율법 속에 살아가는 것일 세. 하나의 신의 율법만이 지켜지는 장소에서는 오히려 살 수가 없어. 만약 드워프와 불의 카리스 누멘의 세이크리드 랜드라고 해보세. 그곳에서는 드워프도 못 살걸. 모든 것은 오로지 불일 테니까. 모든 것이 타버리기만 할 테니까. 엘프와 순결의 그랑엘베르라면…..”

칼은 거기까지 말하다가 잠깐 말을 멈추었다. 하지만 이루릴은 별 표정 없이 칼의 말을 이었다.

“그곳은 숨막히는 순결만이 있겠지요. 모든 땅은 처녀지여야 하니 이용될 수 없고, 모든 숲은 미답지로 남아 있어야 하니 들어갈 수 없고, 모든 산은 처녀봉이어야 하니 올라갈 수 없고. 게다가 후손을 만들 수 없어요. 처녀는 애를 못 낳지요.”

이루릴은 전혀 그럴 의도가 아니었겠지만 그 마지막 말의 뉘앙스는 웃겼고 그래서 샌슨과 나는 미소를 짓고 말았다. 이루릴은 우리가 웃자 어떻게 이런 무서운 말에 웃을 수 있느냐는 표정으로 우리를 의아하게 바라보았다. 샌슨은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흠, 어흠. 그럼 저기 저 땅에는 질병만이 존재한다는 말입니까?”

“그럴 걸세. 아마도 저렇게 된 것이 오래지는 않았겠지. 그렇다면 벌써 소문이 파다할 테니까.”

“반드시 손을 써야겠군요.”

“그래, 이건 보통 심각한 일이 아니네. 하지만 이건 신의 역사함일세. 우리 같은 필부가 근접할 수가 없다네.”

나는 답답한 마음에 질문했다.

“무슨 방법이 없어요?”

“모르겠네. 저런 현상 자체가 워낙 희귀한 것이라서. 어떤 신도 한 장소에서 자신의 권능 이외의 다른 권능을 모조리 배제시키려면 커다란 대가를 치러야 되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일세.”

“하지만 저기에 그런 땅이 있잖아요.”

“아마 대단한 의식이 있었거나, 혹은 막강한 아티팩트가 있을 거야. 거의 전설적인 무엇이겠지. 그게 뭔지를 알면 어떤 방법이 있을지 모르겠네. 유 피넬은 모든 것에 조화를 주기 위해 모든 것에 장점과 함께 약점을 주네. 반드시 어떤 막강한 힘에도 약점이 있겠지. 하지만 우리 중 신학에 밝은 이 가……………, 세레니얼 양?”

“저도 신학에는 어둡습니다.”

“예…………. 그러니 어쩌겠는가. 할 수 없지. 가장 가까운 신전을 찾아보세. 퍼시발 군?”

“예.”

“신전에 조력을 구해야겠네. 주위 어디에 신전이 있는가?”

샌슨은 배낭에서 다시 지리서를 꺼내어들었다. 그는 칼라일 영지와 그 근처 페이지를 뒤적거리는 듯하더니 곰곰이 살펴보다가 이윽고 지리서에 코 를 박고 살펴보았다.

“젠장, 너무 어두워서 잘 보이지도 않는데.”

그러고 보니 먹구름 때문에 알 수 없었지만 날이 어두워져 있었나 보다. 이루릴은 하늘을 보며 말했다.

“먹구름이 짙어서 빛이 부족하군요. 그것……, 응?”

이루릴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녀는 갑자기 두 팔을 들어 머리를 뒤로 쓸어넘기며 하늘을 바라보았다. 왜 저러지?

“왜 그러죠, 이루릴?”

“먹구름, 구름이라, 이상해요. 좀 이상하지 않아요?”

“구름이 이상하다고요?”

나와 샌슨도 일어나서 구름을 살펴보았다. 구름이 뭐가 이상하다는 거지? 흠, 비가 올 가능성이 높아 보이는군. 하지만 이루릴은 그런 뜻으로 말한 것이 아닌 모양이다.

“이곳이 게덴의 세이크리드 랜드라면 구름이 저렇게 낀다는 것은 이상해요. 전 신학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상식은 있어요. 병이라는 것은 보통 열 이죠. 열이 나지 않는 병도 있긴 있지만 대개 병을 상징하는 것은 타는 듯한 고열이에요. 이곳이 게덴의 세이크리드 랜드라면 찌는 듯한, 아예 메말라 버릴 듯한 공기가 있어야 해요.”

“……그렇네요? 그럼?”

“저 구름은 누군가가 만들어 보내는 거예요! 가요!”

그녀는 날렵하게 몸을 날리더니 배낭을 집어듦과 동시에 래셔널 셀렉션 위로 뛰어올랐다. 어떻게 등자에 발을 얹지도, 안장을 잡지도 않고 저렇게 뛰어오르지? 난 갑옷이 없더라도 저렇게는 못하겠다. 아마 이루릴은 안장이 없어도 별 무리 없이 말을 탈 수 있지만 짐 때문에 안장이 필요한 모양이 다. 우리가 꾸물거리며 각자의 말 위에 오르는 동안, 이루릴은 말 위에서 캐스트에 들어갔다.

“그 숨결에 생명을 담고 모든 것을 바라보며, 종속될 수 없는 운명을 가진 자여, 그대의 장난감을 요구하는 자에게로 날 안내해요.”

실프를 불러낸 그녀는 잠시 집중하여 허공을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그녀는 우리에게 고개를 돌려 말했다.

“됐어요. 절 따라와요.”

그리고 이루릴은 달려갔다. 트롯 정도의 속도라 따라가는 것은 간단했다. 우리는 한참을 이루릴의 뒤를 따라 종종걸음으로 달려갔다. 이루릴은 실프 에게 집중하기 위해 빠르게 달리지 못하는 듯했다.

칼라일 영지의 외곽을 따라 한참 우회했다. 야산의 낮은 구릉을 따라 얼마쯤 달려갔을까, 갑자기 나무들이 없어지며 넓은 비탈이 나타났다. 그리고 저쪽으로는 분홍색 반점이 보였다. 이루릴은 고개를 끄덕였다.

“코스모스와 폭풍의 에델브로이인 것 같군요. 썩 어울리게도 저기 코스모스가 피어 있는 산비탈이군요.”

이루릴의 시각은 엄청나다. 우리는 분홍색으로 보이는 산능선이 그제야 코스모스 언덕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 산비탈은 완만했지만 전망이 좋아 칼라일 영지를 내려다보기 좋은 장소였다. 그리고 조금 더 달려가자 비로소 우리 눈에도 코스모스 사이에 있는 어떤 형체가 보였다.

그 사람은 코스모스 속에 서 있었다. 그래서 상체 조금과 머리만이 간신히 보였다. 하지만 바람이 불 때마다 하늘거리는 코스모스 때문에 잘 보이지 않았고 그나마 로브를 뒤집어쓰고 있어서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가 다가가는 말발굽 소리가 들리자 그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짙은 먹 구름 때문에 빛이 부족해서 로브 아래의 얼굴은 아직껏 보이지 않았다.

바람이 불고, 코스모스는 분홍빛 파도로 하늘거렸다. 그는 몸을 일으켰다.

잠깐, 몸을 일으킨다고? 그럼, 지금까지 무릎을 꿇고………….

맙소사! 그자는 키가 5큐빗은 확실히 넘었고 거의 6큐빗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저게 사람인가? 사람이 저렇게 키가 클 수가 있나? 그는 쇠테를 두른 묵직한 스태프를 들고 있었는데, 난 어디서 기둥을 뽑아온 줄 알았다. 그는 로브의 후드를 뒤로 넘겼다. 순간 나와 샌슨은 각자 검의 칼자루를 쥐며 이를 악물었다.

로브 아래 나타난 얼굴은 트롤이었다.

이루릴은 래셔널 셀렉션에서 뛰어내렸다. 나는 소스라쳐서 말했다.

“이, 이루릴! 위험해요!”

그러나 이루릴은 내 말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그 트롤에게 다가갔다. 트롤은 멀거니 자기 배에까지밖에 오지 않는 이루릴을 내려다보았다. 맙소사, 트롤이 한 번 후려치면 이루릴의 몸은 조각이 날 텐데. 이루릴이 입은 거라곤 하얀 블라우스에 가죽 재킷과 가죽 바지. 보기엔 좋지만 그건 갑옷이 아 냐. 그러나 이루릴은 별 불안감 없이 말을 걸었다.

“저는 이루릴 세레니얼입니다. 코스모스와 폭풍의 프리스티스인가요?”

프리스티스? 그 트롤은 입을 열었다.

“그렇습니다. 에델린이라고 합니다.”

이루릴은 우리 쪽을 쳐다보았다. 왜 자기 소개를 하지 않느냐는 표정이었지만, 이건, 좀, 그러니까, 에, 그렇지만! 우리는 멀거니 입을 벌린 채 바라 보았다. 결국 이루릴은 포기하고 말했다.

“왼쪽부터 샌슨 퍼시발, 칼, 후치 네드발입니다. 제 동행입니다.”

트롤은 고개를 숙이더니 제법 점잖게 인사했다.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바람 속에 흩날리는 코스모스를.”

“컥, 포, 폭풍을 잠재우는 꽃잎의 영광을, 에, 영광을. 그러니까…

칼마저도 이러니 샌슨과 난 오죽했겠는가. 우리는 칼자루를 놓기는 했지만 아직도 어이가 없어서 경계하는 눈으로 그 에델린이라는 트롤 여자(?)를 바라보았다. 에델린은 미소(?)를 지었다. 송곳니가 멋있는걸?

“많이 놀라셨군요.”

결국 칼은 쭈뼛거리며 말했다.

“다, 당신은 트롤 아닙니까?”

“보시다시피.”

“저, 그, 그런데 어떻게 에델브로이의 프리스티스가 되었습니까?”

“신앙을 가졌으니까요.”

결국 나는 못 참고 끼어들고 말았다.

“저, 당신 성격에 그게 맞는 일입니까? 그리고 에델브로이의 신전에서 아무런 말 없이 받아들였습니까?”

“제 성격에 맞는 것은 당연하고, 신전에서 받아들였으니 프리스티스가 된 것이죠. 당연하지 않아요?”

계속 당연하다는 투로 말하니 뭐라 할말이 없다. 하긴, 에델브로이에 대한 신앙을 가졌으니 그 교리를 따르고, 그 신전에서 받아들였으니 프리스티 스가 되었겠고, 그 모든 과정은 저 에델린의 성격에 맞았으니 수행할 수 있었겠지. 하지만! 트롤이잖은가?

“저, 저, 당신들의 다른 동족들은, 에, 그러니까.”

내가 정신을 못 차리고 우왕좌왕하자 에델린은 미소지었다.

“죄송해요. 제가 너무 무례하게 대꾸했지요. 예, 처음부터 무슨 질문인지 잘 알고 있었습니다. 트롤 프리스티스라니, 이상하다는 것이겠지요? 트롤 이라면 사람 잡아먹는 몬스터인데 어울리지 않아서 이상하다는 질문이시겠지요? 그런 질문은 절 슬프게 하기 때문에 저도 모르게 무례하게 대꾸했습 니다. 죄송합니다.”

칼은 그제야 침착을 되찾고 대답했다.

“그렇지 않았다고는 하지 않겠소. 미안하오. 무슨 사연이라도?”

에델린은 대답하는 대신 다시 고개를 칼라일 영지 쪽으로 돌렸다. 그녀(일단은 이렇게 불러야겠다.)가 잠시 우리와 이야기를 나누는 새에, 칼라일 영지 의 하늘 위의 구름이 엷어지며 햇살이 하나 둘씩 비춰들었다. 에델린은 근심스러운 표정으로 이빨을 드러내며 으르렁거렸다. ……트롤이니까. “태양은 헬카네스의 힘. 햇빛이 닿지 않게 하려고 했는데, 쉽지 않군요. 지금 저 구름 위쪽으로는 엄청난 태양열이 쏟아져내리고 있어요.” 이루릴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리라고 생각했어요. 아마 햇빛을 가리기 위해 누군가가 구름을 보내고 있으리라고 생각했지요.”

에델린은 이루릴을 바라보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하지만 왜 내겐 저 동작마저도 위험하게 보이는 것일까.

“저 영지에 대해 아십니까?”

“조금 전 거기 들어가려다가 다시 돌아나왔습니다. 아무래도 게덴의 세이크리드 랜드인 것 같은데요. 맞습니까?”

에델린은 미소를 지었다. 나는 에델린이 이루릴을 먹음직스럽게 바라보는 줄 알고 소스라칠 뻔했다.

“역시 유피넬의 어린 자식답군요. 예. 그렇습니다. 이젠…………….”

에델린은 멀리 하늘을 바라보았다. 해가 어느새 지고 있는지 구름을 가르며 내리쪼이는 빛은 붉은색 광선이었다. 회색의 도시에 붉은 광선들이 하나 둘 쏟아지는 것은 보기에 퍽 아름다웠다. 하지만 저곳은 세이크리드 랜드, 하나의 법칙만이 미쳐 날뛰는 곳이다. ‘모든 것은 병들지어다.’

“해가 지는군요. 오늘은 이만 해도 되겠습니다.”

에델린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하고는 우리에게 몸을 돌렸다. 젠장, 말에 타고 있는데 눈높이가 같으니 정말 무섭잖아. 에델린은 말했다. “여러분들을 저녁 식사에 초대해도 될까요?”

소름이 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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