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라서 자이펀의 전사들이 받는 훈련은 우리들 바이서스의 전사들이 받는 훈련과 그 근본 철학부터가 다르다. 우리 바이서스의 전사들은 전투 상황에서도 심, 기, 체가 조화를 이루 는 상태를 계속 유지하는 것을 그 목적으로 한다. 하지만 저 남부의 작열하는 태양 아래에 살아가는 자이펀은 육체 능력에 보다 많은 집중을 할 수 없다. 바이서스 최강의 전사라도 자이펀 의 사막에서 매일같이 하는 구보 훈련을 하기는 어렵지 않겠는가? 따라서 그들은 전투 훈련에서 정신력의 고양을 그 목적으로 한다. 끈기, 인내, 침착성, 고도의 집중에서 자이펀의 전사 들을 따라갈 전사를 찾기는 힘들다. 살기가 이미 적을 꿰뚫으면, 손에 쥔 것이 검이든 활이든 똑같다는 말은 자이펀 전사들의 유명한 격언이다. 그런데…
「품위 있고 고상한 켄턴 시장 말레스 추발렉의 도움으로 출간된, 믿을 수 있는 바이서스의 시민으로서 켄턴 사집관으로 봉사한 현명한 돌로메네 압실링거가 바이서스의 국민들에게 고하는 신비롭고 도 가치 있는 이야기」 돌로메네 지음, 770년. 제2권 88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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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야, 이건? 이 나라 여행자들의 지혜인가?”
“뭐야?”
“여행의 속도를 위해 누군가 쫓아다니게 한다…………….”
“시끄러! 제기랄, 정말 돌아버리겠네!”
운차이의 느물느물한 말에 샌슨은 화를 바락바락 내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참 막막한 눈으로 앞을 바라보았다. 우리와 대치하고 있던 놈들 중 하나 가 외쳤다.
“취이이익! 이, 이상하다? 하나가 더 늘었다?”
“취익취익! 어, 취익, 괴물 초장이만 조심하면 된다!”
오크의 그 말에 샌슨이 눈을 뒤집었다.
“뭐야? 난 안 보이냐, 이 자식들아!”
칼은 샌슨의 화를 진정시키듯이 손을 휘저었다. 그리고 그는 오크들을 향해 말했다.
“여보게…………. 설마 휴다인 고개에서 여기까지 우릴 쫓아왔나?”
“그렇다! 취익!”
“말도 없이 말인가? 우리가 아무리 며칠씩 멈추면서 달려왔다지만…………. 정말 대단하군.”
정말 대단하다 하지 않을 수 없다. 만일 내 앞에서 ‘오크들의 지독한 복수심………….’ 어쩌고 하며 아는 체하는 녀석이 있다면 턱을 올려쳐 줄 생각이다. 직접 당해 보란 말이다! 칵!
우리는 레너스 시와 칼라일 영지에서 각기 사흘을 보내었다. 그러니 도합 엿새. 그 동안 이 지독한 놈들은 밤마다 걸어서 우리를 추적했나 보다. 아 니 도대체! 각 영지의 사람들은 눈이 어떻게 되었나? 어떻게 이런 큰 무리가 지나치는데! 아무리 밤에만 걷고 숲 속으로 쫓아왔을 테지만 그래도 어떻 게 안 들키고 우리를 쫓아왔단 말이지?
지금 이루릴이 앞에 나서서 댄싱 라이트 주문으로 괴상하게 생긴 불의 생물들을 불러내어 춤추게 하고 있었기 때문에 오크들은 눈을 가리며 함부로 접근하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저 주문이 영원히 계속되는 것은 아닐 게다. 오크들도 춤추는 불꽃들이 사라지기만 하면 덮치겠다는 듯이 글레이브 를 꼬나쥐고 있다.
이루릴도 그것을 눈치챈 듯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 불꽃이 사라지면 그 다음엔 더 강력한 불을 쏘겠습니다.”
오크들은 숨을 죽였다. 난 그 말에는 적극 찬성이다.
“그래요! 그 뭐냐, 불회오리! 그걸로 저놈들 다 구워버려요!”
나는 이루릴이 칼라일 영지에서 실프의 바람에 샐러맨더의 기운을 실어 쏘아버린 것을 생각했다. 그것은 정말 압도적인 장관이었다. 수십 큐빗의 굵 기로 용틀임하는 불꽃은 좀비 백여 마리를 순식간에 불태웠다. 그러나 이루릴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건 너무 파괴력이 강해서…………. 생물에게 그걸 쓴다면 치료하고 자시고 할 것도 없게 되는데요. 대책이 없어요.”
그래, 대책이 없겠지. 뼛조각까지 불타버리니까. 난 기회를 놓치지 않고 말했다.
“들었냐, 이 잡것들아! 계속 거치적거리면 너희들 뼛조각도 남지 않게 다 태워버릴 테다!”
오크들은 겁을 좀 집어먹고는 서로 수군거렸다. 내 말이 공갈인지 진짜인지 의논하는 꼴이었다. 그러나 물러서고 싶은 기색이 없었다. 그들의 위치 가 압도적으로 좋으니까.
정말 황당한 꼴인데, 우린 스스로 막힌 지형을 선택해서 야영하고 있었다. 물론 야영을 하는 사람들이 일부러 막힌 지형을 선택할 리야 없다. 우리도 그 정도로 바보는 아니다. 하지만 우린 자이펀 간첩인 운차이를 이송하고 있었고, 따라서 퇴로가 많은 지형을 꺼리게 된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강을 등지고 야영을 했다. 강가에서 야영을 하는 것은 완전한 바보짓이다. 물을 구할 수 있어서 좋긴 하지만 강가에는 추위를 막아줄 엄폐물도 없고 주위가 너무 드러난다. 하지만 그래서 운차이도 달아날 수 없으리라고 본 것이다.
그 운차이는 팔짱을 낀 채 우리와 오크들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갑자기 그는 칼의 허리에 있는 대거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 대거 좀 빌려주겠습니까?”
“왜지요?”
“몸을 지키고 싶습니다.”
“……………좀더 상황을 두고 봅시다.”
“알겠습니다.”
운차이는 거절당하고도 아주 무심하게 다시 오크들을 노려보았다. 그 동안, 이루릴은 결판을 내기로 작정했다. 그녀는 갑자기 댄싱 라이트를 없애버 렸다. 오크들은 긴장했다.
“후치 씨, 샌슨 씨, 앞으로.”
우리는 앞으로 나섰다. 그러자 이루릴은 우리들의 등 뒤에서 캐스팅을 시작했다.
“밤의 이슬 속에서도 젖지 않는 하나의 모래의 주인이며…………….”
“취이익! 마법을 쓴다!”
오크들은 우리들에게 덤벼들었으나 그보다 먼저 난 바닥을 차올렸다. 쫘르르! 팍팍!
강가의 자갈들이 앞으로 튕겨나가며 오크들을 저지했다. 그리고 뭔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소리도 모양도 냄새도 아무것도 없지만 정령이 움직일 때 는 뭔가가 움직인다는 느낌이 든다.
그리고 오크들은 픽픽 쓰러졌다. 앞에서 덤벼들던 다섯 마리가 그렇게 쓰러지자 우린 당장 양 옆으로 돌아서 달리기 시작했다. 샌슨은 왼쪽, 나는 오 른쪽, 그리고 우리가 양쪽으로 벌어짐과 동시에 가운데서 칼이 롱 보를 쏜다. 우리들도 이젠 꽤 익숙해졌다.
퍽! 퍼퍼벅!
이루릴이 생명을 죽이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에 그녀를 존중하는 의미에서 우리는 모두 검집을 씌운 채 싸우고 있었다. 그리고 더 죽여봐야 원한만 깊어질 것 같기도 하니 우리도 찬성이다. 칼도 활을 낮게 쏴서 다리를 맞추거나 혹은 높게 쏘아 겁을 줄 뿐이다.
나도 이젠 꽤 능숙하게 검을 사용한다. 오크들의 글레이브가 아무리 길어도 내 바스타드에 한 번씩 맞으면 다 부러져나간다. 난 주로 오크들의 무기 를 공격했다. 쓸데없이 오크들을 더 죽였다간 아무래도 원한이 끝이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며, 솔직히 그 글레이브가 지배하는 엄청난 공간을 뚫고 들어가 오크의 몸을 직접 공격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사이에 이루릴은 외쳤다.
“모두 말로!”
이루릴, 칼, 운차이는 이미 말에 올랐다. 샌슨과 나는 말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난 바닥에 있는 짐들을 모조리 거머쥐어 달리느라 조금 뒤처졌다. 오크들이 우리를 쫓아오려 하자 이루릴은 말 위에서 캐스팅했다.
“체인 라이트닝!”
푸아팍팍팍! 나와 오크들 사이로 엄청난 벼락의 강이 흐르기 시작했다. 강가의 자갈들이 순식간에 타버리거나 깨어져 나갔고 오크들은 기겁하며 물 러났다. 솔직히 나도 기겁했다. 그러나 이루릴은 내 말을 끌고 나에게로 달려오고 있었다. 난 한 손에 든 배낭 뭉치를 말에 얹고 다른 손에 든 프라이 팬을 입에 물고는 말 위에 뛰어올랐다.
“달려!”
샌슨이 앞서 달리기 시작했고 우리들도 그 뒤를 따랐다. 오크들은 화나서 글레이브를 집어던지거나 돌멩이를 들어 집어던졌지만 하나도 맞지 않았 다.
“취이익! 멈춰라!”
저 자식들은 죽이기 싫어서 도망가는 것도 모르고!
“읍! 읍읍읍!”
난 프라이팬을 입에 문 채로 악악거렸다.
“그거 맛있냐?”
샌슨이 말하고 나서야 난 프라이팬을 계속 물고 있을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음, 좀 부끄럽군.
강을 따라 상류로 달린 지 한참, 간신히 다리를 만났다. 우리가 다리를 만나게 된 것은 거의 해가 떠오르기 직전이었다. 우리는 후줄근한 모습으로 다리에 다다랐다.
“다리가 있으면, 가까운 데 마을이 있겠지.”
칼의 낙관적인 말에도 아랑곳없이 난 말 위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정말 미치도록 자고 싶었다. 아마 말들도 마찬가지겠지. 나는 옆에 있던 칼이 붙잡아주어서 간신히 말 위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앞에서 걷고 있던 샌슨은 강 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그래서 샌슨과 운차이는 한꺼번에 강으로 들어갔다. 운차이의 말 안장과 샌슨의 말 안장은 서로 묶여 있으니까. 운차이는 고함을 질렀다.
“이봐! 멍청이, 뭐하는 거야?”
졸면서 강으로 들어가던 샌슨은 화들짝 정신을 차렸다. 이루릴은 엘프라서 그런 것인지 별로 졸리는 기색이 없었다. 운차이 역시 피로한 기색이었지 만 졸지는 않았다. 나나 샌슨이 좀 문제인 것인가?
다리는 거의 150큐빗은 되어 보이는 길이의 돌다리였다. 꽤 잘 만든 다리인데? 샌슨은 눈을 비비며 설명했다.
“아, 여긴 이라무스 다리입니다. 다리를 건너 좀더 들어가면. ·(꾸벅) 아, 수도 바이서스 임펠의 서부 관문에 해당하는 (꾸벅)이라무스 시가 나타납 니다.”
“그럼 거기 들어가서 쉬세나. 자, 기운들 내게.”
“퍼시발 군?”
“아, 예? 옙!”
졸고 있던 샌슨이 정신을 차리고 나서 우리는 이라무스 다리에 들어섰다. 그런데 우리 눈에 재미있는 것이 들어왔다.
다리의 중간쯤, 왼쪽 난간에 기대고 앉아 있는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남루한 회색 망토를 걸치고 후드를 뒤집어쓰고 있는데 몸에 두른 망토의 틈새 로는 가죽 갑옷의 모습이 보였다. 흡사 밤새도록 거기서 자고 있었던 듯한 모습인데. 하지만 강바람이 거센 이런 다리에서 자고 있다면 그건 사람이 아니라 트롤일 것이다. 아무리 망토를 두르고 있다지만.
그자의 옆에는 희한하게 생긴 무기가 다리 난간에 기대져 있었다. 그건, 창이긴 창인데 희한하게 생겼다. 그러니까 가운데 창날은 롱소드처럼 생겼 으며 양쪽으로 꺾어진 부속 창날이 달렸다. 흡사 E자 모양으로 생겼는데 가운데 날이 긴……………, 아무리 봐도 잘못 만들어진 포크가 생각나는데?
“저게……, 아함. 저게 뭐야?”
“트라이던트 종류인 것 같은데.”
“에엑? 저렇게 큰 트라이던트가 어디 있어?”
트라이던트는 작살이다. 던질 수도 있어야 하고, 원래 낚시할 때 쓰는 것이다. 그래서 아이들이 쓸 수 있을 정도의 크기이다. 하지만 저자가 들고 있 는 것은 모양만 트라이던트지 거의 핼버드나 포차드에 버금갈 정도로 크다.
“모양만 트라이던트군.”
“쓰기 어렵겠다.”
“뭐, 저거 익히긴 어렵겠지만 꽤 좋을 것 같은데. 저 갈라진 창날로 무기도 잡아내겠고, 공수 양면에 좋겠는걸.”
우리가 이렇게 노닥거리면서 그자 가까이로 다가갔을 때다. 난간에 기대어 앉은 채 고개를 푹 숙이고 있어 마치 잠든 것처럼 보이던 그자가 갑자기 팔을 움직였다.
그는 난간에 기대어 둔 그 괴상한 창을 들어 반 바퀴 빙 돌리더니 다리를 가로막았다. 명백한 시비다. 우리는 당황해서 멈추었다.
그자는 천천히 일어서서는 그 창을 짚고 서서는 우리 앞을 가로막고 섰다. 트라이던트를 쥔 손이 아닌 다른 손이 후드를 들어올렸다. 멋진 아가씨의 얼굴이 나타났다.
남자가 아니네?
망토는 마치 남자 같은 회색인데. 아마도 가죽 갑옷을 입고 그 위에 다시 망토를 걸쳐서 덩치가 커 보이는 모양이다.
여자는 찰랑거리는 단발머리였는데 그 머릿결은 타오르는 붉은색이었다. 윽. 갑자기 제미니가 생각나는군. 엉성한 몸놀림으로 보아 처녀다. 난 그것 은 확실히 구분할 자신이 있다. 아무리 매력적이라도 처녀는 아줌마보다 몸놀림에서 풋내가 난다. 좋게 말하면 싱그럽다거나 발랄하다고 해야 되나. “뭐요, 아가씨?”
샌슨이 말했다. 그 아가씨는 생긋 웃었다.
“오늘은 개시하자마자 손님이네. 남자는 모두 10셀씩 30셀, 엘프는 여자니까 20셀에 미인이시네? 그럼 30셀. 어린이는 반액 요금으로 5셀. 모두 65세 되겠군요.”
나는 기가 막혀서 일단 샌슨을 바라보았다.
“샌슨, 좋겠네? 샌슨은 어려 보이니까.”
“너 말하는 거야! 아니, 그게 아니고, 무슨 돈을 내놓으라는 거요?”
“다리 이용료.”
칼은 기막히다는 표정으로 허허거리더니 농담삼아 질문했다.
“왜 여자는 20셀에 미인은 10셀 추가요?”
여자는 생긋 웃었다. 그런 대로 귀여워 보이네.
“난 남자를 좋아하니까. 그리고 미인은 기분 나빠서.”
난 한숨을 폭폭 쉬면서 말했다.
“남자를 좋아한다고? 할 수 없군. 비장의 미남계를 써야겠군. 아무래도 그거라면 내가……………”
딱! 그만 때려라, 키 안 큰다! 샌슨은 내 정수리를 찍고는 말했다.
“여보쇼! 우리가 왜 다리 이용료를 내야 돼?”
“안 내면 헤엄쳐서 건너야 되니까.”
“아하? 강도군?”
“어떤 사람들은 내 직업을 그렇게 부르기도 하지. 하지만 난 나이트호크라는 직업명을 더 좋아해.”
흠. 레너스 시의 듀칸 버터핑거는 자기를 소유권 이전 전문가라고 부르더니 이 여자는 나이트호크(쏙독새, 밤도적의 은어)라 부르는군. 샌슨은 킬킬 웃 고는 말에서 내리더니 롱소드를 뽑아들었다.
“나이트호크가 낮에 돌아다니냐? 좋아, 난 여자를 좋아하니까 10셀, 하지만 미인이 아닐 경우엔 10셀 추가. 20셀을 내면 안 건드리고 지나가주지.” 여자는 발끈했다.
“내가 미인이 아니라고? 이 정도면 어디 안 빠지잖아?”
샌슨은 엄지손가락을 뒤로 해서 이루릴을 가리켰다.
“미안하군. 이분과 함께 다니다보니까 말이야, 웬만한 얼굴은 눈에 안 들어온다고.”
여자는 까르륵 웃었다.
“보다보다 이런 배짱 좋은 놈은 처음 봤네. 아, 너 시골에서 방금 올라왔지? 그래서 내 이름을 못 들어본 모양이네? 내 창만 보더라도 기억하는 사람 이 많은데 말이야.”
샌슨은 상냥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못 들어봤어.”
“난 트라이던트의 네리아. 잘 기억해.”
“그래? 난 헬턴트의 샌슨 퍼시발. 혼자 상대해 주지.”
샌슨은 그렇게 말하고는 우리들에게 좀 물러나라고 지시했다. 난 물러나며 말했다.
“샌슨, 조심해! 지형이 좁아서 창이 유리하다고.”
“그거야 맞을 때의 이야기고.”
샌슨은 롱소드를 빙빙 돌리더니 앞으로 쥐었다. 선제 공격은 할 수 없겠지. 상대의 창이 기니까. 샌슨은 느긋하게 기다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네리아라는 그 여자 강도도 기다리기 시작했다. 빈틈없이 창을 앞으로 세워 샌슨의 가슴 부위를 겨냥한 채 그렇게 서 있었다. 두 사람은 그렇 게 1분쯤 대치했다.
샌슨은 하품을 했다. 그리고 갑자기 외쳤다.
“와!”
“이얍!”
한심해서…………. 네리아는 긴장하고 있다가 샌슨이 고함을 지르자 엄청난 속도로 트라이던트를 찔러왔다. 샌슨은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옆으로 돌 며 트라이던트를 내리쳤다. 치챙!
네리아는 허겁지겁 물러났고 샌슨도 뒤로 몇 발짝 움직였다. 네리아의 얼굴이 벌겋게 되었다. 그녀는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
“힘 좋네?”
“어, 팔 아파? 미안. 그런데 빨리 끝내자고. 난 피곤해.”
피곤해라고 말하면서 샌슨은 앞으로 걸어갔다. 네리아는 놀라서 트라이던트를 찔렀다. 하지만 이번에도 속임수. 샌슨은 마치 걸어갈 듯이 허리만 앞 으로 내밀었을 뿐 앞으로 내디딘 발로 땅을 차며 뒤로 움직였다. 트라이던트는 아슬아슬하게 샌슨의 가슴 앞에서 멈췄고 샌슨은 그것을 쳐올렸다. “저거, 일자무식이다!”
난 감탄해서 말했다. 내가 할 때보단 훨씬 멋있지만, 샌슨은 일단 위로 쳐올리고는 그대로 회전하며 다리를 크게 내딛고 옆으로 베어들어갔다. 탕! 네리아는 허리를 맞고는 까무러치는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몇 발자국 물러서고는 자기 허리를 내려다보고는 의아한 표정이 되었다. 샌슨은 피 식 웃더니 롱소드를 들어올려 손가락으로 검날의 옆면을 가리켰다.
네리아는 붉으락푸르락하기 시작했다.
“하아!”
네리아는 돌격하면서 찔렀다. 하지만 샌슨은 이번엔 트라이던트를 쳐내렸다. 네리아는 급격히 앞으로 쏠리다가 넘어지지 않기 위해 몇 발자국 더 디 뎠고, 샌슨은 그대로 네리아의 옆으로 걸어갔다.
찰싹! 샌슨의 검 옆면에 엉덩이를 맞은 네리아는 머리끝까지 화가 났다. 그러나 몸을 돌린 그녀의 목에는 롱소드가 겨냥되어 있었다.
“. . . . . . !”
네리아는 그대로 굳어버렸다. 샌슨은 눈짓으로 창을 버리라고 명령하며 롱소드에 지그시 힘을 주었다.
탈깡. 경쾌한 소리를 내며 트라이던트가 떨어졌다. 샌슨은 주의 깊게 그것을 주워들더니 칼에게 던졌다. 칼이 그것을 받아들자 샌슨은 히죽거리며 말했다.
“자, 20셀이야. 어쩔래?”
네리아는 입을 앙다물었다.
“못 내겠다면? 어쩔 건데?”
“음. 넌 지금까지 돈을 못 낸 사람을 어떻게 했는데?”
“헤엄치게 했다고 하……………”
네리아는 말을 끝내지 못했다. 샌슨이 짓궂은 표정으로 강물을 흘깃 바라본 것이다.
늦가을의 강이다. 게다가 네리아는 가죽 갑옷에 망토까지 입고 있다. 헤엄치기도 어려울 테고, 어쨌든 무진장 추울 것이다. 네리아의 얼굴이 시퍼렇 게 바뀌었다.
샌슨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관둬. 꿈자리가 사나울걸. 아함…………. 그런 것은 보고 싶지 않아.”
샌슨은 롱소드를 치워주고는 말 위에 오르더니 말했다.
“가자. 그리고 난 말을 잘 못하니까. 칼이 한마디 하세요.”
칼은 빙긋 웃고는 말했다.
“네리아 양? 실력으로 보아 강도 영업도 어렵겠소. 가진 재주가 무술이라면 어디의 군대에라도 지원해 보는 것이 어떻겠소? 하지만 군대는 위험하 니까 최후의 선택으로 남겨두고, 뭐 다른 기술을 익혀보는 것이 좋을 거요.”
네리아는 실력 운운하니까 자존심 상해 죽겠다는 듯이 얼굴을 찌푸렸다. “그건 돌려줘요!”
칼은 트라이던트를 들어 보이더니 고개를 가로저었다.
“먼저 우리가 지나가고.”
네리아는 붉으락푸르락하면서 다리 옆으로 비켜섰다. 나는 그녀 옆을 지나치면서 예의를 담아 그녀를 똑바로 쳐다보지는 않고 대신 외면하면서 킬 킬거렸다. 칼은 우리가 다 지나가고 나서 트라이던트를 던져주었다.
“자, 퍼시발 군……?”
샌슨은 다시 졸고 있었다. 조금 전에 격렬하게 움직여서 더 졸린 모양이다. 네리아도 그걸 보더니 기막히다는 표정을 지었다.
“뭐 저런 녀석이 다 있어!”
샌슨은 놀라서 고개를 들었다.
“음? 어, 뭐냐? 어, 여긴 이라무스 다리입니다. 이 다리를 지나면 수도 바이서스 임펠의 서부 관문에………
“아, 아냐, 됐네. 퍼시발 군. 가세나.”
샌슨은 눈을 좀 껌벅이고는 머리를 좀 휘젓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우리도 피식 웃고는 다시 말을 걷게 했다. 그런데 잠시 후에 고개를 돌린 내 눈에 이상한 것이 보였다.
“어? 따라오네?”
“누가 따라간다고!”
고함을 지른 것은 물론 네리아다. 네리아의 목소리에 다른 일행도 모두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네리아는 화난 표정으로 걸어왔다. 그녀는 그대로 멈 춰 선 우리를 지나치며 말했다.
“누가 따라가? 난 이라무스에 간다고! 젠장, 여관비가 없어서 한 건 하고 가려고 했는데.”
샌슨은 졸린 눈으로 네리아를 보더니 말했다.
“그래? 그럼, 그래. 아함…………….”
네리아는 팔짝팔짝 뛰면서 외쳤다.
“야! 좀 태워주겠다고 하면 어디가 덧나! 나보고 그 먼 거리를 걸어가라는 거야? 너 때문에 난 여관비도 못 벌었다고!”
우리는 기막힌 얼굴로 네리아를 바라보았지만 샌슨은 하품이 나와서 짜증스러워 견딜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그래? 그럼, 그래. 아아…………, 죽겠네. 저기 운차이랑 같이 타. 저 말엔 짐도 없으니.”
그러자 운차이의 얼굴이 대번에 바뀌었다.
“Nhatro! 아니, 안 돼!”
운차이의 고함소리가 너무 커서 네리아를 비롯한 우리 모두가 놀랐다. 난 칼을 바라보았고, 칼은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말했다.
“아. 그렇지. 아내 아닌 여자와 가까이할 수 없지.”
“그래요? 같이 말에 타는 것도 안 돼요?”
“음. 친지가 아니면 방 안에 단 둘이 같이 있는 것도 안 될걸?”
나는 운차이를 바라보며 피식 웃었다. 정말 골치 아픈 관습을 지녔네. 하지만 저 친구는 간첩이잖아? 간첩이면 예의범절은 무시해도 되는 것 아닌 가? 아, 우리에게 이미 들켰으니 위장할 필요가 없다는 것인가? 이루릴이 말했다.
“제 몸무게가 가벼우니까 저와 같이 타죠.”
그러자 네리아는 샐쭉한 표정을 지었다.
“미인하곤 같이 안 타요! 음. 이봐! 너 샌슨? 네 말이 제일 크네. 같이 타자.”
샌슨은 졸려서 오만상을 찌푸리다가 그 말에 눈을 번쩍 떴다.
“그래! 그거야. 나랑 같이 타!”
네리아는 샌슨이 너무 좋아하자 좀 어이없는 표정이 되었지만 잠자코 말에 오르려 했다. 그러나 샌슨은 네리아를 이상한 방향으로 인도했다. 네리아 는 당황해서 얼굴이 빨갛게 되었다.
“뭐, 뭐야?”
샌슨은 네리아를 자신의 앞에 태우더니 고삐를 쥐어주었다.
“내가 졸면 네가 말을 이끌어. 알았지? 아, 다행이다. 내가 졸면 일행을 인도하지 못하거든. 으음…….”
그리고 샌슨은 당장 눈이 풀어졌다. 네리아는 기막히다는 표정으로 뒤를 돌아보더니 한숨을 쉬었다.
“이거…………, 보기보다 음흉하네?”
샌슨은 벌써 졸고 있어 아무 대답이 없었다. 참, 대단하다. 앉은 채로 자네? 운차이는 못 볼 것을 본다는 듯이 샌슨과 네리아에게서 고개를 돌렸다. 고개를 돌린 채로 뭐라고 중얼거리는데 아무래도 무슨 욕지거리인 것 같다.
그렇게 우린 반쯤은 샌슨의, 반쯤은 네리아의 인도를 받아 이라무스 시를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네리아는 불편한 듯이 계속 몸을 움찔거리고는 했지만 샌슨은 졸면서 끊임없이 네리아의 어깨에 머리를 박았다. 네리아는 몇 번 화를 내다가는 포기해 버리고 아예 혼자서 고삐를 잡고 샌슨을 등 뒤에 기대게 한 채 걸었다. 그러자 샌슨은 팔을 쫙 늘어뜨리고는 네리아의 등에 기대어 본격적으로 자버렸다. 드르렁!
칼은 그 모습을 보며 피식 웃으며 말했다.
“네리아 양. 무겁지 않소?”
“가볍지는 않네요. 그런데 댁들은 모험가예요?”
“그런 말을 전에도 들었지만, 우린 여행가일 뿐이오. 분명한 목적을 가진 여행가.”
“흐음…………. 내 등 뒤의 덩치 큰 아가는 칼솜씨가 무섭던데.”
“덩치 큰 아가?”
“전혀 기회 포착을 못하고 있잖아요? 이런 좋은 기회에.”
칼은 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 친구가 지금 많이 졸려서 그렇긴 하지만, 정신이 맑더라도 네리아 양에게 무슨 추잡스런 짓을 할 젊은이는 아니외다.”
그야 그렇지. 샌슨 순진한 것은 유피넬이 알고 헬카네스가 알고 내가 알고 샌슨은 절대 모른다. 하지만 네리아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헤엣? 저 미녀 엘프 때문에 나 정도는 여자로 안 보이신다?”
“그런 뜻은 아니오.”
“아, 됐어요. 그건 착한 게 아니라 숙맥인 거지. 그런데 저 과묵한 청년은? 저 친구도 숙맥인가요?”
네리아가 지적한 것은 운차이였다. 칼은 웃으며 말했다.
“글쎄올시다. 안 지가 오래되지 않아서 잘 모르겠소.”
네리아는 샌슨과 운차이 사이의 밧줄을 보고는 운차이를 다시 봤다.
“이봐요. 당신 이름은?”
운차이는 못 들은 척하며 고개도 돌리지 않았다. 네리아의 눈썹이 올라가더니 네리아는 샌슨의 안장과 운차이의 안장을 연결한 줄을 확 끌어당기며 말했다.
“이봐! 레이디가 묻잖아?”
운차이는 화난 표정으로 네리아를 보더니 갑자기 내게 고개를 돌렸다.
“후치. 강도도 레이디라고 불릴 수 있는지 저 아가씨에게 물어줘.”
“라는군요.”
나는 친절하게 전해 주었다. 그러자 네리아는 발끈하면서 말했다.
“왜 직접 말하지 않는 거야? 무슨 애들 장난치는 거야?”
운차이는 역시 내게 말했다.
“용모가 아름답지 못하면 성격이라도 고와야 하고, 성격이 곱지 못하다면 언행이라도 고와야 하는 법이라고 저 아가씨에게 전해 줘.”
“라는군요.”
“야! 누가 널더러 날 책임이라도 지라고 그랬어? 내 언행이 너랑 무슨 상관이야? 그리고 용모가 뭐 어째?”
운차이는 조금도 흔들림 없이 유유하게 말했다.
“저런 패악스럽고 사나운 성격을 일생 동안 참아낼 남자를 찾는 것은, 익힌 달걀에서 병아리를 까게 하는 것보다 더 어려울 것이라고 전해 줘.” “라는군요.”
“뭣이 어쩌고 어째? 넌 뭐가 잘나서? 보아하니 이 사람들 포로인 모양인데!”
운차이는 여전히 유들거렸다.
“난 포로라도 되지만, 저 아가씨의 경우엔 포로로 삼을 가치도 없어서 이기고도 내버려두고 떠난 것이 아니냐고 전해 줘.”
난 약간의 변화를 모색해 봤다.
“라는데요?”
“익힌 돼지머리 같은 얼굴에, 비 오면 다 들어갈 것 같은 납작코를 가진 주제에 뭐가 자신 있어서 미인에게 함부로 구는 거야?”
“몸매가 거의 시각 폭력에 가까운 주제에 과대망상을 가지기까지 했으니 그 앞날이 참으로 막막하여 도대체 대책이 안 선다고 전해 줘.” “라는걸요.”
“그것도 눈이라고 달고 다니냐? 엉? 깡촌에서 비루먹은 당나귀 같은 여자만 보다가 날 보니까 도대체 세련미를 알아보지도 못하는 게 자랑이냐?”
“지나가는 남자 백 명을 붙잡고 물어보면 그중 아흔여덟 명이 모두 머리를 흔들면서 달아나버릴 얼굴도 세련미라 칭할 수 있는지 궁금하다고 전해 “줘.”
“라시네요.”
“아흔여덟 명? 두 명은 그럼 뭐야?”
“한 명은 장님이었고 나머지 하나는 거짓말쟁이였다고 전해 줘.”
“라셨어요.”
정말 대단하다. 네리아와 운차이는 이라무스 다리에서부터 시작해서 이라무스 시의 외성이 보일 때까지 계속해서 말싸움을 하고 있다. 외성이라. 꽤 커다란 도시인가 보다. 그런데 두 사람은 그걸 볼 겨를도 없이 말싸움을 계속하고 있는 것이다.
운차이가 조금만 덜 느물거렸으면, 아니 네리아가 조금만 더 겸손했다면 모르겠지만 지금 둘은 완전한 균형을 이루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점점 가 중되는 피로를 느꼈다. 졸려 주욱겠는데!
정말 존경스럽다. 누구? 샌슨. 어떻게 저렇게 떠드는 여자의 등에 볼을 갖다댄 채 저렇게 편안하게 자고 있을 수 있는지. 샌슨은 세상에서 가장 안온 하고 마음 편한 자리에 있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열심히 자고 있다.
네리아는 조금도 지치지 않는 모습으로 또 말했다.
“야! 네가 길을 걸으면 지나가던 여자들 백 명 중 아흔여덟 명이 기절해 버릴 거다! 한 명은 장님이고……, 꺄악!”
응? 이건 좀 이상한데? 난 졸린 눈을 비비며 네리아를 보았다. 샌슨이 네리아의 허리를 덥썩 안은 것이다. 네리아는 당황한 얼굴로 말했다.
“드, 드디어 행동 개시인가?”
이번엔 우리 모두가 당황한 얼굴로 네리아를 바라보았다. 샌슨은 눈을 감은 채 행복한 얼굴로 말했다.
“음………… 이루릴. 예상 외로 허리가 굵은데………….”
샌슨은 네리아에게 밀려 말에서 떨어졌을 때 부딪힌 머리를 문지르면서 여관을 둘러보았다.
“괜찮네. 마구간도 있고, 들어가자. 졸려 쓰러질 것 같아.”
“그래. 아까 꾸던 꿈 마저 꾸어야지. 그럼.”
네리아의 퉁명스러운 말에 샌슨은 얼굴이 벌겋게 되어버렸다. 네리아는 그대로 우리에게 손을 젓더니 말했다.
“데려다줘서 고마워요! 그리고, 샌슨. 친절을 베풀어줬으니 그 대가로 조언 하나 할게요. 아무에게나 베푸는 그런 친절은 위험해요.”
샌슨은 피식 웃었다. 그리고 네리아는 운차이를 노려보았지만 운차이는 본 척도 하지 않았다. 네리아는 콧방귀를 뀌고는 그대로 그 긴 트라이던트를 지팡이처럼 짚으며 걸어갔다.
우리는 여관으로 들어갔다. 여관 이름은’이라무스 플라이’? 무슨 여관 이름이 저런지 모르겠군. 우리는 지친 표정으로 여관에 들어갔다. 말구종이 달려나오더니 우리들의 말을 데려갔다. 우리는 여관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안은 홀이었는데 홀 안의 테이블을 닦고 있던 아주머니가 말했다. “발 털고 들어와요! 그렇지. 다섯 분? 난 여기 주인 레네즈요. 방은 어떻게 쓰시겠소?”
샌슨은 여관 현관의 기둥에 머리를 부딪힐 뻔하다가 말했다.
“아……함. 큰방 있어요?”
“네 사람 들어갈 방은 있지.”
“좋아요. 그럼 그 방에, 이루릴은 독실로 가시죠?”
“예.”
레네즈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4인실에 독실, 아침 식사 하시겠소?”
“아니…………, 일단 방부터. 졸려 죽겠어요.”
“그래? 밤새도록 왔나 보군. 하루치 요금 선불이오. 4셀 30퍼셀.”
샌슨은 그새 여관 기둥에 기댄 채 또 졸고 있었다. 이해할 수 있어, 샌슨! 나도 정말 미치도록 졸리거든. 그래서 칼이 샌슨을 흔들어 깨웠다. “퍼시발 군. 여관비 선불로 4셀 30퍼셀이라네.”
“예? 아, 예. 아하함!”
샌슨이 품속을 뒤적거리는 것이 점점 희미하게 보인다. 아, 아, 아무래도 안 되겠어…………… 나도 기둥에 기대어 섰다. 그런데 갑자기 고함소리가 들렸 다.
“없어!”
난 눈을 떴다. 샌슨이 품속을 정신없이 뒤지는 것이 보였다. 나도, 칼도, 운차이도, 그리고 이루릴도 갑자기 춤을 추기 시작하는 샌슨을 보며 얼빠진 얼굴이 되었다. 샌슨은 온몸을 비비 꼬며 뒤틀었다. 그건 결국 품속을 뒤적거리는 행동이었다. 하지만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이, 어떻게 바지 속에 돈주 머니가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는 거지? 샌슨은 정말 바지 속까지 다 뒤지다가 갑자기 외쳤다.
“그 여자!”
알겠다, 알겠어! 이해했다. 칼이 서글픈 표정으로 말했다.
“네리아 양에게 소매치기당했나?”
“으아악! 그게! 그게 나랑 같이 말을 탄 이유가! 그냥 강도인 줄 알았더니!”
그러자 우리와 더불어 샌슨의 춤을 감상하던 여관 주인 레네즈가 딱하다는 듯이 혀를 찼다.
“소매치기를 당했구랴? 이런, 쯧쯧쯧. 조심하지 않고, 네리아라고 했소? 혹시 트라이던트의 네리아?”
“어? 그 여자를 아세요?”
레네즈는 다시 테이블을 닦기 시작하며 말했다.
“그 여자가 돌아왔군. 유명했지. 그런데 당신들 꽤나 실력이 있는 모양이지? 그 여자가 아양을 부리며 소매치기를 하는 일은 적은데, 혹시 당신들에 게 계속 말을 걸진 않았어요?”
운차이의 표정이 바뀌었다. 내 얼굴도 저럴 것이다.
“맙소사, 그럼 그 말싸움이……….”
이루릴이 요금을 치러주었다. 샌슨은 그야말로 쥐구멍을 찾고 싶다는 얼굴이었다. 이루릴은 미소지으며 말했다.
“저도 일행인걸요. 당연하죠. 그렇잖아도 이번엔 제가 지불하려고 했어요.”
그리고 이루릴은 자신의 방으로 갔다. 우리들도 너무나 피곤해서 방에 안내되자마자 침대에 바로 쓰러져버렸다. 그러나 우리들 남자 네 명이 있는 방에서는 곧 문제가 발생했다.
“으악! 그게, 그게 실력으로 안 되니까!”
우하, 허, 정말 놀랐다. 누워 있던 샌슨이 갑자기 벌떡 일어나서 절규한 것이다.
“으흐흐허흠! 흠, 흠!”
벌떡 일어났던 샌슨은 칼의 좀 높은 헛기침 소리에 쑥스러운 듯이 다시 드러누웠다. 칼이 언짢은 듯이 기침소리를 좀더 내고는 주위가 고요해졌다. 그리고 잠시도 지나지 않아,
“크아악! 그 괘씸한 것이!” “그만해!”
나는 베개를 집어던졌고, 옷도 갈아입지 않고 침대에 쓰러졌던 참이라 내 손엔 OPG가 그대로 있었다. 그래서 베개도 대단한 속도로 날아가 샌슨은 거의 턱이 돌 뻔했다. 내심 기절하기를 바랐는데 워낙 단련이 잘 된 샌슨이라 별 탈이 없었다. 샌슨은 투덜거리며 다시 침대에 누웠다.
그리고 간신히 잠이 들려 했을 때다.
“끄으응…… 끙. 우우우…… 으윽! 아드득.”
샌슨은 이제 침대에 머리를 박고 신음소리에 이 가는 소리 등을 마구 섞어서 내기 시작했고 그 소리는 머리카락을 쭈뼛 서게 만들었다. 그러자 운차 이가 악을 쓰기 시작했다.
“Kuuaaak! En Nhash harphe nyan un craemadol!”
우리가 그의 양 팔목을 침대 기둥에 묶어놨기 때문에 운차이는 샌슨에게 다가갈 수 없었다. 아마 팔이 묶이지 않았다면 달아나기보다 먼저 샌슨의 목을 졸라 죽일 태도였다. 나는 힘없이 엎드린 채 칼에게 물었다.
“칼, 저게 무슨 소리죠?”
“벌써부터 고문하는 것이냐………….’라는 뜻이네. 정말 고문이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