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래곤 라자 4권 – 제7부 : 항구의 소녀 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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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래곤 라자 4권 – 제7부 : 항구의 소녀 6화

6

며칠 만에 햇살이 따사롭다. 겨울 날씨치고는 의외로 좋은 날씨다. 아니, 늦가을이라고 해야 되나?

국왕님께 명예의 칭호도 받고, 떠들썩한 축하 파티에도 끌려다니고 나서, 그 다음날로 우리는 궁성을 빠져나왔다. 그날 아침에 우리에게 서류가 하나 날아왔기 때문 이다. 리핏 트왈리전 씨가 정중한 동작으로 건네준 그 서류에는 앞으로 한 달 동안 우리가 참가해야 하는 파티와 연설회, 음악회, 사냥 대회, 기타 등등의 사소한 사교 모임에서부터 국가 공식 행사까지가 좌르르 나열되어 있었다.

우리는 그것을 보자마자 머리를 내두르며 재빨리 짐을 챙겼다. 우리가 궁성에서 나가겠다는 말을 전하자 리핏 씨는 크게 놀란 모양이다.

“아니, 무슨 일이십니까?”

“예. 저희들은 급히 해야 할 일이 있어서 말입니다.”

“무슨 일이신데, 허어. 국왕 전하의 친구의 일이라면 곧 저의 일입니다. 말씀하십시오.”

국왕전하의 친구라. 꽤 출세했군. 칼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 이건, 예. 개인적인 일이라서요. 죄송합니다만 말씀드릴 수가 없습니다.”

“수도를 떠나야 되는 일입니까?”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다면 궁성 수비 대원들로 하여금 여러분들을 호위하도록………….”

“아뇨.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말씀드렸다시피 개인적인 일이라서요.”

리핏 씨는 안달복달했지만 ‘개인적인 일’이라는 명제는 모든 설명에 대한 완벽한 거부권으로 작용했다. 예의바른 리핏 씨는 무례하게 ‘개인적인 일’에 대해 설명을 요구할 수는 없었고, 따라서 그 일의 정확한 경중을 논할 수 없었고, 그래서 합리적으로 칼을 붙잡을 수가 없었고, 그래서 우리는 유유히 걸어나왔다. 하하하.

리핏 씨는 거의 울 듯한 얼굴로 정원까지 따라나와서 어떻게 전하를 뵙지도 않고 떠나느냐고 억지로 말렸지만 국왕의 형이자 왕자인 길시언이 나서서 ‘내가 그의 형 제로서 이분들과 함께 하오. 형제는 한 몸이니 전하께서 함께 하는 것과 마찬가지요.’라고 못박아 버리자 할말이 없어졌다. 편리한데? 그래서 우리는 완전히 굳어버린 리핏 씨를 뒤로하고는 정원을 가로질렀다.

데미 공주의 모습이 보였다.

데미 공주는 여전히 나무들과 꽃을 돌보고 있었다. 우리가 가까이 다가갈 때까지도 그녀는 전혀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는 손끝에 뭔가 자그만 꼬챙이 같은 것을 들고 있었는데 그 끝에는 부드러운 솜뭉치 같은 것이 달려 있었다. 그녀는 온몸의 신경을 집중시킨 채 그것으로 꽃을 건드리고 있었다. 뭐지? 벌들처럼 꽃가루를 끌어모으는 건가?

데미 공주는 잠시 후 이마의 땀을 닦다가 그제야 우리가 가까이 와 서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녀는 우리들에게 웃음을 지으려다가 우리들이 말에 올라타 있는 것 을 보고는 놀란 눈이 되었다. 기다란 다리가 보기 좋게 움직이면서 데미 공주는 우리에게 다가왔다.

“가세요?”

“예. 공주 전하.”

“아니…………, 어떻게 이렇게 빨리?”

“이틀이나 머물렀는데요. 이만 가봐야죠. 저희 일도 있으니까요.”

“아, 예.”

갑자기 데미 공주는 고개를 돌려 길시언을 바라보았다. 공주는 안타까운 시선으로 길시언에게 물었다.

“이젠 언제 올 거지?”

길시언은 빙긋 웃을 뿐 대답하지 않았다. 데미 공주는 한참 동안 길시언을 바라보았고, 그래서 주위에 있는 우리들이 조금씩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그때 데미 공주가 말했다.

“인사, 필요 없지?”

“응.”

길시언은 즉각 대답했다. 데미 공주는 환한 얼굴이 되더니 우리에게 고개를 숙여보이고는 다시 나무와 꽃들에게 돌아갔다. 우리는 잠시 얼떨떨한 얼굴로 길시언과 데미 공주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그러나 길시언도 더 이상 말하지 않고 걸어갔으며 데미 공주도 모든 관심을 꽃에 집중시키고 있을 뿐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별 말 없 이 길시언의 뒤를 따랐다.

칼은 말했다.

“공주님은 길시언을 퍽 좋아하시나 봅니다.”

“둘째오빠보다야 첫째오빠가 만만하고 좋겠죠. 특히 집 떠난 큰오빠는 짐승과 다를 바 없는…………, 지금은 하지 마! 에, 집 떠난 큰오빠가 애처로워서 그렇겠지요.” “예. 그녀를 위해서라도 궁성에 자주 들르시는 것이 좋겠군요.”

“모험가의 생활이라서.”

궁성 수비 대원들 역시 우리가 나가는 것을 보고 놀랐지만 그들은 들어오는 사람이 아니라 나가는 사람도 막아야 되는지 의아해했고, 게다가 길시언이 호령하자 즉 각 비켜났다. 그리고 우리는 궁성을 나왔다.

“이제야 좀 살 것 같군.”

칼은 바깥의 공기를 크게 빨아들이며 말했다. 샌슨은 슈팅스타의 고삐를 편안히 내려둔 채 빙긋이 웃으며 말했다.

“그렇습니까, 현명함의 기사님.”

현명함의 기사라. 픽. 저건 국왕 전하가 준 훈장에 새겨진 글귀였지. 칼은 말했다.

“그만하게, 퍼시발 군. 그런데 자네는 뭐였지? 기억도 안 나는군.”

“저요? 우하하. 진격의 기사랍니다.”

샌슨은 국왕이 내려준 명예의 칭호를 아주 무엄한 용도, 그러니까 우리끼리 시시덕거리는 용도로 사용하고 있었다. 아프나이델은 지혜의 기사라는 엄청난 칭호를 받 았고 길시언은 왕자라 칭호가 주어지지 않았다. 엑셀핸드도 노커라서 마찬가지였고. 그리고 나는…..

“이봐, 조숙한 기사!”

“그만두라는 칼의 말 못 들었어요, 밤바람의 레이디?”

네리아는 기분 좋은 모습으로 나를 바라보며 웃었다. 그녀도 원래의 옷차림으로 돌아와서는 마음 편한 자세로 에보니 나이트호크에 타고 있었다.

밤바람의 레이디라고? 나 원 참 다행히도 칼의 설명에 의하면 그 우스꽝스럽기 짝이 없는 칭호는 공식 서류에만 기록된다고 한다. ‘국왕이 그들의 충성에 대한 보답 으로 이러저러한 칭호를 하사하셨다.’ 정도로. 만일 닐시언 전하가 루트에리노 대왕처럼 전기를 쓸 만큼 위대한 업적을 쌓는다면 우리들의 칭호도 전기 작가들에게 엄청나게 인용될지 모른다는 불길한 단서가 붙어 있긴 했지만.

“루트에리노 대왕의 여덟 별처럼?”

“그렇다네. 네드발 군.”

엑셀핸드는 래셔널 셀렉션 위에 그럴듯한 자세로 탄 채 한 손으로 턱수염을 긁적거렸다. 그는 이제 완전히 자신을 드워프 최고의 기수라 믿고 있었고 그래서 래셔널 셀렉션을 타는 것을 전혀 주저하지 않았다. 물론 우리 대부분은 기수보다는 말이 똑똑해서 그럴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위대한 노커의 자존심을 생각해서 그 말은 하지 않았다.

그 위대하신 엑셀핸드는 느긋하게 말했다.

“어쨌든 궁성을 빠져나와 다행이군. 그 서류대로 계속 파티에 참석했다간 자칫했다면 내가 귀부인께 댄스 요청을 받을 뻔했으니.”

그 말에 나와 샌슨은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 푸하! 감미로운 음악에 맞추어 아리따운 귀부인과 엑셀핸드가 댄스를 춘다면, 그것 정말 봐줄 만할걸? 하지만 어제 봤 듯이 엑셀핸드는 절대로 댄스 요청을 걸지도 받지도 않았다. 우헤헤. 칼은 말했다.

“저도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조급하게 굴려는 것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쓸데없이 하루를 낭비했다는 느낌이 드는군요. 어쨌 든 다시 일에 착수하게 되었으니 기쁩니다.”

길시언은 빙긋 웃으며 놀리듯이 말했다.

“국왕 전하께서 명예의 칭호를 내리신 것이 쓸데없는 일이란 말입니까?”

칼은 차분하게 대답했다.

“영광스러운 일입니다만, 영광 이외엔 아무것도 없는 일이기도 하외다.”

그때 네리아가 말했다.

“그래도요. 난 쓸데없는 일이 아니었어요.”

그렇게 말하면서 네리아가 가리킨 것은 에보니 나이트호크의 등에 매달린 상자였다. 그 상자에는 네리아의 그 아리따운 드레스들과 구두, 장갑 등이 들어 있었다. 데 미 공주는 그 옷들을 완전히 네리아에게 줘버린 모양이다. 샌슨은 피식거리며 ‘너도 여자라고 옷이 그렇게도 좋으냐?’ 등의 말을 꺼내다가 네리아의 손톱에 얼굴이 완 전히 밭고랑처럼 바뀔 뻔했다. 다행히 말에 타고 있어 네리아는 빠르게 접근하지 못했다. 그녀는 입술을 삐죽거리며 말했다.

“헤엥! 돈이 되잖아?”

“서, 설마 팔아먹으려고?”

“그럼? 그렇지 않으면 저거 뭐에 써?”

샌슨은 말도 하기 싫다는 표정을 지었고 아프나이델은 약하게 웃으며 말했다.

“네리아 양. 그 옷을 입고 계실 때 퍽 아름다웠습니다. 앞으로도 그 옷을 간수하시며 간혹 그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시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네리아는 눈이 동그래지더니 아프나이델에게 다가갔다. 앰뷸런트 제일에 타고 있는 아프나이델의 얼굴에 경계심이 떠올랐다.

“당신, 옷이 마음에 든단 말인가요, 아니면 내가?”

“무, 물론 네리아 양이…………….”

“그럼 옷 핑계 대지 말고 순순히 나의 매력에 사로잡혔음을 인정해요.”

아프나이델은 입을 쩍 벌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본전도 못 뽑으시는군.

우리가 유니콘 인으로 돌아오자 말구종은 다시 한번 입을 좌악 벌렸다. 저번에 길시언이 황소를 타고 나타난 이후로 두 번째로군. 말구종은 차라리 처량한 음성으로 말했다.

“황소의 기, 기사에 이어 드, 드워프 기수까지………!”

엑셀핸드는 아주 우아하게 말에서 뛰어내리더니(난 그가 말에서 내리기 전에 이를 악물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민첩한 손놀림으로 고삐를 말구종에게 건네었다. “이봐, 말먹이에 신경 쓰고 잘 씻겨주도록.”

드워프의 노커는 그렇게 아주 익숙한 기수처럼 말했고 우리 모두는 고개를 돌리고 웃음을 감추었으나 말구종은 얼빠진 얼굴로 고삐를 받아들었다. 우리가 들어서자 여관 주인 리테들은 그만 웃어버렸다.

“당신들은 도대체 방을 어떻게 쓰는 거요?”

하긴 우리는 사흘 전에 해약하고는 다시 돌아왔군. 사흘 전, 그러니까 할슈타일 후작의 집을 털던 날 밤이군. 허어. 그게 사흘 전이었나? 엄청난 시간이 흐른 것 같은 데 겨우 사흘이군. 여관 주인은 어쨌든 다시 들러줬으니 고맙다는 표정으로 우리를 안내해 주었다. 여관의 하인들과 하녀들도 샌슨과 길시언이 돌아오니 기쁘다는 표 정이었다.

우리가 각자의 방에 짐을 던져넣고는 홀로 내려오자 리테들은 맥주를 가져다주면서 질문했다.

“사흘 동안 뭣들 하신 거요?”

칼은 웃으며 대답했다.

“온갖 일이 다 있었습니다. 허허.”

“그래요? 하하. 어쨌든 말이오. 전할 소식이 있는데.”

“전할 소식이오?”

“그렇소. 당신들이 다시 여기 들르면 전해 주라더군. 그랜드스톰의 수련사들이 찾아와서 그랜드스톰에 꼭 좀 와달라고 그러던데요? 당신들은 도대체 어떤 모험가들 이기에 귀족들이 끝없이 찾아오고 그랜드스톰에서도 당신들을 목메어 기다리죠?”

“우리? 아마도 마법의 가을에 들어선 여행객들인 모양이오.”

그거 정답인 것 같네. 리테들은 그러다가 갑자기 자기 머리를 딱 치면서 말했다.

“아! 그리고 웬 남자가 당신들에게 전해 달라고 편지를 남겨두었소.”

그리고 리테들은 어딘가로 달려가더니 곧 접은 종이 한 장을 들고 왔다. 칼은 그것을 받으며 물었다.

“누구라고는 하지 않았습니까?”

“예. 그저 그것만 전해 달라고 하던데요?”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칼은 편지를 펼쳤다. 우리는 칼을 멀거니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에 칼의 눈빛이 이상해지는 것을 곧바로 알 수 있었다. 칼은 한숨을 쉬며 그 편지를 옆으로 돌렸다. 차 례대로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의 얼굴이 이상하게 바뀌었다. 엑셀핸드는 콧방귀를 뀌었고 아프나이델은 한숨을 쉬며 부르르 떨었다. 네리아는 골똘한 표정으로 바라 보았고 샌슨은 씩씩거렸다. 길시언이 피식 웃어버리고 나서 마침내 내게까지 그 편지가 돌아왔다.

간단한 글이 적혀 있었다.

‘조만간 만나뵙지요. N.H.’

“낭만주의자는 못 말리겠군.”

길시언은 여전히 피식거리며 말했지만 칼은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분노한 낭만주의자만큼 위험한 것도 없습니다. 거참. 공공연히 우리에게 이런 편지를 남긴 것을 보니 아직은 체포당하지 않은 모양이구려.”

길시언은 고개를 끄덕였다.

“쉽게 체포당하지는 않겠지요. 그래도 길드의 마스터였고 국가 전복을 꾀해 보았던 사람이니까. 몸조심하도록 하십시다. 그외엔 딱히 할 일도 없으니.”

“하긴 그렇군요. 그럼, 모두들 그랜드스톰으로 가볼까요?”

하이 프리스트는 피로한 표정이었다.

“역시 당신들이었군. 할슈타일 백작의 집에 침입한 것이……………”

하이 프리스트는 며칠 새에 훨씬 늙어버린 듯한 얼굴이었다. 지금의 이 모습은 피로한 나머지 감춰져 있던 원래의 노쇠한 얼굴이 드러나는 것처럼 보였다. 칼은 안쓰 러운 얼굴로 말했다.

“심려가 크셨겠군요.”

하이 프리스트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허허. 투미했구려. 그가 그런 야욕을 가지고 있을 줄은 내 미처 몰랐소.”

그라는 것은 넥슨을 말하겠지. 칼은 말했다.

“궁성에서 추궁이 컸겠습니다.”

“그랬소. 하지만 괜찮아요. 그는 재가 프리스트였을 뿐 그의 음모는 우리와 아무런 상관이 없으니까. 물론 에델브로이의 이름으로 파견된 그의 밀사라든지 하는 문 제가 있기는 하지만, 괜찮소. 그랜드스톰의 이름이 하루 아침에 생긴 것은 아니니까.”

“예. 국왕 전하께서도 귀신전의 충만한 은혜로움을 잘 이해하시고 계실 겁니다.”

칼의 말에 하이 프리스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한숨을 쉬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우리들도 덩달아 하늘을 보았다. 먹구름 낀 하늘의 모습과 그 아래 어느 때보다 무겁게 느껴지는 그랜드스톰의 모습이 보였다.

“귀하들의 수탐은 어떻게 되셨소?”

하이 프리스트는 갑자기 물어왔다. 칼은 흠칫하다가 말했다.

“아직……. 엉뚱하게 일어난 넥슨의 일 때문에 전혀 진척이 없습니다.”

“그렇겠구려. 흐음. 어쨌든 계속 그 일을 하실 테지요?”

“물론입니다. 그래서 임펠리아에서 도망나왔습니다.”

칼의 말에 하이 프리스트는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는 음울한 눈으로 테이블을 내려다보더니 말했다.

“좋지 않은 시기요. 전쟁은 너무 길어 민심은 황폐한데 위기는 가까워지고 있소. 넥슨의 일은 다행히도 여러분이 있었기에 원만하게 처리가 되었다 하지만 그의 행 동이 또 다른 야심가들에게 동기가 될지도 모르는 일이오.”

하이 프리스트의 말에 칼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당신들을 재촉할 수밖에 없소. 크라드메서의 드래곤 라자를 조속히 찾아주시기 바라오. 이 황량한 시기에 대륙의 평화를 위해 애쓰는 자들이 있다는 소식은 만인에 게 희망을 줄 것이오.”

“알겠습니다. 그리고・・・・・・ 그랜드스톰의 명예 회복은 어떻습니까.”

칼의 말에 하이 프리스트는 움찔했다. 칼은 선한 얼굴 표정으로 하이 프리스트를 바라보았다.

“저희는 그랜드스톰의 의뢰로 이 일을 받아들였습니다. 위기를 짐작하신 것도 하이 프리스트고, 저희들을 조직하여 그 드래곤 라자를 찾게끔 하신 분도 하이 프리스 트입니다. 넥슨 휴리첼의 일 때문에 그랜드스톰이 입은 피해를 생각하자면…….”

하이 프리스트는 멀뚱히 칼을 바라보다가 곧 미소띤 얼굴로 대답했다.

“관심 없소.”

“예?”

“그랜드스톰의 명예는 우리가 온전히 에델브로이를 섬김으로써 획득하는 것이오.”

“잘 알겠습니다만………….”

“아니, 그걸로 족하오.”

하이 프리스트는 단정짓듯이 말했고 칼은 고개를 끄덕였다. 두 분들의 말은 항상 어렵군. 난 찻잔 받침을 만지작거렸다. 하이 프리스트는 짐짓 기운찬 어조로 말했 다.

“자, 앞으로의 계획은 어떻게 되시오?”

“송구스러우나, 계획이라는 것이 없습니다. 여기저기 알아는 보았습니다만 붉은 머리 소녀에 대한 정보는 나타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셨소? 흠. 그렇다면 현재로서는 손을 놓고 있는 셈이겠구려?”

“예……. 죄송합니다.”

“괜찮소. 나는 믿어요. 당신들만이 그 소녀를 찾아낼 것이오. 나는 변함없는 신뢰를 보내오. 그런데, 내 불현듯 한 가지 계책이 떠올라서 말인데.” “계책이라고 하셨습니까?”

“어쩐지 엉뚱한 생각이오만, 아프나이델 씨도 여기 오셨으니까………….”

아프나이델은 놀라서 테이블을 짚으며 말했다.

“예, 예? 저 말씀이십니까?”

“그래요. 내 궁금한 것이 있어 아프나이델 씨에게 조언을 요청하오만. 내게 생각이 하나 있는데 그 가능성을 좀 말씀해 주시겠소?”

“어, 저, 전 보잘 것 없는 초보 마법사………….”

엑셀핸드는 그 말을 듣자마자 고함을 빽 질렀다.

“시끄러워! 자네가 뭐라 해도 저 휘청거리는 신의 지팡이인 다락 귀신보다는 마법에 대해 잘 아니 걱정 말아. 이봐, 다락 귀신. 어서 말해 봐라!”

아프나이델은 몸둘 바를 몰라했고 하이 프리스트는 엑셀핸드의 말에 미소를 지었다.

“당연한 말씀이오, 노커여. 그럼 묻겠소. 마법사들에게는 패밀리어라 불리는 친구가 있지 않소?”

아프나이델은 뜻밖의 질문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예? 예. 그렇습니다.”

“당신도 있소?”

물론 있지. 나와 샌슨이 동시에 약간 징그러운 미소를 지었고 아프나이델은 겸연쩍은 얼굴로 말했다.

“예. 그렇습니다. 제 패밀리어는 바, 박쥐입니다만.”

“아주 아리따운 이름을 가지고 있는.”

샌슨이 아프나이델의 말에 주석을 달자 모두들 킬킬거리기 시작했다. 하이 프리스트는 의아한 표정이 되었다가 말했다.

“그런데 말이오. 독수리도 패밀리어로 가능합니까?”

아프나이델은 놀란 얼굴로 말했다.

“독수리요? 천만에요, 불가능합니다. 독수리는 새들의 제왕입니다. 한낱 인간의 마법사에게 그 몸을 의탁할 존재가 아닙니다.”

“그럼 매는 어떠하오?”

하이 프리스트는 열성적인 얼굴로 질문했다. 아프나이델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글쎄요. 매는…………. 아! 하이 프리스트께서는………….”

아프나이델은 알아차렸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하이 프리스트는 말했다.

“말해 보시오.”

“매나 독수리처럼 눈이 날카로운 새들을 날려보내 붉은 머리 소녀를 찾게 한다. 맞습니까?”

“그렇소. 그게 내 생각이오.”

“오오, 그건 말이 될 듯한데요?”

칼도 밝은 얼굴이 되었다. 그러나 아프나이델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불가능합니다.”

“어째서 그러하오?”

“전설적인 대마법사 핸드레이크라도 그건 어려울 겁니다. 만일 바이서스 전체를 매의 눈으로 주시하려면 매가 수백 마리는 필요할 겁니다.”

“아니, 바이서스에는 도시의 숫자가 그렇게 많지 않아요. 각 도시마다 한 마리의 매의 눈으로도 충분히 수탐이 가능할 것으로 생각되는데?”

“매 한 마리가 하나의 도시를 관찰한다라…………. 물론 그 매는 하늘에서만 볼 수 있을 겁니다. 확실성을 기하기 위해서는 며칠을 계속 관찰해야겠지요. 문제는 마법사 의 패밀리어라 해도 굶주리면서 관찰 활동을 계속할 수는 없습니다. 게다가 마법사는 한 번에 하나의 패밀리어만을 가질 수 있습니다.”

“하나의? 그렇다면……………”

“예. 그 방법을 시행하려면 수백 명의 마법사가 필요해지겠지요. 그 방법이라면 차라리………….”

갑자기 아프나이델의 입이 크게 벌어졌다. 우리는 놀란 눈으로 아프나이델을 바라보았다. 아프나이델은 주먹으로 자기 손바닥을 딱 내리치며 말했다.

“엘프!”

“무슨 말씀이오?”

모든 사람을 대표해서 하이 프리스트가 다급하게 질문했다. 아프나이델은 흥분된 목소리로 말했다.

“마법사의 패밀리어는 하나뿐입니다. 하지만 엘프는 모든 생물의 친구입니다. 겨우 매 한두 마리가 아니라 모든 날짐승, 길짐승들에게 부탁할 수 있습니다! 바이서 스 전역의 동물들에게 부탁할 수 있겠지요! 그런데 우리는 엘프를 한 명 알지 않습니까?”

“세레니얼 양 말씀이십니까?”

칼이 말했다. 아프나이델은 흥분해서 손짓까지 해가며 말했다.

“그렇습니다. 이루릴 양은 엘프고 따라서 무수한 생물들에게 부탁할 수 있을 겁니다. 물론 그건 부탁이니만큼 마법사의 패밀리어처럼 확실한 종속 관계에서의 추적 은 될 수 없겠지만 그대신 이루릴 양은 셀 수도 없이 많은 동물들에게 부탁할 수 있을 겁니다!”

맞아 맞아. 이루릴은 칼라일 영지에서 까마귀들과 이야기를 나누었고 우리 말들하고는 항상 이야기를 나누었지. 그래. 누가 뭐래도 지금 엑셀핸드가 드워프 최고의 기수라는 이름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이루릴이 래셔널 셀렉션을 잘 길들였기 때문이겠지. 아프나이델은 칼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루릴 양은 언제 돌아온다고 하셨습니까?”

칼은 잠시 손가락을 꼽아보았다.

“세레니얼 양은 2주를 기약하고 출발하셨는데, 에, 오늘이………….”

“열흘째예요. 그러니까 나흘 안에 돌아오겠는데요?”

칼은 기쁜 얼굴로 말했다.

“그런가? 그렇다면, 음. 세레니얼 양이 돌아오면 그분께 물어보도록 합시다. 흠. 정말 괜찮은 계획인 것 같습니다. 만일 날짐승들을 모두 우리의 친구로 할 수 있다면 수색이 훨씬 용이해지겠군요.”

하이 프리스트는 만족한 표정을 지었다. 음. 정말이네. 새들이 날아다니며 붉은 머리 소녀를 찾는다면야 사람이 찾는 것보다는 훨씬 빠르겠지. 그러나 샌슨이 머뭇거 리며 말했다.

“어, 저, 그런데 크라드메서의 웨이크닝은 얼마나 남았을까요?”

우리는 모두 아프나이델을 바라보았다. 아프나이델은 당황해서 말했다.

“제가 전에 한 달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이제 3주쯤 남았을까요?”

“그럼 정말 시간이 촉급하군요. 세레니얼양이 그런 도움을 주고, 그리고 그 소녀를 발견한다 하더라도 그 소녀를 다시 찾아서 갈색 산맥으로 데려가려면…………, 휴우. 그 소녀가 어디서 발견되는가가 문제의 관건이 되겠군요.”

“그렇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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