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을 빼앗긴 여섯 사람이 미쳐 날뛰고 있었다. 두 여자는 얼굴 이 일그러진 채 네 남자가 팔을 비틀어 묶어 놓고 천장에 매달고 범하는데도 실성한 듯 웃고만 있었다. 그러나 한 남자만은 환령 술로 몸이 반 이상 제압된 상황에서도 굴하지 않고 버티고 있었다. 박 신부가 보았다는 일곱 번째의 남자인 듯했다. 그는 눈물 을 흘리고 기도를 목이 터져라 외치며 나머지 남자들을 떼어 내 려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두 명의 여자 중 하나가 그의 연인인 듯했다. 종국엔 날카로운 돌을 깨어 들고 손에서 피가 흐르는 것 도 아랑곳 않고 네 명의 남자들을 내리쳐 쓰러뜨리려 했으나, 이미 귀신이 된 네 남자는 신경도 쓰지 않고 제 볼일만 보고 있었다.
볼일을 마친 한 남자가 실실 웃으며 거의 실신한 일곱 번째 남자에게로 다가왔다. 눈에서 붉은빛이 뱀 혓바닥처럼 번득이 고 있었다. 다가온 남자는 뾰족한 큰 돌로 쓰러진 남자의 뒤통수를…………….
악몽과도 같은 광란이 지나고 아까도 현암 일행을 습격했던 돌비가 날아들기 시작했다. 여섯 명의 남녀, 아니 이미 혼을 빼 앗긴 인형들은 헤벌어진 미소를 띤 채로 온몸을 돌로 두들겨 맞 고 쓰러져 갔다.
“으으, 이 마귀들아!”
준후는 치를 떨었다. 그 나이에 이미 못 볼 일을 많이 보았지 만 이렇게 지독한 광경을 본 적이 없었다.
현암은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그의 눈에서 분노가 일렁이더 니 날카롭게 뻗어 나갔다. 월향을 쥔 오른손에 피가 와락몰리며 상처도 없는데 손끝에서 피가 배어 나와 흘렀다. 주인의 피 맛을 본 월향이 길게 울었다.
박 신부의 뇌리에는 악령이 들려 시퍼렇게 얼굴이 일그러져 가던 미라의 모습이 떠올랐다. 미라는 악령에 들려 비죽하게 이 빨이 솟아나는 입으로 울면서, 정체를 알 수 없는 다른 자의 음 성이 간간이 섞여 들리고 있었지만, 의사 선생님 날 살려 달라 고, 살릴 수 없으면 빨리 죽여 달라고 울부짖었다. 박 신부가 의 사의 길을 버리고 오직 엑소시즘을 위한 신부가 되게 했던 그때 의 기억, 너무도 무능력했고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자신, 그리 고 분노로 이어졌던 그 후 십칠 년의 세월이 주마등처럼 훑고 지 나갔다.
“더 지체 말라! 저놈들은 너무 많이 봤다! 모조리 죽여버렷!”
우두머리 방사의 귀신이 소리를 질렀다. 나머지 다섯의 요귀 가 무기를 휘두르며 달려들었다.
현암의 입에서 길게 휘파람 소리가 흘러나온 순간, 월향의 대 답과 함께 검기가 넉 자를 뻗어 나갔다. 필생의 공력이었다. 준 후의 몰아 쥔 작은 두 손에서 브라흐마의 노란 기운과 인드라의 번개가 맑은 소리를 내며 합쳐져 흰 번개를 만들며 눈부신 섬광 을 뿜기 시작했다. 박 신부의 오라 막도 장대한 합창처럼 퍼져 갔다.
“현암군! 준후야! 힘을 모아 보자! 퇴마진(魔陣)을!”
박 신부의 오라가 준후의 등으로 밀려갔다.
현암이 몸을 날렸다.
준후의 일갈과 함께 형언할 수 없는 섬광이 양손에서 뻗어 나가 월향의 끝에 엉겼다.
순간, 월향의 검기가 영롱한 흰빛을 띠며 여섯 자를 뻗어 나갔다.
“타핫!”
방 안을 가득 채운 검기가 벽이며 기둥을 구별 없이 가르고 지 나가면서 두 개의 기둥이 쓰러지고 벽이 터져 나갔다.
다섯 귀신들은 힘 한번 써 보지 못하고 폭죽처럼 터져 버렸다. 그리고 둘은 김빠진 풍선처럼 뒤로 퉁겨 나다가 팍 소리를 내며 먼지처럼 기화되었다.
현암은 땅에 풀썩 쓰러졌다. 선혈이 왈칵 몰려 나왔다. 퇴마 합벽은 완벽했지만 그 충격을 그대로 받아 넘긴다는 것은 현암 의 몸으로는 아직까지 무리였다. 기혈이 들끓고 눈앞에 노란 동 그라미들이 아른거리며 귀에서 웅웅거리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월향이 슬픈 듯 울었다. 현암은 혀를 깨물며 정신을 잃지 않으려 애썼다. 그러나 몸을 조금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 준후도 무리하 게 힘을 쓴 탓으로 얼굴이 백짓장처럼 희어져 있었다. 입이 반쯤 벌어지고, 헉헉거리는 호흡에는 단내가 풍겼다. 준후가 힘을 잃 고 휘청거리자 그래도 제일 형편이 나은 박 신부가 감싸 안았다.
“신부님, 조, 조심・・・・・・ 아직 하나가, 하나가…….”
준후가 정신을 잃자 박 신부는 고개를 들었다.
눈앞에 현암이 쓰러져 있었고, 방사의 영이 징그러운 미소를 띤 채 서 있었다.
“흐흐흐……. 이젠 기력이 없는가? 꽤 대단한 놈들이구나.”
녀석의 둘레에는 투명한 핏빛 막이 쳐져 있었다. 붉은색 막이 풍선처럼 부풀어 갔다.
박신부는 준후를 안은 채 쓰러져 있는 현암에게로 가서 두 사 람을 몸으로 덮었다. 놈은 분명 주술을 쓰고 있을 터인데, 현암 이나 준후가 의식을 잃은 상태에서 그에 대응할 방법이 뭔지 박 신부로서는 알 수 없었다. 박 신부는 이를 악물고 성경을 암송하 기 시작했다.
박신부의 기도력에 의한 오라 막이 떨리기 시작했다. 놈의 핏 빛 기운이 밀어내는 힘은 지독했으며, 어떻게 알았는지 사악하 게도 박 신부의 죄의식을 들추어 마음의 평정을 잃게 만들었다. 네가 미라를 죽인 거다. 넌 그때 아무것도 못했지. 낄낄낄…….
‘아니다. 아냐!’
네 목숨을 줄 수 있었는가? 있었는가? 있었는가?
박 신부는 몸 안의 힘이 터져 버리는 듯한 기분이었다. 어느새 잡념이 든 순간 놈의 기운이 박 신부의 오라를 밀어내고 등 쪽에 서 덮쳐들고 있었다. 박 신부의 이가 우지직 소리를 내며 조금씩 부서져 나갔다. 그때 준후의 가슴에서 무엇인지 떨어졌다. 아까 두 여자의 혼을 가둔 부적이었다.
박신부는 간신히 손을 뻗쳐 부적을 잡고 반으로 찢었다.
순간 핏빛 기운이 떨리는가 싶더니 위력이 뚝 떨어졌다. 박 신부는 고개를 들었다. 방사의 영은 허둥거리며 뒷걸음을 치고 있었는데, 그 앞에는 일곱의 흰 영들이 서 있었다.
하얀 일곱 영의 우두머리는 일곱 번째 남자의 영이었다. 이제 는 아름다운 모습이 된 한 여자의 손을 잡고 있었다. 일곱 번째 의 남자, 그 사람은 정신력이 강해서였던지 제대로 봉인되지 않 았던 모양이다. 현암의 손에 장쇠라는 영이 소멸되고 난 후 기회 를 엿보고 있다가 연인의 영과 다른 친구들의 영이 풀려나자 그 들을 이끌고 도우러 나선 듯했다.
그들은 소리를 내지 않았으나 그들이 의도하는 바를 박 신부는 느낄 수 있었다.
너는 우리의 영을 파멸시키고…………….
인륜을, 천륜을 저버리게 했으며…………….
영원히 암흑 속에 가두려 했다………….
만약 저 아이의 자비심과………………
사랑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아마도…………
우리를 구원해 준 저들에게서 손을 떼라…………….
악행을 멈춰라…
“크하하핫! 이 미천한 것들이! 수백 년 동안 공을 닦아 온 내 게 감히!”
방사의 영이 무섭게 웃으며 사방으로 손을 휘젓자 무서운 기 의 바람이 뻗어 나왔다. 흰 영들은 주춤거리며 물러섰다.
악령의 힘은 대단했다. 희생자의 영들은 간신히 버티고는 있었으나 금세 밀려 흩어져 버릴 것 같았다.
“신부님, 신부님…………..”
현암이 가냘프게 중얼거렸다.
“응, 괜찮은가? 현암 군!”
“신부님, 놈은…… 색계를 범한 도사이니………… 그쪽에 원한이 있는 월향을…………월향이라면…………”
박 신부의 눈에 땅에 떨어진 월향이 보였다.
“월향의 원한과………… 일곱 영들…………… 신부님의 힘이 합하면 아마…….”
박 신부는 지체하지 않고 월향을 집어 들었다. 선한 영이긴 하 지만 월향도 원한령이 봉인된 검인지라 박 신부의 영력과 약간 의 충돌을 일으켜 작은 비명 소리와 함께 불꽃이 튀었다. 박 신 부는 손이 데는 것도 아랑곳 않고 월향을 들어 방사의 영에게로 던졌다.
“캐애애액!”
“꺄아아악!”
방사의 영의 가슴에 꽂힌 월향이 길게 울고 방사의 영도 무서운 비명을 질렀다. 일곱 영들이 박 신부의 의도를 안 듯 방사의 영에 달려들어 덮쳤다.
“캐캐액! 포기할 수 없다! 수백 년을 기다렸다!”
방사의 영은 시커먼 기운을 먹구름처럼 흩뿌리며 일곱 영을 튕겨 내려 했다. 박 신부가 마지막 남은 힘을 오라에 실어 일곱 영의 뒤를 받쳤다. 비등비등한 두 힘・・・・・・ .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 록 박 신부의 기력이 떨어져 갔다.
순간 뒤에서 느닷없이 흰 번개가 쏘아져 와서 박 신부와 일곱 영의 기운에 합세했다. 합쳐진 힘은 순간적으로 검은 기운을 압 도하기 시작했다.
“캐애애액!”
길게 끄는 비명과 함께 일곱 영은 방사의 영을 덮쳐서 땅속 깊숙이 사라져 갔다.
잠시 헐떡거리던 박 신부는 뒤를 돌아보았다.
현암이 준후의 등에 손을 짚고 뒤로 쓰러져 누워 있었고, 준후가 팔꿈치로 상체를 받치고 있었다.
“우리도 아직 죽지는 않았다구요. 헤헤헤..”
준후는 웃다가 꼬꾸라지더니 그대로 코를 골기 시작했다. 박 신부도 벌렁 드러누웠다.
측백 산장이 타오르고 있었다. 새벽이슬을 온통 머금은 측백나무 숲에서도 더 이상 요사스런 기운이 느껴지지 않았다.
“자네, 그러다 방화죄로 걸리면 어쩌려고?”
박신부가 손을 탁탁 털고 있는 현암에게 농담으로 말했다.
“까짓것 몸으로 때우죠, 뭐. 하하하!”
“그나저나 나는 큰 죄를 지었네. 귀신이 깃든 물건을 이용해서 사마를 퇴치하다니. 대체 누가 이 가련한 신부의 영혼의 죄를 덜 수 있을는지…………….”
“아니, 귀신이 깃든 물건이라뇨? 월향 말인가요? 흐흠…… 그러면 신부님도 지옥에서 몸으로 때워야겠군요. 하하하…………… 현암이 대꾸를 하자 박 신부도 무람없이 따라 웃었다. 현암이 문득 웃음을 그치더니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나저나 계속 이런 놈들만 나온다면 전 퇴마사 사양하겠습 니다. 이번엔 진짜 죽는 줄 알았어요.”
셋은 누구의 눈에 띄지 않는 곳으로 하산하기 시작했다. 사람 들이 알게 되어 좋을 일이 아니었다. 준후는 뒤를 돌아보았다. 측백 산장은 불길에 싸여 있었으나 이제는 험악하게 보이지 않 고 오히려 밝고 따스하게 보였다. 불길 속에서 일곱 명의 다정한 얼굴이 보였다. 그들은 셋의 뒷모습을 보며 작별 인사를 하는 듯 했다. 특히 연인이었던 남녀의 얼굴이 준후에게 따뜻한 미소를 보내고 있었다.
“극락왕생하세요 ・・・・・ 누나들, 형들……”
“준후야, 뭐 해? 어서 가자.”
준후는 몸을 돌렸다. 시간이 지나면 세상은 이제 이 사건을 미 결 사건으로 잊어버릴 것이나, 이 세 사람과 구원을 받은 영들은 결코 잊지 않을 것이다. 또 인간과 착한 영들을 위해서도 이 퇴 마행은 계속되어야 할 것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