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마록 세계편 1권 2화 – 비어 있는 관 2 : 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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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마록 세계편 1권 2화 – 비어 있는 관 2 : 묘지


묘지

박신부는 앰뷸런스에 태운 남자의 유체가 앞을 볼 수 있도록 간이침대를 옆으로 세우게 했다. 승희는 내내 속이 뒤틀렸지만 군말 없이 박 신부를 거들었고, 장 박사와 얼굴 창백한 검사가 같이 앰뷸런스에 탔다.

“이제 어떻게 하면 되지?”

장박사가 물었다. 박 신부는 짧게 대답했다.

“달려, 달리게.”

“어디로? 어떻게 가야 한다는 건가?”

“이 사람이 눈짓으로라도 가르쳐 줄 걸세. 이제 서서히 제정신을 찾는 것 같아.”

박 신부는 남자의 유체로 기도력을 계속 보내 주고 있었으나 갈기갈기 찢긴 남자의 몸에서 점차 기운이 빠져나가는 것 같았 다. 앰뷸런스는 사이렌 소리를 요란하게 울리면서 대로를 미친 듯 내달렸다. 장 박사가 한숨을 쉬었다.

“미치겠군.”

“미치지 말게.”

“내가 미쳐서 환상을 보는 편이 낫겠어! 그럼 고맙겠다구! 이 가엾은 사람은 도대체 어떤 일을 당했기에…………….”

박신부가 딱 잘라 대답했다.

“내가 말하지 않았나. 좀비가 된 것이 틀림없다고.”

“좀비? 나는 모르겠어. 내가 쌓아 온 의학적 지식, 아니 인류 의 이성적 사고에 반하는 일이야! 어째 이런 일이…….”

“인류의 이성적 사고라. 인간이 아는 것이 얼마나 된다고 생각 하나? 하물며 알고 있는 과거의 지혜들조차 자꾸 잊혀 가고 있는 형편이네.”

장 박사가 다시 뭐라 말을 하려 했지만 박 신부는 화제를 바꿨다.

“혹시 이 안에 카폰이 달려 있나?”

장박사는 잠시 앞자리에 앉아 있는 얼굴 창백한 남자의 눈치를 살폈다. 남자는 고개를 끄덕여 보였고 장 박사가 대답했다.

“있나 보군.”

박 신부는 승희에게 눈짓을 했다. 현암과 준후에게 연락을 하라는 신호였다.

“차를 타고 우리가 가는 길로 따라오라고 해 주렴. 계속 연락한다고…………….”

승희가 끄덕이며 좁은 가운데 몸을 비집고 앞좌석으로 갔다. 앞좌석에 앉아 있던 얼굴 창백한 남자가 뒤쪽으로 옮겨 왔다. 남 자가 말했다.

“지금 저 남자의 묘지로 가게 될 것이 확실합니까?”

박 신부는 고개를 끄덕였다. 남자는 조용히 한숨을 쉬면서 언 제꺼내 물었는지 마치 담배 연기로 동그라미를 만들어내듯 입 에 문 생담배로 그런 흉내를 내고 있었다. 승희는 아직 현암과 통화를 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근처의 지형지물을 말하는 소리 가 들렸다. 남자가 가짜 담배 피우기를 하면서 조용히 물었다.

“그러면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박신부는 잠시 입을 다물고 있다가 대답했다.

“안식에 이르겠지요.”

남자도 담배를 치우고 한숨을 쉬었다.

“신부님에 대한 말씀은 전혀 듣지 못했습니다. 장 박사님 말씀을 듣고 혹시나 해서 연락을 취해 주십사 부탁드렸습니다. 그런 데 직접 뵙고 보니 정말 대단하십니다. 신부님의 몸에서 나는 광 채는 그림에서나 본 성인(聖人)들의 그것과 흡사하군요.” “나는 교단에서 파문당한 몸이요. 성인이라니 당치 않습니다.” 

“신부님의 능력・・・・・・ 놀랍습니다. 사실 저도 이번 일을 맡게 되면서 얼마나 당혹스럽고 놀랐는지 모릅니다. 이렇게 전후를 말씀해주신 분은 신부님이 처음입니다.”

남자는 잠시 말을 끊었다.

“제 인사를 못했군요. 저는 이번 일을 맡은 검찰 특수반의 담 당 검사로 백호라고들 부릅니다. 신부님께서도 그렇게 불러 주 시면 저로서도 편하겠습니다.”

“백호요? 허연 호랑이 말입니까?”

“하하하.”

백호는 가볍게 웃었다. 서로 얼굴을 마주하고 나서 내내 굳어 있던 표정이 변한 것은 지금이 처음이었다. 험악한 일을 하는 직 업적 특성 때문인지 평소 굳어 있는 그였지만 웃을 때는 퍽 순진해 보였다.

“제 방이 100번째 방, 즉 백 호실입니다. 단지 그거죠. 그런데

어떻게 하다 보니 별명은 그런 우람한 것이 되고 말았군요. 하하하.”

박 신부도 미소를 지었다. 처음엔 위압적일 것 같고 와일드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만나고 보니 소탈하고 마음 좋은 사람 인 듯했다. 그런데 방의 번호가 100번이라면 검사들 중에서도 상당한 지위에 있는 사람일 터였다. 이것저것 궁금한 것이 많았 지만 박 신부는 굳이 알고 싶지 않았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것 또한 분명 무슨 이유가 있을 것 같았다.

백호와 이야기를 나누는 중간에도 박 신부는 남자의 눈치를 살피기에 여념이 없었다. 남자의 몸은 이제 조금씩 오그라드는 것 같았고 떨림 현상이 더더욱 심해지고 있었다. 주술력이 한계 에 다다르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박 신부는 남자의 상태에 따 라 조금씩 기도력을 조절해 갔다. 기도력을 너무 강하게 보내면 남자의 몸을 지배하고 있는 주술력이 완전히 파괴되어 금방 시 체로 변해 버릴지도 몰랐고, 또 기도력을 주입하지 않으면 발작 을 일으키거나 의식을 잃을지도 몰랐다. 승희는 계속 남자의 속 마음을 주시하면서 남자의 눈에 비치는 대로 간간이 운전사에게 방향을 지시해 주었다.

“왼쪽! 왼쪽 길로 가세요.”

차가 방향을 틀었다. 박 신부는 창 너머로 사이드 미러를 힐끗 보았다. 세대의 차가 따라오고 있었다.

“누가 따라오는군요.”

백호가 말했다.

“제 부하들입니다.”

박신부는 그러려니 하면서 다시 고개를 숙였다. 백호가 물었다.

“그런데 전화하신 곳은 어디입니까? 동료분입니까?”

“꼭 있어야 할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저보다 훨씬 낫지요.” 백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입에 물려 있는 담배가 빙글 돌았다. “아, 오늘 같아서는 정말 한 대 피우고 싶어지는군요. 벌써 여섯건이나…….”

박 신부는 백호를 쳐다보았다. 백호는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답했다.

“이왕 이렇게 된 것 신부님에게 탁 털어놓고 도움을 청하겠습 니다. 이런 종류의 사건이 최근 들어 부쩍 늘었습니다. 이 사람 이 여섯 번째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살아 있는 시체들이 벌써 다섯 구나 나왔다 는 말인가요?”

“예.”

“그러면 그들은 모두 어떻게 됐습니까?”

“둘은 경찰들이 도착하기 전에 숯덩이가 되어 버렸습니다. 불 을 지르고 자살한 것이죠. 그런데 몸이 타면서도 아픈 줄도 모르고 계속 거리를 돌아다녔답니다. 한 명은 몸에 끼얹은 기름이 다 타 버리자 다시 페인트를 끼얹고 불을 질렀다는군요. 그때 이미 뼈가 부스러질 정도로 타고 있었는데 말이지요. 이해할 수가 없 어요.”

“가련한 사람들. 그들은 가야 할 곳으로 가려 한 겁니다. 무의 식적으로 말이지요. 자신은 죽어 있어야 되는 사람이란 집념 같 은 것이 작용한 결과입니다. 다른 경우는요?”

“한 사람은 역시 차에 깔려서 두 동강이 났습니다. 완전 두 토 막이 된 것이죠. 그런데도 한참 동안 기어 다녔다고 하는군요.” 

“아멘! 세상에, 가련하게………….”

“한 사람은 성한 채로 경찰로 호송되었다가, 사층에서 뛰어내 려 머리가 박살이 났는데도 걸어서 나가려 했답니다. 놀란 경찰 들이 무서운 나머지 총을 마구 쏘아 댔는데, 완전히 분해가 된 다음에야 움직이는 것을 멈추었답니다. 거의 백오십 발에 달하 는 총알을 맞았고, 현장에 있던 경찰들 또한 쇼크로 인해 아직까 지 입원중인 사람들이 있지요. 충격으로 사표를 쓴 사람도 많은 데 이야기가 샐까봐 받아주지도 못합니다.”

“아아…………. 불쌍하군요.”

“물론 신부님이야 불쌍하다 여기실 수 있겠지만, 그런 모습을 본 보통 사람들은 공포로 거의 미쳐 버리게 되죠. 나머지 한 사 람은 삼 일 동안 감금되어 있었는데, 갑자기 울부짖더니 푸석푸석한 가루가 되어 흩어져 버렸어요.”

“가루요?”

“예.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먼지처럼 스러져 버렸습니다. 나이 든 외국인 같았는데, 그 이상은 알아낼 수 없더군요.”

“외국인이라고요?”

“예. 여섯 중 네 명이 외국인이었습니다. 그중 세 명은 동남아 사람으로 보였고, 한 명은 유럽인 같았답니다. 동구권요.”

박신부는 뭔가 생각에 잠겼다. 백호는 계속 이야기를 늘어놓 았다.

“그들은 모두 지문도 없고, 기타 신분을 증명할 만한 어떤 것 도 없었어요.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구요. 마치 백치 같았습니 다. 일은 계속 터지고 있는데, 그들이 주로 나타나는 곳이 인천 부근이라는 사실밖에는 알아낸 것이 없습니다.”

“인천이라면.”

“아마도 남동공단 부근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곳은 요즈음 들어 외국에서 취업하러 온 외국인 노동자들로 붐비는 곳이니까 요. 그리고 여섯 건의 사건이 모두 인천이나 인천 외곽에서 발생 되었다는 것으로 볼 때, 인천에 문제가 있는 것은 확실합니다만 그 이상은 아직 알 수 없습니다.”

차는 어느덧 후미진 산속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더 가야 하는 데 길이 너무 험해서 더 이상은 차가 지나갈 수 없을 것 같았다.

백호가 차에서 내려 뒤따라오던 차들을 정지시켰다.

“자! 여기서부터는 도보로 간다. 두 명은 먼저 가서 주위에 보 는 사람이 없도록 조치하고 둘은 뒤로, 넷은 우리와 함께 간다. 움직여!”

박 신부는 차에서 내리다가 흠칫했다. 앰뷸런스를 따라온 차 들이 두 대뿐이었기 때문이다. 아까는 분명 세 대였는데…………. 장박사와 사복 요원들이 남자의 유체를 옮기는 동안 박 신부 가 백호에게 물었다.

“백호 씨, 수행하는 차가 몇 대였죠?”

“두 대였습니다.”

박 신부는 고개를 갸웃했으나 자신이 착각했다고 생각해 더 이상 묻지 않고 승희를 시켜 현암에게 이 산으로 찾아오라고 전 화를 했다. 백호는 주변 경찰과 군에 연락해서 산 주위에 경계를 서게 하고 아무도 들어올 수 없도록 지시했다. 생각한 이상으로 실제 백호의 영향력은 대단해 보였다. 경찰서장이나 군 지휘관 에게까지 명령을 내리다니.

날은 완전히 어두워졌다. 승희는 캄캄한 밤중에 묘지로 시체 를 끌고 간다는 사실이 걸리긴 했지만 원래 업이 그런 쪽인 장 박사나 백호는 무덤덤한 것 같았고, 휘하 부하들도 잘 훈련받았 는지 질서 정연했다. 그럼에도 담배를 뻑뻑 빨아 대는 사람들이 많은 것으로 보아 그들의 속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갑시다.”

남자의 유체를 실은 들것을 앞장세우고 그 주위에 박 신부 일 행이 섰고, 급히 조달해 온 연장들을 두 명이 나눠 메고 드디어 일행은 산길로 올라서기 시작했다.


“가짜 신부, 제대로 찾아낼 수 있을까?”

한참을 걷고 나니 피곤한지 장 박사가 불만스러운 듯 중얼거렸다.

“찾아낼 걸세, 틀림없이…………. 좀비들은 정신을 차리게 되면 안식을 위하여 자신들이 쉬던 곳을 필사적으로 찾아간다네. 그 건 어쩌면 죽고 사는 문제보다도 더 절실한 것인지도 몰라. 한순 간의 인생 정도가 아닌 영생이 걸린 문제이니까.”

“그런데 그들의 정신이 돌아올 수 있게 하는 방법은 무엇이지?”

“그건 나도 몰라. 오래된 책에서 읽은 것뿐이니.”

“그런 책도 있나? 어디서 그런 걸 출판한단 말야?”

“손으로 쓴 기록이었을 뿐이야. 일부러 구하려고 해도 구할 수 없겠지만 우연히………….”

“됐네. 알고 싶지도 않아.”

장 박사는 입을 다물었다. 승희는 여전히 남자의 마음속을 살 피기에 여념이 없었다. 앞서 간 두 명의 백호의 부하들이 잘 소 개(疏)를 시켰는지 사람은 하나도 만나지 않았다. 아니, 꼭 그러지 않더라도 어두운 밤중에 산속을 사람이 나다닐 이유는 없을 테고.

벌써 사십 분가량 산길을 걷는 중이었다. 구름 낀 밤이어서 흔 들거리는 랜턴 불빛이 일행의 길잡이 노릇을 했다.

장박사가 다시 입을 열었다.

“이봐, 가짜 신부. 그런데 만약 무덤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된 다면 저 남자는 어떻게 되는 거지? 이미 죽은 자이니 또 죽을 리 는 없을 테고.”

“영이 구원을 받지 못하게 되네. 안식을 얻을 수가 없는 거야. 부유령이 되어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니는 신세가 되겠지. 영원히…..”

“영원히?”

“그래.”

장 박사가 몸서리를 쳤다. 일행은 어느덧 캄캄한 숲 속을 지 나고 있었다. 사방에서 웅웅대는 산 특유의 소리, 밤의 소리들이 들려 왔다. 새나 이름 모를 짐승 울음이 아닌, 몸속을 흔들어 대 는 산의 울음소리. 승희는 내심 불안했다. 현암과 준후가 여기까 지 잘 찾아올 수 있을까? 무전기를 갖고 있는 백호의 부하 한 명 이 저 아래쪽 찻길이 끊긴 곳에서 현암이 나타나면 바로 연락을 해 주겠다고는 했지만…………….

일행이 어두운 숲길을 나서자 때를 같이하여 구름 사이로 홀연히 달이 나왔다. 숲의 바로 앞에는 비스듬한 둔덕이 깔려 있었다.

“아앗! 세상에!”

“이런!”

처참한 광경이었다. 둔덕 아래쪽으로는 사람들이 잘 찾지 않 는 묘지들이 많이 있었는데, 무덤마다 마구 파헤쳐져 있었다. 아 예 구덩이만 남기고 파헤쳐진 무덤도 있었고, 파헤쳐지다 만 무 덤도 있었다. 여기저기에 널브러져 있는 시체들, 그것도 갈기갈 기 찢어지고 조각난 시체들이 널려 있는 모습은 마치 지옥도(地 獄)를 무색케 했다.

“크아아아악!”

남자 유체의 입에서 알아들을 수 없는 고함 소리와 함께 끈끈 한피거품이 왈칵 밀려 나왔다. 남자는 하나밖에 남지 않은 팔로 마구 기었다. 자신의 무덤이 난장판으로 파헤쳐진 것에 분노하 고 있음이 분명했다.

장박사가 턱을 덜덜 떨었다.

“세, 세상에……. 누가 이런 짓을…….”

박신부의 얼굴은 입이 굳게 다물어진 채 분노로 일그러져갔고 몸에서는 환한 오라가 주변을 밝히기 시작했다. 백호가 외쳤다. 

“이럴 수가! 증거를 남기지 않으려고 무덤을 파헤친 것이 틀 림없어. 이런 제기랄!”

백호가 가리키는 곳을 보니 묘석 몇 개가 산산이 부서져서 흩어져 있었다.

“이 시체들을 이용한 자가 한 짓일 거요. 증거를 남기지 않으려고! 천하에 죽일 놈 같으니!”

박신부는 말없이 미친 듯 기어가는 남자의 뒤를 따랐다. 승희 는 울먹거리면서 그 자리에 주저앉아 버렸다.

“너무, 너무 가련해. 아아…………….”

백호는 하늘을 향해 미친 듯 소리를 질러 댔다.

“내가 지옥 끝까지라도 쫓아가서 잡아내고야 만다! 죽일 놈들!” 남자의 몸이 움직임을 멈추었다. 박 신부도 멈추어 섰다. 남자 의 눈앞에 뚫려 있는 커다란 구덩이. 그의 무덤이 분명했다. 그 러나 지금은 마구 파헤쳐진 구덩이에 불과할 뿐이었다. 남자의 몸이 경련을 일으키듯 부들부들 떨리다가 힘이 빠진 듯 축 늘어 졌다. 남자의 퀭한 두 눈엔 찐득한 두 줄기 피만이 흘러내릴 뿐 이었다. 약간 남은 썩은 피 말고는 몸에는 물기가 전혀 없었는 데…………. 남자의 몸이 땅에 푹 쓰러졌다. 박 신부가 주루룩 한 줄 기 눈물을 흘렸다. 입 근처의 근육도 파르르 떨렸다. 죽은 자의 마지막 남은 안식처마저 파헤쳐 버린 자들이 한없이 가증스러웠 다. 대체 그들은 누구란 말인가? 그들도 죽었을 때 저런 처지가 되기를 바랄까? 남자의 몸이 푸석푸석해지더니 부스러지기 시작 했다. 그나마 여태껏 지탱해 왔던 의지를 상실한 것이다. 박 신 부가 얼른 남자의 몸을 들쳐 안자 승희가 달려와서 거들었다. 박 신부는 남자의 몸을 구덩이에 눕혔다. 그러고는 고함을 질러 댔다.

“어서 흙을! 매장해 주어야 해!”

백호가 장 박사와 함께 덜덜 떠는 부하들을 닦달해서 데리고 왔다. 그리고 남자의 몸이 뉘여 있는 구덩이 위로 흙을 끼얹었 다. 박 신부가 나지막이 기도를 올리기 시작했다.

“죄 많고 가엾은 이 영혼을 하느님 야훼의 품으로 인도하소서. 비록 길을 잘못 들어 죄의 길을 걸었을지라도 모두가 하느님의 양이 아들들이니.”

뿌려지는 흙 사이로 남자의 얼굴이 편안함을 찾아 가는 것 같 았다. 울먹이던 승희는 남자의 영혼이 이제는 안식을 찾아 가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비명 소리가 고요를 흔들었다.

모두 놀라 눈을 돌리자 삽질을 하던 백호의 부하 한 사람이 앞 으로 푹 고꾸라지는 모습이 보였다. 백호가 쓰러진 부하를 눈으 로 살폈다. 잘 보이지 않았으나 쓰러진 부하의 뒤통수에는 선혈 이 낭자했다. 돌이나 둔기에 맞은 모습이었다.

“누구냐!”

백호가 소리를 치며 뒤를 돌아보았다. 어둠 속에서도 그림자 가 어른거리는 것이 보였다. 백호는 랜턴을 집어 그중 한 사람의 얼굴을 비추었다.

“으아앗!”

장박사가 놀란 나머지 구덩이로 떨어져 버렸다. 랜턴에 비친 얼굴. 그것은 막 흙을 비집고 나온 반쯤 썩어 가는 시체의 얼굴 이었다.

“좀비!”

백호의 부하 중 하나가 권총을 꺼내어 세 발을 연속으로 쏘았 다. 전광석화와 같이 빠른 동작이었다. 발사된 탄환은 퍽퍽 소리 를 내며 그중 하나를 비틀거리게 만들었으나 쓰러뜨리지는 못했 다. 박 신부가 소리쳤다.

“쏘지 마! 저들도 사람이야. 이용당하는 것뿐이야!”

다섯 좀비들은 다시 돌을 집어 던졌다. 그들은 무덤들 사이에 반쯤 파묻힌 채 기다리고 있었다. 무덤으로 단서를 찾으러 올 누 군가를 대비하려고 그들을 배치했을 것이다. 그러다가 박 신부 의 기도 소리에 깨어나서 일행을 기습한 것이다. 박 신부가 십자 가를 꺼내어 일행의 앞을 막고 섰다. 승희가 양 손가락을 관자놀 이에 대고 힘을 기울이자 박 신부의 오라 광채가 더욱 환하게 빛 났다.

“악의 종들이여, 미혹에서 깨어나라!”

좀비들은 들었던 돌을 떨어뜨리고는 뒤로 물러섰다. 그러나 그중 한 놈은 비틀거리면서도 멍한 표정으로 앞으로 나섰다. 백 호가 삽자루를 단단히 움켜쥐었으나 승희가 말렸다.

“잠시만요. 저자가 정신을 차리는 것 같아요!”

박신부는 조용히 말했다.

“안식을………… 가련한 자여…………….”

백호가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소리쳤다.

“너는 누구지? 누구야?”

좀비는 마치 얼이 빠진 듯 휘황하게 빛나는 박 신부의 오라를 넋 잃고 들여다보면서 흉하게 일그러진 입을 놀렸다.

“나, 나, 나는・・・・・・ 믿, 믿습…….”

백호는 손에 땀을 쥔 채 다시 물었다.

“이름은? 이름!”

“조…… 조준……. 미, 믿음…….”

갑자기 뒤에서 고함 소리가 들리면서 커다란 묘석의 파편들이 날아왔다. 그중 하나가 좀비의 머리에 명중하자 머리의 반쪽이 퍽 소리를 내면서 날아가 버렸다. 좀비가 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듯 선혈과 뇌수가 사방에 튀었다. 일행은 끔찍한 광경에 몸서리 치면서 마치 발이 땅에 못 박힌 듯 꼼짝 못하고 있었다. 머리가 부서져 나간 좀비는 그래도 다시 일어나려 했으나 뒤에서 세 명 의 좀비가 달려들어 그의 몸을 잡고 삽시간에 토막을 내 버렸다. “아악!”

승희가 눈을 가리면서 찢어지는 비명을 질렀다. 박 신부가 앞 으로 뛰어 나갔다. 뇌리를 스치는 게 있었다. 지금 막 희생된 좀비는 생시에 분명 신자였을 것이다. 그래서 박 신부의 오라를 보고 정신이 들던 참이었던 것이 분명했다. 나머지 놈들은 원래가 극악무도한 놈들이었던 듯 박 신부의 오라를 보고도 태연하기

그지없었다.

‘어차피 천국으로는 못 갈 놈들! 지옥으로나가 버려라!’

박 신부는 기도력을 발하여 두 놈의 좀비를 밀어붙이고 한 놈 의 이마에 십자가를 대었다. 기도력의 힘에 적중된 두 놈은 아직 푸들거리는 사체를 움켜쥔 채 뒤로 한참 나가떨어져 뒹굴었고, 십자가가 저절로 한 놈의 이마 속으로 파고들었다. 이마에 십자 가를 맞은 놈은 귀가 얼얼해질 정도로 큰 비명을 울리면서 미친 듯 팔을 휘둘러 댔다. 박 신부는 그만 좀비의 손에 한 방 맞고 뒤 로 넘어져 버렸다. 백호가 기합을 넣으면서 달려 나갔다. 검도하 듯 휘두른 백호의 삽자루에 한 놈의 좀비가 이마에 십자가를 박 은 채 머리가 날아가 버렸다. 그런데도 좀비는 오히려 후련하다 는 듯, 백호에게 계속 팔을 휘둘렀다. 백호는 날렵하게 피했다. 그때를 놓치지 않고 승희가 박 신부를 일으키려는데 남아 있던 또 한 놈의 좀비가 덤벼들었다.

총소리가 연달아 산속에 울려 퍼졌다. 백호의 부하들이 승희 에게 덤벼들려는 좀비에게 마구 총을 쏘아 대고 있었다. 승희의 눈앞에서 좀비는 마치 인형처럼 쓰러지지 않고 비틀거렸다. 승 희는 무거운 박 신부의 몸을 일으켜 간신히 뒤로 끌어냈다. 멀리서 두 놈의 좀비가 돌을 던져 댔다. 이쪽 편은 돌 한 방으로도 뻗 어 버릴 판이었지만, 저들은 십여 방의 총을 다 맞고도 꿈틀댔 다. 아니, 목이 날아가고도 백호에게 미친 듯 덤벼들고 있었다. 백호가 다시 기합을 넣으며 일격을 가하자 놈의 다리 하나가 날 아가면서 쓰러져 버렸다. 이놈은 퍽 오래 묵은 좀비 같았다. “뒤로 물러서!”

백호는 날아오는 돌을 피하면서 외쳤다. 그런데 갑자기 백호 가 처절한 비명을 지르며 넘어졌다. 승희가 보니, 박 신부의 십 자가가 이마에 박혀 반쯤 삭아 버린 좀비의 머리가 백호의 다리 를 물어뜯고 있었다.

“아아악! 떨어져!”

승희가 땅에 떨어져 있던 삽 한 자루를 들어 머리를 갈기자 놈 의 머리는 십자가의 압력과 승희의 구타를 이기지 못하고 퍽 소 리를 내면서 가루로 변해 버렸다. 백호의 상처는 생각보다 심했 다.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았지만, 얼마나 독하게 물렸는지 피가 흥건했다. 뒤에서 총알이 떨어진 백호의 부하가 좀비를 향해 총 을 힘껏 내던졌다. 어느새 옆에 있던 한 명은 돌에 맞아 넘어져 있었다. 박 신부가 간신히 눈을 떴다. 박 신부의 안경은 깨져 있 었고, 뺨은 금세 퉁퉁 부어올랐다.

“신부님 피해야 돼요! 어서!”

그러나 박 신부는 피하기는커녕 노호성을 지르며 몸에서 오라를 뿜어냈다. 그러나 날아오는 돌들은 그대로 오라를 꿰뚫고 들 어왔다. 영력에 의한 것이 아니고 그냥 집어 던진 돌들이어서 박 신부도 이에 대해서만은 대처할 방법이 없었다. 더구나 안경이 깨져 버리는 바람에 앞을 잘 볼 수가 없었다. 돌 하나가 어깨를 강타하자 박 신부의 몸이 휘청거렸다. 그런 와중에서도 박 신부 는 한 놈을 오라의 막 안에 가두는 데 성공했다. 지금은 인정사 •정을 봐줄 상황이 아니었다. 박 신부가 기도력을 발하자 놈은 마 치 불에 구워지는 오징어처럼 쪼그라들면서 순식간에 부스러져 버렸다. 그사이, 남은 두 놈은 각각 승희와 백호의 부하에게 덤 벼들었다. 백호의 부하가 좀비에게 팔을 잡혔다. 놀라운 힘이었 다. 좀비가 건장한 그 남자를 집어 던지자 남자는 비명을 지르며 나가떨어져서는 이내 움직이지 못했다.

“아아! 저리 가 저리!”

승희에게 덤벼드는 놈은 그중에서도 무척이나 오래 삭은 듯한 놈이었다. 승희는 좌우를 살피다가 한쪽으로 피해 달아나려 했 으나 놈의 손에 옷자락이 잡혀 버렸다.

“으아악! 놔놔!”

승희는 몸부림치면서 도망치려 했지만 놈은 다른 팔을 뻗어 승희의 손목을 움켜쥐었다. 실로 엄청난 힘이었다. 새 발톱 같은 느낌의 거친 손가락이 손목을 움켜쥐자 승희는 팔이 저릿저릿하 면서 힘을 쓸 수가 없었다. 발로 놈을 밀어내려고 하는 순간 익숙한 귀곡성과 총소리가 한꺼번에 울려 퍼졌다. 갑자기 승희의 눈앞에서 뭔가가 번뜩하자 징그러운 표정을 짓던 좀비의 대가리 가사라져 버렸다. 월향이었다. 그리고 놈의 등 뒤로 불덩어리가 날아와 퍽 하면서 작렬했다. 그러자 놈의 손아귀에서 힘이 빠졌 고승희는 재빨리 좀비의 손을 벗어나 구르듯이 뒤로 달렸다. 현 암과 준후가 때 맞춰 당도한 것이 틀림없었다.

좀비 하나가 총에 명중되어서 몸을 비틀었다. 박 신부가 그쪽 으로 오라를 집중하자, 놈은 뭐라 소리도 지르지 못하고 쓰러져 버렸다. 이놈은 얼마 되지 않은 놈인 듯 얼굴에 피를 뿜었다.

박신부가 하나밖에 남지 않은 안경알을 치켜 올렸다. 현암과 준후가 달려왔고 월향은 다시 귀곡성을 울리면서 현암의 손으로 돌아왔다. 승희가 반가워 준후를 안고 뺨을 비벼 대자, 준후는 질색을 하며 밀어냈다. 승희는 좀 무안해졌다. 주위를 둘러보던 현암이 기가 막히다는 표정으로 월향을 왼팔에 꽂으며 말했다. 

“다들 괜찮습니까. 신부님?”

“흥! 나는 죽어도 그만이고?”

승희가 중얼거리는 것은 들은 척도 않고 현암은 여전히 무표 정하게 사방을 살폈다. 현암, 준후와 같이 온 여러 명의 요원들 은 오히려 이상한 술수를 부리는 현암과 준후에게 겁을 먹은 듯 멍하니 서서 움직일 생각조차 않았다. 준후에게 멸겁화를 맞아 목이 날아간 좀비도 서서히 불에 타서 재로 변하고 있었다. 박 신부는 고통에 못 이겨 의식을 잃은 백호에게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괜찮네. 허나 보통 일이 아니군.’

“끔찍하군요. 이게 도대체 무슨…………..”

“부두교, 부두교가 틀림없네. 그것도 아주 사악한…………….”

박 신부는 주변을 보고 뭐라 입도 떼지 못하는 현암에게 한숨 을 지어 보였다. 준후는 너무나 처참한 모습에 합장을 하고 묵념 을 하면서 눈을 감았다. 구덩이에 떨어졌던 장 박사가 간신히 기 어 나오는 모습이 보였다. 요원들이 백호와 다른 부상자들을 간 호하고 시체들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저만치에서 누가 달려왔다.

“저게 누구지?”

현암이 중얼거렸다. 그 사람은 박 신부와 비슷한 사제복을 입 고 있었고, 요원인 듯한 남자와 같이 달려오고 있었다.

현암은 박 신부를 부축한 채로 어둠 속에서 이쪽으로 오고 있 는 사람을 유심히 쳐다보았다. 모습이 가까워 오자 그 사제가 금 발머리의 외국인임을 알 수 있었다. 장 박사는 일단 백호의 상 처를 소독해 주고 난 후, 이미 부스러지고 뒤틀려진 좀비들을 살 펴보고 있었다. 그러면서 몸을 벌벌 떨었다. 백호가 희미한 소리 를 냈다. 아마 의식을 되찾아 가는 듯했다. 요원들은 장 박사의 지시에 따라 흐트러진 시신들을 가지런히 모으고 사진을 찍었다. 어두운 밤하늘 너머로 플래시 불빛이 포효하듯 번득이다가 사라져 갔다.


박신부가 하나밖에 남지 않은 안경알을 추스르고 눈을 가늘 게 떴다. 서양인 사제는 박 신부와 아는 사이 같았다. 박 신부가 입을 열었다.

“윌리엄스 신부님 아니십니까?”

윌리엄스 신부라고 불린 남자는 숨이 차는지 헐떡거리며 올라 와서 주변을 보고는 허탈하다는 제스처를 쓰면서 가볍게 성호를 그었다. 허리춤에 매달려 있는 작은 밧줄과 번쩍거리는 은 십자 가가 현암의 눈에 들어왔다.

“Oh My God. 팍, 팍 신부님 제가 너무 늦었군요.”

윌리엄스 신부는 발음이 꽤 꼬부라져서 정신을 집중해야 그가 하는 말을 간신히 알아들을 수 있었다. 현암은 외국인을 마주하 자 조금 얼떨떨했지만 그나마 상대가 한국말을 해 조금은 여유 를 되찾았다. 현암이 물었다.

“아시는 분입니까?”

“인사하지. 이쪽은 윌리엄스 신부네. 영국에서 오신 분이라네.

여긴 현암군. 저와 같이 일하는 친구입니다.”

“오우, 반갑습네다. 하느님 운이 함께하기룰…………….”

현암은 말없이 웃으며 목례로 답했다. 윌리엄스 신부는 문득 현암의 왼팔에 꽂힌 월향을 보고는 놀란 표정을 지으며 윙크를 했다.

“오우!”

주변 분위기가 매우 살벌한데도 이 서양인 신부는 쾌활해 보였 다. 현암은 별말을 하지 않았다. 저쪽에서 승희가 준후를 데리고 오자 박 신부는 그 둘도 인사를 시켰다. 윌리엄스 신부도 꽤 영능 력이 있는 모양인지 승희와 준후를 보더니 더더욱 놀랐다. 

“오우 놀, 놀랍습네다. 굉 굉장하신 분들…………. 저 귀여운 꼬마까지도……………”

윌리엄스 신부는 환한 미소로 준후의 머리를 쓰다듬으려 했으 나 뭔가 바지직하면서 전기 같은 것이 일어나자 움찔하며 손을 거두었다. 준후는 외국인을 본 적이 없어서인지 예전에 인도 인인 마가 호법과 같이 생활하기는 했지만, 마가 호법은 검은 머 리에 검은 눈을 지닌 사람이었고 윌리엄스 신부처럼 금발에 벽 안을 지닌 사람은 본 적이 없었다승희에게 매달려서 눈만 깜 박거리고 있었다. 박 신부가 웃으며 말했다.

“윌리엄스 신부는 대단하신 분이지. 영국에서는 엑소시즘의 권위자로 알려진 분이고 특히 원시 종교에 조예가 깊으시단다. 예전에 우연히 알게 된 분인데, 한국에도 자주 다녀가셨고 한국 의 토속신앙에도 관심이 많으시지.”

윌리엄스 신부는 엑소시즘이라는 말이 나올 때는 움찔했으나, 그 이후의 말들은 잘 알아듣지 못하는 것 같았다. 박 신부가 영어로 말을 반복하자 윌리엄스 신부는 고개를 끄덕였다. 현암이

의아하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런데 여기는 어떻게 알고………….”

“부드, 저는 지금 부으드의 호웅간을 찾아온 것입네다.”

“호웅간이요?”

“부으드의…………… 음………… 리더입네다. 부으드, 호웅간, 오케 이?”

“그러면 저 시체들이 살아서 움직인 것은 부두교의 호웅간이 라는 작자의 짓이라는 겁니까?”

“호웅간…………… 이름이 아닙네다. 부으드의 사제. 쏘오서러 (Sorcerer, 주술사)입네다. 아주 아주 사악한 자가 있습네다. 저 는 그자를 쫓아서 코리아에 온 것입네다.”

“그러면 그자가 한국에 와 있다는 겁니까? 어떻게 아셨죠?” “오우! 투 이어, 이 년이나 추적했습네다. 이블! 이블 맨! 그자 는 브리튼에서도 아이티에서도 사악한 짓을 많이 했습네다. 그 리고 브리티쉬 폴리스의 추적을 피해 여기까지 도망친 것입네 다. 저는 많이 압네다. 아주 많이…….”

“그런데 지금 이곳은 어떻게 알고?”

“미스터 헌드레드…………… 노우, 미스터………… 배, 배코우를 찾아 온 것입네다. 코리아 폴리스에 협조를 요청했습네다. 캡틴에게 이야기했더니 미스터 배코우를 찾아가라고 했습네다. 그래서 급히 이곳에 오니 좀비의 이블 포오스가……………”

배코우란 백호를 말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 좀비의 기운이라 니? 박 신부는 좀비의 기운을 그다지 특별하게 느끼지 못했는데. 

“좀비의 기운을 느꼈습니까? 어떻게요?”

“오우, 이것입네다.”

윌리엄스 신부는 나무와 뼈로 엉성하게 엮인 사람의 눈 모양 을 한 작은 부적 같은 것을 꺼내 보였다. 그 중앙에는 역시 뼈로 만든 것 같은 작은 화살이 매우 가는 줄로 매달려 있었는데, 지 금은 축 처져 있었다.

“이 탈리스만…………… 부으드의 것입네다. 우연히 얻었어요. 좀비 가부근에 있으면 이 애로우가 스핀, 아니 돕네다. 윙윙…….” 

일행은 고개를 끄덕였다. 필경 저 부적은 윌리엄스 신부가 영 국에서 호웅간을 추적할 때 우연히 얻게 됐고, 백호를 만나기 위 해 이 산 밑까지 왔다가 부적의 화살이 도는 것을 보고 부리나케 쫓아온 것이 분명했다. 준후는 그 부적에서조차 사악한 기운을 느끼는 듯 눈살을 찌푸렸다. 박 신부가 침중하게 말했다.

“우리는 방금 좀비들과 한바탕 싸움을 벌였습니다. 물리치기 는 했지만 마음이 석연치는 않군요. 그런데 이 좀비들에 대해 좀 더 일러 주시겠습니까?”

윌리엄스 신부는 우리말로 설명을 하려 했으나 실력이 짧아 애를 먹는 듯했다. 그래서 박 신부가 내용을 통역해서 일행에게 들려주었다. 승희는 유학까지 다녀온 경험이 있어서인지 그대로 알아듣는 것 같았다.

“원래 대부분의 좀비들은 완전히 죽은 사람이 아니래. 호웅간 이 주술로 특정인의 영을 잠재운 뒤 죽은 것처럼 보이게 하고 그 사람이 매장되면 몸뚱이를 파내어서 하수인으로 부린다는군. 언 뜻 보기에는 보통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보인다. 멍하고 정신이 없는 것 같기는 하지만. 하지만 이들도 정신을 차리면 다시 보통 사람으로 돌아갈 수가 있다는데?”

“그럼, 죽은 사람을 살려 낼 수 있다는 말인가요?”

“아니야. 원래부터 죽은 사람은 아닐세. 단지 이성을 상실하 고, 주술의 지배를 받아 활동을 하는 거야. 죽은 사람을 살려 내 는 것은 아니네.”

“그러면 우리가 해치운 저 좀비들도 다시 살릴 수 있었던 건가 요?”

“그건 아니라는군. 원래 살아 있는 사람을 죽은 것처럼 만들어 서 좀비로 바꾼 경우는 몸 안의 생명 에너지가 그래도 남아 있다 고 하네. 그러나 이들의 생명 에너지는 점점 소실되어 가지. 사 람에 따라서 몇십 년을 갈 수도 있지만 몇 달 만에 고갈될 수도 있고 그 에너지가 고갈되면 정말 죽는 것이지. 그렇게 되면 몸 이 속에서부터 썩어 들어가고 피도 말라버린 좀비가 되는데, 그것도 움직이게 할 수 있다는군. 더더욱 강력한 주술로 계속 움직이게 하다가 결국은 폐기 처분해 버린다는 거야.”

“세상에! 그건 살인 행위 아닙니까?”

“그래. 그러나 더욱 무서운 것은 그런 좀비가 아니라 정말 죽 은 사람을 일으켜서 걸어 다니게 만드는 부류라네. 단, 그건 영 이 아직 몸을 떠나지 못하고 붙어 있는 시체라야만 가능하다는거야.”

“시체에 영이 붙어 있는 경우라고요? 영이 몸을 떠나야 죽게 되는 것인데, 시체에 영이 붙어 있다니 이치에 맞지 않는데요?”

“그러니까…………… 음………… 심한 충격이나 특별한 이유로 영이 몸을 떠났다가 오는 경우가 있지. 혼이 나갔다는 말이 있지 않은 가. 그사이 사고를 당해 죽은 사람들. 아, 그리고 죽은 자신의 몸 자체에 지박령이 되어 붙는 경우도 꽤 있지. 그런 시체들을 모아 서 호웅간이 좀비를 만드는 경우도 있다는 거야. 그런데 이 두 번째 부류의 좀비는 매우 위험한 존재지.”

“왜죠?”

“무의식적으로 살아 있는 자들을 미워한다는군. 아마 여기서 우리를 습격한 다섯 중에 네 놈은 그렇게 만들어진 좀비일 가능 성이 많다는 거야.”

박 신부가 대강의 설명을 마치자 윌리엄스 신부는 인상을 찌 푸린 채 현암과 박 신부와 같이 부스러진 좀비의 시체들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 끔찍한 몰골들을 피해 승희와 준후는 백호와 장 박사의 곁으로 다가갔다. 좀비들은 갈기갈기 찢어지고 바스 라지거나 불에 타 버려 형체를 알아볼 수가 없었다. 아니면 이 미 가루로 변해 있어서 알아낼 만한 것이 거의 없었다. 마지막으 로 박 신부가 쓰러뜨린 놈은 만들어진 지 얼마 되지 않았던 놈 인 듯, 이목구비의 분간이 가능했다. 박 신부는 윌리엄스 신부에 게 다섯의 좀비 중 하나가 오라를 보고 정신을 차리려 했었다는 것을 말해 주었다. 윌리엄스 신부는 그 말을 듣자 말없이 그들이 얼굴을 파묻고 있는 무덤들을 살폈다. 그리고 그중 한 구덩이에 손을 넣어 흙을 한 줌 꺼냈다.

“Look at this(이걸 봐요)!”

박 신부는 무슨 영문인지를 몰라서 현암과 함께 그 흙을 들여 다보았다. 그러나 특별한 것은 느끼지 못했다. 윌리엄스 신부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Salt (소금)!”

“소금이라고요?”

윌리엄스 신부는 고개를 끄덕였다.

“쏘울트를 먹으면 좀비는 정신 차립네다. 시체에서 만든 좀비만 아니라면……………. 좀비의 약점은 거기에 있습네다.”

“소금을요? 보통 소금이라도 먹으면 산 사람으로 만들어진 좀비는 정신을 차리게 된다고요?”

“예, 약간이라도, 아주아주 조금만 먹으면 좀비의 정신이 돌아옵네다. 그래서….”

“그래서요?”

박신부가 윌리엄스 신부의 말을 통역해 주었다.

“죽은 지 오래되지 않은 좀비는 보통 사람으로 돌아온대. 그 러나 오래된, 즉 생명 에너지가 고갈된 좀비는 안식을 얻기 위해 기어코 무덤으로 돌아가려고 한다는군.”

“그런데 저 흙은?”

“흙에 소금기가 있다는군. 현암군, 우리나라에서는 무덤을 만 들 때 밑에 왕소금을 깔지 않는가? 좀비들이 잠복해 있을 때 그 중 하나가 우연히 소금을 들이마신 거야. 아까 나를 보고 생전의 믿음에 대한 기억을 되돌리려는 자가 있었다네. 다른 놈들에게 무참히 찢겨지고 말았지만………. 아멘.”

그렇게 말을 하면서도 박 신부는 내심 놀라고 있었다. 소금이 라니! 윌리엄스 신부의 말이 옳다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길 에 한발 접근한 것이다. 그러고 보니, 아까 필사적으로 무덤으로 기어간 자는 호웅간의 실수였든가 아니면 무슨 이유에서인지 소 금을 먹었던 것이 틀림없었다. 그래서 일말의 정신을 차렸던 것 이 분명하고. 다른 곳에서 발견되었다던 다섯 명의 다른 좀비들 도 역시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이제 남은 일은 호웅간을 찾는 일이야. 그러나 이들에게서는 어떤 단서도 찾기 어려워, 지문도 다 문드러진 상태고, 흠, 호웅 간을 찾으려면……..”

현암이 박 신부의 말을 이어받았다. 그도 이제야 앞뒤의 상황 을 이해할 것 같았다.

“살아있는 좀비를 잡아야죠. 그래서 소금을 먹여 정신이 들게 하면 될 것도 같은데.”

박신부는 마음이 무거웠다. 보다시피 좀비들의 힘은 무척 강 했고 매우 난폭했다. 무슨 수로 난폭한 좀비에게 소금을 먹인다 는 말인가? 그것도 아무런 희생 없이. 그러나 지금 상황에선 그 것보다도 좀비를 찾아내는 것이 급선무였다. 윌리엄스 신부가 다시 말했다.

“저도 돕겠습네다. 나쁜 호웅간은 잉글랜드에서도 많은, 수많 은 사람들을 해치고 도망쳤습네다. 그리고 그의 정체를 아는 사 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의 행위는 신과 인간을 둘 다 모독하는 것입네다. 어떤 일이 있어도 꼭 잡아야 합네다. 어떤 일이 있어도……”

정신을 차린 백호가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절뚝거리면서 승희,

준후와 함께 다가왔다.

“백호 씨, 괜찮습니까?”

박신부가 묻자 백호는 아픈 것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듯한 쾌 활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백호는 척 보기에도 대단히 정신력이 강한 사람 같았다. 아까 좀비가 물어뜯은 부위는 아무리 붕대로 촘촘히 동여매어져 있을지라도 고통이 극심할 터인데, 그는 아무런 내색 없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이럴 때는 그냥 모르는 척 놔두는 것이 상책이었다. 박 신부는 백호에게 준후와 현암, 그리고 윌리엄스 신부까지 인사시켜 주었다. 그러고 나서 긴 한숨을 내쉬었다.

“부두교······ 부두교가 우리나라에까지 들어오다니………….” 승희가 눈을 깜박거리다가 윌리엄스 신부에게 물었다.

“파더 윌리엄스.”

“오우, 한국어로 하십시오. 듣는 건 잘합네다. 하하.”

“예. 윌리엄스 신부님. 부두교에 대해 설명 좀 해 주시지요.” 

윌리엄스 신부는 눈살을 찌푸려 보이며 잠시 입을 다물고 뭔 가를 생각하더니 곧 입을 열었다. 그의 행동은 꼭 어린아이가 장 난치는 것과 흡사해서, 일동은 잠시나마 조금 전의 끔찍했던 싸 움의 광경을 떨쳐 버릴 수 있었다.

“오우, 부우드, 그건 아이티 섬에서 유래된 것입니다만 지금은 카리브, 브래질리아, 어메리카에서 상당히, 상당히 많이 퍼져 있 습니다. 나쁜, 나아쁜 종교입네다!”

이 자리에서는 윌리엄스 신부를 빼고는 부두교에 대해 자세히 알고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준후가 박식하다고 해도 동양 권의 지식만 있을 뿐이었고, 박 신부는 모든 것을 주로 가톨릭적으로 해석하는 습성이 있어서 아직 그런 것까지 체계적으로 공부한 바는 없었다. 현암은 애당초 선도(仙道)와 불가, 무공쪽만 알고 있었고, 승희는 그나마 아는 것조차 없었으니 윌리엄스 신 부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애프리카, 기니, 그리고 다호메이에서 잡혀 온 노예들이 홈 씨크…… 음…… 그러니까 향수, 맞습네까? 아 예, 그것에 취해 시작된 것이 부으드입네다. 부으드, 신성한 것, 영혼, 신을 의미 하는 보오(Vodun)에서 유래된 것인데 어느 백인 노예상이 거 기에 캐톨릭의 교리, 마법 서적과 아프리카의 신앙을 섞어서 만들었습네다.”

“백인이 만들었다고요?”

“오우 예스. 그 사람은 노예상, 해, 해적들에게 잡혀 있을 때 애프리카의 프리미티・・・・・・ 아니 원, 원시 신앙을 알게 되었고 그 것과 자신의 캐톨릭, 마법의 지식을 믹스해서 만들었습네다. 엑 스터시, 황홀경! 인간의 정신을 마비시키고 죽은 인간을 부릴 수 있다고 믿었습네다! 애프리카의 주문 중에는 그런 사, 사악한 것 이 있습네다. 그것을 섞었습네다!”

윌리엄스 신부의 말은 점차 노기를 띠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점점 영어가 많이 섞여 나와서 승희조차 알아듣기 어려운 전문 용어들이 마구 튀어 나왔다. 백호는 눈을 빛내며 그 이야기를 듣 고만 있었고, 박 신부가 현암과 준후에게 통역을 해 주었다.

“부두교라는 것은 원래 잡다한 신앙이 섞인 것이기 때문에 엄 청나게 많은 분파가 있다는군. 단순한 황홀경을 경험케 하여 춤 으로 모든 것을 끝내는 파도 있고, 닭이나 동물의 목을 잘라 피 로 제사를 지내는 것을 주로 하는 일파, 흑마술과 결합되어 저주 를 거는 것을 주로 하는 파, 그리고 가장 사악한 것이 좀비를 부 리는 일파인데 불행하게도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은 그 좀비를 부리는 녀석인 듯해. 그것도 아주 강한 자라는군.”

다시 윌리엄스 신부가 빠르게 말을 해 댔다. 박 신부도 몇 번 “Pardon (뭐라고요?” 하면서 되물어 보고서야 통역을 할 수 있 었다. 윌리엄스 신부는 사람은 퍽 좋았지만 성격이 급한 듯했다. “그가 왜 한국에 왔는지는 알 수 없고…………. 그러나 분명 무슨 목적이 있을거라는군. 영국에서는 그자가.”

“목적요?”

승희가 끼어서 중간에서 말을 끊었다.

백호가 눈살을 찌푸렸다.

“영국에서는 어쨌는데요?”

“고위급 인사들을 좀비로 만들려 했다는군.”

“예?”

현암이 눈을 크게 떴다. 고위급 인사들을…………. 그렇다면 그자의 목적은 무엇이란 말인가?

“아니, 고위급 인사를 좀비로 만들려 했다니. 죽은 사람만 좀비가 되는 것이 아닌가요?”

“아니. 산 사람도 좀비를 만들 수 있대. 원래 부두교에서는 약 물을 써서 정신만 몽롱하게 만드는 방법도 있고 아예 죽은 자를 이용하거나 산자를 죽여서 좀비를 만드는 경우도 있는데, 이 호 웅간은 두 가지 방법에 모두 능통한 것으로 보인다는군.”

“끔찍하군요. 그러나 아무리 그래도 사람을 좀비로 만들려면, 그러니까 약물을 쓰려면 어떻게든 그 사람과 접촉이 있어야 할 것 아녜요?”

“음. 그렇지.”

갑자기 백호가 소리쳤다.

“그렇군! 좋은 수가 있어요!”

일동은 눈을 크게 뜨고 백호를 바라보았다. 뭔가가 떠오른 모 양이었다. 백호는 아픈 것도 잊었는지 만면에 미소를 띠고는 말 을 이었다.

“열쇠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소금이죠.’

“소금이 열쇠가 된다고요?”

“그렇죠. 소금이 쓰일 일이 없다면 절대 소금을 사지 않았을 테니까요. 그 구매 여부를 확인해 보면 됩니다.”

“만약 일반 가정에 숨어 있다면요? 그런 건 확인이 안 되잖습니까?”

“아뇨. 그럴 리 없습니다. 이미 나타났던 좀비가 열 명이 넘습니다. 사고로 놓쳤다고 생각되는 좀비가 여섯, 그리고 우리를 습 격했던 좀비가 다섯. 그러니 실제 좀비의 수는 훨씬 많다고 해야 겠죠. 그렇게 많은 남자들이 한 가정집에 들어가 있을수는 없습 니다. 분명히 어떤 공장이나 기숙사 같은 곳에 모여서 통제를 받 고 있을 겁니다.”

현암이 제일 먼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백호가 이야기하 기 전에 현암이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공장이겠군요. 인천 남동공단의 ………….”

이번에는 모두의 눈이 현암에게 쏠렸다. 백호도 살짝 웃음을 띤 채 물었다.

“어떻게 그런 생각을?”

“모든 좀비를 본 건 아니지만 조금 전 몇몇 좀비들을 보니 외 국인인 듯한 자들도 끼어 있더군요. 외국인을 포함한 많은 수의 남자들, 이 근처에서 그들이 함께 있을 수 있는 곳은 남동공단 밖에는 없죠. 요즈음 그곳에는 외국에서 취업차 들어온 근로자 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소금을 먹이지 않으려면 매끼 기숙사에서 먹을 것을 주는 수밖에 없지요.”

백호가 웃으며 큰 소리로 외쳤다.

“맞습니다! 탈출한 좀비들이 모두 인천 근교에서 발견되었다

는 것도 그 사실의 단면을 입증하는 것입니다.”

박 신부도 수긍이 가는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역시 젊은 사람들이 머리는 빨리 돌아간다고 생각했다. 백호가 몸을 돌렸다.

“전원 비상이다! 인천 남동공단 근처의 모든 업체들, 특히 자 체 기숙사가 있는 업체들의 주방을 조사한다. 그리고 소금의 양 을 알아온다. 즉시!”

승희가 중얼거렸다.

“소금이라・・・・・・ 기록이 있을까요?”

박신부가 답했다.

“아마 있을 게다. 모든 업체는 업체 명목으로 산 물품에 한해 서는 철저하게 영수증 관리를 하니까.”

백호의 명령은 어찌 보면 좀 황당한 것이었지만 요원들은 군 말 않고 기계처럼 신속하고 정확하게 백호의 말에 따라 움직였 다. 그러한 모습을 본 일행은 백호가 참으로 힘 있는 자리에 있 다는 것을 다시금 느꼈다. 다들 멍하니 그 모습을 보고 있는데 준후가 불쑥 끼어들었다.

“그런데 그동안 우린 뭘 하죠?”

현암이 잠시 생각에 빠져들었다. 남동공단 주위에 있는 수많 은 업체들…………. 그 업체들의 장부를 모조리 뒤진다는 것은 엄청 나게 시간이 걸리는 일이었다. 현암은 방금 이 비참한 광경을 본 후라 전신이 불끈거려서 뭔가 하지 않고는 배기지 못할 것 같았 다. 박살 나고 오그라든 시체들을 태우는 연기, 그리고 그 작은 불꽃들. 어째서 인간이 짐짝마냥 저렇게 취급받아야 하는가. 이렇게 만든 자는 분명 아직 숨을 쉬면서 자신의 어두운 계획을 실행중일 텐데……. 머릿속이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다른 방법이 없을까?”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던 현암이 무릎을 탁 쳤다.

“방법이 있어요. 윌리엄스 신부님.”

“예? 왜 그러십네까?”

“그, 그 부적! 그것이 있으면 좀비가 근처에 있는지 알 수 있다 하셨죠?”

“아하!”

“어서 갑시다. 이렇게 못된 짓을 하는 놈이 계속 설쳐 대는 것 을 그냥 놔둘 수는 없어요. 제 차로 돌면, 오늘 밤 내로 좀비들이 모여 있는 곳을 알 수 있을 겁니다.”

현암은 윌리엄스 신부가 채 뭐라고 대답을 하기도 전에 윌리 엄스 신부의 사제복 자락을 질질 끌다시피 하면서 뛰듯이 산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준후가 뒤를 따랐고 승희는 박 신부의 눈치 를 살폈다. 박 신부는 멀리 가 있는 백호를 힐끗 보다가 이런 종 류의 일에는 백호나 그의 부하들이 별 도움이 안 될 것이라는 데 에 생각이 미쳤다. 잘못되면 희생자만 늘어난다. 어차피 영력이 없는 사람들이라면 구태여 이런 싸움에 끼어들지 않는 게 낫다. “음, 우리도 같이 가자꾸나.”

박신부가 승희를 재촉했다. 승희도 비슷한 생각을 했던 듯 둘은 백호가 보기 전에 현암이 달음질치듯 내려간 길을 따라 내려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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