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마록 세계편 1권 6화 – 비어 있는 관 6 : 마지막 선택
마지막 선택
“사자후다. 현암군이야!”
박신부가 아래에서 희미하게 울려오는 사자후의 함성 소리를 알아듣고는 소리쳤다. 아직까지는 현암이 무사한 것이 틀림없지 만사자후를 사용할 정도라면 이미 적과 싸움이 벌어진 것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 일 없었으면 좋겠는데………….”
승희가 몸을 일으키려는데 바깥에 경찰이 들이닥친 듯 사이렌 소리가 울려 퍼졌다. 박 신부는 아차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박 신 부가 몰고 온 경찰의 특수 차량에는 추적 장치가 부착되어 있다 고무선으로 들었던 기억이 났다. 경찰들은 박 신부 일행을 백호 의 납치범으로 생각하고 벌 떼같이 몰려온 것이 틀림없었다. 승 희도 사이렌 소리가 들리자 불안한 표정이 역력했다. 저렇게 경 찰들이 몰려와 봐야 도움이 될 일은 하나도 없었다. 공연히 죄 없는 좀비와 경찰이 싸움을 벌이면 수많은 사람들이 헛되이 죽 거나 다칠 수 있을 것이고 박 신부가 몸을 일으켜 준후를 들쳐 안았다.
“어서 가자. 아래층이다.”
승희가 얼마 남지 않은 소금물 통을 들고 앞장을 서서 희미하 게나마 현암의 자취를 읽어 길을 가기 시작했다. 철문 밖에서는 리매를 보고 경찰들이 기겁을 한 듯 총소리가 울리고 철문이 총 알에 맞은 듯 탕탕 튀는 소리를 냈다. 박 신부의 품에 안겨 있던 준후가 놀라서 서둘러 리매를 없애는 주문을 외웠다. 리매가 그런 총알에 맞아 죽을 리는 없겠지만 괜히 감정이 사나워져서 좋을 것도 없었다. 철사다리로 된 계단이 나타나자 준후는 눈물을 닦고는 박 신부의 품에서 내려와 잽싸게 걸음을 옮겼다.
좁은 계단을 내려가던 일행은 현암이 쇠사슬을 휘두르는 소리 와 희미한 전동 톱 긁는 소리를 듣고 걸음을 재촉했다. 아까 현 암과 이야기하던 남자는 어디론가 숨어 버렸는지 박 신부 일행 과 마주치지 않았고 박 신부 일행은 그저 답답하고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발을 놀렸다.
박 신부 일행이 마지막 층으로 내려오자 거기에는 쇠사슬에 둘둘 감긴 다섯 명의 좀비들이 굴비 두름처럼 쓰러져 있었고, 저 만치에 열린 문 앞에 석상처럼 서 있는 현암이 보였다. 준후가 재빨리 좀비들을 살피더니 승희에게 눈짓을 했다. 묶여 있는 좀 비들은 산 사람으로 만든 좀비였기에 소금물을 먹여서 정신을 되돌려야 했다.
박신부와 준후는 가만히 서 있는 현암을 이상하게 생각하면 서 다가가다가 멈칫 그 자리에 서 버렸다.
“아아! 이건…………….”
“야훼시여!”
그들의 눈앞에 보인 광경. 그것은 줄잡아 수백 개에 달하는 관 의 무더기였다. 좀비로 만들기 위하여 캐내어 가져온 것들이었 다. 어떤 관들은 캐낼 때 너무 힘을 주었는지 아니면 쌓으면서 망가진 것인지 심하게 부서져 있었고, 마구잡이로 쌓여서 흙과 먼지, 이끼와 곰팡이 같은 것들로 온통 뒤덮여 있었다. 그 틈 사 이사이로 석고처럼 말라서 썩고 부서진 사체들이 보였다. 절규 하는 듯한 손의 토막, 알 수 없는 몸의 조각들. 박 신부가 침울하 게 깊은 한숨을 내쉬면서 현암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현암은 눈 물이 나는 것을 참고 있는지 입술을 힘껏 깨물고 있었고 몸이 조 금씩 떨리고 있었다. 현암의 꽉 쥔 주먹에서 아지랑이 같은 기운 이 피어올랐다. 현암은 지금 엄청난 분노에 휩싸여 있었다.
“현암군……………”
“신, 신부님.”
현암이 꼼짝하지 않고 부릅뜬 눈으로 비어 있는 관들을 응시한채 입을 열었다.
“여기에 널려 있는 시체들은 저번에 길에 나타난 좀비들………… 과 같은 자들일 겁니다.”
박 신부도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지난번 길거리를 헤매던 좀비들은 소금의 맛을 보게 되어 자신의 묘지를 찾아갔던 자들 이고, 지금 여기에 널려 있는 몸뚱이들은 그때 정신을 차렸음에 도 갈 곳이 없어서 그나마 자신의 안식처인 관을 찾아 허덕거리 며 이리로 온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이곳에서 서서히 자신의 비 어 있는 관을 부여잡고 부스러져서 사라져 간 것이 확실했다.
“불쌍하게… 아아………… 그 호웅간이라는 작자는………… 정말……”
뒤에서 준후가 중얼거렸다. 본인은 의식하지 못했지만 조그만 준후의 양손에서는 날카로운 번개가 이글거리고 있었다. 좀비들 에게 소금물을 다 먹였는지 승희가 이쪽으로 오다가 눈앞의 참 상을 보고 욱하면서 걸음을 멈추었다.
“승희야, 무섭니? 허나 이건 무서운 건・・・・・・ 적어도 무서운 건 아냐.”
현암이 조용히 말했다. 극도로 흥분했을 때에 나오는 현암의 낮은 목소리였다. 현암이 오른손을 내밀자 승희의 품에서 월향 검이 소리를 지르면서 튀어나왔다. 승희도 정신을 차려야 했다. 물론 비어 있는 관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고 부스러진 사체들이 널려 있는 것은 무섭고 끔찍한 광경이었다. 그러나 너무나 가엾 고 안쓰러운 광경이기도, 걷잡을 수 없이 화가 나는 광경이기도 했다. 죽은 자들・・・・・・ 즉 좀비들은 아까 승희가 언뜻 들었듯이 한때는 살아 있는 사람이었다. 그런데도 이용될 대로 이용되고 나서도 죽은 뒤의 안식까지 빼앗겨서 저렇듯 처참한 상태에 놓 여 있는 것이었다. 어쩌면 그들은 산 사람들보다도 훨씬 더 불행 한 사람인지도 몰랐다.
“어서 가세나.”
박신부가 우우웅 하고 오라를 몸에서 발하며 앞장을 섰다. 준 후도 걸음을 옮겼다. 현암은 잠시나마 헤어져 있었던 것이 아쉽다는 듯, 월향검을 몇 번 쓰다듬다가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관 무더기 너머로 이상한 도형들이 그려져 있는 철문이 있었다. 부두교의 신령 중 하나인 로아의 상징. 박 신부의 얼굴이 일그러 지기 시작했다.
“열려라!”
박 신부가 노기가 가득한 목소리로 호통을 치며 기도력을 발 하자, 문은 삽시간에 폭죽처럼 파편 하나 남기지 않고 폭발하더 니 없어져 버렸다. 문이 사라지자 안에서 벌어지는 광란의 소리 들이 생생하게 울려왔다.
안에는 커다란 모닥불이 타오르고 있었고, 약초를 태우는 듯 한 몽롱한 연기가 짙은 안개처럼 두텁게 퍼져서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그 안에서는 줄잡아 수십 명이나 되는 자들이 저마다 목 이 잘린 닭을 들고 사방에 피를 뿌리고 있거나 혹은 피를 뒤집어 쓴 채 무의식 상태에서 광란의 춤을 추고 있었다. 피비린내가 자 욱했다. 모닥불 사이로 보이는 저만치 떨어진 곳에서 무슨 소리 가 들려왔다. 아이가 부르짖는 듯한 소리. 그 소리가 들리자 춤 을 추며 쉿쉿거리는 소리를 구령처럼 외치고 있던 수십 명의 좀 비들은 춤을 멈추고 현암 일행이 있는 문 쪽으로 돌아섰다.
“만트라! 전투의 만트라가 분명해요! 화신 아그니! 용신 바루 나의 기운을!”
준후가 소리를 치면서 허공에 좌악 부적을 뿌렸다. 있는 힘을다한술수였다. 원래 밀교는 부적을 사용하지 않았으나 방금 준 후가 뿌린 부적은 도교 전래의 부적에 밀교의 힘을 담은 독창적 인 것으로, 화신 아그니의 부적은 불덩어리가 되어 휘몰아치며 사방의 안개와 냄새를 쓸듯이 지워 나갔고, 부적 중 세장은 용 신바루나의 물의 기운을 담고 검은 기운으로 엉켜서 중앙의 모 닥불로 쏘아져 나갔다. 모닥불에 준후의 부적이 불러낸 기운이 작렬하자 커다란 불길은 폭발음과 함께 터지면서 사방에 재와 불똥을 가득 튀기며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춤을 추던 좀비들 중 몇몇은 채 완성되지 않은 자들인 듯, 갑자기 안개 기운이 사 라지자 고통을 느끼면서 비틀거리기 시작했다. 다시 저쪽에서 귀가 찢어질 만큼 한결 높은 톤으로 만트라의 소리를 지르자 좀 비들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에 맞서서 현암도 충만한 공 력을 모아 사자후의 일갈을 길게 뿜어냈다.
두 소리가 허공에서 얽히면서 충돌하자 사방이 지진이 일어난 것처럼 흔들렸고 좀비들도 견디기 힘든지 마구 쓰러지며 땅에서 뒹굴었다. 승희는 현암의 공력이 달리지 않도록 재빨리 뒤에 정 좌해서 있는 힘을 다해 현암에게 밀어 보냈고, 이에 현암은 소리 를 끊지 않은 채 두 번 세 번 소리의 강도를 올려 갔다.
주변의 약한 전등이나 유리 들이 와르르 깨져 나가기 시작했 다. 안개 너머 저쪽에서 소리를 지르는 만트라도 점점 소리의 강 도를 높이고 있었으나 현암의 사자후의 위력에 조금씩 그 기세가 꺾여 갔고, 혼돈에 빠진 좀비들은 고통스러운 듯 재와 피가 뒤범벅된 땅바닥에서 마구 나뒹굴고 있었다.
저편에서 고통에 못 이겨 귀를 막으며 몸을 뒤틀고 있는 몇몇 사람들이 무기를 들고 달려오는 것이 준후의 눈에 비쳤다. 그들 은 좀비가 아닌 호웅간의 하수인들이 분명했다. 준후는 우보법 을 생각해 냈다. 좀비들은 영이 빠지거나 잠든 채로 움직이는 기 계 같은 존재들이었기에 영적으로 작용하는 우보법의 영향을 받 지 않았지만, 영이나 산 사람들이라면 그렇지 않았다. 준후는 서 둘러서 우보법의 방위를 넓게 밟으면서 크게 일갈했다.
“섯!”
달려오던 자들은 마치 자석에 달라붙듯 그 자리에 철컥 붙어 서 발뿐만 아니라 몸까지 움직이지 못했다. 그중 두 명의 손에는 권총까지 있었다. 백호와 요원들을 잡았을 때 손에 넣은 듯했다. 총질을 하기 전에 붙들어 둔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준후는 놈들 을 땅에 붙이기는 했지만, 너무 여러 명을 잡고 있는 바람에 그 동안은 자신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 박 신부는 현암과 준후가 저 들과 대치하고 있는 동안 혼신의 기도력으로 몸 주위의 오라를 밝게 만들더니 이윽고 차분하면서 확신에 찬 걸음을 옮기기 시 작했다. 박 신부 주위의 오라 막은 마치 바윗덩어리처럼 주변에 부딪히는 지저분한 것들을 튕겨 내며 박살을 내 버리고 있었다. 땅에 뒹굴던 좀비들도 오라에 닿으면 걷어차인 듯 나가떨어졌고, 부두교의 제물들과 의식에 쓰인 사악한 기구들은 폭죽처럼 터져 허공에서 가루가 되어 버리거나 푸른 불길에 휩싸여 타버 렸다. 한마디로 장관이었다.
박 신부가 걸음을 옮기는 것과 때를 같이하여 허공을 돌면서 안개를 없애던 기운들이 눈부신 섬광을 발하고는 사라져 버렸 고, 만트라를 외치던 목소리도 캬아악! 하는 비명만을 남기고는 잠잠해졌다. 양쪽의 소리가 사그라지자 주변은 마치 쓰레기 더 미 같았다. 박 신부는 이제 꺼져 버린 듯 희미하게 피어오르는 향 연기 너머로 말뚝에 묶인 네 명의 사람과, 등만 보이는 울긋 불긋한 이상한 옷을 걸친 남자, 그리고 땅에 쓰러져 있는 한 외 국인 아이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현암은 사자후를 발한 뒤 탈 진했는지 털썩 땅에 주저앉아 운기의 자세를 취했고, 승희도 힘 에 겨웠는지 땅에 반쯤 엎드린 채 헉헉대고 있었다. 준후는 꼼짝 도 하지 못하고 우보를 밟은 그대로 상대와 대치하고 있었으며, 땅에는 수십 명의 좀비들이 의식을 잃고 허우적거렸다.
“아아………….. 가엾은 아이…………….”
박 신부는 고개를 저었다. 방금 있는 힘을 다해 만트라를 뽑아 대던 아이였다. 아이는 기력을 소진한 나머지 땅에 쓰러져 죽어 있었다. 그러나 아이의 입과 코, 귀에서 피 대신 거무스름한 액 체가 흘러나오는 것으로 보아, 그 아이 또한 산 사람이 아닌 좀비였다. 아무리 좀비라 하더라도 어린아이에게 이런 참혹한 짓 을 시킨 호웅간의 만행을 생각하면 그야말로 피가 거꾸로 솟는 듯했다. 박 신부는 안경 너머로 눈빛을 날카롭게 번득이며 옆의 말뚝에 묶인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두 명의 요원들과 백호, 그리 고 윌리엄스 신부가 만신창이가 되어 고개를 숙이고 온통 닭 피 를 뒤집어쓴 채로 묶여 있었다. 백호와 윌리엄스 신부는 그냥 고 개만 숙이고 있었고 두 명의 요원은 눈빛이 풀린 것이 벌써 좀비 가 된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아직은 생기가 느껴지는 것으로 보 아 그들을 풀어 주는 것은 조금 뒤로 미루어도 될 듯했다. 박신 부는 제단 위에 아직도 뒤로 돌아서 있는 호웅간을 향하여 몸을 돌렸다. 박 신부가 제단 위로 향하는 계단에 발을 올려놓는 순 간, 어디에선가 녹음된 소리가 울려 나왔다. 약간 서툴고 이상한 억양이 많이 섞인 우리나라 말이었으나 듣는 데는 별 지장이 없 었다.
“실수였다. 실수만 아니었다면………..?
‘무슨 짓이지? 왜 말로 하지 않고 녹음을?’
박신부는 주춤하면서 호웅간이 주변에 함정을 꾸며 놓은 것 은 아닐까 잠시 주위를 경계했다. 박 신부가 오라 막을 펼쳐 놓 은 상태에서는 총알을 제외한 웬만한 공격들은 박 신부의 몸으 로 뚫고 들어올 수 없었고 호웅간이 저렇게 몸을 돌리고 있는 상 황에서는 설령 총이 있다 하더라도 사용이 불가능했다.
“어떻게 놈들이 소금을 맛보게 되었지? 그것만 아니었다면 아 무도 이곳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것인데.”
승희가 정신을 차리고, 일단 준후의 우보법으로 움직이지 못 하고 있는 악한들에게서 무기를 빼앗고 몸을 묶고 있었다. 현암 은 조용히 운기를 하는 중이었다.
“내 계획이 깨어지다니. 추적자의 얼굴로 바꾸고 영국에서 빠 져나와 여기서 힘을 키워 블랙서클에서 완전히 벗어나려 했는 데. 너희 힘은 정말 강하다. 나는 좀비들의 눈을 통해 너희들의 힘을 볼 수 있었다. 내가 졌다.”
‘이상한데? 이렇게 쉽게 포기하다니. 그리고 블랙서클?’
“블랙서클에 대해서 알아낼 생각은 하지 마라. 나는 말할 수 없으니까. 난 나를 좀비로 만들었다.”
박신부는 자신의 귀를 믿을 수 없었다.
“자, 자신을 좀비로?”
“마지막 궁극의 만트라가 나오면 나는 아무도 당해 낼 수 없는 좀비가 될 것이다. 만약 내가 지더라도 아무도 내 입에서 블랙서 클의 비밀은 알아내지 못할 것이다. 오오오오오.”
숨겨진 녹음기에서 울부짖음과 같은 만트라가 울려 퍼지자 뒤 돌아 있던 호웅간의 입에서 짐승이 내는 듯한 엄청난 고함 소리 가 터져 나왔고 동시에 묶여 있던 두 명의 요원도 괴성을 지르면 서 묶여 있던 줄을 실오라기처럼 끊어 버렸다.
“이, 이런! 놈의 계획은!”
블랙서클이 무엇인지는 몰라도 호웅간은 비밀을 지키기 위 해 자신의 목숨을 걸고 추적자들을 모두 죽이려 한 것이 분명했 고, 그래서 잡혀 온 요원들과 자기 자신을 이용하여 최강의 좀비 를 만든 것 같았다. 도대체 어떤 방법인지, 어떤 수단을 썼는지 조차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주술을 쓴 자신을 희생자로 만들다 니・・・・・・ . 더구나 잡혀 온 요원들과 상대하도록 만든 것은 더더욱 악독한 방법이 아닐 수 없었다. 무엇인지 몰라도 자신이 벗어난 블랙서클의 비밀을 지키기 위해 저런 방법을 쓰다니. 약간 의아 한 느낌도 들었지만, 지금은 차분히 생각할 경황이 없었다.
“너희는 나를 영원히 죽이는 것 외에는 이기지 못할 것이다. 나는 영광된 부두의 화신이 된다. 그리고 나는 끝까지 피로 맹 세한 비밀을 지키게 된다.”
“미, 미친 놈!”
박 신부는 욕을 하면서 만트라가 울리는 녹음기를 찾으려 소 리가 나는 쪽을 살폈다. 계단 밑이었다.
“주의 분노!”
박 신부가 양 주먹을 움켜쥐고 힘을 쓰자 제단의 계단이 와르 르 무너져 내렸고 녹음기도 그 기세에 박살이 난 듯 잠잠해졌다.
*좀비가 되는 것을 의미.
그러나 두 명의 요원은 계속 광란하며 금방이라도 박 신부에게 달려들려 했고, 제단 위의 호웅간도 치렁치렁 옷에 달린 그로테 스크한 장식들을 마구 찢고 있었다.
“신부님, 물러서세요! 호웅간의 주문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현암은 아직도 운기중이었고 악한들을 모두 묶은 승희는 손을 털고 일어섰다. 준후도 숨을 길게 몰아쉬며 소리를 치고 있었다. 물러서지 않고 맞서려는 박 신부의 눈에 막 몸을 돌리는 호웅간 의 모습이 비쳐졌다. 그 모습을 본 박 신부는 그만 너무 놀라서 뒤로 몇 걸음을 물러서지 않을 수 없었다.
“윌, 윌리엄스 신부. 당신이!”
몸을 돌리고 이상하게 포효하는 호웅간, 아니 좀비가 된 그 모 습은 바로 윌리엄스 신부의 얼굴이었다. 놀란 박 신부가 채 어쩌 기도 전에 아래쪽에서는 좀비가 되어 버린 두 명의 요원이, 위에 서는 윌리엄스 신부, 아니 호웅간의 좀비가 괴성을 지르면서 박 신부에게 덮쳐들었다.
“윌리엄스 신부가 두 명이라니!”
준후가 놀라서 소리를 지르자 승희도 박 신부 쪽을 쳐다보았 다. 박 신부가 있는 제단 쪽에서 폭발하는 듯한 굉음이 들리면서 먼지며 나뭇조각 같은 것들이 사방으로 튀었다. 그 와중에 세 개 의 그림자가 휙 날아가 땅에 뒹구는 모습이 보였다.
“신부님!”
준후와 승희가 소리를 지르면서 제단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흙먼지가 이는 가운데 박 신부가 비틀거리면서 일어나고 있었 다. 폭발은 박 신부가 한 번에 엄청난 기운을 썼기 때문이었다. 나가떨어진 세 개의 그림자는 박 신부에게 덤벼들던 세 명의 좀 비였다. 그들은 상당히 심하게 넘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끈질기게 일어나서 이쪽으로 다가왔다.
“나는 괜찮다.”
박 신부는 잠시 숨을 돌리고는 기운을 모았다. 박 신부는 당황 했다. 방금 전 호웅간의 말을 듣고 이제까지 상대했던 좀비들보 다는 훨씬 강한 종류의 좀비이리라 생각했고, 그래서 다급하게 최대의 기도력을 발했는데 허무하게도 놈들의 힘은 그다지 강한 것 같지 않았다.
박 신부는 천천히 다가오는 좀비들에게 눈을 떼지 않은 채 아 직도 묶여 있는 백호와 윌리엄스 신부에게 걸음을 옮겼다. 그런 데 박 신부가 다가오자 묶여 있던 백호가 고개를 번쩍 들면서 소 리쳤다.
“신부님 가까이 오지 마세요! 함정!”
“백호 씨, 무사했군요! 그런데………….”
박신부는 백호가 제정신인 것이 한편으로는 놀라우면서도 함 정이라는 말에 반사적으로 몸을 움츠렸다. 순간 박 신부의 눈에 는 윌리엄스 신부가 갑자기 이상한 눈빛으로 자신을 쳐다보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도대체 무슨…………..”
박 신부가 놀라서 멈칫하는 사이 미처 경계하지 않던 박 신부 의 옆구리에 뜨뜻한 기운이 느껴졌다.
“헉!”
박 신부는 다리의 힘이 풀리는 것을 느꼈다. 묶여 있던 백호 가 놀랍도록 빠른 동작으로 박 신부를 한쪽으로 밀어내고는 곧 장 몸을 날려 다른 쪽에 있던 윌리엄스 신부의 관자놀이를 강타 했다. 윌리엄스 신부도 묶여 있지 않았던 듯 우당탕 소리를 내며 한쪽으로 나자빠져 버렸다.
박 신부는 서너 발 뒤로 물러서서 털썩 땅에 주저앉았다. 박 신부의 옆구리에는 뼈로 만든 단검이 박혀 있었다.
“월, 윌리엄스 신부, 당신은 왜………….”
승희가 비명을 지르며 달려와서 박 신부를 부축했고 준후는 분노의 함성을 지르면서 백호에게로 달려갔다. 박 신부가 기합 을 넣으면서 힘을 주어 옆구리에 박힌 칼을 빼내자 상처에서 피 가용솟음쳤다. 박 신부는 이를 악물고 정신을 잃지 않으려 애쓰 고 있었으나 의식이 몽롱해지면서 몸에서 자꾸 힘이 빠졌다. 승 희가 어쩔 줄을 모르고 상처를 추스르려 애쓰고 있었다. 백호가 달려들어 윌리엄스 신부의 턱을 발로 찍으면서 소리쳤다.
“이놈, 이놈이 진짜 호웅간입니다! 놈은 추적을 피하기 위해 성형 수술을 했어요. 그리고 이번에도 다시 도망치려고 속임수를….”
준후는 백호의 말을 듣자 사정을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호웅간은 영국에서부터 윌리엄스 신부에게 추적을 당하고 있었 다. 그러자 놈은 스스로 얼굴을 추적자와 같은 모습으로 바꾸어 버린 것이다. 도망자가 자신을 쫓는 자의 모습으로 변하는 것만 큼 더 좋은 방법이 있을까? 그리고 윌리엄스 신부를 좀비로 만들 어 자신인 척하게 하고, 자기는 윌리엄스 신부로 가장하여 묶여 있는 척하다가 기회를 보아 도망치려 했다. 의식을 차린 백호 때 문에 자신의 정체가 들통 나자 박 신부를 기습한 것이다.
“에에잇!”
준후가 미처 행동을 취하기도 전에 호웅간은 벌떡 몸을 일으 키면서 이상한 자세를 취하더니 뭔가를 꺼내어 기합 소리와 함 께 울부짖는 소리를 토해 냈다. 그러자 호웅간을 공격하려던 백 호의 몸이 누가 건드리지도 않았는데 허공에서 공중제비로 한 바퀴 돌더니만 뒤로 와당탕 넘어져 버렸다. 박 신부의 입에서도 긴 비명 소리가 터져 나왔다.
“아아악!”
승희는 요동을 치지 못하도록 있는 힘을 다해 박 신부를 붙들 고 있었고 당황한 준후는 어찌해야 할 줄 몰라 놀란 얼굴로 백호 를 돌아보았다. 백호의 몸은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으며 엄청난 고통을 느끼는지 얼굴이 새빨갛게 변하고 있었다. 잠시 후 준후 가 그 소리의 정체를 알아냈다. 호웅간이 이상하게 생긴 나무 막 대기를 꺼내어 흔드는 것이, 필경 사악한 술수를 부리고 있었다. 박 신부가 찔린 뼈로 만든 단검에 사악한 주술이 실려 있는 것임 이 분명했다.
“저주, 호웅간이 저주를!”
호웅간이 길게 소리를 지르자 이번에는 좀비들이 일어나기 시 작했다. 나가떨어졌던 세 명의 좀비 중 윌리엄스 신부의 좀비가 놀라서 어쩔 줄 모르고 있던 준후를 뒤에서 붙잡았다.
“아이고 이런!”
요원이 변해서 된 좀비 두 명은 현암과 승희에게 다가서고 있 었다. 호웅간이 요란하게 웃어 대면서 이상한 억양이 섞인 우리 나라 말로 외쳤다. 녹음기에서 들리던 소리와 똑같았다. 한쪽에 서는 준후가 내동댕이쳐지는 소리가 들렸다. 준후는 윌리엄스 신부에게 차마 저항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제 너희는 내 적수가 못 된다. 하하하.”
순식간에 뒤바뀐 상황에 놀란 승희는 몸을 떨었다. 그러나 그 렇다고 해서 계속 비명을 울리고 있는 박 신부를 그냥 놔둘 수는 없었다. 좀비가 다가오자 승희는 박 신부 앞을 막아섰다. 호웅간 이 나무 막대를 흔들 때마다 백호와 박 신부의 몸은 심한 경련을 일으켰고 비명 소리가 더욱 높아져 갔다.
“착한 척하는 너희 약점이 바로 그거지. 인정이 많다는 것. 내 가 아주 훌륭한 교훈을 가르쳐 주마. 싸울 때 인정사정을 봐주면 이렇게 죽게 된다는 걸 말이다. 으하하하. 너희, 죽고 나면 훌륭 한 좀비로 만들어 준다고 내 약속을 하지. 으하하하하.”
호웅간이 외치는데 쿵 하는 소리가 들렸다. 현암에게 달려들 던 좀비가 쓰러지는 소리였다. 쓰러진 좀비 뒤에서 강한 눈빛을 뿜어내며 현암이 태극패를 꺼내들고 서 있었다. 훈련으로 몸이 잘 단련된 요원이었지만 현암의 주먹에 강한 타격을 받은 듯 쓰 러지고 나서는 움직이지 못했다. 현암은 아직도 신음하고 있는 박 신부와 백호를 돌아보고는 승희에게 눈짓을 한 뒤 호웅간이 있는 쪽으로 뚜벅뚜벅 걸음을 옮겼다. 승희는 현암의 의도를 알 아차리고, 안쓰럽지만 박 신부를 그대로 놓아둔 채 얼마 남지 않 은 소금물이 든 통을 주워 들고 좀비들을 향하여 몸을 일으켰다.
“으으. 막아라!”
호웅간이 소리를 지르자 널브러져 있던 좀비들이 일어나 현암 에게 덤벼들었다. 현암은 양 주먹을 불끈 쥔 채 덮쳐 오는 좀비 들을 향해 오른팔을 크게 휘둘렀다. 팔에 휩쓸린 좀비들은 한꺼 번에 대여섯 명이나 벽에 처박혔다.
“좋은 것을 가르쳐 줘서 고맙다. 고마움의 표시로 나도 이제는 인정사정 두지 않겠다.”
현암은 월향을 빼려다가 아까 다짐했던 것이 생각나서 그만두었다. 먼저 준후를 짓밟고 있는 윌리엄스 신부에게 걸음을 옮겼다. 중간에 두세 명의 좀비가 덤벼들었지만, 현암은 그야말로 인 정사정없이 강펀치를 날렸다.
현암이 좀비가 된 윌리엄스 신부의 멱살을 붙잡았다. 미안한 마음을 접어 두고 윌리엄스 신부의 몸을 장난감처럼 허공에서 휘휘 돌리다가 저쪽의 상자 더미에 던지고 나서 호웅간 쪽으로 몸을 날렸다. 간신히 몸을 일으킨 준후는 현암이 너무나 무섭게 행동하는 것을 보고 뭐라 하고 싶었으나 현암이 남몰래 손짓을 하는 것을 보고는 입을 다물었다. 승희도 이상하다 느끼고는 현 암의 마음을 투시하기 시작했다.
현암은 서두르고 있었다. 아까의 외국인 남자에게 주문을 듣 고 저주에 걸린 자가 어떻게 되는지 들어서 알고 있었다. 그래서 호웅간에게 주문을 발할 시간적 여유를 주지 않으려 했다.
그런데 갑자기 문 저편에서 요란한 소리가 나면서 많은 사람 들의 발소리가 들렸다.
“경찰들?”
준후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수많은 좀비들이 땅에서 기괴한 모습으로 신음했고 또다시 호웅간의 주문에 이끌려서 몸을 일으 키고 있었다. 몰려온 경찰들은 사격 자세로 총을 겨누었으나 좀 비들이 총을 두려워할 리가 없었다. 경찰들이 들고 온 총은 보통 권총도 아닌 K-1이었다. 준후는 발을 동동 굴렀다. 좀비들이 경찰에게 대든다면 경찰들은 발포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살릴 수 있는 사람들이 죽게 되는 것이다. 그것만은 막아야 했다. 준후는 멸겁화의 기운에 화신 아그니의 기운까지 모았다.
“야아아압!”
준후의 손에서 불줄기가 뻗어 나더니 경찰과 좀비 사이에서 치솟았다. 준후의 전력을 다한 불기운은 사람의 키보다 훨씬 크 게 이글거리며 타올랐고, 앞이 보이지 않게 된 경찰들과 좀비들 은 황급히 뒤로 물러났다. 준후는 너무 기운을 쓴 까닭에 머리가 띵했지만 힘을 빼면 주술의 불길이 사그라지기 때문에 이를 악 물고 참아야 했다.
현암은 호웅간에게 덤벼들어 멱살을 잡고 흔들어 댔다. 호웅 간은 저항하는 대신 우 하는 소리를 냈다. 그러자 갑자기 뒤에서 백호와 박 신부의 몸이 펄쩍 튀어 올랐다.
“그만둬! 주문을 발하지 마라!”
“흐흐흐. 내 몸에서 손을 떼라.”
“주문을 발해서 저 두 사람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너도 죽는다! 너를 먼저 없애 버리면 주문도 발하지 못하겠지!”
“흐흐흐. 너는 나를 죽이지 못한다. 너는 산 사람을 죽일 수 있겠는가? 으하하하.”
“입은 뭉개 줄 수 있지!”
현암이 막 주먹을 내리치려 하자 호웅간이 소리쳤다.
“좋다. 맘대로 해 봐라! 입으로 하지 않아도 마음만 먹으면 저 주는 가능하지!”
현암은 씩씩대다가 할 수 없이 호웅간을 놓아주었다. 호웅간 은 기분 나쁘게 웃으며 뒷걸음질을 했다.
“흐흐흐. 마음 약한 자들이여, 이제 나는 간다. 가까이 오지 마 라. 조금이라도 가까이 온다면 놈들의 뼈는 모조리 부서지고 말 것이다. 흐흐.”
호웅간이 보란 듯이 손짓을 하자 백호와 박 신부의 몸이 들썩 이면서 극심한 고통을 느끼는 것이 역력했다.
“그만해! 그만!”
“흐흐흐. 꼬마의 저 불길, 그리고 네놈의 힘, 저 신부 놈의 이 상한 오라. 나는 너희를 안다. 너희는 날 해치지 못해. 그렇게 강 한 힘을 지니고도 너희는 아무 짓도 하지 못한다. 알겠느냐? 너 희는 독하지 못해. 흐흐흐. 너희는 적인 나조차도 해치지 못하고 있어. 내 말이 틀렸나? 크하하하하.”
승희는 불길에 놀라 우왕좌왕하는 좀비들을 헤치고 박 신부에 게 뛰어갔다. 그러고는 있는 대로 힘을 가하자 박 신부의 몸 주 위에 다시 엷어졌던 오라의 기운이 맺히기 시작했다. 박 신부는 고통에 겨운 신음 소리를 내면서도 승희의 손을 꼭 쥐었다.
‘신부님 힘을 내세요! 야훼의 이름으로 일어나세요!
준후는 시간이 갈수록 정신이 몽롱해져 갔다. 다친 몸으로 더 이상 버티기 어려웠다. 손끝에서 일으킨 불길이 사그라지는 모습이 준후의 눈에 비쳤고 코에서 뜨거운 코피가 줄줄 흐르는 것이 느껴졌다.
“아, 이, 이제…… 더・・・・・・ 이상은…… 미, 미안…….”
준후의 의식이 흐릿해져 갔다.
현암의 머릿속에 온갖 생각이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호웅간은 협박을 하며 슬슬 도망가려 하는 중이었다. 이자가 도망치면 또 다시 많은 사람들이 다치게 되지만, 박 신부와 백호의 목숨도 소 중했다. 그렇다고 해서 호웅간이 도망친다고 두 사람이 자유로 워지는 것도 아니었다. 단 한 가지 방법은 호웅간을 단숨에 처치 해버리는 것이었지만 조금이라도 실수라도 해서 호웅간이 저주를 내린다면…………. 아무리 악인이라 해도 그 역시 사람이었다. 현 암은 극도의 번민에 사로잡혔다.
배가 뒤집힌 채 죽어 가던 남자, 애처롭게 떨던 월향검, 부스 러진 좀비의 모습들, 신음하는 박 신부, 의식을 잃어 가는 준후, 그리고 비어 있는 관, 비어 있는 관들………….
웃음소리와 함께 호웅간이 손을 쳐들자 갑자기 우왕좌왕하던 좀비들이 흉포하게 불길로 달려들기 시작했다.
“아아! 저, 저런!”
현암은 이를 악물었다. 호웅간은 좀비들을 난폭하게 만들어 놓고 도망치려 하고 있었다.
‘나, 나는…………… 나는…………….’
현암이 서서히 떨리는 손으로 월향검을 꺼내 들었다. 월향검은 안타까운 듯 소리를 치고 있었다.
‘악인이지만…………… 내, 내 손으로 사람을……………’
현암은 눈을 감은 채 월향을 쥔 손에 힘을 모았다. 우우웅 하면서 기다란 검기가 칼에 맺히기 시작했다.
“많은 사람을 위한다는 건 변명이지. 내가 죄를 짓는다. 하늘 이여………… 용서하소서.”
현암은 뒤를 보인 호웅간을 향해 걷기가 길게 뻗친 월향검을 날렸다.
“안 돼애애앳!”
뒤에서 소리가 들리면서 누가 현암과 호웅간의 중간에 뛰어 들었다. 박 신부였다. 오라를 폭발시키듯 분출해서 몸을 날린 것 같았다. 검기로 길게 달아오른 월향이 찢어지는 소리를 지르면 서 궤도를 꺾어 박 신부를 아슬아슬하게 스치고 지나갔다.
“신 신부님!”
박신부는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나가떨어져 고통스러워하면서도 말을 이었다.
“현암군, 안 돼! 안 돼!”
“시, 신부님・・・・・・ .”
당황한 현암이 말을 더듬었다. 그때 저쪽에서 호웅간이 구석 의 쇠사다리를 타고 기어오르는 모습이 현암의 눈에 들어왔다. 현암이 이를 악물고 태극패를 월향에 비추자 월향은 날카로운 귀곡성을 울리면서 쇠사다리를 잘라 버렸다. 우당탕 소리를 내 며 호웅간이 땅에 떨어져 굴렀다.
준후가 정신을 잃자 내쏘던 불길은 거짓말처럼 사그라져 버렸 고, 기운을 차린 좀비들이 소리를 지르면서 경찰들에게 무차별적 으로 달려들었다. 총성이 한 발 들리자 선두에 섰던 좀비의 머리 가 날아갔다. 박 신부가 울컥 선혈을 토해 내면서 외쳤다.
“현암 군, 안 돼! 저걸 저걸 막아주게! 총을 쏘지…… 쏘지 못하게………… 으윽!”
“신부님・・・・・・ “
“어서! 호웅간은 내게 맡기게 어서! 어서! 또, 또 죽어 가고 있어!”
총성이 여기저기서 들리면서 덤벼들던 좀비들이 픽픽 쓰러지 고 있었다. 현암의 어깨가 크게 요동쳤다. 현암은 오랫동안 참았 던 눈물을 주르륵 흘리며 뒤로 몸을 날렸다.
“쏘지 마아아앗!”
현암의 손에서 월향검이 날았고 좀비를 향한 총 두 자루가 박살났다. 경찰들은 기겁을 하면서 현암에게 총구를 돌렸다.
“안돼! 그만! 쏘지 말아요!”
승희가 양손을 벌리고 경찰들 앞을 가로막았다. 엉겁결에 발사한 총 한 발이 승희의 어깨를 스치고 지나갔다.
“으윽!”
“쏘지 마! 쏘지 마라!”
경찰들 저편에서 누가 소리를 쳤다. 박 요원이었다.
“우리 편이다. 절대 쏘지 마라!”
경찰들 틈에서 누가 박 요원에게 소리를 치자 박 요원은 다짜 고짜 권총을 꺼내 간부인 듯한 그 사람의 머리에 겨누며 외쳤다.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 물러서, 어서!”
좀비들은 이제 경찰 대신 현암에게 덤벼들기 시작했고 현암은 부상당한 승희와 쓰러진 준후를 간신히 막고 서서 미친 호랑이 처럼 좀비들을 집어 던지며 소리를 질렀다.
“쏘지 마라! 이들은 무고하다. 어서 물러나! 어서!”
박신부는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그러나 박 신부의 등 뒤 에서는 오라의 광휘가 환하게 빛나고 있었고 호웅간은 비틀거리 면서 겁먹은 듯 소리를 질러 댔다.
“가까이 오지 마라! 다가오지 마! 오면 모두 죽여 버린다!”
“가련한 자여.”
박 신부는 천천히 호웅간에게 다가섰다. 호웅간은 표독스러운 눈빛으로 박 신부를 향해 나무 막대를 겨누고는 주문을 읊었다. 박 신부의 몸이 전기에 통한 듯 부르르 떨리면서 옆구리에서 검은 피가 벌컥벌컥 흘러 나왔다. 그러나 박 신부는 양팔을 벌려 백호의 앞을 감싸고는 계속 걸음을 옮겼다.
“아아악! 오지 마! 오지 마아앗! 블랙서클의 이름으로 너를….”
“사, 사악한 행동을…… 그….. 그만………….”
“오지 마라!”
호웅간은 미친 것처럼 절규하며 나무 막대를 내던지고 허공에 손가락으로 커다랗게 원을 그렸다. 그러자 검은 기류가 물결치 듯이 원 모양으로 나타나면서 붉은 광채가 주위에 번득였다. “아스타로트 아도르 카메트 페리에이트………….”
“아니! 그건 악마 아스타로트를 불러내는……………”
박신부는 극심한 고통 속에서도 깜짝 놀랐다. 부두교의 주문 이 아니다. 이건 유럽 흑마술의 수법. 그렇다면 아까부터 호웅간 이 지껄인 블랙서클이란 것은 부두교가 아니란 말인가.
“캬아아아악!”
호웅간의 입에서 비명이 터졌다. 그의 이마에는 구멍이 뻥 뚫 려 있었다. 박 신부는 놀라서 뒤를 돌아보았다. 경찰들이 어지러 이 뒤로 물러서고 있는 가운데 박 요원의 총구에서 흰 연기가 모 락모락 일고 있었다.
허공에서 검은 기운이 휘몰아치면서 붉은 번개가 더더욱 심하 게 번득이기 시작했다. 미처 땅에 쓰러지지도 못하고 비틀대던 호웅간의 몸이 갑자기 검은 기류에 휘말리면서 찌그러 들었다.
“크아아아악!”
호웅간의 몸은 삽시간에 마치 요동하는 기류에 녹아들듯 갈가 리 찢겨지더니 조각조각 검은 원 속으로 빨려들었다. 그리고 검 은 원은 폭발하듯 순식간에 붉은 광채만을 남기고 사라져 버렸 다. 그러자 난동을 부리던 좀비들이 일제히 와르르 쓰러져 버렸 고 저쪽에서 백호의 가느다란 신음 소리가 들려왔다.
지친 현암이 털썩 무릎을 꿇었다. 마지막에 호웅간이 불러내려 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리고 또 블랙서클이란 것은 대체 무엇 이기에 호웅간이 그리도 두려워했을까? 그러나 그것도 아주 잠 시, 잠시 동안 현암의 뇌리를 스친 생각의 단편일 뿐이었다. 하 여간…… 일은 일단락됐다.
박신부도 하늘이 빙빙 돈다고 느꼈다. 아무것도 생각하기 싫 었다. 아니, 생각할 기력조차 없었다.
‘내일의 일은 내일 걱정할 것이라.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