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향 7권 20화 – 드래곤본의 행방
드래곤본의 행방
“제길!”
타론은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핏빛, 즉 검붉은 기분 나쁜 색으로 도장해 놓은 코린트의 신형 타이탄. 처음에 방패를 들고 있지 않았을 때 대충 눈치 챘지만, 이 정 도로 대단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대충 눈어림으로 봤을 때 흑기사하고 무게가 비슷한 것 같았는데, 그 파워는 흑기사는 따라가지도 못할 정도로 대단했다. 거기 다가 그 속에 어떤 재수 없는 놈이 타고 있는지, 도대체 인간이라고 보기 힘든 능력을 과시하고 있었다.
투캉!
타론이 길이 3미터가 조금 넘는 그린 드래곤 본으로 만든 드래곤 킬러를 내려찍었으나, 상대는 가볍게 소드 스톱퍼로 막으면서 검을 휘둘렀다. 놀랄 만치 재빠른 움직임. 사력을 다해 방패로 막으면 그 방패에서 주어지는 충격까지 이용해 재빨리 뒤로 몸을 날려 도망치는 얄미운 놈. 거기에다가 엄청난 속도와 도약력이 있다 보니 상대의 공격 속도는 정말이지 눈으로 따라잡기도 힘들 정도였다.
벌써 타론의 안티고네는 방패가 너덜너덜해진 상태였고, 1차 장갑 곳곳에 흠집이 나고 패여 있었다. 타론이 이 정도나 버티고 있었던 것도 강력한 드래곤본으로 만들어진 드래곤 킬러 덕분이었다. 안티고네의 기본 무장으로 채택된 강철검이었다면 벌써 두 토막이 났어도 이상할 게 없을 정도로 상대의 실력은 대단했다.
또 타론이 살아 있을 수 있는 두 번째 이유는 타론이 제법 발악을 하자 고양이가 쥐를 가지고 놀 듯 그걸 즐긴 덕도 있었다. 흑기사들은 안티고네에게 상당히 밀리 고는 있었지만, 어느 정도는 버텨 주고 있었고, 루엔 공작이 조종하는 안티고네는 적기사와 거의 대등한 대결을 벌이고 있었다. 타론의 안티고네만이 곤죽이 나고 있었던 것이다.
이때 마나를 충분히 실은 중후한 음성이 터져 나왔다. 그 음성의 주인은 루엔 공작이었다.
“퇴각하랏!”
루엔 공작의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안티고네들은 흑기사들에게 맹공을 가해 거리를 벌렸다. 그런 후 재빨리 뒤로 돌아서서는 타론이 상대하는 적기사 쪽으로 달려 들기 시작했다. 적기사는 일순간 앞과 뒤에서 적을 상대해야 하는 난감한 사태에 직면하게 되자 뒤로 조금 물러서며 곧장 검을 수평으로 휘둘렀다. 그와 동시에 시 퍼런 강기(氣)가 달려드는 안티고네들에게로 폭사되어 날아갔고, 안티고네들은 재빨리 뛰어올라 피했다. 하지만 안티고네를 추격하던 흑기사들은 안티고네의 그 거대한 덩치에 가려 상관이 쏘아 날린 강기를 포착하는 시간이 조금 늦었다. 때문에 그들은 지척에서 도망치던 안티고네들이 뛰어오른 후에야 앞에서 대기를 관 통하며 무서운 속도로 접근 중인 시퍼런 강기 다발을 발견했고, 그야말로 기겁을 해서는 회피 동작을 취했다.
흑기사들이 일순간 추격을 늦춘 사이 안티고네들은 급속도로 적기사와의 거리를 좁혔다. 적기사는 일단 포위당하는 것은 면하기 위해 재빨리 뒤로 후퇴했다. 아무 리 적기사를 타고 있는 마스터급의 검객이라고 해도, 저런 거대한 덩치들에게 포위당하면 움치고 뛸 공간이 제약되고, 그다음은 죽음이었다.
적기사가 뒤로 재빨리 물러난 틈을 이용해서 안티고네들은 황급히 후퇴를 시작했다. 110톤이 넘는 거대한 덩치의 안티고네들이 시속 1백 킬로미터에 달하는 속도 로 달려가자 지축이 흔들거리고, 땅바닥이 푹푹 파이면서 먼지가 솟아올랐다. 이때 부하들과는 달리 가장 뒤에 쳐져서 적기사와 상대하고 있던 루엔 공작은 자신의 마나를 있는대로 끌어 모아 상대방에게 무시무시한 공격을 퍼부었다.
여태껏 안티고네가 지니는 두터운 장갑과 방패를 이용해서 줄곧 방어만 해 오던 루엔 공작의 공격에 상대가 찔끔한 사이, 안티고네는 살짝 이동해서 화물선과 자 신의 사이에 적기사가 자리 잡게 했다. 그런 후 안티고네는 1.5톤이나 되는 그 거대한 검을 번쩍 들어올리더니 아래로 힘껏 내려치며 시퍼런 강기를 뿜어냈다. 적기 사는 그 기동력을 십분 이용해서 재빨리 옆으로 피했다. 강기 다발을 맞받아 칠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힘 빠지는 바보짓을 할 필요는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루엔 공작이 노린 것은 적기사가 아니었다. 타이탄의 검에서 발사된 마스터만이 형성시킬 수 있는 유형의 검기, 즉 검강 덩어리는 루엔 공작의 의도대로 화 물선을 직격했고, 화물선의 주위에 솟아오른 엄청난 물보라와 함께 두 토막이 되어 침몰해 버렸다. 화물선이 박살 나는 광경을 보며 코린트의 타이탄들은 잠시 동안 흠칫하며 동작을 멈췄다. 그사이에 루엔 공작은 재빨리 안티고네를 조종하여 이 난장판을 벗어나 버렸다.
공간 이동해 온 인물들 중에서 한 명이 슬쩍 앞으로 나서서는 난간을 짚고 화물선의 아래쪽을 바라봤다. 난간을 꽉 잡은 손은 투명하다고 할 만큼 한점의 티끌도 없는, 일이라고는 해 본 적도 없는 귀부인의 손처럼 완벽한 아름다움을 지녔는데도 그녀의 허리에는 고풍스럽고 아름답게 세공된 롱 소드가 매달려 있었다. 20대 중반 정도로 보이는 이 아름다운 여인은 허리까지 기른 갈색의 아름다운 머리카락을 그 섬세한 손으로 슬쩍 쓰다듬어 뒤로 넘긴 후 다시금 난간을 살짝 잡아 몸을 기대면서 싸늘한 어조로 외쳤다.
“멈춰랏!”
약간 앙칼진 듯한 그녀의 말을 성기사단이 들을 이유가 없었지만, 성기사단은 동작을 멈췄다. 보통의 성기사들은 모르겠지만 타이탄에 탑승한, 마나를 다룰 줄 아 는 성기사들은 상대의 음성에 실린 그 강렬한 마나의 기운을 읽었기 때문이다.
여인은 우뚝 서 버린 성기사단의 타이탄들을 오만하게 둘러본 후 위엄 서린 어조로 말했다.
“여기는 아르곤의 영토. 하지만 본국의 근위 기사단을 공격한 이유를 듣고 싶다. 본국은 ‘도우러’라는 상인에게 의뢰해서 아르곤 특산의 양탄자, 금은 세공품, 도 자기 등 황실 물품을 수입했고, 그 호위를 저 세 명의 근위 기사들에게 맡겼다. 그대들은 저 화물에 찍혀 있는 크루마 황실의 문장이 보이지 않는가? 저건 황제 폐하 께 바쳐질 물건이다. 그런데 그걸 운반하는 것을 저지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또, 모든 국가가 다 아는 레디아 근위 기사단의 타이탄인 카마리에를 세 대나 파괴한 이유는? 만약 합당한 이유를 대지 못한다면 나, 미네르바의 이름을 걸고 그대들을 응징하겠다.”
미네르바와 거의 20여 명에 달하는 기사들의 갑작스런 출현에 성기사단장 지넨은 상당한 혼란을 느꼈다. 그녀가 한 말은 충분히 인정할 수 있는 국제적 관례에 합
당한 것이었다. 하지만 자신들은 첩자의 보고를 토대로 확신할 수 없는 사항을 위해 달려왔다. 그리고 곧장 화물선을 향해 공격을 시작했고, 레디아 근위 기사단임 이 확실한 상대를 셋이나 해치웠다. 물론 나중에 심문할 목적으로 죽이지는 않았지만 타이탄은 확실하게 저세상에 간 상태였다.
만약 상대가 별 볼일 없다면 우선적으로 해치워 입을 막아 버린 후 뒷수습을 할 방법도 있겠지만 상대는 미네르바 켄타로아. 저 유명한 헬 프로네의 주인들 중의 한 명이었다. 그녀가 왔다는 것은 그녀의 뒤쪽에 서 있는 자들 또한 근위 기사들이라는 말. 그들과 싸워 승리할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또 확실한 가능성이 없는 상 태에서 크루마 황제의 인장이 찍힌 화물을 수색하자는 말을 할 수 없었다. 첩자가 보고했을 때도 화물은 배를 이용하여 랜트 국가 연합을 거쳐 대해(大海)로 빼돌릴 예정이고, 그들은 또 다른 화물을 가지고 마차로 이곳으로 온다고 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위에서는 이쪽이 아마도 ‘진짜’일 것이라고 보고 주력인 타리아 성기사단 을 비밀리에 이곳으로 돌린 것이었다.
하지만 만약에 이쪽이 진짜가 아닌 ‘미끼’라면? 그걸 모르고 이쪽에서 강경하게 나간다면, 일단 미네르바는 후퇴해서 화물을 검사할 수 있게 해 줄 것이다. 여기는 아르곤의 영토니까 말이다. 그렇게 해서 크루마 제국 황제의 인장을 무시하고 봉인을 뜯어낸 후 화물을 검사했는데, 만약 아니라면 어떻게 될까? 국제적인 망신이 었고, 최악의 경우 전쟁까지도…….
지넨은 자신의 타이탄의 머리를 들어 올린 후 상체를 드러내고는 정중하게 미네르바 공작에게 인사를 건넸다.
“켄타로아 공작 전하, 아무래도 서로 간에 오해가 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저희들은 상부에서 사악한 무리들이 크루마의 정예인 것처럼 위장하여 본국의 보물들을 가지고 달아나는 중이라는 보고를 들었습니다. 이 배는 곧장 출항할 듯했기에 너무 시간이 없어 바로 수색, 체포를 명했고, 귀국의 근위 기사들이 곧장 타이탄을 꺼 내 공격해 왔습니다. 저희들은 처음부터 무력을 사용할 의도가 없었습니다. 저들이 먼저 타이탄을 꺼내 공격을 해 왔기에 부득불 어쩔 수 없었습니다.”
물론 지넨의 말은 모두 사실이었다. 도중에 말하지 않고 건너뛴 부분은 많았지만 말이다. 아무튼 샤이하드를 받드는 크로노스교도는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상대가 숙이고 들어오자 미네르바도 어느 정도 수그러들 수밖에 없었다. 성기사는 신을 받드는 사제. 보통의 무사들과 동급에 놓을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대들의 문장을 보니, 아르곤의 정예인 타리아 성기사단임이 분명한데 왜 수도 근처가 아닌 이런 변방에 있는 거지요? 겨우 해적들 정도라면 변방에 있 는 4개의 성기사단들 중 하나만 동원해도 충분한 것으로 알고 있어요. 내가 잘못 알고 있는 건가요?”
“공작 전하의 말씀이 맞습니다. 하지만 본국에는 지금 정체불명의 무리들이 들이닥쳐 그곳에 2개 기사단이 동원되었기에 이번 임무는 어쩔 수 없이 저희들이 맡 아야 했습니다.”
“좋아요. 그건 그렇다고 하고, 타리아 기사단 정도라면 타이탄 몇 대만 꺼내어 서로 대치하면서 서로 간에 대화를 나눌 수도 있었을 거 아닌가요? 그런데 왜 본국 의 그것도 황제 폐하께서 아끼시는 근위 기사단의 기사들을 다치게 만들었나요? 합당한 이유를 들려줘요.”
지넨은 여자라고는 상상하기도 힘들 정도의 광포한 기운을 내포하고 있는 미네르바의 눈길을 받으며, 쩔쩔 맬 수밖에 없었다. 처음에 상대가 카마리에를 꺼냈을 때 그걸 짐작했어야 하는데……. 도둑질을 하면서 내가 훔쳐갔다 하고 광고하지 않듯, 누구나 다 알고 있는 크루마의 근위 타이탄을 끌고 대담하게 드래곤 사냥을 한 후 꿀꺽할 가능성은 없었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지넨의 등에는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저희 쪽에서 오해를 한 것 같습니다. 아무쪼록 양해를 바랍니다. 저 타이탄에 탄 기사들은 죽지 않았습니다. 물론 타이탄을 고물로 만든 것에 대해서는 사과와 함 께 변상을 해 드리겠습니다.”
물론 여기서 ‘변상’은 이루어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았다. 타이탄 한 대의 가격이 술 한 병 정도의 가격이라면 몰라도…….
“좋아요. 그쪽에서 오해했다니, 어쩔 수 없군요. 하지만 외교 경로를 통해 교황(敎皇)성하(下)께 엄중히 항의할 생각이에요.”
“예, 그건 지당하신 의견입니다.”
“좋아요. 저것들을 실어라.”
“옛, 공작 전하!”
미네르바의 명령에 기사 몇 명이 배에서 하선한 후 각자의 타이탄(카마리에)을 불러낸 후, 엄청난 마나의 소모로 기절한 기사들을 꺼냈다. 그리고는 검을 뽑아 들 고 솜씨 있게 고철이 된 카마리에를 토막 내기 시작했다. 그래야 화물선에 싣기 편하기 때문이다.
미네르바는 부하들이 토막 낸 카마리에의 잔해들을 화물선에 적재하는 것을 건성으로 바라보며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이곳으로 크루마의 화물이 이동하는 것 을 알고 있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 이번 작전을 위해 도우러를 고용해서, 일단 황실 소모품들을 구입하고, 그걸 상자에 담았다. 그런 후 그린 드래곤의 뼈 또 한 상자에 담았다. 그걸 바꿔치기 한 곳은 창고였고, 창고에서 화물선에 곧장 적재된 화물은 황실 소모품이 들어있는 상자들이었다. 왜 미끼로 황실 소모품을 썼느 냐 하면, 그걸 샀다는 것에 대한 정보가 상인들을 통해 널리 퍼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아르곤은 당황할 것이고, 일단 아르곤 영토 내에서 소수의 정규군으 로 전쟁을 벌일 수는 없었기에 조금이라도 시간을 벌려면 어쩔 수 없었다.
어쨌든 그 일은 성공했고, 저기 있는 멍청한 성기사 녀석은 완전히 갈팡질팡하고 있었다. 뭐가 진짜고, 뭐가 가짜인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상대국의 황실 소모품 을 뒤진다는 것은 자살 행위였기 때문이다.
“출항!”
미네르바가 생각에 잠겨 있는 동안 요란한 종소리와 함께 배를 항구에 묶어 두었던 밧줄들이 풀려 나갔고, 화물선이지만 상당히 날씬하게 생긴 크루마 황실 전속 화물선은 서서히 항구를 벗어나기 시작했다. 보통 연안 화물선이 노예들의 노동력으로 움직이는 갤리선(노를 저어 움직이는 배)인데 반해, 이 화물선은 외해에서도 활동이 가능한 거대한 돛들로 움직이는 배였다. 미네르바는 더 이상 육지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멀리 나오자 생각을 정리하고 천천히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똑똑.
“예.”
맑고 청아한 음성이 방문객을 반겼다. 미네르바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선실로 들어섰다. 그곳에는 오랜 여행에 지친 아름다운 여인이 침대에 앉아 있었다. 그녀 는 커다란 눈망울로 방문객을 잠시 바라본 후, 그제야 상대가 누군지 생각이 난 듯 황급히 일어나서는 정중하게 인사했다.
“공작 전하를 뵈옵니…, 컥!”
미네르바의 검이 언제 뽑혀 나왔는지 보이지도 않았다. 그 아름다운 여인이 인사를 하는 그 짧은 순간 미네르바의 검은 검집을 벗어났고, 곧 그 검은 여인의 몸속 에 들어가 있었다. 오른쪽 어깨 깊숙이 검이 꽂힌 여인은 고통에 부들부들 떨면서 가련한 음성으로 말했다.
“왜, 왜..
눈물에 젖은 가련한 여인의 눈을 노려보면서도 미네르바의 눈은 여전히 냉랭했다. 미네르바는 얼음장 같은 어조로 말했다.
“베티 도니안 사제, 너는 아르테미스 신을 섬기는 사제라고 했지? 그렇다면 내가 하는 말을 따라 해라. 샤이하드란 신은 없다. 크로노스교는 사이비(似而非) 종교 다. 오직 신은 아르테미스뿐이다. 따라 햇!”
하지만 베티는 그 말을 곧장 따라 하지 않았다. 베티의 눈에 갈등이 어리기 시작했다. 구차한 삶을 택할 것인가? 아니면 순교자(殉敎者)가 될 것인가? 하지만 그녀 의 생각은 오래 이어지지 않았다. 달의 여신 아르테미스를 섬기는 사제라면 응당 미네르바의 말을 따라 했겠지만, 그것을 순간이나마 망설였다는 자체가 그녀는 아 르테미스의 사제가 아니라는 말과 같았기 때문이다. 미네르바의 검은 곧장 옆으로 쭉 그어졌고, 곧 베티의 몸은 두 토막이 난 채 쓰러졌다. 미네르바는 검에 묻은 피 를 털어 버린 후 검집에 천천히 꽂아 넣으며 중얼거렸다.
“역시…, 생각대로였어.”
미네르바가 베티 사제의 선실에서 나간 후 선원 몇 명이 그 선실에 들어가서 시체를 들고 나왔다. 선원들은 아무런 망설임 없이 잔인하다 싶을 정도로 두 토막 난 시체를 푸른 바다 속에 던져 버렸다. 시체에서 뿜어 나오는 붉은색은 배가 지나감에 따라 생긴 흰 항적에 묻혀 사라져 갔다. 화물선은 멀리 외해로 나간 후 빙빙 돌 아서, 혹시나 모를 추격자를 따돌리며 ‘바다’라는 드넓은 공간 속으로 사라져 갔다.
이렇게 해서 크루마는 엄청난 가치를 지닌 그린 드래곤의 뼈를 세금 한 푼 안 내고 꿀꺽해 버리는 데 성공했다. 물론 차후에 침몰한 화물선에서 나온 잘 포장된 물 에 젖은 카펫이나 각종 금은 세공품 따위를 보고, 아르곤은 크루마가 드래곤 본을 털도 안 뽑고 꿀꺽했다는 것을 알고 광분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일단 아르곤과 크 루마는 인접한 국가도 아니었고, 서로의 국력은 거의 대등한 상태. 전쟁을 벌일 수는 없었다.
물론 아르곤의 기사단 1개가 괴멸에 가까운 타격을 입었기에 크루마로서도 맨입으로 사건을 무마할 수는 없었다. 크루마는 이를 무마하기 위해 눈물을 머금고, 이 번 일을 묵인해 준다면 카마리에에 들어가는 엑스시온 30개를 5년 내에 아르곤에 비교적 저렴한 가격으로 판매하겠다는 제의를 했다. 1.5라는 고출력 엑스시온을 판매하는 나라는 없었기에, 아르곤은 그 제의를 받아들였다.
그들도 이번 전투를 통해 신앙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이다. 아르곤이 자랑하는 성기사단의 타이탄은 너무 구형이었고, 아르곤의 미 래를 위해서는 신형의 고출력 타이탄이 많이 필요했다. 그 사건을 계기로 아르곤은 대대적으로 타이탄을 신형으로 교체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