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마록 말세편 5권 23화 – 에필로그
에필로그
일식의 순간이 끝나고 다시 주변이 밝아지고 있었다. 준후는 헉헉거리며 가쁜 숨을 내쉬었다. 준후가 손에 쥔 뾰족한 돌멩이 에 바이올렛의 피가 묻어 있었다. 쏟아지는 비는 금방 핏물을 씻 어 주었지만 준후는 얼른 그것을 던져 버렸다.
‘내가…………… 내가 잘한걸까?’
준후의 얼굴은 멍했다. 복잡한 상념이 순식간에 주마등같이 머릿속을 휩쓸며 지나갔다. 세상은 어떻게 될까? 내 행동은 과 연 옳은 것일까? 만약 잘못된 것이었다면, 모든 책임은 내가 지 는 것일까? 신부님이나 현암 형, 승희 누나의 죽음은 과연 헛되 지 않은 것일까?
다음 순간, 준후는 망설이지 않고 손을 뻗어 아기의 발을 잡아 당겼다. 그러고는 뾰족한 돌로 바이올렛을 내리찍었다. 그 동작은 거꾸로 나오다가 걸린 아기를 구하기 위해 일종의 절개를 한 것이다. 어두웠기 때문에 망설였지만 번갯불이 내리치는 순간, 준후는 돌을 내리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덕분에 늦지 않게 되 었다.
준후는 그 악의에 가득 차고 검은 기운이 뭉클뭉클 배어 나오 는 아기를 꺼내고 조금 당황하여 망설이다가 탯줄을 이빨로 잘 라 끊었다. 그제야 아기는 소리를 내며 울기 시작했다. 그러나 저주의 목소리는 그쳤어도 그 아기의 주변은 완전히 암흑과도 같았다. 악마만큼이나 불쾌한 음산함과 기분 나쁜 끈끈함이 그 득했다.
준후는 이제 절망했다. 세상은 끝이다. 그들이 틀린 것이다. 이 아이는 분명 세상을 망하게 하고도 남음이 있을 것 같았다. 징벌자는 태어났다. 이제는 되돌릴 수 없다. 그러나…………….
‘나는 아기를 죽일 수 없었어……..’
준후가 허탈한 표정으로 앉아 있는데, 바이올렛이 다시 용 을 썼다. 준후는 의아했다. 여자의 분만에 대해 아는 것은 별 로 없었지만 아기를 낳고 난 다음 산모는 평안해진다고 들었는……
준후가 어쩔 틈도 없이 바이올렛의 다리 사이에서 뭔가가 불 쑥 내밀어졌다. 그때서야 준후는 깜짝 놀라면서 그것을 받아들 고 당겼다. 아이의 머리였다. 바이올렛이 잉태한 아기는 쌍둥이였던 것이다. 준후는 놀랐지만 준후의 놀라움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이럴수가!’
방금 준후의 손으로 받아 꺼낸 두 번째 아기는 너무도 특이했 다. 아기는 갓 태어났음에도 티 하나 묻지 않은 깨끗한 모습이었 으며 그 아기의 주변에는 평화로운 기운과 거룩한 엄숙함이 가 득했다.
준후는 자신도 모르게 소스라치게 놀라며 무릎을 꿇고 앉았 다. 누가 시켜서 그렇게 한 것도 아니고, 머리로 생각하여 그리 한 것도 아니었다. 그 아기는 단지 막 태어났을 뿐인 작은 아기 인데도, 그 거룩함과 고귀함에 자신도 모르게 무릎을 꿇게 된 것 이다.
“이럴 수가!”
준후는 너무도 놀라고 또 놀라워서 눈물을 펑펑 흘렸다. 첫 번 째 아기는 분명 징벌자였다. 그러나 그의 뒤를 이어 태어난 두 번째 아기는 구원자가 틀림없었다. 세상의 운명을 짊어진 두 명 의 아기는 놀랍게도 같은 배 속에서 태어난 것이다.
그렇구나! 그런 것이었구나!’
준후는 그제야 예언을 깨달을 수 있었다. 한빈 거사나 현암이 남긴 이야기도 깨달을 수 있었다. 징벌자를 죽이면 왜 구원자가 사라지게 되는지, 이치는 너무도 분명했다.
두 아기는 준후의 품에서 꼬물거리더니 발버둥치며 둘이 서 로 꼭 껴안았다. 그러고는 두 아기의 어두움과 밝음이 서로 섞여 사라져 갔다. 첫 번째 아기의 어두움도 사라졌고 두 번째 아기의 광명도 사라졌다. 그렇게 준후가 바라보는 잠시 동안, 두 아기를 둘러싸고 있던 기운은 모두 사라지고 두 아기는 보통 아기로 돌 아갔다. 왜 징벌자가 무사히 탄생하기만 하면 모든 일이 끝나는 지도 이제야 명확해졌다. 말세의 시계는 멈추었다. 아니, 당장은 사라져 버렸다. 다시 언제 나타날지 모르지만, 지금 이 순간을 무사히 넘김으로써 구원자를 스스로의 손으로 없애 버릴 뻔했던 위기는 사라진 것이다.
‘아아…………….’
준후는 너무도 신기하고 감격하여 눈물을 흘리면서 두 명의 막 태어난, 꼬물거리는 작은 생명을 들여다보았다. 구원자니 징 벌자니 하는 것보다도, 이제는 새 생명이 태어나 이렇게 움직인 다는 사실이 더없이 신기하기만 했다.
준후는 바이올렛을 기억해 내고 그녀를 돌아보았으나 그녀는 이미 숨이 끊어져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얼굴에는 평안한 미소 가 드리워져 있었다. 그녀의 입술은 차갑게 식었으나 준후에게 이렇게 말을 하는 것 같았다.
‘아이들을 잘 돌봐 주세요.’
‘그래・・・・・・ 그렇구나…….’
준후가 한없는 회상에 잠겨 가슴 벅차게 눈물을 흘리자, 준후 의 품에 안긴 두 쌍둥이가 꼬무락거리며 뭔가를 달라는 듯 울기 시작했다. 준후는 순간 당황했지만 곧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너 무나도 밝고 유쾌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갑자기 준후는 주르륵 눈물을 흘리며 허공을 향해 외쳤다.
“신부님…………! 현암 형! 승희 누나……..! 그리고 모두들…………! 여러분이 옳았어요! 정말로 옳았어요! 세상은 구해졌어요! 만약 세상이 구해지지 않았더라도, 이 아기들이 태어난 것만으로도 그럴 가치가 있었어요!”
그때 준후는 인기척을 느끼고 뒤를 돌아보았다. 그의 눈에, 눈 물을 글썽이고 있는 장승 같은 해밀튼의 모습이 보였다. 그도 몹 시 감동받은 듯했고, 준후에게 뭔가 묻는 듯했다. 말로 하지 않 아도 나머지 사람들은 어디 있느냐는 질문 같았다. 준후는 쓸쓸 히 고개를 저었다. 그러자 해밀튼은 믿을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젓더니만 사방을 번득이는 눈초리로 둘러보며 쏜살같이 뛰어나 갔다.
후는 다시 크게 심호흡을 했다. 이런 마음 약한 생각을 할 때가 아니다. 믿어야 한다. 그리고 자신도 찾아보아야 한다. 준후는 품에 앉은 두 명의 아기에게 이야기를 하며 정글 속을 달리기 시작했다. 해밀튼이 간 방향과는 반대 방향이었다.
“아기들아, 너희들은 어떻게 생각하니? 응? 현암 형은 죽지 않았을 거야. 그래, 현암 형이 얼마나 강한데. 거기다가 승희 누 나가 옆에 있잖아? 그리고 신부님은 약속했어. 나와 약속을 했다 구. 신부님은 절대 약속을 어기시는 분이 아냐. 그래, 틀림없어! 더구나 신부님은 성직자인데, 악마 따위에게 당할 것 같아? 천만 의 말씀. 모두 다 무사할 거야. 모두 다. 아하스 페르츠도 찾으러 갔어. 반드시 구할 거야. 구해 낼 거야!”
준후의 말이 마지막에 가서 조금 격양되자 아기들이 조금 놀란듯 울먹였다.
준후는 얼른 아기들을 얼러 주면서 말했다.
“울지 마. 울지 마. 응? 내가 놀라게 했니? 응? 아니지? 나도 말야, 오래 살 거야. 신부님과 형과 누나가 살았는데, 내가 왜 죽 겠어? 그렇다면 나도 살아남을 거야. 오래오래 살 거야. 그리고 말야, 이제부터 나는 준호와 아라와 수아를 가르칠 거야. 로파무 드 누나도 함께. 모두 함께 말야. 너희도 같이 가자. 응? 이제부 터 같이 가는 거야. 모두 같이 말야……”
준후는 애써 즐거운 듯 말하고 있었지만, 그의 눈에서는 하염 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두 아기를 안았음에도 준후의 발걸음 은 가벼웠다. 준후는 두 아기를 안은 채 깊숙한 정글 속으로 서서히 사라져 갔다.
어느새 그친 것인지, 아니면 태풍의 눈에 들어선 것인지, 비가 어느덧 그치고 바람도 잠잠해졌다. 그리고 일식이 지나간 밝은 태양이 무성한 정글을 비추기 시작했다.
(퇴마록 말세편 완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