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마록 외전 9화 – 보이지 않는 적 3 : 세 번째와 네 번째 방문

랜덤 이미지

퇴마록 외전 9화 – 보이지 않는 적 3 : 세 번째와 네 번째 방문


세 번째와 네 번째 방문

현암이 생각한 작전은 간단하면서도 가능성이 높았다. 계획은 이러했다.

근처 문구점에서 공 하나를 사 온 뒤 그것을 할머니의 집 앞마당에 던져 넣는다.

• ‘공을 찾으러 왔으니 들여보내 주세요’ 하며 준후가 집 안으로 들어간다.

• 집 안으로 들어간 준후는 할머니의 말상대를 하며 친근감을 쌓는다.

• 어느 정도 신뢰가 생기면 ‘할머니하고 자주 이야기하고 싶은데요’라고 하면서 PC 통신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다.

•할머니는 귀여운 준후의 청에 못 이겨, 또는 준후와 통신으로 이 야기하고 싶어져서 자신의 PC 통신 아이디를 가르쳐 주게 된다.

그렇게 성공으로 이어지게 된다는 계획을 듣고 나자 박 신부는 말 했다.

“그런데 할머님께서 상처받지는 않을까?”

“저도 조금 꺼려지는 면은 있습니다만………… 준후가 자주 말상대해 드리면 되죠. 뭘.”

그러면서 한숨을 쉬었다.

“아이한테 스파이 짓이나 시키고. 제 자신이 참・・・・・・ 이것도 퇴마 사가 가져야 하는 인내심입니까?”

박신부는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스파이 짓이라니. 누구에게 해를 끼치는 것도 아닌데. 이나마 생 각한 게 대견하네. 자네 아주 순발력이 대단한데? 몸만 좋은 줄 알았 더니 머리도 좋아. 문무겸전이야.”

“이전에는 몸만 쓸 줄 아는 바보로 짐작했다는 것처럼 들립니다만…………….”

“이런, 내가 그런 생각을 할 리가 있나. 이 사람아.”

“저도 농담이었습니다.”

조금 치졸했지만 그래도 성공 확률이 높은 작전이라 생각되었기 때문에 세 사람은 판자촌 동네 꼭대기까지 함께 올라갔다. 비록 쑥 스러웠지만 현암은 나름대로 열심히 하려고 이미 잊지 않고 문구점에서 축구공까지 하나 사 와 손에 든 채였다. 그런데 비탈길을 올라가다가 준후가 말했다.

“현암 형, 축구는 넓은 데서 발로 공을 차는 거라면서요?”

“그렇게 내가 말했지. 많이 부족한 설명이지만 일단 그것만 알아도 충분…….”

“그런데 이런 언덕길 꼭대기에서 축구공이 날아온다면 뭔가 이상 하게 여기시지 않을까요?”

현암은 아차 싶었다. 그러고 보니 여기는 올라가는 것만도 벅찬 비 탈길이었다. 좁은 골목이라고 축구를 하지 말란 법은 없지만 적어도 이런 비탈길에서는 축구를 할 수 없다. 박 신부도 그 점을 깨달았는 지현암에게 말했다.

“계획에 허점이 있었군.”

그러나 현암은 곧 고집스럽게 대답했다.

“그러면 배구공으로 바꿔 오죠. 아, 배구도 곤란한가. 그럼 아무렇 게나 던져도 되는 고무공으로 바꾸죠. 그러면 문제없을 겁니다.” 

창피하다고 말했지만 은근히 계획에 자부심이 있었는지, 아니면 성실해서인지 현암은 근처 문구점을 찾아 새빨간 싸구려 색깔이 도 는 고무공을 사 왔다. 완벽하게 한다고 고무공을 땅바닥에 몇 번 문 질러서 오래 쓴 것처럼 흠집까지 내는 치밀함을 보였다. 마침내 그 렇게 할머니의 집 앞에 도달하자 현암은 담장 너머로 고무공을 던질 준비를 했다.

“준후야, 내가 공을 던지면 열 정도 센 다음에 들어가는 거다.”

“네, 현암 형.”

“열이야, 열, 우리가 혹시라도 할머니 눈에 띌지 모르니 떨어져 있을 시간이 필요하다.”

“네, 현암 형.”

다짐을 받고 난 다음 현암이 마침내 고무공을 할머니의 집 안으로 던졌다. 그런데 불행한 일이 벌어졌다. 안에서 쨍그랑 하고 유리 깨 지는 소리가 들린 것이다. 박 신부가 한숨을 푹 쉬었다.

“현암군 거 어째…………….”

“아니, 저라고 보이지 않는 곳을 조준할 수 없습니다. 이건 순전히 운으로……..”

박 신부의 어깨가 축 쳐졌다.

“그냥 가세・・・・・・.”

“그・・・・・・ 그래야겠죠?”

“내일, 아니 다음에 다시 오자고. 어이쿠. 서두르세.”

결국 세 사람은 도망치듯 비탈길을 내려와 할머니의 집에서 멀어 질 수밖에 없었다.


그날은 그렇게 실패하고 다시 하루를 건너뛴 다음, 즉 다음다음 날 이 되어서야 마침내 현암의 작전은 빛을 보았다. 유리창을 깨지 않 도록 조심스레 현암이 공을 던져 넣은 후 마침내 준후가 집 안으로 들어가는 데 성공한 것이다.

“잘될까?”

“잘될 거예요. 준후는 똑똑하니까.”

현암과 박 신부는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바깥에서 기다렸는데 한참 시간이 지나도 준후는 나오지 않았다. 그것을 보고 박 신부는 불안해했으나 현암은 단정 지어 말했다.

“준후가 오래 머물수록 성공했을 가능성이 높아지는 거죠. 할머니 와 이야기하느라 시간이 가는 것일 테니까요.”

“그렇겠지?”

“예, 조급하게 생각하실 것 없습니다. 느긋하게 기다리시죠.” 

“그럴까?”

박 신부와 현암이 느긋하게 기다리는데 시간은 더 흘러서 거의 두 시간이 지난 후에야 준후가 할머니의 집을 나왔다. 손에는 공을 들 고 있었다. 기다리느라 지친 두 사람은 기뻐서 다가갔고 현암이 급히 물었다.

“준후야, 할머니 아이디는 알아냈니?”

“네.”

준후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하자 현암은 뿌듯해했다.

“그래, 그런데 왜 이렇게 오래 걸렸니? 할머니하고 이야기 많이나누었어?”

“네? 전 말 몇 마디도 못 했는데요?”

“응? 아니, 그러면 왜 이리 오래 걸렸는데??”

준후는 짧게 말했다.

“벌섰어요.”

현암의 얼굴이 조금 해쓱해지는데 준후는 태연하게 설명했다. 

“요즘 왜 이렇게 공 날리는 놈들이 많냐고, 그제 유리창을 깬 것도 네가 틀림없다고 벌섰어요. 내내 잔소리 듣느라 저는 거의 입도 못떼 봤고요. 그러다가 이제야 보내 주신 거예요.”

“그랬냐?”

“그랬어요.”

“미안하다. 준후야. 그래도 아이디를 알아낸 것은 대화를 통해서……….”

“나올 때 물어봤는데, 절대 안 가르쳐 주려고 하던데요.”

“응? 그럼 어떻게 알았어?”

“어? 그거요? 단말기라는 거 앞에 써 있던 것 같던데요. 영어인지 뭔지로 되어 있어서 그냥 모양으로 외워 왔어요. 이렇게 생겼어요.” 

준후는 손바닥에 아이디를 나타내는 알파벳을 그림으로 그려 보 였다. 조금 획이 꼬부라지긴 했지만 읽을 수 있을 정도였다. 박 신부 는 준후가 현암의 작전 때문에 두 시간이나 벌을 선 것이 안쓰러워 현암을 조금 질책하는 눈초리로 쳐다보았다.

“현암 군. 자네 시력이 엄청나게 좋은 걸로 알고 있는데 전엔 왜 못 봤지?”

“그…… 그게 제가 뒤뜰 쪽에서만 살펴서요. 단말기 앞에 아이디 가 붙어 있을 줄은……………. 준후는 앞마당에서 벌서다가 본 걸 테고요. 눈이 아무리 좋아도 물건을 뚫고 볼 수는 없는………….”

변명을 늘어놓다가 현암은 은근히 고개를 돌렸다.

“뭐, 어쨌든 결과는 좋지 않습니까?”

준후는 밝게 말했다.

“제가 도움이 된 것 같아서 기뻐요.”

현암은 준후가 고마워서 말했다.

“그래! 참 잘했다! 장준후, 넌 참 좋은 녀석이야!”

현암이 다가가서 덥석 잡아 들어 올리려 하자 준후는 질색을 하며 박 신부에게로 도망쳤다.

“잘했다면서 왜 괴롭히려고 해요?”

“어? 준후야, 괴롭히려는 게 아니라 그냥 네가 이뻐서……………”

박신부가 조금 딱딱한 말투로 딱 잘랐다.

“준후가 싫다면 하지 말게.”

현암은 마음에 작은 상처를 입었다. 그래서 말없이 바로 전화국에 달려가 단말기를 신청해 받아 왔다. 그리고 혼자서 저녁 늦게까지 통신 단말기의 자판만 두드렸다. 현암이 상처를 입은 것 같아 박 신 부가 뒤에 내내 앉아 기다렸다. 내색하지 않고 일에 집중하던 현암 은 어느새 통신 화면 속을 헤매고 있었다.

랜덤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