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마록 외전 15화 – 준후의 학교 기행 4 : 수업 시간
수업 시간
첫째 시간이 끝나고 선생님은 밖으로 나갔다. 쉬는 시간 동안 아이 들이 편하게 쉴 수 있게 배려한 것이다. 그러나 준후는 쉬는 시간 이 라는 개념조차 없었다. 여전히 수업할 때와 똑같이 꼿꼿이 앉아 있 었는데, 다른 아이들은 마치 십 년은 감옥에 갇혔다 나온 것처럼 요 란스럽고 활기차게 떠들어 댔다. 준후는 다음 시간에 배울 부분의 교과서만 넘겨 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아니, 뭘 그리 오래 앉아 있었다고 이러지. 나는 열 시진, 아니, 아 니. 시간 단위로 이십 시간이랬나? 이십 시간 동안 꼼짝도 안 하고 한 달도 넘게 버텨 본 적도 있는데.’
준후가 생각하며 교과서만 보고 있는데 누군가 옆에서 툭 어깨를 건드렸다. 그러나 준후는 아예 눈길조차 돌리지 않았다. 신경 쓰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또다시 툭 하고 어깨에 충격이 왔다. 아까보다 훨씬 셌고, 누군가 일부러 친 것이 분명했다.
눈을 돌려 보니 제법 살집이 붙고 덩치 큰 아이가 인상을 박박 쓰 며 노려보고 있었다. 그러나 준후는 조금도 무섭지 않았다. 아이가 인상을 써 봤자 그런 것 따위에 신경을 쓸 준후가 아니었다.
“야, 너!”
덩치 큰 애가 말했다.
그러자 준후는 조용히, 그러나 최대한 정중하게 대답했다.
“왜 그러시나.”
준후는 밀교에서 스님들이 동년배끼리 하던 대화를 흉내 낸 것이 지만 다른 아이들에게는 그 말투가 웃기면서도 신선했는지, 몇은 와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준후의 어깨를 친 덩치 큰 녀석도 어이가 없 는지 웃다가 아까보다 조금 더 인상을 쓰며 말했다.
“너 뭐 하던 놈이야?”
준후는 여전히 태연하게 말했다.
“‘놈’이라는 표현은 함부로 쓰지 않는 게 좋을 텐데. 그건 좋지 못한 표현이라고 알고 있거든.”
준후는 말했을 뿐인데 또 주변에서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덩치 큰 녀석은 자신이 놀림을 받았다고 생각했는지 이번에는 웃 지 않고 얼굴만 더 찌푸렸다. 녀석은 세 번째로 준후의 어깨를 철썩 쳤다.
“너 지금 시비 거냐?”
그러나 후는 여전히 태연하게 말했다.
“나는 그런 적 없어. 남의 어깨를 반복해서 치는 게 오히려 시비라 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준후가 고지식하게 말하자 세 번째로 주변에서 웃음소리가 터졌 다. 그 말에 뭔가 모욕감과 패배감을 느꼈는지 덩치 큰 녀석은 다시 한번 인상을 쓰며 준후의 얼굴 앞에 자신의 얼굴을 바싹 들이대며 말했다.
“내가 이 반짱 성철이다. 너, 개기냐?”
성철이 녀석은 준후를 겁준다고 한 것이지만 불행히도 준후는 ‘짱’ 이 뭔지도 몰랐고 ‘개긴다’는 게 무슨 뜻인지도 알지 못했다.
‘장성철이 아니고 짱성철인가? 짱 씨는 들어 본 적 없는데. 더구나 나를 개기라고 부르는 것 같은데, 개기라는 게 뭘까?’
준후는 고개를 살짝 들어 눈을 약간 비뚜름하게 떴다. 뭔지 모르겠 다는 표정이었는데,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성철의 눈에는 그것이 도 전하겠다는 표현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뭐야, 인마! 너 그렇게 개기다가 작살나는 수가 있어!”
어차피 준후가 하는 말이나 행동을 성철이 이해할 수도 없고, 반대 로 성철이가 내뱉는 말을 준후가 이해할 수도 없었다. 뭔가 녀석이 떠들어 대는 것 같았지만 준후의 입장에서는 이해가 되질 않으니 마 땅히 대꾸할 말조차 찾지 못했다.
주변 아이들 중 성철 편인 아이들은 준후를 흘겨보기도 했고 성철 의 편이 아닌 다른 아이들 몇은 금방이라도 문제가 터질 거라는 생 각에 우려 섞인 눈빛을 보내며 수군거렸다. 그러나 준후는 얼떨떨할 뿐이었다.
‘대체 왜들 이러는 거지. 아니, 신경 쓰지 말자. 현암 형도 얘기했 듯이 내가 이해 못 하는 것도 있을지 몰라. 그러니 가만히 있어야지.’ 준후는 입을 다물었다. 스스로는 겸손해져야 한다고 한 행동이지 만 다른 아이들의 눈에는 자리에 꼼짝도 하지 않고 앉아 있는 준후 의 모습이 굉장히 이상해 보였다. 준후를 보며 거만하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수업 종이 울리고 담임 선생님이 다시 들어오자 여기저기서 시끄럽게 조잘거리며 눈치를 보던 아이들은 여전히 웅성거리며 간신히 제자리에 가서 앉았다.
준후의 눈에는 아까의 일 때문에 아이들이 더 한심스럽기 그지없어 보였다.
‘또 한 번 놀랐다. 아이들이 자제할 줄도 모르고 절제를 모른다는 것은 알았지만, 이렇게 천박한 표현만 쓰는 줄은 몰랐는데.’
아무리 무슨 뜻인지 정확히 알아듣지는 못했어도 성철이가 했던 말이 욕이라는 것쯤은 이제 준후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이미 죽 고 사는 것 이상의 경험을 여러 번 해 본 준후에게는 눈곱보다도 작 은 일일 뿐이었다.
두 번째 시간은 사회 시간이었다. 모르는 단어도 있었지만 다행히 대부분은 준후도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이었다. 국민학교 3학년 수업 인지라 준후에게는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았다. 오히려 너무 답답하 고 지루해서 한숨이 날 지경이었다. 그래도 티 내지 않으려고 애써 교과서만 들여다보고 선생님의 설명에 따라 진도를 맞추려고 해 보 고 있었지만 쉬는 시간 십 분 사이에, 그것도 성철이가 시비 거는 틈 사이에 휘리릭 넘긴 교과서의 내용을 준후는 이미 암기하고 있었다. 수업 내내 준후가 말없이 책만 계속 들여다보고 있자 선생님이 이 상한 기분을 느꼈다. 선생님은 아이들이 이해하기 쉽게 판서를 하며 설명을 하고 있었다. 공부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아이들은 당연 히 칠판을 주목하게 되고, 그렇지 않은 아이들은 딴청을 부리게 마 련이다. 그러나 준후는 이도 저도 아니라,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 교과서만 구멍이 뚫어질 정도로 들여다만 본다. 조금도 한눈을 팔지 않고 한 시간 내내 그러고 있으니 선생님의 눈에 띄지 않을 리가 없다.
“장준후.”
“예.”
선생님이 이름을 부르자 준후가 대답했다. 교실은 또다시 웃음바 다가 되었다. 선생님이 지명을 하면 대답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나거 나 선생님을 마주 보는 것이 보통인데, 준후는 앉은 채로 보던 책에 서 눈도 떼지 않고 심드렁하게 대답만 한 것이다. 물론 준후는 몰라 서 그런 것이지만 다른 이들은 3학년이 그런 기본 예의도 모른다고 생각할 수 없었다.
선생님은 싸늘해진 어투로 말했다.
“선생님이 말하면 자리에서 일어나거나, 고개를 들어야지?”
선생님이 말하자 준후는 순순히 일어났다.
“예.”
잘은 모르는 준후도 선생님의 어조가 싸늘해져서 등에서 땀이 흐르는 중이었다.
‘이상하다. 내가 꼭 일어나야 되는 건가? 현암 형은 이런 거나 알 려 주지 왜 쓸데없는 것만 공부시켜 가지고는…………. 내가 잘못한 걸 까? 야단맞으면 어떻게 하지. 첫날부터…………..’
머리 좋은 아이답게 한 번에 수십 가지 걱정을 해 대고 있는데, 선 생님은 다른 생각을 했다.
선생님은 준후가 딴짓하지 않고 집중해 주는 것에 대해 처음에는 내심 고맙게 생각했다. 하지만 지나치게, 그러니까 눈꺼풀 하나 깜짝 않고 있는 것이 차차 불쾌해져 갔다. 저렇게 오랫동안 집중할 수 있는 아이가 있을 리 없다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실제로 는 다른 생각을 하면서 겉으로만 책을 보는 척하는 것 아닌지 의심 스러워진 것이다. 결국 선생님은 준후에게 시험하듯 말했다.
“장준후.”
“예.”
“내가 지금 뭘 설명했지? 한번 말해 봐요.”
선생님은 큰 뜻 없이 한 질문이지만, ‘스승’으로 받들어야 하는 사 람의 명령이 떨어지자 준후는 긴장했다. 반면 이상하다는 생각도 들 었다.
‘선생님이 설마・・・・・・ 방금 설명한 ‘여러 나라의 전통 놀이’에 대해 말하라고 하신 건가? 아니, 아니겠지. 방금 들은 그걸 모른다고 생각 하실 리는 없잖아.’
밀교에서 질문을 받아 본 적은 많다. 그러나 그곳에서는 누구도 준 후를 국민학교 3학년으로 간주하여 질문한 적이 없다. 당연히 추상 적이고 심오했고, 경우에 따라서는 평생을 바쳐도 풀 수 없는 주술 적 문제에 대한 답을 준후와의 토의를 통해 알아내려 한 적도 있다. 또 주술이 으레 그렇듯이 겉으로 드러나 있지 않으며, 핵심은 겹겹 이 말뜻 사이에 숨겨진 어의나 심지어는 발음이나 억양, 진언 사이 의 간격이나 울림과 어조에 따라 달라질 경우도 있다. ‘학교’라는 신 성한 곳에서 내려진 ‘스승’의 질문의 답이 ‘여러 나라의 전통 놀이’ 같은 것일 리는 없다고 넘겨짚은 준후는 숨을 한 번 크게 들이마시 고 곧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이렇게 말씀하셨지요. 여러 나라의 전통 놀이는…….”
그러면서 준후는 긴장한 상태에서 선생님이 했던 말을 고스란히 외워서 한 글자도 틀림없이 읊었다. 선생님도 입을 떡 벌릴 정도로 토씨 하나 틀리지 않았고, 아이들도 놀란 듯 준후를 쳐다보았다. 준후는 내용뿐만 아니라 말투와 음의 길이, 억양까지도 판에 박은 것처럼 똑같이 하려 애썼다. 물론 태생적인 문제로 인해 음색까지 같을 수는 없었지만, 준후 같은 천재가 아니라면 아무리 최대의 집 중력을 발휘하더라도 흉내 낼 수 없는 경지였다. 다만 문제는, 너무 집중해 똑같이 외운 나머지 듣는 사람에게는 성대모사꾼이 남의 말 투를 흉내 내는 것처럼 들린 것이다.
커다란 웃음소리가 교실을 가득 메웠다. 준후로서는 전혀 상상 도 할 수 없었겠지만, 그 엄청나고 천재적인 집중력의 결과는 단순 히 선생님을 흉내 내어 놀려 먹은 ‘장난’으로 변해 있었다. 선생님은 기가 질려 부들부들 떨며 안색조차 변했다.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에 준후는 멍하니 서서 열심히 머리를 굴렸다.
‘내가…………… 내가 뭘 잘못했지? 난 최대한 집중해서 외웠는데……………. 아, 음색? 하지만 나는 성대 구조가 달라서 그것까지는 무린데……………. 그걸 못 했다고 나를 비웃는 건가? 그래서 선생님이 화나신 건가? 그럼 다들 그렇게 할 수 있단 거야? 나・・・・・・ 난 바보였단 말인가?’
준후는 당황스러운 상황에 눈을 멍하니 뜨고 선생님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 때문에 선생님은 이 건방진 전학생 녀석이 나를 계속 놀 리고 있구나’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선생님 눈에는 준후가 꼿꼿이 서 있는 것조차 거만하게 자신을 도발하는 것으로 보였다. 선생님의 눈에서 불이 튀는 것 같았다.
“장준후!”
“예.”
준후는 즉시 생각하던 것을 멈추고 말했다.
“도대체 그 태도가 뭐지? 선생님이 질문하면 그렇게 하라고 누가 가르쳤어?”
준후는 당황했다.
‘이러면 안 되는 건가? 아이쿠’
허나 준후는 하필이면 이때 (쓸데없이) 현암의 조언을 떠올렸다. ‘네가 모르는 것도 많을 테니, 그럴 때는 무조건 입 다물어라.’ 그 생각을 떠올린 준후는 입을 꼭 다물고 부를 때 말고는 대답하지 않았다. 사실 당황하여 뭐라고 대답해야 좋을지도 알 수 없었다. 그 러나 상황은 점점 안 좋아져만 갔다.
“장준후.”
“네.”
“앞으로 나와.”
“네.”
준후는 순순히 나갔다. 조금도 주눅 들거나 거리끼지도 않는 걸음 걸이였다. 아무리 배짱 좋은 녀석이어도 선생님이 야단을 치려고 앞 으로 불러냈을 때는 주춤거리며 잘못했다는 기색을 띠게 마련이다. 그러나 준후는 주춤거리지도, 울상을 하지도 않고 담담하게 걸어 나갔다. ‘스승’이 벌을 내리면 엄숙하게 받으며 반성할 각오를 다지고 있는 표정이었지만, 선생님의 눈에는 전혀 무서워하는 기색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준후 같은 태도는 보통 국민학교 3학년 아이 수준 에서 보일 수 있는 행동이 아니다. 때문에 오해만 더 샀다.
“손바닥 내밀어.”
“네.”
준후는 순순히 손바닥을 내밀었다. 선생님은 준후의 손바닥을 자 를 들어 몇 번 때렸는데 맞는 준후도 이것이 벌이라는 것을 모르지 는 않았다. 뭔가 잘못했으니 그런 것이려니 하고 묵묵히 최선을 다 해 받아내려는 생각뿐이었다. 그러나 선생님에게는 준후가 체벌조 차우습게 생각한다고밖에 여겨지지 않았다. 또 오해가 깊어졌다.
처음에는 가볍게 벌을 주려던 선생님은, 준후가 뻣뻣하게 서서 전 혀 아프지 않다는 듯 매를 맞자 더욱 화가 치밀었다. 다섯 대, 여섯 대・・・・・・ . 때리는 힘이 계속 세져서 찰싹찰싹 소리가 교실 안을 가득 메웠다.
그런데도 준후의 표정은 조금도 변함이 없었고, 매를 맞는 손도 거 의 석상처럼 움찔하지도 않는다. 준후 스스로는 이게 벌을 받아들이 는 반성의 태도라고 생각한 것이지만, 불행하게도 다른 사람들에게 는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
“장준후, 너・・・・・・ 너!”
급기야 때리다가 자가 부러져 버렸다. 선생님은 울상이 되어서 몇 마디 중얼거리고는 급히 학생들에게 말했다.
“자습해요.”
그리고 선생님은 밖으로 나갔다. 분명 눈물도 보였다. 준후는 도대체 선생님이 왜 그러는지 알 수 없어서 선생님이 벌주었던 자세 그 대로 서 있었는데 그것을 보고 몇몇 아이들은 ‘와!’ 하기도 했고 ‘짱 이야!’라고 외치기도 했다.
‘도대체 짱이 뭐지.’
준후는 멍하니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교실 안의 여자아 이들 대부분은 마치 벌레처럼 준후를 바라보기도 하고, 아예 두려운 눈빛으로 슬금슬금 피하기도 했다.
‘도대체 왜들 그러는거지? 내가 뭘? 난 맞은 것밖에 없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