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왕전생 1권 – 2화 : 불운 회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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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왕전생 1권 – 2화 : 불운 회귀(2)


불운 회귀(2)

세 살 터울의 남동생, 설우결이었다.

“형아, 왜 울어? 또 옆집 무석이 형아한테 맞은 거야?”

설우진의 얼굴이 일순간 경직됐다.

느닷없이 뒤통수를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결아, 그게 무슨 소리니? 네 형이 정말 무석이한테 맞았어?”

어머니의 목소리에 돌연 한기가 서렸다.

평소에는 누구보다 온화한 그녀지만 아들들의 일에서만큼은 어미 호랑이처럼 사나워졌다. 

“어, 어머니, 진정하세요. 결이가 잘못 본 거 예요. 불알친구인 무석이가 왜 저를 때리겠어요?”

설우진이 황급히 어머니의 화를 달랬다. 이리 서둘러 막지 않으면 사달이 날 게 자명했기 때 문이다.

다행히 상황은 조기에 수습됐다. 어머니는 미 심쩍은 눈치였지만 더 이상 그 일에 대해 파고 들지 않았다.

다시 평온한 식사가 이어졌다.


“결이, 너! 왜 엉뚱한 소리를 해서 부모님을 놀라게 해.”

“왜? 틀린 말 한 것도 아니잖아.”

“그, 그거야…….”

설우진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

부정하고 싶지만 어릴 때 그는 자주 맞고 다 녔었다. 유난히 왜소한 체구와 곱상하게 생긴 외모가 문제였다.

그가 낭인 시절 유난히 몸만들기에 열중했던 것도 다 그때의 아픈 추억 때문이었다.

“형아, 그냥 다 불어 버려. 언제까지 맞고 살수는 없잖아.”

설우결이 답답하다는 듯 언성을 높였다.

그 모습에 설우진은 속으로 욱했지만 차마 어린 동생을 상대로 화를 낼 순 없었다.

“결아, 앞으론 형 걱정할 필요 없어. 다신 무석이한테 맞는 일 없을 거거든.”

“나 몰래 무슨 대단한 무공이라도 배운 거야?

“뭐, 그렇다고 해 두자.”

“그럼 나도 가르쳐 줘.”

“넌 안 돼.”

“왜?”

“네가 배우기엔 너무 위험해. 잘못하면 몸이 상할 수 있거든.”

“에이, 치사해.”

설우결이 토라진 얼굴로 화를 냈다.

하지만 설우진의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그가 익힌 감각도는 인위적으로 몸을 혹사시 켜 육체의 감각을 극대화하는 무공이다. 당연 히 몸이 성숙되지 않은 상태에서 수련을 하면 오히려 탈이 날 수밖에 없었다.

“결아, 화 풀어. 이 형아가 다음에 진짜 좋은 무공 가르쳐 줄게.”

“정말?”

“남아일언중천금.”

‘하아, 내가 이런 유치한 말장난이나 하고 있다니.’

설우진은 어린 동생을 달래며 속으로 자신의 신세를 한탄했다. 하지만 어쩌랴, 이것이 과거 로 돌아온 업인 것을.

“아 참, 형아, 사흘 뒤 아버지 생신 때 멋진 장포를 선물한다고 했었지?”

“으, 응?”

설우진은 속으로 깜짝 놀랐다.

막연히 어린 시절로 돌아왔다고만 생각했지 정확히 지금이 언제인지는 제대로 인지하지 못 하고 있었다.

“완성되면 꼭 나 먼저 보여 줘. 장포에 어울리 는 멋진 시구를 지을 테니까.”

설우결이 신신당부를 하며 제 방으로 돌아갔다.

예상치 못한 숙제의 출현에 설우진의 얼굴이 묘하게 일그러졌다.


“도련님, 수실 가져왔어요.”

한가로운 오후.

설우진의 방으로 손님이 찾아왔다. 양 갈래로 땋은 댕기 머리가 인상적인 소녀였다.

‘얘가 누구더라?”

설우진이 소녀의 얼굴을 빤히 쳐다봤다. 삼십 년이라는 긴 시간이 주는 괴리감 탓인지 도통 얼굴을 알아볼 수가 없었다.

“왜, 왜 그렇게 빤히 쳐다보시는 거예요?” 

소녀의 얼굴에 진한 홍조가 떠올랐다. 마치 잘 익은 능금을 보는 듯했다.

‘아, 이제야 누군지 알겠군. 시녀들 중 유난히 부끄러움이 많았던 녀석.’

“우리 매월이 또 얼굴 붉어졌네. 이 오라비가 쳐다보는 게 그렇게 부끄러워?”

장난기가 동한 설우진이 기습적으로 얼굴을 내밀었다.

놀란 매월은 뒤로 물러나려다 실수로 발이 엉 켰다. 그대로 두면 영락없이 뒤로 넘어질 상황 이었다.

바로 그때.

설우진이 득달처럼 앞으로 달려들었다. 그리 고 오른팔을 뻗어 아슬아슬하게 그녀의 등판을 받쳤다.

“괜찮아?”

“네에.”

“많이 놀란 얼굴이네. 미안, 반가워서 장난을 친다는 게 그만.”

“아, 아니에요. 제가 혼자서 놀라 넘어진 걸요”

매월이 연신 손사래를 쳤다.

설우진은 그 모습이 귀여워 저도 모르게 입가 에 미소를 머금었다.

한차례 소동이 있은 후, 설우진은 매월이 가 져온 목합을 열었다. 목합 안에는 시중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다양한 색깔의 수실들이 막대에 돌돌 감겨 있었다.

‘그땐 참 수놓는 걸 좋아했었는데.’

설우진은 붉은 수실을 매만지며 흐릿한 기억의 잔재들을 하나씩 떠올렸다.

어릴 때부터 손재주가 남달랐던 그는 취미로 수를 놨었다.

여느 집 같으면 사내놈이 무슨 헛짓거리냐며 욕을 들었을 테지만, 그의 집에선 오히려 독려했다.

자수 실력은 해가 갈수록 일취월장했다.

처음엔 단조로운 문양 서너 가지도 실수투성이였는데 오 년 차에는 그 어렵다는 사군자마 저도 완벽하게 수를 놨다.

“도련님, 이번엔 뭘 수놓으실 거예요? 지난번에 보여 주셨던 매화 정말 아름다웠었는데…………”

얼굴이 제 색으로 돌아온 매월이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그가 만들어 내는 작품은 시녀들 사이에서 언 제나 큰 관심사로 통했다.

그만큼 설우진의 자수는 특별한 구석이 있었다.

사내의 투박한 손놀림으로 저게 가능할까 싶 은 소재들도 그의 손만 거치면 하나의 작품이 됐다.

특히 아름다움이 강조되는 꽃 자수의 경우 특 유의 섬세함이 생동감을 불어넣어 창밖에 노닐 던 나비들까지 안으로 불러들였다.

“이번엔 평소의 것과는 전혀 다른 느낌의 수 를 놓을 거야. 아주 오랫동안 맘에 담아 두고 있 었던 녀석이 있거든.”

설우진이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다음 작품을 예고했다.


“너희들, 아까 도련님 방에서 무슨 일이 있었 는지 알아? 글쎄 도련님이 넘어지는 날 구하기 위해 팔로 요 등을 감싸 안았다니까.”

“매월이, 너 또 혼자서 소설 쓰니?”

“소설 아니라니까. 진짜 이 등에 도련님의 손길이 고스란히 묻어 있어.”

시녀들이 머무는 비월관 안.

매월을 비롯한 세 명의 시녀가 한자리에 둘러 앉아 수다를 떨어 대고 있었다. 그런데 그 중심 에는 놀랍게도 수줍기로 유명한 매월이 있었다

“오늘 본 도련님은 그동안 내가 알고 있었던 도련님과 너무 달랐어. 스스럼없이 말을 건네 는 건 둘째 치고, 정말 박력이 넘쳤다니까.” 

사람이 갑자기 그렇게 변하기도 해?”

주방 담당인 시호가 큰 눈을 동그랗게 치켜뜨 며 반문했다. 이에 세 사람 중 가장 나이가 많은 미령이 말을 이었다.

“머리에 큰 충격을 받으면 그럴 수 있지. 내가 아는 언니도 전에 마차 사고로 머리를 크게 다친 후로 사람이 완전히 달라졌어.”

“그럼 우리 도련님도 머리를 다친 걸까?”

“설마! 그런 일이 있었으면 마님이 가만히 계셨겠어.”

설우진의 갑작스러운 변화를 두고 그녀들 사 이에 여러 의견이 오갔다. 하지만 끝내 속 시원 한 결론은 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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