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왕전생 1권 – 19화 : 위기 초래(4)

랜덤 이미지

낭왕전생 1권 – 19화 : 위기 초래(4)


위기 초래(4)

“어떻게 비단이 하나도 없을 수 있죠? 일주일 간격으로 상단이 납품을 하잖아요.”

“그게, 우리와 거래하던 상단들이 모두 물건 을 도둑맞았다고 합니다. 그들로부터 배상금을 받기는 했지만, 문제는 고객들의 선주문을 맞 출 수 없다는 데 있습니다.”

최근 장사가 잘되면서 설가 포목점은 다수의 고객들에게 미리 주문을 받았다. 특히, 비단과 같은 고급 재료의 경우 확보해 놓은 물량이 많 지 않아 대부분이 선주문이었다.

선주문은 대량으로 물량을 확보함으로써 구 매비를 아낄 수 있는 장점이 있는 데 반해, 기일 을 맞추지 못할 경우에는 되레 돈과 신뢰도를 함께 잃을 수 있는 위험성도 갖고 있었다.

“어떻게 상단들이 한꺼번에 도둑을 맞을 수 있죠?”

“저도 그것이 의문입니다. 무한은 다른 지방 에 비해 상대적으로 치안이 좋은 편에 속하는 데…………”

‘어째 찝찝하다 했더니 기어코 일이 터졌네. 추잡한 새끼들, 하지만 곧 뼈저리게 후회하게 될 거다. 그런 쪽으론 네놈들보다 내가 전문가 거든.”

설우진의 두 눈이 먹잇감을 노려보는 맹수처 럼 날카롭게 번뜩였다. 설가 포목점에 닥친 위 기는 그에게 낯설지 않은 상황이었다.

겉으로 보이는 것과 달리 상단들 간의 암투는 상상 이상으로 치열했다. 뒷골목의 지배자인 흑도패들조차 그 야비함에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그 과정에서 다수의 낭인들이 장기판의 졸 이 되어 움직였다.

설우진도 한때 상단들 간의 암투에 낀 적이 있었다.

십룡대가 해체되고 홀로 움직일 때였는데 보 수가 다른 의뢰보다 높아 덜컥 수락을 하고 말 았다.

이후, 갖가지 더러운 임무에 투입됐다. 산적 으로 분해 상행을 덮치기도 하고, 일부러 손님 으로 위장해 장사를 방해하기도 했다. 당시, 그 암투에 참여했던 낭인들 중 설우진의 성과는 단연 압도적이었다.

“누나가 저희 가게에 주문한 옷이 봉황 잠의 였죠?”

“응.”

“내일 진시까지 숙소로 가져다 드릴게요.”

“그게 가능해?”

“제가 옆에서 어머닐 보조하면 가능해요. 그러니까 안심하고 숙소로 돌아가세요.”

설우진이 강한 자신감을 내비쳤다.

모용설은 못 미더웠지만 이제 와서 다른 가게를 찾을 수도 없는지라 그냥 그 말을 믿어 보기로 했다.

모용설이 돌아간 후, 설우진은 곧장 풍야시전 으로 향했다. 그리고 설가 포목점과 비슷한 규 모의 마가 포목점을 찾았다. 마가 포목점은 시 전을 근간으로 성장한 곳으로 다양한 품목의 비단을 취급하고 있었다.

“여기 대리 비단 있어요?”

설우진이 가게 안을 가볍게 훑어본 후, 점원 에게 원하는 비단을 주문했다.

대리 비단은 운남성에서 생산되는 물건으로 소위 가성비가 좋은 비단이었다. 색감이 조금 떨어져서 그렇지 비단의 결이나 촉감은 어떤 유명 비단과 견주어도 크게 뒤지지 않았다. 

“대리 비단은 꽤 비싼데………….”

점원이 앳된 얼굴의 설우진을 보고 말꼬리를 흐렸다.

이에 설우진은 전낭을 열어 은전 열 냥을 꺼 냈다. 설가 포목점에서도 대리 비단을 취급하 고 있기에 그 시세는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다. 점원은 은전을 받아 든 뒤에야 부리나케 대리 비단을 가져왔다. 은은하게 붉은빛이 감도는게 꽤 고급스러워 보였다.

설우진은 비단 상태를 세심하게 살폈다.

어릴 때부터 봐 온 게 비단인지라 그 질을 파 악해 내는 건 그에게 일도 아니었다.

‘시세를 정확히 맞춰서 그런지 제대로 된 물건 을 가져왔네. 어리다고 사기 치려고 했으면 한 바탕 엎어 버리려고 했는데.’

구매한 비단의 상태는 매우 양호했다.

결은 반듯했고 촉감은 솜털처럼 보드라웠다. 설우진은 그길로 집으로 향했다. 이제부터는 시간과의 싸움이었다.


“여보, 괜찮아요? 얼굴색이 많이 어두운데.” 

“휴우, 미안하오, 부인, 내가 괜한 일을 벌여서.”

“무슨 그런 말씀을 하세요. 당신은 상인으로 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에요. 문제가 있다면 당신이 아니라 그들에게 있겠죠.”

설무백은 하루 종일 무한 전역을 바쁘게 누비 고 다녔다. 조금이라도 비단 물량을 확보해 볼 요량이었다. 하지만, 성과는 미미했다. 두 배의 가격을 치르고서라도 비단을 구매하겠다고 했지만 단 한 곳도 그 제안을 수락하지 않았다.

사실, 초공당이 주관한 회합만 잘 이뤄졌어도 이렇게까지 마음이 조급해지지는 않았을 것이 다.

한데, 안타깝게도 회합은 열리지 못했다. 주관자인 초공당이 정체를 알 수 없는 이들에 게 암습을 당해 목숨이 위태로운 지경에 이르 렀기 때문이다.

그 소식은 발 빠르게 무한 전역에 퍼져 나갔 고, 회합에 참여키로 했던 상단주들은 모두 약 속된 날짜에 나타나지 않았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소. 이대로 기 일을 넘겨 버리면 그동안 쌓아 왔던 설가의 명 성이 한순간에 무너져 내릴 텐데………….”

설무백은 하루하루 피가 말랐다.

선주문으로 받은 물량만 삼백 필이 넘는다. 그런데 약속한 기일까지는 채 보름도 남지 않았으니 마음이 조급해질 수밖에 없었다.

“따로 사람을 고용해 다른 지역에서 물량을 확보하는 건 어때요?”

여소교가 나름의 방법을 제시했다.

하지만 설무백은 힘없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도 그 방법을 생각해 보지 않은 건 아니오. 한데, 무한 땅을 벗어나선 그만한 물량을 확보 하기도 힘들뿐더러 시일이 너무 많이 소요되오 어떻게든 무한 땅에서 매듭을 지어야 하오.”

무한은 사통팔달의 교통 요지다.

전국에서 손꼽힐 정도의 상권을 형성할 수 있 었던 것도 그 지리적 이점이 크게 작용했다. 그런데, 그 반대급부로 무한 땅을 조금만 벗 어나도 필요한 물건을 구매하기가 힘들었다. 대부분의 시장이 소규모로 운영되는 탓이다. 설무백이 여소교의 의견에 부정적인 뜻을 나 타낸 것도 다 거기에서 기인했다.

“부인, 너무 걱정 마시오. 내 반드시 방법을 찾아내리다.”

“믿어요, 대신 등에 짊어진 그 무거운 짐 저한 테도 나눠 주세요. 혼자보다는 둘이 낫잖아요.”

여소교가 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 미소에 설무백은 콱 막혀 있던 가슴이 조 금이나마 트이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늦은 밤.

설우진의 방 안에서 밝은 빛이 새어 나왔다.

그는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그 위로 은은한 붉은빛이 감도는 잠의 가 넓게 펼쳐져 있었다.

“생각보다 시간이 너무 지체됐어. 평소대로 해선 시간을 맞추기 힘들겠는데…”

설우진은 난감한 표정으로 잠의를 내려다봤 다.

그의 계획은 본래 정오부터 잠의에 수를 놓을 예정이었다. 그런데 집에 돌아오니 어머니가 계시지 않았다. 장씨에게 물어보니 아버지를 돕기 위해 길을 나섰다는 것이다. 때문에 그는 세 시진을 헛되이 날려 보내야만 했다.

‘더 이상 지체할 틈이 없어. 일단은 밑그림부 터 그리자.’

설우진은 끝을 가늘게 깎아 낸 목탄을 들고 잠의 위에 밑그림을 그려 나가기 시작했다. 그가 구상한 밑그림은 한껏 아름다움을 뽐내 는 두 마리 봉황이었다.

슥슥 스스슥.

설우진의 손끝이 거침없이 잠의 위를 내달렸다.

깃털의 문양이 다른 두 마리 봉황을 표현해야 했기에 대호 자수 때보다 더 섬세한 손놀림이 필요했다.

잠시 후.

밑그림이 완성됐다.

시간에 쫓겼는데도 불구하고 결과물은 탄성 이 나올 정도로 정교했다. 특히, 서로를 애틋하 게 바라보는 두 쌍의 눈동자가 인상적이었다.

랜덤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