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왕전생 2권 – 14화 : 황룡승무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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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왕전생 2권 – 14화 : 황룡승무연 (2)


황룡승무연 (2)

“이제 슬슬 개시를 해 볼까.” 

사내들이 경연장 쪽으로 다가오자 설우진은 미리 준비해 뒀던 북을 안 고 앞으로 나섰다. 그리고 북채를 들고 힘차게 북을 두들겼다. 두두둥 두두둥.

우렁찬 북소리가 사위에 울려 퍼졌다.

그 소리가 어찌나 큰지 갈 곳을 잃고 방황하던 이들의 시선이 한데 모였다.

“이제 곧 저희 조의 경연이 시작됩 니다.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 는 경연이니 다들 조금씩만 시간을 내주세요.”

설우진이 북소리만큼이나 큰 목소 리로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잠시 후 하나둘 사람들이 경연장 앞으로 모여들었다.

설우진은 그들을 반으로 나눠 길게 뻗어 있는 무대 좌측과 우측에 배치 시켰다.

“오늘 여러분께 저희 조에서 선보 일 경연은 유행을 선도하는 선남선 녀들의 의상제입니다. 보시고 마음 에 드시면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 주 십시오. 이제 시작합니다.”

한껏 분위기를 띄운 뒤 설우진이 살짝 무대 옆으로 빠졌다. 그와 동 시에 무대 뒤에서 간드러지는 비파 음률이 흘러나왔다. 비파 연주가 취 미라던 조인창의 솜씨였다.

“이거 시작은 되게 거창한데.”

“원래 속 빈 강정들이 시작만 거창 한 법이야. 괜한 기대는 접어 두자 고.”

사람들의 반응은 대부분 부정적이었다.

바로 그때.

뒤쪽에서 초조한 얼굴로 자기 차례 를 기다리고 있던 모용미가 무대로 걸어 올라왔다. 여전히 품이 넓은 장포로 그 늘씬한 몸매를 가리고 있었다.

-미야, 지금이야. 화끈하게 장포를 벗어 던져.

무대 중앙에 도착했을 무렵 모용미 의 귓전으로 자스민의 전음이 전해 졌다.

이에 모용미는 잠시 망설이는 듯하 더니, 눈을 질끈 감고 장포의 매듭 을 풀어 옆으로 내던졌다.

순간 사위가 적막해졌다.

장포에 가려져 있던 창파오가 모용 미의 늘씬한 몸매를 한껏 드러내면 서 사내들의 시선이 온통 무대 중앙 으로 쏠려 버린 것이다.

-뭐 해? 아까 연습한 대로 무대 끝까지 걸어갔다 와야지. 무참히 널 찼던 그 개자식한테 보여 줘. 네가 얼마나 대단한 여자인지.

‘그래. 어쩌면 저 멀리서 날 보고 있을지도 몰라. 늦었지만 이제라도 그 사람 앞에서 당당해지겠어.’

모용미가 용기를 냈다.

감았던 두 눈을 크게 뜨고 앞으로 당당하게 걸어 나갔다. 그녀가 걸음 을 내디딜 때마다 창파오의 절개선 사이로 탄력 넘치는 허벅지가 아찔 한 자태를 드러냈다.

여기저기서 침 삼키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느새 남자들은 창파오의 매력에 흠뻑 빠져 있었다.

경연장의 분위기는 빠르게 달아올랐다. 멀찍이서 창파오를 봤던 사내들이 앞다퉈 달려왔고 경연장 주변 은 인산인해를 이뤘다.

하지만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모용미의 뒤를 이어 좀 더 노출이 심한 여관도들이 차례차례 창파오를 입고 무대로 나섰다. 도드라지는 가 슴 크기만큼이나 남자들의 탄성도 갈수록 커져만 갔다.

그렇게 분위기가 최고조에 다다랐 을 때.

이국적인 미모를 자랑하는 자스민 이 마지막으로 무대에 올랐다.

바람결에 흩날리는 금발 아래 창파 오를 찢고 나올 듯 풍만한 가슴과 세류요처럼 가는 허리 그리고 절개선 사이로 비치는 탄력 넘치는 허벅지가 사내들의 시선을 한눈에 사로 잡았다.


“대, 대체 무슨 수작질을 부린 거 냐?”

구름처럼 몰리는 설우진의 경연장 을 보고 백무영은 또 한 번 아찔한 패배감에 휩싸였다.

무려 두 달여간에 걸쳐 준비한 회 심의 경연이었다.

이번만큼은 서천회도 남천회도 자 신의 상대가 될 수 없다 확신했는데 생각지도 못한 복병이 모든 걸 망쳐 버렸다.

“설우진.”

끓어오르는 분기를 참지 못하고 백 무영은 애꿎은 벽에 화풀이를 했다. “저 녀석 어지간히 열 받은 모양인 데. 하기야 저런 수로 사내들을 끌 어모을 줄은 꿈에도 생각 못 했겠 지.”

소예상은 좀체 분을 삭이지 못하는 백무영을 보며 입가에 가는 미소를 머금었다.

“회주님, 그렇게 대놓고 좋아할 일 이 아닙니다. 아무리 그 신입이 맘 에 들어도 공과 사는 구분하셔야지 요. 녀석을 중심으로 제사의 세력이 만들어진다면 우리 쪽도 전처럼 좋 을 순 없습니다.”

“인마, 그런 걱정일랑 붙들어 매. 녀석의 눈에는 결정적으로 우리와 같은 욕망이 없어. 뭔가를 이루고 싶은 마음이 없는데 세력을 만들고 일군다! 그게 가능할 것 같아?” 

소예상은 두 달 전쯤 설우진과 고 대하던 만남을 가졌다.

뭐, 특별하게 한 건 없었다.

그저 식당에서 함께 밥을 먹고 전 망 좋은 지붕에서 함께 술잔을 부딪 쳤다.

그때, 소예상은 깨달았다.

설우진은 강호에 아무런 뜻이 없음을.


창파오를 입은 여관도들이 화려한 의상제를 끝마치고 무대 뒤로 돌아왔다. 무대를 둘러싸고 있던 사내들 은 그녀들의 퇴장을 아쉬워하며 하 나둘씩 자리를 떴다. 대신 애정의 증거로 들어올 때 받았던 철전 일 문을 무대 옆에 마련된 항아리 안에 집어넣었다. 순식간에 항아리의 삼 분지 이가 채워졌다.

“자, 이젠 네 차례야. 남심은 이미 빼앗았으니 이제는 여심을 휘어잡아 야지.”

설우진이 무대 뒤에서 잔뜩 얼어 있는 남궁벽의 등을 떠밀었다. 남궁 벽은 안 나가려 잔뜩 다리에 힘을 줬지만 설우진의 힘을 이겨 내기엔 역부족이었다.

“꼭 나가야 되냐? 철전은 충분히 모은 것 같은데.”

“남자가 약속을 했으면 지켜야지. 그리고 경연 끝나고 거하게 회식을 하려면 저 정도론 어림없어. 최소한 항아리 주둥이까지는 닿아야지.”

단호한 설우진의 대답에 남궁벽은 모든 걸 체념한 얼굴로 무대에 올랐 다. 남궁벽의 등장에 근처에 남아 있던 사내들은 대부분 눈살을 찌푸 리며 돌아섰다. 하지만 잘생긴 그의 얼굴은 근처를 배회하던 여인들의 시선을 잡아끌었다.

“저 사람 너무 잘생기지 않았니?”

“응. 마치 석공이 빚어낸 조각 같 아.”

“우리 여기서 구경하고 가자. 어차피 다른 경연은 시시해서 눈에 들어 오지도 않았잖아.”

“그래. 얼른 앞에 자리 잡자.”

여인들이 하나둘씩 무대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지금이야. 벗어.

무대 옆쪽으로 나와 있던 설우진이 옷깃을 젖히는 자세를 취해 보이며 남궁벽에게 전음을 보냈다. 남궁벽 은 이를 악물고 몸에 걸치고 있던 장포를 풀어 냈다.

“어멋.”

여인들의 입에서 일제히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넝마 같은 옷 사이로 남궁벽의 근육이 내비친 것이다.

-가만히 있지 말고 앞으로 걸어나가. 그리고 무대 끝에 다다랐을 때 단추를 뜯어 버려.

설우진의 요구는 점점 과감해졌다. 끓어오르는 울화에 남궁벽은 무대 를 거칠게 내디디며 마지막 순간에 단추를 잡아 뜯었다.

공중으로 튀어 오르는 네 개의 단 추.

활짝 열린 앞섶 사이로 터질 듯한 가슴근육과 王자 배근육이 만천하 에 드러났다.

“꺄악.”

비명에 가까운 탄성이 여기저기서 흘러나왔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인 남궁벽은 민망한 마음에 어찌할 바를 몰라 했 다.

그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설우진 은 항아리 안에 쌓여 가는 철전을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다들 머리는 장식으로 달고 다니 는 거야! 대체 언제까지 그 빌어먹 을 신입 관도 놈한테 이 백무영이 휘둘려야 되냐고.”

황룡승무연이 끝난 뒤, 백무영은 중천회의 간부들을 소집해 놓고 속 에 쌓인 울분을 토해 냈다. 그의 지 랄맞은 성질을 아는지라 간부들은 말문을 꾹 닫고 그의 화가 가라앉길 기다렸다.

하지만 백무영은 좀체 흥분을 가라 앉히지 못했다.

입관 환영연 때부터 어제 끝난 황 룡승무연까지, 그는 설우진에게 일 방적으로 휘둘렸다.

입관 환영연 때만 해도 눈치 없는 신입 관도의 반항 정도로 여기고 가 볍게 넘길 수 있었는데 회심의 황룡 승무연까지 망치고 나니 도저히 참 을 수가 없었다.

바로 그때, 양수가 조심스럽게 입 을 열었다.

그는 천하 상단에서 백무영을 보필 하기 위해 보내온 자로, 머리 굴리 는 데 제법 능했다.

“회주님, 협의지행을 이용해 보시면 어떻겠습니까?”

“협의지행? 적사호가 매년 실시하는 그 바보 같은 짓거리를 얘기하는 거냐?”

백무영이 눈가에 이채를 띠었다. 협의지행은 ‘문무겸전의 인재 양 성’ 과목에서 매해 실시하는 일종의 현장학습으로, 이론으로 배운 협의 를 실제 몸으로 펼쳐 보이는 것을 목적으로 했다.

백무영도 신입 시절에 참가를 했었 는데 당시에 화전민들을 약탈하는 산적들을 베었었다.

“협의지행의 대상은 따로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그 말은 곧 우리 쪽 에서 인위적으로 만들 수 있다는 뜻이죠.”

“그러니까 네 말은 놈이 해치울 악 당을 이쪽에서 섭외해 함정을 만들자?”

“네. 제 놈이 아무리 뛰어난 실력 을 지녔어도 실력 좋은 낭인들을 악 당 곁에 붙여 놓으면 자연스럽게 사 고를 가장해 제거할 수 있을 겁니 다.”

양수는 아무 거리낌 없이 위장 살인을 언급했다.

사실 상계는 명분을 따져 싸우는 강호보다 암중 암투가 더 극심하게 벌어졌다.

돈 앞에서는 부모 형제도 없다는 말이 흘러나올 정도다.

그런 환경에서 자라 온 탓에 양수는 사람 목숨보다 돈의 값어치를 더 중히 여겼다.

그건 천하 상단의 백무영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뒤탈이 생기진 않을까? 다른 사람 도 아니고 적사호 수업인데.”

“그러니까 흔적이 남지 않도록 전 문가를 써야지요. 우리 상단과 오랫 동안 합을 맞춰 온 낭인들이 있으니 그 부분은 크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하긴, 돈으로 안 되는 게 어디 있 겠어. 정 흔적이 남을 것 같으면 좀 무리를 해서라도 상급 낭인을 섭외 하면 되지.’

백무영은 양수의 제안을 긍정적으 로 받아들였다.

그 일을 실행하려면 그간에 모아 둔 비상금까지 털어 내야 할 판이었 지만 설우진을 눈앞에서 치워 낼 수 만 있다면 그 돈이 하나도 아깝지 않았다.

“돈은 얼마가 들어도 좋으니까 확 실하게 판을 짜. 실수는 용납 못 한 다는 거 알지?”

“염려 마십시오. 제 사전에 실패라 는 단어는 없습니다.”

양수의 두 눈이 스산하게 번뜩였다.


황룡승무연이 끝나고 설우진은 학관 내에서 일약 유명 인사로 떠올랐다.

특히 여관도들의 관심이 부쩍 많아졌다.

“네가 일품점 아들이라는 소문이 있던데, 사실이야?”

“일품점의 명품 자수가 네 솜씨라 는 얘기도 떠돌던데.”

“지난번 황룡승무연에서 선보였던 창파오, 우리도 주문할 수 있을까?” 

설우진이 지나는 길목마다 여관도 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었다. 대부분 은 그의 신상에 대해서 캐물었고 나 머지는 창파오를 주문했다.

‘우리 가게가 그렇게 유명한가? 일 품점 아들이란게 뭐 그리 대단한 일이라고 저리들 호들갑이야.’

설우진은 일품점 아들이라는 말에 자지러지는 여관도들을 보고 고개를 설레설레 내저었다.

요 며칠간 그는 여관도들의 적극적 인 구애에 시달렸다. 어딜 가든 꼬 리처럼 따라붙었다. 심지어 어떤 여 관도는 변소까지 따라 들어오기도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괜한 짓을 벌였 어. 졸업해서 쌍룡맹에 들어갈 것도 아닌데 굳이 힘들게 천 자 조로 올 라갈 필요가 없었잖아.’

설우진이 황룡승무연에 참가하게 된 계기는 단순했다. 중간고사에서 기대만큼의 성적을 내지 못해서다.

황룡학관은 그 명성에 어울리게 시 험 난이도가 상당히 높았다. 수업 시간마다 앞자리에 앉아 열심히 수 업을 경청했지만 날 때부터 책과 함 께해 온 동기들을 따라잡기엔 역부 족이었다.

그래서 점수를 벌충할 요량으로 황 룡승무연 참가를 마음먹었다. 이런 후폭풍이 기다리고 있을 줄은 꿈에 도 모른 채.

“너희들, 교정에서 왜 이렇게 소란 을 피우는 거야? 다들 벌점이라도 받고 싶어?”

설우진이 여관도들을 떨쳐 내지 못 해 잔뜩 인상을 쓰고 있을 때 낯익 은 얼굴이 구원의 손길을 내밀었다.

봉황회주 남궁지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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