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결사 (1)
일품점 서안 지점은 삼 층 높이의 화려한 건물로, 사람들이 많이 오가 는 대로 한복판에 자리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입구에는 설우진이 착안 해 낸 전시용 허수아비가 하나의 상 징처럼 세워져 있었다.
“이쪽입니다. 안으로 들어가시죠.”
고간이 설우진을 지점 안으로 안내 했다.
환불 대란의 여파인지 가게 안에는 손님으로 보이는 이는 없고 잘 차려 입은 점원들만 삼삼오오 모여 이야 기를 나누고 있었다.
‘가게가 다 망해 가는데 점원들 분 위기가 왜 이리 밝아?’
설우진은 점원들의 표정에 주목했 다.
그들 대부분은 얼굴에 미소를 띠고 있었다.
점원의 입장에서 쉬는 것 자체는 분명 기분 좋은 일이겠으나 가게가 문을 닫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짓 는 저 미소들은 어딘가 모르게 이질 적인 느낌이었다.
“여긴 손님이 왔는데 응대도 안 하나?”
설우진이 언성을 높였다.
점원들을 불러 모으기 위해 다분히 의도된 행동이었다. 한데 점원들은 미적미적 움직였다.
‘이 새끼들이 지금 장사를 하겠다 는 거야, 말겠다는 거야?”
설우진이 발끈해서 다시 한 번 소 리를 지르려 했다.
한데, 바로 그때 가게 안쪽에서 다 급한 발소리와 함께 한 미녀가 모습 을 드러냈다.
그녀는 백설처럼 흰 피부에 커다란 눈을 가진 미인이었고 도톰한 입술 에는 미인 점이 찍혀 있었다.
“손님, 응대가 늦어진 점 사과드립니다.”
미녀 점원이 깊숙이 허리를 숙였다.
“사과를 할 건 당신이 아니라 저치 들 같은데.”
설우진이 점원들을 손가락으로 가 리켰다. 하지만 점원들은 부끄러워 하기는커녕 되레 인상을 구기며 작 은 목소리로 욕을 해댔다.
그 모습에 미녀 점원은 적잖게 당 황하는 눈치였다.
“죄송합니다. 다들 일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손님 응대에 미숙합 니다.”
“저건 미숙하다기보다 일부러 손님 들 열 받게 하려고 작정한 것 같은 데?”
“그, 그건…….”
“괜히 저치들 때문에 일부러 변명 해 줄 것 없어. 당신이 문제가 아니 라 저딴 놈들을 고용한 점장이 문제 니까.”
설우진이 대놓고 점장을 씹어 댔 다.
그런데 점장이란 말에 미녀 점원이 금방이라도 울 듯한 표정을 지어 보 였다.
“가, 갑자기 왜 그래?”
설우진은 습막이 번지는 그녀의 얼 굴을 보고 적잖게 당황했다.
“죄송합니다. 제가 그 못난 점장입 니다.”
설우진은 그녀가 털어놓는 뜻밖의 얘기에 옆에 나란히 서 있던 고간을 쳐다봤다.
-이게 어떻게 된 거야?
-그, 그게, 저도 잘………… 처음 보고 를 받았을 땐 분명 사십 대 후반의 황태성이란 자였습니다.
-그럼 우리 쪽에 보고도 없이 점 장을 바꿨단 거야?
그게 사실이라면 정말 어처구니없 는 일이 벌어진 것이었다.
지점장을 선발하는 권한은 총점주 에게 있었다.
총점주가 지점을 짓는 데 한 푼의 돈도 투자하지 않았다고 해도 일품 점이란 이름을 사용하는 한 총점주 의 뜻에 무조건적으로 따라야 했다. 물론, 여기에도 단 한 가지 예외의 경우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부득이한 사정으로 점 장이 부재중일 때다.
-환불 사태가 벌어진 게 언제부터지?
-일 개월 전입니다.
-그럼 그 전에는?
-특별한 문제는 보고되지 않았습 니다. 오히려 매출 면에선 비슷한 시기에 문을 연 다른 지점들보다 월 등히 나았습니다.
‘이제야 어떻게 된 상황인지 이해 가 되는군. 놈들은 우릴 물먹일 작 정으로 점장에게 위해를 가했어. 점 장이 갑작스럽게 일을 볼 수 없게 되면서 그 친인인 딸이 엉겁결에 점장 대행을 맡게 됐겠지. 그리고 저 점원 놈들도 비슷한 시기에 매수가 됐을 거야. 일부러 장사를 방해할 목적으로.’
설우진은 머릿속에서 조각을 하나 하나 맞춰 나갔다.
점장이 부재중인 상황을 가정하니 좀체 진전이 없던 조각 맞추기에 속 도가 붙었다.
“그만 좀 짜고, 옷이나 좀 보여 주지.”
“어떤 옷으로 찾으시나요?”
“이 가게에서 가장 비싸고 좋은 옷.”
“그럼 이쪽으로 오세요.”
미녀 점장이 설우진을 삼 층으로 안내했다. 삼 층에는 화려한 문양이 수놓인 갖가지 옷들이 비치되어 있 었다. 그리고 그 밑에는 입이 쩍벌 어지는 가격이 명시되어 있었다.
“이 청룡 무의는 일품점 본점에서 만들어진 옷입니다. 천수신녀의 작 품이니 그 품질은 걱정하지 않으셔 도 됩니다.”
미녀 점장이 자신 있게 푸른 빛깔 의 청룡 무의를 추천했다.
고급스러운 비단에 수놓인 청룡은 금방이라도 구름 사이를 뚫고 승천 할 듯 박력 넘치는 모습을 보여 줬 다.
‘겉보기엔 전혀 문제가 없어 보이 는데.’
설우진은 청룡 무의를 받아 들고 옷감을 세밀하게 관찰했다. 불량이 난 원인을 찾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눈을 치켜뜨고 찾아봐도 불 량이라 얘기할 만한 결함은 보이지 않았다.
“이것보다는 그게 더 맘에 드는데.”
청룡 무의에서 만족할 만한 성과를 얻지 못하자 설우진은 그 옆에 세워 져 있던 적룡 무의를 집어 들었다. 청룡 무의와는 정반대의 느낌이 나 는 옷이었다. 한데 이번에도 결함은 발견되지 않았다.
이에 설우진은 접근 방법을 달리해 보기로 했다.
“최근에 이 가게에서 판 물건들이 죄다 불량이 났다고 말들이 많던데.”
“그, 그건 오해입니다. 저희 쪽에서 살펴본 결과, 옷 자체에는 아무런 문제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그럼 대체 왜 환불 소동이 연이어 벌어진 거지?”
“그게 옷 자체에는 문제가 없었는 데 이상하게 사람이 입기만 하면 극 심한 가려움증을 호소했습니다.”
미녀 점장이 그간에 있었던 환불 사태에 대해 소상히 전했다. 설우진 은 천천히 그 내용들을 머릿속으로 복기했다.
‘옷은 정상인데 사람이 입기만 하면 탈이 난다. 대체 원인이 뭘까?’
설우진은 열심히 머리를 굴렸다.
혹시 몰라 전생의 기억까지 모두 끄집어냈다.
그러길 한참, 설우진은 갑자기 청 룡 무의를 몸에 걸치기 시작했다. 그러고 옷을 입은 채로 한동안 제자 리에 서 있었다. 마치 무언가를 기 다리는 사람처럼.
“이걸로 구매하지.”
반 각여 만에 설우진이 옷을 벗어 그녀에게 건넸다.
미녀 점장은 뛸 듯이 기뻐하며 청 룡 무의를 소중히 품에 안고 일층 으로 한발 앞서 내려갔다. 포장을 하기 위함이었다. 포장은 비싼 값을 지불하는 손님에게 최선의 예를 다 하겠다는 일품점의 의지가 담겨 있 었다.
“공자님, 왜 그 옷을 구매하신 겁니까?”
“확인을 해 볼 게 하나 있어서.”
설우진의 눈빛이 날카롭게 번뜩였 다.
잠시 후, 두 사람이 일 층으로 내 려왔다. 언제 포장을 끝냈는지 미녀 점장이 청룡 무의가 든 포장지를 설 우진에게 내밀었다.
설우진은 포장지를 건네받으며 슬 쩍 뒤를 쳐다봤다.
우연인지 몰라도 포장지를 받는 순 간 한 점원의 입가에 의미심장한 미소가 번졌다.
“역시, 이게 문제였어.”
“원인을 찾아내신 겁니까?”
“그래, 이 포장지를 손목에 감싸고 한번 비벼봐.”
설우진이 청룡 무의가 든 포장지를 고간에게 건넸다. 고간은 그의 뜬금 없는 행동에 의아해하면서도 무슨 뜻이 있을 것이라 짐작하고 포장지 를 손목으로 가져갔다.
슥슥슥.
처음엔 별다른 느낌이 없었다. 그저 포장지가 까칠하다는 정도. 그런데 시간이 좀 더 흐르자 갑자 기 포장지를 갖다 댔던 손목 부위가 가렵기 시작했다.
“어때?”
“많이 간지럽습니다.”
“그럼 이제 뭐가 문제였는지 알겠지?”
“서, 설마 옷이 아니라 포장지에 수작질을 해 놓았던 것입니까?”
“정답, 요 포장지 안에는 간지럼을 일으키는 독초가 섞여 들어가 있어. 포장지를 만들 때 갈아 넣은 거지.”
설우진이 얘기하는 독초는 환장초 였다.
먹으면 환장할 정도로 몸이 가렵다 하여 붙여진 이름인데, 들판에서 자 생하는 풀이라 손쉽게 구할 수 있었 다.
“환장초의 독은 독성이 그리 강하 지 않아. 그래서 아까처럼 손목에 비벼 댄 것처럼 강한 자극을 주지 않으면 보통 하루 정도 후에나 전신 에 독기가 퍼지게 되지. 그 점 때문 에 사람들은 착각을 한 거야. 포장 지가 아니라 옷 때문에 가려움증이 생겼다고.”
“참으로 치밀하고 간교한 술책이군 요.”
“그래. 어떤 놈인지는 몰라도 제법 머리를 굴렸어.”
“그럼 이제 어찌하실 생각입니까?”
“답을 찾아냈으니 그 문제를 낸 놈 을 찾아야지.”
설우진이 섬뜩한 미소를 얼굴에 떠올리며 다시 가게 안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이번 일로 일품점의 인기도 한풀 꺾이겠지?”
“형님, 그야 여부가 있겠습니까! 입담 좋은 거간꾼들을 대거 고용했 으니 섬서뿐 아니라 중원 전역에 일 품점이 불량품을 판다는 소문이 빠 르게 퍼져 나갈 것입니다.”
화려하게 치장된 방 안.
두 명의 중년 사내가 서로의 얼굴 을 마주 보며 술잔을 부딪쳤다. 두 사람의 얼굴은 한 핏줄을 타고난 듯 꼭 닮아 있었다.
“그자는 아직도 수결을 않고 버티고 있느냐?”
빈 술잔을 내려놓으며 당수철이 물었다.
“아이고, 말도 마십시오. 독종도 그 런 독종이 따로 없습니다. 몇 날 며 칠을 굶겼는데도 신의를 저버릴 수 없다며 끈덕지게 버티고 있습니다.”
“음, 그거 골치로구나. 그자가 수결 을 해야 공자님이 원하는 대로 일품 점의 서안 진출을 막을 수 있거늘.”
“형님, 너무 걱정 마십시오. 그놈이 아무리 신의를 중시 여겨도 제 딸년 을 눈앞에 들이대면 고집을 꺾을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미리 손을 써 둔 게냐?”
“네. 조금만 기다리시면 일품점의 점원들이 그 계집을 이곳으로 데려 올 것입니다.”
당수명이 입가에 비릿한 미소를 떠 올렸다.
“꺄악!”
가게 안에서 황월련의 외마디 비명 이 새어 나왔다.
“이, 이게 무슨 짓이에요?”
“점장님, 얌전히 따라가시죠. 점장 님을 꼭 뵙고 싶어 하는 분이 있습 니다.”
“지, 지금 가게 사정이 어떤 줄 뻔 히 알잖아요. 보고 싶으면 이쪽으로 직접 찾아오라고 하세요.”
황월련이 점원의 손길을 거칠게 뿌리쳤다.
이에 점원의 얼굴이 사납게 구겨졌다.
“이년이 좋게 말로 하려고 했더니 도통 들어 먹질 않네. 그 고운 얼굴 에 상처라도 좀 내줘?”
점원이 소매 안에서 날카로운 예기 를 풍기는 단도를 빼 들었다.
하지만 그녀는 두려움에 벌벌 떨면 서도 끝까지 따라나서기를 거부했 다.
“이년이 정말 끝까지 해보자는 거 야!”
잔뜩 열이 받은 점원이 그녀의 얼 굴을 향해 거침없이 단도를 휘둘렀 다. 어찌 피할 새도 없이 단도가 그녀의 뺨을 스치며 긴 혈선을 남겼 다.
“이건 맛보기에 불과해. 다음엔 요 뺨이 아니라 그 가슴에 칼침을 놔 버릴 거야. 그러니까 얌전히 따라나 서. 괜히 예쁜 가슴 흉지게 하지 말 고.”
점원이 피 묻은 단도를 그녀의 가 슴으로 가져가 천천히 피를 닦아 냈 다. 그의 시선이 노골적으로 가슴에 머물자 그녀는 수치심에 어찌할 바 를 몰라 했다.
한데, 바로 그때, 가게 문이 열리 며 낯익은 얼굴의 두 사람이 안으로 들어왔다.
‘뭐야? 벌써 독이 반응한 거야?’
점원이 두 사람의 얼굴을 확인하고 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가 전해 듣기로 환장초의 독은 하루 정도 지난 뒤에야 몸에 반응한 다고 했다. 그런데 저 둘이 옷을 사 간 건 불과 일각여 전이었다.
‘하아, 이 계집만 데려가면 끝나는 일이었는데 귀찮게 됐군. 보아하니 철모르는 부잣집 도련님과 그 시종 같은데 적당히 어르고 달래면 지레 겁먹고 돌아가겠지.’
점원으로 분해 있던 진태걸은 어깨 에 힘을 잔뜩 주며 두 사람 앞으로 걸어갔다.
그는 서안 뒷골목에서 방귀깨나 뀐 다는 흑도패에 속해 있었다. 흑월랑이란 이름으로 활동하는 곳인데, 설 우진이 휘하에 거둔 풍야패보다 그 규모가 다섯 배 이상 컸다.
“손님, 보다시피 저희 영업 끝났습 니다. 볼일이 있으시면 내일 오시 죠.”
진태걸이 위압적인 어조로 말을 걸 어왔다.
손에 들고 있던 단도를 묘기 부리 듯 휘돌리는 건 덤이었다.
하지만 설우진은 그 모습을 보고 씩 웃었다. 하는 꼴이 우스워서였다. 이에 발끈한 진태걸이 목소리를 높 였다.
“어이, 귓구멍을 틀어막았어? 영업 끝났다고 하잖아. 험한 꼴 보고 싶지 않으면 조용히 꺼져.”
“쯧쯧, 이놈의 가게는 점원 교육이 엉망이네. ‘손님은 왕이다!’라는 말 몰라?”
설우진이 진태걸을 보며 혀를 찼다.
“이 새끼가 정말, 나랑 한번 해보자는 거야?”
진태걸이 붉게 상기된 얼굴로 설우 진의 멱살을 틀어쥐었다. 하지만 옷 만 구겨질 뿐 아무리 힘을 줘도 설 우진의 몸은 위로 들리지가 않았다.
“고간, 그 아가씨 눈 좀 잠깐 가리 고 있어. 꽤 험한 꼴을 보이게 될 것 같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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