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왕전생 3권 – 14화 : 분란 조장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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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왕전생 3권 – 14화 : 분란 조장 (3)


분란 조장 (3)

“자네 그 소식 들었나?”

“무슨 소식? 혹, 마천의 잔당이라 도 출연한 겐가?”

“에이, 그런 일이면 진즉에 그곳으 로 달려갔겠지. 실은 오늘 정오쯤에 풍연에서 큰 다툼이 일었다고 하 네.”

“자네 입에서 크다는 말이 나올 정 도면 보통 싸움은 아니었겠군?” 

“그렇지, 마침 그곳에서 내 친우 하나가 식사를 하고 있었는데 혈룡보의 상관추가 풍연으로 쳐들어와 운검문의 제자들을 다짜고짜 공격했 다고 하더군.”

“상관추라면 명인전 일회전에서 운 검문의 공걸을 꺾은 자가 아닌가. 승부에서 이긴 자가 왜 그런 짓을?”

“음, 은연중에 도는 소문이기는 한 데 상관의 망나니 동생이 운검문 의 제자들에게 죽임을 당했다고 하 네. 동생 사랑이 지극하기로 유명한 상관이니 당연히 복수를 하겠다고 날뛰었겠지. 그런데 더 믿기지 않는 소식은 그 상관추가 뒤늦게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 다는 것일세.”

한낮에 풍연에서 벌어진 흉사는 사람들의 입을 통해 서안 전역에 알려 졌다.

그 과정에서 일부 사실이 왜곡되어 전해지기도 했지만, 전체적인 사실 의 틀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이 일로 급하게 회의가 소집됐다. 대회를 주관하고 있는 쌍룡맹의 인 사들이 모두 한자리에 모였다. 

“정말 소문이 사실입니까?”

상관추와 공걸의 시합을 맡았던 심 사관 남궁천호가 무거운 표정으로 입을 뗐다.

“음,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네만 상관홍의 시체에 실제 운검문의 흔 적이 남아 있었네.”

“운검문의 아이들은 뭐라고 하던가요?”

“자신들은 전혀 모르는 일이라고 하더군. 시합이 끝난 이후로 풍연을 나선 적이 없다고.”

쌍룡무회를 주관하고 있는 제갈유 성이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그간에 조사한 바를 자세히 밝혔다.

“다들 이 일을 어찌하면 좋겠는가? 허심탄회하게 의견들을 내 보게.” 

제갈유성이 간부들의 의견을 물었 다.

혼자서 결정하기엔 사안이 중하다 여긴 것이다.

“이번 일은 무조건 공론화를 시켜 명명백백하게 사실 유무를 밝혀야 한다고 보오.”

혈룡보의 장로 치군성이 가장 먼저 의견을 냈다.

그는 상관추와 평소에 친분이 두터웠다.

“상관 형제는 본보의 훌륭한 재 원이었소. 두 형제의 억울한 넋을 달래기 위해서라도 운검문의 제자들 을 잡아들여 응분의 대가를 치르게 해야 한다고 보오.”

“치 장로, 우리 말은 바로 합시다! 상관추는 풍연에 쳐들어와 운검문의 제자 둘을 해쳤소. 그것도 잔혹하게. 죄를 물어야 한다면 운검문의 제자 들이 아니라 상관추에게 물어야 하 지 않겠소?”

모용세가의 장로 모용황이 치군성의 의견에 반박하고 나섰다. 그는 개인적으로 운검문의 문주와 연이 닿아 있었다.

“모용 장로, 일의 선후를 따져 보 시오. 추아가 풍연에 쳐들어 간 것 은 제 동생이 운검문의 손에 당한 것을 확인한 직후였소. 당신 같으면 동생이 그런 꼴을 당했는데 가만히 있을 수 있었겠소?”

“운검문의 제자들은 풍연을 떠난 적이 없다고 했소. 이는 풍연의 주 인과 점원을 통해서 확인된 사실이 오.”

둘 사이에 치열한 갑론을박이 오갔 다.

양측의 세력을 대표하는 최고 연장자들이었기에 다른 이들은 그 대화 에 쉽사리 끼질 못했다.

“내가 직접 나서서 놈들을 심문하 겠소. 본보의 섭혼술이라면 능히 그 진실을 밝혀낼 수 있을 것이오.” 

치군성이 섭혼술을 사용할 것을 제 안했다.

혈룡보는 패천성에서 떨어져 나간 세 개의 세력 중 하나로 각종 이기 에 능했다.

특히 섭혼술의 경우 정심한 수련을 쌓은 승려도 그 심중에 감춰진 육욕 을 끄집어내게 할 정도로 그 위력이 대단했다.

-어찌하면 좋겠는가?

모용황이 제갈유성 쪽을 슬쩍 쳐다봤다.

-말로는 해결이 안 되는 상황이라 면 그 방법도 나쁘지 않다고 봅니다.

-혹, 혈룡보 쪽에서 야료를 부리지 는 않겠는가?

-모두가 보는 앞입니다. 치 장로가 아무리 꼬리 아홉 개 달린 여우라 해도 그런 담대한 짓은 벌이지 못할 겁니다.

은밀하게 오가는 전음 속에 모용황 은 마음의 결정을 내렸다.

“자네의 뜻에 따름세. 대신 섭혼술 로 밝혀낸 내용에 대해서는 한 푼의 의심도 없이 받아들여야 하네.”

모용황이 치군성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이에 치군성은 득의만만한 얼굴로 섭혼술을 펼칠 날짜와 장소를 공지 했다.


“이것 참 난감하군. 분탕질을 해 줘야 할 인간이 스스로 목숨을 끊다 니.”

진추성은 당혹스러운 얼굴로 연신 술잔을 들이켰다.

지난밤에 그는 상관추가 동생의 복 수를 위해 미쳐 날뛰도록 상관홍의 몸에 운검문의 흔적을 선명하게 남 겼었다.

의도한 대로 상관추는 동생의 죽음 을 확인한 뒤 곧장 운검문의 제자들이 머물고 있는 풍연으로 달려갔다. 숫자는 운검문의 제자들 쪽이 많았 지만 실력 자체는 상관추가 우위에 있었기에 무난한 복수극이 예상됐 다.

한데 복수극은 뜻하지 않은 방향으 로 결론이 나 버렸다. 무슨 영문인 지 모르겠지만 상관추가 스스로 목 숨을 끊어 버린 것이다.

“상관의 성격상 자의로 제 목숨 을 끊었을 가능성은 높지 않아. 그 렇다면 남은 가능성은 누군가 개입 을 했다는 건데………… 대체 누가?” 

진추성은 빈 술잔을 돌리며 자신의 계획에 찬물을 끼얹은 대상을 추론 했다. 그 범위는 일단 쌍룡무회에 참가한 맹의 인사들로 한정했다.

‘운검문과의 연관성을 고려해 봤을 때, 가장 가능성이 높은 건 모용황 이야. 그는 운검문주와 호형호제하 는 사이. 상관추가 풍연을 찾았을 때 그가 그곳에 있었다면 상관추 정 도는 가볍게 제압할 수 있었을 거 야. 하지만………… 그가 문제의 인물이 라면 굳이 상관추를 자진토록 했을 까?’

모용황은 정의를 표방하는 몇 안 되는 쌍룡맹의 장로들 중 하나였다. 그런 인물이 제 조카나 다름없는 아이들이 죽어 가고 있는데 일부러 상관추를 자진케 했다? 아귀가 맞지 않았다.

“골치가 많이 아픈가 보군?”

진추성이 홀로 끙끙 앓고 있을 때, 방 안으로 해천인이 들어왔다. 

“해공, 죄송합니다. 믿고 맡겨 주신 일인데 처음부터 큰 실수를 했습니 다.”

진추성이 자리에서 일어나 황급히 머리를 숙였다.

“허허, 어찌 그게 자네 잘못이겠는 가. 모든 일에는 변수가 있기 마련 이네. 이번 일도 그 변수가 작용했 을 따름이니 너무 마음 쓰지 말게.” 

“무슨 묘책이라도 있으신 겁니까?” 

“묘책이랄 것이 무에 있겠는가. 그 저 흘러가는 대로 따라가는 게지.” 

해천인은 의미를 알 수 없는 말들을 읊조렸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일 층에 쌍룡맹 무사들이 쫙 깔려 있던 데.”

설우진의 방 안.

조인창과 남궁벽이 나란히 서서 침 상에 걸터앉아 있는 설우진을 바라 봤다.

설우진은 귀찮은 기색이 역력한 얼 굴로 대꾸했다.

“알려진 그대로야. 복수에 눈먼 놈 이 이곳으로 쳐들어왔고, 복수를 이 룬 뒤에는 스스로 목숨을 끊은 거 지.”

“복수라면 운검문 쪽에서 해야 하는 거 아니야? 공걸 그 사람 팔 하나를 영영 쓸 수 없게 됐다고 하던 데.”

“그 숨은 사정이야 내 알 바 아니 지.”

“에이, 그래도 우리가 묵던 객잔에 서 벌어진 사건이잖아. 최소한 관심 정도는 가져 줘야지. 그리고 무엇보 다 넌 그 사건을 눈앞에서 지켜본 목격자잖아.”

조인창이 살짝 눈을 흘겼다.

사실을 말해 달라는 무언의 시위였다.

‘자식, 많이 컸네. 예전엔 나랑 눈 도 제대로 못 맞추더니.’

“인마, 아까도 얘기했잖아. 싸우는 것 보고 그냥 나왔다고.”

“잠깐 본 것 치고는 너무 시간이 많이 걸린 것 같지 않아? 정확히 시간을 재 보지는 않았지만 네가 우 리에게 돌아왔을 때 적어도 일각은 지났었어.”

“그거야……………”

설우진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 결국 그는 두 친구에게 식당에서 일어났던 일들을 간략하게 밝혔다. 

“그러니까, 뇌력침을 이용해서 상 관추 그 사람을 스스로 자진하게 했 다고?”

“응, 내가 죽였다는 게 알려지면 여러모로 골치 아플 것 아냐! 사파 놈들 끈질긴 건 누구보다 네가 더 잘 알 거고.”

“음, 그건 인정. 근데 운검문의 사 람들도 네가 뇌력침을 쓰는 걸 봤잖 아, 그들이 네가 그랬다고 밝히지 않을까?”

“셋 중에 둘은 넋이 나간 상태였고 하나는 그 입 조심하라고 단단히 일 러뒀어. 내 솜씨를 눈앞에서 목도했 으니 허투루 입을 놀리지는 않을 거 야.”

설우진은 강명국이 쉬이 입을 열지 않을 거라 확신했다.

뇌리에 각인된 공포와 두려움은 쉽 게 지워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에. 

“그 뇌력침, 호신강기도 뚫을 수 있는 거냐?”

조인창이 사건 그 자체에 주목하고 있을 때, 남궁벽은 뇌력침에 비상한 관심을 보였다.

“왜, 하나 사게?”

“그만한 값어치만 있다면 못 살 이 유도 없지.”

비상시에 사용하는 암기는 그 가격 이 천차만별이었다. 시장에서 흔하 게 구할 수 있는 비도나 수리표 등 은 철전 십문 정도면 넉넉하게 구 매가 가능한 데 반해 당가에서 제작 되는 특수 암기들은 개당 가격이 수 백 냥을 호가해 하나도 구매하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암기는 여벌의 목숨을 담보 하는 것이었기에 조금 부담이 되더라도 많은 이들이 질 좋은 암기를 구매하고자 했다.

‘가만, 이거 꽤 좋은 용돈 벌이가 될 수도 있겠는데.’

남궁벽의 얘길 듣고 설우진은 뇌기 자수로 만든 옷을 비싼 값에 팔던 때를 떠올렸다.

처음엔 그도 자신이 만든 옷이 그 만한 가치를 가지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한데 지금 그가 초창기에 만든 옷들은 명품 중에서도 명품이 라 불리며 고관대작들 사이에서 암 암리에 거래가 이뤄지고 있었다. 그 상황과 빗대어 볼 때 뇌력침은 충분한 성장 가능성이 있었다.

병장기류는 기본적으로 단가가 높다.

무인들이 애용하는 검과 도의 경우 아무리 저렴한 철을 사용해도 그 가 격은 은자 한 냥을 훌쩍 넘길 정도 였다.

물론 암기는 검과 도 같은 주력 병기에 비해선 그 가격이 상대적으 로 낮게 형성돼 있었다. 하지만 그 건 평균적인 값을 매겼을 때 얘기 고, 당가의 암기처럼 희소성이 있는 것들은 오히려 주력 병기보다 더 비 싼 값에 거래가 이루어졌다.

“얼마까지 가능하겠냐?”

설우진이 남궁벽에게 단도직입적으 로 물었다.

“호신강기를 뚫는다는 가정하에 값을 매긴다면, 금전 스무 냥까지는 지불할 의사가 있다.”

“뚫지 못한다면?”

“그럼 살 이유가 없지.”

‘자식, 단호하네. 그럼 어디 시험을 해 볼까?’

“벽아, 너 검으로 어디까지 가능하냐?”

“……?”

“검기 말고 검강 쓸 수 있냐고.” 

설우진의 직설적인 물음에 남궁벽 은 살짝 당황하는 기색을 내비쳤다. 주변에 말은 하지 않았지만 최근에 그는 짧은 시간이나마 검강을 뽑아 내는 데 성공했다. 물론 실전에서 사용하기엔 그 경지가 턱없이 낮았다. 하지만 그래도 검강은 검강이었 다.

“답이 없는 걸 보니 쓸 줄 아는 모 양이네. 그럼 내가 여기서 뇌력침을 던질 테니까 검강으로 튕겨 내 봐. 검강에 튕긴다면 아마 호신강기를 뚫기는 힘들 거야.”

말이 끝나기 무섭게 설우진이 바지 춤에서 뇌력침을 꺼냈다.

이에 남궁벽도 발검세를 취하며 단 전의 내력을 서서히 끌어 올렸다. 검강을 뽑아낼 수 있는 시간은 대략 십 초 정도. 남궁벽은 설우진의 움 직임에 주목하며 검을 쥔 오른손으 로 내력을 흘려 보냈다.

“던진다.”

짧은 한마디와 함께 설우진이 손에 쥐고 있던 뇌력침을 앞으로 뿌렸다. 연습은 실전처럼이라는 평소 지론대 로 그는 손끝에 강한 힘을 실었다. 피융.

가는 소성과 함께 뇌력침이 허공을 갈랐다.

두 눈을 부릅뜨고 그 모습을 지켜 보고 있던 남궁벽은 왼발을 축으로 해서 빠르게 검을 뽑아 들었다.

그 순간 검신에 희미하게 강기가 맺혔다. 호신강기도 잘라 낼 수 있 다는 검기의 결정체.

이윽고 뇌력침과 남궁벽의 검이 정면으로 맞닥뜨렸다.

검 끝이 살짝 흔들렸다.

뇌력침의 크기가 작아 잘 보이진 않지만 검신 끝자락에 뇌력침이 박 혀 있었다. 검강을 뚫느라 힘을 많 이 소진했는지 그 깊이는 상당히 얕 았다.

“어때?”

“불안정한 검강을 뚫은 거긴 하지 만 이 정도면 호신강기를 파훼하는 데 큰 무리는 없을 것 같다.”

남궁벽이 객관적인 평가를 내렸다. 이에 설우진의 얼굴엔 환한 웃음꽃 이 피어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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